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강제실시권

다국적 제약회사와 맞선 태국정부의 값진 승리

지난 번에 이 블로그에서 태국 정부가 다국적 제약회사의 의약품에 대해 강제실시권(주1)을 발동하기로 하였고 이에 대해 해당 기업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원문보기) 최근 소식에 따르면 결국 태국정부의 승리로 끝났다고 한다.

태국 정부는 그동안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에이즈치료제, 심장약, 암 치료제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약품에 대하여 특허를 파기하고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겠다는 카드를 내놓았다. 결국 제약회사들은 이에 굴복하여 스위스 로슈사는 폐암 및 췌장암 치료제인 엘로티닙(상품명: 타세바)의 가격을 30%, 프랑스 사노피-아벤티스사는 폐암 치료제인 도세탁셀(상품명: 탁소티어)의 가격을 60% 내리는데 합의하였다. 또한 스위스 제약사인 노바티스는 작년말 자사 암 치료제인 이마니팁(상품명: 글리벡)에 대해 태국 정부가 특허파기를 철회할 경우 빈곤층에 한해 이 약품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한편 태국정부가 그동안 자국의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WTO의 TRIPs 협정의 근거항목은 다음과 같다.

DECLARATION ON THE TRIPS AGREEMENT AND PUBLIC HEALTH
TRIPS 협정과 공중 보건에 관한 선언

(b) Each Member has the right to grant compulsory licences and the freedom to determine the grounds upon which such licences are granted.
각 회원국은 강제실시권을 허가할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실시권이 허가될 수 있는 영역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c) Each Member has the right to determine what constitutes a national emergency or other circumstances of extreme urgency, it being understood that public health crises, including those relating to HIV/AIDS, tuberculosis, malaria and other epidemics, can represent a national emergency or other circumstances of extreme urgency.

각 회원국은 국가적 응급상황 또는 극도의 비상상태의 상황 구성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것은 HIV/AIDS, 결핵, 말라리아와 다른 유행병과 관련되는 공중 보건 위기가 국가 응급상황 또는 극도의 비상상태상황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협정은 지적재산권의 강국인 선진국과 상대적 약자인 제3세계 국가들의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타협에 의해 탄생한 협정이니 만큼 승인 요건의 내용이 애매하고 추상적이어서 달리 해석될 여지가 많다. 예를 들자면 특정국가가 강제실시권을 발동함에 있어 그 범위와 기간을 한정시켜야 하고 사유가 종료되는 즉시 강제실시권을 종료하여야 하는 제약이 있다. 또한 해당 조항이 자유시장 원칙과 지적재산권 보호를 침해한다는 명분으로 미국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의 승인은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 태국정부의 승리는 어쩌면 단순한 법리논쟁이나 공공성과 수익성 간의 갈등이라는 차원을 떠나 한 힘없는 주체인 태국정부가 국가 단위 이상의 권력을 키워가고 있는 주체인 다국적 제약회사와 그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강대국을 상대로 용기 있는 도발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많은 빈국들이 2001년 신설된 이 강제실시권 규정을 알고는 있었으나 감히 실시하지 못하고 제풀에 포기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태국의 경우를 보고 다른 나라들도 ‘하면 된다’ 는 자신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글들
http://www.e-healthnews.com/article/view.jsp?art_id=27470&cd=60
http://cafe.naver.com/ripc.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9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4&dir_id=41401&eid=lOGVb7Lt0L2A3iszF1zPtFpTmPBozvEg&qb=d3RvILCtwaa9x73Dscc=

(주1) WTO는 지난 2001년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과 같은 질병이 만연한 국가는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국제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합의, 특허 보유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의약품을 생산 또는 판매할 수 있도록 강제실시권 발급 규정을 신설했다.

지적재산권을 무시하고 자국민을 보호하기로 결정한 태국정부

EU가 우리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 ‘자료 독점권’ 등 지적재산권의 배타적인 보호를 주장하는 가운데 최근 태국 정부는 제네릭 의약품의 공급을 위해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권을 유보하는 이른바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을 발동해 제약회사와 마찰을 빚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태국정부는 올해 1월 29일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정부 등의 승인을 얻은 제3자가 특허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 협정의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을 발동해 제네릭 의약품 생산을 승인한 바 있다.

당시 태국 정부가 인정한 제네릭 의약품은 미국 제약회사인 애보트의 에이즈 치료제인 칼레트라와 브리스톨마이어스와 사노피아벤터스사의 고혈압 치료제인 플래빅스 등 2종이다. 플래빅스의 경우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은 한 알당 원제품(2달러)의 11분의 1 수준인 18센트다. 결국 이러한 조치 덕분에 가난한 이들은 더 싼 값에 약을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태국 정부는 또한 현재 인도로부터 값싼 원료들을 계속 수입해오고 있으며 네 종류의 암치료제에 대해서도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것을 고려중이라 한다.

이 분야의 운동단체들은 이러한 조치를 통해 태국이 일종의 이정표가 되어 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태국의 선례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톤에 자리 잡고 있는 에센샬액션의 로버트 와이스만은 “태국의 노력은 의약품을 사용가능하고 공급 가능하게끔 하는 지속가능한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한편 제약회사들은 태국의 행동이 지적재산권의 침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태국의 일련의 조치들이 의료 혁신을 위한 연구작업의 자금조달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또 태국이 그런 조치를 취하기 전에 WTO의 규칙에 따라 자신들과 협의했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스턴에 있는 노스웨스턴 대학의 교수인 브룩 베이커는 태국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법에 따르면 태국의 행동은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 등 다른 여러 나라들도 태국의 선례를 따라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대륙의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배타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의약품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인도에서는 29일 수만명의 의료업 관계자와 환자들이 모여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특허 관련 소송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노바티스가 최근 제네릭 약품 생산을 금지하기 위해 인도특허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노바티스는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막지 말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신약개발을 위한 투자에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비싼 가격을 매겨야 한다는 제약회사와 살기 위해서 가산을 탕진해야 하는 서민들 간에 갈등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해답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결국 의약품은 일종의 공공재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현재 그것의 공급은 전적으로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상황이 모순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적재산권이 지켜져야 함은 타당하지만 시장이 현재 지적재산권을 너무 과도하게 보호 내지는 확대적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전통적인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증폭시킨다고 하였다. 즉 생산관계는 사회화되어 있는데 생산수단이 사유화되어 계급간 모순이 깊어져 간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적재산권’의 사적소유 역시 체제모순의 심화의 한 매개체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가 공유하던 보편적 지식이 조합되어 어느 순간 개별기업에 의해 사유화되고 그것에 대한 시장가격은 독점에 대한 프리미엄으로 말미암아 높아지곤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본주의 시장의 궁극적인 모순의 접점은 이른바 ‘적정하고 타당한 시장가격’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적정하다고 여기지 않아도 독점업체가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흔히 그 모순의 해소는 거칠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