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매스미디어

위험수위에 도달한 한국 매스미디어의 언어오염 현상

한국의 매스미디어가 보도기사를 쓸 때 사용하는 언어의 오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자들 스스로 언어에 대한 엄격함을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하여 언어사용에 유연성(?)을 가지기로 마음먹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디어 보도의 기본원칙인 언어적 엄격함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매스미디어는 언제부터인가 보도기사에서 ‘존버’, ‘줍줍’, ‘영끌’과 같은 온라인커뮤니티에서 만들어낸 비속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고, – ‘곱버스’나 ‘떡상’과 같은 표현은 이미 오래전에 시민권을 획득했다 – 심지어는 매스미디어 스스로 미투(MeToo) 현상을 조롱하는 듯한 ‘빚투’와 같은 어이없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매스미디어와 온라인커뮤니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찌 보면 이들 표현이 신세대에게 더 직관적이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표현이 가상자산 관련 기사에서 더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다만, 이런 현상이 일반화되다 보니 뻔히 올바른 표현이 존재함에도 신문뿐만 아니라 지상파에서까지 ‘내로남불’이나 ‘돈맥경화’라는 정체불명의 사자성어를 쓰고 있는 상황으로까지 언어오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어쨌든 왜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다시 한번 추측해보자면 짧은 시간에 정해진 물량의 보도를 쏟아내야 하는 보도 노동자의 근로조건 탓도 있지 않을까 짐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 스스로 언어와 문어에 대한 수호자인, 기록하는 이로서의 – 기자(記者) – 자존심과 자긍심이 옅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쓴 글은 인터넷이 존재하는 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인터넷 진화에 대한 단상

인터넷이 생긴 이래, 그중에서도 특히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보편화된 이래 많은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다. 초기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거대기업이 된 각종 사이트들도 정말 단출하다 할 정도의 서비스들을 제공했었다. 당시 대표적 인터넷 기업인 야후는 어찌 보면 검색엔진이라기보다는 디렉토리 서비스에 가까웠고, 지금은 우리나라의 최대 포탈이 되어버린 네이버도 초기 모습은 지극히 단순했다. 공짜 이메일과 공짜 홈페이지 제공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서비스였다.

그 뒤 블로그라는 전달방식이 생기면서 이전의, html을 직접 짜는 등 기술적인 숙련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포털이 제공하는 레이아웃에 의존해야 했던 ‘홈페이지’에서 좀 더 사용이 용이하고 독립적인 개인 미디어가 생겨났다. 여전히 홈페이지에서 보던 신변잡기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미디어라는 자각 역시 보다 강화되면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매체가 되었다. 한편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블로그마저도 귀찮게 여기던 수많은 개인들이 엮여서 거대한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요컨대 지금은 기업형 포털이나 SNS, 그리고 그 서비스에 의존하거나 또는 독립된 개인 미디어들이 공존하면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단계로 여겨진다. 사실 포털에 대한 이슈 독점이나 SNS 거대화에 따른 폐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특히 페이스북)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인터넷 초기, 서비스 공급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급되어왔던 콘텐츠가 이제는 개인들의 활발한 참여(블로깅, 트윗 등)가 있고 그것들이 상호 링크되는 기능이 제공되면서, 어느 정도 대중의 목소리도 높아져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신용위기 이후 각국의 대중시위에 블로그, 유투브, 그리고 SNS가 적극적으로 이용되는 상황인데, 비록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역시 개별 자본으로서 그들이 인민의 편에 서있달 수 있는 그 어떤 증거도 없지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민에게 일종의 대자보와 같은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좀 더 활발한 대중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배계급은 그러한 현상에 크게 당혹하며 SNS 친화적으로 거듭나겠다고 하고 선언하기도 하는데 이는 매체의 특성을 모르는 코미디에 가깝다.

결국 과거에는 일종의 신변잡기와 같은 역할을 했던 홈페이지가 미디어 기능이 강화된 블로그로 진화하고, 자유게시판과 같았던 댓글 기능이 댓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트위터 등으로 진화하고, 또 이것들이 공유 버튼 등을 통해 상호교류하면서 그 창시자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거대한 지식이나 의식공유의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정리되어야 할 주제에 대한 저장고 기능을 담당하는 블로그, 순간적이지만 놓쳐선 안 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SNS의 조화로운 역할분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p.s. 어제 트위터에서 시청 앞 한미FTA 반대시위에 경찰이 물대포를 쏘는 악랄한 탄압을 생중계하는 동안, MBC 9시 뉴스는 저 멀리 이집트 시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한다. 이쯤 되면 미디어 전쟁이다.

2011年08月08日 ~ 2011年08月13日

트위터의 @EconomicView 계정의 트윗들을 간추려 올립니다. 앞으로 시간 되는 대로 대략 일주일 정도의 분량을, 필요할 경우 코멘트 붙여서 여기 올릴까 합니다.

2011年08月13日(土)

스페인, 유로존내 경제비중 11.6%, GDP대비 정부부채 60.1%, 실업률 21%, 청년 실업률 43%

2011年08月12日(金)

성남시, 한·EU FTA 때문에 지역 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 유지가 어렵다고 밝혔다 http://bit.ly/nqOuJh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지방자치의 무력화. 유시민 씨는 FTA가 지방정치 이슈가 아니라고 말했고 최근 농활을 갔다함

RT @your_rights:“한미 FTA는 관세장벽을 중요시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법과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한미간 첫 협상을 일주일 남겨둔 2006년 5월 20일, 美 의회 공식 보고서) 끝.

RT @your_rights:문제는 미국은 한미 FTA가 단순한 행정협정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한미 FTA는 사실상 헌법을 뜯어 고치고 수십개의 법률을 뜯어 고치는, 법률과 헌법 위에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이란 겁니다.

RT @your_rights:그런데 우리는 한미 FTA로 이미 30여개의 법을 뜯어 고쳤고 아직도 수십개의 법을 뜯어 고쳐야만 간신히 한미 FTA에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굴욕이라는 겁니다. 한미 FTA가 한국 법을 자동으로 뜯어 고칩니다.

RT @your_rights:미국은 어느 나라와 FTA를 하건 이행법안을 만드는데, “미합중국의 법률에 일치하지 않는 FTA의 어떤 조항도, 어떠한 법 적용도, 어떤 미국인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무효다”라고 규정합니다.

RT @your_rights:“양자(미국 법과 한미 FTA)가 저촉․충돌하는 경우 미국 법이 우선하며, 협정의 어느 규정이나 그러한 조항의 적용이 미국 법과 상충할 경우에는 법적 효력이 없다.”(미국 의회에 제출된 ‘미한 FTA 이행법안’) 이것이 현실.

해외프로젝트 금융조달여건 개선 주요 내용은 | 읽어보면 산은,수은,무보,정책금융,연기금 돈을 박박 모아 수출금융을 하자는건데, 가장 원초적인 궁금증은 이럴거면 산은과 정책금융은 왜 분리했대? http://bit.ly/nnYaUx

2011年08月11日(木)

개인적으로 프리메이슨 유의 음모론은 일종의 현실기피적 환타지라고 생각한다. 통통배가 하늘을 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어차피 엄청난 무게의 쇠로 된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기적은 실현되었듯이 프리메이슨이 아니어도 지배세력은 엄존하기 때문이다

2011年08月10日(水)

스탠다드앤푸어스의 신용등급 평가모델 공식 http://fwd4.me/08db 의외로 간단하군요.

1달러 짜리 지폐의 미스터리. 과연 이 지폐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미국은 프리메이슨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가? ㅋㅋ http://yoono.com/ZLXV8Ay5

블룸버그통신은 8일 S&P의 등급 강등이 미국의 금융안정보다는 티파티를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인식이 워런 버핏을 필두로 한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 어버이연합이 차라리 양반인가? http://bit.ly/pNYzWf

Tea Party가 세상을 끌고 간다 http://fwd4.me/08dX

미국의 재무부 채권을 쥐고 있는 투자자들 http://bit.ly/mV0Ttf

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부적절했다는 무디스의 전 직원의 글. 개인적으로도 미국이 망가진 것은 확실하지만 기축통화를 찍는 나라보다 높은 신용등급의 나라들이 존재하는 현실이 웃기기는 함. http://bit.ly/p2prl0

2011年08月09日(火)

Q.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貧者는? A. Standard & Poor’s

2011年08月08日(月)

매스미디어는 시가총액 XX조원이 허공으로 사라질 때와 달리 그 돈이 허공에서 만들어질 때는 “허공에서”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경제”전문”가가 ‘펀더맨탈이 좋기에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는 시점은 대개 그 ‘펀더맨탈’이 흔들리고 있는 시점이다

신용평가사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때는 대공황 시절 그들이 매겨오던 회사 신용등급의 부도확률과 실제 부도율이 근사하게 맞아떨어지면서부터. 그뒤로 그들은 권력이 되면서 위기의 분석가가 되기보다는 위기의 원인이 되어가고 있다. 대체물을 찾아야할 시점.

금리인상 관련, 엉뚱한 신문기사를 읽고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며 “금리 민감도가 높은 재건축아파트 매매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선 금리 인상 영향 때문인지 매수자들의 문의 전화는 뚝 끊겼고, 매도 호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계의 전언이다. 서울 잠실동 S공인 관계자는 “당분간 거래가 끊겨 가격이 더 떨어질 텐데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아시아경제, 부동산시장 ‘금리 인상’ 직격탄 맞나..”집값 하락, 거래 위축 불가피”]

6월 10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0.25%로 상향조정했다. 위 기사는 같은 날 아시아경제 웹사이트에 실린 기사다. 입력시간이 10시 27분이다.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가 9시에 시작해서 금리 인상 여부는 10시 조금 넘어서 발표된다하니, 정말 기자가 잽싼 분인가 보다. 그 사이 업계 연구소장님과 현지 부동산 중개업계의 인터뷰까지 진행해서 기사를 써냈으니 말이다.

금리를 인상할 때면 부동산 시장으로의 악영향을 우려하는 기사들은 위 기사처럼 매크로 함수라도 작동한 것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런 기사에는 으레 정부의 대책 마련을, 특히 건설업계에의 지원책, 촉구하는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위 기사는 게다가 – 오늘 금통위 발표 후부터 기사입력 시간까지의 사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면 – “금리인상 영향으로 매수자 문의가 끊겼다”는 엉뚱한 소리까지 하고 있다.

현재 가계부채가 800조원을 넘어섰기 때문에, 물론 금리인상은 불가피하게 대출을 받은 가계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다 겪은, 피할 수 없는 –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 부동산 자산의 디플레이션을 우리만 억지로 이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죽으니 금리 올리지 마라’는 주문은 증상을 더 악화만 시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기회를 차라리 부채청산의 기회로 삼는 것이 옳다.

이전 정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정부 들어 특히 부동산의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이 강화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일본이 그러했고, 미국이 그러했고, 중국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거품만 키울 뿐이다. 더구나 미래세대는 지불능력이 현저히 악화되고 있다. 엄청난 등록금을 냈는데도 이전 세대보다 못한 보수를 받는 새로운 세대가 지금 부풀어 오른 부동산 시장을 받쳐줄 수 있을까?

“비판적 기사읽기 습관”에 대하여

항상 밀도 있는 글들로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주시는 periskop 님이 내가 올린 글에 대해 좋은 지적을 해주셨다.(해당 글 보기) 지난번 ‘북한의 미사일보다 더 무서운 것’이란 글에서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이 OECD 평균의 10배에 달한다는 기사를 인용한 바 있는데, periskop님이 이 기사의 사실관계와 판단방식이 옳지 않음을 지적해주신 것이다.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새삼 나는 또 다시 자문해본다. 우리는 신문과 방송 등 매스미디어의 내용전달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물론 코흘리개 시절에야 매스미디어에 대한 신뢰도는 절대적이었다. 서로 주장이 엇갈리다가도 ‘신문에 나왔다’고 우기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스스로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매스미디어에 대한 신뢰를 불신으로 변했다.

‘땡전늬우스’, ‘조중동’, ‘사이비 기자’ 등은 매스미디어에 대한 권위의 내부적인 붕괴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권위는 외부적인 환경변화에도 위협을 받았다. ‘블로그’, ‘시민사회’, ‘인터넷 포럼’, ‘내부고발’ 등 대안매체 또는 독립적인 목소리의 등장 등이 이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여하튼 매스미디어의 안팎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는 상호조응하면서 발달해왔고, 이제 매스미디어는 그 스스로 새로운 역할과 위상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요컨대 현 시점은 결국 매스미디어가 흔히 ‘언론(言論)’이라고 부르는 것들에서 압도적인 정보의 우위를 점하는 미디어였지만, 그것이 언론 그 자체는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periskop님의 집요한 사실추적과 그것의 공표행위는 매스미디어가 더 이상 ‘정보의 성역’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인터넷과 블로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기사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반박하는 데에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했을 것이고 효과가 미미하였을 것이다.

다시 애초 발단이 된 기사로 돌아가 보자. 일단 periskop님의 지적에 따르면 기자는 크게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 그는 기획재정부 배포자료에 ‘교육기관에 대한 민간의 지출액’이 0.8%임에도 0.3%라고 잘못 받아 적었다. 둘째, 그는 ‘교육기관에 대한 민간의 지출’을 ‘사교육비’라고 간주하는 판단의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사는 “한국 사교육비 OECD 10배”라는 엄청난 제목으로 탄생했고,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기사를 읽었다.

periskop님은 글 속에서 은연중에 앞서 내가 회고하였던 매스미디어의 권위약화를 암시하면서 “오히려 독자로서 비판적 기사읽기 습관을 더 연마”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대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토를 달고 싶은 것이 있다. 위에 periskop님이 지적하신 기자의 두 가지 실수 중 첫 번째 실수에 대해서까지 우리가 ‘비판적’인 확인절차를 거쳐야 하는 가이다. 아직도 여전히 상대적인 권위를 유지하고 있는 매스미디어에 대해 그 정도까지 확인절차를 밟아야 하는 가이다.

숫자틀린 행위와 숫자를 다르게 해석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끔 주류 경제연구소의 논조에는 반대하지만 그들의 기초 자료에 대해선 거의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이다. 조중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자의 저런 어처구니없는 실수에까지 사실 확인절차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면 차라리 신문구독이나 뉴스 시청대신 통계청 자료에 전적으로 사실관계를 의존하여야 할 것이다.(사실 통계청 자료도 때로는….) 이것은 나의 매스미디어에 대한 당연한 요구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신문 산업이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기자들도 거의 기사를 ‘찍어내는’ 수준으로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린다고 한다. 질(質)보다는 양(量)으로 승부하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실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날밤을 새서 피곤해서 숫자를 잘못 봤어도 직업인으로서 그런 기초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실수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자신이 책임질 일이다. 그런 기초적인 실수가 ‘독자의 비판적 기사 읽기’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에 관한 영화, Network

거장 시드니루멧의 강력한 힘과 후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테마들이 그야말로 유기적으로 팽팽하게 연결되어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TV가 현대 매스미디어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의 중심 다국적기업의 존재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 만난 남녀의 이유 있는 불륜, 청춘을 바친 직장을 떠나는 직장인의 자아상실, 반문화의 상업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놀라운 생존력, 시청률이라는 정체불명의 숫자놀음을 감싸고 벌어지는 비정한 인간관계 등 따로 떼놓아도 장편영화 한편이 너끈히 나올 소재들이 이 영화 한편에 경이롭게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산만함이 없이 떡하니 중심이 분명하다. 모든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분명한 색깔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의욕 넘치는 젊은 중역 다이애나 역의 패이더너웨이와 노련한 보도부장 맥스 역의 윌리엄홀덴의 연기는 동선 자체도 훌륭한 연기다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섬세하다.

UBS 의 인기 앵커였던 하워드빌은 시청률이 떨어지자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날 판이다. 오랜 직장동료이자 같은 방송국의 보도부장 맥스슈마허는 술김에 방송에서 자살한다고 말하면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농을 건넨다. 다음날 뉴스에서 하워드는 정말 방송에서 자살하겠다고 선언해버린다. 방송국이 발칵 뒤집힌 가운데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다이애나크리스틴슨은 UBS를 합병한 CCA의 점령군 프랭크해킷을 설득해 하워드의 뉴스를 버라이어티쇼로 전환시켜버린다.

시청자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는 효과덕분에 하워드빌쇼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저널리즘을 훼손하였다고 생각한 맥스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이애나는 더 힘을 얻어 극좌 테러리스트의 테러 장면을 시리즈로까지 제작한다. 그 와중에 둘은 연인사이가 된다. 이제 TV는 더 이상 솔직해질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치부마저 상업화시키는 ‘반문화의 상업화’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 하워드빌은 방송중에 CCA가 아랍계 자본에 먹힐 것이라며 애국적 호소를 하게 되자 회사중역들은 그의 무한질주에 분노를 느낀다. CCA의 최고경영자 젠슨은 그를 불러 민족과 민주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며 그 자리를 다국적기업이 채우고 있음을 일갈한다. 다국적기업이라는 새로운 신 내림을 받은 하워드는 점점 더 자기 폐쇄적으로 침몰해가고 젠슨을 제외한 나머지 중역들은 그의 존재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다.

완벽한 시나리오, 완벽한 배역, 완벽한 완급조절 등 Dog Day Afternoon 등과 함께 시드니루멧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