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문화

올해의 책

슬슬 한해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오늘 ‘올해의 뫄뫄’ 시리즈를 써볼까 하고 에버노트를 뒤적거리다보니 올해는 개인적으로 나름 참 많은 일이 있었던 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참 많은 일이 벌어졌던 – 그리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 해이기도 하다. 많은 사건이 비극이었지만, 그 와중에 그러한 비극을 계기로 화해와 상처 회복의 단초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한 양면성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언제나 행복할 수 없고 누구도 언제나 불행하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책을 읽는 순간만은 행복하거나 최소한 불행을 잠시 잊는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紅樓夢

올해는 조설근의 소설 홍루몽을(내가 읽은 것은 나남에서 발간한 총 여섯 권짜리) 다 읽은 해다. 작가의 반자전적 소설이라는 설이 유력한 이 걸작은 주된 줄거리는 한 귀족 집안의 자녀인 가보옥과 임대옥과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이 담겨져 있다. 또한 작가 스스로가 겪었을 귀족의 풍습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통해 우리는 봉건사회의 계급구조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이 소설을 “페미니스트 소설”이라 이름붙이는 것은 과잉해석이겠지만,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주체성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웬만한 현대소설보다 페미니즘 적이라는 것도 매력요소다.

The Catcher In The Rye

여태 한 대여섯 번은 읽은 것 같은데 올해는 특히 홀덴이 방황하는 주요무대인 뉴욕을 다녀와서 읽었다는 점에서 더 맛깔스러운 독서가 됐다는 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해 보았다. 즉, 홀덴이 기차를 타고 뉴욕의 펜스테이션에 도착해서 센트랄파크 및 웨스트사이드 등으로 헤매는 동선이 내가 뉴욕에서 헤맸던 동선이기에, 영화화도 되지 않은 이 작품에 비주얼을 가미해주어 더 실감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한편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던 “원문에서의 head가 ‘머리’냐 ‘귀두’냐”란 논란도 다시 곱씹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귀두로 해석한 번역가는 음란마귀가 씐 것 같다.

스트레스테스트 / 정면돌파 / 대마불사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책은 여러 권이 있겠지만, 올해에는 이 세권의 책으로 어느 정도 당시의 정황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앞의 두 권은 금융위기 속의 출연진인 – 그리고 서로 앙숙인 – 티모시 가이트너와 쉴라 베어가 쓴 회고록이다. 그렇기에 둘의 주장이 엇갈리는 장면에서 서로의 주장을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마불사는 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이기도 한 작가 앤드류 로스 소킨(Andrew Ross Sorkin)이 쓴 책이다. 작가의 시점에서 각 주요국면의 정황을 치밀하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앞서의 두 권이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참고서다. 암튼 대단한 사건이었다.

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마라

특이하게 건강에 관한 책을 골라봤다. 조니 바우덴(Jonny Bowden)과 스테판 시나트라(Stephen Sinatra)의 공저다. 개인적으로 LDL수치와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빌려본 책인데 의외의 내공을 느끼고 숙독했던 기억이 난다. 요점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수록 심장질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은 현대의학의 신화이자 상술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해박한 지식을 통해 콜레스테롤, 인슐린 등 우리 귀에 익숙하지만 정작 그 의미를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준다. 작가의 주장은 굉장히 논란이 많은 주제이기 때문에 독자로서 이를 유의하며 다른 주장과 비교하여 읽어야 할 것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읽다

빵과 자본론이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주제가 한데 만난 책이다. 질풍노도의 삶을 살던 저자는 어느 날 빵을 배워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학자이신 아버지가 문득 자본론을 읽어보라고 해서 그 책을 읽으며 제빵업자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는 개인적 경험을 적은 것인데 엉뚱해 보이면서도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경제주체로서의 역할을 자본론에서 이상적인 경제단위로 설정한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맑스가 자본론에서 엉터리로 만들어진 빵이 얼마나 나쁜지 설명하는 부분도 있으니 의외로 빵과 자본론은 어울리는 주제다.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

NHK 스페셜 제작팀이 실제로 노후파산의 위기에 있거나 이미 파산한 노인들을 심층 취재하여 만든 책이다. 올해 일본에 갔을 때 유난히 노인층이 많이 눈에 띄어서 일본사회의 노령화를 실감하였던 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노인층이 세계 최고의 선진국인 일본에서조차 어떻게 삶의 파행을 겪게 되는 지를 실감하게 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삶은 단순히 문학 속의 소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다. 올해는 특히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등 그러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편 이 책을 읽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 충격이 배가 된다.

문 앞의 야만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뭔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제목의 이 책은 M&A에 관한 고전이다. RJR내비스코라는 미국의 거대기업의 합병과 LBO를 둘러싸고 월스트리트의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합종연횡을 하며 사투를 벌이는 지가 번역본 900페이지가 넘는 회고록을 통해 소상히 담겨져 있다. 그래서 해당 분야의 종사자들에게나 문외한에게나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아직 3분 2 정도 밖에 진도를 나가지 못했지만, 굳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가 이것이다. 특히 투자은행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면 어떻게 딜소싱이 이루어지는지, 주선은행이란 어떤 의미인지, 협상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전시회

지난번 일본에 갔을 때 운 좋게도 볼 수 있었던 전시회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의 우키요에(浮世絵) 작품 전시회였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당초 이 전시회가 있는 것을 모른 채 도쿄에 가서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 찾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키요에에 대해 많은 지식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히로시게의 명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전시장을 입장하였다.

한 집요한 콜렉터의 수고로 모여진 히로시게의 작품을 전시한 이 전시회에서, 나는 그간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히로시게의 주요 작품들을 거의 빠짐없이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히로시게는 우키요에 중에서도 특히 풍경을 소재로 한 목판화1로 유명하다. 이는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당시 일본인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일종의 여행 팸플릿의 역할을 하는, 당시 표현으로 메이쇼에(名所絵) 장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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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agawa; Hiroshige (I) , Utagawa died 1858; Uoya Eikichi Hiroshige (I)http://www.rijksmuseum.nl/collectie/RP-P-1956-743 (handle),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3364940

히로시게가 살았던 19세기 쿄토(京都)와 에도(江戸) – 오늘날의 토쿄 – 사이의 연결 루트라 할 수 있는 도카이도(東海道)의 풍경을 담은 ‘도카이도53차(東海道五十三次)’나 에도의 풍경을 담은 ‘에도100경(名所江戸百景)’ 등이 특히 유명한 그의 작품이다. 전시회에서는 그의 작품을 유리 창 너머로 비스듬히 배열하고 그 옆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위치와 실제 사진을 같이 배치하여 관객이 그 풍취를 함께 느낄 수 있게 배려하였다.

작품의 특징은 풍경이 단아하고 등장인물이 해학적이라는 점이다. 서구미술의 원근법도 도입한 히로시게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다양한 사건들을 스냅 사진 찍듯 화폭에 담아 극적긴장감과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인상주의적(!)” 특징은 고흐가 그의 그림을 필사할 만큼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색감으로는 두드러지게 붉은 색을 애용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보다 청명한 느낌의 호쿠사이와 비교된다.

전시 장소인 산토리 미술관은 쇼핑센터 안에 위치했음에도 2층 규모의 큰 전시장을 확보해, 많은 관객들 사이에서도 불편 없이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의 이런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당일 찾은 다른 미술관에서 겪은 고초를 생각할 때 더욱 두드러진 미덕이었다. 또 다른 유명 우키요에 작가였던 구니요시2구니사다의 전시회가 열린 그 비좁은 미술관에서 나는 작품 감상을 포기한 채 그야말로 휩쓸려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3

어쨌든 히로시게의 전시회를 방문한 날, 당초 염두에 두고 있던 두 다른 우키요에 작가의 전시회까지 함께 감상하면서 내 평생 가장 많은 우키요에 작품을 육안으로 감상한 날이 되었다. 비록 목판화여서 육필화(肉筆畵)에 버금가는 생생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뛰어난 묘사력, 이국적인 소재, 그리고 그림에 담긴 적절한 해학은 21세기의 한국인에게도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매력요소였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쥴리

이번에 도쿄에 가서 우연치 않게 감상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전시회가 르느와르(Pierre-Auguste Renoir) 전시회였다. 이미 너무 유명한 화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큰둥할 수도 있는 전시회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의 작품을 한데 모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전시회 때문에 일부러 일본을 들를 정도로 광적인 팬은 아니지만, 기왕에 일본에 온 김에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기에 전시회가 열리는 국립신미술관(國立新美術館)이 문을 열기 30분 전에 미술관에 도착하여 티켓 구매를 위한 줄에 합류했다.

르느와르 그림의 일관된 주제는 한마디로 말해서 당시 사회의 주류로 등장한 부르주아의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삶을 표현하기 위해 또한 당시 미술의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인상파의 명랑한 색채를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인상파적 화풍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는 것이 전시회를 본 내 느낌이었다. 그의 그림 컬렉션을 하나의 영단어로 표현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화려한”이란 의미의 영단어 중에서도 “flamboyant”를 선택하고 싶다. 그의 최고의 걸작 ‘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를 전시회에서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그 단어였다.

Pierre-Auguste Renoir, Le Moulin de la Galette.jpg
By Pierre-Auguste Renoirhttp://allart.biz/photos/image/Pierre_Auguste_Renoir_2_Bal_du_moulin_de_la_Galette_Smaller_version.html (derivative work of musee-orsay.fr image?)
Notwithstanding the source description, this is the version at the Musée d’Orsay (in the smaller version the central figure leaning forward lacks an earring).,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712177

이 전시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어쩌면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flamboyant 하지 않은 ‘Julie Manet with cat’이란 작품이었다. 그의 낙관과도 같은 현란한 빛은 이 작품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차분한 붓터치와 갈색톤으로 통일한 색의 사용이 두드러진 작품 속 인물은 슬픈 눈동자를 차분하게 내리 뜬 채 고양이를 안고 있다. 그려질 당시 아홉 살이었던 쥴리는 르느와르의 친구이자 동료화가인 Berthe Morisot와 Eugène Manet 부부의 딸이다. 쥴리는 불행하게도 십대에 양친을 잃어 고아가 되었다. 르느와르는 그녀의 애정어린 후견인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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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erre-Auguste RenoirKQGO9bsplWZeCg at Google Cultural Institute maximum zoom level,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1880381

이런 슬픈 사연을 지닌 이 작품은 그런 후일담을 제쳐두고라도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르느와르의 다른 작품에서의 정서와는 확연히 다른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 르느와르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 후에 고아가 될 운명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한 소녀의 슬픈 눈빛,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고양이의 교태 등, 이 작품의 각각의 참여주체들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내 가슴에 느껴졌기에 나는 한동안 이 작품 앞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쥴리 역시 이런 작품의 깊이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세상을 등질 때까지 이 작품을 다른 이에게 넘기지 않고 보관하였다 한다.

후일담 하나를 더 공유하자면 이렇게 르느와르의 애정을 듬뿍 누린 쥴리가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르느와르의 모순된 삶을 폭로한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양친을 잃었지만 동료 화가들의 모델 등의 활동을 풍족한 삶을 산 쥴리는 회고록에서 어울렸던 유명 화가들의 사생활을 회고하였는데, 알려진 바와 다르게 르느와르가 당시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드레퓌스 사건에서 反유태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회고록에 적어놓았던 것이다. 르느와르 역시 자신의 앞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던 어린 소녀가 후에 자신의 위선을 폭로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라바지오 전시회 관람후기

물론 다른 화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카라바지오(Michael Angelo Merigi da Caravaggio)에 대한 내 지식은 짧았다.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는 화가이자 렘브란트보다는 더 극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 정도가 그에 대한 내 지식의 전부다. 그래서 도쿄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 가려던 당초의 이유도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디자인했다는 미술관 건물 자체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Younger)의 ‘새덫이 있는 겨울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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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663highland663highland, CC BY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193660

어쨌든 비오는 금요일 아침인지라 미술관도 한가하겠거니 하고 개관시간인 10시에 조금 이른 9시 반에 터덜터덜 미술관에 도착했지만, 정작 건물 앞은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단체관람을 온 듯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장년과 노년의 일반관람객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물론 카라바지오의 명성 자체가 충분한 집객력이 있을 수준이었지만, – 이후 다른 전시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 도쿄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열기는 상당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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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는 빛의 화가였다. 전시회의 안내 글에도 자세히 나와 있었지만, 그는 작품 바깥의 어디에선가 비춰지는 강렬한 조명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캐릭터와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성경 속 예수의 일화를 화폭에 옮긴 ‘엠마우스의 저녁 식사’가 그러한 카라바지오의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랄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인물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상황이 극적인 빛의 분할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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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그의 매력은 성경의 일화를 담은 작품들보다 그가 살던 시대와 근린에서 부대껴 살던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점쟁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인데 젊은 집시 여성인 점쟁이는 상대 남성의 – 모델은 카라바지오의 동료이기도 했던 Mario Minniti로 추정되는 – 손바닥을 보며 점을 치는 듯하지만, 그의 미모에 마음이 뺏겨 있는 듯 손은 보지 않고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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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회에서는 주요 작품과 같은 주제의 다른 이의 작품도 소개하고 있는데, ‘점쟁이’ 역시 Vouet라는 다른 화가의 매력적인 작품도 함께 전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점쟁이와 그녀의 매력에 넋이 나간 남자, 그리고 그 와중에 남자의 주머니를 터는 노파의 구도가 매우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젊은 점쟁이 여인도 이 남자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지만, 노파는 이 어리석은 남자를 등 뒤에서 한껏 조롱하며 – 손 모양이 ㅎㅎ – 탐욕스러운 손을 그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있다.

Vouet, Simon - The Fortune Teller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작품은 ‘Ecce Homo’였다. 라틴어로 “이 남자를 보라”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한 재력가의 의뢰로 카라바지오가 성경의 일화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의뢰자는 그의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아 다른 작가에게 같은 주제로 의뢰했고 이 전시회에서는 그 작품 역시 전시되었다. 어쨌든 나는 인물의 묘사가 주제와 상관없이 너무 뛰어난 솜씨로 묘사되어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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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avaggioWeb Gallery of Art has given permission for use of images on Wikipedia,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75851

카라바지오 전시회를 보면서 – 이후 다른 전시를 보면서도 – 느낀 점은 전시회가 약 16,000원 정도 하는 티켓 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충실한 컬렉션과 기획을 통해 소비자에게 만족을 준다는 점이었다. 앞서 썼듯이 주요 작품을 위해서는 그와 비교할만한 다른 작품을 같이 보여주며 그림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국내의 일부 알맹이 없는 전시회가 비교가 되었다.

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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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신윤복 (申潤福: 1758-19세기 초반) – http://www.koreaedunet.com/technote/read.cgi?board=picture&y_number=5,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800359

며칠 전인 4월 20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간송미술전을 열고 있다.. 이번 미술전의 백미는 역시 신윤복의 미인도다. 조명이 어두운 감이 있어 그 화려함을 감상하기엔 좀 미흡한 감이 있었지만 명불허전 미인도에서의 인물은 금세라도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옅게 웃음이라도 지어줄 것처럼 생생한, 그러나 새초롬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어떤 평론가의 해석에 따르면 그림 속 여인은 옷을 벗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것은 여인의 한복 고름이 풀어진 채로 밑을 향하고 있고, 여인은 고름에 달려 있는 노리개가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여인은 필시 막 옷고름을 푸는,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순간이었다는 것이 평론가의 분석이다.

이러한 해석이 아니더라도 미인도는 관능미가 압축된 작품이다. 일단 여인은 요즘 기준으로 보더라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미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보았을 때 가장 관능미를 자극하는 부분은 의외로 버선을 신은 여인의 발 한쪽이다. 짐작컨대 화가는 일부러 한쪽 버선발만 삐쭉 드러냄으로써 은근한 관능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인의 발은 특히 동양에서 관능미를 느끼게 하는 신체 부위로 여겨졌다. 이런 문화가 중국에서는 전족(纏足)이라는 비극적인 풍습을 낳기도 하였지만, 신체 노출이 심하지 않은 동양의 복식 문화에서 발의 노출은 그만큼 남성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체 부위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신윤복은 미인도에서 이런 문화와 관념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이런 발의 관능미를 잘 활용한 영화가 최근에 본 ‘지온바야시(祗園囃子)’라는 일본영화였다. 내키지 않는 남성과 억지로 잠자리를 해야 하는 게이샤에 관한 일화를 담은 이 작품에서, 감독은 여주인공이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상황을 버선을 벗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는 여인의 발과 버선이 의미하는 바를 잘 활용한 장면으로 여겨졌다.

이성적인 문명은 [ ]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긍정적인 점은 특정한 기술적 발전 단계에 도달한 지능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핵에너지를 발견했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중략] 그 문명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일 없이 핵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나, 아니면 그 문명은 스스로 절멸됐나? 핵에너지를 발견한 후로 1000년을 존재해온 문명이라는 어느 문명이건 핵폭탄을 통제할 수단을 고안해냈을 거라고 짐작해요. 이 사실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한 특정 가이드라인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스탠리 큐브릭 장르의 재발명, 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101]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 관한 인터뷰에서 외계문명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근거로 든 사례다. 문명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될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는지 아닌지가 그 문명이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닌지의 기준점이 된다는 의견으로 여겨진다. 스스로 냉전 당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핵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로 만들기도 했던 이인지라, 외계문명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 이런 잣대를 갖는 것이 그답다는1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2016년 현재의 지구 문명은 큐브릭의 기준에서 볼 때 스스로 안도감을 가질만한 문명일까? “냉전(冷戰)”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미-쏘 열강의 전선이 사라질 즈음, 인류는 다행히도 큰 격변 없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어느 정도 유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지구적 관점에서, 특히 동북아 관점에서 핵에 대한 신경쇠약증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등이 그 예다. 전자는 국지적 냉전의 결과고, 후자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기술과 제도가 실패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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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es Levy from one of the B-29 Superfortresses used in the attack. – http://www.archives.gov/research/military/ww2/photos/images/ww2-163.jpg National Archives image (208-N-4388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6719

경수로 지원 사업에 관한 북미 간의 갈등에서 본격화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형식적으로는 국지적인 규모에서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양상을 띠고 있다.(또는 적어도 각 이해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동북아의 정치상황은 적어도 큐브릭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상태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야무진 핵의 평화적 용례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이후 – 원인이 소유형태든 일본식 문화든 간에 – 부조리한 사태처리로 말미암아 핵의 평화적 이용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일게 만들고 있다.

결국 큐브릭이 상정한 이상적인 핵개발의 상황은 핵을 전쟁수단으로 삼는 상황을 통제내지는 절멸시키고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은 그런 희망사항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서구열강은 비대칭적인 핵무기 보유상황을 상수로 인정하라 강요하고 이에 몇몇 “불량”국가는 사실상의 재래식 전력인 핵을 공포의 균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개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로 핵의 평화적 이용의 기술적 발전이 미흡함을 깨달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등 대체수단의 정착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큐브릭은 같은 인터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영화가 결코 아니라면서 “미친 짓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치유할 가능성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익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2016년 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도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처럼 완전 미쳐 돌아가는 상황은 아닐지라도 –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대립구도를 어느 한쪽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나머지는 지극히 이성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미친 짓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합리적 맥락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사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감독의 돈이 필요했던 이유

나는 돈의 요점은 그걸 쓰는 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돈의 요점은 내가 정말로 만들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되게끔 그걸 보유하는 데 있어요. 생활수준을 높였는데 갑자기 무일푼이 돼버리고 스튜디오 몇 군데에서 원하지 않는 영화를 찍으라고 강요한다면. [중략]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의 영화화 권리를 사들이는 데 돈을 써요. 마음에 드는 다른 책을 찾아냈을 때 그 책의 권리도 사들이려고 돈을 저축하고요.[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p39~40]

역사상 어느 영화감독보다도 탄탄한 필르모그래피를 구축한 것으로 인정받는 스탠리큐브릭의 돈에 대한 생각이다. 평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오던 차에, 그 맥락이 수긍이 가는 유명인(!)이 이런 말을 하니 반가운 맘에 옮겨 적어봤다. 즉, 그의 독보적인 필르모그래피는 그가 찍고 싶지 않은 영화를 찍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 자유를 확보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돈벌이로서의 일이 아닌 창작과 그에 따른 기쁨으로서의 일이 현실적으로는 물질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하는 현실에서 큐브릭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KubrickForLook (cropped).jpg
By Stanley Kubrick ; cropped by Off-shell

File:KubrickForLook.jpg
Original image: LOOK Magazine Collection, Library of Congress, Prints & Photographs Division, [Reproduction number e.g., LC-L9-60-8812, frame 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5534727

물론 돈이 아주 많지 않아도 어느 정도 희생만 각오한다면 하고 싶지 않은 노동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다. 소위 “자발적 가난”이라는 표현이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소비를 줄이고 덜 노동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이 택한 삶을 그렇게 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큐브릭에게는 당연하게도 돈이 필요했다. 영화창작이란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는 로리타의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몇 십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직접 투자해야 했고, 이를 통해 그는 창작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실 돈이 없이도 나름의 창작세계를 구축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에드 우드는 ‘글렌 혹은 글렌다’와 같은 초저예산 영화를 만들며 버텼고 사후에 어느 정도 그만의 독특함을 인정받았다. 더 독특한 예로는 “핑크 영화”라 불리는 1960~70년대의 일본 성인영화계에서 벌어진 일인데, 감독은 일정수의 섹스신만 넣기만 하면 상당한 정도의 연출의 자유가 주어진 덕에 때로 정치적으로 아주 급진적인 “핑크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그래도 큐브릭이 돈이 있어서 더 좋은 작품을 찍은 것은 사실이고, 그저 그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