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소비

월스트리트를 떠도는 가십 몇 가지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 때문에 뉴욕의 부자들이 비틀거리고 있다. 예술품, 패션, 자동차, 레스토랑, 성형수술, 그리고 여타 사치재를 소비하면서 지역경제를 살려왔던 이들이 그들의 한때 흥청망청했던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모든 변덕스러움을 충족시켜주던 이들은 — 유모 에이전시에서 보석가게, 그리고 요트 생산 업자에 이르기까지 – 그들의 고객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그들의 지출을 백만 단위에서 천단위로 줄이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The financial crisis on Wall Street has New York’s well-to-do reeling. The people who fuel the area’s economy with their spending on art, fashion, cars, restaurants, plastic surgery and other luxe goods and services are starting to cut back once-lavish budgets. As a result, those who cater to their every whim — from nanny agencies to jewelers to yacht builders — are seeing clients tighten their belts on expenses from the millions to the thousands.[출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번 사태는 빈자들뿐만 아니라 부자들의 가슴까지도 서늘하게 하는 공포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기에, 또 그 공포는 현존하는 위기이기에 지금 부의 상징과도 같았던 뉴욕 거리에도 소비위축의 한파가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그래도 캐리는 여전히 지미추를 사들이겠지만) 너무 호들갑스러운 허풍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다음 기사를 보면 이 거대한 코미디가 적어도 얼마나 이례적인가 정도는 느낄 수 있다.

거대한 월스트리트 기업이 끝장나면 당신이 그 은행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것 하나는 기념품이 수시간 이내에 이베이의 경매에 올라올 것이라는 것이다. 리만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틀 후인 수요일 450개의 리만 아이템들이 올라왔다.
When a big Wall Street firm goes belly up, one bet you can take to the bank is that memorabilia will be offered for auction on eBay within hours. On Wednesday, two days after Lehman Brothers filed for bankruptcy, more than 450 Lehman-branded items were being offered.[출처]

기사 제목도 “리만이 돈을 모을 수 있는 기회:이베이(Lehman’s Chance to Raise Funds: EBay)”다. 염장을 지르고 있다. 한편 앞서의 글에서 자본주의의 멸망을 환호했던 차베스가 리만 사태를 마냥 웃으며 바라볼 수 만은 없는 입장이라고 한다.

리만의 소유재산들을 각각 분석하고 있는 세 명의 분석가에 따르면 우고 차베스 정부가 리만이 현금화하기로 동의한 부채증서 중 3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The government of Hugo Chavez holds about $300 million in debt instruments that Lehman had agreed to cash, according to three analysts who calculated the holdings separately.[출처]

하기야 마르크스도 주식투자를 했다는데.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에 대한 단상

요즘 미국의 자본주의를 두고 ‘이익은 사유화되고 비용은 사회화되는 부자들의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아주 유행하고 있다. 특히 자신들의 돈으로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기업주들의 목숨을 연장시켜주었다고 생각하는 많은 미국 납세자들이 이러한 주장에 심히 공감할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실 이러한 ‘부자들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역사에 있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어떠한 사회인가. 생산수단을 집적하고 대규모화시켜서 소비할 것을 만들어내는 사회다. 그곳에서 만들어내는 것들은 만들어낸 이가 쓰기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이들에게 팔려고 만든 것들이다. 즉 상품(商品)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경제/시장경제의 시스템이 본격화된 사회다. 즉 소비는 자본주의와 더불어 ‘사회화’되었다.

한편 (생산수단의) 소유와 투자는 여전히 ‘개인화’되어 있었다. 주식회사라는 신종 기업형태가 일반화되기 전까지 사기업들은 개인 또는 가족의 소유였다. 주식의 공개가 ‘사회주의’를 재촉할 것이라는 피터 드러거와 같은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식, 즉 회사의 소유권은 소수 자본의 손에 집중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와 투자 ‘개인화’는 자본주의의 본질 중 하나이다.

사기업은 사회화된 소비를 담당하는 주요주체다. 특히 오늘 날과 같이 국가의 공공서비스가 민간부문으로 이전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 비중이 커져가고 있다 할 수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가 망해가는 기업을 구제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화된 소비를 담당하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방기하면(주1) 그것은 체제의 – 자본주의에 국한된 것이 아닌 물질문명의 –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소비와 소유/투자의 불일치가 납세자들을 분노하게 한다. 기업의 상품을 국민이 소비하는 한편으로 그 기업을 국민이 소유하고 있다면 – 물론 그 집단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 불만은 한층 줄어들 것이다. 반면 국민이 소비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소유주, 그리고 의사결정의 주체가 회장 일가, 론스타, 듣보잡 소버린 펀드, 또는 헤지펀드일 경우, 그리고 그들이 구제 금융으로 한숨을 돌릴 경우 왕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일개국가는 여전히 소유와 투자의 개인화는 손댈 의지가 없다. 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능력이 없다. 조지 부시, 헨리 폴슨, 고든 브라운, 니콜라 사르코지, 이명박 등등 국가의 수반 중 위와 같은 기업의 모순에 대해 1초 이상 고민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미행정부가 정리신탁공사(RTC·Resolution Trust Corp.)를 신설하지만 이를 기업형태의 본질을 손대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 세상은 더욱 복잡해져가고 있다. 예전처럼 단순히 노동자와 자본의 갈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으로만 관찰할 수 없는 현상이 늘어가고 있다. 미행정부가 자국의 모기지 사용자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소버린 펀드의 이해관계를 위해 프래니를 구제해준 것에 대해 누가 약자고 누가 착취자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다 딴에는 국가를 위하고 서민을 위한 일들을 하고 있다.

‘이익의 사유화되고 비용은 사회화’되었다고 볼멘소리 하는 납세자들 중에서도 자신이 투자한 간접투자펀드가 그 ‘이익은 사유화’되는 과정에서 구제받은 아이러니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국 모순의 본질을 살펴보는 것, 그리고 그 해법을 찾는 과정은 ‘악랄한 자본가를 몰아내자’라는 좌익적 도덕론만으로는 부족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주1) 즉 시장근본주의자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자유방임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면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내 생각엔 시장근본주의자들이 가장 위험한 반(反)자본주의자들이다.

소비부진에 대한 공감 가는 원인분석, 엉뚱한 해법

2000년대 이후 국내경제의 소비부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보고서 ‘장기적 소비부진의 원인분석(2008.8.27)’(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소비증가율은 외환위기 이전의 7%대에서 2000년대 들어 3%로 급락하였으며, 실질 GDP내 민간소비 비중도 57.6%(1990~97년)에서 51.7%(2000~07년)로 5.9% 축소되었다고 한다.

보고서에서는 소비부진을 설명하는 변수로 1) 소비여력의 약화 2) 고용창출력의 약화 3) 소득불균형의 심화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설명을 분석모형에 적용할 결과 약 67%정도의 설명력을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또 다른 핵심변수로 ‘미래소득에 대한 불안감’을 들고 있다. 즉 이러한 불안감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현재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을 늘려 미래소비를 확보하게끔 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에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를 조사한 결과 각각 그 탄력성의 크기에서 고용불안(1.02), 교육불안(0.41), 노후불안(0.36), 금융불안(0.01)의 순서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중에서 앞서의 두 요소가 현재의 사회적 위치 또는 소비패턴의 범주라면 후자의 두 요소는 이로써 귀결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금융이라는 거시경제의 범주라는 점에서 가장 큰 설명인자는 역시 고용불안과 교육불안(즉 교육비 부담)일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도래와 더불어 양산된 비정규직 등으로 인한 고용유연화와 이를 자식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현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보고서는 그러나 – 익히 예상할 수 있듯이 – 그 대안을 고용유연성의 포기에서 찾지 않는다. 보고서는 보다 완곡하게 – 또는 보다 교묘하게 –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고용불안감 해소’라는 상충되는 두 가지 목표를 양립시키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시는 바와 같이 김대중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여태의 정부는 전자의 강화에만 주력해 왔다.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본격적인 내수주도형 경제로 경제체질을 바꿔야 할 시점에서 시의적절하게 소재를 선택한 이 보고서는 덴마크와 네델란드의 경우와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가운데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구사하는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제안하고 있다. 나름 현실적인 대안이다.

문제는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그 세부적인 실천방안이다. 우선 보고서는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상식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고용불안감에 대해서는 ‘고용정보의 질적제고’, ‘생애교육 차원에서의 직업훈련 강화’라는 다분히 교리문답식의 대안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안은 현재 양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및 파견직에 대한 기업들의 불법적인 노동착취 근절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보고서는 앞서 전통적인 설명요인 중 ‘2) 고용창출력의 약화’ 부분에서조차 고용창출력 약화가 산업구조가 IT산업 등으로 고도화됨에 따른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을 뿐 비정규직 양산을 통한 고용의 질 악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정책적 시사점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음으로 소비자가 현재소비를 희생하는 소비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에서 보고서는 “공적연금 이외에 기업연금 및 개인연금을 활성화해 노후보장 수단을 다양화”하자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획일화된 공적연금이 아닌 다양한 상품을 소비자가 활용한다는 의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상품들이 현재소비를 희생하는 소비행태의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업연금’, ‘개인연금’이 ‘공적연금’보다 현재의 소비를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보고서 작성자는 이들 연금이 공적연금보다 싸다고 생각하는지?

삼성경제연구소의 – 다른 기업연구소들도 대개 마찬가지이지만 –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보고서의 작성자가 늘 무언가에 억눌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보고서들은 적절한 소재를 찾아 적절한 연구방법을 통해 적절한 설명요인을 찾는다. 거기까지는 좋다. 역시 실력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정책적 시사점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친기업적인, 또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시사점을 병렬식으로 늘어놓곤 한다.

이 보고서 역시 바로 그 느낌이다.

보고서 보기

The Man in the White Suit

Man in the white suit.jpg
By designed by graphic designer Sydney John Woods and painted by Alfred Reginald Thomson. – , Fair use, Link

영국의 고전 코미디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아실만한 영국 코미디의 명가 일링 스튜디오의 1951년 작품이다. 일링 스튜디오의 작품은 풍자적인 블랙코미디로 전후 영국의 혼란스러운 자본주의의 모습을 다뤄 명성을 쌓아갔다. 제한된 예산과 시장 탓에 이들은 할리우드식의 스펙터클 대신 시나리오의 명민함과 배우들의 연기에 승부를 건다. 특히 알렉 기네스는 이 시기 일링 스튜디오의 대표주자로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고 이 작품 역시 그의 연기력에 5할을 기대고 있다.

캠브리지 출신이지만 직물 공장의 하급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시드니(알렉 기네스)는 실험실 한편에 남몰래 실험 장비를 갖춰놓고 자신만의 실험에 몰두한다. 그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바로 영구적이면서도 오염되지 않는 직물. 그의 이러한 야심은 여러 장벽에 부닥치지만 한 기업가의 후원으로 마침내 발명에 성공하게 된다. 그는 세상을 구원한 것이다.

라는 것은 잠시 동안의 착각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직물산업의 자본가들은 난리가 났다. 영구적인 직물이 팔리면 직물업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들 역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 두려워 이를 반대한다. 주식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여 직물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한다. 도시의 모든 이들은 이제 시드니가 그의 작업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합심하여 그를 찾아 나선다.

이상에서 보듯이 영화는 자본주의의 존립근거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것은 ‘소비’다. 상품은 만들어져서 팔리고, 그리고 소비되어 없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본주의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사용가치를 증대시키지만 그것이 교환 시스템을 마비시킬 경우 자본가든 노동자든 또는 양자 모두든 민감하게 반응한다. 첫 번째의 경우가 MP3 파일의 탄생에 대한 음반 산업계의 반응이었다면 후자가 기계자동화에 대한 러다이트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처럼 때로는 기술의 발전에 대한 거부를 위해 노자가 합종연횡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이 영화에서의 자본가였다면 그리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시장은 영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시드니가 발명한 직물을 판다면 그들의 산업이 사양화될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특허권을 등록하여 독점적 권리를 행사한다면 그들은 더 많은 특별잉여가치를 향유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말이다. 좀 더 나아간다면 직물이 일반직물에 비해서는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영구적이지는 않게끔 기술개발(?)을 하면 소비의 미학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작가가 그런 생각을 하였더라도 1시간20분의 짧은 러닝타임에서 그런 복잡한 역학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관객인 나로서도 이 정도의 통찰력을 지닌 코미디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쯤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영구적인 직물에 대해 만약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다른 경제체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조금만 더해보자. 아마 시드니는 인민영웅이 되었고 직물공장의 노동자들은 기술향상으로 인한 시간만큼 노동시간을 임금 삭감 없이 단축하거나 다른 산업으로 재편되었을 것이다. 사용가치가 증가되면서도 교환가치의 하락을 용인하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이 영화와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좋은 글 하나

자본주의 공장, 중국발 인플레이션 촉발되는가

11월 중국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6.9%에 달해 11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식료품 가격은 전년 동월에 비해 18.2% 상승하였다. 특히 중국인이 가장 즐겨먹는 고기류인 돼지고기 가격은 54.9%가 상승하였고 식용유는 34% 상승하였다.

12월 들어 중국당국은 경기과열 현상을 막기 위해 화폐공급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곡물과 석유의 국내소비를 증진시키기 위한 각종 세금 및 보조금 정책을 발표하였다.

물가상승의 원인은 다양하다. 전 세계적인 흉작, 유가급등 등이 그 주요원인일터이고 또한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에 따른 자본유입도 물가상승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당국은 금년 들어서만 금리를 다섯 번 올렸고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열 번 올렸다.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이에 따라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있고 파업등 사회적 소요로 나라가 시끄러운 실정이다. 얼마 전 관동에 위치한 Alco 전자에서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치솟는 식료품 가격에 항의하는 행진을 벌이는 등 저항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시위에 민영화에 따라 해고된 노동자들이 반부패를 외치며 가세하고 있어 경제적 파업이 정치적 저항으로 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물가폭등에 따른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달 충칭에 위치한 까르프에서 있은 세일행사에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3명이 죽고 31명이 다치는 참변이 일어났다. 10월에 상하이의 한 슈퍼마켓에서 역시 15명이 부상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2월 12일자 기사에서 이러한 광범위한 반정부 저항이 1989년의 그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 가기 시작함을 경고하고 있다. 이 신문은 한 은퇴한 노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는 최근 임금은 10% 오른 반면 물가는 50%가 올라 병원 갈 돈도 없다며 마오쩌뚱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공산당은 이러한 무정부적 사태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1980년대 집단농장 체제를 폐지한 이후 당국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도시인구의 수요에 대응할만한 효율적인 곡물 통제정책 수단이 없는 형편이다. 당국은 민영화된 회사로 하여금 물가상승에 상응하는 임금인상을 유도할 계획이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중국 사회과학아카데미의 ‘기업 경쟁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중국 노동자의 임금은 GDP 대비 53.4%였으나 2005년에는 그 비율이 41.4%로 줄었다. 이 기간 동안 경제규모는 여섯 배 늘었다. 이익배당은 동 기간 동안 21.9%에서 29.6%로 늘었다. “기업이윤의 상당수가 고용인의 저임금에서 얻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보고서는 인정했다.

더불어 1990년대 공공주택, 의료보장, 교육 및 연금 등 각종 사회주의적인 보호막이 붕괴되면서 체감 적으로 느끼는 노동자들의 생활고는 한층 심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중국 노동자는 이미 사회주의가 무너진 자본주의 무한경쟁의 장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일당독재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초현실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결국 현 상황은 ‘성장’ 드라이브를 위해 사회주의적 조치들을 풀어헤치고 전 세계에 자국경제를 무절제하게 개방해버린 중국당국의 개혁(?) 조치가 초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제는 크게 성장하였고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는 중국에서 제공되는 값싼 상품을 통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틀어막아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현재 중국경제는 사회공공성이 무시된 성장에 따른 물가상승과 저임금, 이로 인한 양극화라는 전형적인 ‘시장의 실패’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결국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겠지만 어떠한 식으로든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감으로써 중국산 상품가격이 올라가고 –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이익감소를 감내하지 않은 한은 – 이는 또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웃나라인 우리나라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이미 중국에서의 치즈 소비 증가 때문에 치즈 가격이 폭등하였고 우리나라 핏자집이 하루가 다르게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역시 높은 물가와 저임금, 비정규직 등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어 내수경제가 침체되어 있는 중국과 유사한 상황에서 중국발 인플레이션 촉발이라는 또 하나의 반갑지 않은 황사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이 글은 World Socialist Web Site 에 올라온 Soaring inflation sparks social unrest in China 라는 글을 요약발췌하고 개인적인 의견을 첨언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