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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드는 현대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데이빗 리카도와 아담 스미드는 무역협정 안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의 포함에 대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그들은 생물학 약품의 판매에 5년 혹은 8년의 독점권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에게 기본적인 노동 및 환경 조건을 준수하도록 확인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환율조작은 어떠한가? 그리고 대량의 자본이동에 따른 인터넷이나 해외에서의 일자리에 대한 서비스의 거래는 어떠한가? 비교우위 이론은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아직 이것들은 현재 TPP 협정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들이다.[Sander M. Levin – Testimony before the 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의 ‘TPP에 대한 미국경제와 특정 산업분야에 관한 영향’ 청문회에서의 샌더 레빈 미 하원 민주당 의원의 발언이다. 레빈 의원은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기본적으로 미국에서의 노조 등 노동자 측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미FTA 체결 시에는 한국이 자동차 시장을 충분히 개방하지 않았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입장에서 상기 발언을 읽어보면 미국의 진보진영이 가지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일면을 관찰할 수 있다.

위에 나열한 여러 현대적 자유무역협정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조항들에 대해 과연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담 스미드는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아담 스미드가 주창한 자유무역은 기본적으로 농산물 수입 통제 등을 통해 이득을 보려던 경쟁력 떨어지는 자산가의 기득권 타파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데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나 장기 독점판매권이 아담 스미드의 그런 이상과 부합하는 것일까? 오히려 기득권의 보호가 국제적으로 확산된 측면이 있다.

샌더 의원의 이어지는 증언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자유무역”에 대한 서구의 – 특히 미국의 – 믿음은 1980년대 미국의 對일본 무역적자에 대한 경험으로 강화되어 온 측면이 있다. 하나의 신조가 된 더 적은 정부개입과 “자유”무역은 이후 NAFTA나 각종 FTA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무역협정에서 당사국들은 어떤 교훈을 얻은 것일까? 여전히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나 독점적 판매권을 “자유”무역이라 여기는 것일까? 이 글 등을 읽어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기도 하다.

이번이 생물학 생산품에 대한 시장 독점권에 대한 조항이 등장한 첫 사례다. 그리고 이는 많은 TPP 조약국들에 대한 새로운 의무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다음 개발단계에 있는 제네릭 약품이나 바이오시밀러(biosimilar)의 경쟁이 지연될 것이고, 이는 적정한 약품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 개발도상국 혹은 심지어 호주에서의 많은 시민들이 이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 의미한다. TPP 의무조항은 장래에 적정한 약품에 대한 접근을 향상시키기 위해 취해질 시스템의 개혁을 어렵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현재의 지적재산권을 옥죌 것이다.[TPP Intellectual Property Chapter is “A Disaster for Global Health”]

김현종 씨는 정말 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이 입법예고하지 않도록 죽도록 싸웠나?

김현종 前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예전 발언이 새삼 화제다. 최근 위키릭스에 의해 공개된 美정부의 서류에서 그가 당시 버시바우 미국 대사에게 한미FTA와 연계된 의약품 이슈와 관련해 한 “매국적” 발언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위키릭스의 공개내용과 이에 대한 국내보도를 근거로 8일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한미FTA 협상 과정의 진실과 위법성을 감사해 달라”며 ‘공익사항에 관한 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했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미국의 ‘대변인’과 다름없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7월25일 전문에선, 당시 보건복지부가 미국이 반대하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추진하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현 삼성전자 해외법무 사장)이 버시바우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담은 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을 입법예고하지 않도록 죽도록 싸웠다”고 강조한 걸로 나온다.[미 대사관이 전한 이상득 의원의 말 “이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

김현종 씨의 해당발언이 국내에 처음 보도된 것은 한겨레신문의 2011년 9월 6일자 보도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라 함은, 보건복지부가 기존의 무차별적으로 약가를 적용해주던 네가티브 방식의 급여 방식이 예산낭비가 심하다는 판단 하에, 선별적으로 협상된 급여로 약값을 지급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적정화 방안이었다. 미국 측은 우리의 이러한 정책시행을 저지하려 했고,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현종 씨는 입법예고를 막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고 공치사를 했다는 것이다.

¶6. (C) 윤과 김종훈과의 미팅 후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7월 24일 오후 대사에게 전화를 했다. 김은 대한민국 정부가 내놓은 시행규칙안 입법예고의 파라미터들을(즉, 미국정부와 사전입법예고를 공유하는 것, 공개적인 입법예고 전에 의미 있는 의견을 내놓을 시간을 준다는 것, 그러한 입법예고에 한해서만 60일 간의 공개적인 입법예고를 시작하겠다는 것, FTA 제약/의료 기구 워킹그룹에서 협상을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위해 “죽도록 싸웠다”라고 말했다. 김은 규칙안을 입법예고하는 절차를 논의하는 7월 21일 청와대 미팅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사전에 “4대 선결과제”(자동차, 소고기, 의약품, 스크린쿼터)를 동의함으로써 FTA를 개시한다고 주장하는 언론보도 등에 의한 강한 반대여론에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말했다.
¶6. (C) Following the Yoon and Kim Jong-hoon meetings, Trade Minister Kim Hyun-chong phoned the Ambassador in the afternoon of July 24. Kim said he had been “fighting like hell” on behalf of the parameters for release of the draft implementing regs to which the ROKG had committed (i.e., sharing them pre-release with the USG, allowing time for meaningful comment prior to their public release, starting the 60-day public comment period only with their release, and providing an opportunity for negotiation within the FTA Pharma/Med Devices WG). Kim said that the July 21 Blue House meeting that discussed the process for releasing the draft regs had focused on the strongly adverse public reaction to press stories claiming that the ROKG had caved prior to the start of FTA talks by agreeing to the “four preconditions” (on autos, beef, pharma, and screen quotas). [Viewing cable 06SEOUL2505, PHARMACEUTICALS AND KORUS-FTA: TURNING THE TABLES]

이 부분이 위키릭스에서 한겨레가 인용보도한 “죽도록 싸웠다”는 내용이다. 사실 나도 처음에 한겨레 보도를 보고는 엄청 열이 받았지만, – 당연히 김현종 씨도 싫어하는 와중에 – 보도 내용이 과연 위키릭스의 공개분과 내용상으로 일치하느냐 하는 것은 의문이다. 김현종 씨가 싸운 것은 한겨레가 인용부호를 쳐서 김현종 씨가 말한 것처럼 보도한 “시행규칙 개정을 입법예고하지 않도록”이 아니라 미국 측에 입법예고 전에 FTA 틀 안에서 충분히 사전 논의를 하게 하기 위해 “죽도록 싸웠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 의약품 관련, 우리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포지티브 제도를 수용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고, 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핵심을 미국이 수용하면 세부사항들은 FTA 협상 틀 안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복지부를 설득했다. 의약품 문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라는 것을 인식한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7월 중순 취임하자마자 나와 유시민 장관을 집무실로 불러 3자 회담을 주최했다. [중략]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핵심은 포지티브 방식과 건강보험공단의 협상을 통한 약가 결정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원칙을 관철시키면서 FTA 협상에서 구체적인 실현 계획을 마련하는 유연한 접근을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유 장관은 FTA 협상 틀에서 협상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중략]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세부 사항들을 FTA의 틀 내에서 협상하지 않으면 한미 FTA가 깨지는 것인데, 좋습니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그렇게 중요한 정책이라고 하니 그 결과를 수용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할 것은 두 가지가 남았습니다. 첫째, 우선 빨리 대통령께 한미 FTA 협상이 의약품으로 인해 결렬되었다는 사실을 보고 드려야 합니다. 둘째, 그 이후 결렬된 사실에 대해 납득할 수 있도록 대국민 발표를 해야 합니다.” 그러고서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중략] 광화문 청사에 도착하기 전에 권오규 부총리에게 전화가 왔다. “김 본부장. 복지부 장관에게 방금 전화가 왔네. 포지티브 방식과 건강보험공단이 약가를 결정한다는 원칙이 지켜진다는 전제 하에서 다른 세부 정책들은 FTA 틀 내에서 협상할 수 있다고 하네.”[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 김현종, 홍성사, 2010, pp 134~136]

김현종 씨가 작년 한미FTA의 협상과정과 소회를 적어 내놓은 책의 일부다. 아마 이러한 부분이 그가 “죽도록 싸웠다”고 말한 내용이리라. 시기상으로 버시바우 대사에게 전화를 할 당시다. 그가 유시민 당시 장관에게 설득하고 있는 – 심지어 판을 깨겠다고 협박 – 내용은 위키릭스의 공개서류에서처럼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한미FTA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주장이다. 그가 여기서 잘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자면, 바로 주권국가의 권리에 해당하는 사항을 FTA 협상 틀에 끌어들이려 한 것일 것이다.

저는 장관 취임 직후 FTA 담당 팀장에게, 약가제도와 관련해 미국 정부에 문서로 무언가를 약속하거나 구두로 약속한 것을 기록한 문서가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외교부의 관련 문서를 다 뒤졌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 통상교섭본부 관계자가 미국무역대표부USTR 관계자에게 무언가 우호적인 언급을 했을 수는 있지만, 국제법이나 외교 관례에 비추어볼 때 우리 정부의 정책결정권을 제약할 수 있는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실무자의 견해였습니다. 결국 ‘4대 선결조건’에 약가제도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돌베개, 2007년, p 164]

유시민 씨도 주장하다시피 포지티브 방식을 핵심으로 하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우리 정부의 정책결정권”임이 분명하다. 우선 해당 제도는 예산낭비를 없애기 위한 목적이고, 특히 미국의 FTA 틀내에서의 협상이 내정간섭일 수밖에 없는 것이 국내외 기업에 비차별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김현종 씨 역시 앞서의 책에서 미국 측에 “프랑스, 호주, 스위스,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가도 도입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왜 우리나라는 도입하지 말라는 것”(p 129)이냐 반문했다고 할 정도로 보편적인 제도다.

제일 큰 고비는 2006년 7월 하순 대통령을 모시고 연 한미 FTA 관계 장관 회의였습니다. 이때는 미국 측이 선별등재제도를 수용할 테니 세부사항을 FTA 틀 안에서 합의하자고 제안했고, 저는 이것이 정책주권 사항이고 국내외 자본에 대한 비차별적 제도이기 때문에 그대로 입법예고 하겠노라고 고집을 부리는 중이었습니다. [중략] 결국 대통령이 정리해주셨지요. 미국이 선별등재제도를 수용한 것은 큰 성과이고, 보건복지부가 핵심을 파악해서 전략적으로 잘 대처했다고 한 것입니다. [중략] 이렇게 해서 보건복지부는 7월 26일 선별등재목록 도입, 제약사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가협상, 특허 보호기간 만료시 신약의 가격인하, 오리지널 제품과 복제약의 가격 비율 인하 등을 핵심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과 ‘신의료기술 등의 결정 및 조정 기준 개정안’을 60일간 입법예고할 수 있었습니다.[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돌베개, 2007년, p 168]

결국 노무현 前 대통령의 교통정리를 통해 유시민 당시 장관은 미국 측의 “FTA 틀 안에서 합의” 요구를 무시하고 관련제도를 입법예고한다. 흥미로운 것은 입법예고일이다. 해당안의 입법예고는 2006년 7월 26일이었는데 위키릭스에 따르면 김현종 씨는 美대사와 7월 24일 통화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는 우리 정부의 행정행위를 사전에 통지한 셈이다. 요컨대 그 스스로도 정책주권임을 인식하고 있는 사안을 FTA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했고, 이를 입법예고 사전에 미국에 자신의 그러한 노고를 변명한 셈이다.

나는 어느 나라든지 건강보험제도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려면 비용을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하면서 이것은 우리나라의 주권행사적 사항이라는 사실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중략] 나는 미국 측에 프랑스, 호주, 스위스,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가도 도입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왜 우리나라는 도입하지 말라는 것인지 반문하고, 정당한 국내 정책에 무리하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반미 감정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 김현종, 홍성사, 2010, p 128]

한겨레 보도로 다시 돌아가자면 기자의 의도가 어떠했는지 몰라도 큰 틀에서 그가 인용부호를 쳐서 보도한 내용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즉, 김현종 씨가 “죽도록 싸웠다”한 부분은 “입법예고가 되지 않도록” 싸운 게 아니라, 사전에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하겠다고 그가 조건으로 내세운 약속을 위한 거였다. 하지만 한겨레의 보도는 타 언론사에 인용 보도되면서 해당 문구가 여과 없이 인용되었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엄밀히 파악하지 않은 보도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지양되어야 할 보도태도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맞선 태국정부의 값진 승리

지난 번에 이 블로그에서 태국 정부가 다국적 제약회사의 의약품에 대해 강제실시권(주1)을 발동하기로 하였고 이에 대해 해당 기업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원문보기) 최근 소식에 따르면 결국 태국정부의 승리로 끝났다고 한다.

태국 정부는 그동안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에이즈치료제, 심장약, 암 치료제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약품에 대하여 특허를 파기하고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겠다는 카드를 내놓았다. 결국 제약회사들은 이에 굴복하여 스위스 로슈사는 폐암 및 췌장암 치료제인 엘로티닙(상품명: 타세바)의 가격을 30%, 프랑스 사노피-아벤티스사는 폐암 치료제인 도세탁셀(상품명: 탁소티어)의 가격을 60% 내리는데 합의하였다. 또한 스위스 제약사인 노바티스는 작년말 자사 암 치료제인 이마니팁(상품명: 글리벡)에 대해 태국 정부가 특허파기를 철회할 경우 빈곤층에 한해 이 약품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한편 태국정부가 그동안 자국의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WTO의 TRIPs 협정의 근거항목은 다음과 같다.

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PUBLIC HEALTH
TRIPS 협정과 공중 보건에 관한 선언

(b) Each Member has the right to grant compulsory licences and the freedom to determine the grounds upon which such licences are granted.
각 회원국은 강제실시권을 허가할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실시권이 허가될 수 있는 영역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c) Each Member has the right to determine what constitutes a national emergency or other circumstances of extreme urgency, it being understood that public health crises, including those relating to HIV/AIDS, tuberculosis, malaria and other epidemics, can represent a national emergency or other circumstances of extreme urgency.

각 회원국은 국가적 응급상황 또는 극도의 비상상태의 상황 구성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것은 HIV/AIDS, 결핵, 말라리아와 다른 유행병과 관련되는 공중 보건 위기가 국가 응급상황 또는 극도의 비상상태상황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협정은 지적재산권의 강국인 선진국과 상대적 약자인 제3세계 국가들의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타협에 의해 탄생한 협정이니 만큼 승인 요건의 내용이 애매하고 추상적이어서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다. 예를 들자면 특정국가가 강제실시권을 발동함에 있어 그 범위와 기간을 한정시켜야 하고 사유가 종료되는 즉시 강제실시권을 종료하여야 하는 제약이 있다. 또한 해당 조항이 자유시장 원칙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침해한다는 명분으로 미국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의 승인은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 태국정부의 승리는 어쩌면 단순한 법리논쟁이나 공공성과 수익성 간의 갈등이라는 차원을 떠나 한 힘없는 주체인 태국정부가 국가 단위 이상의 권력을 키워가고 있는 주체인 다국적 제약회사와 그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강대국을 상대로 용기 있는 도발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많은 빈국들이 2001년 신설된 이 강제실시권 규정을 알고는 있었으나 감히 실시하지 못하고 제풀에 포기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태국의 경우를 보고 다른 나라들도 ‘하면 된다’ 는 자신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글들
http://www.e-healthnews.com/article/view.jsp?art_id=27470&cd=60
http://cafe.naver.com/ripc.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9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4&dir_id=41401&eid=lOGVb7Lt0L2A3iszF1zPtFpTmPBozvEg&qb=d3RvILCtwaa9x73Dscc=

(주1) WTO는 지난 2001년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과 같은 질병이 만연한 국가는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국제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합의, 특허 보유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의약품을 생산 또는 판매할 수 있도록 강제실시권 발급 규정을 신설했다.

신약 개발에서의 오픈소스 운동 사례

예전에 어느 사이트에 올린 번역글인데 우연히 찾아서 자료축적 차원에서 여기 다시 올립니다. 해당 글은 의약개발 분야에서 과학자들이 상업적 이득보다는 약을 필요로 하는 이들 – 대부분 지불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 – 을 위해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현황에 대한 기사로 이중 일부를 번역해서 올립니다.

기사 제목 : An open-source shot in the arm?
http://www.economist.com/displaystory.cfm?story_id=2724420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BIO2004 – 생명공학 산업기관연례회의 -에서 이번 주에 제출된 한 보고서에서 Stephen Maurer, Arti Rai, Andrej Sali—두 변호사와 계량 생물학자 -는 열대 질병의 약을 개발하기 위해 오픈소스 운동을 펼칠 것을 제안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진행될 것이다: 그들이 The Tropical Disease Initiative 라 부르는 웹사이트에서 생물학자들과 화학자들이 특정 질병에 대한 특정 영역 중 자신들의 전문분야에 자원한다. 분배된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하고 주석을 단다. 그리고 실험을 진행한다.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대화방에서 토론을 거친다. 보고서 작성자들은 이 연구가 최소한 처음에는 ‘습기 찬’ 실험실에서 행해지기 보다는 주로 계량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이 생물 의학 연구의 초기 오픈소스 운동과 다른 점은 과학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교환하기 전에 데이터에 대해 공동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 지놈의 매핑과 같은 프로젝트(지놈 프로젝트도 일종의 오픈소스 운동이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시각임 : 역자 주)는 상의하달 방식의 정부 개입이 광범위하게 있었지만 이 제안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처럼 연구자들 자신들이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으로 조직한 결과라는 점이다. 즉 작성자들은 어떤 국가나 자선단체에서 초기 자금을 기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연구 결과는 스프트웨어 프로젝트에 지배적인 어떤 종류의 오픈소스 라이센스에 의해 상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에 약품 후보군의 최종개발은 경쟁 입찰을 통해 선정된 연구소에 맡겨질 것이다. 약 자체는 모든 제조업자가 생산할 수 있도록 공공의 영역에 속해진다. 작성자들은 이는 약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가능한 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약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게 만들 것 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특허에 너무 익숙해서 공공의 영역에서 약을 개발하는 방법 들을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에 있는 공공정책 골드만스쿨의 Maurer 씨의 이야기다.

이 사례는 신약 개발에 오픈소스 개발모델을 적용하고자 하는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이다.

지적재산권을 무시하고 자국민을 보호하기로 결정한 태국정부

EU가 우리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 ‘자료 독점권’ 등 지적재산권의 배타적인 보호를 주장하는 가운데 최근 태국 정부는 제네릭 의약품의 공급을 위해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권을 유보하는 이른바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을 발동해 제약회사와 마찰을 빚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태국정부는 올해 1월 29일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정부 등의 승인을 얻은 제3자가 특허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 협정의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을 발동해 제네릭 의약품 생산을 승인한 바 있다.

당시 태국 정부가 인정한 제네릭 의약품은 미국 제약회사인 애보트의 에이즈 치료제인 칼레트라와 브리스톨마이어스와 사노피아벤터스사의 고혈압 치료제인 플래빅스 등 2종이다. 플래빅스의 경우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은 한 알당 원제품(2달러)의 11분의 1 수준인 18센트다. 결국 이러한 조치 덕분에 가난한 이들은 더 싼 값에 약을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태국 정부는 또한 현재 인도로부터 값싼 원료들을 계속 수입해오고 있으며 네 종류의 암치료제에 대해서도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것을 고려중이라 한다.

이 분야의 운동단체들은 이러한 조치를 통해 태국이 일종의 이정표가 되어 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태국의 선례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톤에 자리 잡고 있는 에센샬액션의 로버트 와이스만은 “태국의 노력은 의약품을 사용가능하고 공급 가능하게끔 하는 지속가능한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한편 제약회사들은 태국의 행동이 지적재산권의 침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태국의 일련의 조치들이 의료 혁신을 위한 연구작업의 자금조달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또 태국이 그런 조치를 취하기 전에 WTO의 규칙에 따라 자신들과 협의했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스턴에 있는 노스웨스턴 대학의 교수인 브룩 베이커는 태국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법에 따르면 태국의 행동은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 등 다른 여러 나라들도 태국의 선례를 따라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대륙의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배타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의약품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인도에서는 29일 수만명의 의료업 관계자와 환자들이 모여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특허 관련 소송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노바티스가 최근 제네릭 약품 생산을 금지하기 위해 인도특허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노바티스는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막지 말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신약개발을 위한 투자에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비싼 가격을 매겨야 한다는 제약회사와 살기 위해서 가산을 탕진해야 하는 서민들 간에 갈등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해답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결국 의약품은 일종의 공공재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현재 그것의 공급은 전적으로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상황이 모순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적재산권이 지켜져야 함은 타당하지만 시장이 현재 지적재산권을 너무 과도하게 보호 내지는 확대적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전통적인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증폭시킨다고 하였다. 즉 생산관계는 사회화되어 있는데 생산수단이 사유화되어 계급간 모순이 깊어져 간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적재산권’의 사적소유 역시 체제모순의 심화의 한 매개체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가 공유하던 보편적 지식이 조합되어 어느 순간 개별기업에 의해 사유화되고 그것에 대한 시장가격은 독점에 대한 프리미엄으로 말미암아 높아지곤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본주의 시장의 궁극적인 모순의 접점은 이른바 ‘적정하고 타당한 시장가격’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적정하다고 여기지 않아도 독점업체가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흔히 그 모순의 해소는 거칠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