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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판 쥐구멍

집권 초기 이명박 정부는 국가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감세로 인한 재정 부족분을 예산 절감을 통해 보전하겠다는 작은 정부론의 정책 기조에 따른 것이었다. [중략]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집권 1년이 지나면서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중략] 이명박 정부는 2009년 3월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중략]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항목 중 긴박한 사업 추진이 요구되는 ‘재해복구 지원’을 ‘6. 재해예방·복구지원’으로 수정했다. 재해예방이 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말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중략] 결국 4대강 사업 예산 22.2조 원 중 핵심 사업인 준설, 보 설치 등을 포함해 총 89%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제외되었다.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오건호 지음, 레디앙, 2011년, pp169~171]

1999년 도입된 예비타당성 조사는 한국의 국가 재정 체계에 있어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받는 제도다. 국가재정법 및 관련시행령은 예비타당성 조사의 대상사업, 사업규모, 제외사업 등 구체적 사항을 담겨 있어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오건호 씨에 따르면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사업 추진 부서가 자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벌였다. 1994~1998년 동안 진행된 자체 타당성 조사 32건 중 타당성이 없다고 판명된 것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반면 제도가 도입된 이후인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총 378건의 조사 대상 사업 중 타당성이 있다고 판명된 사업은 216건, 사업수의 57%에 불과했다. 제도의 위력이 검증되는 수치다.

여러 근본적 결함에도 이렇듯 재정건전성에 기여했던 제도를 무력화시킨 혐의가 이명박에게 있다. 애초 보수가 의례 그렇듯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는 법상 500억 원 이상에만 실시하는 예비 타당성 조사의 대상 범위를 400억~500억 원 규모의 사업에도 ‘간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운하”라는 거대한 토건사업을 기획하고 있던 이명박 정부는 이런 제도강화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호기롭게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던 당초 계획이 무산되고부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무리수는 인용문과 이 블로그에서 적은 몇몇 글에서 보는 바와 같다.

이런 사정은 국토부 내부 문건에서도 확인된다. 가 2008년 3월에 보도한 내부 문건에서 국토부는 “민간사업자의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 된다”, “관광단지 개발 같은 부대사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반도대운하는 수질악화나 환경파괴 우려 외에도 애초부터 막대한 재정투입이나 주변 개발권 등 이권을 보장해주지 않고서는 경제성도 없어 추진이 불가능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의지 속에 대운하는 인수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속전속결 추진과 임기 내 완공까지 선언한 것이다.[한반도 대운하, 어떻게 ‘4대강 사업’으로 둔갑했나]

이명박 정부는 “정상적” 보수 정부일지라도 어떻게 편법으로 사익을 취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입버릇처럼 외쳐대는 “작은 정부”와 “재정 건전화”는 사익 앞에서는 금세 “큰 정부”와 “재정낭비”로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는 게다가 수자원공사라는 우량 공기업을 일종의 우회적인 자금동원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너무 큰 정부”로서의 추태까지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다 정부재정이 악화되기라도 하면 우익 이론가들은 이를 정부무용(無用)론으로 써먹기도 한다. 사실 이점이 진보주의자들의 정부역할론의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제도는 훌륭해도 정부부문에는 얼마든지 이명박이 도망갈 쥐구멍이 있는 법이라서 말이다.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채 탈출 계획에 대하여

우량공기업 밀어서 잠금 해제”라는 글에서 설명했다시피 MB 정부는 출범 전부터 이른바 민자 유치를 통한 “대운하” 사업추진을 공언했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슬그머니 이름을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정부예산으로 강파기를 강행한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수자원공사를 끌어들여 8조원을 조달하게 만든다. 이를 위해 사업목적을 물류에서 치수(治水)로 바꾸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그 결과 수자원공사는 2013년 말 현재 부채비율 120.6%의 빚더미를 떠안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수자원공사(수공)의 부채 8조원을 상환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800억원을 반영할 것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고 30일 밝혔다. 국토부는 부채 원금 상환을 위한 800억원 외에 부채 이자를 갚기 위한 3170억원도 추가로 요청했다. 정부는 2009년 9월 수공이 4대강 사업에 8조원을 투자하도록 결정하면서 이자는 전액 국고에서 지원하고 원금은 개발수익으로 회수하기로 했다. [‘4대강 빚 세금으로 갚는다?’ 논란, 이자 수천억에 원금 8조원까지.., 이데일리, 2014년 7월 1일]

정부는 당시 수공의 투자에 대해 이자는 지원하되 원금은 수익사업으로 갚아나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자를 지원해주는 것도 마땅치 않지만 어쨌든 원금은 수공이 자체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였으니 만큼 그렇게 됐어야 했다. 하지만 인용기사에서 보듯 국토부는 그런 계획을 무시한 채 이제는 원금까지 세금으로 갚아달라고 기재부에 요청한 상황이다. 정부가 수자원공사를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에 수공을 사업시행자로까지 넣어줘 빚을 갚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친수구역 사업이 시행될 경우 공사 매출의 확대 및 투자금 회수를 통한 4 대강 사업비의 회수가 일부 가능할 수 있지만, 개발사업의 특성상 실제 투자비 회수에는 장기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최근 건설경기 위축으로 공사의 개발사업에 따르는 리스크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나, 공사의 단지분양사업은 국가정책사업으로서 동사의 최대주주인 정부의 높은 사업 및 재무적 지원가능성이 사업 리스크를 완화시켜주 고 있다.[한국수자원공사 기업평가 보고서, 한국기업평가, 2014년 3월 19일]

공기업에 대한 기업평가 보고서의 특성상 그 뉘앙스가 온순한 편이지만, 이 서술은 수공이 친수구역 사업으로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우울하며, 다만 정부가 빚을 갚아줄 가능성만이 리스크를 완화시켜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수공이 부산시와 함께 시행할 에코델타시티 사업의 경우 예정사업비가 5조4,386억원 규모의 신도시 개발 사업이다. 수공이 강을 파느라 진 빚에 대한 반대급부로 정부에게 받은 특혜(?)라는 것이 또 하나의 리스크 높은 부동산 개발 사업인 것이다.

수공은 2009년 6월 4대강 정비 사업의 참여를 결정했다. 그해 말 수공의 부채는 불과 2조3,206억 원이었다. 그런 우량공기업이 리스크 높은 부동산 사업의 시행권을 대가로 받으며 4대강에 돈을 쏟아 부었고, 그 결과 수공의 2012년 말 부채는 11조2,410억 원으로 늘었다. 건설산업연구원은 당시 경제적 효과가 38조4천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이 중에서 수공이 가져갈 몫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한편 이런 상황에 대한 국토부의 해명은 아래와 같다.

정부는 수공의 4대강 투자(8조원)를 결정하면서, 이자는 전액 국고지원하고 원금은 개발수익으로 회수하되 부족분은 사업종료 시점에서 수공의 재무상태 등을 감안, 재정지원의 규모․시기․방법 등을 구체화하기로 함(국가정책조정회의, ‘09.9) 이에 따라, 정부는 4대강 사업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금년에 정부 재정상황 및 수공 재무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인 수준에서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임[‘수공 4대강 투자비 정부지원 검토’ 보도 관련, 국토교통부, 2014년 6월 30일]

그러니까 국토부의 이야기는 “사업종료 시점에서… 재정지원의 규모․시기․방법 등을 구체화하기로” 하였고 이제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도 갚아줄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원칙은 “이자 국고지원, 원금 개발수익”이었지만 단서조항으로 달아놓은 문구를 들어 자신들의 계획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대운하”로 시작하여 “4대강 살리기”로 둔갑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한 우량공기업을 부실화시킨 상황에 대한 대안치고는 그리 명쾌한 대안 같지는 않다.

우량공기업 밀어서 잠금해제

현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이미 출범 전 선거운동을 하면서부터 민간투자로 시행하여 정부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물론 그 주장을 할 당시 이 사업은 좀 다른 이름이었다.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 사업”.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대운하 사업이 “민간자본을 유치해 사업하니 국가 예산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하였다.

대운하 사업은 “한반도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사업”으로 포장되었다. 한편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물 관리와 이용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면서 어느새 “대운하”가 “4대강”으로 이름을 바꾸고, “민간자본으로 추진할 만큼 사업성이 있는지, 정부 지원은 필요한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가 예산과 상관없다던 사업이 상관있게 된 시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소위 “대운하 국책사업단”을 운영하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2008년 3월 해체한다. 하지만 그해 4월 중순 슬그머니 사업단을 재가동하는데, 이 사업단이 위치한 곳이 바로 정부 과천청사 인근 수자원공사 빌딩이었다. 이때쯤이면 사업의 목적은 물류에서 치수(治水) 쪽으로 주안점이 옮겨진다. 한편 청와대는 4대강 정비사업과 대운하는 별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요컨대 “대운하 사업”은 물류를 목적으로 민간자본에 의해 추진될 사업이고, “4대강 정비사업”은 치수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어서 별개가 되는 것인데, 어쨌든 강바닥을 파겠다는 것이 정부의 추진의지인 것이다. 이즈음에서 한 국책기관의 연구원이 “한반도 물길 잇기 및 4대강 정비 계획의 실체는 운하 계획”이라는 양심고백을 한다. 양심고백할 것도 없이 빤한 사안을 양심고백한 것이다.

어쨌든 강바닥을 팔 요량이던 정부에게는 이제 자금조달의 문제가 놓여 있었다. 물류를 위한 사업이라면 민간투자를 활용하면 될 텐데 치수라면 그것은 다른 이슈가 된다. 치수를 위해 민간이 돈을 대는 것은 명분이나 수익창출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수자원공사가 뒷돈을 대는 명분이 생겼다. 수자원공사는 “수자원을 관리하는 곳”이고 4대강 정비도 수자원 관리 중 하나니까 말이다.

국토부가 2008년 말 대통령에게 보고한 2009년 업무추진계획에는, 이른바 “한국형 뉴딜 10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포장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등장한다. 결국 수자원공사는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다 실패한 경인운하와 “4대강 살리기”에 동원된다. 건설산업연구원은 “모두 35만6천여 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38조4천억여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이 사업을 찬양했다.

최근 국정감사에 따르면 수자원공사의 부채비율은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이후 부채 증가율은 541%로 작년의 경우 부채가 약 12조5000억을 기록”했다. 이런 부실화의 원인은 경인운하와 4대강 살리기 이외에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친수구역조성사업”을 통해 회수한다는, 장부가액 8조원에 달하는 투자액의 회수가능성도 희박하다.


수자원공사 차입금 증가추이(출처 : 수자원공사 홈페이지)
 

그렇다면 왜 정부는 민간투자가 어렵게 된 사업에 정부가 직접 사업비 전액을 대지 않고 수자원공사를 끌어들인 것인가? 이는 정부재정투입이 적게 보이게 하려는 꼼수를 부리기 위해서다. 즉, 당초 민간투자를 통해 정부부담이 없게 하겠다는 호언장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긴 하였지만 공기업을 통한 일종의 장부외조달(off-balance)을 통해 재정부담이 최소화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위장술이다.

즉, 4대강 정비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이나 부실화된 인천공항철도를 정부가 직접 매입하게 되면 정부의 대차대조표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게 된다. 그러므로 형식상 정부의 재정악화와는 크게 관계없는 공기업들이 이러한 일들을 거듬으로써 현재의 재정악화 없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사기업이 앞서 말한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통해 사업의 재무제표를 본사의 재무제표와 절연시키는 것처럼 말이다.[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공기업의 역할]

정부의 장부외조달(off-balance)의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민간투자사업이다. 이슈가 되고 있는 지하철9호선과 같은 도시 기반시설이 민간투자사업으로 지어지고 있다. 하지만 “4대강 살리기”는 앞서 본바와 같이 물류 등 투자비 회수방안이 거의 없는 순수한 공공서비스다. 비록 정부가 “친수구역조성사업”이란 미끼를 던졌지만, 이런 허접한 미끼를 물 투자자는 없다. 정부의 봉 공기업을 빼고는 말이다.1

수자원공사의 현재 상황은 특정정권의 무모한 사업의지가 어떻게 한 우량공기업을 말아먹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아주 생생한 사례가 될 것이다. LH공사처럼 명목상으로 임대주택 등 공공적 성격의 사업을 하다 부실화된 것도 아니고, 코레일처럼 KTX 등 첨단시설을 도입하다가 부실화된 것도 아니고, 정권의 삽질의지 실현을 위한 장부외조달(off-balance) 꼼수로 인해 강바닥을 파다가 부실화된 것이다.

대규모 국책사업의 이러한 리스크는 비단 정권의 민주성이나 사업방식에 따라 좌우되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독재정권이 더 독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고, 민간투자일 경우 좀 더 비공익적인 사업이 추진되기도 하지만, 대규모 사업 추진의 비합리성은 어찌 보면 대량생산사회에서 늘 존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사업추진의 합리성을 담보할 시스템은 우리 문명사회가 풀어야할 주요한 숙제이기도 하다.

수자원 공사, 한때 좋은 공기업이고 직장이었는데… 이제 이명박이 부채의 늪으로 밀어서 잠긴 철밥통을 해제해버렸다. 누구도 그렇게 단기간에 하지 못했을 일을…

글 두개

썩은 노조 간부와 “민족 주체성”에 대한 주문을 외우는 분위기로부터 벗어난, 어차피 이 나라에서 아무 미래가 없는 대다수의 10대, 20대들에게 “쿨하게” 어필할 줄 알면서 노동계급 사이에서도 기반을 구축하는, 이런 정당이 이 나라에서 그다운 노릇을 하게 되면, “대통령 퇴진”이란 구호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얻을 거에요. 그런데 “보수주의자 A”대신에 ‘보수주의자 B”가 올 경우에는, 북한을 자극시키고 미네르바를 감옥에 보내는 미친 짓을 그만두더라도 거기부터 거기까지일 걸요… 여전히 희망이 없는 사회일 것입니다.
[박노자, MB만 없어지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까?]

현 정부가 출범 초기 세웠던 계획 중 여러 가지가 국민의 반대나 경제 여건 등으로 뒤로 밀리거나 후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유독 ‘대운하’와 ‘금산분리 완화’만큼은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대운하는 국민의 반대 때문에 ‘4대강 정비’라고 이름을 바꿔 추진하고 있지만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서는 관심도 떨어지고 반대 목소리도 크지 않아 일사천리로 밀고 나가는 것 같다. 걱.정.된.다.
[펄, 윤증현, 이동걸, 그리고 금산분리 완화]

박정희의 ‘하면 된다’ 정신

이어 朴대통령은 용지확보를 1주일내에 끝내도록 지시하였다. 적어도 한달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경기도지사와 서울특별시장의 얼굴을 보면서 朴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용지확보는 빠를수록 좋아. 시간을 끌면 땅값이 춤을 출 것 아니오. 1주일 이내에 끝내도록 해 보시오. 군수, 면장, 기타 관계공무원을 총동원하여 발 벗고 나서 함께 뛰면 되겠지. 당장 땅을 사라는 것은 아니고 우선 지주와 교섭해서 기공 승낙서를 처리하면 될 문제지. 기공 승낙서만 있으면 공사를 착수할 수 있는 것 아니오.”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는 朴대통령의 지시대로 완수하였다.[김정렴, 한국경제정책30년사, p239, 중앙일보사]

박정희 前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놓겠다며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에게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땅을 매수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회의 장면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씨가 묘사한 글이다. 참…. Mission Impossible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이라면

1) 1주일은커녕 1달 안에도 땅을 살 수 없을 것이고
2) 기공 승낙서라는 정체불명의 괴문서를 근거로 착공할 수 없을 것이고
3)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가 – 특히 경기도지사가 – 저 지시(혹은 부탁)를 무시할 것이다

한마디로 저 모습은 정부가 초강력 권위주의로 무장하고 전 사회의 자원이 총동원체제를 갖추어 지도자의 지시에 일절 반대하지 않고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무소불위의 개발독재 상황을 묘사한 글이다. 이러한 상황은 박정희의 통치기간 동안 일상적인 모습이었을 것이고 이는 ‘하면 된다’ 정신으로 미화되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오늘 날에도 이런 ‘하면 된다’ 정신으로 대형 토목공사를 밀어붙이려 한 사례가 하나 있는데 바로 지금은 수면 아래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는 대운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의 임기 동안에 대운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저런 ‘하면 된다’ 정신이 있어야만 – 그것도 모든 사회가 총화 단결하여 – 가능한 사업일 것이다. Mission Impossible 2다. 미완성될 확률이 높지만 말이다.

롯데쇼핑센터의 이름에 관한 사연, 그리고

손정목 씨는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역임하였고 후에 서울시립대 대학원장을 지내신 분으로 우리나라 도시계획사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한 인물이다. 그가 쓴 ‘서울도시계획이야기’는 생생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서울시 도시계획의 역사에 관한 명저라 할만하다.

이 책에는 롯데쇼핑센터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외자유치를 정권 홍보 차원에서 적극 권장하였고 때마침 일본에서 성공한 실업인 신격호 씨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 국내투자를 약속하였다. 그런데 그의 조건은 명동에 백화점을 건립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강북지역의 개발을 억제하던 때라 명동에 도저히 백화점이 들어설 수 없었다. 그런데 관련회의 중 한 공무원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바로 ‘백화점’이라 하지 말고 ‘쇼핑센터’라고 하면 될 것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말장난이지만 아시는 바와 같이 롯데백화점은 롯데쇼핑센터라는 이름으로 명동에 떡하니 서있다. 우기면 되는 것이다.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요즘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며칠 전 경상남도에서 ‘대운하 민자유치팀’을 설치하여 대운하에 관련된 각종 업무를 수행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지역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러자 의회가 ‘대운하’를 떼고 ‘민자유치팀’으로 팀명을 변경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렇게 되었는가보다. 그런데 담당자는 여전히 하는 일은 대운하와 관련된 업무라고 한다. 그저 말장난일 뿐이다.

‘땅을 사랑할 뿐 투기는 아니다’가 메가톤급 말장난이어서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 한 사례인지도 모르겠다.

대운하에 무너져 버린 내 허접한 창작욕

사실은 예전부터 SF소설을 하나 써볼까 하고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강 정한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는 지극히 非SF스러운 스토리였다.

어떤 내용이냐 하면 때는 바야흐로 인류가 우주의 곳곳을 식민지로 점령하여 영토를 넓혀가는 우주개척시대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주선은 이전에 닿지 못하던 곳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우주선이 우주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순간이동이 잘못 하게 되면, 즉 옮겨지는 지점이 기체나 액체가 아닌 고체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 우주선과 엉켜버려 대형 사고를 초래한다는 점. 이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주 통합정부는 우주선의 출발과 도착을 유도할 수 있는 정거장을 설치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워낙 돈이 많이 드는지라 실질적으로 돈줄을 장악하고 있는 초우주적 기업에게 위탁을 한다. 한편 각 행성들은 우주정거장의 유치가 행성경제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에 기업에 노골적으로 로비를 한다. 기업은 그러한 행성의 약점을 이용해서 투자금은 물론이거니와 노골적인 뒷돈까지 챙긴다. 이 와중에 뜻있는 사람들은 우주정거장이 생각만큼 성능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정부의 담당과 기업이 이를 속이고 일을 무모하게 진행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뭐 대충 이렇게까지만 한 2년여를 머릿속에서 궁리하고 천성이 게을러서 꿍쳐놓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에야 조금씩 끼적거리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이거 어디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거 이모 대통령 당선者가 추진한다는 대운하 삘이네…. –;;

해서 갑자기 김이 새버렸다. 어차피 이걸로 돈 벌어 먹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지만 까딱 잘못하다가는 ‘어설픈 현실비판 SF로군’이라는 싸늘한 조소만 가슴에 꽃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쓰나미로 밀려온다. 허무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