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설들


올해의 책읽기 중에 가장 모험적인 시도였다면 연초에 시도한 ‘롤리타 원서로 읽기’였다. 소설의 원작자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국적이었지만 귀족 명문가에서 태어난 천재인지라 여러 나라 언어에 능숙하였으며, 이 소설을 쓸 때 그는 모국어인 러시아어대신에 영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네이티브가 쓴 영어소설이 아니라고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물론 영어실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나보코프가 사용한 수많은 은유와 현학적인 단어 등으로 인해 – 어릴적 한국어로 이미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 한 문단 한 문단을 힘겹게 타고 올라야만 했다. 그런 시도 끝에 완독에 성공했음에도 – 또는 그러하였기에 – 만족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험버트 험버트가 롤리타와 묵었던 여관에서 정체모를 남자와 나눴던 대화에서 험버트의 머릿속에 잠재하고 있던 죄책감이 대화 속에서의 언어적 유희로 표현되던 상황은 영어가 아니고서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소설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이런 가느다란 감정의 뉘앙스는 영어로 읽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아성애라는 비뚤어진 여성 혐오적 욕망을 관능적이고 현학적으로 풀어낸 탓에 – 또는 덕분에 – 아직도 이 소설의 제목과 캐릭터는 유사한 사회적 현상을 묘사하는데 가장 손쉽게 쓰이는 상징이 되었고, 소설 그 자체의 매력을 감상하기 위해서나 또는 그 욕망의 사회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읽어야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롤리타가 힘겨운 고산등반이었다면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獄門島) 읽기는 가벼운 트래킹이라 할 수 있었다. 영국에 셜록 홈즈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설탐정의 전범이라면 일본은 바로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해낸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耕助)라 할 수 있다.1 1947년 처음 연재되기 시작했다는 이 소설은 역시 긴다이치가 등장하는 요코미조의 다른 소설에 비교할 때에 – 적어도 내가 읽은 중에서는 – 가장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이 강하고 이 매력이 하이쿠 등 일본 고유의 문화와 잘 융합되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긴다이치 코스케의 다소 엉뚱한 캐릭터 설정과 뛰어난 건축물을 보는 듯한 주변 캐릭터 설정의 기하학적 배치가 훌륭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소설은 긴다이치가 동료군인이었던 한 명문가의 장남이 죽음을 맞이하며 했던 부탁을 들어주러 “지옥의 문”이라는 끔찍한 이름의 섬에 찾아가면서 겪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매력은 섬으로 향하는 배에서부터 시작한다. 요코미조는 이때부터 등장하는 어느 조연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저마다의 역할을 정확히 배치하여 활용한다. 하다못해 섬으로 싣고 가는 절의 종(鐘)에도 역할이 배당되어 있다. 그리고 이후 발생하는 살인사건은 각각의 하이쿠의 대응하는 모양새를 띤다.2 소설의 또 하나의 매력은 그 살인의 배경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섬의 폐쇄성, 그리고 더 매크로하게 일본이라는 섬이 지니고 있는 폐쇄성과 봉건성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미와 메시지를 함께 지닌 작품.


지난 11월 말 교토(京都)를 여행했다. 그래서 가기 전에 참고용으로 고른 소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였다.3 1956년 출판된 이 소설은 하야시 쇼켄이라는 절의 도제가 1950년 실제로 금박으로 덮여 있던 누각을 불태워버렸던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4 작가는 소설을 쓰기위해 5년간 자료조사를 할 만큼 치밀하게 작품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실의 하야시 쇼켄은 소설 속에서 말더듬과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열등감에 젖어있는 미조구치로 재탄생한다. 미조구치는 어쩌면 하야시 쇼켄과 당시 여러 내적 갈등을 겪고 있던 미시마 유키오 자신이 뒤섞여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읽다보면 ‘미시마 스스로가 먼저 금각사를 태워버리지 못해서 이 소설을 쓴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미시마 유키오가 “이상한 에로티즘을 구사”한다는 평이 있는데 이 소설 역시 그런 이상한 에로티즘이 잘 묘사됐다는 점에서 시사소설인 동시에 작가의 뇌내망상과 상상력의 재창조물이라 할 수 있다. 미조구치는 임신부의 배를 걷어차며 쾌감을 느끼고 여러 에로틱한 상황에서 금각사의 환영을 중첩되며 성적환상에 시달린다. 이런 면에서 방화는 명백히 미조구치의 오르가즘과 연결되어 있고, 먼 훗날 미시마 유키오 스스로가 자행하는 자살극에서 느꼈을 오르가즘과 연결되어 있다. 금각사라는 미(美)는 파괴해야만 영속한다는 모순된 강박은 “인간이 잔인해지는 순간은 단말마의 신음을 볼 때가 아니라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라는 작중인물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1. 유명한 추리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김전일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손자로 설정되어있다
  2.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피해자들이 ‘10명의 어린 인디언’이란 시에서 묘사한 상황처럼 살해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3. 여행 일정이 어긋나는 바람에 정작 교토에서는 들르지도 못했다는 것은 눈물 포인트
  4. 그래서 지금 세워져 있는 누각은 그 이후 재건된 것이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