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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비판에 엄밀한 사실관계 확인 필요

필자 역시도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대운하란 사업은 애당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비판을 할 때에 사실관계를 엄밀히 따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게 되면 결국은 아마추어라는 소리를 듣고 비판의 진실성이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이러한 소지가 있는 글이 바로 경향신문의 “[집중진단]하려는 사업마다 ‘민자 만능론’···과연 善인가”란 기사와 이를 인용한 오마이뉴스의 “왜 건설사가 운하에 뛰어드나 했더니”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 기사들에서 볼 수 있는 오류는 바로 프로젝트파이낸스(또는 프로젝트파이낸싱)에 대한 잘못된 설명과 이에 대한 확대재생산이다.

“하지만 민간이 사업성에 대해 100% 책임을 진다하더라도 재정부담이 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통상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 전체 공사비의 10~20%를 건설사가, 50~60%는 은행·보험사·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프로젝트 파이낸스 방식으로 투자하고 정부가 보증을 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경향신문]

여기에서 주의해서 읽어야 할 대목은 “50~60%는 은행·보험사·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프로젝트 파이낸스 방식으로 투자하고 정부가 보증을 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이다. 이것이 프로젝트파이낸스에 대한 설명이라면 잘못 되었다. 국내 민간투자사업에서 정부가 법률적이고 금융적인 용어상의 보증을 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외에서도 대부분의 사업이 국가보증 없이 프로젝트파이낸스가 진행된다.(주1)

굳이 넓은 의미에서의 보증의 형태라고 한다면 경향신문도 언급하고 있는 예상 운영수입에 대해 일정비율을 보장해주는 운영수입보장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는 2006년 사업의 형태에 따라 그 제도 자체가 폐지 내지는 대폭 축소되었다. 따라서 현행 제도로만 본다면 BTO 방식으로 시행될 경우(주2) 민간사업자가 상당수 예상수입에 대한 부담을 지는 것은 사실이다.

요컨대 “보증”과 “운영수입 보장”은 서로 다른 개념이므로 기자가 사용한 보증이란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규정해주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경향신문 기사를 인용보도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읽으면 이런 점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정부는 2006년 1월 민간제안사업의 최소운영 수입 보장제를 철폐하고, 정부 고시사업의 보상 수준도 크게 줄였다. 이명박 당선인이 “기업들의 제안이 들어오면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민간에서 제안한 사업은 정부의 법적인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향>은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전체 공사비의 50~60%가 결국 정부가 보증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조달 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로는 정부가 결국 코가 꿰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향>이 한 건설사 관계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건설사가 일단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해 대운하 사업을 위해 하천을 파내다가 수익성이 안 맞아 공사를 못하겠다고 나오면 정부가 공사를 그만두라고 할 수 있겠느냐?”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의 기사는 최소운영수입 보장제가 철폐되었음을 지적하면서도 새 정부가 대운하 민간투자사업에서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질 것이라는 논거로 “결국 정부가 보증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주장은 틀린 주장이다. 프로젝트파이낸싱은 엄밀히 말하자면 정부보증의 여부가 아닌 사업의 재무적 타당성을 담보로 하는 금융기법이고 더욱이 프로젝트파이낸싱이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을 질 것이라는 것은 맞지 않는 주장이다.

둘째 정부가 코가 꿰일 것이라는 전망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민간투자사업이랄지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제도 자체가 잘못 되어서기보다는 바로 저 말을 한 건설사 관계자 자체의 못된 마음, 즉 배째라 정신이 문제인 것이다. 저런 못된 마음을 먹으면 어떤 일이든지 안 되게 마련이다. 저 말을 한 건설사 관계자와는 관계를 끊는 것이 좋다.

분명히 지금 대운하는 재무적, 경제적 타당성도 없고 환경파괴가 눈에 선한 사업을 억지로 끌고 가고 있는 반(反)시장적, 반(反)환경적인 사업이다. 두 기자들이 우려하듯이 이대로 사업을 진행할 경우 정권과 자본의 결탁으로 하나의 거대한 재정적, 환경적 재앙을 맞을 개연성이 크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것을 비판할 때에 주의하여야 할 것은 사실(facts)의 확인이다.(주3) 그렇지 않으면 상대로부터 진실(truth)에 대한 거센 도전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1) 민간이 국가보증을 요구하는 사례는 주로 제1세계의 사업자가 제3세계에서 프로젝트파이낸스를 진행시키는 경우다

(주2) BTL의 경우는 임대료의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100% 수입보장의 성격이 강하다. 다만 이러한 안정성으로 인해 약정수익률은 국고채+a로 매우 낮은 편이다

(주3) 한때 유행하던 표현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남의 기사 베낄거면 영어공부 열심히 하자

MRSA라 불리는 새로운 박테리아 변종이 미국의 동성애자 남성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美동성애자 ‘신종에이즈’ 공포”라는 제목의 문화일보 기사를 접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인용보도 한 기사였다. 내용이 어딘가 부실해서 원 기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New Bacteria Strain Is Striking Gay Men” 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전체를 다 비교해보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왜 문화일보 기사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는 확인했다. 번역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문화일보의 해당 문구다.

“미국에서 게이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구역의 경우 주민 588명당 1명이 MRSA 박테리아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샌프란시스코 전체에 3800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다는 뜻이라고 체임버스 박사는 주장했다.”

이 글이 인용한 뉴욕타임스의 해당 문구다.

“The Castro district in San Francisco has the highest number of gay residents in the country, according to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One in 588 residents is infected with the new multidrug-resistant MRSA strain, the study found. That compares with 1 in 3,800 people in San Francisco, according to statistical analyses based on ZIP codes.”

요약하면 카스트로 구역에는 주민 588명당 1명이 MRSA 감염자인데 비해 샌프란시스코 전 도시로 보면 3,800명당 1명이 MRSA 감염자여서 결국 해당 박테리아가 게이들 사이에서 더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화일보 기사는 엉뚱하게도 “카스트로구역의 경우 주민 588명당 1명이 감염자여서 샌프란시스코 전체에 3800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다는 뜻”이라고 오역하였다. 문화일보식 셈법으로 계산하면 샌프란시스코 전체 인구는 588 X 3800 으로 22,344,000명으로 계산된다. 실제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80만 명 정도이다.


오늘의 교훈 : 남의 기사 베낄거면 영어 공부 열심히 하자.

한국인들이 비리에 둔해져버렸다는 외신보도

Pollsters and political analysts said South Koreans were so used to financial scandals involving chaebol executives that they were ready to withhold moral indignation and give Mr. Lee a chance to create jobs and curb soaring housing prices.

여론조사원과 정치 분석가들에 따르면 남한 국민들은 재벌 회장들이 연루된 돈에 관한 비리에 하도 익숙해져서 기꺼이 도덕적 분노를 억누르고 이씨(이명박 후보)에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치솟은 집값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New York Times 의 “Economy Key in South Korea Election”라는 제목의 기사 일부다. 이번 선거로 말미암아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은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이들이라는 편견을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비록 기자의 말이 아니라 정치 분석가의 말을 인용했다손 치더라도) 그리고 혹시라도 위 기사에서처럼 이명박 씨가 진짜 집값을 잡아 줄 것으로 기대하고 한 표를 던지신 분이 계시다면 그 꿈은 잠시 접어두시라고 권하고 싶다.

원문보기 http://www.nytimes.com/2007/12/19/world/asia/20korea.html?ex=1355720400&en=a577a5d633841674&ei=5088&partner=rssnyt&emc=rss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에 관한 영화, Network

거장 시드니루멧의 강력한 힘과 후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테마들이 그야말로 유기적으로 팽팽하게 연결되어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TV가 현대 매스미디어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의 중심 다국적기업의 존재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 만난 남녀의 이유 있는 불륜, 청춘을 바친 직장을 떠나는 직장인의 자아상실, 반문화의 상업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놀라운 생존력, 시청률이라는 정체불명의 숫자놀음을 감싸고 벌어지는 비정한 인간관계 등 따로 떼놓아도 장편영화 한편이 너끈히 나올 소재들이 이 영화 한편에 경이롭게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산만함이 없이 떡하니 중심이 분명하다. 모든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분명한 색깔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의욕 넘치는 젊은 중역 다이애나 역의 패이더너웨이와 노련한 보도부장 맥스 역의 윌리엄홀덴의 연기는 동선 자체도 훌륭한 연기다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섬세하다.

UBS 의 인기 앵커였던 하워드빌은 시청률이 떨어지자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날 판이다. 오랜 직장동료이자 같은 방송국의 보도부장 맥스슈마허는 술김에 방송에서 자살한다고 말하면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농을 건넨다. 다음날 뉴스에서 하워드는 정말 방송에서 자살하겠다고 선언해버린다. 방송국이 발칵 뒤집힌 가운데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다이애나크리스틴슨은 UBS를 합병한 CCA의 점령군 프랭크해킷을 설득해 하워드의 뉴스를 버라이어티쇼로 전환시켜버린다.

시청자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는 효과덕분에 하워드빌쇼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저널리즘을 훼손하였다고 생각한 맥스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이애나는 더 힘을 얻어 극좌 테러리스트의 테러 장면을 시리즈로까지 제작한다. 그 와중에 둘은 연인사이가 된다. 이제 TV는 더 이상 솔직해질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치부마저 상업화시키는 ‘반문화의 상업화’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 하워드빌은 방송중에 CCA가 아랍계 자본에 먹힐 것이라며 애국적 호소를 하게 되자 회사중역들은 그의 무한질주에 분노를 느낀다. CCA의 최고경영자 젠슨은 그를 불러 민족과 민주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며 그 자리를 다국적기업이 채우고 있음을 일갈한다. 다국적기업이라는 새로운 신 내림을 받은 하워드는 점점 더 자기 폐쇄적으로 침몰해가고 젠슨을 제외한 나머지 중역들은 그의 존재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다.

완벽한 시나리오, 완벽한 배역, 완벽한 완급조절 등 Dog Day Afternoon 등과 함께 시드니루멧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미국은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에게 정치적 자유가 가장 보장된 나라를 뽑으라면 어느 나라를 뽑을까? 대개 미국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자유세계에서도 자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911 사태 이후 사람들의 생각도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경천동지할 그 사건 이후 미행정부는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기 시작하였고 상당수의 미국인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제한을 불가피하다고 받아들이는 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제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해져 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의회는 최근 소리 소문도 없이 404표 대 6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이상한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이름 하여 “2007 폭력적 급진화와 토착 테러리즘에 대한 방지법(Violent Radicalization and Homegrown Terrorism Prevention Act of 2007)”(법안 보기)이 그것이다.

2002년 제정된 “국토안보법(VIII of the Homeland Security Act of 2002)”에 첨가될 이 법은 말 그대로 ‘소위’ 미국 내에서의 급진세력과 테러리스트들의 싹을 사전에 잘라버리겠다는 법이다. 때문에 미국 진보진영 내에서는 이 법이 여태의 법들 중 미국의 헌법정신을 가장 심하게 유린하는 법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주1)

뭐 보기에 따라서는 점증하는 안보에 썩 좋은 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과격세력과 테러리스트의 감별법과 그 퇴치방법이다. 1. 일단 표현이 지극히 애매한 것이 이번 법안의 특징이다. 2. 또한 이제 그 공격의 대상이 코란을 읽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는 자국민이라는 점이다. 3. 더불어 인터넷을 급진사상의 유포지로 지목하고 있어 언론의 자유를 크게 제약할 소지가 있다.

먼저 법에서 주요한 몇 가지 개념의 용어정의를 보자.

(1) 폭력적 급진화(violent radicalization)

“정치적, 종교적, 또는 사회적 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이념에 근거한 범죄를 목적으로 급진주의적인 신념 체계를 적용하거나 홍보하는 과정”
“the process of adopting or promoting an extremist belief system for the purpose of facilitating ideologically based violence to advance political, religious, or social change.”

보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모호한 개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분명히 이념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은 “violence” 하나를 기준으로 이러한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개연성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범죄 모의마저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헌적 조항이다.

(2) 토착 테러리즘(homegrown terrorism)

“정치적 또는 사회적 목적들에 우선하여 미국 정부, 미국 시민, 또는 특정 분파를 위협하거나 강제할 목적으로 미국이나 미국령에서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근거하여 주요하게 활동하는 특정 그룹이나 개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 또는 범죄의 사용, 계획된 사용 또는 위협적 사용”
“the use, planned use, or threatened use, of force or violence by a group or individual born, raised, or based and operating primarily within the United States or any possession of the United States to intimidate or coerce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the civilian population of the United States, or any segment thereof, in furtherance of political or social objectives.”

역시 여기에서 “force”나 “violence”를 제외하게 되면 나머지 조항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3) 이념에 근거한 범죄(ideologically based violence)

“특정 그룹이나 개인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신념을 고양하기 위한 특정 그룹이나 개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 또는 범죄의 사용, 계획된 사용 또는 위협적 사용”
“the use, planned use or threatened use of force or violence by a group or individual to promote the group or individual’s political, religious or social belief.”

“토착 테러리즘(homegrown terrorism)”과 유사하다. 외국의 한 블로거( http://www.washingtonyourefired.com/ )의 표현에 따르면 이 정의에 따르면 미국의 영국에 대한 독립전쟁 역시 처벌대상인 셈이다.

이번 법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대한 분명한 적의(敵意)다. 다음 법조문을 보라.

“인터넷은 미국 시민들에게 테러리스트와 관계된 선전선동을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수준으로 유포함으로써 미국에서의 폭력적 급진화, 이념에 근거한 범죄, 그리고 토착 테러리즘 과정을 촉진시키고 있다”
“The Internet has aided in facilitating violent radicalization, ideologically based violence, and the homegrown terrorism process in the United States by providing access to broad and constant streams of terrorist-related propaganda to United States citizens.”

이번에 어이없는 선거법과 그 적용으로 인해 국내 네티즌들이 고통 받은 바 있는데 이 조항은 미국 네티즌들에게 그러한 고통의 10000배 쯤 더 심한 고통을 줄 것 같다. 인터넷을 아예 불온사상의 온상으로 정의내리고 있지 않은가. 이 조항이 위의 세 가지 유형의 범죄(?)와 결합된다면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인터넷 언론과 블로그 대다수는 이 법의 철퇴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한 웹사이트는( http://www.indybay.org ) 이 법의 가장 웃긴 코미디는 법의 적용에 있어 헌법을 위반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 유형의 주요 범죄의 정의 자체가 범죄모의까지도 처벌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위헌적 조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하여튼 읽다보면 그런 부분 말고도 웃긴 부분이 많으므로 심심하신 분은 일독을 권한다. 물론 읽다보면 서서히 코미디가 공포영화로 변한다.

미국은 영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에 대항하여 치열한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국가이다.(주2) 그렇기 때문에 그 건국이념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욱 더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아온 나라다.(주3) 그러한 건국정신은 오늘 날에도 미국을 떠받치는 지고지순의 가치 중 하나이다.

그러한 나라가 범인도 잡히지 않은 911사태 이후 급진적으로 우경화되고 전체주의화 되어가고 있다. 안보를 위해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지만 미국, 또는 세상이 더 안전해졌다고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국가안보와 이라크전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이제는 자국민의 사상의 자유까지도 제약하는 법을 만들어 스스로를 옥죄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으로 보인다.

(주1) 공화당 놈들이 만든 법이겠거니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는데 발의자 15명의 의원 중 11명이 민주당 의원들이었다.

(주2) 중국혁명의 지도자 마오쩌뚱은 미국의 이런 건국의 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미국이 중국의 대일항전을 도와줄 것으로 판단했었다고 한다.

(주3) 물론 그것을 총 소지의 자유로 비틀어 생각하는 이들도 있긴 하다.

소수의견을 끌어다 경제위기를 노래하는 언론들

어제 주요언론에 보도되어 필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기사가 있었다. 기사들은 각 언론사가 입맛에 맞게 작성했지만 제목이 대개 비슷하다. 기사제목들을 보자.

주한 외국인 39% “韓, 5~6년내 경제위기 온다” (이데일리)
주한 외국 경제인 10명중 4명 “한국 경제 5년내 위기 올수도”(한국경제)
주한 외국경제인 `5-6년내 한국경제 위기 가능성`(연합뉴스)
주한 외국경제인 “5~6년내 한국경제 위기 도래”(노컷뉴스)
“5-6년 내 한국경제 위기 가능성 있다”(머니투데이)

기사는 4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외국대사관의 상무관과 외국기업인 100명(응답 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주재 외국경제인들의 우리나라 대외경쟁력 전망’ 보고서에 관한 기사다. 제목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설문조사에서 국내 거주 외국경제계 인사들의 39.3%가 5~6년 내 한국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견해에 ‘그럴 수 있다’고 응답했다는 것이 기사의 핵심이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것이 39.3%의 의견이 소수의견임에도 떡하니 제목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전경련의 보도자료에 있는 응답내용을 보면 주한 외국경제인의 60.7%는 한국의 경제 위기 가능성에 대해 ‘거의’(57.1%) 또는 ‘전혀’(3.6%) 없다고 낙관적으로 내다보고 있음에도 제목에는 ‘주한외국인이 한국경제에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의견인양 유도하고 있다.

일단 전경련의 보도자료 제목부터도 “주한 외국경제계 인사 39.3%가 “5~6년 내 한국경제 위기가능성”에 공감”으로 편향된 제목으로 되어 있었고 이를 받아 쓴 언론들도 무비판적으로 – 심지어 보다 적극적으로(!) – 다수의견보다는 소수의견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연합뉴스, 노컷뉴스, 머니투데이 등의 제목은 아예 해당답변이 일부의 의견이었음도 알리지 않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주1)

기사는 이외에도 한국경제의 경쟁력 위협요인에 대한 외국경제인의 응답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응답은 분명 의의가 있다. 어떤 부분이 취약요소인지 제3자의 시각을 참고할 필요는 있기 때문이다. 역시 문제는 틈만 나면 경제위기론의 군불을 때는 언론의 자세다.

물론 40%에 가까운 경제인들이 위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고 본다면 유의미한 숫자이긴 하지만 다수의견은 분명히 경제가 나빠질 것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단 설문 자체가 두루뭉술했다. 1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급변하는 경제 환경과 경영환경 속에서 ‘5~6년 이내에 위기가 도래할 것’이냐는 질문을 하면 아무리 경제전문가인들 의견이 제각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말들은 그렇게 하는데 가끔 보면 사상최고치의 수출실적, 역대최고의 사내유보금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경제는 분명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산업구조가 바뀜에 따른 부작용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바로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고용 없는 성장 등으로 술회되고 있는 양극화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 말하는 ‘경제위기’의 해법은 이와는 다르다. 기사에는 “불리한 국내기업 환경 요인으로 고지가, 고임금 등 높은 요소비용을, 강력한 노조와 노사갈등을, 과도한 기업규제”를 들고 있을 뿐이다. 결국 경제단체의 입맛에 맞는 해법을 제시할 뿐이다. 결국은 더욱 규제를 철폐하고 더욱 노동유연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주1) 한국경제의 기사는 더 가관인데 “외국 경제계 인사 10명 중 4명은 “앞으로 5~6년 내에 한국 경제가 큰 혼란을 맞을 수 있다”는 올해 초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제기한 ‘위기론’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대체 이 상황에서 이건희 씨가 왜 등장하는가.

보수 언론이 꼭꼭 숨겨야할 외신 하나

데이빗 카메론이라는 정치인을 아시는지? 올해 40살 나이의 영국 보수당 당수로 여성잡지인 ‘New Woman’ 독자들이 선정한 가장 ‘섹시’한 남자 100명 중의 하나에 뽑혔다고 한다. 정치인으로는 유일하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정치1번지 국가 영국의 보수당 당수에 섹시함까지 갖춘 잘 나가는 남자다.

어쨌든 이 양반이 최근 정책도 하나 ‘섹시’한 것을 내놓으셨다. 영국의 교육기준을 향상시키는 것과 더 많은 교육장소를 제공하는 실천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기준을 높이고 차이를 좁혀라(Raising the bar, closing the gap)’ 정도로 해석하면 될 이 녹서(綠書)는 소외된 지역의 학부모와 학생들을 위해 더 많은 학교를 설립할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새로운 국립 학교 설립 및 비영리 기금, 학부모 그룹 등에서의 공적인 펀딩을 통해 학교를 설립하는 것도 쉽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밖에도 과외학습의 연장 등의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다.

이 녹서에 대한 영국 내 비판은 만만치 않다. 영국 정부는 “급하게 묶여 짜깁기된(hastily cobbled together)” 정책이라고 비난하였다 한다. 자유민주당과 노동조합은 자금조달 방법과 교육시설 선정에 대해 비판하였다.

어쨌든 주목할 만한 사실은 우리나라 보수들이 들으면 얼치기 보수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다음의 카메론의 발언이다.

“학교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당신의 전체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평범한 진리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양질의 교육이 불균형하게 분배되고 있다는 상황에 참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것이 마이클 고브 – 교육 관련 보수당 대변인 – 와 내가 이 사회에서의 기회 창출에 관해 열정을 쏟는 이유입니다. 좋은 교육에 의한 기회는 더 평등해야 합니다.”
“It’s a simple fact of life that school really matters; that what happens at school affects your whole life. That’s why we must not tolerate a situation where good education is unevenly spread. That’s why Michael Gove and I are so passionate about making opportunity in our society – the opportunity given by a good education – more equal,”

3불 정책에 대해 게거품을 무는 보수언론과 우익정당이 들으면 기가 찰 발언이다. 제1세계 보수가 평등 운운하다니 제3세계 보수로서는 참 난감할 노릇이다. 보수언론에서는 꼭꼭 묻어놓고 숨겨야 할 외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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