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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주의의 증표(證票) 소비

계획경제 체제에서 소비는 ‘증표를 지참한 물건 구매’를 통해 이루어진다. 소비자는 화폐가 아니라 직장에서 분배받은 증표를 주고 해당 물건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증표 소비’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각종 증표는 120여 종에 달했다. 당시 쓰촨성에서 소비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유행어가 있었다. 이를 보면, 국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민이 ‘먹고 마시고 싸고 하는 것’ 전부를 관리한다. “계획은 천하를 통일했고, 이 정도 수준은 중국 역사상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일이다.”[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1, 조영남 씀, 민음사, 2016년, p211]

중국에서의 계획경제는 마오쩌둥 시대에 체계가 잡혔다. 계획경제에 대해서는 楊江의 ‘건국이래신대경제열점(建國以來十代經濟熱點, 1995)’에서는 “공유제 경제를 기초로 강제성 계획과 행정명령을 주요 수단으로, 위에서 아래로 고도로 집중된 계획 관리를 실행한 경제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조영남 씨의 책에 따르면 1976년 전체 공업 생산량 중에서 국가 소유(전민소유제)가 80%, 집체 소유가 20%를 차지했으며, 유통 부문에서는 국영 상점이 90.3%, 집체 상점이 9.5%를 차지했다. 이렇듯 견고한 공유제와 계획경제가 결합하면 소비 역시 어느 정도 계획화되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그 결과가 바로 ‘증표 소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폐의 기능을 대체한 증표는 “필요한 욕망의 이중적인 동시 발생(double coincidence of wants)1의 필요를 줄일 효율적 수단”이라는 화폐의 기능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소비에 특정 증표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중국의 계획경제가 이러한 증표 발행을 통해 소비를 가능케 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자본으로도 쓰일 수 있는 화폐의 발행이나 유통 없이 소비를 가능케 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나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증표를 사용하면 생산량이 열악할 지라도 증표 발행량으로 소비를 생산량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증표는 사회주의 중국 건설 초기에 소비재 생산 대신 중공업으로의 자원 투입을 집중시키기 위해 고안된 유사 화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계획경제의 보조 수단이기는 하지만, 조악한 계획경제의 조악한 보조 수단이었다. 이러한 증표 소비는 – 그러할 생산물의 잉여가 많지도 않았겠지만 – “한계효용의 법칙”과는 무관하게 필수품 수요에 대한 단순한 양적 매칭이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얼핏 자원배분이라는 시장의 기능 없이도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매칭될 것 같지만, 다시 증표는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 하는 자원배분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딜레마는 관료와의 유착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도 이러한 증표 소비의 영역은 존재한다. 정부가 특정 소비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바우처(voucher), 기업이 자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상품권, 특정 지자체에서 지역사회의 경제를 독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지역 화폐 등 다양한 증표가 존재한다. 소비 행태가 고도화되는 사회일지라도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렇게 증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증표의 기능을 하는 소비에 대한 자격증 발급은 특히 주택과 같은 생애소비재적 성격을 가진 소비재에서는 특히 적용 가능한2, 또는 사안에 따라서 정책적으로 적극 고려해야 할 보조수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에 빠진 노동자라도 빚은 갚아야 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고용주에게 제공하는) 노동생산성이 계속 증가해온 이래 1970년대 이후의 역사상 가장 높은 이윤을 향유했다. (고용주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임금은 그렇지 못했다. 은행에 쌓인 증가일로의 이윤은 대부분 소비자 대출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소비자 신용의 분출은 고전적인 자본주의 모순을 이연시켰다. 그것은 급속히 확대되었을 때 나빠졌을 수도 있는 소비자 수요를 지탱해주었다. 자본가는 지구화된 노동력 덕분에 그들의 월급명세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정체되어온 실질임금에 기반을 둔 점증해온 소비자 부채의 25년은 예상할 수 있던 한계에 도달했다. 노동자의 소득이 부풀어 오른 채무를 감당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을 때, 그들의 파산은 – 소비자 부채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의 파산과 함께 – 2008년의 붕괴에 일조했다.[Capitalism – Not China – Is to Blame for the Current Global Economic Decline]

2008년의 금융위기가 단기적으로 미국의 부동산 시장의 거품뿐만 아니라 중기적으로 1970년대 이후 증가일로에 있었던 소비자 신용이 그 한계에 도달하여 유발되었다는 설명을 인용해보았다. 이글의 서론에도 언급하듯이 자본주의에는 다양한 형태가 현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자본주의 형태의 현재시점에서의 공통점은 인용한 부분의 설명처럼 소비의 상당부분이 노동자이기도 한 소비자의 부채를 통해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특성은 확실히 이전 세기 초반의 자본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특성이다.

이러한, 소득과 소비의 불일치를 소비자 신용으로 채워온 자본주의 형태의 선두주자에서 한국을 빼놓을 수 없다. 예로 한국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국가 규모의 거대한 소비자 신용을 통해 집단적으로 소비해온 소비자 신용 선진국이다. 이름도 걸맞게 “주택담보 집단대출”이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되어온 아파트 개발 사업은 전형적으로 개발업자가 “부동산PF”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아파트를 짓고, 이를 사들일 소비자는 자기 돈 일부에 “주택담보 집단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아파트를 사는 과정을 밟아왔다.

그래서 작년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민간소비 부진의 원인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나열한 여러 원인 중 첫 번째가 바로 “가계부채”다. 보고서는 최근의 민간소비 부진이 “경기적 요인으로 보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고 지적하며, “가계부채가 임계점에 도달”하였다고 단언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그 절대적 규모도 규모거니와 원리금 상환능력이 중요한데, 우리의 가계부문의 원리금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2년 말 163.8%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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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Austria shipwreck” by Unknownhcandersen-homepage.d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Commons.

한편 정부는 지난 12월 16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성과를 구체화”하고자 할 목적으로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았다. 이 발표에서 제시한 가계부채에 관한 정책방향은 “주담대 분할상환 관행 정착”과 “집단대출의 건전성 관리”다. 즉, 만기 일시상환 위주의 대출을 분할상환으로 유도하고 집단대출이 실수요자 위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인데, 이 정도면 근본적인 부채대책이라기보다는 미세조정에 가깝다. 이는 전경련조차 “임계점”이라고 규정한 심각한 가계부채의 근본대책이라 보기에 미흡하다.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실질적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인 가처분소득을 늘릴 수 있는 대책으로는 “정규직 전환 및 근로자 임금증가액에 추가 세액공제 부여” 등이 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이미 작년에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를 도입한 바 있고, 그 덕인지 2015년 국내총소득 증가율도 전년기 동기 대비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였다.2 하지만 여전히 중기적으로 세금·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 부문의 부담 증가3, 전월세 가격의 폭등4은 가처분소득을 감소시키고 있어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보다 근본적으로 부채에 허덕이는 가계에 직격탄을 날리는 상황은 부족한 소득마저 빼앗아가는 실업이다. 인용문에서도 지적하듯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지구화된 노동력은 노동자가 언제라도 직업을 잃을 수 있는 전제를 제공하고 있는 한편으로, 국내 경기의 장기침체 조짐에 따른 상시적 인력감축은 노동자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신입사원마저 “희망퇴직”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기업의 인력감축정부의 일반해고 요건 완화 시도는 체제적 위기의 풍파에 시달리는 배에서 노동자들을 우선 바다에 던져 넣겠다는 것이다.

물론 바다에 빠진 노동자라도 빚은 갚아야 한다.

대한민국 가계소비의 큰 멍에, 교육비

총가계지출액에서 식료품비와 같은 필수재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엥겔계수”라 하고,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엔젤계수”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소득수준에 따른 엥겔계수와 엔젤계수는 어떠할까? 최근 산업연구원이 ‘우리나라 가구의 소비지출 행태 분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분석결과는 익히 짐작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13년 소득수준별 엥겔계수와 엔젤계수 비교(명목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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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Meta 자료 재구성한 자료를 산업연구원 보고서에서 재인용
주 : 2인 가구 이상

즉, 우리나라의 가구는 소득이 적을수록 식료품에 더 많이 소비하고 교육에 더 적게 소비하는 반면, 소득이 많을수록 식료품에 더 적게 소비하고 교육에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성향은 사실 예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문제는 2013년 현재시점에서 과거와 비교해서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엔젤계수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엔젤계수는 낮아졌다.

2003년 소득수준별 엥겔계수와 엔젤계수 비교(명목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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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Meta 자료 재구성한 자료를 산업연구원 보고서에서 재인용
주 : 2인 가구 이상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가계의 최종 소비지출 대비 교육비 지출비중이 6.7%로 미국(2.4%). 영국(1.5%), 독일(1.0%)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 교육비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들의 학원비다. 2012년 기준 교육비 지출액 대비 학생학원 교육비 비중은 56.2%다. 공교육이 싼 것도 아니다. 교육비 중 우리나라의 가계부담은 21.5%로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 공교육비 중 민감부담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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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3.

그렇다면 가계는 교육비 지출을 얼마나 부담스러워 할까? 통계청이 2013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설문응답자의 73%(매우 부담 31.6%, 약간 부담 41.4%)가 교육비 지출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했다. 세대별 교육비 부담을 어떨까? 현대경제연구원의 한 보고서를 보면 엔젤계수로는 40대(17.8%), 50대(17.2%)가 가장 교육비 부담이 크다. 가장 소비활동이 왕성할 40~50대가 교육비에 눌려 살아가고 있다.

이러다보니 빚이 늘고 있다. 203년 우리나라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는 28.4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받아 교육비로 쓰는 것이다. 지출 항목 상으로 교육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부동산은 교육관련 변수가 매우 큰 지출항목이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강남의 한 학군 유명한 아파트의 월세는 1천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소득별 세대별로 차이는 나지만 자녀교육 올인의 나라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소득별로 교육비 지출 비중이 다르고 이런 경향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교육 불평등에 따른 부의 대물림 현상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또한 소득수준을 가리지 않고 공교육, 사교육에 대한 지출이 여타 나라에 비해 높다. 가계 대부분은 이러한 지출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고 가장 소비가 왕성한 40~50대에서 교육비 지출비중이 높다. 비용의 적지 않은 부분은 빚을 얻고 있다.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며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꺼내든 카드가 LTV, DTI 완화 카드다. 이상에서 알아본 가계의 상황을 보면 그 정책이 어떤 식으로 작용할 것인가를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다. 사람들은 늘어난 LTV 여유분만큼 돈을 빌릴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교육비 등 생활자금을 쓸 것이다. 또는 전세대출로 좋은 학군에 전세 얻는 데 쓸 것이다. 집값이 오를지도 의문이고 올라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소비는 무의식으로 하고 의식으로 합리화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에 1,110달러를 휴대전화 서비스에 지불했던 미국인들은 2011년 1,226달러를 지불했다. 같은 시기 이들은 식료품에서는 48달러, 의료비는 141달러, 오락비는 126달러 정도 지출을 줄였다. 이 덕분에 미국의 이동통신사들의 매출은 2007년 220억 달러에서 2011년 590억 달러로 대폭 증가하였다.

튜어스 가족의 스마트폰은 무제한 데이터 요금인데, 이는 그녀가 아무리 오래 웹을 서핑 하더라도 같은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자신의 폰으로 거의 매일 “Covert Affairs”나 “Grey’s Anatomy”와 같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튜어스 씨는 이제 3년 된 스마트폰들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존은 이번 여름에 고객들에게 지원금으로 전화기를 업그레이드하길 원할 경우 무제한 데이터 요금을 포기해야 한다고 고지했다.

튜어스 씨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새로운 첨단 전화기를 제 값을 다 주고 사기 위해 1천 달러 이상을 함께 지불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비디오 감상 버릇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지도 모르는 버라이존의 단계별 데이터 요금제를 받아들여야 할지 셈하고 있다.[Cellphones Are Eating the Family Budget]

2007년 아이폰이 처음 등장한 이후 많은 미국인들은 – 물론 많은 한국인들도 – 가족마다 한 대씩 휴대전화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 휴대전화는 단순한 전화기능을 넘어선 복합기능의 기기였기 때문에 인용문의 튜어스 씨와 같은 소비패턴이 일반화되었다. 전화기로 게임을 하고, 트위터를 하고, 영화를 보고. 아~ 그리고 전화통화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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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berry 8900 ColorIsOff” by LP-mn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블랙베리 스마트폰

유선전화기 하나를 집에 놓고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쓰던 – 그래서 가족 몰래 사귀는 연인들을 애타게 했던 – 소비 패턴은 휴대전화가 등장한 이후 급속하게 바뀌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는 더욱 다양한 소비 패턴이 일상화되었다. 애플과 같은 인기 있는 하드웨어 회사는 주기적으로 기계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소비욕구를 자극시킨다.

과연 휴대전화 서비스가 다른 지출을 줄이고서라도 즐길만한 쾌락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일까? WSJ의 설문에 따르면 현재 대다수(66.8%)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그간 지출을 늘려온 것을 보면, 우리의 소비가 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EBS에서 방영한 자본주의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소비는 무의식으로 하고 의식으로 합리화 한다”라는 멘트가 나왔다는데 어쩌면 미국인의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그러한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이동통신사들이 너무나 요금제를 복잡하고 교묘하게 해놓아서 자신들이 뭘 얼마나 소비하는지를 모를 수도 있고.

무상급식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두어 가지 문제

1끼당 2457원. 오세훈 서울시장이 구국의 결단이라도 되는 듯 반대하는 아이들 밥값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무상급식비 지원단가 및 집행기준을 보면, 무상급식 지원단가는 식품비 1892원, 우유값 330원, 관리·인건비 235원을 더한 2457원이다.[무상급식 반대하는 시장님, 세금으로 13만7720원짜리 식사]

지난번 대선불출마를 선언했던 오세훈 시장이 오늘 급기야 서울시 무상급식 안을 가지고 열릴 주민투표의 투표율이 정족수인 33.3%에 미치지 못하거나 이를 넘고도 질 경우, 시장직을 내놓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는 등 온갖 추접한 짓은 다한 기자회견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의 정치생명의 사활을 건 무상급식의 단가가 1끼 당 2천 원대로 오 시장의 업무추진 과정에서의 밥값과 비교하면 형편없이 낮은 금액이라는 비판기사다.

개인적으로는 기사의 성격이 다분히 감정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인용한 사실관계가 정확하다면 무상급식의 질(質)이 걱정될 정도로 졸속 편성한 예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능력껏 노력하여 값싸면서도 좋은 먹거리를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회사 구내식당에서 4천원이 넘는 밥을 사먹어도 영 마뜩찮은 와중에 2천 원대의 식사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고 맛있는 식사가 될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잘 알다시피 현재 각종 먹거리의 가격은 전 세계적으로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점점 잦아지는 자연재해로 인한 가격폭등, 먹거리의 선물거래 등 증권화 과정에서의 가격의 변동폭 증가, 중국과 인도와 같은 신흥 개발국의 수요증가로 인한 공급부족, 기타 다양한 요인들이 먹거리 가격을 내리기보다는 올리는 추세다. 최근 우유를 둘러싼 축산농가와 업계의 갈등역시 주요한 인상요인으로 축산농가에게는 정당한 요구일지 모르나 결국 원가상승요인이 되었다.

또 하나, 이른바 “친환경”의 이슈가 있는데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환경친화적이고 안전한 음식을 먹여야 한다는 당위성은 가격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관철시켜야 할 과제다. 그런데 그런 과제가 앞으로도 계속 관철하는 것이 가능하냐 하는 이슈가 있다. 먹거리 유통의 세계화로 인해 환경이슈, 식품안전이슈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WTO체제의 준수, FTA 체결 등으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지역생산을 통한 먹거리 공급이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요컨대 무상급식은 싸고 – 최소한 안정적이고 – 안전한 음식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느냐 하는 실험이다. 즉, 무상급식은 일종의 “소비의 사회화” 이슈인데, 이 이슈의 관철이 “생산이 무정부화 내지는 시장화” 된 시스템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운영 실태를 보면 생산지 직거래 등 유통단계 축소 등을 통한 원가절감 등으로 대안을 찾고는 있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결국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 하나로 현재 대안경제의 실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예를 들어보자. 이 나라는 현재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전면적인 국유화보다는 시장을 인정하는 동시에 단계적인 국유화/사회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에게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하게 하여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는데, 이 중 “공공식당” 제도가 있다. 민간식당보다 최고 70%가 싸다는 이 식당의 경쟁력은 독립적인 식량주권을 확보한 공공생산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어릴 적, 섬뜩한 노동착취의 장소로 여기던 이른바 ‘국영집단농장’이 그 원조일 텐데, 어쨌든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PDVAL 등 국영업체에서 제공하는 이러한 먹거리를 통해 가격도 낮췄고 각종 영양수치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고 한다. 원칙적인 흐름으로 봐서는 “소비의 사회화”가 “생산 및 투자의 사회화”를 통해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정확한 실태야 좀 더 살펴봐야 할 일이겠지만 생산과 소비형태의 모순은 제거되었다는 점에선 인상적 실험이다.

금융견실주의(金融堅實主義 ; financial prudence)

소비(消費)는 – 분명한 것을 반복하자면 – 경제활동의 유일의 귀착점(歸着點)이며 목적(目的)이라 할 수 있다. 고용(雇用)의 기회는 필연적으로 총수요(總需要)의 크기에 의해 제한된다. 총수요란 오직 현재의 소비(消費)로부터, 또는 장래의 소비를 위한 현재의 준비(準備)로부터 유발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미리 유리하게 대비할 수 있는 소비를 한없이 뒤로 미루어 둘 수는 없다. 한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장래의 소비를 위하여 금융적 방편(方便)으로 대비할 수는 없으며, 오직 경상적인 현물(現物)의 산출(産出)을 통하여 대비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사회조직과 기업조직이 장래를 위한 금융적 준비를 장래를 위한 실물적 준비로부터 분리하고 있으며, 따라서 전자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후자를 수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것이 사실인 이상 금융견실주의(金融堅實主義)는, 허다한 예가 증명하듯이, 총수요(總需要)를 감소시키고 따라서 복지(福祉)를 저해할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리 대비한 소비가 크면 클수록, 미리 대비하기 위한 무엇인가를 또 발견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수요(需要)의 원천으로서 우리가 현재의 소비(消費)에 의존하는 정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소득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소득과 소비와의 차액도 늘어난다. 따라서 어떤 진기한 방편이 없는 이상, 우리가 후에 보는 바에 같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없다. 다만 우리의 소비가 우리의 소득에 미달하는 액수가 (오늘 생산(生産)하는 것이 채산에 맞는) 장래소비(將來消費)를 위한 물적(物的) 준비와 동등한 액수를 초과하지 않도록, 충분히 많은 실업(失業)이 유지됨으로써 우리를 빈곤(貧困)에 얽매어 두는 길이 있을 뿐이다.[John Maynard Keynes,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조순譯, 비봉출판사(2007), pp 122~123]

케인즈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라 생각되어 소개한다. 그는 “자본은 소비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며 “소비성향의 약화는 모두 소비에 대한 수요뿐 아니라 자본에 대한 수요도 동시에 약화”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용한 문단은 그 중에서도 소비성향의 약화의 원인으로 “금융견실주의(金融堅實主義 ; financial prudence)”를 지목하고 있다. 얼핏 익숙하지 않은 용어인데 다음과 같은 케인즈의 설명에서 그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다.

만약 이것의 효과가 ‘견실(堅實) 금융주의(financial prudence)’에 의해, 즉 설비가 실제로 소모되는 것보다도 더 빨리 원가를 ‘상각(償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의해 악화된다면, 그 누적적인 결과는 사실 매우 심각하게 될 수 있다.[같은 책, p118]

즉 한 기업주가 설비의 감가상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보수적으로 그 소모분보다 더욱 많은 금액을 상각하고, 이것이 전 사회적으로 누적될 경우, 그것은 소비수요 약화에 이은 자본수요의 약화로 귀결된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예를 들면 현재의 금융위기에서 은행들이 BIS 비율 확충을 위해 노력하게 되면 결국 대출여력이 줄어들어 가계소비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수적 관점의 폐해가 [기업의 금융견실주의적 비용증가 -> 소득감소 -> 소비수요/저축 감소 -> 자본수요 감소] 순환과정에서는 타당한 논리이지만 케인즈가 별로 주목하지 않는 소비원천에 대해 살펴보면 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그는 무의식적으로 소득을 소비의 거의 유일한 원천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주요 선진국들의 노동계급은 실질소득이 크게 증가하는 한편으로, 그에 상응하게 빚을 지게 되었다. 안락한 교외주택, 큰 배기량의 자동차, 각종 가전제품이 중산층의 풍경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들은 마르크스나 심지어 케인즈도 인지할 수 없었던, 단순한 임금재 이상의 소비력을 과시하게 되었고, 이중 상당부분은 빚으로 채워온 것이다.

즉 소비적 측면에서의 금융의 기능은 케인즈의 염려와 반대로 ‘금융방임주의’적인 순환과정이 형성되어왔고, 그것의 하이라이트는 1980년대부터 급속히 성장한 주택담보대출, 이른바 모기지론이라 할 수 있다. 모기지론 증권화를 통한 급속한 신용확대과정은 이후 카드론, 오토론, 스튜던트론에서도 그대로 복사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금융위기, 나아가 경제위기를 불러온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케인즈는 “은행권을 폐광에 묻었다가 다시 파내게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이것은 결국 총소비가 총소득을 초과하여 지속적으로 왜곡된 자본수요를 불러오는 경제체제에서는 통하지 않을 말인 것 같다. 요컨대 현재의 양적완화, 금리인하, 주택담보대출 비율 완화 등의 경제해법들은 금융견실주의적 자세를 견지하지 않아 붕괴된 소비수요를, 자본부문에서의 금융견실주의의 폐기로 만회해보자는 시도인 셈이다.

링크 몇 개, 그리고 단상

Worst job losses since March 2003 predicted
미국의 고용시장, 급격한 악화
‘세계의 공장’ 中, 제조업 3년래 가장 위축
자본주의의 공장 중국의 제조업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은 세계 실물경제의 위축의 신호?
멈춰선 배…해운업계 비상
벌크선 운임지수 13분의1로 추락
인도, 0.5%P 금리인하 단행..’성장 우선’
일명 친디아로 불리던 또 하나의 신흥강국 인도의 금리인하
Bank of Japan cuts rates for first time in 7 years
7년 만에 금리를 내린 일본
Argentina’s credit rating cut further as turmoil spreads
아르헨티나의 점증되는 위기
Hedge funds try to stop investors from leaving
헤지펀드에게 있어 올해는 치욕의 해. 환매공포에 시달리는 헤지펀드.
More on Defense Spending
이 와중에도 미국의 국방관련 소비는 계속 늘고 있다는 ‘군사적 케인즈 주의’에 관한 글

전 세계적인 금리인하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통화스왑 등으로 일단 금융시장은 최악의 교란은 피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환율은 급격히 안정되었고 주식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였다. 강만수는 오랜만에 웃었다.

문제는 역시 실물경제다. 금융시장의 각종상품의 기초자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은 계속하여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고용시장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소비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각적으로 중국의 제조업이 위축되고 있다. 우리의 제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앞서의 글에서 제프리 삭스 교수는 미국의 소비감퇴를 다른 신흥국가들이 상쇄시켜주면 된다고 이야기했으나 내가 보기에는 희망사항 일뿐이다. 중국과 인도의 소비자들이 미국의 소비자들처럼 큰 배기량의 차를 몰고, 아침저녁으로 고기를 먹고, 모기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세계경제가 회복될까? 그것은 지구자원의 급속한 낭비를 초래할 뿐이다.

생산과 소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