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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월호 사태를 막기 위한 방법은?

잔인한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민 우울증”이라 할 만큼 많은 이들이 이 사태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사고를 불러온 것으로 추측되는 이들을 비난하고, “용서하지 않겠다”나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비극적인 참사다. 너무나 안타까운 갖가지 사연과 복잡하게 얽힌 원인들이 산재되어 있어서 블로그에서 섣불리 뭐라 하기도 조심스러운 사고다. 그래서 말을 아끼고 있었는데 마침 논지가 비슷한 두 개의 글을 동시에 읽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도 이에 공감하는 바가 있기에 여기 옮겨왔다.

똑바로 말하자.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인간이 물질과 생산,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이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자본주의라 말할 수도 없는, 천민 약탈 도적의 무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이다. 최소한의 도구적 합리성이 있다면 기업이 이딴 식으로 돌아갈 리가 없다. 그러나 이 “해운회사”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빈 자리를 광신과 무책임과 끼리끼리의 문화가 채웠다. “돈보다 사람”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 없다. 어떤 수준에서는 돈이 더 중요하다. 그딴 식으로 사업하면 쫄딱 망한다는 경험을 보여주면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안 망했을까? 공무원과 금융기관을 꽉 잡으면 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과 “인간관계”를 잘 구축해 놓는 것이 합리적 기업경영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출처]

미국에 살면서 불편한 것 중 하나는, 때로 지나칠 만큼 안전을 강조해 사회적 비용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고치러 가 보면 느끼는데, 차에 안전에 관한 문제가 하나만 있어도 수천 달러를 메기며 전체를 다 갈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번에는 바퀴에 바람이 좀 빠져 정비소에 가져갔더니 바퀴를 갈아야 한다고 했다. 타이어가 새 것이었고 내가 보기엔 정말 문제가 없어 보여 그냥 좀 고쳐서 써도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라이어빌리티(liability) 문제가 있어 날 그냥 보낼 수 없단다. 하는 수 없이 바퀴를 새 것으로 갈았다. 이들이 도덕성이 높고 진정으로 내 안전을 걱정해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회사가 져야 할 책임이 워낙 크니 애초에 조심을 하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소송이 쏟아지는 나라인지라, 뭐라도 잘못해서 책 잡히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상을 해야 하니, 회사의 자산을 책임질 수 있는 직원들을 채용하고, 그들을 철저히 교육하게 될 수밖에 없다.[세월호 여객선 침몰, 그리고 세모 그룹 유병언]

첫 번째 글을 권복규 이화여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고, 두 번째 글은 실리콘벨리에서 활동 중인 조성문 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이 글들의 요지는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약간 각색을 해서 요약해본다면, 이 사회에서의 벌어지는 참혹한 사고의 원인은 “도구적 합리성”이 결여된 “천민 약탈 도적의 무리”가 “합리적 기업경영”이 아닌 “인간관계”로 장사를 해서 생겨나는 일이며 이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라이어빌리티”를 강조하여 회사의 책임을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상”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왜 안전사고에 대한 시스템이 이토록 미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지지만, 시장경제에서 비용만 발생하는 안전조치에 돈을 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해 발생할 비용이 조직의 존망을 흔들 정도가 되어야 반응할 뿐이다.[출처]

4월 17일 내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위의 두 주장과 유사한 주장이고 이 체제에서의 세월호와 같은 기업 – 또는 공공 – 이 제공하는 집합적인 소비재에 대해서는 이러한 대책이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권복규 교수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며 실제로 안전에 대해 투자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하며 우리는 이제야 그 비용을 치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조문성 씨가 경험한 그 고지식한 정비소일 것이다. 결국 안전하게 하는 게 비용절감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제도적 합리성을 구현하는 데에는 많은 시일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한 정몽준 씨가 실질적 주인인 현대중공업에서는 노동자들이 연달아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모두가 안전조치 미흡으로 벌어진 일들일 텐데, 막내아들의 페북 망언에 대해서는 사과하던 정몽준 씨가 이 사태에 대해선 묵묵부답이다. 정몽준 씨는 그러면서 정작 서울시에 안전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겠단다. 사회가 아직도 이런 행위에 대해 너그러워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편, 권복규 교수의 애초의 글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지나치게 매크로적인 비판이라는 취지의 글이었고, 이에 대한 방증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울 지하철 추돌 사고를 들었다. 취지에 일부 공감한다. 하지만 결국 과적이 침몰 원인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 이윤 논리를 여전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바 있고 지하철 사고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이윤 논리, 보다 정확하게는 비용절감 논리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기업 특유의 이윤논리인 셈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공기업의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하고 있지만 사실 공기업에 대한 이런 공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본축적이 일천하고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가 부재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공기업이 이 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몫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던 것이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실패” 논거가 등장하고 재정압박에 직면하자 정부는 공기업의 개혁을 주문했고 이는 거의 예외 없이 이윤추구 논리로 귀결됐다. 그 결과 공공재의 내구연한은 계속하여 늘어났고 안전을 위한 비용은 삭감됐다.

다시 큰 틀에서 보면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보다 안전에 있어서는 마이크로하게 더 엄밀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통제와 규제는 이를 참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매크로한 측면에서 보자면 체제적 반성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자본주의가 지구촌 규모의 대량생산/대량소비/집합소비로 고도화된 것은 불과 100여년에 불과하다. 당시 지어진 인프라는 서구에서조차 이제 낡아가지만 긴축재정은 공공/민간 양측에서 새로운 정비를 유예하게 만든다. “안전이 이익”의 선순환 고리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R.I.P.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정상적인 대책인가?

국내 최대 공공발주자인 LH의 경우 공동사업과 대행개발, 리츠 활용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올해는 최대 5조원 규모의 민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에 발맞춰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령 개정을 통해 용지조성 공사로 한정했던 민간의 대행사업 범위를 공장, 주거, 상업시설 등 건축사업으로 확대했다.[건설투자는 줄이고 민자 유치에만 혈안, 민간에 리스크 떠넘기는 공기업]

한전 발전자회사들이 신규 발전소 건설 시 재정을 자체충당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해 건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SPC를 통한 신규 발전소 건설은 발전자회사를 중심으로 사업에 관심있는 동반사업자, 재무적투자자(FI) 등을 유치해 일정 비율의 지분 참여로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이다.[한전 발전자회사, SPC 통한 발전소 건설 검토]

여의도 면적의 84%에 달하는 시가 7조원 이상의 공공기관 본사 부지가 시장에 매물로 쏟아지게 된다. [중략] 정부는 지난해 말 295개 공공기관에 내린 부채 감축계획 운용 지침에서 ‘지방 이전 대상 기관은 부채 감축 계획에 본사 부지 매각 계획 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 본사 부지 매각을 기정사실화했다.[공공기관 정상화위해 본사부지 매각 추진, 54곳-7조원어치 매물 쏟아진다]

자유경제원(원장 전원책)은 4일 오후 2시 30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8층에서 ‘공기업 개혁,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개최한다.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와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이 ‘공기업 개혁 민영화가 대안이다’와 ‘민영화 논리 및 원리’란 주제로 각각 발표한 후 각계 전문가 4인이 참여한 가운데 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자유경제원, 오늘 공기업 개혁 관련 정책세미나]

위 소식들이 모두 2014년 2월 4일자 건설경제신문의 기사들이다. 모두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관련한 기사들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난데없는 “정상화”란 단어를 “대박”단어로 만든 현 정부가 가장 먼저 “정상화”시키겠다는 대상이 바로 공공기관인 것이다. 사견으로 공공기관의 “정상화”라 함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선순위 사업이 바뀌는 작태가 아닌 설립취지에 맞는 고유목적의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 정부는 현재까지는 부채감축이 곧 정상화라 여기는 듯 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구조조정과 부채감축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방안은 사업구조조정, 자산매각, 경영효율화, 수익증대 등이다. 그리고 사업구조조정의 구체적인 방식은 민간자본 유치나 사업시기 조정 등이다. 결국 공공기관 존립의 근거인 사업시행과 이를 통한 복리증진, 경제 활성화는 생존을 위해 뒷전에 놓겠다는 것이다. 가만. 생존이라고? 부채비율이 높다고 당장의 생존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재 푸닥거리의 배경은 무엇일까? 위에서 하라니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공기관 정상화” 로드맵은 다소 폭력적으로 시작됐는데, 바로 코레일의 자회사 설립 결정과 이에 따른 파업이 그것이다. 현재 각 공공기관에게 들이대고 있는 잣대가 바로 코레일에게 들이댔던 잣대다. ‘코레일이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가 누적되고 부채가 많으니 경쟁체제를 만들어 경영효율을 꾀하라’는 논리가 자회사 설립의 주된 논리였다. 당시 하도 “민영화”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어 결국 “공공 자회사” 설립으로 한발 물러서긴 했으나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 “비정상”의 주범이라는 인식은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비정상”의 원인이 무리한 고유목적 사업수행이나 필요이상의 유휴인력 운용에 따른 것일 수도 있으나, 이미 예전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사업추진에 따른 희생양이 된 사례도 무시할 수 없다. 4대강 정비 사업의 희생양 수자원공사가 그렇고 KTX 사업의 희생양 철도시설관리공단/코레일이 그렇다. 따라서 현 정부가 정말 공공기관을 정상화시키고 싶을 요량이면 공공기관의 자원을 주머니 쌈짓돈으로 생각하는 관행, 지금도 여전한 낙하산 인사의 관행을 고쳐야 그 초석이 다져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러한 반성 없이 오직 부채비율만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여 진지한 고민이 없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마저도 미시적인 조정이 없었던 것이 SPC를 통한 발전소 건설 방안을 내놓은 발전자회사들은 2012년 현재 부채비율이 100% 미만인 우량회사들이다. 그럼에도 무조건 부채를 총량적으로 줄이라는 단기목표에 급조된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거기에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이 로드맵을 점검하는 주체로 “反노조” 성향의 노무법인에 용역을 준 혐의가 있어 그 진정성마저 의심스럽다.

공기업을 진정 정상화하고자 한다면 아직 고유목적 상 사회적 효용이 중시되는 공기업은 그 공공성을 강화하거나, 또 시장성이 충분히 검증되어 홀로서기가 가능한 공기업이라면 시장화 내지는 민영화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다양한 공기업의 상황에 다양하고 구체적인 전략을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고민하는 “정상화” 로드맵에 애초 어떠한 열린 논의도 없었다. 무조건 부채비율만 줄이라는 것이다. 노조도 시민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제3자일뿐이다. 뭔가 비정상적이다.

코레일 사태와 나랏빚에 관하여

# 코레일 사태의 또 하나의 시사점은 정부의 국책사업 부채를 공기업에 맘대로 떠넘길 수 없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LH공사, 코레일, 수자원공사 등 공기업 부채 속에는 개별 정권의 국책사업 수행을 위한 막대한 빚이 녹아 있다. 재정준칙 마련 필요.

# 올바른 재정준칙 시행을 위해선 엄밀한 비용/산출 모형의 정립, 정치적 꼼수를 통한 사업성 분석 회피의 방지 등이 필요하다. 코레일의 고속철도 부채는 사업비 예측에 실패한 경우고, 4대강 정비는 사업분할을 통해 법적 사업성 분석을 피해 나간 꼼수 사례.

# 가장 많은 빚을 진 LH공사는 개별 정권의 즉흥적인 공공주택 정책에 따른 피해가 큰 공기업인데, 일관성없는 인기성 위주의 사업때문에 결국 공공주택은 그저 서민용 로또가 되고 비용은 국가부담으로 남게 됐다. 박 정부의 행복주택은 또 하나의 부채 늪.

# 하지만 5년 수명의 정권은 공기업 부채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자신의 치하에서 공기업 부채가 정부부채라는 사실을 인정할 이유도 없고, 자신도 공기업을 이용해서 국책사업을 시행해야 하니까. 공기업 개혁 주문은 정권 초기의 군기 잡기일 뿐이다.

# 정부부채의 부외 금융(off-balancing)은 지방정부에도 만연한 데 대표적으로 기채발행 한도를 피하기 위한 지방공사의 설립. 내일 망해도 시원찮을 지방공사가 몇 개 있는데 회사채 보고서에는 A등급을 웃돈다. 공사란 이름이 이용한 폭탄 돌리기.

# 요컨대, 현 정부가 과거 정부에게 할 말은 ‘너희도 민영화하려고 했잖아’가 아닌 ‘너희가 코레일에 빚을 떠넘겼잖아’지만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면 파업을 벌이는 노조의 정부 원죄설과 일맥상통하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대안은 없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철도

“朴, 대처, 레이건 롤모델로 ‘집단행동’ 고리 끊는다.”

2013년 12월 17일자 국민일보 1면 헤드라인이다.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의 소유자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7천 명이 넘는 코레일 직원의 직위를 해제했지만, 그 배후(?)에는 朴心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알리는 기사다. 때마침 오늘 경찰은 철도노조 사무실의 압수수색을 벌였다. 기사는 이러한 일련의 모습을 두고 “이익집단에 밀리지 않는 새로운 리더십 구축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도 새롭지 않거니와 자칫 대선 때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던 공약의 파기로도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수서발KTX의 운영을 담당할 신설법인(이하 “수서고속철도”)의 주주가 코레일과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이 될 예정이므로 민영화가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건호 씨는 이에 대해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면 민영화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의 말이 맞을까?

사견으로 둘 다 반절은 맞고 반절은 틀렸다. 민영화의 본래 표현인 privatization이다. 피터 드러커가 그의 저서에서 언급한 이 표현을 정치시장에 꺼내든 이는 국민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롤모델로 삼으라는 마가렛 대처다. 그는 국유기업이 주를 이루던 영국의 상황을 격파하기로 맘을 먹었고 꺼내든 카드는 국유기업의 탈국유화(denationalization)이었다. 그 상황을 표현할 때 선택한 단어가 바로 민영화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단계의 민영화는 소유권 이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 점에서는 좌파 일부진영에서 주장하는 사유화(私有化)가 적절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후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되 운영을 자본이 수행하는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즉 민간투자사업이 성행하면서 민영화의 범위는 광범위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privatization은 공공재에 대한 다양한 역할 이전을 의미하므로 사화(私化)가 적절한 표현이다.1

한편 민영화의 전 단계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이 시장화(市場化, marketization)다. 굳이 소유나 운영을 민간에게 이전하지 않더라도 정부기능에 시장논리를 부여하는 작업이 가능한데 대표적으로 코레일과 같은 정부조직의 공사화(公社化)다. 때문에 코레일은 이미 시장화된 상태고 새로 설립될 수서고속철도는 노선을 분할한 새로운 시장화다. 따라서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맞고 오건호 씨의 주장은 틀렸다.

한편 정부는 수서고속철도의 주주구성을 정관에 못 박을 것이기에 민영화 의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관은 바꾸면 그만이다. 코레일이 대주주라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하지만 현재의 행태를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다. 근본적으로 철도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법인 철도산업기본법은 철도의 민간운영 원칙 조항이 있다. 진정 민영화 의지가 없다면 그 법을 바꾸거나 수서고속철도의 공공출자를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면 된다.

정리하자면 현 단계는 오건호 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서고속철도의 민영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민영화의 싹을 자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분할하여 설립한 수서고속철도는 흑자가 예상되는 법인이고 자산이 크지 않아 코레일에 귀속되는 것보다 더 민간매각의 가능성이 높은 법인이다. 결국 이 극한대립의 싹은 철도청을 시장화하여 민영화의 로드맵을 제시한 이전 정부에서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수서고속철도 설립을 통해 “경쟁체제”를 구축하여 코레일의 “경영개선”을 이루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노선의 80%가 겹치는 유사상품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과연 “경쟁체제”인지는 지난 글에서 살펴본 바 있고, 이 글에선 “경영개선”을 해야 하는 이유인 코레일의 만성적인 적자의 원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나는 공공성의 확보 명분이나 부채 떠넘기기 등의 “정부의 실패”가 주원인이라 생각한다.

2012년 11월 29일 한국기업평가가 내놓은 ‘제100회 한국철도공사채’에 대한 신용평가 레포트를 살펴보기로 하자. 레포트는 코레일의 취약한 재무구조의 첫 번째 원인으로 “영위사업의 높은 공익성으로 인해 원가에 상응하는 운임 책정이 어려운 특성(2p)”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 PSO(Public Service Obligation)이라는 이름으로 보조금을 주고 있으나 그 금액은 적자를 보전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오병윤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철도공사가 계산한 PSO 사업의 비용은 약 5천억 원에 달한다. 국토부가 다시 정산한 액수는 약 4천억 원이다. 하지만 실제 지급액은 약 3천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토부 정산액을 기준으로 해도 철도공사는 받아야 할 PSO 보조금 가운데 25%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PSO를 통한 공공성 실현의 방해물은 민영화보다는 오히려 국토부라고 할 수 있겠다.[코레일 파업 완전분석 – 파업과 민영화와 한국철도]

한편 이러한 영업적자의 기저에는 부채라는 더 큰 빙산이 존재한다. 현재 코레일의 부채는 17조 원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최연혜 사장은 차량 구입, 인천공항철도 인수자금, 용산사업 해제로 인한 토지 대금 반납 등이 원인이라 답했다. 하지만 출발점에 더 큰 혹이 있었으니 바로 고속철도 건설부채다. 단병호 前 민주노동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코레일은 2004년을 기준으로 4.3조 원의 차량 부채를 들고 시작한다.

정부는 철도산업의 경쟁력 강화, 발전기반 조성 및 철도산업으 효율성·공익성 향상을 위하여 철도산업 구조개혁을 추진해 왔으며, 그 일환으로 2003 년 철도산업 구조개혁 관련 2 개 법률(‘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공사법’)을 제정하였다. 동 구조개혁은 철도운영부문과 철도시설부문을 분리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여 철도차량의 운영은 공사가 담당하고, 철도시설의 건설 및 관리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책임지며, 철도시설은 국가가 소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철도청 및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시설관련 자산·부채는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이전되었고, 운영관련 자산·부채는 공사로 승계되었다.[한국기업평가, 제100회 한국철도공사채 신용평가 레포트, 2012. 11. 09, p8]

철도구조개혁이 집행되는 2004년 기준으로, 한국철도공사는 고속철도 차량부채 4.3조원, 한국시설공단은 건설부채 6.8조원 등 총 11.1조원의 부채를 승계해야 한다. [중략] 처음 경부고속철도 건설이 입안되었을 때 고속철도 건설비용은 전액 정부가 책임지는 것으로 상정되었었다. 그러나 고속철도 건설 예상비용이 계속 불어나자 정부는 국고지원을 35%로 한정하기로 수정하였다. [중략] 현재 고속철도를 운행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1964), 프랑스(1981), 독일(1991), 스페인(1992) 등 4개국이다. 이 나라들의 고속철도 건설비용은 대부분 정부가 부담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사실상 방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속철도 건설비용에 투입된 외부자본의 원금과 이자 상환을 위해 운영회사에게 받는 선로사용료가 높아질 것이다.[한국철도의 공공적 발전을 위한 개혁방안, 2004. 11. 8, pp13~14]

결국 국가가 부담하지 않은 비용은 시장화된 회사들에게 이전됐고 이들은 태생적으로 “경쟁력”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독점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에 사업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런 철도산업을 이제 정부에서 노선별로 분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수서고속철도는 코레일보다 더 싼 선로사용료 등의 구매경쟁력이나 운임을 높여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어떻게 경쟁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코레일의 “부실경영”에는, 정부 측에서 주장하는 “과다인력”과 “고임금”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근저에는 공익성을 위한 요금통제, 부실한 PSO, 보다 근본적으로 정부로부터 떠안은 막대한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뭐든지 “놈현 탓”을 하는 여권은 정말 노무현을 탓해야 할 시점에는 그리 하지 않고 있다. 부채가 부실경영의 원인이라고 하면 노조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게 되니까.

“민영화가 되면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모든 부패한 나라는 민영화를 한다”는 저항을 조직하는데 좋은 슬로건일 수는 있지만 사태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는 구호는 아니다. 수서고속철도의 민영화는 수서발 KTX 노선의 부실화보다는 오히려 기존 코레일의 부실화 촉진으로 인한 공공성 훼손에 있을 것이다. 그 부실화의 근본을 따라가면 우리는 고속철도에 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기한 “정부의 실패”를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에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토머스 프랭크의 저서 The Wrecking Crew는 정부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고 집권세력이 되었을 때조차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사적이익에 충실한 미국 우익의 실체를 다루고 있다. 만약 한국 버전을 쓴다면 철도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정부의 실패”로 부실화된 공기업을 정부 스스로 “시장적 대안”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철도에서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철도다.

시장화에 관한 트윗 모음

# 오건호 “정부는 공적자금만 참여하니 민영화 논란이 불식되었다고 주장한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면 민영화로 보아야 한다.” 민영화라기보다는 시장화라 표현하는 게 보다 정확하다 (출처)

# “민영화가 아니라 사유화가 맞다”는 주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Privitization의 다양한 양상을 설명하는데는 직역에 가까운 私化가 적당할 듯 하다. 시장화는 이와 좀 다르게 공공기관의 법인화, 공적기금의 출연 등의 양상이 주가 되는 경우다.

# 시장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일국의 공기업이 해외에서는 IPP(Independent Power Producer), 즉 해당국의 민간사업자와 동등하게 조달시장에 참가하는 행태. 한전, 수공 등이 해외발전, 수자원 시장에 참가하는 것이 해당사례다.

# 예를 들어 코레일이 해외 철도 시장의 운영회사로 입찰하게 되면 코레일은 이제 정부부문이 아니라 IPP가 된다. 해당국에서 철도 운영자로 코레일을 선정하면 이는 철도산업이 시장화, 나아가 민영화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추세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 MB 시절 UAE 원전 사업에 삼성과 한전이 컨소시엄을 이루어 참가한 형태가 대표적인 발전 산업의 시장화. 수출입은행이 자금조달을 책임지는 수출금융. 자금조달을 위해 이슬람채권을 허용하려 했으나 개신교의 비이성적인 반대로 실패. 수은의 증자로 해결함.

# 요컨대 큰 틀에서의 공공서비스 현황을 볼 때 시장화를 단순히 민영화와 등치 시키면 쟁점이 다소 혼란스러워진다. 한전이 해외발전사업에 진출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반대하여야 할까 찬성하여야 할까? 국익이라는 고답스런 관점이 아니더라도 다소 복잡한 문제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에 관하여

#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 노동자들이 고용불안, 임금착취 문제를 대화로 풀자고 공항공사에 요청하면 줄만큼 주고 있고 고용불안도 없고 비정규직 노조와는 대화 안한다며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출처)

# 인천공항 파업에서 보듯 공기업내 “경쟁력 제고 논리”의 내재화는 오히려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MB의 공항 민영화 음모론자들은 “세계 최고의 공항을 왜 민영화하냐”며 이 경쟁력을 칭송했는데, 자본이 아닌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노동탄압을 칭송한 셈이다.

# “경쟁력”은 흔히 공무원 조직의 비효율과 예산 낭비를 질타하는 무기가 되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발견되어 정당성을 강화한다. 하지만 사회적 기여도의 측정 없는 경쟁력은 자본의 이윤 추구 와 다를 바 없는 시각으로 공공성을 죄악시하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 이런 정서가 극단화되면 마가렛 대처처럼 “사회는 없다”는 선언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심지어 “세금 먹는 하마”라 욕먹는 민자도로조차 외부성을 가지고 사회적 효용에 기여한다. 이를 부인하지 않고 타당한 평가지수를 도입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한 축이다.

# 공공성을 위해 요금을 못 올리는 코레일은 정부로부터 공공기여의무(Public Service Obligation) 보조금을 받는다. 객관적인 평가지표가 마련된 이런 보조금을 공기업이나 혹은 MRG 대신 민자사업에 도입해보는 것도 한 대안이 될 것이다.

공기업은 공익에 충실하고 있는 것인가?

더 좋은 평점을 받으려면 고유 사업보다 국책 사업에 더 주력해야 한다. 수자원공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채가 무려 13조원에 달하는 수자원공사는 2008년부터 4년 연속 A등급을 받았고 올해 발표된 2012년에도 B등급이었다.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 관련 부채 8조원을 경영평가 대상에서 빼준 덕분이다.[非사업지표 평가비중 55%… 국책사업에 주력]

공기업의 경영실적 평가는 1984년 시작된 제도라고 한다. 도입이 30년째 되가는 제도이니 그 유용성이 어느 정도는 공인된 제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 보듯이 과연 그 실적 평가가 정당한 것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이 든다. 소위 “국책 사업”을 위해 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한 수자원공사의 경영 실적에 면죄부를 준 평가결과를 보고, 과연 다른 공기업의 경영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고유사업에 충실하고 국책사업을 무시했다가는 어느 순간 잘릴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과연 공기업은 공익에 충실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