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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사태와 나랏빚에 관하여

# 코레일 사태의 또 하나의 시사점은 정부의 국책사업 부채를 공기업에 맘대로 떠넘길 수 없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LH공사, 코레일, 수자원공사 등 공기업 부채 속에는 개별 정권의 국책사업 수행을 위한 막대한 빚이 녹아 있다. 재정준칙 마련 필요.

# 올바른 재정준칙 시행을 위해선 엄밀한 비용/산출 모형의 정립, 정치적 꼼수를 통한 사업성 분석 회피의 방지 등이 필요하다. 코레일의 고속철도 부채는 사업비 예측에 실패한 경우고, 4대강 정비는 사업분할을 통해 법적 사업성 분석을 피해 나간 꼼수 사례.

# 가장 많은 빚을 진 LH공사는 개별 정권의 즉흥적인 공공주택 정책에 따른 피해가 큰 공기업인데, 일관성없는 인기성 위주의 사업때문에 결국 공공주택은 그저 서민용 로또가 되고 비용은 국가부담으로 남게 됐다. 박 정부의 행복주택은 또 하나의 부채 늪.

# 하지만 5년 수명의 정권은 공기업 부채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자신의 치하에서 공기업 부채가 정부부채라는 사실을 인정할 이유도 없고, 자신도 공기업을 이용해서 국책사업을 시행해야 하니까. 공기업 개혁 주문은 정권 초기의 군기 잡기일 뿐이다.

# 정부부채의 부외 금융(off-balancing)은 지방정부에도 만연한 데 대표적으로 기채발행 한도를 피하기 위한 지방공사의 설립. 내일 망해도 시원찮을 지방공사가 몇 개 있는데 회사채 보고서에는 A등급을 웃돈다. 공사란 이름이 이용한 폭탄 돌리기.

# 요컨대, 현 정부가 과거 정부에게 할 말은 ‘너희도 민영화하려고 했잖아’가 아닌 ‘너희가 코레일에 빚을 떠넘겼잖아’지만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면 파업을 벌이는 노조의 정부 원죄설과 일맥상통하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대안은 없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철도

“朴, 대처, 레이건 롤모델로 ‘집단행동’ 고리 끊는다.”

2013년 12월 17일자 국민일보 1면 헤드라인이다.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의 소유자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7천 명이 넘는 코레일 직원의 직위를 해제했지만, 그 배후(?)에는 朴心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알리는 기사다. 때마침 오늘 경찰은 철도노조 사무실의 압수수색을 벌였다. 기사는 이러한 일련의 모습을 두고 “이익집단에 밀리지 않는 새로운 리더십 구축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도 새롭지 않거니와 자칫 대선 때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던 공약의 파기로도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수서발KTX의 운영을 담당할 신설법인(이하 “수서고속철도”)의 주주가 코레일과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이 될 예정이므로 민영화가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건호 씨는 이에 대해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면 민영화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의 말이 맞을까?

사견으로 둘 다 반절은 맞고 반절은 틀렸다. 민영화의 본래 표현인 privatization이다. 피터 드러커가 그의 저서에서 언급한 이 표현을 정치시장에 꺼내든 이는 국민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롤모델로 삼으라는 마가렛 대처다. 그는 국유기업이 주를 이루던 영국의 상황을 격파하기로 맘을 먹었고 꺼내든 카드는 국유기업의 탈국유화(denationalization)이었다. 그 상황을 표현할 때 선택한 단어가 바로 민영화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단계의 민영화는 소유권 이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 점에서는 좌파 일부진영에서 주장하는 사유화(私有化)가 적절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후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되 운영을 자본이 수행하는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즉 민간투자사업이 성행하면서 민영화의 범위는 광범위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privatization은 공공재에 대한 다양한 역할 이전을 의미하므로 사화(私化)가 적절한 표현이다.1

한편 민영화의 전 단계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이 시장화(市場化, marketization)다. 굳이 소유나 운영을 민간에게 이전하지 않더라도 정부기능에 시장논리를 부여하는 작업이 가능한데 대표적으로 코레일과 같은 정부조직의 공사화(公社化)다. 때문에 코레일은 이미 시장화된 상태고 새로 설립될 수서고속철도는 노선을 분할한 새로운 시장화다. 따라서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맞고 오건호 씨의 주장은 틀렸다.

한편 정부는 수서고속철도의 주주구성을 정관에 못 박을 것이기에 민영화 의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관은 바꾸면 그만이다. 코레일이 대주주라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하지만 현재의 행태를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다. 근본적으로 철도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법인 철도산업기본법은 철도의 민간운영 원칙 조항이 있다. 진정 민영화 의지가 없다면 그 법을 바꾸거나 수서고속철도의 공공출자를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면 된다.

정리하자면 현 단계는 오건호 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서고속철도의 민영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민영화의 싹을 자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분할하여 설립한 수서고속철도는 흑자가 예상되는 법인이고 자산이 크지 않아 코레일에 귀속되는 것보다 더 민간매각의 가능성이 높은 법인이다. 결국 이 극한대립의 싹은 철도청을 시장화하여 민영화의 로드맵을 제시한 이전 정부에서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수서고속철도 설립을 통해 “경쟁체제”를 구축하여 코레일의 “경영개선”을 이루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노선의 80%가 겹치는 유사상품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과연 “경쟁체제”인지는 지난 글에서 살펴본 바 있고, 이 글에선 “경영개선”을 해야 하는 이유인 코레일의 만성적인 적자의 원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나는 공공성의 확보 명분이나 부채 떠넘기기 등의 “정부의 실패”가 주원인이라 생각한다.

2012년 11월 29일 한국기업평가가 내놓은 ‘제100회 한국철도공사채’에 대한 신용평가 레포트를 살펴보기로 하자. 레포트는 코레일의 취약한 재무구조의 첫 번째 원인으로 “영위사업의 높은 공익성으로 인해 원가에 상응하는 운임 책정이 어려운 특성(2p)”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 PSO(Public Service Obligation)이라는 이름으로 보조금을 주고 있으나 그 금액은 적자를 보전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오병윤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철도공사가 계산한 PSO 사업의 비용은 약 5천억 원에 달한다. 국토부가 다시 정산한 액수는 약 4천억 원이다. 하지만 실제 지급액은 약 3천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토부 정산액을 기준으로 해도 철도공사는 받아야 할 PSO 보조금 가운데 25%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PSO를 통한 공공성 실현의 방해물은 민영화보다는 오히려 국토부라고 할 수 있겠다.[코레일 파업 완전분석 – 파업과 민영화와 한국철도]

한편 이러한 영업적자의 기저에는 부채라는 더 큰 빙산이 존재한다. 현재 코레일의 부채는 17조 원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최연혜 사장은 차량 구입, 인천공항철도 인수자금, 용산사업 해제로 인한 토지 대금 반납 등이 원인이라 답했다. 하지만 출발점에 더 큰 혹이 있었으니 바로 고속철도 건설부채다. 단병호 前 민주노동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코레일은 2004년을 기준으로 4.3조 원의 차량 부채를 들고 시작한다.

정부는 철도산업의 경쟁력 강화, 발전기반 조성 및 철도산업으 효율성·공익성 향상을 위하여 철도산업 구조개혁을 추진해 왔으며, 그 일환으로 2003 년 철도산업 구조개혁 관련 2 개 법률(‘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공사법’)을 제정하였다. 동 구조개혁은 철도운영부문과 철도시설부문을 분리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여 철도차량의 운영은 공사가 담당하고, 철도시설의 건설 및 관리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책임지며, 철도시설은 국가가 소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철도청 및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시설관련 자산·부채는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이전되었고, 운영관련 자산·부채는 공사로 승계되었다.[한국기업평가, 제100회 한국철도공사채 신용평가 레포트, 2012. 11. 09, p8]

철도구조개혁이 집행되는 2004년 기준으로, 한국철도공사는 고속철도 차량부채 4.3조원, 한국시설공단은 건설부채 6.8조원 등 총 11.1조원의 부채를 승계해야 한다. [중략] 처음 경부고속철도 건설이 입안되었을 때 고속철도 건설비용은 전액 정부가 책임지는 것으로 상정되었었다. 그러나 고속철도 건설 예상비용이 계속 불어나자 정부는 국고지원을 35%로 한정하기로 수정하였다. [중략] 현재 고속철도를 운행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1964), 프랑스(1981), 독일(1991), 스페인(1992) 등 4개국이다. 이 나라들의 고속철도 건설비용은 대부분 정부가 부담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사실상 방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속철도 건설비용에 투입된 외부자본의 원금과 이자 상환을 위해 운영회사에게 받는 선로사용료가 높아질 것이다.[한국철도의 공공적 발전을 위한 개혁방안, 2004. 11. 8, pp13~14]

결국 국가가 부담하지 않은 비용은 시장화된 회사들에게 이전됐고 이들은 태생적으로 “경쟁력”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독점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에 사업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런 철도산업을 이제 정부에서 노선별로 분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수서고속철도는 코레일보다 더 싼 선로사용료 등의 구매경쟁력이나 운임을 높여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어떻게 경쟁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코레일의 “부실경영”에는, 정부 측에서 주장하는 “과다인력”과 “고임금”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근저에는 공익성을 위한 요금통제, 부실한 PSO, 보다 근본적으로 정부로부터 떠안은 막대한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뭐든지 “놈현 탓”을 하는 여권은 정말 노무현을 탓해야 할 시점에는 그리 하지 않고 있다. 부채가 부실경영의 원인이라고 하면 노조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게 되니까.

“민영화가 되면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모든 부패한 나라는 민영화를 한다”는 저항을 조직하는데 좋은 슬로건일 수는 있지만 사태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는 구호는 아니다. 수서고속철도의 민영화는 수서발 KTX 노선의 부실화보다는 오히려 기존 코레일의 부실화 촉진으로 인한 공공성 훼손에 있을 것이다. 그 부실화의 근본을 따라가면 우리는 고속철도에 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기한 “정부의 실패”를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에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토머스 프랭크의 저서 The Wrecking Crew는 정부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고 집권세력이 되었을 때조차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사적이익에 충실한 미국 우익의 실체를 다루고 있다. 만약 한국 버전을 쓴다면 철도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정부의 실패”로 부실화된 공기업을 정부 스스로 “시장적 대안”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철도에서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철도다.

폴 크루그먼의 책을 읽고 든 상념 트윗 모음

기업은 돈이 시중에 많이 풀렸다고 해서 가격을 높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가격을 높여도 매출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폴 크루그먼 지음, 박세연 옮김,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엘도라도, 2013년, pp214~215]

# 이 설명은 시중의 높은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는 통화주의자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하지만 통화주의자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현대의 부채 경제에서 유동성과 낮은 금리는 소비주체가 높은 가격에 너그러워지게 한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거품.

# 통화주의자의 오류는 유동성을 가격 인상의 거의 유일한 원인으로 보는 아집이다. 일본은 엄청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에 빠질 정도였다는 반증이 존재함에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재정건전성 요구와 결합하면 질리지도 않고 반복되고 이게 먹힌다.

# 그리고 통화주의자와 재정건전론자의 이론적 지원을 받는 정치인이 요구하는 것은 낭비성 예산 삭감인데 대부분 국방예산과 같은 그들의 이해와 직결된 예산이 아닌 공립학교와 같은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에 대한 공격이다. 홍준표는 이런 도움 없이도 병원을 날렸고.

# 개인적으로 공공서비스에 대한 이런 이론적이거나 실제적인 공격은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증세는 인기낮은 선택이고 기본적으로 예산체계가 경직성 복지 예산의 증가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재정압박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까이고 또 까이고.

예산안 통과와 부채상한 증액이라는 두 개의 치킨게임

예산을 둘러싼 싸움이 이상할 것은 없다. – 의회는 1997년 이후 예산을 시간에 맞게 제대로 통과시킨 적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번 싸움은 새로운 국면이다. 하원의 공화당원들은 예산의 내용 자체에 대해 반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반대하기 때문에 예산을 막은 것이다. 그 큰 부분이 이번 주 가동을 시작한(이 기사를 보라) 버락 오바마의 헬쓰케어 개혁이다. 그들의 원래 요구사항은 오바마케어의 모든 재원을 빼앗아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그들은 민주당원들이 그들의 대통령의 가장 커다란 성과를 죽이기를 원한 것이다.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예산안에 대한 데드라인이 임박하자, 공화당원들은 그들의 요구를 줄였다. 오바마케어를 거덜 내는 대신, 개인이 건강보험을 구입해야 하는 의무를 (사지 않으면 벌금을 내는) 1년 동안 연기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 소리가 합리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두 가지 사유로 그렇지 않다. 첫째, 의무를 연기하는 것은 전체 개혁을 박살낼 수 있다. 오바마케어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앉아 있다. 모든 이들은 보험을 가지게끔 강제하고 있고, 보험사는 사람들이 이미 아프다는 이유로 요금을 더 비싸게 청구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다. 만약 오직 두 번째 규칙만 적용된다면, 아픈 이들은 보험을 사러 몰려들 것이지만 건강한 이들은 자신들이 아플 때까지 가입을 미룰 것이다. 보험사는 막대한 보조금 없이는 제공이 불가능한 보험 보장 때문에 프리미엄을 올리든가 파산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케어는 죽음의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고 아마도 파산할 것이다. 몇몇 공화당원들에게는 이것이 목표다.[No way to run a country]

기사가 지적하고 있는 “몇몇 공화당원들”의 중심에는 신흥 극우 원리주의 집단 티파티(Tea Party)가 있다. 티파티의 생성과정에 대해서는 이 글을 다시 한 번 참조하시면 되는데, 이들의 영향력은 어느덧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당인 미국 공화당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흔드는 지경까지 이른 것 같다. 반(反)연방주의나 시장근본주의의 조류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그런 극단주의가 하나의 단체로 조직화되어 이렇게까지 짧은 기간에 이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이러한 이론적으로 순혈주의적인 정치적 행동은 자본가들에게조차 불편한 상황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주장했지만 자본가들은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완전경쟁이나 순수한 시장에 의해서 가동되는 자본주의는 그들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정보 불균형의 – 또는 권력불균형 – 시장과 거리가 멀다. 그러니 순혈주의 티파티의 치기어린 행동이 반가울리 없다. 오바마는 현지 시간으로 10월 2일 재계 CEO들을 불러 모아 응원을 독려했고 골드만삭스의 로이드블랭크페인과 美상공회의소 등은 이에 화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금융회사들의 최고경영자(CEO) 14명을 만나 1시간 넘게 셧다운을 둘러싼 정쟁 해법을 논의했다. [중략] 회담에 참석한 골드만삭스의 로이드블랭크페인 CEO는 “(부채 한도 인상 실패에 따른) 국가의 채무 불이행 사태를 곤봉처럼 휘두르면서 정쟁의 위협 도구로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 상공회의소도 재계단체 약 250곳과 함께 ‘정치 다툼을 멈추고 셧다운과 채무 불이행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편지를 의회에 보냈다. [중략] 재계에서는 반(反) 오바마케어 정쟁을 이끄는 공화당 강경파인 ‘티파티’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 셧다운 해결 촉구 편지에 서명한 재계단체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회장이자 공화당 출신 전 미시간 주지사인 존 엥글러는 “독자적 성향인 티파티 쪽 공화당원들은 솔직히 많은 사람의 얘기를 안 드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美 재계, 오바마와 연합 “셧다운 해결돼야”]

이번 정쟁이 예산안 자체가 아닌 오바마케어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특성과 별개로, 또 하나의 특성은 숨고를 틈도 없이 부채한도 상한 조정이라는 새로운 라운드가 열린다는 점이다. 양당의 파이터는 새로운 링에서 싸울 것인데 美 재계가 걱정하는 점은 이 두 싸움이 화학적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엄청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신용위기의 주범인 월街를 처벌하기는커녕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창출해준 오바마 정부가 두 싸움에서 좌절할 경우 재계가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부채상한 한도 증액 추이(출처)

예산안과 마찬가지로 부채 한도의 상한 재조정도 의회의 끊임없는 정쟁도구였다. 위 그래프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이 제도는 재정건전성을 의회가 통제하겠다는 본래의 의미는 퇴색한 채, 진영의 이익을 위한 협박수단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이없는 이유로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게 되면서 이 치킨게임에서 정말 치킨 두 마리가 통닭이 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게임에서는 양당, 미국, 그리고 나머지 세계 모두가 패자가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재계가 두려워하는 것이 이런 상황이다.

미국은 세계의 기축통화를 찍어내는 “과도한 권리”를 향유하고 있다. 정부의 부채는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졌고, 이를 통해 샘 아저씨는 엄청난 돈을 엄청 싸게 빌릴 수 있었다. 미국은 그 권리를 하룻밤 새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신용도를 저하시키는 여하한의 행동은 – 워싱턴에서의 촌극은 분명히 그러한데 – 미래에 예측치 못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단순히 미국이 더 이상 빚을 얻지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디폴트의 여파는 전 세계적일 것이고 예측하기 어렵다. 이 사태는 금융시장을 위협할 것이다. 미국의 재무부 채권은 매우 유동화가 쉬었고 안전하기에, 담보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투자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 초단기 차입의 재원인 2조 달러 규모의 “삼각 리포” 시장에서 차입을 위해 담보로 사용하는 재무부 채권은 전체 담보의 30% 이상이다. 디폴트는 대주들의 더 많은 혹은 다른 종류의 담보 요구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2008년의 리만 브라더스의 몰락이 초래한 것과 비슷한 금융 심장마비를 야기할 수도 있다.[No way to run a country]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지출삭감과 개혁을 위한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며 부채상한 증액만을 위한 표결은 하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렸다. 겉으로는 재정건전성을 위한 우국충정인 것처럼 들리지만 지난번 부채상한 증액에서 받았던 티파티로부터의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련한 정치인인 그가 상한 증액 실패로 인한 피해를 예측 못할 정도의 멍청이는 아닐 것이지만 정치적 생명이 티파티 등의 정치적 색맹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면 몽니는 의외로 길고 잔인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요컨대, 현재의 미국정치의 혼란상은 양당체제에서의 이념적 혼란 양상에서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극우적 방향으로 표출되었고, 이 분노가 극단적인 배후세력이 원하는 바에 따라 흘러감에 따라 상황은 예측불허로 치닫고 있다. 이번에 부채상한을 증액한다 하더라도 이 제도가 남아있는 한, 정치적 모험주의는 계속될 것이다. 미국 정부의 해결할 길이 묘연한 부채증가, 양당을 초월한 재계에 대한 비굴한 대처, 그리고 이 뒤틀린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는 재력가가 있는 한 계속될 극단적 모험주의다.

기본소득 단상

‘연금재원을 소비세로 하자’고 제안했을 때 반드시 나오는 반론이 있다. 그것은 ‘소비세에는 역진성(逆進性)이 있다’는 주장이다. [중략] 그래서 내가 제창하고 싶은 것이 ‘환급금부 소비세’다. 예를 들어 소비세가 20퍼센트가 되었을 때, 연수 200만 엔인 사람들의 소비세 부담은 (모든 수입을 소비로 돌렸다고 하면) 40만 엔이 되는데, 이 세율 인상과 동시에 ‘전 국민에게 균등하게 매년 40만 엔씩 환급한다’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중략] 이 같은 ‘환급금부 소비세’의 아이디어의 기초가 되어 있는 것은 ‘베이직인컴(기초적 소득)’이라는 세상이다. [중략]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덴마크는 기초연금은 세금방식이고, 모든 거주자에 대해서 무조건으로 지불한다. [중략] 연금은 퇴직 후에 평등하게 주는 급부인데, 이것도 퇴직 후라고 하지 않고, ‘지금 당장’, 모든 연대의 사람에게 확대하는 것이 베이직인컴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 이남규 옮김, 기파랑, 2009년, pp343~347]

사실 노동당 일부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소비세와 결합시켜 역진성을 없애고 기초생활도 보장하자는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물론 소비세와 결합하면 실질적으로는 기본소득이 이미 낸 세금에 대한 환급금에 불과하므로 상쇄효과 밖에 없다는 점이 눈에 띄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디어 차원이므로 소비세 수입을 통한 추가적인 복지혜택 등과 결합하면 재분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어쨌든 기본소득은 일반인의 ‘소득’에 대한 통념, 즉 ‘소득은 노동에 대한 반대급부다’라는 선입견에 비추어 볼 때 좀 의아한 개념이다. 존 로크가 재산형성의 기본적인 경로를 ‘노동’으로 정의한 이후 대부분의 사상가는 노동을 소득과 재산의 기본전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 맑스가 노동자의 노동을 부불(不拂)노동으로 정의한 이후 투여노동이 꼭 소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종의 균열이 생긴다.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체제라면 개인의 소득은 시장에서 결정된 노동에 대한 가격이므로 전적으로 개인이 시장에서 검증받은 능력에 대한 대가라고 정당화할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에서 이런 시각의 맹점으로 특정인이 금융구조화 능력이 뛰어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배경에는 금융시장이 발달한 시공간적 조건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즉 사회 없이 개인의 특출함만으로 대가를 받는 것은 아니란 점을 지적한다.

마가렛 대처는 ‘사회란 없다’고 일갈했지만 소득은 개인의 능력과 함께 사회가 그 능력에 지불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가능한 것이다. 시장 역시 사회 안에 존재하며 맑스에 따르면 시장에서의 대가 중 지불되지 않는 노동도 있다. 적정한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는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역할 또한 사회가 맡아야 한다는 당위에 비추어 보자면 ‘기본소득’은 진지하게 고려해야할 또 하나의 공적부조의 수단일 것이다.

뉴욕과 고담, 두 도시 이야기

민주당은 지난 20년 동안 뉴욕시장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금융 권력을 상징하는 뉴욕이란 도시답다는 생각이 든다. 얼핏 생각나는 시장들이 루디 쥴리아니나 마이클 불름버그인데 이들은 모두 자본가였고 엄청난 부자였다. 그런 와중에 월스트리트저널이 민주당의 뉴욕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진보적인 후보 빌 드블라시오(Bill de Blasio)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내놓았다.

다른 것보다, 드블라시오 씨는 5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뉴욕 시민에 대한 세금인상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계속하여 부자와 빈자 간의 소득격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뉴욕을 하나의 “두 도시 이야기”라 묘사하고 있다. 드블라시오 씨의 대변인 댄 레비탄은 후보가 “이 도시의 불평등으로 인한 위기가 부자와 빈자를 포함한 모든 뉴욕시민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있다. 이 도시가 연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학교와 근린에 투자하여 모든 뉴욕 시민들에게 성공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New York Mayor Race Worries Business]

뉴욕, 두 도시 이야기, 빈부격차 등 키워드가 얼마 전 상영됐던 The Dark Knight Rises를 연상시켜 흥미롭다. 그 영화에서는 혁명주의자(좌파?)를 악당으로 그려 상당히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했었다. 드블라시오는 영화속 베인과 같은 혁명주의자는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뉴욕의 자본가들에게 베인 못지않은 극좌주의자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좀 과한 비유 같지만 아래의 발언을 들어보면 과장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로타 씨(공화당 측 후보 – 역자주)를 돕기 위해 최근 만들어진 정치단체 대변인 마이클 맥큰은 “사람들이 단지 그가 이 도시를 얼마나 극단적으로 좌측으로 몰고 가려는지 이해하고 그것이 암시하는 바들이 그들의 주머니란 사실을 이해할 때, 내 생각에 그들은 상황을 좀 더 면밀히 주시할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검증된 리더십’이라는 이름의 이 그룹은 오랜 기간 공화당원과 보수적 운동단체들을 지원해왔던 억만장자 데이빗 코크(David Koch)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같은 기사]

데이빗 코크는 미드 The Newsroom을 즐겨본 이라면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데이빗 코크는 각종 보수단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억만장자다. 그는 형 찰스 코크와 함께 석유, 가스, 광물 등을 취급하는 코크 인더스트리를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고 이제 그 돈을 밑천 삼아 ‘미국번영재단(Americans For Prosperity)’이라는 단체를 직접 설립하여 티파티 등을 배후조종하고 있다.

다시 The Dark Knight Rises가 생각난다. 배트맨은 어떤 인물인가? 배트맨은 초인적인 힘을 가진 무술인 이기도 하지만 그를 다른 슈퍼히어로와 구분 짓게 하는 특징은 그가 막대한 재산을 가진 자본가 부르스 웨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적어도 영화에서는 데이빗 코크처럼 보수단체를 지원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재력을 이용하여 그만의 정의를 실천하는 행동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데이빗 코크와 유사하다.

빌 드블라시오는 베인이 아니고 데이빗 코크는 부르스 웨인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소수의 (정치적 신념이 매우 확고한, 또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몇몇에게는 빌 드블라시오가 베인으로, 혹은 데이빗 코크가 부르스 웨인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오세훈이라는 불세출의 인물을 통해 어느새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도시 내에서의 이념전쟁이 뉴욕이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벌어질 것인지 자못 흥미로워진다.

알자지라의 취재 다큐멘터리 “그리스의 저항”

그리스 – 유럽의 문명과 민주주의라는 아이디어가 처음 시작된 곳. 그러나 오늘 날 이 나라는 위기에 처해 있다. 통일된 유럽이라는 꿈을 파괴할 수 있는 그런 위기.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으로부터 태어난, 하나의 통화를 통해 서로 다른 국가들을 함께 묶는다는 이 꿈은 비극이 되었다. 유로존에 가입한 이후 10년 후, 그리스의 경제는 붕괴했다. 생활수준은 곤두박질쳤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해고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미래를 찾아 나라를 떠나고 있다. 많은 그리스인들은 EU, 그리고 특히 독일을 그들의 위기에 대한 책임자로 비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군사적 패배 이후 거의 70년이 지난 오늘날,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나라의 정치적 리더십은 그리스의 미래를 그 손안에 쥐고 있을 정도다. 알자지라 기자 Barnaby Phillips가 왜 이 두 나라가 역사와 문화에 있어 서로 엮이고 이제 갈등에 처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리스를 여행했다. 왜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했던 유럽인들의 비전은, 그렇게 되는 대신에 다시 그들을 상처의 표면으로 되돌려 놓아지게 되었는가? 그리고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 그리스인들? EU 또는 오래된 적인 독일?

Al Jazeera Correspondent – The Greek Resist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