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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in the White Suit

Man in the white suit.jpg
By designed by graphic designer Sydney John Woods and painted by Alfred Reginald Thomson. – , Fair use, Link

영국의 고전 코미디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아실만한 영국 코미디의 명가 일링 스튜디오의 1951년 작품이다. 일링 스튜디오의 작품은 풍자적인 블랙코미디로 전후 영국의 혼란스러운 자본주의의 모습을 다뤄 명성을 쌓아갔다. 제한된 예산과 시장 탓에 이들은 할리우드식의 스펙터클 대신 시나리오의 명민함과 배우들의 연기에 승부를 건다. 특히 알렉 기네스는 이 시기 일링 스튜디오의 대표주자로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고 이 작품 역시 그의 연기력에 5할을 기대고 있다.

캠브리지 출신이지만 직물 공장의 하급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시드니(알렉 기네스)는 실험실 한편에 남몰래 실험 장비를 갖춰놓고 자신만의 실험에 몰두한다. 그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바로 영구적이면서도 오염되지 않는 직물. 그의 이러한 야심은 여러 장벽에 부닥치지만 한 기업가의 후원으로 마침내 발명에 성공하게 된다. 그는 세상을 구원한 것이다.

라는 것은 잠시 동안의 착각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직물산업의 자본가들은 난리가 났다. 영구적인 직물이 팔리면 직물업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들 역시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 두려워 이를 반대한다. 주식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여 직물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한다. 도시의 모든 이들은 이제 시드니가 그의 작업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합심하여 그를 찾아 나선다.

이상에서 보듯이 영화는 자본주의의 존립근거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것은 ‘소비’다. 상품은 만들어져서 팔리고, 그리고 소비되어 없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본주의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사용가치를 증대시키지만 그것이 교환 시스템을 마비시킬 경우 자본가든 노동자든 또는 양자 모두든 민감하게 반응한다. 첫 번째의 경우가 MP3 파일의 탄생에 대한 음반 산업계의 반응이었다면 후자가 기계자동화에 대한 러다이트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처럼 때로는 기술의 발전에 대한 거부를 위해 노자가 합종연횡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이 영화에서의 자본가였다면 그리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시장은 영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시드니가 발명한 직물을 판다면 그들의 산업이 사양화될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특허권을 등록하여 독점적 권리를 행사한다면 그들은 더 많은 특별잉여가치를 향유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말이다. 좀 더 나아간다면 직물이 일반직물에 비해서는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영구적이지는 않게끔 기술개발(?)을 하면 소비의 미학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작가가 그런 생각을 하였더라도 1시간20분의 짧은 러닝타임에서 그런 복잡한 역학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관객인 나로서도 이 정도의 통찰력을 지닌 코미디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쯤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영구적인 직물에 대해 만약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다른 경제체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조금만 더해보자. 아마 시드니는 인민영웅이 되었고 직물공장의 노동자들은 기술향상으로 인한 시간만큼 노동시간을 임금 삭감 없이 단축하거나 다른 산업으로 재편되었을 것이다. 사용가치가 증가되면서도 교환가치의 하락을 용인하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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