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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전시회

Stanley Kubrick 展

현대카드가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연 기획전으로 스탠리큐브릭의 주요 작품에 쓰였던 소품, 시나리오, 그의 개인사물 등을 빼곡하게 채워 넣은 전시회였다. 앞서 글에서도 썼듯이 올해 초반 극장에서 만난 그의 작품들의 여운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전시된 소품들과 사전 콘티 등을 보면 여느 감독들도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편집증 환자라고 여겨질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에 집요하게 집착한 감독인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실제 스페이스오디세이에 쓰였던 HAL9000 실물을 만날 수 있었던 보기 드문 기회.

변월룡 展

우선 이 위대한 화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미술평론가이자 기획자인 문영대 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소비에트 시절의 타협하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예술가의 주요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용기와 인내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이 전시회를 세 번 찾았을 만큼 감명 깊었던 전시회다. 나는 화가 중에서도 그림 그리는 솜씨가 남다른 더 잘난 화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변월룡 씨가 바로 그런 분이다. 이런 그림 솜씨와 이데올로기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결합하여 최상의 결과를 낸 이가 바로 변월룡 씨다.

르느와르 展

올해 5월 도쿄에 갔을 때 들른 도쿄 국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다. 르느와르라고 하면 어딘가 식상한 면도 있을 것 같은 인상주의 화가지만 전시회를 보면 그것은 우리가 그의 명성이나 이미지를 과소비했을 뿐 그의 작품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 전시회가 인상적이었던 이유 하나가 특히나 일본에서 열린 전시회라는 점이었기 때문인데, 토요일 그 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기이할 정도로 질서정연하고 조용했다는 점, 그리고 컬렉션의 알찬 내용이 국내의 유사 전시회에서 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요했다는 점 등 때문이다. 그런 점은 참 부러웠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쥴리

우타가와 히로시게 展

이 전시회는 도쿄 시내를 배회하다 산토리 미술관에서 이 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들른 대박 전시회였다. 우키요에를 즐기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진본을 본적이 없는지라 이렇게 우키요에의 大家의 작품을 한데 몰아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명소에도백경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풍경화를 – 그럼으로써 일종의 관광지 팸플릿 역할을 했던 – 주로 그렸던 작가인지라 역시 컬렉션은 풍경화 위주다. 전시회에서는 이런 작품을 현재의 위치와 매칭해서 보여주며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는데, 다시 한 번 일본인의 집요함을 느낄 수 있었던 전시회였다.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전시회

노이에 갤러리(Neue Gallarie)의 클림트 展

뉴욕에 갔을 때 메트로폴리탄미술관, MOMA 등 주요미술관을 돌아다니며 감상한 상설전시는 여태도 그렇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한꺼번에 몰아서 걸작을 감상한 시기였다. 하지만 특별히 이 갤러리의 클림트 작품을 언급하는 이유는 약간의 기획전 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클림트의 여성 전신을 그린 주요 작품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전시회였기 때문이다. 방을 죽 둘러싼 클림트의 여인들을 바라보며 그가 살았던 시대의 그 분위기가 내 머릿속에 샤워 물을 퍼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소비되는 느낌이 드는 화가지만 역시 천재임에 틀림없는 화가였다.

이성적인 문명은 [ ]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긍정적인 점은 특정한 기술적 발전 단계에 도달한 지능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핵에너지를 발견했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중략] 그 문명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일 없이 핵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나, 아니면 그 문명은 스스로 절멸됐나? 핵에너지를 발견한 후로 1000년을 존재해온 문명이라는 어느 문명이건 핵폭탄을 통제할 수단을 고안해냈을 거라고 짐작해요. 이 사실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한 특정 가이드라인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스탠리 큐브릭 장르의 재발명, 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101]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 관한 인터뷰에서 외계문명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근거로 든 사례다. 문명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될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는지 아닌지가 그 문명이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닌지의 기준점이 된다는 의견으로 여겨진다. 스스로 냉전 당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핵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로 만들기도 했던 이인지라, 외계문명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 이런 잣대를 갖는 것이 그답다는1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2016년 현재의 지구 문명은 큐브릭의 기준에서 볼 때 스스로 안도감을 가질만한 문명일까? “냉전(冷戰)”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미-쏘 열강의 전선이 사라질 즈음, 인류는 다행히도 큰 격변 없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어느 정도 유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지구적 관점에서, 특히 동북아 관점에서 핵에 대한 신경쇠약증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등이 그 예다. 전자는 국지적 냉전의 결과고, 후자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기술과 제도가 실패한 결과다.

Nagasakibomb.jpg
By Charles Levy from one of the B-29 Superfortresses used in the attack. – http://www.archives.gov/research/military/ww2/photos/images/ww2-163.jpg National Archives image (208-N-4388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6719

경수로 지원 사업에 관한 북미 간의 갈등에서 본격화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형식적으로는 국지적인 규모에서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양상을 띠고 있다.(또는 적어도 각 이해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동북아의 정치상황은 적어도 큐브릭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상태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야무진 핵의 평화적 용례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이후 – 원인이 소유형태든 일본식 문화든 간에 – 부조리한 사태처리로 말미암아 핵의 평화적 이용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일게 만들고 있다.

결국 큐브릭이 상정한 이상적인 핵개발의 상황은 핵을 전쟁수단으로 삼는 상황을 통제내지는 절멸시키고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은 그런 희망사항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서구열강은 비대칭적인 핵무기 보유상황을 상수로 인정하라 강요하고 이에 몇몇 “불량”국가는 사실상의 재래식 전력인 핵을 공포의 균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개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로 핵의 평화적 이용의 기술적 발전이 미흡함을 깨달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등 대체수단의 정착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큐브릭은 같은 인터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영화가 결코 아니라면서 “미친 짓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치유할 가능성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익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2016년 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도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처럼 완전 미쳐 돌아가는 상황은 아닐지라도 –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대립구도를 어느 한쪽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나머지는 지극히 이성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미친 짓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합리적 맥락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사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감독의 돈이 필요했던 이유

나는 돈의 요점은 그걸 쓰는 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돈의 요점은 내가 정말로 만들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되게끔 그걸 보유하는 데 있어요. 생활수준을 높였는데 갑자기 무일푼이 돼버리고 스튜디오 몇 군데에서 원하지 않는 영화를 찍으라고 강요한다면. [중략]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의 영화화 권리를 사들이는 데 돈을 써요. 마음에 드는 다른 책을 찾아냈을 때 그 책의 권리도 사들이려고 돈을 저축하고요.[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p39~40]

역사상 어느 영화감독보다도 탄탄한 필르모그래피를 구축한 것으로 인정받는 스탠리큐브릭의 돈에 대한 생각이다. 평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오던 차에, 그 맥락이 수긍이 가는 유명인(!)이 이런 말을 하니 반가운 맘에 옮겨 적어봤다. 즉, 그의 독보적인 필르모그래피는 그가 찍고 싶지 않은 영화를 찍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 자유를 확보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돈벌이로서의 일이 아닌 창작과 그에 따른 기쁨으로서의 일이 현실적으로는 물질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 현실에서 큐브릭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A black and white photograph of a bearded Kubrick.
By “Copyright by Warner Bros. Inc.” – Originally published as a publicity photo (see “other versions” below)., Public Domain, Link

물론 돈이 아주 많지 않아도 어느 정도 희생만 각오한다면 하고 싶지 않은 노동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다. 소위 “자발적 가난”이라는 표현이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소비를 줄이고 덜 노동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이 택한 삶을 그렇게 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큐브릭에게는 당연하게도 돈이 필요했다. 영화창작이란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는 로리타의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몇 십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직접 투자해야 했고, 이를 통해 그는 창작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실 돈이 없이도 나름의 창작세계를 구축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에드 우드는 ‘글렌 혹은 글렌다’와 같은 초저예산 영화를 만들며 버텼고 사후에 어느 정도 그만의 독특함을 인정받았다. 더 독특한 예로는 “핑크 영화”라 불리는 1960~70년대의 일본 성인영화계에서 벌어진 일인데, 감독은 일정수의 섹스신만 넣기만 하면 상당한 정도의 연출의 자유가 주어진 덕에 때로 정치적으로 아주 급진적인 “핑크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그래도 큐브릭이 돈이 있어서 더 좋은 작품을 찍은 것은 사실이고, 그저 그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