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동에 대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미국

최근 미국의 경제계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의 씨티그룹에 대한 75억 달러의 투자가 화제가 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 등으로 유동성에 큰 곤란을 겪고 있는 씨티그룹이 이른바 아랍의 ‘국부펀드(the sovereign wealth fund)’로부터 대규모의 수혈을 받은 것이다. 씨티그룹은 이를 통해 자사의 목표 자본비율을 맞출 수 있게 됨으로써 급한 불을 끄게 되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도 반겼다. 미국 증시가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일단 ADIA는 씨티그룹에 대한 이사선임 등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양 당사자 간 계약에는 경영권 행사 방지를 위한 추가 주식 매입금지 등을 담고 있다고 한다. 씨티그룹의 CEO Win Bischoff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그룹의 비전과 ADIA와의 전략적 제휴를 찬양하고 있지만 사실 1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서브프라임 손실을 오일머니로 막은 것에 불과한 것은 자타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일머니의 이런 새로운 모습에 서구는 적잖이 당황해하는 눈치다. 바로 안보 차원에서의 두려움이 그것이다.

즉 최근의 이런 모습들은 최근 유가가 급등함에 따라 이른바 ‘오일머니’의 위력이 세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전과 다른 투자방식에 따른 서구의 당혹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예전에 1,2차 오일쇼크 당시에 산유국들은 자신들의 돈을 그저 서구의 금융자본에게 신탁하는 방향을 택했다.(주1) 당시 막 케인즈 주의적인 금융억압에서 벗어난 금융자본은 이 돈을 자기 돈처럼 굴리며 흥청망청 돈을 써댔다. 그런데 지금 서구 금융시장은 동맥경화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오일머니가 신탁의 형태가 아닌 자본취득의 형태로 돈을 싸들고 온 것이다.

오일머니는 이미 칼라일 그룹, 나스닥 증권거래소, 런던 증권거래소, 소니 등 선진자본의 고갱이들에 서서히 침투해오고 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미국 의회는 작년에 UAE의 국영회사 두바이포트월드(DPW)의 미국 내 항만운영권 인수를 무산시키는가 하면 나스닥 지분 인수도 타당성을 따져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현재는 유동성 해소의 은인이지만 나중에는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막말로 서구에게 있어 중동은 ‘지속적이고 잠재적인 적국’이 아닌가.

미 의회의 DPW에 대한 견제조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이 사안은 미국 내 여섯 곳의 항만운영권을 DPW 에게 넘기려던 사안에 대한 것으로 ‘국가안보’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조지 부시까지 가세하면서 논쟁은 격화되었고 결국 의회는 62대2로 DPW의 항만운영권 행사를 부결시켰고 DPW는 하는 수 없이 이에 승복하였다.

요컨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라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모토가 허상임을 잘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자유무역과 금융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여태껏 자국의 산업과 금융을 보호하려는 조치는 민족주의적인, 심지어 쇄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하여왔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선진화된 사회가 되려면 해외자본의 유출입을 막는 각종 규제를 모두 철폐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그 결정판이 바로 한미FTA다.

그런데 정작 오일머니가 힘을 발휘하자 이들의 논리는 통째로 뒤바뀐다. 론스타의 탈세를 막으려는 조치는 차별이지만 자신들이 안보 차원에서 각종 기간 산업의 인수를 막는 행위는 정당방위인 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논리가 딱 이 경우에 적용될 말이다. 사실 그것이 솔직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는 군사력에서뿐 아니라 자본시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게 마련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결국 한미FTA는 국제자본의 여하한의 조치에도 우리 정부가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있으라는 조약이다. 그들이 기간산업을 좌지우지하건 조세회피지역에 세운 회사를 통해 세금을 떼어먹건 우리 정부가 할 일은 거의 없다. 정 그들과 한번 붙고 싶으면 국내에서도 아니고 해외의 중재원에서, 헌법도 아니고 그들이 만든 중재규칙으로 싸워야 한다.

국부펀드 논란을 보고 있자니 새삼 우리의 처지가 처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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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슬람 금융은 이자 수수를 금지하고 술과 도박, 포르노, 담배, 무기, 돼지고기 등과 관련된 것에는 자금을 공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때문에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여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슬람 금융은 이러한 금기를 교묘히 피해나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금융상품이 이슬람 채권 사업인 수쿠크(Sukuk)로, 주로 부동산이나 기계설비 등 실체가 있는 거래에 투자되고 있다. 이자는 지급되지 않지만 보유자는 해당 기계나 설비를 가동해 얻은 이윤 가운데 일부를 배당, 임대료의 명목으로 나눠 갖는다. 이 수쿠크는 샤리아 규정에 어긋나지 않은 대표적인 금융수단이어서 최근 이슬람권 정부들도 도로ㆍ항만 등을 건설하기 위해 발행하고 있을 정도로 이슬람 금융시장의 주력 금융수단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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