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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인의식 없는 주주에 관한 이야기

미국 재무부는 지난 달 씨티그룹에 250억 달러를 투입한 데 이어 이번에 20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하고 그 규모만큼 우선주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중략] 지난 주말 씨티그룹의 종가는 3.77달러였고 [중략] 시가총액은 205억달러수준이다. [중략] 결국 개인이 주식시장에 200억달러를 투자했다면 씨티그룹의 지분을 99% 가까이 다 사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선택은 결국 AIG처럼 국유화하지 않고 기존 경영진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美는 왜 씨티 살리기 도박 택했을까?, 아시아경제, 2008년 11월 24일]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 당시 금융회사들에 자본을 투입한 이유는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레버리지로 자산을 늘려놓는 바람에 자본이 심각하게 부족했고, 부실한 자본비율은 곧 파산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美정부는 (반대급부가 거의 없는) 재정지원 혹은 (반대급부가 배당인) 우선주의 형식으로 금융회사의 자본을 보충하였다.1 주식 중에서도 우선주의 형식으로 출자한 이유는 의사결정권이 없는 주식에 출자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성지인 미국 경제에서의 금칙어인 “국유화”라는 이념적 공세를 피해가려 했기 때문이다.2

물론 재무부의 씨티그룹의 우선주 매입이 “국유화”에 대한 미국정치의 알러지 반응을 피하고자 함이라는 사실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인용문에서 언급하듯 사실 재무부는 이미 AIG를 국유화한 바 있다. 그리고 주택 모기지 채권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담당하고 있는 프레디맥과 패니메도 “후견체제(conservatorship)”라는 요상한 명칭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 회사들을 국유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재무부는 유독 금융위기의 진원지로서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허울 좋은 이름만 남아 있는 씨티그룹은 기를 쓰고 국유화의 길을 피해갔다.

리 삭스가 지하실 체육관에서 나를 발견하였다. 나는 운동을 멈추고 씨티의 완충 자본인 보통주 500억 달러를 추가하는 서명을 하였다. 우리가 국유화를 원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만큼이나, 쓰러지게 좌시하지 않는다는 모습도 중요했다. 우리는 “리먼 상황은 없다”는 의도를 진지하게 입증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민간투자자는 금융시스템의 자본 확충이라는 위험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었고, 우리는 TARP 자금만으로 충분할지 알지 못했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366]

한편 구제금융과 우선주 매입이라는 긴급수혈에도 불구하고 씨티그룹의 정상화 기미는 요원했다. 그래서 마침내 재무부는 자신들의 우선주와 민간투자자의 우선주 500억 달러를 보통주로 전환했다. 재무부가 이런 조치에 나선 것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기준인 단순자기자본비율(tangible common equity)에서는 보통주가 보다 신뢰도 높은 주식이기 때문이다. 가이트너는 그야말로 국유화와 파산이라는 양쪽 낭떠러지에서 외줄을 타고 있는 씨티그룹을 – 아니 주주와 경영진의 이익을 – 지켜주는 수호천사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당시 재무부는 보통주 전환을 통해 36%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씨티그룹의 대주주가 됐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의 대주주인 재무부는 이제 당연히 주주의 권리와 의무에 따라 회사를 정상화하고, 나아가 국가경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조치에 착수했어야 했다. 애초에 구제금융의 명분이 금융시장 정상화였고, 금융회사에 대한 자금투입이 대출로 이어져 시중에 다시 돈이 도는 것이 바로 그 정상화의 첩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대주주이자 규제당국인 재무부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무부는 250억 달러 규모의 정부 보유 우선주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민간 주주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중략] 놀랍게도 재무부는 씨티에 자구책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보통주 전환을 통해 정부가 확보한 씨티 지분은 전체 주식의 3분의 1이 넘었다. 그뿐 아니라 연방예금보험공사에는 씨티그룹의 자회사이며 부보은행인 씨티은행의 영업을 정지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었다.[정면돌파, 실라 베어 지음, 서정아/예금보험공사 옮김, 곽범국 감수,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p302]

실라 베어는 “시장경제에서는 누구나 파산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p341)고 주장하는 시장주의자였다. 그런 실라베어가 보기에 티모시가이트너는 항구적인 구제금융이 가능하게끔 논리를 펴는 재무부 백서를 내는 등 이른바 “구제금융주의자”였다. 그런데 실라베어가 보기에 가이트너의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씨티그룹의 대주주가 되었음에도 주주로서의 마땅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재무부는 구제금융만으로도 국유화할 수도 있었던 회사를 열등한 조건의 우선주로 수혈하고 급기야 대주주가 됐음에도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이다.3

이념적 지형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실라베어는 명백하게 “자본주의자”다. 그는 저서에서 “자본주의자인 나는 정부가 우선주 투자라도 은행을 소유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정면돌파, pp361~362)라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우선주 투입은 기업의 파산할 자유를 박탈한 것이다. 그러면 이 반대편에 서있는 가이트너는 어떤 주의자일까? “구제금융주의자”는 뭔가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는 “사회주의자”다. 소비에트식의 사회주의자는 아니고 “빈자를 위한 자본주의,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라는 당시의 이념적 공세의 맥락에서의 “사회주의자”다.

씨티는 완전히 다른 경우로 오랫동안 통화감독청과 뉴욕연준은행의 ‘최고’ 인가 은행 자리를 유지했다. 국제적인 인지도도 높았다. 따라서 씨티가 부실화된다면 두 규제기관 모두 국내에서만 비난받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가이트너의 멘토이자 영웅인 로버트 루빈이 씨티의 회장으로 있었다는 사실도 웃음거리가 될 터였다. [중략] 씨티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면 정부가 그토록 대대적인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시행했을까 하는 의문이 아직까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정면돌파, p232]

하지만 어떠한 형식으로든 “국유화”라는 타이틀을 피하려 했던 가이트너 역시 그의 회고록과 실라베어의 회고록을 동시에 읽은 내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한 자본주의자다. 다만 가이트너는 “정실(crony) 자본주의자”다. 시장 전체의 이익이나 소비자의 이익이 아닌 일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정부의 돈을 쓰는 관료라면 그를 세금을 낭비했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라 부를 이유가 없다. 그런 정의라면 개발도상국의 정치권은 온통 사회주의자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공직자가 주도하는 경제를 일컫는 표현으로 “정실 자본주의”란 표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 당시 공화당을 위시한 보수층은 이런 적절한 표현을 피하고 구제금융 자체를 “사회주의적” 조치라 맹비난하였고, 이런 이념적 혼란을 틈타 보수층 내에서는 티파티라는, 진보층에서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세력이 성장하였다. 즉, 부시 정권의 헨리폴슨이 시작한 정실 자본주의가 오바마 정권의 티모시가이트너에서 만개함으로써 보수층이든 진보층이든 초당적으로 이루어진 구제금융에 대한 – 그렇지만 그들은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한 – 분노가 정치지형을 더욱 더 양극화시켰던 것이다. 그 현재진행형이 도널드트럼프다.

씨티그룹 국유화, 그리고 배드뱅크의 실효성에 관해

은행 국유화에 대한 부질없는 이념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어느새 국유화의 실현가능성은 우리 코 앞에까지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현재 보유 중인 450억달러 규모의 씨티그룹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최대 40%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씨티그룹 경영진은 정부가 보통주 지분을 25% 정도 갖기를 원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美씨티그룹 국유화…우선주->보통주 전환 협상, 한국경제, 2009.2.23]

이와 함께 씨티는 싱가포르, 중동 등의 국부펀드들이 투자한 우선주에 대해서도 보통주로의 전환을 요청할 계획이라 한다. 그렇다면 왜 씨티는 자진해서 국유화를 요청했을까? 주요하게는 은행의 전체부실이 현재의 대차대조표 상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는, 소위 장부외(off-balance)거래의 부실자산 규모에 대한 공포감이다.

단순히 자본확충을 통한 대출여력의 증가를 목적으로 한다면(주1) 정부의 우선주 매입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차대조표 밖의 파생상품과 증권화상품의 부실화를 통제할 수가 없다. 결국 최종대부자인 중앙은행, 나아가 그 뒤의 국가가 방파제 역할을 해달라는 이야기다. 이제까지 논의되던 배드뱅크를 넘어선 이야기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해 모순된 행동을 보여 왔다. 한편으로 금융기관의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시가회계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는 등 은행의 부실을 감추어주었다. 시가회계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면 현재의 부동산 가격 하락이 자산실사에 드러나지 않게 되므로 회계 투명성은 말로만 떠드는 꼴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시장은 사실상 씨티가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1) 애초 부실자산 규모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도 없고 2) 그 부실자산의 매입가치를 측정할 수도 없고 3) 그 실효성 여부도 불투명한 배드뱅크는 금융위기의 탈출방법이 아니었음이 명확해진다.

어제의 미증시 폭락은 어떻게 보면 은행 국유화의 가능성이 그만큼 더 높아졌다는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다. 국유화가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결국 그들의 주식을 상장한 금융기관들의 수익(곶감 빼먹기)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될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대해 재무부는 “금융부분 안정을 위해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지만, 금융 시스템은 민간 소유로 남아 있어야 한다.”며 여전히 시티그룹이나 BOA 등의 국유화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많은 투자자는 경기 침체로 인한 은행의 심각한 손실이 지속되면서 그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믿는 분위기다.[미국 증시 폭락… 12년來 최저치 기록, 서울신문, 2009.2.24]

(주1) 2009년 1월말 현재 미국 상업은행들의 대출잔고는 7조6백억 달러 정도로 3개월 만에 2천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금융세계화는 위험의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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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pland1940” by Jniemenmaa at the English Wikipedia – Derivative work of Brion Vibber’s map of Europe, which can be found her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이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국내 금융계마저 채권금리 폭등 등 직간접적인 영향권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한편 뉴욕타임스 최근호는 노르웨이의 한 도시가 이번 사태로 인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전하고 있다. 과연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실감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북극권에 위치했으면서도 부동항을 끼고 있어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노르웨이 나르빅(Narvik)의 시장인 카렌 마그레테 쿠바스  Karen Margrethe Kuvaas 는 요즘 이런 저런 고민으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다고 한다. 미국 주택시장의 붕괴 때문이다. 왜 미국의 집값 때문에 이역만리의 나르빅 시장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나르빅 시는 또 다른 세 개의 노르웨이 도시와 함께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약 수천만 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추가적인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2004년 나르빅 시정부는 이들 도시들과 함께 노르웨이의 브로커를 통해 씨티그룹의 “구조화 금융”상품에 투자하였고 그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상품이었던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그들 시가 제공하던 유치원, 의료서비스와 같은 공공서비스가 파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벌써 시정부는 공무원들의 월급도 주지 못하고 있다. 인구 1만8천 명의 소도시로서는 엄청난 시련이다.

현재 시는 그들에게 투자를 알선해준 노르웨이의 브로커 회사 테라 시큐리티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시는 그들이 금융상품의 위험을 제대로 경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금융당국 역시 이 주장의 동의하고 테라 시큐리티의 라이센스를 취소했지만 모회사인 테라 그룹은 시에 대한 보상을 거부했다.

노르웨이 재무장관 크리스틴 할보르센 Kristin Halvorsen 은 그렇다 하여도 시를 위한 구제금융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씨티그룹 역시 나르빅 시가 자금을 투입한 투자를 종료시킴과 동시에 자신들은 이 분쟁에 낄 이유가 없다고 공언하였다.(주1)

이러한 사태는 오늘날 금융시장에서 개인에서부터 기업,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공공단체에 이르기까지 허다한 시장참여자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영향 받는가를 비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개인은 주택을 담보로, 기업은 자산을 담보로, 시는 세수확보를 담보로 돈을 빌려 서로에게 투자를 한다. 그 투자형태는 주식펀드, 부동산PF, 자산담보부증권 등 다양하다. 그러나 목적은 똑같다. 더 많은 수익을!

이러한 주체를 구분하지 않는 범세계적인 금융투자의 양상은 새로운 투자방식이다. 이전에는 극소수의 금융투자자들이 향유하던 특권이었는데 금융세계화와 펀드상품의 활성화로 누구나 손쉽게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지역과 특정상품에서의 놀랄만한 수익률은 투자자들을 흥분케 했고 급기야 안정성이 최우선일 시정부 예산까지 툴툴 털어 고위험 금융상품에까지 투자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 또는 브로커들에 의해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는 – 것이 있다. 금융상품은 어찌 되었든 사회 총생산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상품은 실물생산의 증가분 및 이에 상응하는 화폐증발 분을 초과할 수 없고,(주2) 그러하기 때문에 놀랄만한 수익률은 어디까지나 제로섬 게임일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는 원금을 다 까먹을 각오를 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는 그러한 사정을 알려줘도 투자자들이 무시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묻지마 펀드”라는 별명이 붙은 미래에셋의 인사이트펀드 – 제목 그대로 감(insight)으로 투자한다는 펀드 – 에 “묻지마 자금”이 4조원이 넘게 몰렸다는 것을 보라. 그 탓에 시중은행의 돈이 말랐다고 한다. 그러니 뭉칫돈이 시장을 흔들기도 한다. 미국 집값이 떨어지니 원자재 값이 올라가는 현상은 이러한 뭉칫돈의 이동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금융의 위험성이 헤지(hedge)라는 금융용어가 무색하게 더욱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금융시장은 그 동시성과 연관성이 증대되고 있는 시점이다. 일부 논자들은 미국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도 등 신흥개발국의 득세를 이유로 들며 디커플링 현상도 있다고 하지만 달러화 위주의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시시각각으로 평가절하 되고 있는 것은 디커플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금융의 세계화가 지향하는 모습이라면 현재와 같은 세계화 방식은 재고하여야 한다. 각국의 금융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으며 금융거래의 무정부성이 통제될 수 있는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

금융세계화론자들은 미국 집값이 떨어져서 국내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노르웨이의 시정부가 도산하는 세계화가 맘에 드는가?

 

(주1) 씨티그룹은 지금 약 45,000 명의 직원을 해고할 예정이다. 자기 앞가림하기 바쁜 실정이다.

(주2) 총생산이 10이고 화폐발행이 그에 정확히 상응한다고 가정하였을 경우 투자자들이 가져갈 몫은 최대치가 10에서 임금과 각종 비용으로 지불되는 나머지 몫일뿐이다. 그런데 현재의 금융시장은 마치 그 시장 자체가 가치를 창출하는 것처럼 행세해오고 있다.

자본이동에 대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미국

최근 미국의 경제계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의 씨티그룹에 대한 75억 달러의 투자가 화제가 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 등으로 유동성에 큰 곤란을 겪고 있는 씨티그룹이 이른바 아랍의 ‘국부펀드(the sovereign wealth fund)’로부터 대규모의 수혈을 받은 것이다. 씨티그룹은 이를 통해 자사의 목표 자본비율을 맞출 수 있게 됨으로써 급한 불을 끄게 되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도 반겼다. 미국 증시가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일단 ADIA는 씨티그룹에 대한 이사선임 등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양 당사자 간 계약에는 경영권 행사 방지를 위한 추가 주식 매입금지 등을 담고 있다고 한다. 씨티그룹의 CEO Win Bischoff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그룹의 비전과 ADIA와의 전략적 제휴를 찬양하고 있지만 사실 1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서브프라임 손실을 오일머니로 막은 것에 불과한 것은 자타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일머니의 이런 새로운 모습에 서구는 적잖이 당황해하는 눈치다. 바로 안보 차원에서의 두려움이 그것이다.

즉 최근의 이런 모습들은 최근 유가가 급등함에 따라 이른바 ‘오일머니’의 위력이 세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전과 다른 투자방식에 따른 서구의 당혹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예전에 1,2차 오일쇼크 당시에 산유국들은 자신들의 돈을 그저 서구의 금융자본에게 신탁하는 방향을 택했다.(주1) 당시 막 케인즈 주의적인 금융억압에서 벗어난 금융자본은 이 돈을 자기 돈처럼 굴리며 흥청망청 돈을 써댔다. 그런데 지금 서구 금융시장은 동맥경화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오일머니가 신탁의 형태가 아닌 자본취득의 형태로 돈을 싸들고 온 것이다.

오일머니는 이미 칼라일 그룹, 나스닥 증권거래소, 런던 증권거래소, 소니 등 선진자본의 고갱이들에 서서히 침투해오고 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미국 의회는 작년에 UAE의 국영회사 두바이포트월드(DPW)의 미국 내 항만운영권 인수를 무산시키는가 하면 나스닥 지분 인수도 타당성을 따져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현재는 유동성 해소의 은인이지만 나중에는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막말로 서구에게 있어 중동은 ‘지속적이고 잠재적인 적국’이 아닌가.

미 의회의 DPW에 대한 견제조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이 사안은 미국 내 여섯 곳의 항만운영권을 DPW 에게 넘기려던 사안에 대한 것으로 ‘국가안보’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조지 부시까지 가세하면서 논쟁은 격화되었고 결국 의회는 62대2로 DPW의 항만운영권 행사를 부결시켰고 DPW는 하는 수 없이 이에 승복하였다.

요컨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라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모토가 허상임을 잘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자유무역과 금융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여태껏 자국의 산업과 금융을 보호하려는 조치는 민족주의적인, 심지어 쇄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하여왔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선진화된 사회가 되려면 해외자본의 유출입을 막는 각종 규제를 모두 철폐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그 결정판이 바로 한미FTA다.

그런데 정작 오일머니가 힘을 발휘하자 이들의 논리는 통째로 뒤바뀐다. 론스타의 탈세를 막으려는 조치는 차별이지만 자신들이 안보 차원에서 각종 기간 산업의 인수를 막는 행위는 정당방위인 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논리가 딱 이 경우에 적용될 말이다. 사실 그것이 솔직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는 군사력에서뿐 아니라 자본시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게 마련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결국 한미FTA는 국제자본의 여하한의 조치에도 우리 정부가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있으라는 조약이다. 그들이 기간산업을 좌지우지하건 조세회피지역에 세운 회사를 통해 세금을 떼어먹건 우리 정부가 할 일은 거의 없다. 정 그들과 한번 붙고 싶으면 국내에서도 아니고 해외의 중재원에서, 헌법도 아니고 그들이 만든 중재규칙으로 싸워야 한다.

국부펀드 논란을 보고 있자니 새삼 우리의 처지가 처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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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슬람 금융은 이자 수수를 금지하고 술과 도박, 포르노, 담배, 무기, 돼지고기 등과 관련된 것에는 자금을 공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때문에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여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슬람 금융은 이러한 금기를 교묘히 피해나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금융상품이 이슬람 채권 사업인 수쿠크(Sukuk)로, 주로 부동산이나 기계설비 등 실체가 있는 거래에 투자되고 있다. 이자는 지급되지 않지만 보유자는 해당 기계나 설비를 가동해 얻은 이윤 가운데 일부를 배당, 임대료의 명목으로 나눠 갖는다. 이 수쿠크는 샤리아 규정에 어긋나지 않은 대표적인 금융수단이어서 최근 이슬람권 정부들도 도로ㆍ항만 등을 건설하기 위해 발행하고 있을 정도로 이슬람 금융시장의 주력 금융수단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