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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이 예정되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임

그러나 연준이 소비자 가격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산 가격 또한 올렸다. 이는 호니그와 같은 은행 감시자에게 경고등을 울리는 인플레이션의 한 형태였다. 캔자스시티연준 지역에 있는 은행들에게 주요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농장의 가치가 급격하게 올랐다.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도 그렇고, 유정이나 시추공의 가치도 그렇다. 이러한 자산들은 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담보가 된다. 그리고 가치가 올라가면 보다 공격적인 대출을 자극하게 된다. 미국 중서부 지역의 은행들은 농장주, 기업, 그리고 부동산에 대한 대규모 대출을 확대했다. 호니그는 자산 가치가 매우 빠르게 상승하면 건물이 준공되는 순간 대출이 대환(refinance)될 수 있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단기 대출이 연장되는 상황에 대해 듣게 된다.[The Lords of Easy Money : How the Federal Reserve Broke the American Economy, Christopher Leonard, 2022년, Simon & Schuster]

연준 혹은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금융회사와 개발업자, 그리고 심지어 정부가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 특히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 – 싫어하는 것은 아닌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금융회사 담보의 건전성이 높아지고 더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다. 개발업자는 금융회사의 공격적인 대출을 통해 더 높은 레버리지 효과를 향유할 수 있다. 정부는 자산 가격이 높아지는 만큼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다. 단기 대출은 낙관적 시나리오에 따라 개발사업의 보다 이른 단계에서부터 가능하게 되고, 건물이 준공되면 또 다른 공격적인 금융회사는 앞선 대출을 채간다. 시장경제에서의 금융자본의 순기능이 잘 작동하는 전형적인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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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n Shebs, CC BY-SA 3.0, Link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파국적 비극으로 끝장난 대표적 사례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라 할 수 있다. 사태의 원인으로 그동안 수많은 상황이 언급되었지만, 어쨌든 근본적인 원인은 자산 가격이 영원히 오를 수는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시장참여자들이 자산 가격을 엉터리 자산실사, 분식회계, 위험한 부외금융 등을 통해 위험을 감추고, 떠넘기고, 외면한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이랄 수 있다. 물론 알다시피 그 이후 글로벌 경제는 그 모순을 그대로 유지한 채 플레이어만 몇몇 교체하고 똑같은 게임을 다시 진행 중이다. 그사이 투자자산의 종류와 금융 국경은 보다 자유로워져서 판은 더 커졌는데, 상업용 부동산 등에서는 서서히 위험신호가 들려오고 있어 주의를 요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이 게임이 보다 위태하게 진행 중이란 점이 우려스럽다. 지난해 한국의 부동산, 특히 아파트값은 큰 폭의 하락세를 겪었다. “영끌족”의 고통이 미디어를 통해 소개됐다. 급기야 레고랜드 사태, 둔촌주공 사업 등에서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무장해제하고 특례보금자리론 등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여 자산 가격을 원위치시켰다. 문제는 막대한 가계부채 비율과 글로벌 고금리 상황에서 이 게임이 지탱할 수 있냐는 것이다. 판돈의 가격(금리)은 올라가고 새로 판에 낄 전주가 나서지 않는 한 언젠가는 판이 엎어질 건데 총선을 앞둔 정부나, 집값 하락이 두려운 집주인이나, 담보 부실화가 걱정스러운 은행은 모두 또다시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리파이낸스해줄 것이라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채로

“보수당이 보건 시스템을 해체하고 민영화하려 하고 있다!”

Boy George를 아는 분이 있으신지? 80년대 팝시장에 Culture Club이란 영국 밴드가 있었다. New Romantics라는 장르의 음악이 사랑받던 당시 Culture Club은 꽃미남 영국 밴드 Duran Duran과 10대의 인기를 양분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밴드의 리더 Boy George 였는데, 그는 예쁘장한 여장남자였다.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우리보다는 너그러운 서구에서조차 그의 모습은 이색적이었을 테고, 그들은 오히려 그런 사실을 자신들의 뮤직비디오에서 한 소재로 활용한다.

서두가 길었는데 어쨌든 세월이 흘러 Culture Club은 해체되었고(Duran Duran은 여전히 오리지널 멤버 대부분이 잔류한 채 음악생활을 하고 있다), Boy George는 한때 마약중독자의 삶을 살다가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며 현재는 DJ로 활동 중이라 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트위터에서 스스로 프로필에 적어놓은 사실이다. 트위터에서 Boy George는 게이 특유의 끼를 떨며 재기발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늘 그를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올린 한 흥미로운 tweet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민간 기업이 이제 NHS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보수당이 보건 시스템을 해체하고 민영화하려 하고 있다! 주의할 것!

영국의 국가보건시스템(NHS : National Healthcare System)은 국가가 국민의 보건을 책임져준다는 영국식 복지의 상징이다. 하지만 Boy George가 말하고 있다시피 이 시스템의 일부는 – 시스템 전부가 아니고 – 메이저 총리 하의 보수당 정권 하에서 민영화되었다. 즉, 병원의 신설 및 운영관리가 시장에 넘겨진 것이다. Boy George의 트윗이 의미하는 바는 아마도 이렇게 부분적으로 민영화된 NHS를 보수당이 통째로 민영화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려는 의미로 여겨진다.

일단, 어릴 적 즐겨듣던 노래를 불렀던 가수가 이렇게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느 정도 머리가 자란 내가 그것을 실시간으로 접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지난번 Jane Fonda의 경우처럼). 원래 서구의 뮤지션들은 – 특히 영국 – 정치적 입장을 선명히 하는 이들이 꽤 돼서 – Paul Weller 나 Jimmy Somerville 등 –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이 형님(아님 누님?) 그간 약간은 낯간지러운 tweet 전문이어서 더욱 신선한 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다시 NHS로 돌아가 보자. NHS의 병원을 민영화하는 방식을 영국에선 “민간금융주도(PFI : Private Finance Intiative)”라고 칭한다. 국내에서 “민간투자사업”이라 칭하는 방식과 거의 유사하다. 민간사업자는 병원시설을 짓고 의료서비스를 제외한 일반관리 서비스 등을 담당하며 정부로부터 이에 대한 대가를 수취한다. 이는 당연히 민영화(privatization)의 원조 보수당 하에서 시작했지만, 역설적이게 민영화의 속도는 노동당 정부에서 더욱 가속화된다.

메이저 정부 하에 시작된 이래, PFI는 영국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PFI를 비판하던 1997년~2010년의 노동당 정부 하에서조차, 지난 5월 선거까지 연립정부는 이미 거의 70여개의 새로운 PFI 계약을 체결했다.
Begun under the Major government, PFI is close to two decades old in the UK, and, despite criticising PFI under the 1997-2010 Labour government, the Coalition has already signed nearly 70 new PFI deals since last May’s election.[PFI ‘privatising the profit; nationalising the debt’ – Margaret Hodge]

이것이 Boy George가 부분적으로 놓치고 있는 부분인데, – 물론 그것을 담아낼 정도의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트위터가 아니니 그의 잘못은 전혀 아니지만 – 자본주의 양당체제 하에서 좌우구분은 정책의 큰 흐름에선 별 차이가 없다는 – 오히려 자유주의적 정부는 그걸 가속화하는 – 사실을 알아야 한다. NHS도 기존 분배 시스템을 상수로 보는 상황에서의 복지이므로 재정위기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고, 대안으로써의 민영화는 특정 정당이 집권한다고 뒤집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에서는 지금 PFI로 인한 부채부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영국은 현재 대략 800개 정도의 사업이 PFI 계약 하에 진행 중이고 자산 가치는 640억 파운드에 달한다. 이는 엄밀하게 정부가 부외금융(off-balance financing)을 통해 조달한 (정부가 인정하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부채다. 결국 그 부담이 앞으로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되자 George Osborne 영국 재무장관은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외상으로 잡아먹은 소가 목에 걸린 것이다.

공공조달이 빡빡할 때에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구상된 PFI 투자는 부외금융이었다.
Envisaged as way to invest in infrastructure when public finances are tight – PFI investment used to be ‘off’ balance sheet.[PFI ‘privatising the profit; nationalising the debt’ – Margaret Hodge]

이런 상황이라면 가뜩이나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영국 정부로서는 향후 추가적인 PFI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서는 새 모델이라는 것이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것일 테니 민간에게는 별 유인책이 없을, 그래서 대안이 되지 못할 가능성도 많다. 그래서 오히려 Boy George의 걱정처럼 NHS를 통째로 민영화하여 이를 통한 재정여력을 돌파구로 삼을 수도 있다. 이는 극우적인 해결책이 될 테고, 결국 변혁적인 대안이 없는 한에는 이에 대한 유혹을 수시로 느낄 가능성은 열려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일까? 우리에게도 영국의 사례가 남의 일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소위 BTO사업으로 불리는 사업들 경우 – 대표적으로 도로 – 향후 정부의 수입보전 부분이 계속 논란이 될 것이며, 이는 영국의 경우와 유사하다. 학교, 하수관거 등에 집중투자하고 있는 BTL의 경우 국가(지자체 포함)의 재정 부담이 향후 2035년까지 42조원 정도 된다. 전체 재정여력에 비해서는 큰 부담을 아닌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영국의 사정보다는 양호한 편이다.

민영화 방식은 그간 공공서비스의 시장화로 인한 서비스의 질 저하, 사익추구 등의 비판을 받아오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재정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국가가 취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의 공급대안으로 발명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환경오염과 사고의 불가피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차를 생산하고 끌고 다니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결국 근본적 대안이 아니라면, 우선 민영화를 국채처럼 국가부채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첫걸음이다.

오랜만에 여야가 공동 발의한 기특한 법안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7일 서병수 위원장과 민주당 강봉균, 오제세 의원 등 여야 기획재정위원을 비롯한 22명의 의원과 공동으로 이 같은 내용의 국가재정법, 공공기관 운영법,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등 3개 법의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고 밝혔다.[여야, 국가 재정위험 관리강화법안 제출]

오랜만에 여야가 본디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전 세계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한층 각국의 재정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재정상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른 나라의 국가부채에 비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지만 망해가는 나라들의 재정상황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덜 열악하다는 것이 어떻게 핑계거리가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현대 자본주의 국가는 좌우익의 집권 여부를 막론하고, 오히려 우익 정부일 때 더한 경향이 있을 정도로 정부의 재정집행 규모를 늘여왔다. 그 주요원인은 첫째, 자본주의의 고유모순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체제유지적인 지출의 증가가 있다. 둘째, 이와 연계하여 자본주의 기업 활동의 기반을 다져주는 것, 예를 들면 사회기반시설의 확충 및 그 유지활동에 소요되는 비용 증가가 있다. 또한 냉전시대에 확대된 군비예산의 절대규모도 있다.

이러한 정부지출은 시대가 변하거나 정권이 바뀌어도 그 폭을 대규모로 줄일 수가 없는 측면이 있는데, 그 정치노선이 어떠할지언정 예산삭감은 정치적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청난 지지율을 가진 정부가 아니라면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그런 희생을 감수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하여도 이미 체제 내에서 굳어진 경직성 경비의 규모가 상당하여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정부지출을 변칙적인 방법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였는데 그 전형적인 방법이 바로 상기 기사의 의원들이 손을 댄 법들에 근거한 지출일 것이다. 즉, 공공기관을 활용한 대리지출과 민간투자사업을 통한 채무의 부외(off balance)거래. 이들 둘은 마치 일반기업이 부외금융(off-balance sheet financing)을 통해 재무제표 상의 부채를 축소하듯이 국가부채가 적어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노린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정비 사업의 상당한 구간을 수자원공사로 하여금 시행케 하겠다는 안이다. 해당 사업들은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예비타당성분석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친 후 정부발주, 공공기관 발주, 또는 민간투자사업 등 사업추진방안을 결정하여 추진하여야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막대한 사업규모에도 불구하고 타당성 여부와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비판이 일자 수자원공사에게 사업을 맡겨버린 것이다. 결국은 국가가 갚아야 할 빚을 이전시킨 것에 불과하다.

국가채무는 재정운용의 결과로서 중장기의 재정운용계획과 연계되어야 실효성 있는 국가채무관리계획 수립이 가능할 것이고, 재정위험에 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여야 재정건전화와 재정의 지속이 가능하나, 국가보증채무 및 공공기관의 부채 등 경제여건에 따라 재정부담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재정위험요인에 대한 정보를 국회가 파악·분석하거나 예산안 등 심의와 관련하여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 [중략] 국회에 제출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전년도 국가재정운용계획 평가·분석보고서, 중장기 기금재정관리계획, 국가채무관리계획, 국가보증채무관리보고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및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른 임대형 민자사업 정부지급금예산서를 첨부하도록 함(안 제7조의2 신설)[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

따라서 제안이유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국회는 앞으로 단순히 국가채무로 기록되는 숫자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부채와 민간투자사업의 시행을 통해 국가가 지불하여야 하는 각종 비용 등에 대해서도 중장기적으로 같은 테두리에서 관리해야 실질적인 부채규모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일개 가계에서조차도 은행 빚뿐만 아니라 자동차 할부금 역시 당연히 빚으로 보아야 하기에 그렇게 관리해왔을 터인데, 그보다 훨씬 큰 정부차원에서는 의회감시의 사각지대로 존재하여 왔던 곳이 이제야 관리될 근거를 가지게 된 셈이다.

Originate-to-Distribute 모델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산은경제연구소 금융시장팀이 작성한 ‘금융위기와 은행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관련글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여태 읽어본 중에서는 금융위기의 원인과 그 진행과정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놓은 보고서가 아닌가 싶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금융위기와 은행 비즈니스 모델’ 다운 받기

보고서의 내용 중 인상 깊었던 일부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기로 하자.

보고서에서는 이번 금융위기가 가속화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전통적인 상업은행 모델인 ‘Lend-and-Hold 모델(L&H 모델)’에서 ‘Originate-to-Distribute 모델(OTD) 로 전환”을 들고 있다. 이는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설명했던 바, 자산을 통상 해당 기관이 보유하는 것과는 달리 증권화 및 유동화를 통해 자산을 투자자들에게 분배하는 모델로의 전환을 말한다.

그런데 이 증권화 과정은 거의 예외 없이 아래와 같은 구조화 과정을 거친다.

출처 : 해당 보고서

첨단(?)금융기법인 OTD 모델은 구조상으로 아름다운 형식미를 지니고 있다. ‘중개기관’은 ‘신용평가기관’ 등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상품을 설계하여, ‘자산보유자’와 ‘투자자’를 이어주어 시장을 형성시키기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이전의 단순한 L&H모델이라면 성사되지 못할 거래도 성사시킨다. 예를 들어 현물담보가 없는 A 기업이 좋은 사업아이템을 가지고 있어 신용평가기관이 그 사업에 대해 제3자적 입장에서 좋은 평가를 내리면 그것을 근거로 중개기관은 B 투자자에게 사업을 주선해주어 모두다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구조화 금융에 대한 또 다른 좋은 예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오용 사례로 전락해버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이제 그 단어는 ‘탐욕과 거품’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되어버렸지만 개념상으로는 구조화 금융을 통하여 대출 소외계층을 금융시장과 연결시켜준 고마운 금융상품이랄 수 있다. 이는 특히 하나의 풀(pool)에 ‘위험회피투자자(통상 senior debt을 부담하는 자)’와 ‘위험선호투자자(mezzanine 또는 equity를 부담하는 자)’를 담음으로써 가능하게 된 구조였다. “high risk, high return”의 전범이랄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모델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체제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한에는 – 심지어는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경제체제로 나아간다 할지라도 일정기간은 – 돈이 필요한 곳에 다양한 기법의 금융방식이 시도될 것이고, 구조화 금융은 마치 제조업에 있어서의 맞춤형 상품과 같이 개별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맞춤형 금융상품의 틀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조적인 모순이건, 일시적인 모순이건 간에 – 어느 쪽이건 모순이었다는 점은 동의하는 분위기 – 참가자 간 유인 불일치, 정보비대칭, 엄밀한 자산실사(Due Diligence)의 실패, 과도한 신용창출 등의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현재 이 구조화 금융이 도덕적 질타에 시달리면서 시장이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즉 지금 현재는 오히려 ‘군집행동(herding behavior)’에 따른 투자기피로 말미암아 구조화 금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극도의 보수적인 투자시장에서 썩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금융시장의 풍토 속에서는 그 순기능은 인정하면서 시장의 자금쏠림이나 신용창출이 어떠한 임계치를 넘어서기 전에, 이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이 현 경제체제에서의 거의 유일한 해법일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헤지펀드, 부외금융, 특수목적법인 등의 이른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의 규제다. 이제 다른 극적인 계기가 없는 한은 한동안 은행들이 그간 누려왔던 부외금융 효과는 누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off-balance sheet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위기에 대해 차베스나 그린스펀만큼이나 할말이 많으실 것 같은 – 또는 논평을 집요하게 강요당하실 것 같은 – 장하준 교수께서도 한겨레21에서 평소 그의 지론에 입각하여 현 사태를 비판하셨다. 역시 평소의 그답게 깔끔하고 명쾌한 해석이 돋보이므로 일독을 권한다.(포카라님의 글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이곳으로 가실 것)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해서는 파생상품·복합상품이 너무 많고 손실 보고가 안 되는 ‘오프 밸런스 시트’ 같은 것도 있어서 금융사 자신도 정확한 피해규모를 모른다.

파생상품이니 복합상품이니 하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어보셨을 것으로 판단되어 “오프 밸런스 시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이 단어는 off-balance sheet,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부외금융(簿外金融)이다. 우리말이 더 어렵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A기업이 돈 100억 원을 빌려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싶다. 한데 부채비율이 300%여서 돈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면 이 회사는 자본금을 5천만 원의 B라는 부동산 개발 전용 회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C은행에 가서 부동산 사업의 사업성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 이른바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인 셈이다. 물론 은행이 사업성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진 않는다. A의 지급보증 등이 채권보전책으로 강화된다.

이제 한번 살펴보자. A는 C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을까? 아니다. B가 차주이고 A는 지급보증만 선 것이다. 그러므로 A의 대차대조표(balance sheet)에는 100억 원이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 다만 지급보증을 주석에 기록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off-balance sheet 효과다. 그리고 B라는 부동산 개발 전용 회사는 일종의 도관체(conduit)다. 정작 A가 사업을 한 것인데 B라는 도관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은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 거네!’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신용도가 낮은 회사가 유망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좋은 구조이기도 하다. 은행입장으로서는 대출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고 – 회장님의 술값 등 – 자신들이 경제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업에 올바르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B라는 회사의 재무제표만 감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게 부실한 업체나 투자은행 등에서 남발되면 금번과 같은 대형사고의 진원지가 된다는 것이다. 부실한 업체 D의 부실한 회계감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온갖 파생상품과 부실사업들은 곪아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투자자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에 엔론이 이런 식으로 사세를 고질라처럼 불려나가다가 빵하고 터져버렸다. 물론 이번 월스트리트가 사고 친 걸 보고 있자니 그때의 사건은 자그마한 해프닝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회계규칙은 이러한 off-balance sheet를 차단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투자은행들의 경우 바젤2 등을 통해 위험가중치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규제 없는 시장은 없다. 규제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못 따라잡거나 비합리적인 규제가 나쁜 것이다.

신용위기, 그 1년 후 (2)

인디펜던트紙가 신용위기가 도래한 지 일 년여에 즈음하여 ‘Credit crunch one year on’이라는 제목으로 금융계 인사 10명의 감회를 엮은 기사를 게재했다. 오늘은 두번째로 HSBC의 체어맨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하겠다.

Stephen Green, chairman of HSBC

금융시장은 2009년에도 어려울 것이다. 약해지고 있는 실물 경제는 물론 회복될 것이다. 회복되기에는 많은 분기가 소요될지도 모르겠다. 금융시장이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보는데 이는 주주를 대변하는 규제기관이나 감독기관이 높으면서도 증가하는 레버리지와 부외금융(off-balance-sheet)(주1) 상품의 복잡한 구조를 용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시장에 개입되어 있는 파트들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정리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고 금융시장의 몇몇 부문에서는 고용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증권화(securitisation)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은행들이 단순히 신용의 중개자로만 존재하던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주2)

이는 우리가 아는 문명의 종말은 아니다. 이는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고통일 뿐이다. 관계당국은 금융시장을 광범위한 범위에서 신용을 완화시켜 왔었다. 많은 측면에서 이는 현재까지는 제한된 영향만 미쳤다. 그들은 시스템 내에 유동성을 유지시켜야 할 필요성과 인플레이션의 고삐를 잡아매어야 할 필요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놓여 있다.(주3)은행들은 확실히 그들이 지니고 있어야 했던 그러한 강한 위험관리를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 위험부담을 독려하기 위한 보상제도들에 관한 이슈가 있다.

FSA(Financial Services Authority : 영국재정청) 은 허심탄회하게 그들이 배워야할 교훈을 깨달았다. 그 기관은 은행의 유동성과 자본기반에 많은 주목을 기울일 것이다. 투자자는 또한 신용평가에 의존하는 대신 그들 자신의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촌평 : 신용평가를 안 믿으면 자본주의에서 무엇을 믿으란 말인가?

 

(주1) 현대 금융시장에서의 증권화(securitisation)나 프로젝트파이낸싱 등의 사업방식은 어느 투자자가 그들의 사업을 위해서 돈을 차입하였음에도 그것이 재무제표에 계상되지 않도록 별도의 도관체(conduit)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해왔는데 이것이 바로 부외금융, 즉 대차대조표에 부채가 기록되지 않는 기법이라 할 수 있다. : 역자주

(주2) 역시 시장의 메이저플레이어인 만큼 현재의 증권화 대세 현상에 대해 긍정하는 입장이고 그것을 옹호하는 데, 나 역시 그와 똑같은 취지는 아니나 어느 정도 은행들이 이전의 단순 중재기관의 위치로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편이다.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 역자주

(주3) 가장 대표적으로 금리정책에 있어서 이러한 딜레마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 역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