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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자 본색을 드러내는 조선일보

국회가 탄핵의 정치적 관문이라면 헌재는 탄핵의 사법적 관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 걸리는 시간 요소다. 최대 7~8개월을 잡는다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상황이라 해도 임기는 거의 채우는 셈이 된다. 애초에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내고 2선 후퇴를 제의했을 때 야권이 이를 받았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을 문씨, 안철수씨 등이 ‘웬 떡이냐’면서도 더 먹으려고 반대했다가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야권의 과욕과 두뇌 부족이 빚은 결과다.[이제 ‘박근혜’는 과거다]

오늘자 김대중 칼럼 중 일부다. 그간 마치 반정부 투쟁의 선봉에 서기라도 한 것처럼 살벌한 구호를 외쳐대던 조선일보의 본색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선 김 씨는 그간 박 대통령의 탄핵을 미적거리던 야권의 우려사항 중 하나를 지적했다. 바로 탄핵절차를 밟자면 의도한대로 간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임기에 필적하는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김 씨는 그런 현실을 지적하며 야권이 “과욕과 두뇌 부족” 탓에 김병준 총리 카드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놓쳤다고 조롱한 것이다.1

하지만 그 상황은 조선일보가 원하는 상태일지는 몰라도 야권, 더불어 국민이 원하는 미래는 아니다. 대체 야권에 몸을 담은 적이 있던 총리와 대통령의 2선 후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2선 후퇴도 거국내각도 – 김병준 총리 체제가 거국내각도 아님은 물론이고 – 그 어느 것도 헌법적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박근혜를 보수 세력의 본류가 아닌 일탈자로 취급하여 골방에 처넣고 전열을 정비하여 보수 재집권을 노리는 조선일보나 원할 극히 어정쩡한 상태다.2

이 사태의 본질은 “저잣거리 아녀자의 국정농단”이나 “최태민 교주에 정신적으로 지배당한 위정자의 일탈”이 아니라 헌정 이래 지속되어 오던 사익추구집단의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하는 상호 사익추구다. 지난번 수사결과 발표에서 검찰이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칭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고 직접 정유라를 지원한 삼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죄목도 현재까지는 뇌물죄가 아닌 강요죄다. 언급되지 않은 이가 바로 주범이다.

경제범죄가 악랄한 점은 그 범죄 구성요건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사안한화와의 방산 업체 거래에 있어, 최순실 씨등의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로비를 통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심증은 있지만, 이러한 심증이 법정에서 실정법 위반으로 판결나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고되어 있다. 그리고 김대중 칼럼이 원하는 상황이나 검찰의 발표 내용은 그러한 길에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이다. 그게 보수의 생존전략이다.

‘기승전순실’이라고 지금 교육, 의료, 재난구조, 인사, 경제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가 최순실 씨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일 정도다. 믿기지 않기는 하지만 그 부조리의 신경망에서 최순실 씨만 걷어내고 보면, 그간 사익추구집단이 얼굴만 바꿔가며 해오던 짓이다. 김대중 씨가 원하는 김병준 총리 체제는 그렇게 얼굴만 바꾼 사익추구의 체제다. 따라서 야권은 이번 기회에 이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말 두뇌 부족이다.

한데 김용철 씨는 그들의 서술구조에서 한발 더 나아가 100% 실존인물이 100% 실제 벌어졌던 일을 꾸미고 저지르고 있는 양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도 화려하다. 국내 최고의 재벌 삼성의 이건희 가족, 현 대법원장인 이용훈 판사, 돌아가신 두 대통령과 현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검찰 등 지배계급들이 총망라되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 이유는 만약 이 이야기가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면 이건 나라가 두 번 뒤집어질만한 대사건이고, 사실이 아닌 것을 김용철 씨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건 사상최대의 인격모독이자 무고이기 때문이다.[‘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싸움에서 선빵이 중요하듯이, 정책실행에선 용어가 중요하다

어느 정부나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은 일단 멋진 용어로 포장해야 한다. 여론이 정책실행 동력의 주요한 변수가 되어버린 현대의 정치지형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특히 – 의외로(!) – 경제정책의 용어 선점에 익숙했다. 멀리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의 “경제민주화” 용어 선점이 있었다. 이후 그 용어는 집권 성공과 김종인의 퇴장과 함께 짧은 생을 마치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경제용어(?)는 “창조경제”다. 이 표현이 쓰일 즈음 당시 유행하던 농담이 ‘도대체 정체를 모를 것이 ㅇㅊㅅ의 “새정치”와 ㅂㄱㅎ의 “창조경제”’라고 할 정도로 오리무중인 이 용어는 그래도 “경제민주화”보다는 오랜 생명력을 가지며 버텼다. 주로 서구의 각종 성공사례가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라고 주장하는 식이 아전인수적인 해석을 통해 그 생명력을 연장한 것이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표현이 “노동개혁”으로 대표되는 “4대개혁”이다. 행정부는 자신의 개혁의지가 담긴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가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며 “국회심판론”을 내세웠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국회가 심판당한 것’이라며 – 우리는 평행우주를 살고 있는가? – 노동개혁을 중단 없이 밀고 가겠다고 할 만큼 집권 후반기인 현재까지 행정부가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국정과제다.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가 콘텐츠 없는 레토릭에 가까웠다면 “노동개혁”은 개혁과 거리가 먼 노동개악의 모습을 지닌 존재이자 노동자의 삶에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 또는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는 – 존재다. 여론이 이 “개혁” 레토릭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적어도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보자면 유권자를 박근혜 식 “개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현 정부가 꺼내든 또 하나의 신박한 용어가 있는데, 바로 “한국형 양적완화”다. 총선 국면에서 여당의 강봉균 선대위원장(뭐 그런 비스무리한 직함)은 난데없이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각국이 제로금리를 넘어 더 이상의 금리정책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로 장기 금리를 낮추기 위해 내놓은 이 정책을 우리나라에서 시도하겠다고 해서 어이가 없던 와중에 다행히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카드를 청와대가 꺼내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양적완화는 “묻지마 양적완화”인 반면에 우리의 양적완화는 “특수 목적을 갖는 양적완화”라고 주장하는 등 일본에 의문의 1패를 안기는 자화자찬까지 곁들였다.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선거에서 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든 것부터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이 용어를 선점한 의도는 무엇일까? 전에 담뱃값 인상 등 사실상의 증세를 실행하면서도 “증세는 없다”고 강변했고 이 입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 특정산업의 구조조정을 수행할 국책은행에 중앙은행이 자본을 확충하는 행위는 “양적완화”가 아닌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렇게 명명한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들 다하던 바로 그 한국형 “양적완화”.

박정희 정부가 받아온 돈은 누구의 돈인가?

일본 수상으로서 아베 수상은 위안부로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 치유할 수 없는 육체적 및 정신적 피해를 입어 고통 받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진지한 사죄와 유감을 다시 한 번 표했다. 한편으로 일본은 위안부 이슈 등을 포함하여 일본과 남한 간의 자산이나 청구권과 관련한 이슈들은 1965년 한일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에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했다.[Announcement by Foreign Ministers of Japan and South Korea on the Issue of “Comfort Women”]

아베가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말한 내용이라고 한다. 요컨대 아베는 일본 수상으로서 “일본군이 관여한(with an involvement of the Japanese military authorities)” 성노예 제도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is painfully aware of responsibilities)”지만 이번에 주는 10억 엔은 기부금이지 배상금이 아니고 그런 배상은 이미 1965년에 완료했다는 주장을 또다시 반복한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의 청구권이 이미 1965년에 완료됐다는 일본의 주장은 타당한 주장인가?

올해 88살의 이근목 할아버지. 22살이던 1943년 일본 미쯔비시 조선소에 끌려가 해방될 때까지 돌덩이를 날랐습니다. 임금을 절반 밖에 받지 못했지만 조선소도, 일본 정부도 보상해주지 않았습니다. 지난 1965년 한일협정을 맺어 강제점령에 대한 보상금을 우리 정부에 지급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100명은 보상금으로 설립됐던 포스코, 당시 포항제철을 상대로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습니다.[“강제징용 배상, 도의적 책임”]

하지만 할아버지는 패소했다. 법원은 “포스코 때문에 강제징용자들이 보상금을 못 받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입장은 일본정부의 입장과 명백하게 배치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 법원은 2013년 7월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이 35년간의 일제강점기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한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우리 행정부의 수장은 아베의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인용한 글에선 그 반응은 적지 않았다.

드디어 1969년 12월 韓日간에 종합제철에 관한 기본협약이 체결되어 건설에 착수하게 되었다. 韓日 국교정상화 때 양국간에 합의된 청구권 및 對韓차관 공여액은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자금 3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이상으로서 무상 및 유상자금 각 3억 달러에 대해서는 항일독립유공자보상, 對日민간청구권보상, 평화선철폐에 따른 어민보상 등 국민적 요구가 방대했다. 朴대통령은 국민적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을 각오하면서 낭비보다는 건설이라는 견지에서 종합제철건설에 상당한 액수를 투자하는 대영단을 내렸다.[김정렴, 한국경제정책30년사, 중앙일보사, pp138~139]

한편, 박정희 정부의 경제관료였던 김정렴 씨는 이근목 씨가 포스코에 위자료 지급 소송을 낸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받은 돈에 대해 “국민적 요구가 방대”했음을 증언했다. 그런데 박정희 씨는 그 돈을 종합제철건설에 투자하는 “대영단”을 내렸다. 스텝이 꼬이는 구간이다. 당시 관료가 그런 뉘앙스로 증언했고 협정문에도 일본의 주장이 타당해보일 수도 있는 문구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법원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현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하다.

제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이것은 “좌빨”의 경제분석 보고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질이 높고 결과물도 굉장히 공평한, 매우 튼튼하고 포괄적인 교육 체제를 지니고 있다. – 이곳에서는 서로 다른 소득수준의 학생들 사이에서의 독해와 수학의 격차가 매우 낮다. 그러나 고용 상황은 복합적이다. 실업은 매우 적지만, 노동력 참여 수준은 그저 그렇고 여성의 참여는 선진경제 중에서 가장 낮다. 남녀 간 임금차이 또한 예외적으로 높은데, 이는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려는 동기를 저해하는 요소다. 부패는 또 다른 염려사항인데, 힘 있는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지대(地代)를 우려내는 것을 용납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대는 소수의 대가족 경영 기업들에게 높은 정도로 집중되어 있고, 이는 규제 시스템을 통해 보호받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소유는 매우 낮은 반면, 건강보험을 포함한 사회 보장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 지레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바람에 한국은 다른 선진 경제와 비교할 때 이전(移轉) 이전에는 가장 평등한 소득수준을 가지고 있다(“移轉前 지니”는 두 번째) 세후에는 보다 불공평하게 바뀐다(“移轉後 지니”는 18위).[The Inclusive Growth and Development Report 2015, World Economic Forum, September 2015, 41p]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 WEF)이 이번 달에 발간한 보고서 중에서 한국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다. WEF는 각국의 정치나 경제, 그리고 학계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1년에 한 번씩 스위스의 다보스에 모여서 립서비스를 하는 행사를 여는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비영리 법인이다. 사상적으로 좌우를 따질 계제는 아닌 것 같지만 굳이 따지자면 “비즈니스프렌들리”한 단체인 것은 분명하다. 인용문을 읽어보면 한국에 관한 비판이 이런 성격의 단체가 낸 보고서치고는 꽤 강경하다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다.

  • 교육은 공평하며 포괄적으로 학습수준이 높음
  •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참여 및 임금불평등이 열악함
  • 부패로 인해 각 분야 유력자의 지대 착취가 발생함
  • 재벌의 치대 착취는 매우 집중돼있고 제도적으로 보호받음
  • 평등한 소득수준이 재분배 과정을 통해 불평등한 수준이 됨

지적한 내용으로만 보면 WEF는 현 정부의 공약이나 현재의 경제정책 전반이 실패했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만 같다. 재벌의 지대 착취를 근절하겠다는 것은 애초 이 정부가 선거과정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전면에 내걸었던 공약사항이다. 하지만 집권 후 이 슬로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삼성 등 재벌의 변칙적 후계과정은 “애국”이란 명분으로 정당화되었다. 재벌의 부패와 범죄에 대해서는 일과성 처벌이 있어왔지만 곧 “경제를 살리자”는 명분으로 면죄부를 주는 봉건적 상황이 재연됐다.

이를 위해 박 후보는 ▲경제적 약자에 도움되는 경제민주화 ▲국민경제 부작용의 최소화와 효과의 극대화 ▲대기업 집단의 장점은 살리되 잘못된 점은 반드시 바로잡기 등을 3대 추진원칙으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경제적 약자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체계의 획기적 개선 ▲대기업집단 불법행위 및 총수일가 사익편취 엄중 대처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을 5대 분야로 내세웠다.[박근혜, ‘경제민주화 5대 공약’ 공식발표]

“경제민주화” 슬로건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초기 잠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주장으로 다시 표면에 오르는 듯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재계와 보수언론의 거센 반발 속에 정책은 용두사미가 되었고, 활시위는 엉뚱하게 노동계로 향해져 소위 “노동개혁”이 없기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 인양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고령의 고임금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청년실업자를 채용하자는 주장은 언뜻 수긍이 가는 듯한 주장이지만, 결국 이는 해묵은 임금기금설에 불과하며, 자본가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정치적 선동이다.

여성노동의 불평등한 상황은 이른바 “경단녀” 이벤트로 해결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일회성 대증요법에 불과할 뿐으로 이것이외에 현 정부가 親노동적 행보를 취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 취업자를 늘리자는 발상은 그나마 WEF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평등한 소득수준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만 높다. 가장 극적인 WEF의 비판은 우리나라가 열악한 재분배 과정으로 인해 선진경제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증세(增稅)”는 이 정부에서 일종의 금기어다. 철저한 현실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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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rittePipe” by Image taken from a University of Alabama site, “Approaches to Modernism”: [1].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현 정부가 경제를 정상으로 만들려면 WEF가 지적한 내용만 제대로 이행해도 될 것 같다. ▲ 재벌의 변칙적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순환출자 등 해소 ▲ 높은 지대를 통한 자영업 착취 방지를 위한 임대차 보호제도 ▲ 여성 등 소수자의 고용/임금 차별 방지를 위한 제도 정비 ▲ 재분배과정이 정상화하는 증세 및 복지증대 방안 강구 등. 한꺼번에 다 하자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문제는 마인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벌을 “특별사면”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를 복직시켜야겠다는 마인드를 가져본 적이 있는가?

최경환,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6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서 “국정 2년차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 [중략]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되면 3년 후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4% 수준으로 높아지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혁신 3개년 추진…공공개혁ㆍ내수활성화 박차]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최 부총리는 18일(현지시간) 동행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부문별로 다르지만 평균 3% 중반 성장하면 선방한 것이다. 우리 잠재력이 그 정도인 것”이라며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최경환 “3%대 성장하면 선방…고도성장기 오지않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집권 2년차가 된 마당에 뜬금없이 나머지 집권기간을 셈하여 만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관해 새삼스레 떠올릴 계기를 주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1년 전에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4%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 발언을 1년 만에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잠재성장률과 실제 경제성장률을 다른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잠재력이 그 정도”이며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발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4% 잠재성장률은 뻥이었다는 발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한편으로 최 부총리는 성장률을 제고하려면 “4대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4대 부문은 금융, 노동, 공공, 교육 등이다. 이들 부문에 대한 정부의 각각의 취지나 전술을 보면 동의할 부분도 없잖아 있으나 큰 틀에서 보면 미숙한 것이 사실이다.

“정규직 과보호”라는 정치적 수사 등으로 인한 노사정의 협상파행, 금융부문에 소위 “기술금융” 실적에 대한 일방적인 할당, 공공부채 감축 일환으로 진행한 자원외교 비리 수사급반전 등 산적한 이슈는 갈 곳을 잃은 채 현 정부의 얼마 남지 않은 정치적 자본만 소진하고 있다.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 이슈를 꺼내들며 제법 경제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던 현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일방통행식 인사 파행,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미숙한 대응, 성완종 사태 등의 정치 스캔들로 경제의 걸림돌만 되고 있다. 그게 현 정부의 “불편한 진실”이다.

얼마나 더 무덤덤해져야 하나

우리나라는 복지체제로의 이행이 가능할까?

나는 북구 여러 나라의 경제가 지금 활황을 보여주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안심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인구적으로 봐도 소국인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나라가 서구선진국에 못지않은 국가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이들 나라의 ‘국민부담율’(세 부담과 사회보험료 부담의 합계)이 70퍼센트를 가볍게 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7할을 정부에게 흡수당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미국식 발상에서는 전체주의 국가이고 수탈국가가 되는 것이다. [중략] 덴마크에서는 ‘자기가 투자를 하든가 해서 리스크를 안는 것보다는 정부에게 자금을 맡겨 장래의 생활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이 같은 제도가 운영되겠지만, 지금의 일본에서는 그 정도로 정부를 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징수된 세금의 사용방식이 지금보다 훨씬 투명하고 납득성이 높은 것으로 바뀌지 않는 한 북구와 같은 수준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도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 이남규 옮김, 기파랑, 2009년, pp337~339]

미국 자본주의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 말에서부터 1970년대 초까지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하며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저자는 뼛속깊이 미국식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흡수하고 일본사회에 이 구조를 주입시키려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2008년 미국의 신용위기를 겪으면서 자신의 신념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쓴 책이 이 거창한 제목의 책이다. 아무튼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를 통째로 부정하기보다는 인용문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식 자본주의와는 또 다른 자본주의인, 북구식의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평등이 강화된 그러한 자본주의를 원하는 것 같다.

저자는 미국식 자본주의는 자기책임, 무한경쟁, 시장숭배, 승자독식의 논리가 지배적이며 이런 논리는 전통적으로 신뢰, 계열화, 연공서열, 평등주의 등을 강조하던 일본식 자본주의와는 맞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물론 일본식 자본주의에 내재되어 있던 그런 특징이 무사안일주의나 거대관료화와 같은 부작용으로 이어졌음은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부작용을 미국식 자본주의로 고치려 했던 것은 잘못이었음을 반성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일본사회와 일정 정도 유사한 국내사회와 비교하여도 일정한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 역시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저자가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나라의 국민부담률이 70퍼센트를 가볍게 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여부는 조금 의심스럽다. 내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스웨덴의 국민부담률이 45.7%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나라의 국민부담률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경이적으로 높다. 한국과 일본의 국민부담률은 2012년 현재 각각 25.0%와 26.9%다. 이 수준은 미국의 24.8%와 유사하고 OECD 평균인 33.8%에 크게 미달한다. 한국일보의 8월 12일자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향후 4년 내에 국민부담률을 30% 수준으로 올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국민부담률을 올리는 주요수단은 세수증대와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의 보험료율을 올리는 방법이 있다. 세수증대는 박 정부가 주장했던 지하경제 양성화나 세무조사 강화 등의 방법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세율 인상 등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박 정부는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세제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야당과 여론의 비판을 받아 일정 부분 계획을 수정하였다. 분명히 개편안이 만만한 월급생활자의 책임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런 사안조차 강한 반발에 부닥친 것은 이 사회가 개혁을 위한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일천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즉, 오랜 군사독재와 지지 기반이 약한 정권교체 등 안정적 정치일정 경험이 부족한 남한 정치의 특성으로 인한 첨예한 갈등은 지속적으로 합리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다. 소위 뚝심있는 정책 추진을 위한 정치적 자본이 부족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분명 정치적으로는 수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미약하나마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내수 위주의 복지체제로 가려는 경향이 있음에도 야당과 그 지지자들은 현 정부의 정당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우를 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다는 민주당이 세제개편안을 “세금폭탄”이라 비난한 것이 그 사례다.

정치적 이념 지향과 경제적 이념 지향의 이러한 모순된 혼란은 소위 “민주화 세력”의 경제적 지향이 자의든 타의든 시장개방과 규제철폐, 그리고 한미FTA 추진 등 오히려 미국식 자본주의에 가까운 성향을 보였고 지지자들도 뚜렷한 경제체제에 대한 고민이 없는 와중에 더욱 강화됐다. 사회는 어느새 승자독식과 약자배제의 이데올로기에 익숙해져 인근 주거지역에 임대 아파트를 짓는 것을 반대하는 등의 이기적인 행동을 거리낌 없이 주장하기도 한다. 수구적인 정치체제는 이러한 토양 속에서 강화된다. 그리고 현 정부는 자신들의 복지강화 정책이 반대에 부닥친다면 바로 그 명분으로 발을 뺄 것이다.

문재인, 박근혜 경제 관련 공약에 관한 트윗 모음

문재인 공약 리뷰(자료보기)

“학자금대출금리를 물가상승률 이하로 제한” 이게 무슨 소리인지? 최초금리를 물가상승률로 하겠다는건지, 금리상승을 그렇게 하겠다는건지? 두 소리 모두 이상한 소리.

@candyNsweetOwl “대출금리를 물가상승률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억지로 해석하자면 실질금리 제로인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겠군요. 🙂 재원조달방안이 궁금해지네요.

“임대전용주택 등록 의무화, 임대정보 공시”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게 된다면 전월세 인상 상한제 등도 실현가능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좀 더 연구해 볼만한 공약인듯.

“고용 일체의 차별을 철폐하는 ‘전 국민 고용평등법’ 제정” 개인적으로 문의 공약 中 가장 맘에 들고, 시급한 공약. 비정규직보호법은 이 법의 보호를 향한 과도기적 법으로 정비하여야 한다.

“은행 등 각 금융업 권별로 예대금리차, 수수료 수준,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지원활동, 비정규직비율, 사회공헌활동 등을 지표화한 ‘사회적 책임지수’를 공시” 나름 신선한 공약

“시장경제체제의 폐해가 심각해질수록 공동체와 자발적 협력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적경제가 점점 부각되고 있습니다” 주요후보 공약집에서 “사회적경제” 언급은 신선하나, 내용은 빈약함.

“경제자유구역 등에 설립되는 영리병원은 외국인 대상으로 한정하고” 참여정부의 정책으로 그 부작용을 인지한 것은 좋은데, 투자자가 한미FTA의 레칫조항으로 시비를 걸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체휴일제를 실시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휴가분산제를 도입해 휴가를 근로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 | 진짜 이것 좀 꼭 해라! 선거 때마다 약팔지 말고~

문재인 지역공약 리뷰(자료보기)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 시민단체가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에 의해 통행료가 통합채산제 성격에 비추어 적법하다고 판결난 상황. 판결을 바꾸겠다는 의미인지?

“동남권에 로봇비즈니스벨트를 구축” 아마 ‘마산로봇랜드’산업 등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현재 이 사업은 사업자 선정 이후 현실성 부족으로 난항을 겪고 있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경남은행을 분리매각” 경남은행은 우리금융 민영화 관련 사항으로 금융기관의 분리매각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음.

“서해안의 대중국 교류기지화 등 항만인프라 확대” 현재 서해안 항만이 전반적으로 침체고 배후산단 등이 활성화되지 않고서는 비현실적인 지역공약. 또 하나의 텅빈 항구를 만드려는 것인지?

“새만금을 동북아 허브로 육성” 노태우가 시작하고 김대중이 강행하여 거대한 해양생물의 무덤으로 변한 새만금. 농지, 관광지, 산단 등 수많은 계획이 세워지고 폐기. 이젠 “동북아 허브”?

박근혜 공약 리뷰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이 공약집에도 나오는군요. 범주도 다르고 전체 사회악을 아우르지도 못하는 개드립~(자료보기)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 설립”이 핵심정책인데, 이 기금으로 온갖 부실채권을 다 인수하여 정상화시킨다는 계획. 기금 현실성은 많이 떨어짐.(자료보기)

“모든 직종에 요구되는 직무능력을 표준화한 <직무능력표준> 개발 및 제공” 국가가 고용시험의 표준을 개발하여 제공하겠다는 계획. 삼성이 비웃겠다.(자료보기)

주요기업이 국유화/사회화될 정도면 “모든 직종에 요구되는 직무능력을 표준화한 직무능력표준”을 국가가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근로기준법상 초과근로시간 한도 지키기” 공부를 잘 하기 위해 시험을 잘 보기? 저임금을 상쇄하기 위한 초과근무의 상황을 이해해야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를 도입하여 일이 많을 때 초과근로시간을 저축하고, 경기불황기에 임금으로 지급받는 방식” 이건 또 무슨 황당시츄에이션인지?

“대기업 또는 특정 업종에서 대규모 정리해고 발생시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 정부에서 특별예산지원을 통해 정리해고 피해 최소화” 이 공약은 맘에 듬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대책은 “대기업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 이거 하나. 대단하심.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사업장을 .. 동일한 불법파견 확인시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하도록 행정명령” 지금 현차의 상황입니다. 바로 시행하세요.

“하우스푸어 주택의 일부지분을 공공기관에 매각하고 매각한 지분에 대해서는 임대료를 지불” 지분을 공유하는 집은 주인이나 투자자나 모두 황당(자료보기)

하우스푸어의 지분일부에 ABS를 발행하면 그 신용공여는 공공기관이 하게 된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공공기관으로 부담전가. 또 하나의 돌려막기.

박근혜의 공약 중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공약은 여러 공약 중에서도 특히 비현실적으로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는 공약임에도, 새누리는 변함없이 공약집에 넣고, 언론은 비판을 하지 않고, 당사자인 유권자도 관심없는 것 같은 희한한 시츄에이션.

“집중투표제, 전자투표제 및 다중대표소송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 정치권이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뻥칠 때 쓰는 말 “단계적 도입”(자료보기)

“화물차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이 야간에 한정, 운송이 야간에 편중. 출퇴근시간을 제외한 주간도 통행료를 25% 할인” 이건 맘에 듬(자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