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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가 아니고요

특검이 이재용 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한 사실에 대한 브리핑의 캡처 이미지를 트위터에서 봤다. 자막에는 “특검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라고 쓰여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처음에는 무딘 칼날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특검의 결기를 느낄 수 있는 브리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움도 있는 발언이다. 오히려 “경제를 세우기 위해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식의 브리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느 발언이 더 합당한가에 대한 물음은 정의가 경제를 희생하고서라도 이 사회가 지켜야 할 상보(相補)적 성격의 개념인지, 아니면 정의(正義)와 경제가 함께 가는 것이라는 – 또는 부정적 효과를 가지는 – 상관(相關)적 성격의 개념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는 인문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그 저자가 내한공연(!)을 열만큼 신드롬을 연출했던 책이 있다.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명불허전 우리가 정의에 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많이 깨부수면서도 동시에 대중의 통념을 위로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정의는 공동체의 정서를 지켜내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공동체가 계급, 성별, 인종별 분화를 거듭하게 되면 정의의 정의(定義)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1 체제를 유지한 남한에서는 특히 그렇다.


정의를 제멋대로 정의한 유신 시대의 포스터 (c) 민족문제연구소

이재용 씨의 혐의는 무엇인가? 뇌물공여를 통해 소위 “삼성그룹” 내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안에 대한 주주의 의사결정을 왜곡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 사태의 진행상황은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글로 적은 바 있는데, 과연 합병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닌지는 우선 논외로 하겠다.2 문제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기능적 분화를 유지해야 할 현대사회에서 이재용 씨가 그 기능적 분화를 정치적 압력으로 무마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정부가 아닌 보통사람의 돈으로 운용되는 투자도구이니 만큼 그들에게 있어 “정의”는 보통사람의 경제적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독립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엉뚱한 “국익”을 내세운 사적이익 추구에 복무한 것으로 보이는 혐의다.

분화는 근대사회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한 세계이다. 전체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한다. [중략] 이렇게 분화한 각 사회적 단위들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기능이 주어진다. [중략] 그리고 다양한 영역이나 조직은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다. [중략] 아니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다양한 국가기관과 그 기관들에 속한 수많은 국가관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국가이성비판, 김덕영 지음, 다시봄, 2016년, pp121~122]

정의의 문제로 돌아가자. 근대사회의 한 기능인 기금운용본부에게 있어 정의는 무엇인가? 연금 납입자의 경제적 이익이다. 운용본부가 그 이익을 위해 결정을 했다면 본부가 합병을 찬성했든 반대했든 그 결정을 존중해줄 합리적 이유가 있다. 그런데 만약 외압에 의해 합병을 찬성했다면 정의가 무너졌다고 여길 합리적 이유가 있다. 이때 실현된 정의는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상층부를 위한 정의다. 한편, 그렇다면 이 정의가 최소한 국가 단위의 공동체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재벌 체제에 내재화된 경제신문들은 하나같이 특검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곡소리가 났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주가로 관찰할 수 있는 시장은 별로 반응이 없다. 재밌는 일이다.

기금운용본부의 기능적 분화 무력화 시도가 경제에 장단기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3 하지만 원론적인 부분에서 살펴볼 때 이재용 씨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그는 시장의 본원적 기능, 즉 균형가격의 탐색을 방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가 기금운용본부의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본부는 시장의 합병할 양사의 합병비율이 균형가격에 부합하는지 독립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장주의자들이 경제발전의 대전제로 여기고 있는 이상향임은 분명하지 않은가? 즉, 기능적 분화를 거친 독립적 기관의 각각의 정의가 서야 원론적 경제가 바로 서는 것이다. 이재용 씨는 시장의 균형가격 탐색을 방해한 자본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본가는 적어도 시장주의자가 아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삼성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전 국민의 눈길이 최순실 씨를 비롯한 국정농단세력의 추한 행태에 쏠려 있는 와중에도 – 이하 박근혜 게이트 -, 그들의 국정농단에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은 – 보다 정확하게는 이재용 씨는 – 꿋꿋이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포함한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그동안 삼성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줄곧 부정해 왔는데 이번에 이제 그 전환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정국의 혼란을 틈타서 조용히 발표하려는 것일까? 중론에 의하면 바로 어영부영 박근혜 게이트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의 턱 밑에 특검이 와 있는 것처럼 지주회사 체제를 통해 자신의 지분을 강화하려는 이재용 씨의 턱 밑에 이러한 꼼수를 막으려는 각종 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상법 개정안, 같은 당의 제윤경 의원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회사의 분할 또는 분할합병 등을 통하여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분리하면서 분할하기 전에 자기주식의 비율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후 분할·분할합병의 방식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지주회사는 자기주식을 그대로 보유하여 그 자기주식에 대하여 자회사로부터 주식을 배정받아 현행법에 따른 모회사와 자회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지분 요건을 확보하고 있음.[상법 일부개정법률안, 2016.7.12.]

자기주식은 흔히 “자사주(自社株)”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업에서 발행한 주식을 회삿돈으로 다시 매입하는 주식’을 말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는 흔히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 후 소각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이 줄어들면서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결권이 제한되는 자사주의 특성에 따라 적대적 M&A 세력의 의결권을 약화시키는 목적에 쓸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은 이 자사주를 소위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창조경제를 구현하였다. 지난 2011년 정부는 “자사주 매입과 처분의 장점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자사주 매입·처분 요건을 완화했다. 그런데 이런 규제완화가 소위 인적분할과1 결합하면 지주회사가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활용하여 사업회사의 신주를 배정받아 의결권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마술을 부리게 된다.

한진그룹은 지난 2013년 대한항공을 지주회사(한진칼)와 사업회사(대한항공)로 나눴다. 인적분할 방식의 회사 나누기로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자사주 주식 6.75%를 갖게 됐다. 이후 한진칼에 승계된 대한항공 자사주 6.75%는, 그 비율만큼 사업회사로 된 대한항공의 신주 배정 발행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기존에 보유한 대한항공 대주주지분율 9.87%에 인적분할로 생긴 대한항공 신주 지분(6.75%)를 합쳐 총 지분을 16.62%까지 늘렸다.[재벌 지배력 강화 ‘자사주 꼼수’ 막는法…박용진 의원 발의]

삼성전자는 자사주 비중이 12.18%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하면 지주회사가 사업회사의 자사주 12.18%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 개정안들에 따르면 삼성은 ‘회사를 분할할 때 분할회사 자사주에 분할 신주 배정을 금지’(상법 개정안)당하거나 ‘대기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회사를 분할하려면 반드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공정거래법 개정안)해야 한다. 한진이 하던 절도를 삼성은 못하게 된다.

‘부자 삼성 가난한 한국’의 저자 미쓰하시 다카아키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의 대기업은 국내 시장의 과점화, 대외 직접투자 증가, 국내 투자 축소, 인건비 인하, 원화 약세, 법인세 인하2 등 한국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갖가지 시책과 전략 속에서 성장률을 높이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의 발언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는 정부와 국민의 희생 속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지난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과의 합병에서 불합리한 합병비율로 합병하여 이재용 등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시켰던 삼성이, 이제는 다시 그 지배력을 활용하여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자사주를 동원하고 이를 통해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는 2차 퀀텀점프를 시도하고 있다. 노동자의 희생과, 원화 약세를 위한 국가적 희생과, 차별적인 대우를 통한 자국 소비자의 “호갱화”로 거대기업이 된 삼성전자가 그렇게 이재용의 품에 안기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국익”을 위해 도와줘야 하나?

때가 되자 본색을 드러내는 조선일보

국회가 탄핵의 정치적 관문이라면 헌재는 탄핵의 사법적 관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 걸리는 시간 요소다. 최대 7~8개월을 잡는다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상황이라 해도 임기는 거의 채우는 셈이 된다. 애초에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내고 2선 후퇴를 제의했을 때 야권이 이를 받았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을 문씨, 안철수씨 등이 ‘웬 떡이냐’면서도 더 먹으려고 반대했다가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야권의 과욕과 두뇌 부족이 빚은 결과다.[이제 ‘박근혜’는 과거다]

오늘자 김대중 칼럼 중 일부다. 그간 마치 반정부 투쟁의 선봉에 서기라도 한 것처럼 살벌한 구호를 외쳐대던 조선일보의 본색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선 김 씨는 그간 박 대통령의 탄핵을 미적거리던 야권의 우려사항 중 하나를 지적했다. 바로 탄핵절차를 밟자면 의도한대로 간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임기에 필적하는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김 씨는 그런 현실을 지적하며 야권이 “과욕과 두뇌 부족” 탓에 김병준 총리 카드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놓쳤다고 조롱한 것이다.1

하지만 그 상황은 조선일보가 원하는 상태일지는 몰라도 야권, 더불어 국민이 원하는 미래는 아니다. 대체 야권에 몸을 담은 적이 있던 총리와 대통령의 2선 후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2선 후퇴도 거국내각도 – 김병준 총리 체제가 거국내각도 아님은 물론이고 – 그 어느 것도 헌법적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박근혜를 보수 세력의 본류가 아닌 일탈자로 취급하여 골방에 처넣고 전열을 정비하여 보수 재집권을 노리는 조선일보나 원할 극히 어정쩡한 상태다.2

이 사태의 본질은 “저잣거리 아녀자의 국정농단”이나 “최태민 교주에 정신적으로 지배당한 위정자의 일탈”이 아니라 헌정 이래 지속되어 오던 사익추구집단의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하는 상호 사익추구다. 지난번 수사결과 발표에서 검찰이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칭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고 직접 정유라를 지원한 삼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죄목도 현재까지는 뇌물죄가 아닌 강요죄다. 언급되지 않은 이가 바로 주범이다.

경제범죄가 악랄한 점은 그 범죄 구성요건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사안한화와의 방산 업체 거래에 있어, 최순실 씨등의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로비를 통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심증은 있지만, 이러한 심증이 법정에서 실정법 위반으로 판결나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고되어 있다. 그리고 김대중 칼럼이 원하는 상황이나 검찰의 발표 내용은 그러한 길에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이다. 그게 보수의 생존전략이다.

‘기승전순실’이라고 지금 교육, 의료, 재난구조, 인사, 경제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가 최순실 씨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일 정도다. 믿기지 않기는 하지만 그 부조리의 신경망에서 최순실 씨만 걷어내고 보면, 그간 사익추구집단이 얼굴만 바꿔가며 해오던 짓이다. 김대중 씨가 원하는 김병준 총리 체제는 그렇게 얼굴만 바꾼 사익추구의 체제다. 따라서 야권은 이번 기회에 이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말 두뇌 부족이다.

한데 김용철 씨는 그들의 서술구조에서 한발 더 나아가 100% 실존인물이 100% 실제 벌어졌던 일을 꾸미고 저지르고 있는 양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도 화려하다. 국내 최고의 재벌 삼성의 이건희 가족, 현 대법원장인 이용훈 판사, 돌아가신 두 대통령과 현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검찰 등 지배계급들이 총망라되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 이유는 만약 이 이야기가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면 이건 나라가 두 번 뒤집어질만한 대사건이고, 사실이 아닌 것을 김용철 씨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건 사상최대의 인격모독이자 무고이기 때문이다.[‘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그때 위임장을 써달라던 삼성물산 직원은 어디로 갔을까?

삼성물산 주식 100주를 갖고 있는 김모(63·서울 송파구)씨는 지난 7일 저녁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대행(代行) 위임장을 써 달라는 삼성물산 직원의 방문을 받았다. 김씨는 “위임장을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며 돌려보내려 했지만, 이 직원은 “얼마 걸리지 않으니 직접 받아가면 안 되겠느냐”고 간곡히 요청했다. 김씨는 “오죽 급하면 찾아왔을까 싶어 합병 찬성 위임장을 작성해 줬다”고 말했다.[삼성물산·엘리엇 ‘위임장 전쟁’, 2015년 7월 10일]

KIC가 엘리엇에 투자한 사실을 알리며 “삼성물산 지인에게는 미안하지만”이라 단서를 단 트윗을 봤는데, 물산 직원에게 합병이 이로울까? 합병하면 시너지 효과 홍보를 위해서라도 건설 부문 인력 구조조정은 필수다. 위임장 받으러 다니던 그 직원일 것이다.[EconomicView on Twitter, 2015년 7월 10일]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 9일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상대로 관련 통보를 시작했으며 현재 각 부서별로 순차적인 통보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 통보 대상은 약 1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 6월 기준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직원수는 계약직을 포함해 총 7270명이다. [중략] 사업부문이 겹치는 제일모직 건설도 이미 인원 감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제일모직이어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구조조정 시작, 2015년 11월 10일]

통합 삼성물산이 탄생할 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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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headquarters” by Oskar Alexanderson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DSC_0234.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건은 일반의 – 그리고 개인적인 – 예상대로 합병 승인으로 1차 승부가 끝났다. 합병 건이 막 화제가 되었을 적에 회사 동료들과 이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한 동료에게 ‘만일 네가 삼성물산에 투자하고 있는 펀드의 펀드매니저라면 이번 합병 건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을 것이냐’란 질문을 했고 그는 반대하겠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이유를 물으니 그는 불공정한 합병비율도 있고 등등 운운하며 우물우물 거렸다.

불공정한 시장참여자를 응징하겠다는 “정의로운” – 또는 행동경제학적인? – 그 동료에게 나는 다시 ‘그게 펀드매니저로서의 적당한 행동인지를 판단해보라’고 조언했다. 시장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라면 모를까 펀드매니저라면 합병 건이 자신이 운용해야 하는 자산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직업윤리라는 관점에서 한 말이었다. 합병 건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직업윤리의 기준에서 판단을 하는 것이, 적어도 ‘타당한’ 판단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순환출자가 아직도 재벌 소유구조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고, 재벌 일가의 경영적 판단이 “오너”의 판단으로 둔갑하는 이 사회에서의 펀드 매니저 또는 주주의 대부분은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이 타당한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통합 삼성물산이 앞으로도 삼성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고 재벌 일가는 어떡하든 앞으로도 주가를 띄우려 할 것이다.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은 한동안은 주가가 시원치 않을 것이다.

(삼성물산이 직접 겁박하기도 한) 이러한 정황이 오늘 삼성물산 주총에서의 – 제일모직 주총은 언급할 필요도 없고 – 시장참여자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재용 씨가 이번 합병으로 인하여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다는 것이 배 아프다고 합병에 반대하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인으로서의 마인드가 아니다. 그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득에 다만 얼마라도 묻어가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직업윤리에 비추어 보아도 합당한 판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 우리 모두는 신고전파가 되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국면에서 등장한 “국익”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신장섭 교수는 국민연금이 수익률과 국익을 고려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삼성물산 주가가 합병발표 뒤 15~20% 올랐다”며 “국민연금은 투자기관이기 때문에 필요한 수익률을 내야하고 국민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국익을 지키는 범위에서 투자해야 한다” [중략] “삼성그룹은 잘한 점도 있고 잘못한 점도 있지만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한국경제에 어떤 공이 있는지 모르겠다”[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국민연금 어느 편에 서야 하나]

KIC 고위 관계자는 8일 “지난 2010년 10월 투자 수익률 제고 차원에서 엘리엇 펀드에 5000만달러(약 568억원)를 투자했으며 지금까지 약 40%의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안다”면서 “엘리엇이 삼성물산 보유 지분(7.12%)을 일시에 다 팔고 나가면서 ‘먹튀’ 행태를 보이거나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지속적인 공격을 가해 시장 질서와 국익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면 투자금 회수를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다.[한국투자공사 “엘리엇이 국익 해치면 투자금 5000만달러 회수 고려”]

참 재밌는 상황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의도가 의심스러운 합병 건에 대해 외국계 펀드가 딴죽을 걸고 나오자 난데없이 “국익(國益)”이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이 표현을 최초로 언급한 이는 인용기사 중 언급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토론회에서 국민연금이 “국익을 지키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한편 엘리엇에 투자하고 있는 KIC는 엘리엇이 “국익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이제 우리는 국익의 실체를 파악하여야 한다. 국익이라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추상적인 표현을 경제적으로 굳이 규정해보자면 ‘국가 및/또는 그 국가에 거주하는 국민 전체의 경제적 이익’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경제적 이익이 국민경제 단위를 경계로 하여 그 손익을 따져야 한다는 명분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형평성 측면으로는 어떠할까? 국익이라는 국가주의적 뉘앙스를 감안하자면 그 경제적 이익은 보다 많은 국민의 이익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신 교수의 “국민연금에 국민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이란 개드립은 무시하고라도 국민연금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것이 소위 국익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의견에는 크게 이의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단순히 경영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사익추구의 의도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의결권 자문사들이 삼성물산의 주주는 합병 건에 반대해야 한다고 권하는 것이다.

오스카르 랑게와 같은 “시장 사회주의자”들은 시장경제가 정상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토대라 여기면서 우리나라의 재벌과 같은 사익추구 집단의 존재가 시장경제의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즉 삼성 “오너” 일가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꼼수 시도가 아니라면 시장에서 양 합병 주체는 각각의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익에 의해 왜곡된 삼성물산은 직원을 동원해 소액주주를 찾아가 합병 찬성 위임장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

신 교수 주장대로 국민연금이 합병 건에 찬성하면 국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엘리엇이 시세차익을 얻지 못하고, 제일모직에도 상당한 지분이 있는 국민연금의 삼성그룹 주식 가치가 오를 수도 있고, 통합 삼성물산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기업이 성장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KIC가 손해를 보고, “오너” 일가가 부당한 이익을 얻고, 위임장을 받으러 다니던 삼성물산 직원이 구조조정으로 잘릴 수도 있지만 이런 손해들은 국익의 대차대조표에서 한편에 밀어두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을 대변하는 국민연금은 왜 더 나은 국익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합병이 성사되면 주주 가치의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삼성 측의 조건부 립서비스 말고 지금부터라도 주주 가치의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여타 조치를 – “오너” 일가의 예상 이익에 대한 특별과세, 협력업체와의 상생, 직원들의 고용안정 등 – 합병 찬성을 조건으로 협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진정 국익을 논하려면 그 정도의 협상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이 말하는 “경영권 방어 강화”는 누구를 위한 강화인가?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해외 헤지펀드를 필두로 한 적대적 M&A 세력이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기업을 공격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제계는 “경영권 방어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내 기업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은 자사주 취득과 신주의 제3자 배정,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 정도다. 하지만 자사주 취득 외에 다른 수단은 사실상 무력화돼 있다.[“황금주·포이즌필 도입하고 영국처럼 지분공시 기준도 강화해야”]

과연 한국경제신문답다. 한국 재벌의 소유구조를 반성해야 할 시점에 엘리엇매니지먼트를 “적대적 M&A 세력”으로1,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시도를 “국내 기업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시도로 프레이밍하면서 “경영권 방어책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문어발식 순환출자를 통해 양적 팽창에만 신경 쓰느라 “오너 일가”라는 이름에 무색하게 극소수의 지분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횡을 휘두르는 한국 재벌 일가의 행태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도 엿보이지 않는다.2

삼성그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이유로 시너지 효과를 들었다. [중략] 그러나 삼성이 합병을 추진하려는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승계작업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제일모직 지분 23.2%를 근거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은 0.57%밖에 없다.[헤지펀드가 물고늘어진 삼성의 아킬레스건]

親삼성 언론 중앙일보 정경민 경제부장의 글이다. 임금님이 홀딱 벗고 있음에도 아무도 그렇다고 이야기 못하는 동화적 상황이 이번 사태에서 재연되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정경민 씨가 그의 블로그에 사실을 알리고 있다. 삼성물산이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이번 합병계획이 이재용 씨에 대한 “후계 승계 작업”임을 부인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리고 여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누군가가 이 승계 작업이 적정한 가격에 의한 작업이 아니라 주장한 지점이다.

한국경제가 주장하는 “경영권”은 누구를 위한 경영권이어야 하는 것일까? “주주 자본주의”적 사고로는 ‘주주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엘리엇의 주장이 그것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적 사고로는 노동자 등의 이익도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사회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목소리를 얻고 있다. 그럼 지금 삼성물산의 경영권은 어떤 자본주의적 사고를 따르는 것일까? 사견으로 삼성물산은 “오너 일가”의 봉건적 후계 승계 작업을 위한 사고로 매진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대주주는 2015년 6월 1일 현재 삼성SDI(7.9%), 삼성화재(4.79%)다. “오너” 이건희 씨의 지분은 1.41%다. 삼성SDI의 대주주는 2015년 6월 2일 현재 삼성전자(19.58%)고 삼성화재의 대주주는 2015년 3월 5일 현재 삼성생명(14.98%)다. “후계자”로 알려진 이재용 씨의 지분은 잘 안 보인다. 인용문에서 언급된 삼성전자 0.57%와 삼성생명 0.06%에서 잠깐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싸움에 “삼성물산 對 적대적 M&A 세력”이란 프레이밍이 맞는 것인가?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가치는 상장사만 따져도 13조원정도다. 극단적으로 말해 삼성물산을 사들인 뒤 계열사 지분만 팔아도 5조원 남는 장사란 계산이 나온다. 삼성물산은 덤으로 남는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정관을 고쳐 보유 주식을 현물 배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삼성전자 지분을 노린 포석이다. 엘리엇의 주장에 외국인투자자와 국내 소액투자자 일부가 동조하고 나선 건 이 때문이다.[헤지펀드가 물고늘어진 삼성의 아킬레스건]

형법에는 “배임의 죄”라는 죄목이 있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제 355조)” 적용되는 죄다. 삼성물산에서 이재용 씨는 어떤 위치인가? 심하게 말해 그는 제삼자다. 그 삼자가 합병으로 엄청난 이득을 누리게 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 상황인데 경영진은 합병으로 매진하고 있다면 그 경영권은 과연 배임으로부터 자유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