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SERI

‘스타형 팔로워’와 ‘공존형 시티즌’, 그 공통점과 차이

삼성경제연구소가 재미있는 보고서를 하나 내놓았다. 제목은 “시티즌십, 위기극복의 필요조건”.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써 “시티즌십(citizenship)”을 제안하고 있음을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평소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긴 한데, 보고서에는 시티즌십을 “시민으로서 갖는 권리뿐만 아니라 책임과 의무, 그리고 바람직한 덕성을 의미하는데, 공익달성을 위해 사익추구를 절제하고, 평소 갈등관계에 있던 집단과도 협력하려는 태도를 보유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정말 이 정의에 비추어 이 사회 구성원이 진정한 시티즌십을 갖게 된다면 현재의 위기는 단숨에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보고서는 왜 시티즌십을 강조하고 있는가? “위기극복의 관건은 리더와 사회구성원의 협력을 통한 사회응집력의 확보”(p1)에 있기 때문이다. 즉 전통적인 주장은 위기국면에서의 리더십이 강조되었던 반면 그 구성원의 이른바, 팔로워십(followership)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측면이 있는바, 보고서의 목적은 이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예전에 비해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대의민주제 제도 국가의 보편적 현상이라 한다 – 더욱 강조되어야 함이 타당해 보인다.

“팔로워십(followership)”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도 좀더 필요할 것 같은데, 이는 기업조직의 성과 향상에 관한 이론에서 등장하는 단어로 “카네기 멜론大의 로버트 켈리 교수가 종전 연구들이 조직목표 달성에 있어 리더의 영향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팔로워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p2)하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주목하면서 팔로워를 유형화하고, 이들이 구비해야 할 바람직한 덕목을 팔로워십(foloowership)으로 命名”(p2)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구분한 팔로워의 유형은 아래와 같다.

출처 : 삼성경제연구소

이 유형에서 가장 바람직한 유형은 당연히 적극적 사고와 독립적 사고를 동시에 지닌 ‘스타형 팔로워’다. 그들은 “리더의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지는 않지만, 리더의 결정에 동의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리더를 지원”(p3)하는 유형이다. 나머지 유형들은 조직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유형들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경영 실용 이론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사회조직 모든 단위가 어떠한 동기로 움직이건 간에 면밀한 계획과 실행으로 최적화되어야 한다는 대의에 있어서는 동의하는 바이고, 켈리 교수의 의도와 관찰도 그러한 면에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바이다.

여하튼 보고서는 이후 켈리 교수의 이러한 주장을 “기업조직에서 팔로워십이 필요하다면 사회에서는 시티즌십이 중요”(p3)하다는 논리를 통해 전 사회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이를 통해 도출되는 결론은 무척 단순하고 명쾌하다. 즉 보고서는 “리더를 ‘돕고’, ‘후원하며’, ‘공헌하는’ 시민이 사회통합에 기여”(p3)하는 것을 시티즌십의 진정한 덕목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보고서는 “위계조직인”(p4) 기업의 팔로워와 “그 자신이 사회의 주인”(p4)인 시티즌이 차이는 있긴 하지만 “리더와의 유기적 관계형성과 역할 분담 등을 통해 조직이나 사회의 생존과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는 유사”(p4)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에 정의된 시티즌십을 우리는 보고서가 생각하는 ‘스타형 시티즌십’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제 보고서가 켈리 교수의 팔로워 4가지 유형을 어떻게 사회의 시티즌 유형에 대비시켰는지 살펴보자. 우선 보고서는 X축에 있던 ‘적극적 vs 소극적’ 지표를 Y축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Y축의 ‘독립적 사고 vs 의존적 사고’ 지표는 X축으로 바꿔 ‘타협적 vs 비타협적’으로 치환했다. 아까 살펴봤듯이 켈리 교수가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스타형 팔로워’를 이상적으로 봤다는 것을 상기해볼 때 약간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보고서가 ‘스타형 팔로워’와 견주고 있는 ‘공존형 시티즌’을 보자. 그는 ‘스타형 팔로워’와 적극적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타협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출처 :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는 “위기에 처했을 때 공익달성을 위해 사익추구를 절제하고, 평소 갈등관계에 있던 집단과도 협력하려는 태도에 따라 ‘타협적 對 비타협적’으로 구분”(p4)했다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분은 엄밀히 말해 반칙이다. 우리는 ‘스타형 팔로워’가 위계조직에서조차도 “리더의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지는 않는”(p3) 독립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어느 조건에서 리더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는지, 그리고 수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대안을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보고서는 “위기에 처했을 때 공익달성을 위해 사익추구를 절제하고, 평소 갈등관계에 있던 집단과도 협력하려는 태도”(p4)라는 기나긴 전제를 깔고 그의 타협적 태도를 선험적으로 재단해버린다. 그 팔로워가 위기, 공익, 사익, 갈등, 협력 등에 대한 개념정의, 원인, 정도, 해법 등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독립성’이 거세된 것이다. 그러니 ‘독립’적일 수록 ‘타협’적인 것이라는 모순이 성립되어버린다.

지양하여야 할 유형은 한층 문제가 있다. 켈리 교수의 분류에 의하면 ‘순응형’, ‘냉소형’, ‘수동형’이 문제가 된다.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위계조직에서 여전히 그들은 조직의 결정을 따르는 – 적어도 전복시키지는 않는 – 유형으로 짐작된다. 보고서의 바람직하지 못한 유형을 보자. ‘순응형’, ‘대립형’, ‘불만형’이다. 켈리의 분류보다 그 행동에 있어 더 적극적인 유형으로 보인다. 실제로 보고서는 ‘대립형’, ‘불만형’을 각각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책방안에 대해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여 역량결집과 정책실현을 지연”(p5)하는 형과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방향에 대안 없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으며 비타협적인 태도로 일관”(p5)하는 형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위계조직 구성원이 아닌 그 스스로가 사회의 주인인 시티즌은 언제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책방안에 대해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일” 권리가 있고, 그것은 독립적인 ‘스타형 팔로워’의 그것보다 더 큰 정도로 시티즌이 확보한 권리인 것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보고서의 작성자들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대립형과 공존형의 차이가 보고서가 생각하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으며, 대의민주제에서는 권력을 리더에게 위임하지만 그것이 기업과 같은 위계조직에서의 그것과는 근본이 다르다는 사실을 자의적인 도식화를 통해 희석내지는 왜곡하고 있다. 이후 보고서는 여러 사례를 들어 ‘대립형’과 ‘불만형’의 오욕의 역사 – 물론 그들의 관점으로 등치시킨 – 를 나열하고 있다. 영국의 노조파업, 아르헨티나의 反신자유주의 운동 등이 그것들인데 보고서의 관점은 이들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비타협적’인 것이며, 따라서 ‘공존형’이 아닌 ‘대립형’ 내지는 ‘불만형’이 되어버린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가 통째로 – 또는 일부라도 –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조차 비타협적 태도는 반역자의 그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요컨대 나 역시도 ‘공존형 시티즌’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 덕성이 ‘스타형 팔로워’와 일맥상통하여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그 기본전제는 켈리 교수의 주장처럼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즉 주체적인 사고와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협과 비타협의 경계는 사회 리더의, 또는 공동구성원의 정책의 동의 여부에 따라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오직 타협적인 것이 옳은 것이라는 주장을 강요한다면, ‘공존형 시티즌’은 언제든 ‘대립형 시티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또는 그것은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시티즌의 덕성을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공존형’ 리더를 가진 적이 있는지부터 생각해볼 일이다.

보고서 다운받기

소비부진에 대한 공감 가는 원인분석, 엉뚱한 해법

2000년대 이후 국내경제의 소비부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보고서 ‘장기적 소비부진의 원인분석(2008.8.27)’(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소비증가율은 외환위기 이전의 7%대에서 2000년대 들어 3%로 급락하였으며, 실질 GDP내 민간소비 비중도 57.6%(1990~97년)에서 51.7%(2000~07년)로 5.9% 축소되었다고 한다.

보고서에서는 소비부진을 설명하는 변수로 1) 소비여력의 약화 2) 고용창출력의 약화 3) 소득불균형의 심화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설명을 분석모형에 적용할 결과 약 67%정도의 설명력을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또 다른 핵심변수로 ‘미래소득에 대한 불안감’을 들고 있다. 즉 이러한 불안감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현재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을 늘려 미래소비를 확보하게끔 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에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를 조사한 결과 각각 그 탄력성의 크기에서 고용불안(1.02), 교육불안(0.41), 노후불안(0.36), 금융불안(0.01)의 순서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중에서 앞서의 두 요소가 현재의 사회적 위치 또는 소비패턴의 범주라면 후자의 두 요소는 이로써 귀결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금융이라는 거시경제의 범주라는 점에서 가장 큰 설명인자는 역시 고용불안과 교육불안(즉 교육비 부담)일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도래와 더불어 양산된 비정규직 등으로 인한 고용유연화와 이를 자식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현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보고서는 그러나 – 익히 예상할 수 있듯이 – 그 대안을 고용유연성의 포기에서 찾지 않는다. 보고서는 보다 완곡하게 – 또는 보다 교묘하게 –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고용불안감 해소’라는 상충되는 두 가지 목표를 양립시키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시는 바와 같이 김대중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여태의 정부는 전자의 강화에만 주력해 왔다.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본격적인 내수주도형 경제로 경제체질을 바꿔야 할 시점에서 시의적절하게 소재를 선택한 이 보고서는 덴마크와 네델란드의 경우와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가운데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구사하는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제안하고 있다. 나름 현실적인 대안이다.

문제는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그 세부적인 실천방안이다. 우선 보고서는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상식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고용불안감에 대해서는 ‘고용정보의 질적제고’, ‘생애교육 차원에서의 직업훈련 강화’라는 다분히 교리문답식의 대안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안은 현재 양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및 파견직에 대한 기업들의 불법적인 노동착취 근절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보고서는 앞서 전통적인 설명요인 중 ‘2) 고용창출력의 약화’ 부분에서조차 고용창출력 약화가 산업구조가 IT산업 등으로 고도화됨에 따른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을 뿐 비정규직 양산을 통한 고용의 질 악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정책적 시사점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음으로 소비자가 현재소비를 희생하는 소비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에서 보고서는 “공적연금 이외에 기업연금 및 개인연금을 활성화해 노후보장 수단을 다양화”하자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획일화된 공적연금이 아닌 다양한 상품을 소비자가 활용한다는 의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상품들이 현재소비를 희생하는 소비행태의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업연금’, ‘개인연금’이 ‘공적연금’보다 현재의 소비를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보고서 작성자는 이들 연금이 공적연금보다 싸다고 생각하는지?

삼성경제연구소의 – 다른 기업연구소들도 대개 마찬가지이지만 –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보고서의 작성자가 늘 무언가에 억눌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보고서들은 적절한 소재를 찾아 적절한 연구방법을 통해 적절한 설명요인을 찾는다. 거기까지는 좋다. 역시 실력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정책적 시사점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친기업적인, 또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시사점을 병렬식으로 늘어놓곤 한다.

이 보고서 역시 바로 그 느낌이다.

보고서 보기

SERI의 고도성장을 위한 제언, 합리성과 형평성 결여

삼성경제연구소의 최신 보고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가능한가?’의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 기업들의 대변자로서 새로이 들어서는 정부에 목소리를 분명히 내겠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한국경제의 적정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6%로 예상되며 이러한 고성장 기조 구축을 위해 내수기반 확충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활성화와 소비증대라는 두 가지 목표달성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각각의 목표달성은 전자가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 후자가 ‘국민부담의 경감’과 ‘자산시장의 안정화’에 의해 촉진된다.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는 이 보고서 아니라도 이미 재계에서 오랜 기간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사안이다.

법인세 인하

보고서는 우선 법인세 인하가 투자활성화와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뮬레이션 등을 통하여 역설하고 있다. 윤종훈 회계사는 OECD의 보고서에서 같은 법인세 인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작음이 입증되었다고 반증하였다(SERI 보고서에 대한 반박은 아니지만).

여하튼 보수색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새 정부의 인수위는 이미 이러한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들도 인정하듯이 법인세 인하가 투자설비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제로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이 법인세 절감분을 투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 시장여건이 신규투자를 자극할 만큼 긍정적일 것, 주주들이 신규투자를 허용할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두 가지 전제조건 모두 녹록치 않은 상황임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펀드자본주의, 주주자본주의의 득세는 신규투자 축소를 통한 주주이익 극대화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보고서의 시뮬레이션이 이를 적절히 반영하여 투자효과를 분석하였는지 궁금하다.

규제완화

규제완화 요구사항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 상호출자 규제, 출자총액 규제, 영리의료법인의 진입제한(주1), 공공서비스의 독점구조, 총량규제 등 수도권 입지규제, 부동산 가격 상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규제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사안 역시 시뮬레이션을 통해 규제강도가 낮을수록 설비투자는 증가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상관관계는 굳이 어려운 식으로 분석하지 않아도 당연하고 당연한 이야기다. 진입규제가 적으면 투자는 증가한다. 금산분리를 철폐하면 산업자본이 금융업에 투자할 것이고 영리의료법인 진입규제를 철폐하면 영리의료법인이 들어설 것이다. 요는 그것이 국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규제가 많다는 것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보고서는 이러한 ‘필요한’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분하지 않고 규제의 양(量)을 문제 삼아 물타기를 하고 있다.

국민부담 경감

보고서 8쪽에 보면

한국경제의 高고장 기조 구축을 위해서는 내수기반 확충이 급선무이며, 내수기반 확충은 대외부문의 불안정성에 대한 완충(buffering) 역할을 하고 ‘투자 → 고용 → 소득 → 소비’로 이어지는 善순환 고리를 복원

이라고 하고 있다. 이에 앞서 보고서가 투자활성화의 제언을 하였으면 그 투자활성화가 어떻게 고용, 소득, 소비로 흘러가는가 하는 ‘흐름’을 짚어주고 그에 대한 제언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보고서는 난데없이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주2), 그리고 사교육비 부담이 너무 커서 소비여력이 소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보고서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안정적 고용창출, 소득증가, 이에 따른 소비증대라는 가처분소득의 증가방안 제시라는 편한 길을 포기하고 난데없이 국가의 세부담 증대(주3) 와 사교육비 부담이라는 한정된 가처분소득에서의 가계비용 증가라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이유는 뭐 간단해 보인다. 현재의 소비침체의 주범으로 기업이 아니라 조세 및 준조세 부담의 주범이자 공교육 파괴의 주범인 국가를 지목하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국가에 별로 면죄부를 발행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기업이 이렇게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빠져나가는 꼴도 보기 편한 것은 아니다.

보고서가 정말 한국경제를 걱정한다면 보고서는 현재의 ‘고용 없는 성장’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하는 해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즉 보고서가 제시한 선순환 고리를 방해하고 있는 globalization(특히 금융자유화로 인한 금융시장 동조화, 펀드자본주의 득세, 주주자본주의의 강화 등), 비정규직 증가 등 고용의 질 저하, 자본집약적 산업 강세로 인한 고용효과 감소 등의 문제를 지적해주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이미 최근 한 막가파(?) 외국 지도자가 이러한 상관관계를 감지하고 좋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기업이윤의 1/3이 각각 주주, 종업원, 그리고 투자에 쓰이는 체제는 일관되고 논리적인 체제이다. 이윤분배가 구매력과 상관없다는 발언, (또는) 임금분배를 위해 내가 제안했던 것만큼이나 근본적인 혁명(적 조치 : 역자주)이 구매력과 상관이 없다는 발언은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나는 소비력에 관한 이 문제를 (종업원)의 참여와 이윤분배에 대한 일종의 혁명으로 제안하고자 한다.[프랑스의 좌파 우파 대통령 사르코지]

일례로 고용의 안정이 어떻게 소비를 증가시키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근 한 신문보도를 통해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지난해 일부 은행들이 비정규직 직원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자, 해당 여직원들 사이에 ‘출산 붐’이 일고 있다.(원문보기)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각종 복지혜택의 증가와 더불어 정규직이라는 안정적 일자리가 출산이라는 가계차원에서는 엄청난 소비(?)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저출산 경향이 고용불안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산시장의 안정화’는 더 난데없는 것이어서 논의를 생략하기로 한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삼성경제연구소가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부질없는 생각임은 분명하지만 최소한 학자적 양심(?)에 의해 투자와 소비의 상관관계, 그리고 기업의 책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짚어줬어야 하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보고서를 읽었다.

보고서를 보면 오로지 현재의 저성장(?)의 책임은 국가다. 국가는 과도한 세금을 기업과 가계에 지우고 규제를 통해 신규투자를 막고 있는, 그럼으로써 투자와 소비 모두를 동맥경화에 빠지게 한 불한당인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역사상 가장 작은 정부가 되겠다고 자처하였으니 보고서가 바라던 세상이 곧 올 것 같다. 그 거대한 실험이 종료되는 순간 보고서 작성자는 냉철히 자신이 주장하였던 바가 고도성장에, 그리고 보고서는 일언반구 없지만 그 고도성장이 어떻게 고르게 계층과 계급 간에 분배되었는지를 점검해주기 바란다.

(주1) 보고서는 이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 의사수가 OECD 평균의 절반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2)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보험료, 공무원연금 보험료 등

(주3) 보고서는 사회보장기여금을 준조세라고 치부함으로써 그것의 사회보장과 사회형평성 기능 등을 깡그리 부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