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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 덕에 잘 살게 되었을까?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이들은 흔히 “누구 덕에 이렇게 잘 살게 된 줄 아느냐?”라는 호통을 치며 박정희의 “영도력”을 내세우곤 한다. 그 “영도력”은 가난한 신생국이 주기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대의민주제를 곧바로 수용하기 보다는, 독재나 변칙적인 대의민주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곧잘 사용하는 표현이다.

현시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그 “영도력”을 통해 경제개발에 성공한 소수의 나라 중 하나기에, 우익들은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에 대비되는 “근대화 세력”이라 포장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 주체가 근대화되고자 한다면 필요한 요소가 단순히 “영도력”만은 아니고, 생산을 할 뭔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주류 경제학에서 드는 3대 생산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당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자본이었다. 자금조달난을 겪던 군사정부는 화폐개혁을 통해 內資를 끌어내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결국 이들이 택한 것은 외자유치 전략이었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 어렵사리 외자유치에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자.

박정희 정부는 미국 등 외국에서 경제개발에 필요한 돈을 빌리려 애를 썼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1961년 서독으로부터 1억5,000만 마르크(약 3,000만 달러)의 상업차관을 약속받는 데 성공했다. [중략] “서독은 지급보증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최빈국 한국에 보증을 서줄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때 군사정부는 서독이 필요로 하는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는 묘안을 찾아내면서 이들의 3년간의 노동력과 노임을 담보로 서독은행에서 지급보증을 받아냄으로써 드디어 1962년 10월 서독으로부터 최초로 차관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백영훈, 아우토반에 뿌린 눈물, 김흥기, 1999, pp 72~73, 장미영/최명원, 2006, p244, 재경회/예우회 엮음, 한국조세연구원 기획, 한국의 재정 60년 건전재정의 길, 매일경제신문사, 2011년, p86에서 재인용]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리 군의 베트남 파병은 박정희가 먼저 미국정부에 제의하여 이루어졌다. 5.16 쿠데타 이후 미국으로부터의 지지와 지원을 필요로했던 박정희는 1961년 11월 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였고, 방미일정중에 케네디 행정부와의 비공개회의를 통해 최초로 파병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종필 공화당의장도 1962년 2월 베트남을 방문하여 파병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중략] 박정희 정부에게 있어서 베트남파병은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대신, 경제적 대가를 챙기는 일종의 거래와도 같은 것이었다. 베트남 참전을 통해 박정희 정부는 전쟁특수를 누렸고 수출을 늘렸는가 하면, 미국의 차관지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파병 뒤에는 언제나 미국이 있었다’미국 결정’ 마감, 국민의사 물어야]

드디어 1969년 12월 韓日간에 종합제철에 관한 기본협약이 체결되어 건설에 착수하게 되었다. 韓日 국교정상화 때 양국간에 합의된 청구권 및 對韓차관 공여액은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자금 3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이상으로서 무상 및 유상자금 각 3억 달러에 대해서는 항일독립유공자보상, 對日민간청구권보상, 평화선철폐에 따른 어민보상 등 국민적 요구가 방대했다. 朴대통령은 국민적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을 각오하면서 낭비보다는 건설이라는 견지에서 종합제철건설에 상당한 액수를 투자하는 대영단을 내렸다.[김정렴, 한국경제정책30년사, 중앙일보사, pp138~139]

이 사례들은 각각이 당시 경제개발의 주요국면에서 매우 요긴하게 자금을 조달한 사례랄 수 있다. 이들 자금을 종자돈으로 해서 남한은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공업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외 없이 등장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생산요소 중 노동력을 수출하거나 착취하는 박정희의 “영도력”이다.

이런 “영도력”이 물론 박정희만의 독특한 “영도력”은 아니다. 많은 가난한 나라들이 노동력 수출을 통해 자본을 조달해왔고 여전히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 노동자, 군인,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민간피해자들 역시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희생을 제공했고, 또 이를 통해 이른바 “조국근대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즉, 처음 사례는 상업차관의 지급보증을 노동력으로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리 노동자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거래였다. 두 번째 사례는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기엔 문제가 있지만 파병이 전쟁특수의 상당한 개연성을 제공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마지막 사례 역시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이는 공개된 정부자료에 의해서도 증명됐다.

“영도력”과 노동 중에 어느 요소가 경제발전의 공과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느냐를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박정희의 영도력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역사적 가정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다만 국민들이 제공한 노동에 – 심지어 강탈당한 對日 청구자금 –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유무상 자금 5억 달러는 1966년부터 10년간 연차적으로 전액 차질없이 도입됐다. 청구권 자금은 포항종합제철공장 건설에 23.9%, 기타 원자재도입에 26.5%가 각각 투입됐다. 또 소양강다목적댐 건설에 4.4%,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1.4%(689만 달러)가 투입되는 등 광공업을 비롯한 기간산업 시설건설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다. [중략] 1973년까지 8년간 모두 31만 2,000명의 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했다. 이 기간 동안 월남파병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화는 1966~1970년 5년간 총 6억2,501만 달러에 달했다. [재경회/예우회 엮음, 한국조세연구원 기획, 한국의 재정 60년 건전재정의 길, 매일경제신문사, 2011년, p88]

“누구 덕에 이렇게 잘 살게 된 줄 아느냐?”고 누가 물으면 “국민”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The Quiet American

스피어단장은 잠재적인 재난에 대한 얘기들을 계속했다. 끝으로 나는 그에게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아니면 미국이 개입하여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만일 우리가 탱크와 다른 군사장비를 남부 베트남 대신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준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로상으로 끌어올려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방식으로 그들과 싸울 수 있을 겁니다.”그는 이 말을 농담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제임스 레스턴 회고록 데드라인, 제임스 레스턴 지음, 송문홍 옮김, 동아일보사, 1992년, p297]

미국이 아직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개입하기 전 사이공에서의 군사 임무를 맡고 있던 영국의 스피어(Spear) 여단장의 말이다. 이 말에서도 느낄 수 있다시피 서구인들에게 있어 베트남은 이해가 되지 않는 미궁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웅성웅성 몰려다니는 조그만 노란 땅꼬마들을 현대화된 무기로 큰 힘 안들이고 때려잡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너무도 큰 오산임이 밝혀졌다. 똑같은 착각을 프랑스가 했고 미국이 했다.

영화는 이렇듯 서구가 베트남이라는 구렁텅이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던 무렵의 혼란한 정국에서부터 시작한다. The London Times의 늙은 영국인 주재원 토마스 파울러 Thomas Fowler 는 유유자적하는 방관자적인 가치관을 가진 기자이면서, 영국에 아내가 있으면서도 현재는 직업댄서 출신인 아름다운 베트남 여인 푸앙과의 불륜에 맛이 들려있는 상태다.

그에게 의료관계 일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매력적인 미국인 알덴 파일 Alden Pyle 이 접근해온다. 셋은 곧 함께 어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와중에 파일이 푸앙을 사랑하게 되고, 파일은 기혼자로서 약점이 잡혀있는 토마스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푸앙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기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 와중에 The London Times는 토마스의 귀국을 명령하지만 푸앙과의 관계를 위해 토마스는 격전지에 뛰어드는 취재를 자처하거나 유력한 군사집단의 우두머리 테이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등 신문사에 미끼를 던져 귀국을 연기시킨다. 그에게는 전쟁의 두려움보다 푸앙과의 이별의 두려움이 더 컸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자인 토마스의 아내가 토마스와의 이혼을 거부하는 바람에, 흠결 없는 결혼을 꿈꾸던 푸앙은 결국 파일과의 미국행을 꿈꾸며 토마스의 곁을 떠나버리고 만다. 반미치광이가 된 토마스는 파일과 푸앙의 주위를 맴돌지만 자신은 결국 늙은 영국인 기혼자 일뿐이라는 사실을 통감할 뿐이다.

한편 토마스는 취재의 과정에서 파일이 단순한 의료지원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장소에서 수시로 모습을 보이던 그가 결정적으로 사이공 한복판에서 공산주의자의 짓으로 의심되는 폭파사건 현장에서 매우 이상한 행동을 하였고, 이를 지켜본 토마스는 그런 그의 정체를 곧 알게 된다. 연인을 빼앗아간 이 젊은이는 상상외의 거물이었던 것이다.

이후 토마스는 한 공산주의자의 설득에 따라 어떤 음모에 가담하게 되는데, 그 동기가 연적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는지 또는 정치적 소신 때문이었는지의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자 이 영화가 노리는 재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토마스의 행적에 의심을 품은 프랑스 형사 비고가 그에게 증거를 제시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전쟁 중이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라는 토마스의 말에 비고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시청자 역시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이념과 동서양의 가치관이 심하게 요동치던 현대사의 한복판을 관통하여 수많은 고민거리를 낳았던 베트남전(戰)을 소재로 한 수작 스릴러로 유명한 스릴러 작가 Graham Greene 의 원작을 Phillip Noyce 가 2002년 영화화한 작품이다. 두 주연배우 Michael Caine, Brendan Fraser 의 호연이 돋보이지만 푸앙역의 베트남 여배우의 어설픈 연기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911사태로 인해 상영이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한다.

Morning, Hinh. Anything new?
좋은 아침 힌. 새로운 거라도 있어?

Corruption, mendacity.
부패, 속임수.

I said “new.”
난 “새로운” 거 있냐고 물었어.

[극중 대화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