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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투자펀드

미국 재무부는 지난 3월 23일 부흥금융공사(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 1930년대 대공황 시기)와 정리신탁공사(Resolution Trust Corporation, 1990년대 초반 저축대부조합 위기사태 시기, 1995년 FDIC로 사업이관)는 물론 일본(공동채권매수기구, 정리회수기구, 산업재생기구)과 스웨덴(은행국유화) 등의 사례를 참조하여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자산을 매입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민관투자펀드(PPIF) 설립 및 세부운영방안을 제시한 바 있음.[미국의 민관투자펀드 본격 가동 개시, 주간금융브리프 18권 40호, 한국금융연구원]

부실자산 구제대책을 일환으로 고안된 민관투자펀드가 美재무부의 승인을 받은 5개 자산운용사에 의해 10월 12일부터 가동되었다고 한다. 이 펀드는 우선 총 61억4천만 달러가 출자되었다. 민간의 조달주체는 30억7천만 달러는 자산운용사, 연기금, 국부펀드 등이다. 동일한 금액을 재무부가 출자하였다. 재무부는 또한 지급보증, 특별융자 등의 형태로 추가 투입하여 총 규모는 112억7천만 달러에 달한다.

이 펀드는 유동성이 막혀버린 주거용 및 상업용 부동산 대출채권을 담보자산으로 발행된 유동화 증권을 매입하여 부실자산 처리 및 해당 금융기관의 재무구조 건전화를 지향하고 있다. 쉽게 말해 펀드는 일종의 배드뱅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통상의 정부주도의 배드뱅크가 아니라 민간기업과 정부의 합작펀드라는 점이다. 왜 하필 민관합작 펀드로 구성하였을까? 이와 관련 가이스너 재무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Our objective is to use private capital and private asset managers to help provide a market mechanism for valuing the assets.[출처]

즉, 자산가치의 평가(valuing)주체를 민간에게 맡기겠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는 지난 금융위기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시가평가(Mark to Market)’를 하겠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뉘앙스가 다르다. 실제로 현재의 유동화 증권 자산이 정말 시장상황대로 평가를 받는다면 한창때보다 오르긴 했겠지만 여전히 정크본드 가격의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해당자산을 넘기는 은행은 재무제표가 건전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화될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지난달 국내 최초로 출범한 민간 부실채권처리 회사인 연합자산관리(UCAMCO)도 이와 같은 고민 속에 탄생한 기구다. 즉, IMF외환위기 시절 국가기관인 자산관리공사가 부실기업 등을 인수하는 배드뱅크의 역할을 했었는데, 이 때 자산을 지나치게 싼 값으로 인수하여 오히려 경제의 체질을 약화시켰다는 것이 민간 측의 주장이다. 그래서 민간배드뱅크가 정당한(?) 가격으로 자산을 매입하여 매도기관의 손실을 조절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다시 미국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리나라의 사정과는 달리 미국은 민과 관이 짝짜꿍이 맞아 시장에서 헐값에 팔릴 – 심지어 팔리지도 않을 – 증권을 PPIF가 더 적절한(?) 가격에 매입하여 매도기관과 PPIF가 함께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장가보다 비싸게 사서 어떻게 PPIF에 투자한 민간 기업이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바로 재무부가 출자 및 대출을 겸하게 된 것이다.

일단 민간은 30억7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구매력은 112억7천만 달러에 달하므로 대략 3배 정도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창출한 셈이다. 재무부가 출자한 금액의 정확한 배당률과 대출이자는 알 수 없으나, 민간에게 배당을 우선적으로 해줄 수도 있고 수익확보 방안은 다양할 것이다. 거기에다 결정적으로 눈에 띠는 금융조건 하나는 대출이 ‘비소구 금융(non-recourse loan)’의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말로 하면 ‘상환청구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recourse는 본디 어음이나 수표 등에 배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어떤 거래행위가 일어났을 때에 그것의 실질책임자까지 소구하여 그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다. 대출이 full-recourse라 함은 차주의 채무불이행을 끝까지 따져 묻겠다는 의미다. 반대로 non-recourse라 하면 쉽게 말해 차주가 돈을 갚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대출형태는 통상 차주의 담보능력이 아닌 특정사업의 사업성을 담보로 하는 프로젝트금융에서 일반화된 형태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프로젝트금융에서조차 non-recourse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PPIF에서는 부실자산의 인수를 위해 투자하는 이들을 위해 그러한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금융조건이다.

美정부가 이렇게 특혜(?)를 주어가며 민간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것은 복합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가이스너의 출신지가 그렇듯 행정부와 월스트리트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자 ‘국유화’라는 표현에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워싱턴을 바라보는 보수 세력의 견제 등이 이러한 형태로 틀이 갖추어 진 것일 것이다. 메가톤 급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금융자본의 사적소유권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미국식 옹고집의 한 사례랄 수 있다.

부동산PF 부실자산 처리방식에 대하여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1천667개 PF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10%인 165곳이 부실 우려 사업장으로 분류됐습니다. 이들 사업장의 대출 규모는 4조 7천억 원으로 금융당국이 지난해 발표한 저축은행의 부실 우려 대출액 1조 7천억 원을 포함하면 모두 6조 4천억 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PF 대출 사업장 10% ‘부실 우려’]

알다시피 PF는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의 약자이고 여기서 ‘PF사업장’이라고 표현한 것은 전체 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이라기보다는 소위 ‘부동산PF’에 국한된 것으로 판단된다. PF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PF, 즉 민간투자사업은 지불주체가 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인지라 시스템리스크(system risk)에 노출되어 있을지언정 크레딧리스크(credit risk), 즉 채무불이행 위험에는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의 이러한 부실자산의 처리방식은 지난 IMF 외환위기 당시 사용했던 자산관리공사(KAMCO)에 의한 자산인수방식이다.

금융 당국은 이중 악화가 우려되는 165개 사업장 정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부실우려 PF채권 매입은 채권액에서 충당금을 제외한 적정할인 금액을 우선 매입대금으로 지급하고 향후 매각해서 나온 수입과의 차액을 정산하는 ‘사후정산 조건부 방식’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병래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캠코가 자체 재원으로 우선 매입하고 상황을 지켜본 뒤 또다른 금융권 부실 채권 매입 기능이 있는 구조조정기금도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금융당국, 5조원규모 PF부실채권 매입]

이러한 대안은 최상의 대안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일단 매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에 ‘사후정산 조건부 방식’은 별로 내키지 않는 방식이다. 이는 결국 회계적으로 진성 매각(true sale)이 아니므로 매각자의 대차대조표에 여전히 부실자산이 남아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은행들의 BIS 비율 개선이나 신인도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로 그러한 부작용이 민간은행들이 스스로 민간 배드뱅크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유 중 하나다.

민간 배드뱅크 역시 부작용이 많을 수 있다. 우선 참여주주가 스스로 매각주체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부실자산을 참여하지 않은 매각주체들의 부실자산에 비해 우선매입 혹은 과대평가할 우려가 있다. 이는 경매방식 도입 등 시장가격의 최적화라는 원칙에 위배된다. 더 나아가 문제발생원인 주체가 스스로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하는 이해상충의 문제는 모순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역시 주도권은 정부부문이 쥐는 것이 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결국 현재 미행정부의 안과 같이 민관합동법인이 대안일 것이다. 이 속에서 누가 어떻게 주도권을 쥐고 의사결정을 최적화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어떤 식으로든 부동산PF의 과대평가된 가치를 후려치지 않은 채, 아무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두 다 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배드뱅크 설립 논의에 관하여

실제 최근 배드뱅크 추진 소식이 전해진 이후 지난 연말에서 올초 13~14%의 할인율을 적용했던 캠코가 최근엔 8% 정도로 낮추겠다는 제안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레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게 은행측 설명이다. 그동안 캠코가 부실채권 매각에 있어서 사실상 독점기구화하면서 부실채권 매각 과정에서 헐값매각이 이뤄진다는 은행들의 불만이 나오던 터였다. 그런데 갑작스레 캠코의 참여 소식이 전해지자 은행 한 관계자는 “말하자면 경쟁상대를 투자자로 참여시키는 건데 이건 말도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수의 은행 관계자들 역시 “캠코가 지분출자를 10~15% 수준으로 한다면 거의 개별은행의 출자 수준과 비슷한데 이 경우 가격 산정 등의 과정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민간 배드뱅크에 캠코? 은행들 `당혹`, 이데일리, 2009년 3월 24일]

금융권의 부실자산 인수 방안이 미국의 경우 자산관리공사가 미행정부의 주도로 민간을 참여시키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반면(알파헌터님의 글 참조), 우리나라는 자산관리공사(Kamco)가 부실자산을 인수하려는 시도에 민간은행들이 연합하여 별도의 배드뱅크를 설립하는, 즉 자산관리공사와 민간 배드뱅크가 경쟁체제로 갈수도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자산관리공사가 민간의 배드뱅크에 지분을 출자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투톱체제로 가다보면 당연히 민간 배드뱅크가 더 비싼 값에 부실자산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고, 이러다보면 자칫 자산관리공사의 존재감이 없어져버릴 우려감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위 기사에서도 따르면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자산에 대한 할인율은 13~14%에 달한다.(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4%의 할인율도 매우 높게 쳐주는 감이 있다) 즉 내년에 100원으로 가격실현이 예상되는 자산을 현재가격 86~87원에 매입한다는 것이다. 할인율이 8%면 92원이 될 것이다. 이것이 다년간의 가격실현이 되는 사업에 복리로 적용되면 가격 차이가 무척 클 것이다. IMF 외환위기 시절 스스로는 우량자산이라 생각했던 자산을 이런 할인가격에 판 경험이 있는 민간은행 측이 그래서 이번에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역시 문제는 적정가격의 산정이다. mark-to-market, 즉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어 가격을 측정할 수 없는 자산의 경우 mark-to-model, 이해당사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가격산정 혹은 사업성 분석을 통해 가격을 합의하는 것인데, 이것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만에 하나 사업타당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부실(가능성)자산은 부실자산일 뿐이고, 더구나 같은 가치를 갖는 자산이라 할지라도 민간 배드뱅크의 참여은행이냐 아니냐에 따라 매입 우선순위가 매겨질 가능성도 많다.

씨티그룹 국유화, 그리고 배드뱅크의 실효성에 관해

은행 국유화에 대한 부질없는 이념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어느새 국유화의 실현가능성은 우리 코 앞에까지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현재 보유 중인 450억달러 규모의 씨티그룹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최대 40%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씨티그룹 경영진은 정부가 보통주 지분을 25% 정도 갖기를 원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美씨티그룹 국유화…우선주->보통주 전환 협상, 한국경제, 2009.2.23]

이와 함께 씨티는 싱가포르, 중동 등의 국부펀드들이 투자한 우선주에 대해서도 보통주로의 전환을 요청할 계획이라 한다. 그렇다면 왜 씨티는 자진해서 국유화를 요청했을까? 주요하게는 은행의 전체부실이 현재의 대차대조표 상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는, 소위 장부외(off-balance)거래의 부실자산 규모에 대한 공포감이다.

단순히 자본확충을 통한 대출여력의 증가를 목적으로 한다면(주1) 정부의 우선주 매입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차대조표 밖의 파생상품과 증권화상품의 부실화를 통제할 수가 없다. 결국 최종대부자인 중앙은행, 나아가 그 뒤의 국가가 방파제 역할을 해달라는 이야기다. 이제까지 논의되던 배드뱅크를 넘어선 이야기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해 모순된 행동을 보여 왔다. 한편으로 금융기관의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시가회계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는 등 은행의 부실을 감추어주었다. 시가회계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면 현재의 부동산 가격 하락이 자산실사에 드러나지 않게 되므로 회계 투명성은 말로만 떠드는 꼴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시장은 사실상 씨티가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1) 애초 부실자산 규모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도 없고 2) 그 부실자산의 매입가치를 측정할 수도 없고 3) 그 실효성 여부도 불투명한 배드뱅크는 금융위기의 탈출방법이 아니었음이 명확해진다.

어제의 미증시 폭락은 어떻게 보면 은행 국유화의 가능성이 그만큼 더 높아졌다는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다. 국유화가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결국 그들의 주식을 상장한 금융기관들의 수익(곶감 빼먹기)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될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대해 재무부는 “금융부분 안정을 위해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지만, 금융 시스템은 민간 소유로 남아 있어야 한다.”며 여전히 시티그룹이나 BOA 등의 국유화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많은 투자자는 경기 침체로 인한 은행의 심각한 손실이 지속되면서 그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믿는 분위기다.[미국 증시 폭락… 12년來 최저치 기록, 서울신문, 2009.2.24]

(주1) 2009년 1월말 현재 미국 상업은행들의 대출잔고는 7조6백억 달러 정도로 3개월 만에 2천억 달러가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