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문화

올해의 공연

성 토마스 합창단 마태수난곡

올해 3월 16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공연이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작곡한 위대한 작품 마태수난곡 전곡을 바흐가 실제로 재직했던 8백여 년 전통의 성 토마스 합창단이 부른 공연이다. 성경의 마태복음 26장과 27장을 기본 텍스트로 한 극적(劇的) 음악으로 공연시간이 3시간에 달하는지라 청중으로서도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공연이었지만 미리 음반으로 예습을 하고 간 터라 생각보다 지루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초심자이긴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이 – 특히 바흐가 – 지니고 있는 그 신앙심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더 높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숭고한 감정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New Order 도쿄 공연

올해 5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New Order 단독 공연이었다. 2012년 섬머소닉에서 만난 이후 4년 만에 다시 보는 뉴오더의 모습이었다. 일본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는 뉴오더의 팬 층이 두꺼운지라 이틀 간의 공연에도 적잖은 관중이 모여들었고, 밴드는 신보인 Music Complete를 공연목록에 상당수 집어넣었기 때문에 섬머소닉의 공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열기로 채워졌다. 스탠딩공연장에서 계속 되는 해드뱅잉 등으로 체력이 상당히 고갈되었던 공연이었지만, 그만큼이나 락 공연의 광기를 더욱 몸으로 느낀 공연이기도 했다. 그들의 신보와 공연을 다시 한 번 접할 그날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New Order 東京 공연 後記

Don Giovanni

오페라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직접 육안으로 보고 싶은 공연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모차르트의 돈지오반니였다. 뉴욕에 가는 김에 메트오페라의 공연일정을 검색해보니 이 작품이 10월 12일 공연일정에 있어 주저 없이 선택하였다. 뉴욕이 오페라의 본고장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상당한 완성도를 기대할만한 지역이었고, 공연은 다행스럽게도 가수들의 압도적인 가창력이나 화려한 무대장치 등에서 대만족이었다. 특히 극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비련의 여인 돈나 안나 역의 배우의 가창력은 실황으로 접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주어서 더욱 더 만족감이 높았던 공연이었다.

Steely Dan Concerts

사실 무리를 해서 뉴욕을 간 이유가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내와 나 둘 다 좋아하는 째즈-락 밴드지만 오랜 기간 공연을 갖지 않다가 미국 동부 순회공연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겁 없이 뉴욕행 티켓을 질렀던 것이다. 당일 공연장에 가보니 동양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우리 부부뿐이고 절대 다수가 백인이었을 정도로 이들의 음악은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고, 해외 공연장으로 직접 찾아가기 전에는 그들의 내한공연 따위는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공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이 완벽한 하모니의 세션을 갖춘 공연이었다. 다시 이들을 볼 수 있을지?

너무 흥겹게 공연을 감상하던 어느 관객

Squeeze / The English Beat 합동 공연

이들의 공연도 뉴욕행의 시간 때우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내 생애 가장 신나는 공연 순위 탑을 차지했다. 둘 다 좋아하는 밴드지만 두 밴드 모두 주로 80년대를 주요한 시기로 활동하였기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의 감동은 달랐다. 나이 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들 노래를 따라 부르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맥주를 마셔대는 모습, 공연수준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 물론 공연은 수준급이었다. – 몸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전성기가 지났어도 흥겹게 순회공연을 다닐 수 있는 팬 층과 시장이 있는 그들의 대중문화가 부러웠다.

Squeeze 공연 後記

올해의 전시회

Stanley Kubrick 展

현대카드가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연 기획전으로 스탠리큐브릭의 주요 작품에 쓰였던 소품, 시나리오, 그의 개인사물 등을 빼곡하게 채워 넣은 전시회였다. 앞서 글에서도 썼듯이 올해 초반 극장에서 만난 그의 작품들의 여운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전시된 소품들과 사전 콘티 등을 보면 여느 감독들도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편집증 환자라고 여겨질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에 집요하게 집착한 감독인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실제 스페이스오디세이에 쓰였던 HAL9000 실물을 만날 수 있었던 보기 드문 기회.

변월룡 展

우선 이 위대한 화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미술평론가이자 기획자인 문영대 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소비에트 시절의 타협하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예술가의 주요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용기와 인내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이 전시회를 세 번 찾았을 만큼 감명 깊었던 전시회다. 나는 화가 중에서도 그림 그리는 솜씨가 남다른 더 잘난 화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변월룡 씨가 바로 그런 분이다. 이런 그림 솜씨와 이데올로기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결합하여 최상의 결과를 낸 이가 바로 변월룡 씨다.

르느와르 展

올해 5월 도쿄에 갔을 때 들른 도쿄 국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다. 르느와르라고 하면 어딘가 식상한 면도 있을 것 같은 인상주의 화가지만 전시회를 보면 그것은 우리가 그의 명성이나 이미지를 과소비했을 뿐 그의 작품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 전시회가 인상적이었던 이유 하나가 특히나 일본에서 열린 전시회라는 점이었기 때문인데, 토요일 그 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기이할 정도로 질서정연하고 조용했다는 점, 그리고 컬렉션의 알찬 내용이 국내의 유사 전시회에서 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요했다는 점 등 때문이다. 그런 점은 참 부러웠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쥴리

우타가와 히로시게 展

이 전시회는 도쿄 시내를 배회하다 산토리 미술관에서 이 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들른 대박 전시회였다. 우키요에를 즐기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진본을 본적이 없는지라 이렇게 우키요에의 大家의 작품을 한데 몰아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명소에도백경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풍경화를 – 그럼으로써 일종의 관광지 팸플릿 역할을 했던 – 주로 그렸던 작가인지라 역시 컬렉션은 풍경화 위주다. 전시회에서는 이런 작품을 현재의 위치와 매칭해서 보여주며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는데, 다시 한 번 일본인의 집요함을 느낄 수 있었던 전시회였다.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전시회

노이에 갤러리(Neue Gallarie)의 클림트 展

뉴욕에 갔을 때 메트로폴리탄미술관, MOMA 등 주요미술관을 돌아다니며 감상한 상설전시는 여태도 그렇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한꺼번에 몰아서 걸작을 감상한 시기였다. 하지만 특별히 이 갤러리의 클림트 작품을 언급하는 이유는 약간의 기획전 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클림트의 여성 전신을 그린 주요 작품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전시회였기 때문이다. 방을 죽 둘러싼 클림트의 여인들을 바라보며 그가 살았던 시대의 그 분위기가 내 머릿속에 샤워 물을 퍼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소비되는 느낌이 드는 화가지만 역시 천재임에 틀림없는 화가였다.

올해의 영화

스탠리큐브릭의 작품들

올해 초, CGV가 기획한 스탠리큐브릭 시리즈展에서 본 영화들이다. 이때 2001: A Space Odyssey, A Clockwork Orange, The Shining, Dr. Strangelove를 일주일에 걸쳐 감상하였다. 작은 모니터로 봤던 영화를 스크린에서 접하면 이제까지 못 봤던 새로운 디테일을 보게 되는 법이고 큐브릭의 영화들이 바로 그러했다. 특히 스페이스오디세이에서의 우주의 광활함을 작은 모니터에서 본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는 부조리한 상황이었다. CGV가 내년에는 남은 큐브릭의 작품도 상영해주길 빌어본다.

사티야지트 레이(সত্যজিৎ রায়,)의 ‘대지의 노래’ 3부작

남들이 그렇듯 인도영화 하면 무조건 군무와 어설픈 스토리가 결합된 우스꽝스러운 영화라고 알고 있던 나의 편견을 깨부순 영화들이다. 장 르느와르에게 사사한 감독이 1955년 거의 혼자의 힘으로 만들다시피 한 ‘대지의 노래’는 가난한 아푸의 가족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개척해나가는가에 대해 그린 리얼리즘 영화다. 감독은 이어지는 ‘대하의 노래’, ‘아푸의 세계’를 통해 아푸의 삶을 계속 조명하며 인도 근현대사에서의 한 개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여 인도영화계에 흔들리지 않는 기둥을 구축하였다.

I, Daniel Blake

“흔들리지 않는”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또 하나의 감독이 있다면 바로 켄로치일 것이다. 영국 노동계급의 삶에 대한 애정을 흔들림 없이 지니고 있는 감독의 최신작으로 영국 복지제도의 부조리함과 이에 맞서는 다니엘 블레이크의 삶을 희비극의 기법으로 조명하였다. 지난 번 글에 썼듯이 선진국의 고령화 현상은 특히 노동계급의 빈곤과 맞물려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러한 상황에 놓인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처지를 조명하고 있다. 너무 리얼하다는 점에서 장르는 공포영화다.

Love Is Strange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뉴욕의 게이 부부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으며 피치 않게 별거를 하게 되며 겪게 되는 어려움을 소재로 한 영화다. 모두들 친한 친구고 친척이지만, 그들의 삶의 공간과 시간이 조금씩 겹치면서 서로가 어떻게 부대낌을 겪게 되는 지가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어 보는 내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영화 내내 흐르는 쇼팽의 음악과 뉴욕의 풍경이 그럴싸하게 어울려 더욱 영화 보는 맛을 느끼게 한다. 뉴욕에 갔을 때는 주인공들이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레스토랑에 직접 방문해 덕질을 하기도 했다.

The Wire

미드 역사상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고 탑3에 들어가곤 하는 HBO(2002~2008년 방영)의 드라마. 전직 볼티모어의 경찰이었던 에디 번즈(Ed Burns)의 각본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볼티모어라는 도시를 둘러싼 이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데, 작품은 시즌마다 마약, 정치, 노조, 교육, 언론 등 주요 이슈를 건드리며 하나의 거대한 콘텍스트를 완성해나간다. 이 작품을 보고나서 볼티모어 출신 흑인 작가 타네히시 코츠(Ta-Nehisi Coates)의 ‘세상과 나 사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The Wire가 현실로 와 닿는 책이었다.

올해의 책

슬슬 한해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오늘 ‘올해의 뫄뫄’ 시리즈를 써볼까 하고 에버노트를 뒤적거리다보니 올해는 개인적으로 나름 참 많은 일이 있었던 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참 많은 일이 벌어졌던 – 그리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 해이기도 하다. 많은 사건이 비극이었지만, 그 와중에 그러한 비극을 계기로 화해와 상처 회복의 단초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한 양면성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언제나 행복할 수 없고 누구도 언제나 불행하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책을 읽는 순간만은 행복하거나 최소한 불행을 잠시 잊는 순간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紅樓夢

올해는 조설근의 소설 홍루몽을(내가 읽은 것은 나남에서 발간한 총 여섯 권짜리) 다 읽은 해다. 작가의 반자전적 소설이라는 설이 유력한 이 걸작은 주된 줄거리는 한 귀족 집안의 자녀인 가보옥과 임대옥과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이 담겨져 있다. 또한 작가 스스로가 겪었을 귀족의 풍습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통해 우리는 봉건사회의 계급구조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이 소설을 “페미니스트 소설”이라 이름붙이는 것은 과잉해석이겠지만,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주체성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웬만한 현대소설보다 페미니즘 적이라는 것도 매력요소다.

The Catcher In The Rye

여태 한 대여섯 번은 읽은 것 같은데 올해는 특히 홀덴이 방황하는 주요무대인 뉴욕을 다녀와서 읽었다는 점에서 더 맛깔스러운 독서가 됐다는 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해 보았다. 즉, 홀덴이 기차를 타고 뉴욕의 펜스테이션에 도착해서 센트랄파크 및 웨스트사이드 등으로 헤매는 동선이 내가 뉴욕에서 헤맸던 동선이기에, 영화화도 되지 않은 이 작품에 비주얼을 가미해주어 더 실감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한편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던 “원문에서의 head가 ‘머리’냐 ‘귀두’냐”란 논란도 다시 곱씹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귀두로 해석한 번역가는 음란마귀가 씐 것 같다.

스트레스테스트 / 정면돌파 / 대마불사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책은 여러 권이 있겠지만, 올해에는 이 세권의 책으로 어느 정도 당시의 정황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앞의 두 권은 금융위기 속의 출연진인 – 그리고 서로 앙숙인 – 티모시 가이트너와 쉴라 베어가 쓴 회고록이다. 그렇기에 둘의 주장이 엇갈리는 장면에서 서로의 주장을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마불사는 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이기도 한 작가 앤드류 로스 소킨(Andrew Ross Sorkin)이 쓴 책이다. 작가의 시점에서 각 주요국면의 정황을 치밀하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앞서의 두 권이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참고서다. 암튼 대단한 사건이었다.

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마라

특이하게 건강에 관한 책을 골라봤다. 조니 바우덴(Jonny Bowden)과 스테판 시나트라(Stephen Sinatra)의 공저다. 개인적으로 LDL수치와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빌려본 책인데 의외의 내공을 느끼고 숙독했던 기억이 난다. 요점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수록 심장질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은 현대의학의 신화이자 상술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해박한 지식을 통해 콜레스테롤, 인슐린 등 우리 귀에 익숙하지만 정작 그 의미를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준다. 작가의 주장은 굉장히 논란이 많은 주제이기 때문에 독자로서 이를 유의하며 다른 주장과 비교하여 읽어야 할 것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읽다

빵과 자본론이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주제가 한데 만난 책이다. 질풍노도의 삶을 살던 저자는 어느 날 빵을 배워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학자이신 아버지가 문득 자본론을 읽어보라고 해서 그 책을 읽으며 제빵업자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는 개인적 경험을 적은 것인데 엉뚱해 보이면서도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경제주체로서의 역할을 자본론에서 이상적인 경제단위로 설정한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맑스가 자본론에서 엉터리로 만들어진 빵이 얼마나 나쁜지 설명하는 부분도 있으니 의외로 빵과 자본론은 어울리는 주제다.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

NHK 스페셜 제작팀이 실제로 노후파산의 위기에 있거나 이미 파산한 노인들을 심층 취재하여 만든 책이다. 올해 일본에 갔을 때 유난히 노인층이 많이 눈에 띄어서 일본사회의 노령화를 실감하였던 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노인층이 세계 최고의 선진국인 일본에서조차 어떻게 삶의 파행을 겪게 되는 지를 실감하게 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삶은 단순히 문학 속의 소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다. 올해는 특히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등 그러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편 이 책을 읽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 충격이 배가 된다.

문 앞의 야만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뭔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제목의 이 책은 M&A에 관한 고전이다. RJR내비스코라는 미국의 거대기업의 합병과 LBO를 둘러싸고 월스트리트의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합종연횡을 하며 사투를 벌이는 지가 번역본 900페이지가 넘는 회고록을 통해 소상히 담겨져 있다. 그래서 해당 분야의 종사자들에게나 문외한에게나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아직 3분 2 정도 밖에 진도를 나가지 못했지만, 굳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가 이것이다. 특히 투자은행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면 어떻게 딜소싱이 이루어지는지, 주선은행이란 어떤 의미인지, 협상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전시회

지난번 일본에 갔을 때 운 좋게도 볼 수 있었던 전시회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의 우키요에(浮世絵) 작품 전시회였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당초 이 전시회가 있는 것을 모른 채 도쿄에 가서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 찾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키요에에 대해 많은 지식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히로시게의 명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전시장을 입장하였다.

한 집요한 콜렉터의 수고로 모여진 히로시게의 작품을 전시한 이 전시회에서, 나는 그간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히로시게의 주요 작품들을 거의 빠짐없이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히로시게는 우키요에 중에서도 특히 풍경을 소재로 한 목판화1로 유명하다. 이는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당시 일본인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일종의 여행 팸플릿의 역할을 하는, 당시 표현으로 메이쇼에(名所絵) 장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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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agawa; Hiroshige (I) , Utagawa died 1858; Uoya Eikichi Hiroshige (I)http://www.rijksmuseum.nl/collectie/RP-P-1956-743 (handle),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3364940

히로시게가 살았던 19세기 쿄토(京都)와 에도(江戸) – 오늘날의 토쿄 – 사이의 연결 루트라 할 수 있는 도카이도(東海道)의 풍경을 담은 ‘도카이도53차(東海道五十三次)’나 에도의 풍경을 담은 ‘에도100경(名所江戸百景)’ 등이 특히 유명한 그의 작품이다. 전시회에서는 그의 작품을 유리 창 너머로 비스듬히 배열하고 그 옆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위치와 실제 사진을 같이 배치하여 관객이 그 풍취를 함께 느낄 수 있게 배려하였다.

작품의 특징은 풍경이 단아하고 등장인물이 해학적이라는 점이다. 서구미술의 원근법도 도입한 히로시게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다양한 사건들을 스냅 사진 찍듯 화폭에 담아 극적긴장감과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인상주의적(!)” 특징은 고흐가 그의 그림을 필사할 만큼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색감으로는 두드러지게 붉은 색을 애용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보다 청명한 느낌의 호쿠사이와 비교된다.

전시 장소인 산토리 미술관은 쇼핑센터 안에 위치했음에도 2층 규모의 큰 전시장을 확보해, 많은 관객들 사이에서도 불편 없이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의 이런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당일 찾은 다른 미술관에서 겪은 고초를 생각할 때 더욱 두드러진 미덕이었다. 또 다른 유명 우키요에 작가였던 구니요시2구니사다의 전시회가 열린 그 비좁은 미술관에서 나는 작품 감상을 포기한 채 그야말로 휩쓸려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3

어쨌든 히로시게의 전시회를 방문한 날, 당초 염두에 두고 있던 두 다른 우키요에 작가의 전시회까지 함께 감상하면서 내 평생 가장 많은 우키요에 작품을 육안으로 감상한 날이 되었다. 비록 목판화여서 육필화(肉筆畵)에 버금가는 생생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뛰어난 묘사력, 이국적인 소재, 그리고 그림에 담긴 적절한 해학은 21세기의 한국인에게도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매력요소였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쥴리

이번에 도쿄에 가서 우연치 않게 감상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전시회가 르느와르(Pierre-Auguste Renoir) 전시회였다. 이미 너무 유명한 화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큰둥할 수도 있는 전시회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의 작품을 한데 모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전시회 때문에 일부러 일본을 들를 정도로 광적인 팬은 아니지만, 기왕에 일본에 온 김에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기에 전시회가 열리는 국립신미술관(國立新美術館)이 문을 열기 30분 전에 미술관에 도착하여 티켓 구매를 위한 줄에 합류했다.

르느와르 그림의 일관된 주제는 한마디로 말해서 당시 사회의 주류로 등장한 부르주아의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삶을 표현하기 위해 또한 당시 미술의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인상파의 명랑한 색채를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인상파적 화풍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는 것이 전시회를 본 내 느낌이었다. 그의 그림 컬렉션을 하나의 영단어로 표현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화려한”이란 의미의 영단어 중에서도 “flamboyant”를 선택하고 싶다. 그의 최고의 걸작 ‘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를 전시회에서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그 단어였다.

Pierre-Auguste Renoir, Le Moulin de la Galette.jpg
By Pierre-Auguste Renoirhttp://allart.biz/photos/image/Pierre_Auguste_Renoir_2_Bal_du_moulin_de_la_Galette_Smaller_version.html (derivative work of musee-orsay.fr image?)
Notwithstanding the source description, this is the version at the Musée d’Orsay (in the smaller version the central figure leaning forward lacks an earring).,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712177

이 전시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어쩌면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flamboyant 하지 않은 ‘Julie Manet with cat’이란 작품이었다. 그의 낙관과도 같은 현란한 빛은 이 작품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차분한 붓터치와 갈색톤으로 통일한 색의 사용이 두드러진 작품 속 인물은 슬픈 눈동자를 차분하게 내리 뜬 채 고양이를 안고 있다. 그려질 당시 아홉 살이었던 쥴리는 르느와르의 친구이자 동료화가인 Berthe Morisot와 Eugène Manet 부부의 딸이다. 쥴리는 불행하게도 십대에 양친을 잃어 고아가 되었다. 르느와르는 그녀의 애정어린 후견인이 되었다고 한다.

Auguste Renoir - Julie Manet - Google Art Project.jpg
By Pierre-Auguste RenoirKQGO9bsplWZeCg at Google Cultural Institute maximum zoom level,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1880381

이런 슬픈 사연을 지닌 이 작품은 그런 후일담을 제쳐두고라도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르느와르의 다른 작품에서의 정서와는 확연히 다른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 르느와르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 후에 고아가 될 운명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한 소녀의 슬픈 눈빛,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고양이의 교태 등, 이 작품의 각각의 참여주체들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내 가슴에 느껴졌기에 나는 한동안 이 작품 앞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쥴리 역시 이런 작품의 깊이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세상을 등질 때까지 이 작품을 다른 이에게 넘기지 않고 보관하였다 한다.

후일담 하나를 더 공유하자면 이렇게 르느와르의 애정을 듬뿍 누린 쥴리가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르느와르의 모순된 삶을 폭로한 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양친을 잃었지만 동료 화가들의 모델 등의 활동을 풍족한 삶을 산 쥴리는 회고록에서 어울렸던 유명 화가들의 사생활을 회고하였는데, 알려진 바와 다르게 르느와르가 당시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드레퓌스 사건에서 反유태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회고록에 적어놓았던 것이다. 르느와르 역시 자신의 앞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던 어린 소녀가 후에 자신의 위선을 폭로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라바지오 전시회 관람후기

물론 다른 화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카라바지오(Michael Angelo Merigi da Caravaggio)에 대한 내 지식은 짧았다.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는 화가이자 렘브란트보다는 더 극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 정도가 그에 대한 내 지식의 전부다. 그래서 도쿄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 가려던 당초의 이유도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디자인했다는 미술관 건물 자체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Younger)의 ‘새덫이 있는 겨울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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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663highland663highland, CC BY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193660

어쨌든 비오는 금요일 아침인지라 미술관도 한가하겠거니 하고 개관시간인 10시에 조금 이른 9시 반에 터덜터덜 미술관에 도착했지만, 정작 건물 앞은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단체관람을 온 듯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장년과 노년의 일반관람객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물론 카라바지오의 명성 자체가 충분한 집객력이 있을 수준이었지만, – 이후 다른 전시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 도쿄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열기는 상당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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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는 빛의 화가였다. 전시회의 안내 글에도 자세히 나와 있었지만, 그는 작품 바깥의 어디에선가 비춰지는 강렬한 조명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캐릭터와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성경 속 예수의 일화를 화폭에 옮긴 ‘엠마우스의 저녁 식사’가 그러한 카라바지오의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랄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인물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상황이 극적인 빛의 분할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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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그의 매력은 성경의 일화를 담은 작품들보다 그가 살던 시대와 근린에서 부대껴 살던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점쟁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인데 젊은 집시 여성인 점쟁이는 상대 남성의 – 모델은 카라바지오의 동료이기도 했던 Mario Minniti로 추정되는 – 손바닥을 보며 점을 치는 듯하지만, 그의 미모에 마음이 뺏겨 있는 듯 손은 보지 않고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Caravaggio (Michelangelo Merisi) - Good Luck - Google Art Projec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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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회에서는 주요 작품과 같은 주제의 다른 이의 작품도 소개하고 있는데, ‘점쟁이’ 역시 Vouet라는 다른 화가의 매력적인 작품도 함께 전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점쟁이와 그녀의 매력에 넋이 나간 남자, 그리고 그 와중에 남자의 주머니를 터는 노파의 구도가 매우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젊은 점쟁이 여인도 이 남자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지만, 노파는 이 어리석은 남자를 등 뒤에서 한껏 조롱하며 – 손 모양이 ㅎㅎ – 탐욕스러운 손을 그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있다.

Vouet, Simon - The Fortune Teller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작품은 ‘Ecce Homo’였다. 라틴어로 “이 남자를 보라”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한 재력가의 의뢰로 카라바지오가 성경의 일화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의뢰자는 그의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아 다른 작가에게 같은 주제로 의뢰했고 이 전시회에서는 그 작품 역시 전시되었다. 어쨌든 나는 인물의 묘사가 주제와 상관없이 너무 뛰어난 솜씨로 묘사되어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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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 전시회를 보면서 – 이후 다른 전시를 보면서도 – 느낀 점은 전시회가 약 16,000원 정도 하는 티켓 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충실한 컬렉션과 기획을 통해 소비자에게 만족을 준다는 점이었다. 앞서 썼듯이 주요 작품을 위해서는 그와 비교할만한 다른 작품을 같이 보여주며 그림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국내의 일부 알맹이 없는 전시회가 비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