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국내정치

때가 되자 본색을 드러내는 조선일보

국회가 탄핵의 정치적 관문이라면 헌재는 탄핵의 사법적 관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 걸리는 시간 요소다. 최대 7~8개월을 잡는다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상황이라 해도 임기는 거의 채우는 셈이 된다. 애초에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내고 2선 후퇴를 제의했을 때 야권이 이를 받았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을 문씨, 안철수씨 등이 ‘웬 떡이냐’면서도 더 먹으려고 반대했다가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야권의 과욕과 두뇌 부족이 빚은 결과다.[이제 ‘박근혜’는 과거다]

오늘자 김대중 칼럼 중 일부다. 그간 마치 반정부 투쟁의 선봉에 서기라도 한 것처럼 살벌한 구호를 외쳐대던 조선일보의 본색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선 김 씨는 그간 박 대통령의 탄핵을 미적거리던 야권의 우려사항 중 하나를 지적했다. 바로 탄핵절차를 밟자면 의도한대로 간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임기에 필적하는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김 씨는 그런 현실을 지적하며 야권이 “과욕과 두뇌 부족” 탓에 김병준 총리 카드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놓쳤다고 조롱한 것이다.1

하지만 그 상황은 조선일보가 원하는 상태일지는 몰라도 야권, 더불어 국민이 원하는 미래는 아니다. 대체 야권에 몸을 담은 적이 있던 총리와 대통령의 2선 후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2선 후퇴도 거국내각도 – 김병준 총리 체제가 거국내각도 아님은 물론이고 – 그 어느 것도 헌법적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박근혜를 보수 세력의 본류가 아닌 일탈자로 취급하여 골방에 처넣고 전열을 정비하여 보수 재집권을 노리는 조선일보나 원할 극히 어정쩡한 상태다.2

이 사태의 본질은 “저잣거리 아녀자의 국정농단”이나 “최태민 교주에 정신적으로 지배당한 위정자의 일탈”이 아니라 헌정 이래 지속되어 오던 사익추구집단의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하는 상호 사익추구다. 지난번 수사결과 발표에서 검찰이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칭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고 직접 정유라를 지원한 삼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죄목도 현재까지는 뇌물죄가 아닌 강요죄다. 언급되지 않은 이가 바로 주범이다.

경제범죄가 악랄한 점은 그 범죄 구성요건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사안한화와의 방산 업체 거래에 있어, 최순실 씨등의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로비를 통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심증은 있지만, 이러한 심증이 법정에서 실정법 위반으로 판결나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고되어 있다. 그리고 김대중 칼럼이 원하는 상황이나 검찰의 발표 내용은 그러한 길에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이다. 그게 보수의 생존전략이다.

‘기승전순실’이라고 지금 교육, 의료, 재난구조, 인사, 경제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가 최순실 씨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일 정도다. 믿기지 않기는 하지만 그 부조리의 신경망에서 최순실 씨만 걷어내고 보면, 그간 사익추구집단이 얼굴만 바꿔가며 해오던 짓이다. 김대중 씨가 원하는 김병준 총리 체제는 그렇게 얼굴만 바꾼 사익추구의 체제다. 따라서 야권은 이번 기회에 이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말 두뇌 부족이다.

한데 김용철 씨는 그들의 서술구조에서 한발 더 나아가 100% 실존인물이 100% 실제 벌어졌던 일을 꾸미고 저지르고 있는 양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도 화려하다. 국내 최고의 재벌 삼성의 이건희 가족, 현 대법원장인 이용훈 판사, 돌아가신 두 대통령과 현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검찰 등 지배계급들이 총망라되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 이유는 만약 이 이야기가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면 이건 나라가 두 번 뒤집어질만한 대사건이고, 사실이 아닌 것을 김용철 씨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건 사상최대의 인격모독이자 무고이기 때문이다.[‘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사회가 청년에게 각자도생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히 젊은 층일수록 부동층의 비중이 높아서 정치권이 표심을 잡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나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그 기사의 ‘베스트 댓글’이었다. (아래 참조) 이글을 쓴 사람들은 그 정치적 성향을 굳이 나누자면 “진보”측으로 여겨진다. 흔히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적인 투표성향의 노인층에 대항하여 청년층이 투표를 해야 한다는 – 즉 청년층은 야권을 지지할 것이라는 –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젊은 부동층은 벚꽃구경가느라 투표안한다. 지들 앞길을 지들이 망친다.”
“10대 20대에서 43%. 그러나 투표를 하는 사람은 4.3% 정도??”

실제로도 청년층의 대통령 지지도를 보면 反여권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관계를 제외하고는 위 베스트 댓글이 비아냥대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여태의 투표에서도 청년층의 투표율은 결코 낮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투표해서 뽑은 정치권이 실제로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1 이는 주요하게 이미 청년층의 비중이 갈수록 작아지는 과소대표성 경향을 보이고 있고, 정치권이 이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4년 ILO 보고서는 각국 청년의 교육 및 고용현황을 비교하였는데, 이를 보면 우리 청년의 열악한 처지가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는 1996년 및 2006년 각국의 교육수준을 지수로 표현해놓았는데, 우리나라는 각각 5.96과 7.34를 기록하였다2. 이 수치는 각 년도 2위,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면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과 고용률은 1996년 꼴찌에서 두 번째, 2006년에는 꼴찌를 기록했다. 요컨대, 남한은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이 가장 열악한 고용수준에 시달리는 나라다.

각국 노동시장에서의 청년층의 교육수준

출처 : At work but earning less : minimum wages and young people, Damian Grimshaw, ILO, 2014, p13 에서 재구성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청년고용률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가 보자.. 청년의 상황이 이러한데 앞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정치권이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다. 많은 청년층 노동자들이 해당사항일 최저임금을 올리는데 인색하던 여권이 부랴부랴 총선공약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내놓았지만, 이런 그들이 또 지자체에서 실시하던 청년수당에 대해서는 예의 “포퓰리즘”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보수층은 “흙수저”3, “헬조선”이란 유행어에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비난하고, 진보층은 투표를 안 해서 그런 것이라 비아냥댄다.

이 나라는 여태의 노동자와 자본가의 역학구도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 와중에 노년층은 정치4, 경제5, 문화6 등에서 권력을 잡고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어 노자(勞資)간의 대립에 중층적으로 고통 받는 新노동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더군다나 젠더의 문제로 가면 한층 복잡해진다. 남녀간 임금차이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문화적으로도 “여혐”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고통 받는 청년, 여성, 노동의 이슈가 맞물려 피해의식을 특정계층에 쏟아 붓는 양상으로 추측되는 상황이다.

사회가 청년에게 各自圖生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사드 배치에 대해 국민의 칠할이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아침에 다소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국민 중 일곱 명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기사였다. 연합뉴스와 KBS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중 한 항목이었던 이 조사결과는 어쨌든 한미 양국의 사드 추진 여부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른바 “여론몰이”에는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사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응답자의 뜻이 어떠하든 간에 정당한 여론조사라면 당연히 결과에 수긍해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여론조사의 방식이 다분히 결과를 유도하는 방식이라 여겨진다는 점에서 여론조사 당사자들의 양식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보도에 근거해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응답항목인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와 “중국 등의 강경 입장을 고려해 배치하지 말아야 한다”다.

여론조사 기법에 대해 과문한지라 알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건데 저 항목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드의 배치 여부에 대한 설문이라면 그냥 “예”와 “아니오”로 응답항목을 정하면 될 것인데, 왜 “북한의 위협의 대비하기 위해”나 “중국 등의 강경 입장을 고려해”와 같은 단서 조항을 붙이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단서조항이 응답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은 억측에 불과한가?


갤럽의 ‘동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설문조사다. 응답항목은 “합법화되어야 한다(should be legal)”와 “합법화되지 않아야 한다(should not be legal)”로 단순하다. 만약 후자의 응답항목을 “자녀들에 대한 영향 등을 고려할 때 합법화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바꾸면 응답결과가 당초의 응답항목 결과가 같으리라 생각되는가? 부모는 ‘우리 아이가 게이라면?’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빨갱이” 사냥의 희생양이 될뻔했던 어떤 정치인

1963년

이 무렵 군정연장 원대복귀 민정참여의 거듭된 번의 속에 곤욕을 치른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우여곡절 끝에 63년 8월 31일 민주공화당의 총재와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대통령 선거가 벌어지게 됐다. [중략] 윤보선은 황태성 사건까지 끌어들여 연일 박후보의 사상관계를 융단폭격했고 이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박정희 후보는 “저들이 나를 빨갱이로 몰려 한다”고 비명을 질렀다. [중략] 63년 10월 10일 대선을 닷새 앞둔 시점에서 민정당 유세반의 김사만이 경북 영주에서 느닷없이 “부산 대구에는 빨갱이가 많다”고 후려쳤다. [중략] 사흘간의 개표 끝의 최종결과는 박정희 4백70만표, 윤보선 4백54만표로 불과 16만표의 차이였다.[박정희, 윤보선에 16만표 차이로 승리, 박상길 전 청와대 대변인, 한국 현대사 119 대사건, 월간조선 엮음, 1993년, pp168~169]

2015년

동아일보 종편 채널A가 민언련을 ‘종북세력’으로 묘사했다가 정정보도는 물론 손해배상도 물게 됐다. 민언련이 제기한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을 깨고 원고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중략]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2013년 5월 종북좌익척결단 조용환 대표를 출연시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종북세력 5인방’을 주제로 토론하면서 민언련에 대해 “강정구와 송두율을 비판하는 언론을 비판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언론을 공격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선동한다”며 “우리나라 안보를 해치는 일련의 선동을 줄기차게 해왔기 때문에 종북세력의 선동 세력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조용환 대표는 “(민언련이) 북한 노동당 통전부 225국의 컨트롤을 받는다”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을 이어갔다. [채널A, 민언련에 ‘종북’ 딱지붙였다가 손해배상 1000만원]

이것은 “좌빨”의 경제분석 보고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질이 높고 결과물도 굉장히 공평한, 매우 튼튼하고 포괄적인 교육 체제를 지니고 있다. – 이곳에서는 서로 다른 소득수준의 학생들 사이에서의 독해와 수학의 격차가 매우 낮다. 그러나 고용 상황은 복합적이다. 실업은 매우 적지만, 노동력 참여 수준은 그저 그렇고 여성의 참여는 선진경제 중에서 가장 낮다. 남녀 간 임금차이 또한 예외적으로 높은데, 이는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려는 동기를 저해하는 요소다. 부패는 또 다른 염려사항인데, 힘 있는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지대(地代)를 우려내는 것을 용납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대는 소수의 대가족 경영 기업들에게 높은 정도로 집중되어 있고, 이는 규제 시스템을 통해 보호받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소유는 매우 낮은 반면, 건강보험을 포함한 사회 보장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 지레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바람에 한국은 다른 선진 경제와 비교할 때 이전(移轉) 이전에는 가장 평등한 소득수준을 가지고 있다(“移轉前 지니”는 두 번째) 세후에는 보다 불공평하게 바뀐다(“移轉後 지니”는 18위).[The Inclusive Growth and Development Report 2015, World Economic Forum, September 2015, 41p]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 WEF)이 이번 달에 발간한 보고서 중에서 한국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다. WEF는 각국의 정치나 경제, 그리고 학계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1년에 한 번씩 스위스의 다보스에 모여서 립서비스를 하는 행사를 여는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비영리 법인이다. 사상적으로 좌우를 따질 계제는 아닌 것 같지만 굳이 따지자면 “비즈니스프렌들리”한 단체인 것은 분명하다. 인용문을 읽어보면 한국에 관한 비판이 이런 성격의 단체가 낸 보고서치고는 꽤 강경하다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다.

  • 교육은 공평하며 포괄적으로 학습수준이 높음
  •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참여 및 임금불평등이 열악함
  • 부패로 인해 각 분야 유력자의 지대 착취가 발생함
  • 재벌의 치대 착취는 매우 집중돼있고 제도적으로 보호받음
  • 평등한 소득수준이 재분배 과정을 통해 불평등한 수준이 됨

지적한 내용으로만 보면 WEF는 현 정부의 공약이나 현재의 경제정책 전반이 실패했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만 같다. 재벌의 지대 착취를 근절하겠다는 것은 애초 이 정부가 선거과정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전면에 내걸었던 공약사항이다. 하지만 집권 후 이 슬로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삼성 등 재벌의 변칙적 후계과정은 “애국”이란 명분으로 정당화되었다. 재벌의 부패와 범죄에 대해서는 일과성 처벌이 있어왔지만 곧 “경제를 살리자”는 명분으로 면죄부를 주는 봉건적 상황이 재연됐다.

이를 위해 박 후보는 ▲경제적 약자에 도움되는 경제민주화 ▲국민경제 부작용의 최소화와 효과의 극대화 ▲대기업 집단의 장점은 살리되 잘못된 점은 반드시 바로잡기 등을 3대 추진원칙으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경제적 약자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체계의 획기적 개선 ▲대기업집단 불법행위 및 총수일가 사익편취 엄중 대처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을 5대 분야로 내세웠다.[박근혜, ‘경제민주화 5대 공약’ 공식발표]

“경제민주화” 슬로건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초기 잠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주장으로 다시 표면에 오르는 듯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재계와 보수언론의 거센 반발 속에 정책은 용두사미가 되었고, 활시위는 엉뚱하게 노동계로 향해져 소위 “노동개혁”이 없기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 인양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고령의 고임금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청년실업자를 채용하자는 주장은 언뜻 수긍이 가는 듯한 주장이지만, 결국 이는 해묵은 임금기금설에 불과하며, 자본가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정치적 선동이다.

여성노동의 불평등한 상황은 이른바 “경단녀” 이벤트로 해결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일회성 대증요법에 불과할 뿐으로 이것이외에 현 정부가 親노동적 행보를 취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 취업자를 늘리자는 발상은 그나마 WEF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평등한 소득수준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만 높다. 가장 극적인 WEF의 비판은 우리나라가 열악한 재분배 과정으로 인해 선진경제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증세(增稅)”는 이 정부에서 일종의 금기어다. 철저한 현실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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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rittePipe” by Image taken from a University of Alabama site, “Approaches to Modernism”: [1].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현 정부가 경제를 정상으로 만들려면 WEF가 지적한 내용만 제대로 이행해도 될 것 같다. ▲ 재벌의 변칙적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순환출자 등 해소 ▲ 높은 지대를 통한 자영업 착취 방지를 위한 임대차 보호제도 ▲ 여성 등 소수자의 고용/임금 차별 방지를 위한 제도 정비 ▲ 재분배과정이 정상화하는 증세 및 복지증대 방안 강구 등. 한꺼번에 다 하자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문제는 마인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벌을 “특별사면”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를 복직시켜야겠다는 마인드를 가져본 적이 있는가?

최경환,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6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서 “국정 2년차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 [중략]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되면 3년 후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4% 수준으로 높아지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혁신 3개년 추진…공공개혁ㆍ내수활성화 박차]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최 부총리는 18일(현지시간) 동행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부문별로 다르지만 평균 3% 중반 성장하면 선방한 것이다. 우리 잠재력이 그 정도인 것”이라며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최경환 “3%대 성장하면 선방…고도성장기 오지않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집권 2년차가 된 마당에 뜬금없이 나머지 집권기간을 셈하여 만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관해 새삼스레 떠올릴 계기를 주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1년 전에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4%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 발언을 1년 만에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잠재성장률과 실제 경제성장률을 다른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잠재력이 그 정도”이며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발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4% 잠재성장률은 뻥이었다는 발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한편으로 최 부총리는 성장률을 제고하려면 “4대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4대 부문은 금융, 노동, 공공, 교육 등이다. 이들 부문에 대한 정부의 각각의 취지나 전술을 보면 동의할 부분도 없잖아 있으나 큰 틀에서 보면 미숙한 것이 사실이다.

“정규직 과보호”라는 정치적 수사 등으로 인한 노사정의 협상파행, 금융부문에 소위 “기술금융” 실적에 대한 일방적인 할당, 공공부채 감축 일환으로 진행한 자원외교 비리 수사급반전 등 산적한 이슈는 갈 곳을 잃은 채 현 정부의 얼마 남지 않은 정치적 자본만 소진하고 있다.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 이슈를 꺼내들며 제법 경제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던 현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일방통행식 인사 파행,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미숙한 대응, 성완종 사태 등의 정치 스캔들로 경제의 걸림돌만 되고 있다. 그게 현 정부의 “불편한 진실”이다.

얼마나 더 무덤덤해져야 하나

카카오톡 사태에 대한 斷想

개인적으로 카카오톡이라는 챗앱을 좋아하지 않았다. 왓츠앱벤치마킹해서베껴서 – 만들어낸 “대한민국 대표 챗앱”은 왓츠앱과 달리 처음에는 말끔히 지어놓은 빌딩에 온갖 간판과 네온사인이 붙은 것처럼 산만한 외양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안본지도 몇 년 된 “카톡 친구”가 이상한 게임을 깔라며 메시지를 보내고, 친구 추천란에 수시로 뜨는 온갖 기업 “친구” 추천 등등. 약간은 결벽증이 있는 취향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의 앱이었다.

하지만 그 앱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에게 왓츠앱이 조용하니 그쪽으로 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앱이 카카오톡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포탈 중 하나인 다음을 흡수해서 ‘다음카카오’가 출범하고 은행의 전유물인줄 알았던 송금과 기타 결제기능이 결합된 금융서비스를 구축하는 등 카카오톡은 바야흐로 챗앱을 넘어선 모바일포털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게 거칠 것 없던 카카오톡의 앞날에 어두운 구름이 끼는 사태는 어떤 분의 사소한(?)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 이 시대착오적인 발언 이후로 관련자들이 어떻게 뻘짓을 하고, 그 뻘짓이 이해당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 글에서 잘 정리를 해놓았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이 글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사태의 – 이하 “카톡 사태” – 최대 피해자는 다음카카오, 최대 수혜자는 텔레그램이 되었다.

우선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감시가 정당한 것인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간단히 사견을 적자면 공권력의 법률이 정한 바에 따른 – 과잉금지의 원칙을 지킨 – 개인정보에 대한 수집 및 분석은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한 법집행이 없다면 실질적으로 범죄에 대한 공권력 집행도 불가할 것이다. 여하튼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위기에 대한 기업의 대응이다. 다음카카오톡의 대응은 “대한민국 대표 챗앱”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미숙한 것이었다.


난 텔레그램의 이 로고가 맘에 든다

트위터 공식계정은 법적 절차 없이 누구에게도 대화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며 ”오해하지 마세요”란 거만한 말투로 법집행의 정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했고, 다음 前 CEO는 한 시민운동가와의 설전에서 그에게 “국가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기업을 탓할 거면 이민가라”고 했고, 다음카카오의 법률 대리인이라는 분은 소비자에게 “영장집행이 와도 거부할 용기가 없는 비겁자들”이라고 발언했다. 이 모든 발언들이 불과 며칠 만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놀랍다.

法人도 자연인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다음카카오는 지금 참 억울한 자연인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억울할 만하다. 다만 법인은 억울함이 해소되어도 사업 환경이 악화된다면 별무소용이다. 기업 이미지는 법률적 타당성에 맞먹을 정도로 기업이익과 연계된다. 기업은 그것을 알기에 이미지 광고를 하고 홍보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다음카카오가 오해 말라고 강변해봤자 소비자는 텔레그램으로 이민가면 그만이다. 비겁자라기보다는 망명자다.

옳은 방식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선 의문이 있지만 소위 “대기업”의 대응방식은 이와 다를 것이다. 일단 부정적 사건이 발생하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서 자사의 이름을 언론기사에서 뺀다. 이후 일사불란하게 입단속을 하면서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적어도 홍보 전략이 있는 회사의 대응이다. 하지만 다음카카오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공식사과문”에서도 뭔가 치기어린 장난기를 느낄 수 있다.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한 눈치다.

내가 텔레그램을 깐 이후에도 하루가 다르게 지인의 텔레그램 가입이 늘고 있다. 이런 증가세가 실질적인 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왓츠앱과는 다른 통신환경이 다듬어진 것은 사실이다. 언제든 지인들이 텔레그램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이제 소셜네트워크 특유의 고착성 때문에 더 이상 카톡을 유지하여야 할 이유가 딱히 없을지도 모른다. 싸이월드가 그랬고 네이트온 메신저가 그랬던 것처럼 카카오톡도 그런 몰락의 길을 걷지 마란 법이 없다.

이번 사태는 MBA에서 홍보 전략 부재에 따른 기업위기의 한 사례로 써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