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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6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서 “국정 2년차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 [중략]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되면 3년 후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4% 수준으로 높아지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혁신 3개년 추진…공공개혁ㆍ내수활성화 박차]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최 부총리는 18일(현지시간) 동행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부문별로 다르지만 평균 3% 중반 성장하면 선방한 것이다. 우리 잠재력이 그 정도인 것”이라며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최경환 “3%대 성장하면 선방…고도성장기 오지않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집권 2년차가 된 마당에 뜬금없이 나머지 집권기간을 셈하여 만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관해 새삼스레 떠올릴 계기를 주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1년 전에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4%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한 발언을 1년 만에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잠재성장률과 실제 경제성장률을 다른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잠재력이 그 정도”이며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발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4% 잠재성장률은 뻥이었다는 발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한편으로 최 부총리는 성장률을 제고하려면 “4대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4대 부문은 금융, 노동, 공공, 교육 등이다. 이들 부문에 대한 정부의 각각의 취지나 전술을 보면 동의할 부분도 없잖아 있으나 큰 틀에서 보면 미숙한 것이 사실이다.

“정규직 과보호”라는 정치적 수사 등으로 인한 노사정의 협상파행, 금융부문에 소위 “기술금융” 실적에 대한 일방적인 할당, 공공부채 감축 일환으로 진행한 자원외교 비리 수사급반전 등 산적한 이슈는 갈 곳을 잃은 채 현 정부의 얼마 남지 않은 정치적 자본만 소진하고 있다.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 이슈를 꺼내들며 제법 경제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던 현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일방통행식 인사 파행,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미숙한 대응, 성완종 사태 등의 정치 스캔들로 경제의 걸림돌만 되고 있다. 그게 현 정부의 “불편한 진실”이다.

얼마나 더 무덤덤해져야 하나

카카오톡 사태에 대한 斷想

개인적으로 카카오톡이라는 챗앱을 좋아하지 않았다. 왓츠앱벤치마킹해서베껴서 – 만들어낸 “대한민국 대표 챗앱”은 왓츠앱과 달리 처음에는 말끔히 지어놓은 빌딩에 온갖 간판과 네온사인이 붙은 것처럼 산만한 외양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안본지도 몇 년 된 “카톡 친구”가 이상한 게임을 깔라며 메시지를 보내고, 친구 추천란에 수시로 뜨는 온갖 기업 “친구” 추천 등등. 약간은 결벽증이 있는 취향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의 앱이었다.

하지만 그 앱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에게 왓츠앱이 조용하니 그쪽으로 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앱이 카카오톡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포탈 중 하나인 다음을 흡수해서 ‘다음카카오’가 출범하고 은행의 전유물인줄 알았던 송금과 기타 결제기능이 결합된 금융서비스를 구축하는 등 카카오톡은 바야흐로 챗앱을 넘어선 모바일포털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게 거칠 것 없던 카카오톡의 앞날에 어두운 구름이 끼는 사태는 어떤 분의 사소한(?)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 이 시대착오적인 발언 이후로 관련자들이 어떻게 뻘짓을 하고, 그 뻘짓이 이해당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 글에서 잘 정리를 해놓았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이 글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사태의 – 이하 “카톡 사태” – 최대 피해자는 다음카카오, 최대 수혜자는 텔레그램이 되었다.

우선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감시가 정당한 것인지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간단히 사견을 적자면 공권력의 법률이 정한 바에 따른 – 과잉금지의 원칙을 지킨 – 개인정보에 대한 수집 및 분석은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한 법집행이 없다면 실질적으로 범죄에 대한 공권력 집행도 불가할 것이다. 여하튼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은 위기에 대한 기업의 대응이다. 다음카카오톡의 대응은 “대한민국 대표 챗앱”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미숙한 것이었다.


난 텔레그램의 이 로고가 맘에 든다

트위터 공식계정은 법적 절차 없이 누구에게도 대화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며 ”오해하지 마세요”란 거만한 말투로 법집행의 정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했고, 다음 前 CEO는 한 시민운동가와의 설전에서 그에게 “국가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기업을 탓할 거면 이민가라”고 했고, 다음카카오의 법률 대리인이라는 분은 소비자에게 “영장집행이 와도 거부할 용기가 없는 비겁자들”이라고 발언했다. 이 모든 발언들이 불과 며칠 만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놀랍다.

法人도 자연인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다음카카오는 지금 참 억울한 자연인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억울할 만하다. 다만 법인은 억울함이 해소되어도 사업 환경이 악화된다면 별무소용이다. 기업 이미지는 법률적 타당성에 맞먹을 정도로 기업이익과 연계된다. 기업은 그것을 알기에 이미지 광고를 하고 홍보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다음카카오가 오해 말라고 강변해봤자 소비자는 텔레그램으로 이민가면 그만이다. 비겁자라기보다는 망명자다.

옳은 방식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선 의문이 있지만 소위 “대기업”의 대응방식은 이와 다를 것이다. 일단 부정적 사건이 발생하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서 자사의 이름을 언론기사에서 뺀다. 이후 일사불란하게 입단속을 하면서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적어도 홍보 전략이 있는 회사의 대응이다. 하지만 다음카카오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공식사과문”에서도 뭔가 치기어린 장난기를 느낄 수 있다.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한 눈치다.

내가 텔레그램을 깐 이후에도 하루가 다르게 지인의 텔레그램 가입이 늘고 있다. 이런 증가세가 실질적인 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왓츠앱과는 다른 통신환경이 다듬어진 것은 사실이다. 언제든 지인들이 텔레그램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이제 소셜네트워크 특유의 고착성 때문에 더 이상 카톡을 유지하여야 할 이유가 딱히 없을지도 모른다. 싸이월드가 그랬고 네이트온 메신저가 그랬던 것처럼 카카오톡도 그런 몰락의 길을 걷지 마란 법이 없다.

이번 사태는 MBA에서 홍보 전략 부재에 따른 기업위기의 한 사례로 써도 될 것 같다.

새 경제팀의 정책방향에 대한 단상

자본주의의 3대 경제주체는 정부, 기업, 가계다. 기업과 가계는 노동력을 사고팔아 각각 돈을 벌어 정부에 세금을 낸다. 정부는 이 세금을 걷어 주로 시장이 채워주지 못하는 영역에 돈을 지출한다. 기업이나 가계 역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벌어들인 돈을 소비한다. 가장 일반적인 경제지표중 하나인 국내총생산(GDP)은 이렇게 소비, 투자, 정부지출의 합에 수출을 더하고 수입을 빼는 형태로 추산된다.

어제 정부가 발표한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이란 자료에서는 우리의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경상수지 등의 패턴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기간의 패턴과 유사하다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성장률은 바로 GDP의 변화추이로 산정되는데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2001~2011년 기간 동안 연평균 4.4%성장하였으나 2012~2013년 기간 동안은 2.6% 성장에 그쳐 일본과 유사하다는 것이 경제팀의 판단이다.

경제팀은 특히 경제성장의 3대 추진과제를 ‘내수활성화’, ‘민생안정’, ‘경제혁신’으로 설정하였다. 이는 현재의 경제상황이 ‘내수침체형 불황’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인식과 맥락을 같이 하는 판단이다. 경제팀은 ‘내수활성화’를 위해 소위 “41조원 + α”의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41조원의 패키지는 실제로 정부지출은 아니고 각종 기금의 추가집행이나 민간투자의 활성화를 통해 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41조원 + α” 정책 패키지보다 더 혁신적인 경제팀의 아이디어는 기업에 너무 많은 돈이 쌓여있고 이를 가계로 순환되도록 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복안이다. 경제팀은 “내수부진이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가계↔기업↔정부의 경제 선순환 고리가 약화된 구조적·복합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임금 상승세가 둔화되고 비정규직 문제가 지속되면서 기업의 성과가 가계로 환류 되지 못 하고”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팀이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문제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간 거의 찾아보지 못했던 상황이다. 게다가 야당에서나 주장하던 “사내유보금 과세”라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재계는 크게 당황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기업이익의 처분은 기업가의 고유한 경영상 판단에 속하는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팀은 대상을 신규 유보금으로만 물러설 뿐 과세 자체를 폐지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경제팀이 강행하려는 배경으로 기업과 가계간의 분배 불평등으로 인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사라졌다”는 인식은 국회예산정책처도 동일하게 판단하고 있는 상황이 깔려 있다. 가계의 실질소득 및 가처분소득은 악화되고 있고 이 부분이 소비부진으로 이어져 경제성장률 저하와 경상수지 증가의 배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팀이 법인세 증세가 아닌 “근로소득 증대세제”와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당장의 정책효과를 논하기에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일단 경제팀의 문제인식과 이 방향성에는 동의한다. 다만 정부 전체적으로 보다 전향적인 노동정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가 단순한 정부정책의 수혜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임금결정력과 고용안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활성화, 부당노동행위 엄단 등을 지원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교조를 “노조로 보지 않는” 反노동 행위가 엄존하고 있다.

노골적이고 천박한 2014년 한국의 자본주의

복수의 임원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한기총 부회장인 조광작 목사는 지난 2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내 한기총 사무실에서 열린 긴급임원회의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한기총 부회장 “가난한 집 아이들 불국사로 수학여행 가지...]

정 후보는 박 후보가 서울시 예산으로 협동조합 사업을 지원하는 점을 들며 “(이 사업은) 국가보안법 위반 인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박 후보 정체성이 뭔지 알 수가 없다”며 “제가 되면 이런 사업 안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협동조합으로 사회적 기업을 꾸리고 있거나 예정인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과도 같은 발언이었다.[협동조합 사업 날벼락 맞나.. 정몽준 폭탄발언]

시차가 별로 없는 이 두 유력자의 발언이 현재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잘 보여주는 발언이라 생각되어 인용해보았다. 조 목사의 발언은 이 사회의 부유층들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흘겨보는 눈초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입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사고 난 아이들이 강남의 아이들이었으면 이랬을까’라는 주장은 불편했었는데 조 목사의 발언을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어쩌면 막강한 생산력을 통해 과거에는 부유층만 누리던 일종의 “사치”를 전 인민의 보편적 소비로 확산해왔던 과정이다. 여행은 대표적인 사치 상품이었다. 하지만 유람선과 같은 집합적 소비상품 등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여행을 다닐 수 있게끔 했다. 그런데 조 목사는 그런 자본주의의 그러한 평등적 측면도 외면한 채, 인종주의적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가난한 집 아이도 유람선 정도는 탈 수 있는 경제상황이다.

레제가 이런 낙관적인 이상향을 묘사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좌익들이 확실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의 정치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좌익은 1930년대 파시즘의 위협 하에 사회당, 공산당 등이 결합한 인민전선을 결성한 후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1936년 6월 총파업 이후 전국적 규모의 중앙노사협정인 마티뇽 협정(Accords de Matignon)이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대표적 노동조합의 개념과 단체협약의 효력확장규정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이 협정에는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2주간 유급휴가제’가 도입되어 노동자는 비로소 유급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페르낭 레제,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

한편 아들의 “미개한 국민” 발언으로 고전하고 있는 정몽준 후보는 관훈 클럽 주최의 토론회에서 협동조합에 대해 위와 같이 발언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경제조직의 지배구조에 대한 다양한 고민 속에 나온 대안적 구조의 조직이다. 그런 조직을 박원순 후보까지 엮어서 색깔론으로 깔아뭉개고 있다. 조 목사의 발언이 어느 정도 봉건적 발상이라면 정 후보의 발언은 대기업의 대주주인 “자본가”다운 발상이다. 협동조합원은 “빨갱이”.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불가피하게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이것이 사회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구 자본주의는 복지지출과 같은 경제제도와 소수의 정치세력을 보호하는 정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결국 갈등은 사회적 비용이고 총체적으로 보자면 이 또한 체제에 위협요소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 한국의 유력자들은 갈등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 천박함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소름이 끼친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은 세계에서 가장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는 나라로 한국을 지목했다.

박원순 시장의 경전철 공약 단상

박원순 씨가 경전철 공약을 발표한 것은 “아무 것도 안 한 시장“으로 남아서는 재선의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고, 이제 무언가는 개발공약을 발표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개발주의”는 여전히 유권자가 원하는 공약이다. 물론 하층민일수록 그 떡고물이 적겠지만 그래도 뭔가가 떨어질 것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압축성장의 역사에서 진행되어온 숱한 “개발주의”가 증명한 사실이다. 박원순 시장은 그런 상식(?)을 전복시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거나 본인의 철학이 아직 부족했을 것이다. 어떤 개발공약을 내놓을 것인가? 재개발/재건축/뉴타운 등의 공약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공약이고, 도로 신설 공약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공약이다. 남은 것은 이해관계자의 반대가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교통, 특히 지하로 들어가 공공교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의 GTX처럼 백지에 새로 선을 긋는 것은 일정상 무리가 많이 가는 대안이다. 결국 동북선, 신림선 등 이미 사업시행자가 지정되어 있어 시간상으로 빨리 진행할 수 있는 민간투자사업과 이를 연결한 미래노선을 엮은 경전철 계획이 그나마 무난하게 내놓을 만한 공약이다. 재임기간이 정해져 있는 선출직 공무원은 그 정치적 신념을 떠나 임기 안에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개발공약에 집착하게 마련인데, 예산의 제약을 덜 받고 후대에 그 책임을 넘길 수 있는 민간투자사업은 가장 매력적인 개발공약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MB도 처음에는 대운하 사업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물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수자원공사와 국고를 털어 땅을 파냈지만 말이다. 오세훈은 세빛둥둥섬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는 한편, 광화문 광장과 같은 기념비적 사업을 위해 시의 곳간을 동시에 거덜 냈다.

민간투자사업이 포함된 박원순의 개발공약을 바라보는 시각은 좌우 양진영에서도 그리 곱진 않다. 조선일보중앙일보에서 딱히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두고 보겠다”는 투의 기사가 눈에 띈다. 미디어스는 노동당 간부의 입장을 실어 반대의 논리를 펴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은 경전철 계획이 제2의 “우면산 터널”이 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주장에서 누락하고 있는 것은 경전철은 우면산 터널과 같은 최소운영수입보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디어스의 보도는 최소운영수입보장, 나아가 최신의 민간투자제도인 “비용보전” 방식까지 나열하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은 개념을 장황하게 적용하고 있다.(이에 대해선 시간 되면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겠다.) 이번 계획에 대해 가장 선명하게 반대할 이들은 아무래도 노동당 등의 좌파일 것이다. 우파나 중도파들은 유쾌하지 않은 시선으로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이번 공약이 현실정치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한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의 고육지책이란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이 뭔가 한 것으로 인정받기에는 유권자가 너무 약삭빠르다는 사실을 짧은 재임기간 동안의 현실정치를 통해 깨달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그의 정치적 실험이 박원순 시장을 좋아하지 않는 유권자들에게 먹혀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이 나라가 어느 샌가 경제적 실질과 상관없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물들어 한쪽에서 하는 일은 무턱대고 반대하는 “귀 막고 떠드는 이들”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FTA와 MB의 FTA는 다르다”는 노무현 지지자들, 오세훈의 천문학적인 재정낭비는 모르쇠한 채 무상급식 예산에는 게거품을 물며 반대하는 이들 말이다. 그리고 이런 극단주의가 일반유권자들에게도 상당히 많이 퍼져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삼성전자의 탄생배경과 그 절묘한 타이밍

“한국 재벌의 공통점은 소비재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중화학 공업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느냐가 큰 과제이다. 전자 공업은 앞으로의 성장 분야다. 지금 미국이 최첨단을 가고 있지만 삼성도 여기에 나서고 싶다.”[재벌들의 전자전쟁, 오효진, 나남, 1984, p20에서 재인용]

1968년 여름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일본의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요즘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그리 감회가 깊지 않을지 몰라도, 한국경제가 아직도 여명기에 불과했던 당시에 이 인터뷰를 접한 사람들이라면 ‘미국과 겨루겠다니 무모하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신문의 독자는 일본인들이었을 테니 더욱이 이 회장의 포부가 같잖았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 회장의 발언에는 한 가지 사실과 약간 다른 발언이 있다. 바로 “한국 재벌의 공통점은 소비재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발언이다. 물론 그 당시 대부분의 재벌이 소비재 산업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소비재 산업과 대비되는 투자재 산업을 추구하는 재벌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직 내구소비재 산업의 비중이 컸지만 어쨌든 전자회사를 10년째 운영하고 있던 골드스타(오늘날의 LG전자)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락희(樂喜)”라는 사명을 쓰고 있던 LG의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이병철 회장과 초등학교 동창이자 사돈 간이었다. 구회장은 1950년대에 플라스틱 공장을 차려 많은 돈을 벌었다. 이런 창업배경이 있기에 삼성보다 먼저 전자공업에 진출하였고, 국산품 애용 운동 등과 맞물려 사업이 번창하였다. 그런 분야에 삼성이 뛰어든 것이니 금성 측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고, 이후부터 여태까지 두 회사는 숙명의 라이벌로 남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병철 회장이 전자공업으로의 진출을 선언하는 시점이다.

삼성 그룹은 이 회장의 선언이 있은 뒤 1년 만에 일본 삼양전기(三洋電氣)와 합작사업으로 인가신청서를 경제기획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그 6일 뒤인 69년 6월 19일, 정부는 그 동안 마련해온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을 확정해서 발표한다. 이 기본계획의 골자는 ①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책을 도모하고 ② 직접 또는 합작 투자를 유치하며 ③ 외자도입을 지원하고 ④ 76년에는 총 수출목표 30억 달러 가운데 전자제품 수출을 4억 달러로 끌어올린다는 것이었다.[앞의 책, p20]

일본에서 이 회장이 삼성의 전자공업에로의 진출을 선언하자마자, 한국 정부가 “외자도입 지원” 등의 특혜조치가 담긴 계획을 발표하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이후에도 이 회장의 언론 플레이는 계속 되는데 6월 26일 중앙일보에 <전자공업의 오늘과 내일>이란 글을 낸다. 이 글에서 이 회장은 “수출목표에 대응한 전자제품의 내수수준 향상을 위해서 정부와 업자는 통합된 노력을 계속 집중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특정한 산업의 육성계획을 발표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당시 국가가 가진 권력은 – 남북한 공히 – 대단한 것이었다. 박정희가 통치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주식회사”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이 국가의 영도 하에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요소투입 주도성장 모델을 채택하고 있던 당시로서는 산업육성계획은 예산지원 및 외자도입 등의 특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옆자리에 배석하고 있던 김학렬 부총리에게 “부총리, 해낼 수 있소?”하고 물었다. 김 부총리는 “예, 상공부 안대로 조치하겠습니다.”라고 명쾌한 답을 했다. 박 대통령은 “그럼, 상공부 안대로 추진하시오.”라고 결정을 내렸다. 전자공업 육성방안은(1969~1976) 8년 간에 걸치는 장기계획인데, 여기에 소요되는 8년간의 사업추진 자금(140억 원, 즉 약 5,000만 달러)이 일시에 확보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국고 사정은 미약해서, 예산 얻기란 아주 힘든 일이었다. [중략] 그러나 대통령 재가만 얻으면, 사업이 완성될 때까지의 예산이 확보되는 것이다.[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오원철 지음, 동서문화사, 2006, p21]

“대통령 재가만 얻으면, 사업이 완성될 때까지의 예산이 확보되는” 고도로 집중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은 상당히 모험주의적인 시스템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오늘날에는 그런 모델이 그나마 유효했던 것으로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 궁금한 점은 어떻게 삼성이란 회사가 절묘하게 그런 시스템이 내린 결정과 때를 같이 하여 사업방향을 정했는가 하는 점이다. 정보의 공유와 요즘 같지 않았을 때인데 말이다.

삼성은 1970년 1월 20일 전자회사를 설립한다.1 당시 락희 계열의 한 신문은 “삼성/삼양 간의 합작을 인가한다면 매판 자본을 키워 주자는 말”이라고 비판한다. 재벌의 대변지에서 “매판자본”이란 말을 접하니 신선하지만, 정황으로 보건데 삼성의 전자공업 진출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이 회장의 바람대로 “정부와 업자의 통합된 노력이 집중”되어 전자공업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궁금한 점은 과연 정권과 삼성 간에 얼마만큼의 사전교감이 있었나 하는 점이다.

서강학파?

정부와 금융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성향에 맞는 ‘서강학파’ 인사가 오를 것이란 관측이 높다. [중략] ‘서강학파’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씽크탱크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하마평에 올랐다. 김 원장은 2007년부터 경제 공부모임을 주도해 박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박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우리금융 ‘회추위’ 출범… 차기 회장은 누구?]

우리금융지주회사의 회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그 향후추이를 관측하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 기사도 그러한 예측기사다. 내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차기회장이 누구인가보다 기자가 사용한 “서강학파”라는 표현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반드시 외래에서 유입된 학문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배워왔고 현실에 적응하고 있는 이론이 거의 대부분 외래에서 유입된 현실에서, 과연 위와 같은 표현이 유효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남 교수의 입각은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관료 집단으로 서강학파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서강학파는 철저한 성장론자로 분류되고 있다. 서구식 경제 근대화 모델을 토대로 대기업·중화학공업 중심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펼쳤으며 수출지상주의, 신성장 후분배 등을 통한 압축 성장을 꾀했다. 한마디로 업적 제일주의적인 경제정책이 서강학파의 특징으로 분석되고 있다.[한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인맥 대해부 서강학파 VS 학현학파]

한 신문이 국내 경제학파의 계보를 분석한 기사에서 설명한 서강학파의 특징이다.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기사 논조는, 해외유학파를 통해 외래 유입된 국내 경제학 사조에서 “OO학파”를 지칭할 만큼의 독자성과 사상적 동질성을 가진 학파가 있는 가에 대해 회의감을 나타내고 있고 나 역시 대체로 동의하는 바이다. 특히나 서강학파는 인용문에 언급된 남덕우 씨를 비롯하여, 관료로 활동한 이들을 묶어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들의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선도적으로 해외 유학을 다녀왔다는 점, 서구의 주류경제학을 공부하였다는 점, 관료로 활동하면서는 성장위주/수출주도의 국가 개입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쳤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어떠한 사상적 맥락에서의 공통점이라기보다는 유학을 통한 서구사상의 적극적 수용을 기회로 입각되었고, 이후 위정자의 통치철학을 충실히 따랐다는 행태적 공통점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경제를 움직였던 인맥을 학파로는 인정하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즉 이들 대부분이 지향하는 이론은 합리적 시장자율경제를 지향하는 신고전학파로 분류되지만 실제 적용하는 경제 원칙은 자율시장경제 원칙과는 거리가 멀었던 게 현실이었다는 분석이다. 경제평론가 이성태 씨는 “한국의 경제 인맥은 이론적 동질성에 의한 집단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하나의 이론 체계를 고집하는 학자집단이 아니라 친소관계에 의해 형성된 친목집단이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한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인맥 대해부 서강학파 VS 학현학파]

물론 이성태 씨의 독설이 지나치다고 여길 소지도 있겠지만 서강학파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정도 비난을 감수할만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신고전파 경제학 등 주류경제학을 공부하고 시장경제를 옹호하며 ‘국가개입 최소화’ 등을 역설했지만, 입각 이후에는 “성장주의적 근대화론자”로 바뀌었다는 공통점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출세 경로 상에서의 공통점이지 사상적 맥락에서는 오히려 이율배반적인 성격이 강해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남덕우 씨의 “정치 지도자가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 거시적 이론 테두리에 두들겨 맞추는 테라노크라트 역할을 한 것에 불과”했다는 자괴감 섞인 발언에서도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서강학파라는 호칭은 타인에 의한 꼬리표인지라, 당사자들로서는 지나친 한데 묶기 내지는 폄하가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의 적절하게 다시 서강학파가 紙上에 언급되고, 이를 은근히 즐기는 이들이 있다면 여전히 비판도 유효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