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국내정치

블로그에는 글도 안 쓰는 제가 청와대 게시판에 글 하나 올렸습니다

청룡봉사상을 없애야 합니다[해당 페이지 가기]

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북 포항경찰서 소속 A 경감은 지난 26일 ‘청룡봉사상이 우리의 자존심을 구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경찰 내부 통신망(폴넷)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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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민갑룡 청장은 지난 20일 “오래된 상”이라는 이유로 조선일보가 심사해 1계급 특진하는 방식에 대해 유지 입장을 밝혔다. <"자존심 구기는 청룡봉사상 없애야" 경찰간부 공개반발>

2019년 5월 29일 자 노컷뉴스 보도의 일부입니다. 이 사회는 지금 검찰과 경찰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정부 기관의 수사권 조정, 버닝썬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김학의/장자연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한 검경의 수사 등 검경을 둘러싼 여러 갈등과 사건에 대한 이슈로 온 국민이 그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우려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버닝썬 수사는 “명운을 걸겠다”는 경찰청장의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 용두사미가 되는 느낌이고, 고 장자연 씨의 억울함을 풀 수 있었던 재수사 역시 다시 답답했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은 그 뒤에 무언가 정당하지 못한 수사기관과 이해당사자 간의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인 청룡봉사상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 많은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도 있는 판에 경찰이 그동안 조선일보라는 특정한 매스미디어와 공동으로 특진의 기회까지 주는 상을 일선 경찰들에게 수여해왔다는 사실은 속담에서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게 또 기사 속에서 보도된 많은 일선 경찰의 생각이기도 하고요.

단순히 “오래된” 상이라는 이유로 폐지가 어렵다는 경찰청장의 발언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오래된 적폐를 없애고 깨끗한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 시대적 요청입니다. 반공 제일주의도 오래된 적폐였고, 공직자의 접대 관행도 오래된 적폐였고, 관권선거도 오래된 적폐였습니다. 경찰과 특정 매스미디어와의 유착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존속되어야 한다는 경찰청장의 발언 역시 앞서 사례와 같이 오래된 또 하나의 적폐라 생각합니다.

청룡봉사상 폐지해주십시오.

홍석천 씨의 선의는 어떻게 악의로 둔갑하는가?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수완 좋게 여러 접객업소를 운영 중이던 홍석천 씨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밝혔다. 수완 좋은 그 역시 높은 임대료와 상승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운영 중이던 가게 두 곳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인터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현재 문제는 기존의 높은 임대료라는 한계상황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그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가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임대료와 임금 이 둘은 자영업자의 목을 죄고 있는 가장 큰 두가지 변수임은 틀림없다.

홍석천은 “일부 건물주는 이미 임대료의 과도한 폭등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고 이제 현실화해야한다는 데 다행히 동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제의 인상 역시 너무 가파른 게 현실이지만 결국 장사를 잘해야만 해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홍석천은 수제맥주의 본산지였던 경리단길의 특색을 살려 특정 요일에 차 없는 거리, 수제맥주의 축제, 원주민이었던 아티스트의 전시공간 확보 등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홍석천 “저도 가게 문닫아..사람 모이게 임대료 내려야 상권 살아요”(인터뷰)]

홍 씨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을 “장사를 잘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원칙적인 해법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보기에 그간 경리단길은 – 또는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상업지역 – 상업지역으로 인기를 얻은 후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였고, 그 와중에 최저임금이 올라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 상황이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사람들이 경리단길을 찾았던 그 매력을 제시해주는 것이 현 위기의 타개책이라 보는 것이고 나도 그의 그런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홍 씨의 소식을 전한 일부 “언론” 들의 보도행태가 논란이다. 홍 씨가 직접 페이스북에 언급한 중앙일보는 홍 씨의 이데일리 인터뷰를 전하는 기사 타이틀에 마치 자사 기자가 직접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따옴표를 따서 홍석천 “이태원 가게 2곳 문 닫아 … 최저임금 여파”라고 적어놓았다.1 홍 씨는 페이스북 글에서 “욕은 제가 대신 먹겠습니다만 그래도 전화한통이라도 하시고 기사내시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는데 이는 기본도 안 된 “기레기”들을 향한 쌍욕을 점잖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동아 역시 임대료 언급은 쏙 뺀 채 최저임금만 걸고넘어진 악랄한 기사 타이틀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동아의 타이틀은 한발 더 나아가 ‘연매출 70억’ 홍석천 레스토랑 中 두 곳 폐업…“최저임금 인상 감당 못 해” 이라고 써서, 홍 씨처럼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자영업자도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타이틀로 보도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같은 매체에서 다시 홍석천 씨의 중앙에 대한 항의 소식까지 전하며 홍 씨를 소재로 조회수 장난질을 두 번 우려먹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웬만한 뻔뻔함으로는 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린 이후 대다수 언론의 최저임금에 대한 맹공은 융단폭격에 가깝다. 상업중심지가 텅 비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2 청년들이 취직이 안 되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 며느리가 집을 나간 것도 최저임금 탓이다. 이러한 꾸준한 마타도어는 실제로 여론을 움직이기도 한다. 갤럽이 최근에 조사한 최저임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 그 직접적 수혜자라 할 청년층의 예비노동자군에서조차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고,3 이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그런 점에서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깝다.

보수 “언론”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나아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보다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폐기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이 정책이 폐기돼야 진정으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의 여부는 별개로 하고 현 정부의 경제 축을 이루고 있는 그 정책의 폐기가 궁극적으로 “진보”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고 그들이 꿈꾸던 우익국가로의 회귀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월급이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조선일보 기자는 왜 자기들 월급은 올려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우겠는가?4

謹弔

그가 꿈꿨던 미래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슬로건은 ‘국민 모두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문화국가’였다. 첼로를 사랑하셨던 먼저 떠난 그에게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바친다.

이명박이 판 쥐구멍

집권 초기 이명박 정부는 국가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감세로 인한 재정 부족분을 예산 절감을 통해 보전하겠다는 작은 정부론의 정책 기조에 따른 것이었다. [중략]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집권 1년이 지나면서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중략] 이명박 정부는 2009년 3월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중략]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항목 중 긴박한 사업 추진이 요구되는 ‘재해복구 지원’을 ‘6. 재해예방·복구지원’으로 수정했다. 재해예방이 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말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중략] 결국 4대강 사업 예산 22.2조 원 중 핵심 사업인 준설, 보 설치 등을 포함해 총 89%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제외되었다.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오건호 지음, 레디앙, 2011년, pp169~171]

1999년 도입된 예비타당성 조사는 한국의 국가 재정 체계에 있어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받는 제도다. 국가재정법 및 관련시행령은 예비타당성 조사의 대상사업, 사업규모, 제외사업 등 구체적 사항을 담겨 있어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오건호 씨에 따르면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사업 추진 부서가 자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벌였다. 1994~1998년 동안 진행된 자체 타당성 조사 32건 중 타당성이 없다고 판명된 것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반면 제도가 도입된 이후인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총 378건의 조사 대상 사업 중 타당성이 있다고 판명된 사업은 216건, 사업수의 57%에 불과했다. 제도의 위력이 검증되는 수치다.

여러 근본적 결함에도 이렇듯 재정건전성에 기여했던 제도를 무력화시킨 혐의가 이명박에게 있다. 애초 보수가 의례 그렇듯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는 법상 500억 원 이상에만 실시하는 예비 타당성 조사의 대상 범위를 400억~500억 원 규모의 사업에도 ‘간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운하”라는 거대한 토건사업을 기획하고 있던 이명박 정부는 이런 제도강화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호기롭게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던 당초 계획이 무산되고부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무리수는 인용문과 이 블로그에서 적은 몇몇 글에서 보는 바와 같다.

이런 사정은 국토부 내부 문건에서도 확인된다. 가 2008년 3월에 보도한 내부 문건에서 국토부는 “민간사업자의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 된다”, “관광단지 개발 같은 부대사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반도대운하는 수질악화나 환경파괴 우려 외에도 애초부터 막대한 재정투입이나 주변 개발권 등 이권을 보장해주지 않고서는 경제성도 없어 추진이 불가능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의지 속에 대운하는 인수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속전속결 추진과 임기 내 완공까지 선언한 것이다.[한반도 대운하, 어떻게 ‘4대강 사업’으로 둔갑했나]

이명박 정부는 “정상적” 보수 정부일지라도 어떻게 편법으로 사익을 취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입버릇처럼 외쳐대는 “작은 정부”와 “재정 건전화”는 사익 앞에서는 금세 “큰 정부”와 “재정낭비”로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는 게다가 수자원공사라는 우량 공기업을 일종의 우회적인 자금동원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너무 큰 정부”로서의 추태까지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다 정부재정이 악화되기라도 하면 우익 이론가들은 이를 정부무용(無用)론으로 써먹기도 한다. 사실 이점이 진보주의자들의 정부역할론의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제도는 훌륭해도 정부부문에는 얼마든지 이명박이 도망갈 쥐구멍이 있는 법이라서 말이다.

박근호 교수의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읽고

남한의 “진보”세력에게 박정희의 경제신화는 일종의 계륵이다. 남한은 전 세계 개발도상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 또는 대만과 함께 – 20세기 전간기의 참화를 딛고 기적처럼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그 고도성장은 박정희의 집권 기간부터 시작된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즉, 박정희는 경제개발계획 수립, 수출지향형 공업화, 재벌체제 확립 등 경제전반에 대한 강력한 국가통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주도하여 온 것으로 알려졌고, 이것을 근거로 보수 세력은 그를 소위 “근대화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했고 진보 세력도 그 정도의 사실은 딱히 반박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그래도 민주주의는 진보 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도로 항변하곤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쓴 박근호 교수를 “진보” 또는 “보수” 중 어느 것으로 칭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책을 읽고 나서의 느낌은 치밀하고 집요하게 객관적인 경제학자라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 블로거가 쓴 묵시론 적인 경제전망을 담은 책과 어느 경제지 기자가 쓴 저축은행의 흥망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이들 책 내용의 불성실함으로 인해 박 교수의 성실함이 더욱 돋보였다. 이미 1993년에 『한국의 경제발전과 베트남전쟁』이란 책을 출판하면서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이 남한 경제에 미친 영향에 주목한 필자는 2007년 비밀문서에서 해체된 대통령기록물, 美국무성의 한국관련 문서 등을 연구하여 논리를 보강하는 등 치밀한 검증을 거친 결과물이 이 책이다.

1960년대 내내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미국의 안전보장전략 아래 놓여 있었다. 다만 한국이 ‘미국의 불안정한 의붓자식’이었던 관계는 1965년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 ‘기브앤테이크’ 관계로 이행했다. 따라서 한미관계의 분기점은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이었고, 이를 경계로 미국의 한국정책은 명백히 전환되었다. 미국에게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한국을 공산권진영에 대한 경제적 우위의 증거로 삼으려는 ‘한국모델’ 전략이 행해졌다. 이를 위해 미국이 만든 경제시스템 속에서 개발모델이 된 한국은 우대조치를 받았고,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 요컨대 미국이 ‘한국모델’ 정책을 공들여 추진한 결과, 1965년부터 한국의 고도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박정희 경제신화 해부, 박근호 지음, 김성칠 옮김, 회화나무, 2017년, p364]

해당 인용문이 책의 전반적인 요지를 담은 문구라 생각되어 인용했다. 박 교수는 박정희가 그 어떤 나라의 위정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려 했던 이유를 “한국의 경제성장, 한미관계의 강화, 한국군의 전투력 향상, 그리고 플러스알파”를 노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의 철저한 계산에 따라 진행된 베트남파병은 이후 박정희의 1965년의 방미로 이어지고 존슨 정부는 남한을 일본과는 다른 공산권에 대한 “자립형 완충지대”이자 “민주주의의 쇼윈도”로 키울 마음을 먹는다. 이를 위한 미국의 지원은 다양한 물질적 지원 이외에도 한국산 제품의 수입확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설립을 위한 학술적 지원, 미국기업의 한국 직접투자를 위한 노력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박정희의 미국을 향한 집요한 구애가 성공했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라 부른다면 달리 반박할 말은 없다. 다만 박 교수가 분석한바, 박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수립한 경제개발계획이 실제 집행에서는 많은 오류가 있었고, 미국의 바텔기념연구소가 전자산업 육성으로 방향을 제시한 후1, 미국기업의 제조업기지화를 위한 투자가 있은 다음에야 경제가 궤도에 올랐다는 사실은 박정희 체제가 미국이라는 외생적 변수 없이는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그를 “OOO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몰염치한 짓일 것이다. 그리고 이때 기득권층은 미국의 위력을 실감하고 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불경스러운 행동임을 깨달았고2 이런 행태가 오늘날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따라서 박정희 체제는 대미굴종, 많은 노동자의 희생, 정경유착 및 재벌체제 공고화, 수출지향형 경제성장, 한미일 군사/경제 동맹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가지씩 곱씹어보면 아직도 이러한 모순들이 그대로 온존하고 있음을 최근의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이러한 모순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들면 개떼처럼 달려들어 짖어대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보면 그 썩은 뿌리가 이 나라에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는 지를 서늘하게 느낄 수 있다. 어쨌든 박근호 교수의 책은 이런 썩은 뿌리의 토대인 “박정희 경제신화”의 허구성을 깨닫게 하는 입문서로서의 자격이 충분한 책이다. 이 연구가 초석이 되어 이 나라의 대안 경제를 꿈꾸고 실천할 그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대선 후보 공약 리뷰] 그래서 복지는 무슨 돈으로 할 건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도 주요 후보들은 다양한 복지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대 공약을 제출하면서 재원조달 방안으로 증세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증세 없이 세출 구조조정 등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증세를 염두에 둔 ‘중부담·중복지’를 제안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일찌감치 사회복지세 신설, 법인세 인상을 약속했을 뿐이다.[‘복지 확대’ 약속한 문·안·홍, 재원조달 방안에 ‘증세’는 없다]

각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복지공약을 내놓고 있는 반면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표명 없이 눙치고 있다는 비판기사다. 503이 당초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가계의 세금부담 증가속도가 소득의 그것에 비해 2배에 달했다는 보도도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정부가 세금을 더 걷었고, 현재의 후보들도 세금을 안 걷고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지금 공약으로라도 그 세수확보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이는 명확한 기조 없이 세금 우려내기 만만한 상대만을 고를 것이란 정황이다.

즉, 주요 세원인 법인세와 소득세 세입이 2012년부터 역전되어 소득세 세입이 더 많은 것도 한 예다. 진짜 현금이냐 아니냐에 말도 많았지만, 기업의 내부유보금이 증가일로인 상황에서 503은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에 관한 소득세제 개편 등 “사실상 증세”라는 편한 길을 걸었다. 증세냐 아니냐의 논쟁은 사실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슈 같다. 법인세율 인하는 친시장적인 정부에서 가속화되어온 정황이 있고, 그 경제학적 논리로 내세웠던 “낙수효과” 이론은 비웃음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제 법인세 인상을 진지하게 고려할 시점이다.

심상정 후보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거기에 사회복지세라는 목적세도 신설하겠다고 한다. 안철수 후보는 “법인 고소득 대상 누진세율 체계 확립”이란 공약을 내놓았고, 국민의당은 이미 24%로 세율을 올리는 법안을 제출했다.1 문재인 후보는 “재정지출 개혁과 세입확대”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문 후보 스스로 “고소득자, 고액 상속ㆍ증여자 과세 강화, 자본소득 과세 강화,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그리고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이런 식으로 제시하며 동의를 받겠다”고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입장이 모호하다.2

유승민 후보는 “저부담-저복지”를 “중(中)부담-중복지”로 전환하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우지만, 어떻게 그렇게 복지의 기조를 바꿀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세제 구조 조정 및 세제 개편”이란 표현으로 눙치고 있다. 홍준표 후보는 “탈루소득 발굴 및 지하경제양성화 등 세정강화”, “대기업 세제감면 재정비”를 이야기하고 있어 가장 소극적인 입장이다.3 경남도 부채를 다 갚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대하는 것 같다. 요컨대 법인세와 기타 목적세 공약에 있어 심 후보가 가장 적극적, 안 후보가 적극적, 문과 유 후보는 유보적, 홍 후보가 가장 소극적으로 보인다.

한편 가계의 세수부담은 가처분소득의 감소라는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꽤 신뢰를 얻는 주장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담뱃값 인상으로 저소득층이 더 부담이 됐다는 정황에서 볼 때, 결국 가처분소득과 소비와의 상관관계가 적은 부유층에 세금부담을 더 지우는 누진세 인상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심은 소득세 누진강화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자증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은 “선 금융· 부동산 등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 후 고소득 세율 인상 최고세율 인상”을 주장하고 있어 세율 인상에 부정적인 인상을 풍긴다.

문 후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고소득자, 고액 상속ㆍ증여자 과세 강화, 자본소득 과세 강화”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유 후보는 공약집에서 조세에 관한 별도의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누진구조라는 큰 틀에서는 찬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금감면 제도 개선 등에 방점을 찍고 있다. 홍 후보는 달리 언급할 내용이 없다. 종합하면 세금 정책은 심 후보가 가장 강경하고 문과 안 후보가 비슷한 내용, 유 후보가 유보적, 홍 후보는 퇴행적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이제 차기 정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증세가 논의할 시점인 것 같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가 아니고요

특검이 이재용 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한 사실에 대한 브리핑의 캡처 이미지를 트위터에서 봤다. 자막에는 “특검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라고 쓰여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처음에는 무딘 칼날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특검의 결기를 느낄 수 있는 브리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움도 있는 발언이다. 오히려 “경제를 세우기 위해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식의 브리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느 발언이 더 합당한가에 대한 물음은 정의가 경제를 희생하고서라도 이 사회가 지켜야 할 상보(相補)적 성격의 개념인지, 아니면 정의(正義)와 경제가 함께 가는 것이라는 – 또는 부정적 효과를 가지는 – 상관(相關)적 성격의 개념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는 인문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그 저자가 내한공연(!)을 열만큼 신드롬을 연출했던 책이 있다.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명불허전 우리가 정의에 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많이 깨부수면서도 동시에 대중의 통념을 위로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정의는 공동체의 정서를 지켜내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공동체가 계급, 성별, 인종별 분화를 거듭하게 되면 정의의 정의(定義)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1 체제를 유지한 남한에서는 특히 그렇다.


정의를 제멋대로 정의한 유신 시대의 포스터 (c) 민족문제연구소

이재용 씨의 혐의는 무엇인가? 뇌물공여를 통해 소위 “삼성그룹” 내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안에 대한 주주의 의사결정을 왜곡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 사태의 진행상황은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글로 적은 바 있는데, 과연 합병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닌지는 우선 논외로 하겠다.2 문제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기능적 분화를 유지해야 할 현대사회에서 이재용 씨가 그 기능적 분화를 정치적 압력으로 무마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정부가 아닌 보통사람의 돈으로 운용되는 투자도구이니 만큼 그들에게 있어 “정의”는 보통사람의 경제적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독립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엉뚱한 “국익”을 내세운 사적이익 추구에 복무한 것으로 보이는 혐의다.

분화는 근대사회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한 세계이다. 전체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한다. [중략] 이렇게 분화한 각 사회적 단위들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기능이 주어진다. [중략] 그리고 다양한 영역이나 조직은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다. [중략] 아니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다양한 국가기관과 그 기관들에 속한 수많은 국가관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국가이성비판, 김덕영 지음, 다시봄, 2016년, pp121~122]

정의의 문제로 돌아가자. 근대사회의 한 기능인 기금운용본부에게 있어 정의는 무엇인가? 연금 납입자의 경제적 이익이다. 운용본부가 그 이익을 위해 결정을 했다면 본부가 합병을 찬성했든 반대했든 그 결정을 존중해줄 합리적 이유가 있다. 그런데 만약 외압에 의해 합병을 찬성했다면 정의가 무너졌다고 여길 합리적 이유가 있다. 이때 실현된 정의는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상층부를 위한 정의다. 한편, 그렇다면 이 정의가 최소한 국가 단위의 공동체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재벌 체제에 내재화된 경제신문들은 하나같이 특검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곡소리가 났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주가로 관찰할 수 있는 시장은 별로 반응이 없다. 재밌는 일이다.

기금운용본부의 기능적 분화 무력화 시도가 경제에 장단기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3 하지만 원론적인 부분에서 살펴볼 때 이재용 씨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그는 시장의 본원적 기능, 즉 균형가격의 탐색을 방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가 기금운용본부의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본부는 시장의 합병할 양사의 합병비율이 균형가격에 부합하는지 독립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장주의자들이 경제발전의 대전제로 여기고 있는 이상향임은 분명하지 않은가? 즉, 기능적 분화를 거친 독립적 기관의 각각의 정의가 서야 원론적 경제가 바로 서는 것이다. 이재용 씨는 시장의 균형가격 탐색을 방해한 자본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본가는 적어도 시장주의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