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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독점, 자유무역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관세나 기타 조치로 나타나는 공공연한, 혹은 은밀한 정부지원 없이는 한 나라 안에 독점이 성립하기 힘들다. 규모가 세계적이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드비어즈 다이아몬드 독점이 우리가 아는 바로는 성공한 유일한 실례이다. 정부의 직접 지원 없이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밖에는 없는 것으로 안다. – OPEC 카르텔과 초기의 고무 및 커피 카르텔이 아마도 두드러진 예일 것이다. 그리고 정부지원을 받는 카르텔의 대다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은 국제경쟁의 압력 아래 부서져 버렸다. – 우리는 이 운명이 또한 OPEC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자유무역의 세계에서는 국제 카르텔은 더 빨리 사라져버린다. [選擇의 自由, 밀턴 프리드먼 저, 朴宇熙 역, 중앙신서, 1980년 pp84~85]

나는 이글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진정성을 믿는다. 억압(프리드먼이 생각하기에 주로 정부의 통제) 없고 독점 없는 경제가 진정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고 “공공연한, 혹은 은밀한 정부지원”이 없다면 한 나라 안에서, 더군다나 세계적인 규모에서의 독점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정부의 지원(또 다른 의미의 통제이므로)은 철폐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고, 이는 매우 아름다운 구조를 이루고 있다.

위와 같은 프리드먼의 사상을 이어받아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 국가들은 “자유”무역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나 그들은 보호무역이 대공황을 심화시켰으며, 심지어는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결과까지 낳았다고 여기고 있기에, 금융위기에 직면한 지금은 한층 자유무역의 수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프리드먼의 희망과 달리 자유무역의 실천수단인 WTO, FTA 등은 각국 정부의 통제와 지원에 의해 실현되고 있고, 그 조약체결 주체 역시 여전히 국민국가라는, 더불어 그러한 것들은 또 하나의 “정부지원”이라는 ‘역설’이다.

프리드먼의 이상론에 의하면 모든 관세장벽은 부서져 버려야 하고 오로지 자유로운 생산자들이 정부의 간섭이나 지원 없이 경쟁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자유무역 노정은 실은 유력한 국가들의 주도하에 상호평등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WTO와 FTA가 체결되고 있고, 그 와중에 국가의 의사결정단위에 개입할 수 있는 독점기업들이 배타적으로 조약체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꼴이다.

예를 들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대로 농업부문 등에서는 카길 등 국제 곡물메이저가 조약 초안을 작성하고, 심지어는 협상 테이블에 앉고 있다. 제약분야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매우 강하다. 그 반면에 조약의 내용을 투명하게 알아야할 국민들은 – 심지어 대다수 중소기업들도 – 협상의 기밀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명분 하에 정보접근으로부터 차단당하고 있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각 나라의 의회마저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과연 현재의 무역기조를 진정 “정부의 간섭이 배제된 자유무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프리드먼이 살아 돌아온다면 한미FTA를 자신의 이상과 일치하는 타당한 무역협정이라고 간주할 것인가? 나는 그것에 회의적이다. 그의 오류는 현존하고 있는 가장 큰 경제주체인 – 일수밖에 없는 – ‘국민국가’라는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없앨 수 없다면 그것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여야 할 터인데 그는 땅을 머리에 처박고는 ‘국가’가 안보이므로 없어졌다고 믿으라고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의 예언 – 혹은 바람? – 과는 달리 여전히 OPEC은 건재하다.

다국적 제약회사와 맞선 태국정부의 값진 승리

지난 번에 이 블로그에서 태국 정부가 다국적 제약회사의 의약품에 대해 강제실시권(주1)을 발동하기로 하였고 이에 대해 해당 기업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원문보기) 최근 소식에 따르면 결국 태국정부의 승리로 끝났다고 한다.

태국 정부는 그동안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에이즈치료제, 심장약, 암 치료제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약품에 대하여 특허를 파기하고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겠다는 카드를 내놓았다. 결국 제약회사들은 이에 굴복하여 스위스 로슈사는 폐암 및 췌장암 치료제인 엘로티닙(상품명: 타세바)의 가격을 30%, 프랑스 사노피-아벤티스사는 폐암 치료제인 도세탁셀(상품명: 탁소티어)의 가격을 60% 내리는데 합의하였다. 또한 스위스 제약사인 노바티스는 작년말 자사 암 치료제인 이마니팁(상품명: 글리벡)에 대해 태국 정부가 특허파기를 철회할 경우 빈곤층에 한해 이 약품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한편 태국정부가 그동안 자국의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WTO의 TRIPs 협정의 근거항목은 다음과 같다.

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PUBLIC HEALTH
TRIPS 협정과 공중 보건에 관한 선언

(b) Each Member has the right to grant compulsory licences and the freedom to determine the grounds upon which such licences are granted.
각 회원국은 강제실시권을 허가할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실시권이 허가될 수 있는 영역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c) Each Member has the right to determine what constitutes a national emergency or other circumstances of extreme urgency, it being understood that public health crises, including those relating to HIV/AIDS, tuberculosis, malaria and other epidemics, can represent a national emergency or other circumstances of extreme urgency.

각 회원국은 국가적 응급상황 또는 극도의 비상상태의 상황 구성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것은 HIV/AIDS, 결핵, 말라리아와 다른 유행병과 관련되는 공중 보건 위기가 국가 응급상황 또는 극도의 비상상태상황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협정은 지적재산권의 강국인 선진국과 상대적 약자인 제3세계 국가들의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타협에 의해 탄생한 협정이니 만큼 승인 요건의 내용이 애매하고 추상적이어서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다. 예를 들자면 특정국가가 강제실시권을 발동함에 있어 그 범위와 기간을 한정시켜야 하고 사유가 종료되는 즉시 강제실시권을 종료하여야 하는 제약이 있다. 또한 해당 조항이 자유시장 원칙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침해한다는 명분으로 미국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의 승인은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 태국정부의 승리는 어쩌면 단순한 법리논쟁이나 공공성과 수익성 간의 갈등이라는 차원을 떠나 한 힘없는 주체인 태국정부가 국가 단위 이상의 권력을 키워가고 있는 주체인 다국적 제약회사와 그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강대국을 상대로 용기 있는 도발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많은 빈국들이 2001년 신설된 이 강제실시권 규정을 알고는 있었으나 감히 실시하지 못하고 제풀에 포기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태국의 경우를 보고 다른 나라들도 ‘하면 된다’ 는 자신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글들
http://www.e-healthnews.com/article/view.jsp?art_id=27470&cd=60
http://cafe.naver.com/ripc.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9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4&dir_id=41401&eid=lOGVb7Lt0L2A3iszF1zPtFpTmPBozvEg&qb=d3RvILCtwaa9x73Dscc=

(주1) WTO는 지난 2001년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과 같은 질병이 만연한 국가는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국제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합의, 특허 보유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의약품을 생산 또는 판매할 수 있도록 강제실시권 발급 규정을 신설했다.

세계최초의 주식회사에 관하여, 그리고 딴 소리

1.

회사(會社)란 무엇인가? 상법상의 정의는 상행위(商行爲) 및 기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社團法人)이다.(주1)자본주의의 발전은 회사라는 이러한 영리 단체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자본주의 이전에도 이윤을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을 벌인 일은 많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업공동체는 오늘날의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사업체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것이었다.

특히 회사가 자연인이 아니면서도 권리와 의무를 갖는 존재라는 점에서 중세의 수도원과 대학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유한책임 – 특히 주식회사 – 의 원리는 길드와 상인조합의 그것을 적용한 것이다.

위와 같은 폐쇄적 공동체에게 주어졌던 특권이 공개적 사업공동체에 주어진 것은 1555년 영국에서의 일이었다. ‘머스코비 회사(Muscovy Company)’ 혹은 ‘러시아 회사(Russia Company)’로 불린 사업공동체에 법인의 지위가 부여되고 주식 발행 및 거래가 허용된 것이다. 이 회사는 정부로부터 ‘무역에 관한 특허권’을 부여받았기에 ‘수탁회사(Chartered Company)’라 불리었다.

이 회사는 여왕 메리 1세로부터 러시아무역독점의 특허권을 획득한 후 6천 파운드의 자본금으로 3척의 상선과 기타 상품을 구입하여 설립되었다. 이 시대 이전의 대부분의 무역상들도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끌어 모으긴 했지만 – 예를 들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처럼 – ‘주식’을 발행하고 법인의 성격을 지닌 것은 최초라 할 수 있다.

머스코비 회사가 활약하던 이 시기는 영국이 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에서 노예독점권을 깨뜨리면서 스페인과 제해권 다툼에서 승리한 시기이고,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영국해군의 사기가 한껏 고양된 시기였다. 그러므로 머스코비 회사를 비롯하여 이후 설립된 여러 수탁회사들의 목적은 콜럼버스, 마젤란 등이 발견한 신대륙의 상권을 정부와 상인이 공동으로 장악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라 할 수 있는 머스코비 회사는 17세기에 네덜란드 상인이 강력한 경쟁자로서 대두하고, 러시아 황제의 영국 상인에 대한 태도가 냉담해지자 점차 쇠퇴하여 갔다. 그렇지만 1600년 설립된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 등 뒤를 잇는 수탁회사들은 200여 년을 넘게 존속하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며 성장해갔다.

2.

21세기 세계화가 일상적인 화두가 되어버린 요즈음은 ‘회사’ 또는 ‘기업’은 이미 한나라에서, 그리고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한 법적권리주체다. 그들의 선조인 수탁회사들이 정치권력의 비호 아래 그들의 잇속을 챙겨주는 한편으로 부를 축적한 ‘정치권력 기원의 정경유착’의 형태를 보인 반면(주2) 오늘날에는 경제 권력의 극대화를 위해 정치권력을 조율하는 ‘경제권력 기원의 정경유착’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주3)

개인적으로 기업의 행태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비롯한 친기업주의자들의 논리가 오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축적한 보편타당의 원리의 왜곡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행동을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프랑스 혁명 등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자유주의 사상의 발전에서 ‘침해받을 수 없는 인권’ 등을 ‘침해받을 수 없는 이익추구 행위’ 등으로 치환함으로써 자신들의 사익추구를 정당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전 시기에서 기업은 일상적으로 권리를 제한받아 왔다. 대표적으로 ‘주식회사 설립금지’가 바로 그 사례다. 주식회사는 주주가 회사의 채무 등에 대하여 유한책임을 진다는 것으로 이익추구 행위를 정당화한 이 중 가장 유명한 아담스미스마저 반대하였던 방식이다. 그리하여 오랜 기간 주식회사는 여러 법적제한을 받아오다. 19세기가 되어서야 허용되었던 제도다.

오늘 날 거칠 것 없이 영역을 확장하는 금융자본 역시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서구 전반에 걸쳐 각종 제재를 받아왔었다. 그러던 것이 미 정부의 경제정책과 더불어 탈규제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오늘날 금융세계화로 지칭되는 지구촌 전반의 금융 탈규제와 자유화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각종 탈규제와 이를 통한 기업집중 및 거대화, 이후의 초국적화는 기업을 어느덧 국가라는 단위를 넘어선 거인으로 둔갑시켰다. 이미 오래전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경제단위 중 대다수를 국가가 아닌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주4)

그러다보니 어느덧 자유주의는 ‘정치적’이라는 수사 대신에 ‘경제적’이라는 수사를 대표하는 표현이 되었고 ‘기업의 자유’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자유’가 되어버렸다. 그 하이라이트가 ‘WTO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이들 ‘자유’라 이름 붙여진 협정 들은 머스코비가 왕으로부터 부여받은 특허권(charter)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예전의 특허권이 개별 회사가 일개 국왕에게 개별 사업에 대해 부여받았던 한시적인 독점권이었다면 이번 특허권은 전체 회사가 – 물론 초국적 독점기업이 가장 유리하다 – 세계 모든 정치지도자에게 모든 사업에 대해 부여받는 영구적인 독점권이다. 심지어 한미FTA는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국가의 항복문서까지 별책부록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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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India House by Thomas Malton the Younger” by Thomas Malton the Younger (1748-1804) – Yale Center for British Art [1].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3.

그러면 기업을 하지 말란 이야기냐 혹은 정부의 과도하고 무원칙한 규제가 타당하다는 이야기냐 하는 분이 계실까 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몇 마디 더 적도록 하겠다.(물론 무원칙하고 과도한 규제는 반대한다)

기업은 1인1표가 아닌 1주1표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개념이다. 민주주의라 함은 자유주의와 함께 인류가 오랜 투쟁을 통해 쟁취해낸 보편타당한 정치원리다. 경제체제가 어떻게 되었든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의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를 지켜야 하는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복지제도 등 공적 부조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주5)

기업은 한편으로 사회구성원 대다수에게 일자리를 주는 순기능을 하면서도 이윤극대화라는 내부동인에 의해 자신들의 자유를 외치면서 사회전체의 공익을 침해하면서 발전해온 측면이 크다. 더욱이 오늘 날 가속화되고 있는 민영화 논리는 민간의 효율성이라는 또 다른 자유주의 논리로 무장하고 사회적 자산과 복지제도를 공격하고 있다.(주6)

자연인도 극단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사회를 위해 그의 자유는 일정 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사회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뼈 빠지게 일해서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오늘날 초국적 기업은 세금감면을 미끼로 던지는 국가, 혹은 지방정부로 이리저리 자유롭게 움직인다.(주7)

이를 가리켜 비판자들은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라고 부른다. 개별 정부는 고용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기업에 단물만 빨리고 공적재원은 세금감면 탓에 바닥날 것이기 때문이다.

4.

두서없이 이야기했지만 이상이 바로 사람을 닮은 또 하나의 거대한 권리주체, 기업의 자유가 제한되어야 할 이유다. 기업의 건전한 경제활동은 사회 공공성이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사회전체의 경제적 효용이 있는 한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 기업이 극단의 자유까지 보장받게 되고 나머지 사회의 공공성은 해체된다면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공멸뿐이기 때문이다.

 

(주1) 오늘 날의 회사 형태는 합명회사, 합자회사, 주식회사, 유한회사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2) 아직도 부르주아지는 평민들과 함께 제3계급일 뿐이었다

(주3) 어쩌면 우리는 이미 기업이 하나의 국가권력과 동일시되는 ‘로보캅’이나 ‘에일리언’과 같은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4)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상품은 ‘Made in USA’나 ‘Made in China’가 아니라 ‘Made by Samsung’ 혹은 ‘Made by Google’이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주5) 복지제도는 어쩌면 체제 옹호적이고 사회재생산에서 자본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기능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주6) 복지제도에 대한 극단적 자유주의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 보려면 마이클무어 감독의 Sicko를 보라

(주7) 개인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개인이 이렇게 하면 비참한 이주노동자 신세로 전락할 뿐이다

식량안보의 위기,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현재 지구적인 차원에서 식량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이러한 가격상승의 원인은 다양한 요인이 지적되고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전 세계 식량의 자유무역에 따라 카길 등 극소수의 곡물 메이저가 가격결정력을 쥐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독점가격이 형성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다른 원자재 시장과 마찬가지로 식량 시장도 중간에 이른바 선물거래 등으로 가격에 거품을 집어넣는 투기세력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들의 투기적 거래를 통한 중간마진의 부풀리기 때문에 소비자가격은 산지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게 형성되곤 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 주로 수요-공급 패턴에서 원인을 찾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제기되는 가격상승의 원인은 유가폭등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신흥시장의 성장으로 인한 가격상승이다. 중국, 인도 등의 국가들이 경제상황이 호전되면서 이들의 식량의 구성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들 신흥강국에서의 식생활 패턴이 핏자, 햄버거 등 서구취향으로 바뀌면서 이들 식량들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논리다.

인도의 경우 지난 15년 동안 고기의 소비량이 40% 상승하였다는 것이 골드만삭스의 조사결과다. 그리고 이렇게 육류의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자연히 동물들의 사료에 사용되는 옥수수 등 곡류의 수요 역시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옥수수가 고유가 시대를 맞이하여 대체 연료로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수요에 부채질을 하게 된 셈이다.

확실히 육식인구의 증가는 장래 적정한 식량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육식의 종말 (저자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책은 육식으로 인한 전 세계의 기아문제나 환경파괴문제의 심화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지구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3분의 1이 축우와 다른 가축들 사료로 소비”되며 “소 1만 마리 사육에서의 배출되는 유기폐기물은 11만 인구의 도시의 쓰레기양과 맞먹는”다고 한다. 결국 육류 소비 증가는 지구적인 차원에서 불평등 문제와 환경 문제를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외에도 지적되고 있는 식량 가격 폭등의 원인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바이오 에너지의 부각에 따른 가격상승,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차질,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유통가격의 상승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상에서 열거된 식량 가격의 등락의 원인과 결과에 관련하여 생각하여야 할 문제가 바로 우리의 올바른 식량 공급체계의 수립이다. 항상 그래왔지만 최근의 배추값 폭등 사례는 올바른 공급계획 등 공급체계의 수립과 그것의 효율적인 소비시장의 정비가 없는 상태에서의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낙관’은 얼마나 부질없는 믿음인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즉 전 세계의 식량 수급상황에 우리의 식량공급 체계가 휘둘린다면 앞으로 국내 소비자들이 당할 피해는 배추값 폭등을 초월하는 상상 이상의 것일 개연성이 크다.

이미 FTA가 적어도 영세한 규모의 국내 농어업 종사자에겐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FTA를 통해 더 좋은 질의 식량을 더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정부로의 지속적인 선전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상당히 널리 유포되어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수급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식량 가격 동향을 보고 있자면 오늘 국내생산 품목보다 싼 품목이 언제 더 높은 가격에도 살 수 없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농어업의 ‘비교역적 기능’에 해당한다. 식량은 ‘식량무기화’라는 위험성 때문에 그 자체로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인 것이다.

그 원인이 곡물 메이저의 장난에 의한 것이든, 원자재 펀드의 장난에 의한 것이든, 또는 신흥경제성장국의 식생활 패턴의 변화에 의한 것이든 간에 일단 FTA나 WTO 등을 통해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된 후에는 더 이상 손을 쓸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싸게 사먹는다고 좋아했던 수입농산물이 어느 순간 농약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유전자 조작 식품임을 알게 되고, 그마저도 식량수급의 난항으로 인해 사먹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일개 국가는 더 이상 손쓸 수단이 없게 될 것이다. 지금 바로 눈앞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식량전쟁이 허튼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 전쟁이 정말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문제로 심화되었을 경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FTA로 농어민만 피해입고 제조업은 융성하여 나라가 잘 산다는데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탓해봤자 너무 늦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참고글 : “‘전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전대미문 F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