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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이 자본주의 이상향을 실현해줄 것인가?

삼식부기 회계는 기업 지배 구조를 혁신하는 다양한 블록체인의 사례 가운데 첫 사례에 속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기업들은 합법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주주운동가 로버트 몽크스 Robert Moks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는 CEO또는 이른바 제왕적 경영인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이익에 의해 돌아가는 과두체제와 같습니다.” 블록체인은 주주들에게 권력을 돌려준다. 자산에 대한 권리를 표창하는 ‘비트셰어’라는 토큰이 하나 또는 다수의 투표에 따라 생성될 수 있고, 각 투표는 기업의 특정한 의결 사항을 대변한다. [중략] 일단 투표가 이루어지면, 이사회 회의록과 의결 내역이 타임스탬프에 따라 불변 원장에 기록된다.[블록체인혁명, 돈 탭스콧/알렉스 탭스콧 지음, 박지훈 옮김, 을유문화사, 2017년, pp 153~154]

올해 비트코인 등 이른바 가상화폐 광풍이 불고 있다. 특히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량의 상당부분이 한국 소재의 거래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하니 새삼 ‘한국인의 역동성은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비트코인이니 이더리움이니 하는 가상화폐 또는 스마트계약들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기반을 두어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상식이 된 것 같다. 인용한 글이 담겨져 있는 블록체인혁명이라는 책은 바로 그 블록체인 기술로 우리가 미래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현황과 성찰을 담은 책이다.

인용문은 그중에서도 블록체인을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로드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식부기는 우리가 복식부기라 부르는 재무제표가 두 가지 장부 기록이 있는 반면, 블록체인을 이용하여 “월드와이드 원장”에 제3의 장부기록을 추가하는 방식을 일컫는 용어다. 기업이 각종 활동을 벌일 때마다 이 거래를 기록하고 블록체인에 타임스탬프가 찍힌 영수증을 발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삼식부기가 일반화되면, 시장은 최신 재무보고서는 분기에 한 번씩 기다릴 필요 없이 필요할 때마다 버튼 한번으로 출력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자본주의를 “분산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주식회사라는 도구가 발명된 이후 우리는 명목상으로는 이 도구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즉, 우리는 공인된 주식 거래시장의 설치, 주주자본주의 강화를 위한 입법 및 규제, 기업의 투명성을 위한 회계 및 공시 등 수많은 대안과 통제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인용문에서의 어느 주주운동가가 말하듯 여전히 기업은 – 주식회사조차 – “제왕적 과두체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는 많은 부분 고의 또는 제도적 결함으로 인한 기업의 불투명성 혹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결과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을 예로 들어보자. 이 두 회사가 삼식부기에 의해 재무제표가 업데이트되었다면 주주는 보다 투명하게 회사가치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그러하지 않았기에 주주는 회사가 정한 – 법에도 그렇게 정한 바 – 주식시장에서의 거래가격으로 합병하는 것에 대한 가부의 의사결정만 할 수 있었다. 일부 주장처럼 삼성물산의 장부가가 주가총액보다 높았을 수도 있는 사실은 복식부기로는 파악에 한계가 있다. 결국 이 기묘한 주주자본주의 역할극의 파국은 “총수” 구속이었다.

삼식부기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데, ‘프로토콜을 지키지 않고 비슷한 독자적인 네트워크에 비밀스러운 가치를 숨기려 하는 부외 거래의 가능성’이 삼식부기 방식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문외한으로서도 드는 생각이 가상화폐는 프로토콜이 변경되면 새로운 가상화폐가 등장하는 것이지만, 삼식부기에서 프로토콜이 바뀌면 기존의 “불변”의 거래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럼에도 블록체인을 통한 기업 투명성 제고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야말로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효율적 시장가설의 이상향이 아닌가?

왜 중앙은행들은 자산을 보유하는가?

왜 중앙은행이 자산을 보유하는지에 대한 여태 접한 중 가장 흥미로운 생각 : 역자 주

Why do central banks have assets?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살펴보게 되면 그 은행이 부채(대부분은 통화)와 자산(보통 대부분은 정부의 장단기 채권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왜 중앙은행들은 자산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그것이 필요한가?

잘못된 대답은 중앙은행들이 통화가치를 “뒷받침(back)”하기 위해 자산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다면 종이 통화는 가치가 없다는 대답이다. 옳은 대답은 : 정부가 어쨌든 중앙은행으로부터 모든 이윤을 거둬들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에게 자산을 줄 이유가 없다. 자산을 소유하는 것은 은행으로 하여금 코스를 거꾸로 하여 만약 필요할 경우 돈의 공급을 줄일 수 있게 하기위해서다. 그리고 그것이 회계사들을 돌아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잘못된 대답부터 우선 살펴보자. 돈의 가치에 대한 “뒷받침” 이론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통화 가치는 통화를 뒷받침하는 중앙은행의 자산의 가치와 동일하고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가격수준의 재정이론과 다른데, 그것은 채권을 더한 통화의 가치는 주요 재정잉여의 현재가치와 동일하고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뒷받침 이론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본래 가치가 없는 종이돈이 어떻게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가치 있는 자산이 그것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뮤추얼펀드의 주식과 같다. 그것들은 펀드의 자산의 가치와 동일하고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

돈의 뒷받침 이론에 반하는 세 가지 논점이 있다:

1. 중앙은행의 자산은 보통 부채도 같은 통화로 규정지어지는 모든 명목(nominal) 자산이랄 수 있다. 가격수준이 하룻밤 사이에 마술처럼 두 배가 되었다고 해보자. 그리고 통화의 실질(real) 가치가 반절로 줄었다고 해보자. 중앙은행이 보유한 채권의 실질가치 또한 반절로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가격수준의 마술 같은 곱절은 통화의 가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산의 가치 사이의 동일함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뒷받침 이론은 가격수준이 비결정적인 체로 남게 한다. 그것은 오로지 자산이 실질자산일 경우에만 고정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은행자산의 10%가 실질(금 보유고, 건물을 포함한)이라면, 그 실질자산의 (건물이 불타서) 1%의 손실은 가격수준의 10% 상승을 초래할 것이다.

2. 뮤추얼펀드가 채권을 가지고 있으나, 채권이자는 (펀드를 굴리는데 드는 관리비용을 제하고) 어떤 제3자에게 넘어가고, 뮤추얼펀드의 주식소유자에게는 가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그 뮤추얼펀드의 주식을 소유하고 싶겠는가?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의 순현재가치는 0이 될 것이다. 그래서 주식은 또한 가치가 0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확히 중앙은행이 하는 일이다. 매년 중앙은행들은 그들이 보유한 채권으로부터 이자수익을 올려, 관리비용을 제외하고 모든 수익을 통화의 보유자가 아닌 정부에게 넘긴다.

3. 우리는 왜 돈이 가치를 가지느냐 대해 설명할 “뒷받침”이 필요 없다. 사람들은 돈이 교환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교환의 매개체 더미는 쇼핑을 더 쉽게 하기 때문에 돈더미를 보유하기 원한다. 이는 돈에 대한 (저장) 수요를 창출한다. 중앙은행이 돈의 공급을 제한한다고 가정할 때에, 수요와 공급 곡선의 교차점이 돈 가치의 양평형을 만든다(어떤 특정한 가격수준). 이제 당신은 만약 종이돈이 가치가 없다면 그것은 교환의 매개체로 기능할 수 없고, 그래서 종이돈이 그것이 가지는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돈의 가치의 수요 공급 이론이 논점을 옳다고 가정해놓고 논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돈의 가치에 대한 표준이론에 대한 비판에는 진실도 있다. 참으로 거기에는 두 개의 평형상태가 있다. 평범한 것은 종이돈이 가치를 가지는 곳에서, 그리고 이상한 것은 그것이 가치가 없는 곳에서다. 그러나 루드윅 폰 미제스는, 예를 들어, 1912년 그의 돈의 퇴보이론에서 이러한 문제를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돈이 처음 첫 출발하기 위해서는 상품 돈이 될 필요가 있거나 상품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일단 사회적 제도로써 출발하면 교환의 매개체에 대한 수요가 상품의 산업적 수요를 보충하게 되고, 상품의 뒷받침은 종국에는 관습이 이 이상한 평형으로부터 우리를 꺼내게 됨에 따라 사라질 것이다.(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주가 패망한 이후 종이돈을 재도입했을 때에 무에서 출발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그것을 쌀과 교환하게끔 만들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폰지 사기는 일종의 부채는 있지만 그 부채를 뒷받침하는 자산이 없는 금융기관과도 같다. 종이돈은 정확히 폰지 사기처럼 작동할 수 있지만,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폰지 씨는 그의 고객들에게 높은 금리의 이자를 약속했고/했거나 자본이득을 약속했다. 그들이 그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의 부채를 들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캐나다 은행은 제로 금리와 제로 명목 자본이득, 그리고 그 종이돈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2%의 실질금리를 약속한다. 폰지 씨는 자산을 사용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캐나다 은행은 자산을 모두 써버려도 종이돈에 대한 (실질) 수요가 연간 2% 보다 더 빨리 떨어지지 않는다면 약속을 지킬 수 있다. (만약 돈에 대한 실질 수요가 연간 2%로 떨어진다면 돈의 항상 명목 공급은 연간 인플레이션으로 2% 수익을 얻을 것이다.)

캐나다 은행은 자산이 필요 없는데, 종이(돈 : 역자 주)의 (실질) 수요의 장기적 증가가 사람들이 종이(돈 : 역자 주)를 보유하려는 실질 이자율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폰지 씨가 같은 테스트를 충족하였더라면 그 역시도 자산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높은 음(陰)의 실질수익률에서조차도 (짐바브웨) 종이돈을 보유하려 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쇼핑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부채의 가치가 그 자산의 가치와 동일한 유일한 이유는 그것들의 (순가치) 차이가 너무 커질 때마다, 은행이 그 수익을 정부로 이전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중앙은행이 자산을 그들의 부채와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리고 연간수익을 오직 정부에게만 이전한다면, 그러면 그들의 자산의 가치가 그들의 부채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뒤집은 것이다. 그들의 자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부채의 가치다.

그래서 도대체 왜 중앙은행들은 자산을 보유하는가? 세 가지 이유다.(3이 얼마나 마술 같은 숫자인지 재밌다)

1. 중앙은행의 소유자들에게 (정부) 중앙은행이 채권을 보유하고 있거나 그 이자를 매년 정부에게 이전하거나, 혹은 중앙은행이 채권을 정부에게 주어버리거나 상관이 없다. 정부는 어쨌든 이자를 수취한다. 그것은 여타의 몇몇 손을 거쳐 흘러갈 뿐이다. 일종의 세탁이다.

2. 보통 종이돈에 대한 실질 수요는 연간 3% 정도로 증가한다.(거칠게 GDP의 증가율과 동일한) 그러나 어떤 때에는 이보다 빨리 증가한다(작년처럼). 그리고 어떤 때에는 이보다 떨어진다(내년처럼?). 만약 돈의 수요가 떨어지면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돈의 공급을 줄일 것이고, 자산을 팔아서 돈의 공급을 줄일 것이다. 만약 자산을 전부 처분해버리면 이 짓을 할 수가 없다.

3. 복식부기와 대차대조표 등과 같은 회계를 통해 그들은 돈들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이 계산이 맞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모든 것이 적절히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체크하기 위해 한 쪽에 자산을 기록하고 다른 쪽에 부채를 기록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통화는 중앙은행의 부채에(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을 변제하겠다거나 이자를 지불하겠다는 약속은 없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쪽에는 자산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회계사라면 그가 통화를 부채에 기록했는데 자산으로 동일가치를 찾지 못할 경우 돌아버릴 것이다. 그는 중앙은행이 폰지 사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그리고 회계사들에게 어떤 폰지 사기들은 진짜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려 노력하는 말다툼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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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약 뮤추얼펀드가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몇몇 투자 사업에 참여해서 현재 주식가치 등이 1천억 원 정도 되는데 만일 그 펀드가 상장된 펀드라면 마땅히 그 펀드의 주가총액은 1천억 원 근처로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 역자 주
  2. 만약 뒷받침하고 있는 자산이 해당 통화단위로 표시되는 채권이 아니라 원자재(예를 들면 금, 석유, 곡물 등)라면 그것이 정확하게 상관관계를 가지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즉 통화를 지지하는 자산이 통화가치의 변화에 무관하게 가치를 온존하고 있어야 – 어떤 본질적인 가치 – 자산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만일 중국이 오늘 날 그들의 외환보유고에 미재무부 채권이 아닌 금이 쌓여있었다면 이렇게 고민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 역자 주
  3. 통화의 소유자는 중앙은행에게 있어서는 채권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앙은행은 채권자에게 이자(즉, 통화라는 채권의 이자)를 지불하는 대신 그 이자를 정부에게 지불한다는 의미다. : 역자 주
  4. 실질 금리는 명목 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수치로 산정한다. 따라서 명목금리가 제로금리인데 물가가 상승하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 역자 주
  5. 하지만 국가기관이 마이너스 실질 금리를 약속한다고 해서 개인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역자 주
  6. 이 부분은 과장이 있다. 내가 짐바브웨 사람이라면 짐바브웨 통화를 보유하기보다는 기를 쓰고 달러를 모으거나 기타 자산을 부지런히 매입했을 것이다. : 역자 주

off-balance sheet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위기에 대해 차베스나 그린스펀만큼이나 할말이 많으실 것 같은 – 또는 논평을 집요하게 강요당하실 것 같은 – 장하준 교수께서도 한겨레21에서 평소 그의 지론에 입각하여 현 사태를 비판하셨다. 역시 평소의 그답게 깔끔하고 명쾌한 해석이 돋보이므로 일독을 권한다.(포카라님의 글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이곳으로 가실 것)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해서는 파생상품·복합상품이 너무 많고 손실 보고가 안 되는 ‘오프 밸런스 시트’ 같은 것도 있어서 금융사 자신도 정확한 피해규모를 모른다.

파생상품이니 복합상품이니 하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어보셨을 것으로 판단되어 “오프 밸런스 시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이 단어는 off-balance sheet,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부외금융(簿外金融)이다. 우리말이 더 어렵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A기업이 돈 100억 원을 빌려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싶다. 한데 부채비율이 300%여서 돈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면 이 회사는 자본금을 5천만 원의 B라는 부동산 개발 전용 회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C은행에 가서 부동산 사업의 사업성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 이른바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인 셈이다. 물론 은행이 사업성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진 않는다. A의 지급보증 등이 채권보전책으로 강화된다.

이제 한번 살펴보자. A는 C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을까? 아니다. B가 차주이고 A는 지급보증만 선 것이다. 그러므로 A의 대차대조표(balance sheet)에는 100억 원이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다만 지급보증을 주석에 기록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off-balance sheet 효과다. 그리고 B라는 부동산 개발 전용 회사는 일종의 도관체(conduit)다. 정작 A가 사업을 한 것인데 B라는 도관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은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 거네!’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신용도가 낮은 회사가 유망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좋은 구조이기도 하다. 은행입장으로서는 대출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고 – 회장님의 술값 등 – 자신들이 경제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업에 올바르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B라는 회사의 재무제표만 감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게 부실한 업체나 투자은행 등에서 남발되면 금번과 같은 대형사고의 진원지가 된다는 것이다. 부실한 업체 D의 부실한 회계감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온갖 파생상품과 부실사업들은 곪아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투자자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에 엔론이 이런 식으로 사세를 고질라처럼 불려나가다가 빵하고 터져버렸다. 물론 이번 월스트리트가 사고 친 걸 보고 있자니 그때의 사건은 자그마한 해프닝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회계규칙은 이러한 off-balance sheet를 차단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투자은행들의 경우 바젤2 등을 통해 위험가중치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규제 없는 시장은 없다. 규제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못 따라잡거나 비합리적인 규제가 나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