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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2)

다음은 사회주의평등당(the Socialist Equality Party) 호주지부의 국가서기인  Nick Beams가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호주 여러 도시에서 가졌던 강의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우리가 증명해야할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 어떻게 이 금융위기가 발생하였는가? 어떻게 18개월 전 발생했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의 340억 달러가 연루된 문제가 미국 금융 시스템과 전 세계의 금융시장에 57조 달러에 달하는 재앙으로 발전했는가? 어떻게 지구상의 수억 명의 사람들이 그들이 관련되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가? 어떻게 자산담보부증권, CDS와 같은 고도로 복잡한 금융상품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그토록 깊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가? 왜 이러한 금융위기가 침체와 전쟁에의 위험을 증대시키면서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의 붕괴를 초래하는가? 이것들이 이 강의에서 우리가 들여다 볼 이슈들이다.

자본주의의 ABC

자본주의의 동력은 사용 또는 수요를 위한 생산이 아니다. 더군다나 시장을 위한 생산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본의 축적, 이윤의 창출이다. 가장 간단한 형태에서 축적과정은 M 이라는 화폐형태의 자본에서 시작한다. M은 더 큰 양의 자본인 M’으로 바뀐다. 즉 자본의 초기량에 그 증분 “델타 M”을 더한 것이다.

이 증분의 원천은 생산과정에서 노동계급으로부터 착취한 잉여다. 자본으로써의 화폐는 생산수단과 함께 노동자의 노동력(labour power)을 구입하는데 쓰인다. 이 노동력 또는 일할 능력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구입 가능한 상품(commodity)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계약의 형태로 판매되는 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value)는 노동자 가족의 생활유지에 필요한 음식, 의류, 주거 그리고 기타 필수재(necessities)의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주1)

그러나 이러한 필수재 들의 가치(노동자의 임금)는 생산과정에서 자본가에 의해 공급되는 상품에 노동자가 부가하는 가치와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말로 노동자의 임금은 그들이 생산과정에서 기여한 가치보다 적다. 이 차이가 잉여가치(surplus value)의 원천이다. 노동력이 생산과정에서 소비되지만 그것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은 그 안에 추가적인 또는 잉여의 가치를 체현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장에서 M’ – M에 델타M을 더한 – 를 실현하기 위해 팔린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생산력의 거대한 축적을 추동한다. 이전 양식들과 달리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지속적인 갱신에 주력한다. 축적은 노동생산성의 증가에 의존한다. 경쟁의 압박은 이러한 과정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자본의 모든 부문은 소멸의 고통에 두려워하며 생산성을 증대시켜야만 한다. 생산과정의 항구적인 규모증대는 자본주의 경제의 금융구조의 변화를 초래했다. 이는 이제 자본의 축적과정이 단순히 개별 자본가의 능력을 훨씬 초과하여 진행되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자원(resource)에서 조달된다. 두 개의 극적인 금융발전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신용 및 은행 시스템과 합자회사 또는 주식회사의 형성.

사회 모든 분야의 돈이 은행으로 모이게끔 만드는 이른바 신용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기업에게 개인이나 심지어 개인들이 모인 집단의 능력을 월등히 초과하는 규모의 자원을 제공한다. 자본가는, 마르크스가 설명하길, 이제 다른 사람들의 돈의 단순한 관리자가 될 뿐이다. 이 돈이 없으면 루퍼트 머독도 평범한 시민에 불과할 뿐이다.

자본을 공급하는 대가로 은행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지급의 형태로 수령한다. 은행과의 대출계약이나 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채권자에게 정기적인 이자지급을 약속한다. 즉 그 소지자는 소득을 보장받는다.

주식의 발행을 통해 설립되는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화폐자본을 공급한 대가로 재산권을 보장받는다. 그들이 회사의 일부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매체인의 주주라고 해서 당신이 가게에 들어가 그 회사의 부분적인 소유주라는 이유로 물건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상품은 기업화된 법인의 소유물이다. 당신이 보장받는 것은 배당의 형태로 지급되는 이익의 일부분이다.

신용과 주식소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갖게 되었다. 채권과 주식과 같은 소득 형태를 수여하여 그것들이 거래되는 금융시장. 그리고 이들 금융자산의 가격은 오르고 떨어진다. 그래서 그것들을 사고팔면서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신용 혹은 주식의 형태로 제공되는 화폐는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입하는데 공급된다. 그것들은 생산자본이 되어 노동계급의 잉여가치를 착취하는데 관여한다. 이는 또한 화폐만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과 채권은 마르크스가 “상상의(imaginary)” 자본, 혹은 가상(fictitious)자본이라 부른 것들이다. 그것들은 최종적으로는 생산자본이 착취한 잉여가치의 지분을 소득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의 세계에서, 즉 가상자본의 세계에서는 금융자산을 거래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는 황홀한 세계다. 환상의 세계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화폐의 조작을 통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관리자의 영리한 조작과 거래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노동이 모든 이윤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초기 시절부터 금융시장은 그것을 말살하거나 최소한 통제하고 싶어 하는 –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전체를 흔들지는 않고 –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자본주의의 나쁜 부분을 규제하자”가 그들의 구호였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듯이 자본주의의 “좋은 면”은 “나쁜 면”과 구분할 수 없다. 사실 때로 “나쁜 면”이 역사적인 발전의 추동력이 되기도 했었다. 한 예로 합자회사라는 수단을 통한 집중화(Centralisation)는 짧은 시기에 철도라는 거대 사회간접자본의 설치를 가능케 했다.

가상의 자본과 부채의 증가

수많은 통계들에서 지난 30여 년간 금융 시스템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수치 중 하나는 부채수준이다.

1981년 미국 신용시장은 GDP의 168%로 추정되었다. 2007년 그것은 350%로 증가한다. 금융자산은 1980년의 GDP의 다섯 배였는데 2007년에는 열 배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늘어난 부채는 점점 더 생산자본의 확장 보다는 금융시장 그 자체의 금융활동을 위해 사용되었다.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이 취득한 부채는 1997년 미국 GDP의 63.8%에서 2007년 113.8%로 늘었다. 2004년 대형 투자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자산 비율은 23이었다. 2007년에는 30이었다.

이토록 레버리지 비율을 늘이는 것은 그들의 수익 때문에 그렇다. 만약 어떤 자산이 매년 10%씩 가치가 증가하는 1억 달러의 자산이라면(연말에는 1.1억 달러의 가치가 될) 그리고 이 자산이 1천만 달러의 자본(equity)과 5% 이자의 9천만 달러 대출(borrowing)로 구성되어 있다면 연말에 4백5십만 달러의 이자를 치르고 난 뒤 이윤은 5백5십만 달러가 될 것이다. 이는 수익률이 55%라는 것을 의미한다.(주2) 이 과정의 핵심은 값싼 신용(cheap credit)에 의한 자산가치의 증가다. 화폐가 싸면(주3) 그것은 자산시장에 투입될 것이다. 시장은 주식이나 다른 상품 또는 주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자산 거품의 형성에 관련하여 그러한 폰지 스킴이 종국에는 붕괴될 것이라는 것을 아는 데에는 대단한 지적능력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관련된 것은 개인적인 실패나 지적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금융시장 그 자체의 구조다. 신용이 저렴한 한에는 그리고 자산가치가 오르는 한에는 모든 금융기관이 참여하도록 강요당한다. 시티그룹의 CEO 척 프린스는 2007년 7월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멈추면, 유동성의 관점에서, 일이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당신은 일어나서 춤을 춰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춤추고 있다.”

이제 음악이 멈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는 지난 수십 년간 쌓여져 온 부채의 산의 붕괴의 방아쇠가 되었다. 이 붕괴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10%의 수익이 예상되는 1억 달러의 자산이 이제 5%의 수익밖에 창출할 수 없다. 그러면 자산가치가 5천만 달러로 줄 것이다. 시장전체의 자산가치가 반절로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빌린 돈 9천만 달러로 구입한 자산을 가정해보자. 자산의 시장가치가 줄어든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부채는 여전히 9천만 달러다. 그러나 자산은 그것을 구입할 시 투입된 가치만큼도 안 된다. 어떻게 부채를 갚을 것인가? 현금을 얻기 위해 다른 자산을 팔수도 있다. 그러나 경계를 뛰어넘어 이런 일이 벌어지면 특정자산의 가치는 떨어지고 위기는 악화될 것이다.

앞에서 가상의 자본은 최종단계에서 노동계급으로부터 착취한 잉여를 원천으로 하는 소득에 대한 청구권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자본은 그것이 종국적으로 의존하는 것 이상으로 자랄 수 있다. 금융시장 조작은 가상의 자본의 엄청난 성장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특정 시점에서 이 확대는 멈추고 위기가 폭발한다. 자본은 이 불균형을 극복하여야 한다. 서로 연관된 두 개의 과정 : 잉여가치 증대를 위해 노동계급 착취를 심화시키는 방법, 그리고 자본의 총 부문을 부도내거나 제거함으로써 가용 잉여가치에 대한 그들의 청구권을 없애버림으로써 남아있는 자본 부문의 지분을 보존하는 것.

그러한 “재평가”는 단순히 회계 상의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하였듯이 “폭력적이고 날카로운 위기”를 통해 갑작스러운 가치하락, 실질적인 불경기, 재생산 과정의 중단을 수반한다.

[원문보기]

(주1) 이 부분이 사실 노동력을 상품으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의 논쟁의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다른 상품들이 정확히 투입된 가치대로 측정할 수 있다고 간주될 수 있는 반면 노동력은 여기서 말하듯이 단순히 필수재의 가치에 상응한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것은 어느 면에서는 가격(price)으로 측정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고, 필수재 그 자체의 범위도 그야말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예전에 휴대전화가 사치재였다면 지금은 필수재라 할 수 있다. : 역자 주

(주2) 물론 이는 시간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나눗셈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 역자 주

(주3) 이자를 화폐에 대한 가격이라고 간주한다면 저금리는 화폐가 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역자 주

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1)

다음은 사회주의평등당(the Socialist Equality Party) 호주지부의 국가서기인  Nick Beams가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호주 여러 도시에서 가졌던 강의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전 세계 주식시장이 붕괴되었는데 약 25조~30조 달러의 주식가치가 지난 6개월 동안 사라진 것으로 추측된다. 주요회사들의 가치는 38% 정도 없어졌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체였던 제네럴모터스가 부도의 위험에 처해있다. 공식적인 통계를 보아도 세계경제의 주요지역들이 이제 경기침체로 접어들었다 : 미국, 유로 지역, 영국과 일본. 세계경제를 부양해왔던 중국과 이른바 신흥시장 역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융위기가 그랬듯이 경제침체도 미국이 중심이 되고 있다. 사적부문의 고용치가 11월 개월 동안 계속 떨어지고 있다. 11월에만 533,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이는 1974년 12월 이후 월간으로는 최악의 수치다. 미국기업의 적어도 1/4이 내년에 고용을 축소할 계획이다. 해고증가와 집값 하락으로 말미암아 미국에서 12백만 채의 집이 소위 “수면 아래(under water)”의 상태로 내몰렸는데 이는 그 집에 대한 모기지보다 값어치가 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는 수직낙하 중이다. GDP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의 소비부문은 3분기에 3%하락했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4분기에는 2.9%, 2009년 1분기에는 1.3%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2차 대전 이후 한번도 3분기 연속으로 소비가 감소되지 않았었다. 10월 소비자물가는 1947년 이후 월간으로 가장 높은 수치인 1%하락했다.

세계경제 역시 미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데,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1억9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2007년의 실업자 수치가 2009년에는 2억1천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세계은행은 2009년 경제성장이 전 세계적으로 따져 1%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고소득의 국가들에서는 0.1%의 하락이 예상된다. OECD는 경제성장률이 각각 미국 0.9%, 일본 0.1%, 유로 0.5%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무역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수치중 하나인 무역규모에 대해 세계은행은 2009년 2.5%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수치는 올해는 5.8%, 2006년에는 거의 10%까지 상승하여왔다. 이 수치가 감소한 것은 1982년의 심각한 경기후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11월 15일 국제산출의 90%를 아우르는 경제권인 G20의 지도자들이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에 모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현 상황을 극복할 여하한의 프로그램도 제시하지 못하였고 당사자들의 분열만 심각해졌을 따름이다. 이 정상회담의 문제는 면면의 지적인 특성뿐 아니라 경제적 갈등과 긴장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에 있다. 객관적 모순의 뿌리는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규제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대한 여하한의 조사에서도 상호 연결되고 통합된 시장의 “효율적” 기능을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국제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가 바로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 그 자체에 있다. 모든 시장은 규모 면에서 국제적이지만 세계는 여전히 자본주의 권력들로 분열되어 있다. 자본의 각 부문은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국제적 라이벌과 항구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투쟁에서 각 부문은 자신들의 “고유한” 국가를 자신들의 이해를 증진시켜줄 정치적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G20에 모인 모든 참여자들, 수많은 조언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보호무역주의의 발흥이 세계경제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여전히 합의되지 않은 것은 많다. 금융과 무역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고 정부의 개입에 있어서도 그렇다.

발췌한 이의 간략의견 : 전형적인 국제주의자의 의견이랄 수 있다. 즉 현재의 위기가 지구적이며 특히 선진국에서 그러한 위기가 심각할 것으로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이해관계를 가진 자본, 그리고 그들의 이해를 보호하는 국민국가들로 분열되어 있는 세계경제에서 실질적인 규제에 대한 합의로의 도출이나 입으로만 떠들고 있는 자유무역 원칙은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문보기]

‘가치(value)’와 ‘부(wealth)’

이번 금융위기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인 Nick Beams라는 분이 2008년 말 호주에서 가졌던 강연의 일부분을 발췌한 내용이다. 현재 약 5편까지 진행되고 있고 기회가 되면 주요부분을 발췌하도록 하겠다.[원문보기]

끊임없이 증가하는 생산과정의 범위는 자본주의 경제의 금융구조의 변화를 추동한다. 이는 이제 자본이 축적과정을 이어나가기 위해 개별 자본가들의 능력 이상으로 자라나야 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자원을 빨아들여야 한다. 두 가지의 거대한 금융적 발전이 이를 가능케 했다. 신용과 은행시스템의 발전, 그리고 합자회사 혹은 주식회사의 출현.

사회 모든 분야의 돈이 은행으로 모이게끔 만드는 이른바 신용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기업에게 개인이나 심지어 개인들이 모인 집단의 능력을 월등히 초과하는 규모의 자원을 제공한다. 자본가는, 마르크스가 설명하길, 이제 다른 사람들의 돈의 단순한 관리자가 될 뿐이다. 이 돈이 없으면 루퍼트 머독도 평범한 시민에 불과할 뿐이다.

자본을 공급하는 대가로 은행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지급의 형태로 수령한다. 은행과의 대출계약이나 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채권자에게 정기적인 이자지급을 약속한다. 즉 그 소지자는 소득을 보장받는다.

주식의 발행을 통해 설립되는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화폐자본을 공급한 대가로 재산권을 보장받는다. 그들이 회사의 일부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매체인의 주주라고 해서 당신이 가게에 들어가 그 회사의 부분적인 소유주라는 이유로 물건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상품은 기업화된 법인의 소유물이다. 당신이 보장받는 것은 배당의 형태로 지급되는 이익의 일부분이다.

신용과 주식소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갖게 되었다. 채권과 주식과 같은 소득 형태를 수여하여 그것들이 거래되는 금융시장. 그리고 이들 금융자산의 가격은 오르고 떨어진다. 그래서 그것들을 사고팔면서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신용 혹은 주식의 형태로 제공되는 화폐는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입하는데 공급된다. 그것들은 생산자본이 되어 노동계급의 잉여가치를 착취하는데 관여한다. 이는 또한 화폐만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과 채권은 마르크스가 “상상의(imaginary)” 자본, 혹은 가상(fictitious)자본이라 부른 것들이다. 그것들은 최종적으로는 생산자본이 착취한 잉여가치의 지분을 소득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의 세계에서, 즉 가상자본의 세계에서는 금융자산을 거래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는 황홀한 세계다. 환상의 세계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화폐의 조작을 통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관리자의 영리한 조작과 거래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노동이 모든 이윤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짧은 문단을 통해 강연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조력자로서의 금융과 자본시장의 성격이 잘 묘사하고 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소 혼란의 여지도 있을 것 같다. 특히 강연자가 가치는 노동으로부터 창출되고 이자나 배당은 그것의 일부일 뿐이라고 하였으면서 다시 가상자본을 통해 스스로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모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value)’와 ‘부(wealth)’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가치는 그것이 화폐로 표현되기 전의 모습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것의 측정단위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명확치 않은 것 같으나 – 또는 내가 무지해서 모를 수도 –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노동시간의 형태로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부는 마르크스주의에서 그것의 명확한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폐의 형태로 표현이 가능하다.

따라서 금융시장에서 거래를 통해 축적되는 – 정확하게는 전유되는 – 막대한 부는 사실은 한 사회, 혹은 전체사회의 가치(value)를 뛰어넘는 화폐증발로 인한, 즉 일종의 인플레이션에 의해 촉발된 거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예컨대 유동성의 비정상적인 공급을 통해 올라간 부동산 가격은 가치의 증가가 아닌 화폐가치의 절하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교수 채용을 호소합니다”

서구 지성사에서 가장 걸출한 지식인이자 실천가였던 카알 마르크스. 여전히 그의 주장이 유효함에도 이 땅의 최고학부라는 서울대학교에서 김수행 교수의 퇴임으로 말미암아 그 학문적 전통이 씨가 마를 위기라고 한다. 대학의 직업양성소화 경향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일인가? 어쨌든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교수의 채용을 호소하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의 호소문을 전재한다.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교수 채용을 호소합니다!

지금은 겨울방학 중입니다. 그러나 ‘경제학 연구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소중히 생각하며 자신의 배움을 사회에 바람직하게 기여코자 고뇌하는 많은 대학원생들이 밤늦도록 연구실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저희들의 연구를 헌신적으로 지도해주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늘 소중한 가르침을 주시는 경제학부 교수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그 스승 중 한 분으로서 마르크스경제학을 지난 20여 년 동안 가르쳐 오신 김수행 교수께서 올해 2월 정년퇴임을 하십니다. 그와 더불어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마르크스경제학의 존폐 여부를 놓고 많은 이들이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 설마 마르크스경제학이 서울대에서 없어지겠냐면서도, 후임 교수에 대한 논의조차 교수님들 사이에서 거론되지 않거나 언급을 애써 삼가시는 상황을 보며 저희들은 우려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마르크스경제학은 경제학부 뿐만 아니라 서울대 전체의 학문 발전과 다양성 유지에 큰 기여를 했으며 수많은 연구자들을 양성하여 한국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오늘의 상황에 저희는 무척 안타깝습니다. 더 나아가 저희는 마르크스경제학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상황 자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단순히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전공 영역 하나가 사라진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 학부, 나아가 서울대와 한국사회에도 큰 손실을 야기할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가 채용되지 않고 마르크스경제학이 서울대에서 사라진다면, 경제학부는 스스로 학문의 다양성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다양한 학문의 섭렵은 진정한 학문적 발전의 기본 조건입니다. 마르크스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이론과 논리와는 다른 관점에서 경제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이는 신고전학파 중심의 주류경제학 이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경제학에서 다루고 있지 않거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문제들을 자본주의 비판과 사회적 평등이라는 시각에서 분석하면서 한국사회의 변화에 기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가 사라지게 되면, 주류경제학만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경제학부에서 학문적 다양성은 점점 더 위축될 것이며, 이에 따라 학문의 창의적 발전은 크게 저해될 것입니다.

둘째, 마르크스경제학이 사라진다면 관련 석·박사 연구자들에게 매우 심각한 영향을 줄 것입니다. 평생 자신의 업적이자 연구자로서의 삶의 길잡이가 될 학위 논문을 지도해 줄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후임 교수가 없다는 것 자체가 그들 자신의 삶에서 매우 큰 시련이 될 것이며, 사실상 학문적인 ‘사망선고’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지도교수를 잃어 대학원생들의 연구가 인위적으로 단절되는 이런 상황을 경제학부에서 방관한다면, 대학원 사회는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일로 매우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될 것 입니다.

셋째,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를 뽑지 않는다면, 이는 학문의 수요자인 학생의 권리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일입니다. 마르크스경제학은 지난 20여 년 동안 많은 수강생들이 배우고 고민해온, 경제학부의 공식 교과목입니다. 그런데도 이 과목을 담당할 교수가 없다면, 정작 수업의 가장 큰 당사자인 학생들은 부실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강사를 활용하는 방안은 장기적인 처방이 될 수 없습니다. 강의와 논문지도를 담당할 교수가 없다는 것은 곧 마르크스경제학 연구 및 교육의 실질적인 폐지를 의미합니다. 결국 마르크스경제학을 비롯한 더 다양한 시각을 접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수많은 학생들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하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다음과 같이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마르크스경제학을 강의하고, 학문적 재생산을 보장할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학문의 다양성과 경제학부 학문 재생산의 안정성, 학생들의 기본적 권리를 위해 서울대 경제학부는 마르크스경제학 교수를 반드시 채용해야 합니다. 저희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은 존경하는 교수님들께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 채용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2008년 2월 18일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 채용을 바라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대학원생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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