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수익률

연기금의 딜레마

캘리포니아의 가장 큰 세 개의 펀드들은 – 2008년 중반 현재 총 4,421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 그들의 예상되는 부채를 7.5%에서 8%까지의 수익률(rates of return)에 근거해서 산정하였다. 이 가정들로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554억 달러의 차이(즉 부채와 자산의 차이 : 역자주)를 보이는데, 연간 개인분담금을 조정함으로써 쉽게 보충할 수 있다. 그러나 펀드 매니저가 20세기 동안의 미국 주식 상승률인 5.3%를 능가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장밋빛 시나리오는 타당해보이지 않는다. 스탠포드의 연구진들은 한층 더 보수적이고 — 과거 그리고 최근 역사 모두를 고려하여 — 현실적인 4.14%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대략 펀드들이 리스크가 없는 미재무부 채권에 투자할 경우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수치다. 이 결과는 공식수치보다 예상되는 단기부채가 10배 증가하는 것이다.[Pretend pensions]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진들이 캘리포니아 주의 연기금에 대해서 그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공식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보다 현실이 더 가혹할 수 있다고 경고한 내용의 기사다. 인용한 부분은 향후 예상되는 부채가 더 늘어날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계산은 간단하다 잉여와 부채는 결국 유입과 유출의 차이로 설명될 것인바, 유입은 투자수익과 개인분담금이고, 유출은 지급할 연금과 운용비용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투자수익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정확한 예측이 가능할 것이므로 관건은 투자수익이고, 이것을 예측할 때 수익률(rates of return)을 적용한 것이다.

연구진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7.5%~8%의 수익률은 매우 낭만적인 수치로 보인다. 어떤 상품이 매년 평균 그 정도의 투자수익을 안겨줄 수 있을까? 미국의 연기금이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입장에서 주식편입비율을 높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기사에서 나와 있다시피 주식의 평균 수익률은 5.3%였다.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은 미재무부 채권 수익률에 근접한 4.14% 정도 일 것이니 연기금 측의 입장은 현실과 많이 차이난다. 신문기사는 펀드매니저가 이런 “비현실적인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일단 수치상으로 별 차이가 없어보일지 몰라도 수익률이 4%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라는 것을 지적해둔다. 기간을 얼마나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4% 정도의 수익률이 매년 복리로 계산된다면 일정기간 후에는 수익이 순식간에 몇 배 이상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런 관계로 목표 수익률의 설정은 보수적으로 잡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신문이 지적한 바처럼 펀드매니저는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을 것이고, 그러한 리스크 부담의 대표적인 사례는 90년대 중반 바로 캘리포니아 주의 오렌지카운티에서 실제로 발생하였다.

결국 위와 같은 분석결과처럼 연기금의 예상부채가 비현실적일 경우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수령연금의 규모를 축소시키거나, 개인분담금 액수를 높이거나, 또는 두 가지 조치를 동시에 취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캘리포니아 만의 문제도 아니다. 프랑스에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연금제도의 개혁에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역시 연금제도 이슈가 개혁이 시시때때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다수가 적자 보전 대책에는 부정적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개혁은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게 되므로 정치인들이 싫어할 옵션이다.

지난번 ‘2010년 대한민국 재정’ 관련 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아직은 이러한 연금고갈의 문제가 짧은 시일 내에 도래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현재까지 거의 30조원에 달하는 흑자를 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한 후부터 수령연금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다. 그러한 만큼 새로운 세대가 개인분담금으로 자산을 메워주거나 혹은 일정정도의 수익률을 시현하여야 할 것인데 둘 다 그리 만만해보이지는 않는다. 인구구조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눈먼 돈은 쉽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큰 판이 새로 짜여야 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후 자본주의의 성공을 보좌했던 연기금이 21세기 자본주의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인지?

민간투자사업에 관한 오해(?) 하나

수요추정의 실패, 과다책정된 공사비, 낮은 운영의 질, 지나치게 높은 수익률(이에 따른 재정부담 및 과다한 사용료) 등이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대안투자형태인 민간투자사업에 쏟아지고 있는 비판이다. 새사연의 ‘지하철 9호선 개통 미뤄지는 진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의 글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큰 무리가 없으나, 다만 이 글에서의 비판논리 중 재무적인 측면에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다.

지하철 9호선의 경우 총 건설비는 3조 5,000억 원인데, 이 중 ㈜서울시메트로9호선이 부담하는 비용은 5,485억 원으로 16퍼센트에 불과하다. [중략] 그럼에도 서울시는 민자 사업자에게 높은 수익률을 협약으로 보장하고 있다. 세후 실질수익률을 8.9퍼센트로 한다고 적시한 것이다. [중략] 민자 사업자인 사적 기업의 경영활동에 어떻게 이윤이 ’보장’될 수 있단 말인가. 간단하다. 수익이 안나면 정부가 세금을 주어서 손실분을 보전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개통 후 5년 동안은 예상 운임수입의 90퍼센트를, 6년에서 10년 동안은 80퍼센트를, 11년에서 15년은 70퍼센트를 보장해주는 협약을 서울시와 민자사업자 사이에 한 것이다. 건설비의 16퍼센트만 내면 예상수입의 90퍼센트를 보장해주겠다니, 이보다 더 좋은 사업이 어디 또 있을까? 이 정도면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운 상황이다.

우선 “세후 실질수익률”은 물가상승 효과가 제거된 법인세 납부 후 수익률을 의미한다. 시중금리 역시 물가상승이 고려된 명목금리인바 만약 그 대출금리를 8%로 감안하고 연간 물가상승률을 3%로 가정하면, 거칠게 계산하여 8%-3%=5%인 셈이니 세후 실질수익률이 8.9%면 꽤 높은 셈이다.

그 다음으로 이 사업의 수익구조는 “수익이 안나면 정부가 세금을 주어서 손실분을 보전해”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요즘 들어와 말이 많은 ‘운영수입보장(Minimum Revenue Guarantee : MRG)’ 조항이다. 초기 민간투자사업에서 사업자 유치를 위해 예상운영수입의 일정비율을 보장해주던 제도로 많은 비판이 일자 최근 사업에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위 문맥상으로 봤을 때 초심자들이라면 이런 오해를 할 수 있다. 즉 정부가 8.9% 수익률을 보장해주면서 운영수입까지 보장해줘서 민간사업자에게 큰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또는 운영수입을 보장해줌으로써 8.9%의 수익률이 나오게끔 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답은 둘다 아니다.

8.9%는 정부와 민간사업자를 당사자로 하는 실시협약에 숫자로 표현되는 약정수익률, 이를테면 목표수익률이다. 이 목표수익률은 해당사업의 실제운영수입이 예상운영수입의 100%일 경우 달성 가능한 수익률이다. 만약 주요하게 사업자가 수요를 과다 추정하였을 경우, 또는 여러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운영수입이 그에 못 미쳤을 경우 수익률은 달성할 수 없다.

이는 운영수입을 보장해줘도 같은 상황이다. 사업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므로 위의 글로만 유추하여 대략 사업성을 검토해보았다. 투입비용을 5,485억원, 운영기간을 15년으로 가정하여 운영수입을 매년 같은 액수로 벌어들인다고 가정하면 연간 세후 676억원을 벌어야 8.9%의 수익이 가능하다. 이를 위와 같이 단계적으로 90%, 80%, 70%로 보장해주면 수익률은 5.7%대로 떨어진다.

결국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사업자로서도 적정하고 타당한 수요 및 예상운영수입을 통해 사업이 원만하게 가는 것이 목표 수익률의 달성에 유리하다. 그렇지 않고 수요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여 운영수입보장을 통해 사업을 이끌어가게 될 경우 수익률도 낮아지고 여론악화로 말미암아 기업의 비용도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경인운하 관련 글에 대한 정정 및 사과, 그리고

먼저 사과의 말씀

일단 제가 용어정의를 제 입맛대로 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사실 B/C분석이 각각의 비용과 편익에 있어 단순계산이 아닌 현재가치화한 비용과 편익을 반영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임을 이번에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전자의 방법도 통상 쓰고 있는 방법으로는 알고 있습니다만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글을 써서 글을 읽는 분들에게 혼란을 끼쳐드리게 되었네요.

또한 KDI의 보고서를 입수하지 못하여 그것들이 할인율로 할인한 현재가치를 고려한 것인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다음 기사를 보면 할인율을 적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보고서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부분도 사실관계가 틀린 것으로 판단됩니다.

환경정의 박용신 협동사무처장은 “KDI는 사회적 할인율을 기존의 6.5∼7%에서 5.5%로 낮춰 잡아 투입 비용을 줄였다”며 “분양 여부가 불투명한 터미널 용지를 분양하는 데 따른 수익을 편익으로 넣는가 하면, 인천항만은 경인운하를 통하지 않고도 이용이 가능한데 항만 확장에 따른 수익을 모두 경인운하 건설에 따른 편익으로 계산했다”고 말했다.[뚫리는 경인운하… 봇물터진 논란]

결국 잘못된 지식으로 읽지도 못한 보고서를 예단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점 다시 사과드립니다.

여전히 남는 의문

앞서 글에서도 말했듯이 당초 KDI의 보고서가 할인율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다음과 같은 아시아경제의 보도 때문이었습니다.

KDI는 또 경인운하 사업은 민간자본으로 추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모든 시나리오에서 국토부가 제시한 사업수익률 6.06%를 확보해 주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추가지원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원문보기]

그런데 역시 첫 번째 인용기사의 KDI의 발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타당성 분석은 5.5%로 할인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간사업자의 할인율과 재정사업의 할인율의 차이는 불과 0.56%에 불과하다는 것이겠죠. 두 개의 사실을 꿰어 맞추면 0.56%에 해당하는 정부의 추가지원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정사업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되는 것일까요? 또한 앞서 글에 지적하였듯이 그것이 건설 및 운영비의 15%나 적자발생요인이 되는 것일까요? 산수가 안 되네요. 🙂

숫자의 장난

첫 번째 기사에서 환경정의의 관계자 분께서도 지적하였지만 소위 할인율이라는 것도 장난질에 가깝지요. 할인율을 기존의 6.5∼7%에서 5.5%에서 낮추는 것이 어떠한 함의를 가지는지는 간단히 살펴보죠. 할인율을 설명하면 제가 건방지게 B/C분석에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던 시간가치를 적용시켜주는 매개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할인율이 10%인데 1년 후의 110원을 현재가치화할 경우 110/(1+10%) 하여 100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환경정의 관계자는 할인율을 낮춰 투입비용을 줄였다고 하였을까요? 할인율을 낮춘다고 투입비용이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투입비용과 함께 편익도 줄어들죠. 같이 할인을 하니까요. 다만 비용은 가까운 시점에 발생하고 편익은 그 이후 보다 장래의 시점에서 발생하므로 더 낮은 할인율로 할인할 경우 B/C분석에서 비용, 즉 분모보다는 편익, 즉 분자가 상대적으로 덜 줄어듭니다. 즉 5.5%의 할인율을 적용하여 1.07이라는 결과가 나온 KDI의 분석에서 할인율을 조금만 높여도 얼마든지 B/C Ratio 는 1.0이하로 떨어질 개연성이 있다는 이야기죠.

이 밖에도 KDI는 “사회적 할인율(social discount rate)은 모든 예비타당성조사에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으며 최근 금리인하 추세 등을 감안해 지난 2007년도 조사부터 일관되게 5.5%의 사회적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며 “KDI는 이번 경인운하사업에 대한 조사 수행시 ‘예비타당성조사’ 및 ‘민간투자 적격성조사’ 방법론을 적용해 평가의 일관성 및 객관성을 유지했다”고 덧붙였다.[KDI “‘경인운하 보고서 경제성 오류 있다’는 보도 사실과 다르다”]

이에 대한 KDI의 해명입니다. “최근 금리인하 추세 등을 감안해” 5.5%를 적용하였다는 군요. 할인율을 낮춰 결과를 조작하였다는 비판을 “금리인하 추세”로 비켜갔습니다. 뭐 다 좋은데 여전히 남는 의문은 정황상으로 볼 때 민간이 6.06%의 할인율로 사업을 할 경우 건설 및 운영비에서 무려 15%의 적자가 예상되는 사업이 어떻게 할인율 0.56%내렸다고 갑자기 경제성 있는 사업으로 둔갑하는지 입니다. 보통 민간의 경제성 분석과 달리 정부의 타당성 분석은 ‘사회적 효용’이라는 약간은 추상적인 편익을 슬쩍 집어넣기도 하는데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함부로 예단하지 않고 의문부호로 남겨두겠습니다. 벌써 그 뻘짓을 한번 저질렀기에. 🙂 보다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경인운하 B/C 분석이 시간가치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추정하는 근거

이 글은 일부 오류가 있으므로 “경인운하 관련 글에 대한 정정 및 사과, 그리고”라는 글과 함께 읽으시기 바랍니다.

아래 경인운하 관련 글에 몇몇 분들이 B/C Ratio 역시 금융비용등의 기회비용을 고려한 현재가치를 감안하여 계산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시고 어느 분은 나에게 ‘확인까지’ 부탁하셨다. 물론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니 만큼 아무리 블로그에 올리는 글일지라도 사실관계에 부합하여야 한다.

다만 그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음을 미리 말해둔다. 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음이 내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괴로운(?) 일임은 이 블로그의 다른 글들을 접했던 분들은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괴로운 것이 KDI 홈페이지에 가도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에 가도 문제의 그 보고서 ‘원문’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구 가지고 있으신 분 있으면 보내주시길…

여하튼 보고서 원문도 못 본 내가 B/C Ratio가 시간가치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민간투자사업의 수익률을 맞춰줄 수 없어 재정 전환하였다고 하는 주장

KDI는 또 경인운하 사업은 민간자본으로 추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모든 시나리오에서 국토부가 제시한 사업수익률 6.06%를 확보해 주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추가지원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원문보기]

경인운하 사업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할 경우 여러 가지 복잡한 수익률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결국 정부, 혹은 발주처에서 부담하는 금융기회비용은 상기 글에서 나와 있는 6.06%의 추가비용을 의미한다. 위 말에서 6.06%의 수익률을 확보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민간자본으로 추진하는 것보다 재정으로 전환한다는 소리는 결국 재정사업에서 시간가치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2)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할 경우 15%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주장

KDI 민자적격성 조사결과 민자사업 시행시 건설·운영비를 당초 계획대로 진행한다면 15%이상의 적자 발생[원문보기]

여기서 말하는 15%가 어느 15%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나 통상관례로 판단하건데 위에서 말한 6.06%의 수익률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절대금액 대비 건설비와 운영비에 각각 15%의 절감요인이 발생한다고 추정하였을 확률이 높다. 즉 민간투자사업으로 해서 15%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으로 했을 경우 15%의 금융기회비용을 무시하겠다는 소리다.

덧) 해당페이지 경향신문 보도에 대한 해명보도 파일이 첨부로 붙어있는 것을 클릭해보면 해당파일이 없다고 나온다. 보고서 다운 못 받는 것도 한심한데 이 지경이다.

3) B/C Ratio라는 용어

어느 분의 말처럼 비용(Cost)과 효용 또는 편익(Benefit)을 각각 현재가치화하여 그것의 비율을 계산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는 그것을 B/C Ratio 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당연히 그냥 NPV(Net Present Value)라고 하면 된다. 경제성 분석에 관한 교과서에 그렇게 분류되어 나온다. 아쉬운 점은 능력 부족으로 보고서 원문을 입수하지 못하여 그것을 확인 못해준다는 것이다. 가지고 계신 분 있으면 공유 부탁드린다.

경인운하 논란에 대한 KDI원장의 발언에 관해

이 글은 일부 오류가 있으므로 “경인운하 관련 글에 대한 정정 및 사과, 그리고”라는 글과 함께 읽으시기 바랍니다.

현 원장은 “이미 진행된 굴포천 방수로 공사 비용과 그에 따른 편익은 제외하고 보는 것이 경제성 분석의 기초”라며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를 감안했을 때 경제성이 1.07로 나왔기 때문에 추진하는 것이 낫다는 게 KDI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현 원장은 특히 “물론 1.07은 경제성이 낭비가 있다거나 비효율적인 게 아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이같은 사업은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KDI 원장 “경인운하 논란 자존심 무지 상한다”]

현정택 한국개발원(KDI) 원장이 KDI의 경인운하 경제성 분석 논란에 대해 “무지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라며 털어놓은 이야기다. 참 무지하게 무모한 이야기다. 그의 주장을 한번 살펴보자.

위 발언 중 1.07은 흔히 B/C Ratio라는 수치인데 각종 비용을 C는 비용(Cost)을 의미하고, B는 효용(Benefit)를 의미한다. 그리고 “효용/비용”으로 계산하여 1.0이 넘으면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해석한다.

이 분석의 결정적인 단점은 비용에 금융비용, 즉 시간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100억원을 들여서 5년 후에 107억원의 효용을 얻는 사업이 있으면 그 B/C Ratio가 1.07이라는 이야기다. 또 100억원을 들여 10년 후에 107억원의 효용을 얻어도 역시 B/C Ratio가 1.07이다. 상식적으로 이따위로 투자를 할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거의 모든 사업에서는 시간가치를 고려한 현재가치(Net Present Value)법이나 내부수익률(Internal Ratio of Return)법을 이용하여 경제성을 분석한다. B/C분석은 이제 하래도 하지 않는다. 100억원 투입하여 금리기회비용이 20억원 발생했는데 107억원 효용을 얻었다고 사업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13억원 손해다.

여하한의 계산과정에서 비용이 과소 추정되었거나 효용이 과대 추정되었다는 비판을 제켜두고라도 B/C가 1.07나왔으니 경제성이 있고 막말로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어쨌든 사업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KDI원장이 지껄이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 연구기관의 비극이다.

경제위기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소리가 지금 씨알이 먹히는 것은 사실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지만 계속 이야기해왔듯이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자산거품을 또 다른 거품으로 대체하는, 즉 위기를 지연시키겠다는 소리에 불과하며, 여태 우리 사회는 그런 과잉투자로 큰 홍역을 겪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망증 증세다.

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2)

다음은 사회주의평등당(the Socialist Equality Party) 호주지부의 국가서기인  Nick Beams가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호주 여러 도시에서 가졌던 강의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우리가 증명해야할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 어떻게 이 금융위기가 발생하였는가? 어떻게 18개월 전 발생했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의 340억 달러가 연루된 문제가 미국 금융 시스템과 전 세계의 금융시장에 57조 달러에 달하는 재앙으로 발전했는가? 어떻게 지구상의 수억 명의 사람들이 그들이 관련되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가? 어떻게 자산담보부증권, CDS와 같은 고도로 복잡한 금융상품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그토록 깊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가? 왜 이러한 금융위기가 침체와 전쟁에의 위험을 증대시키면서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의 붕괴를 초래하는가? 이것들이 이 강의에서 우리가 들여다 볼 이슈들이다.

자본주의의 ABC

자본주의의 동력은 사용 또는 수요를 위한 생산이 아니다. 더군다나 시장을 위한 생산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본의 축적, 이윤의 창출이다. 가장 간단한 형태에서 축적과정은 M 이라는 화폐형태의 자본에서 시작한다. M은 더 큰 양의 자본인 M’으로 바뀐다. 즉 자본의 초기량에 그 증분 “델타 M”을 더한 것이다.

이 증분의 원천은 생산과정에서 노동계급으로부터 착취한 잉여다. 자본으로써의 화폐는 생산수단과 함께 노동자의 노동력(labour power)을 구입하는데 쓰인다. 이 노동력 또는 일할 능력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구입 가능한 상품(commodity)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계약의 형태로 판매되는 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value)는 노동자 가족의 생활유지에 필요한 음식, 의류, 주거 그리고 기타 필수재(necessities)의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주1)

그러나 이러한 필수재 들의 가치(노동자의 임금)는 생산과정에서 자본가에 의해 공급되는 상품에 노동자가 부가하는 가치와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말로 노동자의 임금은 그들이 생산과정에서 기여한 가치보다 적다. 이 차이가 잉여가치(surplus value)의 원천이다. 노동력이 생산과정에서 소비되지만 그것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은 그 안에 추가적인 또는 잉여의 가치를 체현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장에서 M’ – M에 델타M을 더한 – 를 실현하기 위해 팔린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생산력의 거대한 축적을 추동한다. 이전 양식들과 달리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지속적인 갱신에 주력한다. 축적은 노동생산성의 증가에 의존한다. 경쟁의 압박은 이러한 과정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자본의 모든 부문은 소멸의 고통에 두려워하며 생산성을 증대시켜야만 한다. 생산과정의 항구적인 규모증대는 자본주의 경제의 금융구조의 변화를 초래했다. 이는 이제 자본의 축적과정이 단순히 개별 자본가의 능력을 훨씬 초과하여 진행되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자원(resource)에서 조달된다. 두 개의 극적인 금융발전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신용 및 은행 시스템과 합자회사 또는 주식회사의 형성.

사회 모든 분야의 돈이 은행으로 모이게끔 만드는 이른바 신용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기업에게 개인이나 심지어 개인들이 모인 집단의 능력을 월등히 초과하는 규모의 자원을 제공한다. 자본가는, 마르크스가 설명하길, 이제 다른 사람들의 돈의 단순한 관리자가 될 뿐이다. 이 돈이 없으면 루퍼트 머독도 평범한 시민에 불과할 뿐이다.

자본을 공급하는 대가로 은행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지급의 형태로 수령한다. 은행과의 대출계약이나 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채권자에게 정기적인 이자지급을 약속한다. 즉 그 소지자는 소득을 보장받는다.

주식의 발행을 통해 설립되는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화폐자본을 공급한 대가로 재산권을 보장받는다. 그들이 회사의 일부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매체인의 주주라고 해서 당신이 가게에 들어가 그 회사의 부분적인 소유주라는 이유로 물건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상품은 기업화된 법인의 소유물이다. 당신이 보장받는 것은 배당의 형태로 지급되는 이익의 일부분이다.

신용과 주식소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갖게 되었다. 채권과 주식과 같은 소득 형태를 수여하여 그것들이 거래되는 금융시장. 그리고 이들 금융자산의 가격은 오르고 떨어진다. 그래서 그것들을 사고팔면서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신용 혹은 주식의 형태로 제공되는 화폐는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입하는데 공급된다. 그것들은 생산자본이 되어 노동계급의 잉여가치를 착취하는데 관여한다. 이는 또한 화폐만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과 채권은 마르크스가 “상상의(imaginary)” 자본, 혹은 가상(fictitious)자본이라 부른 것들이다. 그것들은 최종적으로는 생산자본이 착취한 잉여가치의 지분을 소득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의 세계에서, 즉 가상자본의 세계에서는 금융자산을 거래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는 황홀한 세계다. 환상의 세계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화폐의 조작을 통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관리자의 영리한 조작과 거래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노동이 모든 이윤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초기 시절부터 금융시장은 그것을 말살하거나 최소한 통제하고 싶어 하는 –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전체를 흔들지는 않고 –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자본주의의 나쁜 부분을 규제하자”가 그들의 구호였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듯이 자본주의의 “좋은 면”은 “나쁜 면”과 구분할 수 없다. 사실 때로 “나쁜 면”이 역사적인 발전의 추동력이 되기도 했었다. 한 예로 합자회사라는 수단을 통한 집중화(Centralisation)는 짧은 시기에 철도라는 거대 사회간접자본의 설치를 가능케 했다.

가상의 자본과 부채의 증가

수많은 통계들에서 지난 30여 년간 금융 시스템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수치 중 하나는 부채수준이다.

1981년 미국 신용시장은 GDP의 168%로 추정되었다. 2007년 그것은 350%로 증가한다. 금융자산은 1980년의 GDP의 다섯 배였는데 2007년에는 열 배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늘어난 부채는 점점 더 생산자본의 확장 보다는 금융시장 그 자체의 금융활동을 위해 사용되었다.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이 취득한 부채는 1997년 미국 GDP의 63.8%에서 2007년 113.8%로 늘었다. 2004년 대형 투자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자산 비율은 23이었다. 2007년에는 30이었다.

이토록 레버리지 비율을 늘이는 것은 그들의 수익 때문에 그렇다. 만약 어떤 자산이 매년 10%씩 가치가 증가하는 1억 달러의 자산이라면(연말에는 1.1억 달러의 가치가 될) 그리고 이 자산이 1천만 달러의 자본(equity)과 5% 이자의 9천만 달러 대출(borrowing)로 구성되어 있다면 연말에 4백5십만 달러의 이자를 치르고 난 뒤 이윤은 5백5십만 달러가 될 것이다. 이는 수익률이 55%라는 것을 의미한다.(주2) 이 과정의 핵심은 값싼 신용(cheap credit)에 의한 자산가치의 증가다. 화폐가 싸면(주3) 그것은 자산시장에 투입될 것이다. 시장은 주식이나 다른 상품 또는 주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자산 거품의 형성에 관련하여 그러한 폰지 스킴이 종국에는 붕괴될 것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대단한 지적능력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관련된 것은 개인적인 실패나 지적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금융시장 그 자체의 구조다. 신용이 저렴한 한에는 그리고 자산가치가 오르는 한에는 모든 금융기관이 참여하도록 강요당한다. 시티그룹의 CEO 척 프린스는 2007년 7월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멈추면, 유동성의 관점에서, 일이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당신은 일어나서 춤을 춰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춤추고 있다.”

이제 음악이 멈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는 지난 수십 년간 쌓여져 온 부채의 산의 붕괴의 방아쇠가 되었다. 이 붕괴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10%의 수익이 예상되는 1억 달러의 자산이 이제 5%의 수익밖에 창출할 수 없다. 그러면 자산가치가 5천만 달러로 줄 것이다. 시장전체의 자산가치가 반절로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빌린 돈 9천만 달러로 구입한 자산을 가정해보자. 자산의 시장가치가 줄어든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부채는 여전히 9천만 달러다. 그러나 자산은 그것을 구입할 시 투입된 가치만큼도 안 된다. 어떻게 부채를 갚을 것인가? 현금을 얻기 위해 다른 자산을 팔수도 있다. 그러나 경계를 뛰어넘어 이런 일이 벌어지면 특정자산의 가치는 떨어지고 위기는 악화될 것이다.

앞에서 가상의 자본은 최종단계에서 노동계급으로부터 착취한 잉여를 원천으로 하는 소득에 대한 청구권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자본은 그것이 종국적으로 의존하는 것 이상으로 자랄 수 있다. 금융시장 조작은 가상의 자본의 엄청난 성장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서 이 확대는 멈추고 위기가 폭발한다. 자본은 이 불균형을 극복하여야 한다. 서로 연관된 두 개의 과정 : 잉여가치 증대를 위해 노동계급 착취를 심화시키는 방법, 그리고 자본의 총 부문을 부도내거나 제거함으로써 가용 잉여가치에 대한 그들의 청구권을 없애버림으로써 남아있는 자본 부문의 지분을 보존하는 것.

그러한 “재평가”는 단순히 회계 상의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하였듯이 “폭력적이고 날카로운 위기”를 통해 갑작스러운 가치하락, 실질적인 불경기, 재생산 과정의 중단을 수반한다.

[원문보기]

(주1) 이 부분이 사실 노동력을 상품으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의 논쟁의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다른 상품들이 정확히 투입된 가치대로 측정할 수 있다고 간주될 수 있는 반면 노동력은 여기서 말하듯이 단순히 필수재의 가치에 상응한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것은 어느 면에서는 가격(price)으로 측정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고, 필수재 그 자체의 범위도 그야말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예전에 휴대전화가 사치재였다면 지금은 필수재라 할 수 있다. : 역자 주

(주2) 물론 이는 시간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나눗셈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 역자 주

(주3) 이자를 화폐에 대한 가격이라고 간주한다면 저금리는 화폐가 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역자 주

펀드사회주의

펀드자본주의라는 표현이 한때 유행했었다. 헤지펀드, 사모펀드, 최근에는 국부펀드까지 전통적으로 알려져 있던 자금조달방법에서 진일보한 각종 펀드들이 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하면서 쓰기 시작한 표현이다. 금융자본주의와 함께 ‘금융 이니셔티브’의 경제체제를 묘사하는 전형적인 표현으로 자리잡았다.

펀드 중에서도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펀드, 예를 들어 뮤추얼펀드와 같은 것들은 투자자 구성, 정보공개, 자본비율 등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 운신의 폭이 좁은 반면 일반적으로 헤지펀드로 알려져 있는 법의 구속력을 받지 않는 펀드들은 베일에 가려진 채 무차별적인 투자를 선호하여 비판자들로부터 금융업계의 교란자 내지는 악동으로 간주되고 있다.

어쨌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제 여하간의 부작용과 그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펀드’라는 일종의 ‘집합적 투자를 위한 결사체’를 빼놓고 경제를 굴러가게끔 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져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사모펀드, 인프라펀드, 부동산펀드, 국부펀드, 인사이트 펀드 등 구성요건, 투자방식, 투자대상, 구성목적, 펀드의 특성 등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어 있는 펀드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금융시장을 쏘다니고 있다.

이제 여기에서 어렸을 때 만화를 보며 ‘착한 나라’와 ‘나쁜 나라’를 구분했던 것처럼 ‘착한 펀드’와 ‘나쁜 펀드’를 가려내보자. 뮤추얼펀드는 법을 지켜가며 하니까 ‘착한 펀드’, 헤지펀드는 볼 것도 없이 ‘나쁜 펀드’, 부동산펀드는 부동산투기를 불러일으키므로 ‘나쁜 펀드’, 인프라펀드는 그나마 사회간접자본을 공급하니까 ‘착한 펀드’ .. 아니 가만 이것도 민영화를 부추기니까 ‘나쁜 펀드’, 국부펀드는 한 나라의 공익을 위해 운영되니까 ‘착한 펀드’, 인사이트 펀드는 박현주가 멋대로 운용하니까 ‘나쁜 펀드’… 아~ 정리가 무척 쉽다.

사실은 쉽지 않다. “금융업자들은 죄다 도둑놈들이다”라고 해버리면 편하게 모두 나쁜 환전꾼들이지만 금융이 장래 다가올 어떠한 대안 경제체제에서도 역시 산업의 동맥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단순무식한 난도질보다는 정밀한 신경외과 수술과 같은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저들 펀드들은 무수히 복잡한 신경망을 통해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은행에 예금한 돈이 내가 욕을 바가지로 하는 헤지펀드의 종자돈으로 쓰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민연금이 펀드에 운용을 맡겼는데 그 펀드가 공매도에 베팅했다가 개박살 났으면 나는 화를 내야할까 웃어야할까?

지금 금융선진국들은 이렇게 통제되지 않는 펀드들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부산을 떨고 있다. 한편으로 그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두려워하고 있는 중동이나 아시아로부터의 국부펀드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마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을 통일되게 합리적으로 만드는 작업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일단은 보편적인 가치기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투자’와 ‘투기’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만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나 역시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작정하고 투기 질을 일삼는 이들도 상당수지만 무릇 모든 투자에는 투기적 요소를, 즉 위험감수(risk taking)의 구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구간을 잘 넘어서면 사회적 선순환을 유도한 투자일터이고 그게 실패하면 ‘양아치’가 되어버린다. 그러한 고민 등 제반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등장한 것이 ‘사회책임투자’라는 개념일 것이다. 어떠한 도덕적 투자의 기준을 만들고 그 가이드라인에 충실하여 투자를 하자는 것이 그 원칙이고, 일정기간이 경과한 후 보니 이른바 ‘나쁜 펀드’들보다 수익률도 좋다는 것이 찬성론자들의 설명이다.

각설하고 바로 이 시점에서 오늘 문득 ‘펀드사회주의’라는 대안을 생각해보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공상을 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하에서의 사회책임투자도 어찌하든 경제적 효용의 극대화가 최우선순위다. 그것이 달성되지 않으면 용도폐기 당한다. ‘경제적 효용’은 어찌 되었든 아무리 펀드가입자수가 많더라도 – 심지어 한 국가의 국민이 통째로 가입했어도 – 한 개인의 투자이익 극대화의 논리와 똑같다. 이타주의의 논리가 개입되지 않는다. 사회책임투자는 ‘착한 산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지 ‘이타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반면 오늘 내가 구상한(?!) ‘펀드사회주의’하에서의 펀드들은 경제적 효용과 사회적 효용 – 즉 공익적인 측면에서 계량화될 수 있는 효용 – 의 조화를 추구한다. 개별펀드의 수익률도 극대화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효용에 대한 ‘정의 외부효과’를 창출하여야 하고 최소한 ‘부의 외부효과’가 없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법령이나 투자 가이드라인에 의해 통제될 것이다. 다만 그것은 ‘계몽주의적 오만’이라는 비판을 받는 중앙집중식의 통제경제가 아닌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의회나 행정부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시절이 수상해서 횡설수설했다. 그래도 쓴 게 아까워서 발행을.. 그리고 깊은 사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