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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공연

성 토마스 합창단 마태수난곡

올해 3월 16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공연이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작곡한 위대한 작품 마태수난곡 전곡을 바흐가 실제로 재직했던 8백여 년 전통의 성 토마스 합창단이 부른 공연이다. 성경의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을 기본 텍스트로 한 극적(劇的) 음악으로 공연시간이 3시간에 달하는지라 청중으로서도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공연이었지만 미리 음반으로 예습을 하고 간 터라 생각보다 지루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초심자이긴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이 – 특히 바흐가 – 지니고 있는 그 신앙심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더 높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숭고한 감정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New Order 도쿄 공연

올해 5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New Order 단독 공연이었다. 2012년 섬머소닉에서 만난 이후 4년 만에 다시 보는 뉴오더의 모습이었다. 일본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는 뉴오더의 팬 층이 두꺼운지라 이틀 간의 공연에도 적잖은 관중이 모여들었고, 밴드는 신보인 Music Complete를 공연목록에 상당수 집어넣었기 때문에 섬머소닉의 공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열기로 채워졌다. 스탠딩공연장에서 계속 되는 해드뱅잉 등으로 체력이 상당히 고갈되었던 공연이었지만, 그만큼이나 락 공연의 광기를 더욱 몸으로 느낀 공연이기도 했다. 그들의 신보와 공연을 다시 한 번 접할 그날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New Order 東京 공연 後記

Don Giovanni

오페라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직접 육안으로 보고 싶은 공연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모차르트의 돈지오반니였다. 뉴욕에 가는 김에 메트오페라의 공연일정을 검색해보니 이 작품이 10월 12일 공연일정에 있어 주저 없이 선택하였다. 뉴욕이 오페라의 본고장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상당한 완성도를 기대할만한 지역이었고, 공연은 다행스럽게도 가수들의 압도적인 가창력이나 화려한 무대장치 등에서 대만족이었다. 특히 극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비련의 여인 돈나 안나 역의 배우의 가창력은 실황으로 접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주어서 더욱 더 만족감이 높았던 공연이었다.

Steely Dan Concerts

사실 무리를 해서 뉴욕을 간 이유가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내와 나 둘 다 좋아하는 째즈-락 밴드지만 오랜 기간 공연을 갖지 않다가 미국 동부 순회공연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겁 없이 뉴욕행 티켓을 질렀던 것이다. 당일 공연장에 가보니 동양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우리 부부뿐이고 절대 다수가 백인이었을 정도로 이들의 음악은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고, 해외 공연장으로 직접 찾아가기 전에는 그들의 내한공연 따위는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공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이 완벽한 하모니의 세션을 갖춘 공연이었다. 다시 이들을 볼 수 있을지?

너무 흥겹게 공연을 감상하던 어느 관객

Squeeze / The English Beat 합동 공연

이들의 공연도 뉴욕행의 시간 때우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내 생애 가장 신나는 공연 순위 탑을 차지했다. 둘 다 좋아하는 밴드지만 두 밴드 모두 주로 80년대를 주요한 시기로 활동하였기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의 감동은 달랐다. 나이 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들 노래를 따라 부르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맥주를 마셔대는 모습, 공연수준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 물론 공연은 수준급이었다. – 몸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전성기가 지났어도 흥겹게 순회공연을 다닐 수 있는 팬 층과 시장이 있는 그들의 대중문화가 부러웠다.

Squeeze 공연 後記

올해의 즐거움 : 映畵편

Vertigo [1958]
오랫동안 최고의 걸작으로 군림하던 ‘시민 케인’을 최근 이 영화가 앞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면에서 B급 추리 영화나 만들던 감독으로 여겨지던 알프레드 히치콕이 재평가되고 그의 작품이 최고의 걸작 자리에 오르는 과정 또한 그의 영화만큼이나 극적이다. 이 영화 또한 창조자의 권위회복 과정처럼 평범한(?) 스릴러에서 복잡한 알레고리가 담겨져 있는 걸작으로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Les yeux sans visage [1960]
제목은 ‘얼굴 없는 눈’이라는 의미다. 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딸을 위해 한 외과의사가 젊은 여성을 납치하여 그의 얼굴을 딸에게 이식하려 한다는 끔찍한 설정의 공포물이다. 설정에서부터 그 진행과정, 그리고 결말이 빤하게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는 정밀하고도 스산한 연출이 매력적이기에 지루하지 않다. 여배우의 얼굴마저도 극의 설정과 잘 어울린다.

Saturday Night & Sunday Morning [1960]
프랑스 영화에 ‘누벨바그’가 있었다면 영국 영화에도 ‘뉴웨이브’가 있었다. 이 시기 영화는 주로 영국 노동계급의 날것의 삶이, 그 단조로운 일상에 어울리는 흑백 톤에 담겨져 전해졌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전형적 패턴을 담고 있다. 제조업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주인공은 얼굴이 잘 생긴 덕에 동료 아내와 바람도 피우고 예쁜 아가씨도 사귄다. 뻔한 결말이지만 그게 또 우리네 진솔한 삶이기도 하다.

Lawrence Of Arabia [1962]
영화 초반, 우물의 주인인 오마샤리프가 저 멀리서 낙타를 몰아 우물을 맘대로 사용하는 피터오툴 일행을 해치는 롱테이크가 이 영화가 무척 지루할 것이며 그만큼 뛰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신격화가 지나치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T. E. 로렌스만큼 현대의 모험성애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영화를 70mm로 극장에서 관람한 사람이 부럽다.

Apocalypse Now [1979]
미국인이 베트남전을 회고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애국주의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 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식이든 가해자로서 취할 적당한 태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근사하게 취해야할 태도는 진지하게 그 전쟁이 부조리했음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당사국으로서는 이 영화처럼 반쯤 미친 상태에서 회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큐를 보면 제작진이나 출연진 모두 다들 그런 상태였다.

Don Giovanni [2014]
작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가진 공연 비디오를 올여름 메가박스에서 가져와 상영하였다. 상영하는 날 객석에 나를 포함, 총 세 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음악적 유산 중에 가장 뛰어난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흐린 토요일에 극장에 앉아 돈지오반니를 본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실황을 직접 볼 수 있기를.

Martian [2015]
어딘가에서 낙오될 수 있는 경우로는 가장 먼 곳에서 낙오된 인간이 바로 이 화성인 멧데이몬일 것이다.(그래비티의 산드라블록의 기록을 깸)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맷은 산드라보다 더 유쾌한 마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화성의 주인이 된다. 영화는 그 긍정의 힘을 발랄한 70년대 디스코와 믹스하여 연출했다. 안전한 영화문법이기는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그래비티보다 중량감은 덜했다.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2015]
‘20세기 최고의 대중문화 아이콘이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유색인종 히어로 핀과 여자 제다이 레이를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데 달려 있다 할 것이다. 특히 레이는 레아 공주의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를 바꿔야 할 임무가 있다. 일단은 그 과제는 다음 시리즈의 과제로 남겨놓은 것 같고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BB8이었다.

Sicario [2015]
강간, 매춘, 마약, 납치, 살인이 일상인 미국 국경과 인접해 있는 멕시코의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즈, 그 곳에서의 범죄소탕을 위해 세 명이 의기투합하는데 이들이 꾸는 꿈은 서로 다르다. 규정에 매달리는 바른생활 FBI 케이트, 목표를 위해 惡의 힘의 균형을 허용하는 CIA 책임자 맷,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 이 삼각구도의 긴장감이 매우 탄탄하다. 시카리오는 멕시코에서 ‘암살자’란 의미로 쓰인다고.

Mad Max: Fury Road [2015]
스타워즈의 레이가 새로운 여전사로 등극하는 과제를 다음 에피소드로 미뤘다면 퓨리오사는 이번 에피소드에 그 임무를 110% 수행했다. 멜깁슨 없이는 ‘앙꼬 없는 찐빵’같았을 영화가 새로운 매드맥스 톰하디에 의해 세대교체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새 영웅 퓨리오사가 그 왕좌를 완벽하게 넘겨받아 영화 그 자체가 환골탈태를 거쳤기에 나는 이 영화를 단연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함이 없다.(감상문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