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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스티걸 법

글을 써야할까?

sonnet님의 이 글에 대해 응대하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요즘 바쁘기도 했거니와 좀 찝찝한 점이 있어 글쓰기를 몇 차례 망설였었다. sonnet님이 지난번에 쓴 내 글에 트랙백을 걸어주셨고 또 글 서두에 “근원적 모순론은 다음과 같은 시각을 말한다”라며 나의 글을 인용하셨기에 나는 ‘당연히’ 내가 주장한 바에 대한 반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근원적 모순론”을 비판하기 위하여 든 예는 ‘증권중개인에 대한 수수료 자율화와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였다.

의아한 점은 사실 나는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탈규제를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위에 든 두 가지 사례를 적시한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 두 가지 조치가 기본적으로 사리에 맞는 것이었지만 의도치 않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취지로 나의 “근원적 모순론”이 잘못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sonnet님의 논지는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더욱이 규제의 부당성에 대해 든 예인 소비에트의 어처구니없는 규제도 왜 그 맥락에서 등장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니 할 말로 내가 여태 글을 쓰면서 소비에트식 규제에 찬성한다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글의 논지는 결국 규제완화가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선의의 것’이라는 것 같은데 그게 sonnet님이 규정하신 “근원적 모순론자”들에게 어떤 설득력을 가질지 궁금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근원적 모순론”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개선, 더 나아가 자본주의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논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규제완화의 유용성을 논하는 것이 같은 수위에서의 논의가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sonnet님의 주장은 ‘규제옹호론자’ 또는 ‘정부개입주의자’에 대한 반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우지간… 지금 (망설이면서) 응대의 글을 쓰고 있다. 주의하실 점은 sonnet님의 글이 워낙 다양한 방향에서의 논점을 제시하고 있기에 이 글도 불가피하게 다소 장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sonnet님의 논지 요약

sonnet님의 글은 보통 스크롤의 압박이 심하므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주1) 내 글을 읽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 나름대로 그의 글을 요약해보도록 하겠다.

1) 이번 위기는 경쟁 촉진이나 금융복합기업화 같은 멀쩡한 정책개혁의 결과가 의도치 않았던 귀결(unintended consequence)이며 그런 것을 두고 “언제나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은 근원적 모순론에게는 매우 불리한 것이다.

2) 규제란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시장 경쟁과는 꽤 다른 특성(중요함)을 갖긴 하지만, 그것도 기본적으로는 방대한 선택지 중 일부의 기대값을 바꿔놓는 인센티브에 불과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또한 정책은 상당한 확률로 예기치 못한 귀결을 맞게 된다.

3)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들이 일거에 몰락하게 된 원인은 과거 건전한 개혁정책이라고 생각되었던 모종의 진보의 도입에 있었다. 또한 현상에 대한 불만은 언제나 진보의 강력한 추동력이었다. 그런데 이 경우 불만족스러운 현상을 강력히 성토한다는 것은 (과거의) 진보적 시도의 잘못을 두들기는 것이 되어서 자승자박이 된다.

4) 급진주의자들은 기존 체제에 존재하는 선을 인정하지 않고, 악을 치유하고자 하는 열정에 골몰한 나머지, 기존의 선을 좀 더 좋은 것으로 대체함이 없이 그것마저 파괴해버리고 만다.

5)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어떤 특정 경쟁정책이 재앙을 촉발했다고 해서 경쟁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쟁을 빼고 다른 어떤 것을 집어넣었을 때, 시장이 지금과 같은 정도로 돌아가게 될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다른 기적의 대안이 확보되지 않는 한 경쟁정책은 앞으로도 실용적인 정책대안으로 우리의 도구 상자 안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며 물론 앞으로도 종종 사용되어야 한다.

글래스-스티걸 법에 대하여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하게 되자, 투자은행이 움켜쥐고 있던 전통적인 밥그릇을 상업은행들이 파먹어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Barry Eichengreen, 경제 위기의 해부학, 2008년 9월 22일, sonnet님이 인용]

그런 위험한 모험에 뛰어드는 것을 미묘한 균형을 통해 억제하고 있었던 것은 투자은행들이 갖고 있던 짭짤한 수수료 수익이라든가 S&L의 (프리미엄 붙은) 영업권, 그리고 잠재적 경쟁업체 진입을 막아주던 글래스-스티걸 법 같은 소위 철밥통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었다는 것이다.[sonnet]

인용한 글에서 sonnet님은 인용한 아이켄그린의 논지를 빌어 증권중개인 수수료 획일화와 글래스-스티걸 법이 투자은행을 철밥통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법의 폐지는 경쟁을 촉진하는 선의의 의도였다고 정당화하고 있다.(주2) 그렇다면 글래스-스티걸 법이 그토록 바람직하지 않은 규제였는지를 살펴보자.

1920년대 증권 붐이 일어날 당시 은행의 대출수요는 감소한 반면 연준의 금융완화정책에 의해 예금은 대폭 증가하였기 때문에 은행들은 증권투자의 비중을 높이게 되었다. 그러나 1929년 주가 대폭락이 나타나면서 은행의 도산이 이어졌고 결국 대공황이 발발하였던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은행의 증권거래관련 불공정행위가 밝혀지면서 은행에 대한 예금자의 신뢰가 흔들렸고 이에 따라 은행과 증권업의 분리를 명확히 하는 은행법 개정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글래스-스티걸 법의 제정에 따라 1934년 6월까지 은행업무(상업은행업무)와 증권업무(투자은행업무)를 겸영하던 미국의 은행들은 업무를 분리해야만 했고 약 1/3정도가 상업은행업무에 전문화하게 된다.[미국자본주의 해부, 홍영기(금융감독원), 풀빛, 2001년, pp192~193]

이 글에서 보다시피 글래스-스티걸 법의 입법은 그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나아가 바람직한 규제였다. 은행과 증권업무를 분리한 것이다. 물론 유니버셜뱅킹도 가능한 업역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초기 시절 공황을 목도한 뒤 고유업무 영역을 분리했다고 그것을 철밥통을 만드는 경쟁저해책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 규제는 sonnet님이 예로 든 소비에트의 규제보다 훨씬 적절한 규제의 사례다.(이는 조금 뒤에 알아보자) 더불어 그러한 규제조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경제적 자유주의 시절의 종말과 정부개입주의적인 시절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Gram Leach Bliley Act)의 입법과 이로 인한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는 또 다시 경제 자유주의의 복권, 금융과점의 허용 등 신자유주의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가 되는 것이었다.

먼저 규제의 유용성에 대해 살펴보자. sonnet님은 ‘3. 규제라는 도구’에서 소비에트의 예를 들며 규제의 무용성 내지는 외부효과에 대해 상당히 자세히 서술하셨는데 사실 굳이 규제에 대해 살펴보아야 했을 것 같으면 앞서 ‘2. 금융위기 돌아보기’에서 예로 들었던 글래스-스티걸 법에 대해 논함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야 규제의 양면성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글래스-스티걸 법의 의의와 시대적 한계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글래스-스티걸 법이 금융복합기업화를 막아서 투자은행의 안정성을 해쳤거나 경쟁을 저해해서 미국금융시장의 발달을 지연시켰다고 보는가? 글래스-스티걸 법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규제를 하고 있는 동안 미국의 금융업은 급속히 성장하여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꼭 그것이 글래스-스티걸 법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것이 부당한 악법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법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금융억압의 시기가 지니는 의미인데, 즉 일반적으로 금융억압의 시기라 불리는 브레튼우즈 체제인 1946년에서 1973년까지의 기간 동안 체계적인 금융위기는 상대적으로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그 법은 그 법이 가지는 한도 내에서 역할을 마땅히 수행한 것일 뿐이다.

아래 그래프는 2008년 현재의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레버리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아이켄그린이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투자은행이 불안정한 단기자금시장 대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예금을 사용해 그들의 사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두둔했지만 투자은행 자신들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여전히 높은 레버리지를 통해 고위험의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 sonnet님 표현을 흉내내자면 경쟁을 시켰는데도 레버리지가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주3)

특히 여기서 탈규제의 더 비참한 드라마가 연출된다. 즉 레버리지의 증대는 이 조치와도 연관 있는데 탈규제의 하이라이트를 들라면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보다 이른바 “자발적 통합감독 프로그램”이라는 어이없는 제도였다 할 수 있다.

NCR(주4)제도는 비록 정치하고 세련되지 못한 매우 단순한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적어도 2004년까지는 증권회사의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규제로서 훌륭히 그 기능을 수행했다고 평가받는다.
SEC(주5)는 2004년 6월 8일, 투자은행지주회사에 대해서 법적인 감독권한은 없지만 이를 통합적으로 감독하는 자발적 통합감독 프로그램(consolidated supervised entities:CSE)을 마련했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집요하게 앞에서 살펴본 표준 NCR 제도가 투자은행의 위험관리 능력을 무시하고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제도라고 주장하며 이의 완화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당시 골드만삭스의 CEO였으며 현재 미국 재무장관인 Paulson이었다.
이러한 규정이 마련되자마자 곧 Goldman Sachs, Morgan Stanley, Merril Lynch, Lehman Brothers, 그리고 Bear Stearns 의 5개 대형 투자은행은 SEC로부터 CSE 자격을 승인받았다. 이 5개 투자은행이 CSE 자격을 획득한 유일한 투자은행들인데, 공교롭게도 이번 월가의 금융위기에서 모두 부실화된 투자은행들이기도 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월가의 금융위기와 자기자본규제, 연구위원 한상범, 자본시장 Weekly 2008-40호 II, 한국증권연구원, pp2~3]

이러한 5대 투자은행들의 “자발적 감독”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 이전까지 그나마 12배를 유지했던 이들의 레버리지는 2004년의 예외인정 이후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40배까지 상승한다. 12배의 레버리지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40배면 문제가 심각하다. 요컨대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이미 70년대 후반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던 금융규제 완화의 사후적 승인(주6)이라면 이 조치는 그야말로 금융위기의 결정타라 할만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떤 “근본적으로 사리에 맞는 선택”을 집어낼 수 있는가? “경쟁촉진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이제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가 아이켄그린의 말대로 “근본적으로는 사리에 맞는 선택”이었는지 한번 살펴보자.

M&A는 권모술수와 배신을 동반한다. 탈법, 아니 M&A 성사를 위해 아예 법을 바꾸는 로비도 동원된다. 합병 후 시티그룹의 CEO가 된 샌포드 웨일은 자신의 회사 트레블러스와 시티콥을 합병하는 데 반독점법인 글레스-스티걸 법이 방해가 되자, 워싱턴에 전방위로비를 벌인다. 1999년 미국 의회는 ‘시티그룹 정당화법’이라고 불린 ‘금융 서비스 현대화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거대공룡’ 시티그룹의 탄생을 방조한다. 합병을 위해 정치인을 움직여 법도 바꾸는 마당이니 M&A 금융기술은 물론, ‘마카로니 방어전략’, ‘독약 전략’ 같은 반(反) M&A 금융기술도 만만찮게 발전한 곳이 월가다.[‘월가의 법칙’ 책 소개]

[기타 참고글]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 로비의 짧은 역사 (번역문 보기)
How Citigroup’s CEO rewrote the rules so he could live richly. (부분번역문 보기)

요컨대 아이켄그린은 그 법의 폐지가 “근본적으로는 사리에 맞는 선택”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미국의 금융자본주의 발달에 따라 적당한 시기에 입법되어 한 시대를 풍미하며 미국경제가 발전하는 시기에 존속하였다가, 폐지 이전부터의 은행 간 합종연횡 등이 점차 노골화되는 등 금융억압이 해체되어가자(주7)시효를 다하고 사라진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진 사태는 다 알다시피 현재의 금융위기다.

글을 마치며

sonnet님의 이어지는 ‘4. 파괴적 경쟁’, ‘5. 진보의 딜레마’, ‘6. 편견(?)의 옹호’ 절은 논의의 집중을 위해서 – 솔직히 쓰다 지친 면도 있음 🙂 – 여기에서 별도로 다루진 않겠다.(주8) 다만 맨 마지막에 ‘7. 마무리 : 던져진 질문에 대하여’의 sonnet님의 다음 말씀에 대해 한마디 하기로 한다.

경쟁과 분권화는 분명히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요소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어떤 특정 경쟁정책이 재앙을 촉발했다고 해서 경쟁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쟁을 빼고 다른 어떤 것을 집어넣었을 때, 시장이 지금과 같은 정도로 (혹은 그 이상) 돌아가게 될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다른 기적의 대안이 확보되지 않는 한 경쟁정책은 앞으로도 실용적인 정책대안으로 우리의 도구 상자 안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며 물론 앞으로도 종종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양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위기를 넘긴다면 예전과 본질적인 변화는 없는 ‘시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은 별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결론이라는 것이 내 대답이다. 이제 근원적 모순론이 답할 차례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많이 뜯어고쳐야 충분하다고 말할 것인가? ‘시장으로 복귀’란 표현이 무색해질 정도로 큰 변화가 과연 어떤 것인지 한번 지켜보기로 하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살짝 잽을 피하시는 모습은 조금 실망”(foog)스러운 것이 어느 쪽인지를 보여줄 테니까 말이다.[sonnet]

앞에서 쭉 살펴보았듯이 글래스-스티걸 법은 경쟁을 저해하는 법이 아니었다. 시장의 플레이어의 특성에 따라 그 고유 업무를 구분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법은 존속기간 동안 끊임없는 폐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잘 작동하였다. 그때의 시장은 국가가 특정한 명분을 가지고 개입한 시장이었다. 그 기간 동안 금융은 탈 없이 굴러갔고 전 세계 자본주의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다가 포디즘 체제 하의 경기변동, 미국이라는 나라의 비효율성 증대로 말미암아 금융탈규제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것이 경쟁촉진이었는지 독과점 창출이었는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적어도 글래스-스티걸 법을 보면 마냥 “사리에 맞는 선택”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상업은행의 거대화를 촉진하였으니 말이다.

나는 시장과 국가를 대립항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동반자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발달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했고 국가는 사실상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 경제가 막을 내린 이후 언제나 시장을 지도해오고 투자해왔다. 규제와 탈규제를 반복하고 정부투자를 증대시켜 왔다. 고전적 자유주의 시대에는 10%미만이었던 서구의 GDP 대비 정부총지출은 1990년대 중반에 40~50%를 유지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국가개입주의는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니 규제 없는 시장이라는 것은 어쩌면 신화에 불과하다. 시장의 가장 큰 플레이어가 룰을 정하겠다는데 그게 불합리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sonnet님이 경쟁과 분권화가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요소라고 하셨는데 여태 말했듯이 자본주의에서의 탈규제 심지어는 규제 그 자체조차도 독점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 것들도 많거니와 그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글래스-스티걸 법의 폐지는 사리에 맞지도 않았고 의도치 않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도 아니다. 그런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시장에 위험하다는 신호는 이미 S&L 사태 때 감지하지 않았는가? 나는 최소한 그런 과거에 대한 기억력을 가진 시장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은 어느 기간만 지나면 편리하게 과거를 망각한다. 이번은 다르다고 주문을 외우면서 말이다. 나는 이게 시장의 고유모순인지 아니면 의도치 않은 실수인지는 잘 모르겠다.

  1. 이 스크롤의 압박은 논쟁 시 일장일단이 있는데 단점은 글이 긴 관계로 상대가 글을 허투루 읽을 수 있다는 점이고 장점은 글이 긴 관계로 상대가 글을 허투루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
  2. 잠깐 곁다리로 새자면 벌써 이 부분이 정책이 “상당한 확률로 예기치 못한 귀결을 맞게 된다”며 거부감을 가지면서 동시에 탈규제가 바로 지금 눈앞에서 예기치 못한 귀결을 맞은 데에 대해서 옹호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3. 물론 아이켄그린은 이에 대해 “복합기업화가 완성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핑계로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4. 표준 순자본규칙(Uniform Net Capital Rule)의 약자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증권회사에 대한 자기자본규제 제도
  5.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6. 사실 이미 70년대 후반 이래 은행들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형 은행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글래스-스티걸법상 명확한 금지규정이 없거나 법률 해석상 진출이 가능한 증권업무분야에 진출을 시도하고 있었다.(중략) 금융자유화, 규제완화로 표현되는 이러한 변화는 1930년대 이래 미국의 분업주의적인 관리된 금융시스템의 일정한 균열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대체할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정합적 구조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80년대 위기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미국 자본주의 해부, 홍영기[금융감독원], 풀빛, 2001년, p198)
  7. 앞서 말했듯이 시티은행의 경우 금융서비스현대화법(Gram Leach Bliley Act)이 허용되기 이전인 지난 98년 은행지주회사법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트라벌러즈 그룹(Travelers Group)이라는 보험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승인을 얻었다. 제이피모건체이스(JP Morgan Chase)는 제이피모건(JP Morgan)이라는 투자은행과 체이스맨하턴뱅크(Chase Manhattan Bank)가 합쳐진 금융그룹이다.
  8. 그리고 하나 하나가 모두 심각한 주제여서 나의 역량을 뛰어넘는 측면도 있다 🙂

채승병님 글에 대한 댓글

채승병님이 고맙게도 지난 번 끼적거린 내 글트랙백 보내주신 글에 대해 댓글을 쓰다가 너무 길어져 여기 올려두도록 한다. 너무 좋은 글이니 꼭 가서 읽으시도록~ (채승병님 글읽기)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외람되지만

“어설프게 읊어대고 으스대던 시장과 정부의 문제점들이 실은 그들이 이미 치열하게 고민하며 펼쳐낸 것임을 발견했을 때의 화끈거림이 아직도 생각난다.”

에서 뭐 얼굴이 화끈거릴 것까지야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어차피 학술논문도 아니고 블로그인바에야 자신의 생각을 정밀소묘하기보다는 캐리커쳐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작용해가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블로깅아니겠습니까? ^^;

여하튼 제가 이야기했던 바에 대해서는 큰 첨삭이 없으시니 따로 드릴 말씀은 없지만 굳이 제 글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적어도 해당 글에서는 “시장이냐 정부냐”라는 질문을 던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오히려 정부가 시장의 동조자 내지는 방관자?) 그보다는 전후 어떤 식으로든지 “진화”해온 시장이, 과연 언급하신 고전적 물리학에서의 어떠한 이상적인 모형처럼 자연법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티글리츠가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기에 더더욱 그런 궁금증이 더했습니다. 그래서 sonnet님께 그 부분을 넌지시 여쭈었더니 ‘두통감기에 뇌수술’한다는 핀잔만 들었습니다.^^(뭐 보론을 하신다니 기대해보도록 하고요)

또 하나 이 글을 읽으면서 불현듯 느낀 점이 있는데요. 대개 그 시대의 경제학자들은 좌우를 떠나서 역시 자기네들이 살고 있는 공간의 시장만을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이에크의 ‘결과론적 옹호론’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만약 그 당시 시장이 성공적이었다면 그것은 제1세계의 시장의 성공이었을 따름이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 경제학자들은 그러한 시장만을 분석하였을 것이고요. 인도의 발달한 직물산업을 폭력으로 좌절시킨 영국의 무력사용은 그 분들에게 영국 면화산업의 발전요인의 고려사항이었을까요?

문득 에르제(Herge)라는 만화가가 생각나네요. 벨기에 만화가인 이 분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땡땡의 모험’이라는 불어권, 아니 유럽 최고의 인기 만화를 그려낸 작가입니다.(이 만화를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이 실사영화로 만들 거라는군요. 기대만빵!) 왜 이 분이 생각났는가하면 이 분은 나름 흑역사를 지니고 계시기 때문이죠.

이분의 첫 작품들은 1930년대 초반 그린 ‘땡땡 소련에 가다’와 ‘콩고에서의 땡땡’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은 벨기에의 우익 소년잡지에 그림을 담당한 백인 에르제가 지니고 있던 이념적, 종교적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에르제는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심지어 ‘땡땡 소련에 가다’는 흑백 버전을 칼라 버전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조차 거부하죠. 그분의 최후 작품은 쿠바혁명에 감화받아 남미 게릴라의 활약상을 담은 ‘땡땡과 피카르소’입니다.

다른 데로 많이 샜네요. 🙂

요는 이렇습니다. 많은 이도 그렇거니와 저도 사물을 바라볼 때에 수많은 편견에 사로잡히곤 한다는 것을 수시로 깨닫곤 합니다. 그래서 저와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지니고 계신 것으로 간주되는 sonnet님을 가끔 들이받기도 하고 또 이렇게 채승병님의 주옥같은 글에 많은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모든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 콩고인을 하인처럼 여긴 한때의 자신을 극복한 에르제처럼 – 언젠가는 더 넓은 시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 석학들의 주장에서도 그들만의 편견을 느낀 것도 사실이기에, 그래서 솔직히 솔직담백하게 세계관을 바꾼 에르제가 더 멋져보여 예로 들었습니다. 글이 삼천포로 갔네요. 🙂 (글에 대한 독후감에서 boys be ambitious 분위기로~)

여하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래서 블로깅하는 보람이 있는 거죠.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시장은 분명히 현재 시점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sonnet님이 재인용한 스티글리츠가 말하기를 “비시장 메커니즘은 이 오랜 시간 동안 작동하게 되는데, 그것이 사용하는 정보는 시장이 작동하고 있는 동안 제공된 정보이다.” 라고 하였는데 나 역시 이에 동의하는 바다. 이것이 후진적인 구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딜레마였다. 그들은 정보를 얻기에 너무도 능력이 안 되었고 그나마 시장도 암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보란 다양한 것들이 있겠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정보는 역시 공급과 수요를 일치시켜주는 정보일 것이다. 또한 새로운 공급이나 새로운 수요의 창출에 대한 동기도 부여해준다. 또한 시장이 없었다면 facebook이나 아이폰, 그리고 구글과 같은 유연성 있는 혁신이 가능했을까? 어느 정도는 회의적이다.(주1) 어쨌든 경제에 관한 정보의 제공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우리는 이보다 나은 수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한편 sonnet님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다시피 “경험적으로 보면, 시장은 위기에 취약”하다. 즉 시장이 위기에 빠지게 되면 전통적으로 고르게 분산되어 있다고 가정되던 공급과 수요가 순식간에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변동가능한) 고정환율제이던 브레턴우즈 체제 시절, 자유변동환율제를 지지하던 밀튼 프리드먼은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오르거나 떨어질 경우 이를 공격하는 반대투기가 일어나 투기꾼들은 환율 안정화 세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논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환율 안정화 투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배짱투자가는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sonnet, 시장원리주의에 대한 단상]

이 블로그에서도 윗글에서 언급한 투기와 반대투기의 개념을 간략하게 설명한 적이 있어 재인용하겠다.

파생상품시장의 참여자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위험을 분산하고자 하는 자(hedger)’, ‘그 hedger에게 위험을 넘겨받는 대신 수익을 취하려는 투기자(speculator)’,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시장의 교란으로부터 무위험차익을 실현하려는 자(arbitrageur)’가 그들이다. 이 체제의 신봉자들은 위험은 분산되어야 하며 두 번째 주체 즉 speculator가 없으면 hedger는 위험을 분산하지 못하여 시장의 안정성이 저해된다는 논지다.[foog, 부시 행정부의 새 금융규제 수단은 솜방망이?]

즉 파생상품시장도 그렇지만 많은 여타 시장은 hedger와 speculator(또는 risk taker)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주2) 이 둘이 없으면 거래가 없고 시장은 돌아가지 않게 된다. 아파트 시장에서 아파트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면 hedger에 가깝고 그 아파트를 사서 자산가치 상승을 노리면 risk taker에 가깝고 뭐 이런 식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는 hedger에 가깝고 자본가는 speculator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위기에 도래하면 갑자기 모두가 hedger가 된다. 지금 시장의 자산가치들이 폭락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 와중에 speculator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은행은 자산을 청산하며 디레버리징에 몰두하고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들은 중도금내기 싫다고 시청 앞에서 데모를 한다. 현 시점에서 당장 생각나는 speculator는 두명 정도인데 하나는 워렌 버핏이고, 또 하나는 박현주다.

좀 지루하게 썼는데 사실 여기까지의 요지는 내 잡문보다 sonnet님의 유려한 글을 읽는 편이 훨씬 심미적으로 유익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과드린다. 하지만 내가 이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기에 독자 분들의 양해 바란다. 즉 이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sonnet님이 스티글리츠의 입을 빌어 하고 싶은 글의 또 다른 요지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sonnet님은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에 대해 본능적인 혐오와 거부를 보이는 것처럼” 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것이 반드시 “본능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모든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whatever가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여겨지지 않거니와, 더불어 더 나은 시장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장의 한계 또한 다시 한번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시장을 거부하는 이들을 또 싸잡아 “시장반대원리주의자”로 몰아붙여서는 곤란하다.

그린스펀이 이번에 자신이 Fed 의장에 있을 때 취했던 행동이 “부분적으로(partially)” 잘못 되었음을 인정하였는데 그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회위원회의 민주당 의장 헨리 왁스만이 그를 압박했다. “당신의 세상에 대한 관점, 당신의 이데올로기가 옳지 않다고 알아챘고 그것이 작동 안 하지 않았느냐?” 그린스펀이 인정했다. “그게 정확히 내가 40년여 동안 일해 왔기에 그것이 예외적으로 잘 작동하였다는 상당한 증거에 놀란 이유다.”
The congressional committee’s Democratic chairman, Henry Waxman, pressed him: “You found that your view of the world, your ideology, was not right, it was not working?” Greenspan agreed: “That’s precisely the reason I was shocked because I’d been going for 40 years or so with considerable evidence that it was working exceptionally well.”[guardian, Greenspan – I was wrong about the economy. Sort of]

즉 그는 지난 40년간 시장은 정상적으로 잘 작동했기에 그가 부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극히 최근, 길게 잡아도 그가 물러나기 몇 년 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그는 “백년에 한번 일어날만한 신용 쓰나미(once-in-a-century credit tsunami)”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이번 신용위기가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시장경제에 내재된 모순이 발현된 것이라기보다는 극히 예외적으로 순식간의 불가항력적인 교란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글리츠와 같은 상대적인 진보주의자 역시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요컨대 sonnet님의 글에서 비판받고 있는 시장원리주의자, 또는 시장근본주의자는 – 그린스펀은 시장근본주의자 중 체제내 세력? – 시장주의자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오른 쪽에 위치하고 있고 스티글리츠나 sonnet님은 – 또는 크루그먼까지? – 그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둘의 공통점이 신용위기가 시장의 근본모순이 아닌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하는 관점, 즉 시장본질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내가 궁금한 점은 그것이다. 현재의 시장위기를 해결한 후 그것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을 만큼 시장은 절대적으로 보존할 가치 있는 것인가? 또는 적절한 통제장치만 마련되면 시장은 다시 순수한 시장예찬론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상태의 시장으로 순화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만 되면 시장은 공산주의자들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경기변동 및 공황의 두려움으로 해방될 수 있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위 질문 중 어떤 것에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것에는 회의적이다. 전후 자본주의는 그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였다기보다는 주로 임시변통적인 변수에 의해 “예외적으로” 작동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할 정도의 저유가(低油價), 이를 위한 침략전쟁, 이를 지원하는 군사력과 방위산업, 노동운동 해체/비정규직 확산 등을 통한 소득양극화, 이에 따른 소비침체를 이연시키는 모기지와 같은 대부(貸付)경제,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을 이용한 과소비, 중국 등 신흥국으로부터의 저가상품 유입 등 몇몇 특수한 변수가 운 좋게도 그때그때 시장의 위기를 지연시켜왔다. 그리고 그 모순은 지금 폭발한 것이다. 이건 쓰나미가 아니라 화산폭발이다. 오랜 동안 마그마가 내부에서 응축되어 왔던 산에서 터진.

만약 다시 시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우리는 이전의 시장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몇 가지 핵심적인 구성요소를 버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예외적인 변수들 말이다. 저것은 전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예외적인 변수였지 모든 시장에 항상 따라다니는 행운의 과자들이 아니다.

(주1) 또 역으로 어느 정도는 부정적이기도 한데 한 예로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로 알려진 Tim Berners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지적재산권으로 묶어 배타적인 사업이윤을 취득하려 들었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조화의 문제이기는 하다.

(주2) arbitrageur는 좀 특수한 존재니까 생략

풀리지 않는 의문

1) “결과론적인 비판에 불과하지만 북한이 자랑한 경이적인 성장은 사실 그 자체가 무상원조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허깨비였던 셈입니다.” 이 표현을 sonnet님이 쓰신 방법으로 남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
2) 특히 박정희 시대에 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누가 봐도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낀 것이었다.(원문보기)

지난번 sonnet님이 추천해주신 ‘길잃은 어린 양’님의 글에 대한 나의 위와 같은 코멘트에 대해서 sonnet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아래와 같은 요지의 반박글을 남겨주셨다.

1)항에 대한 제 의견은 남한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무상원조를 받아서라기 보다도 무상원조를 끊어나간 데 요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2)항에 대해서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제목만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북한이나 사회주의 국가를 베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원문보기)

먼저 진지한 대화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을 sonnet님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역시 현재 논점이 되고 있는 ‘남한경제에서 원조가 차지하는 위치’,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격’이 될 것이다. 이제 이 두 가지에 대한 sonnet님의 주장과 나의 주장의 접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흥미로운 점은 남한경제에 있어 원조가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나의 주장과 “남한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무상원조를 받아서라기 보다도 무상원조를 끊어나간 데 요점이 있다는 것”이라는 sonnet님의 주장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점이다. 즉 나 역시 sonnet님이 주장하는바 남한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무상원조에 의존하는 경제를 차관(또 다른 의미에서의 원조이긴 하지만)에 의존하는 경제로 전환시키는 과정 속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니 sonnet님의 주장이 나의 주장에 대한 반박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sonnet님이 나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서는 해방후 남한의 자본축척에 있어 미국의 원조가 – 미군정의 귀속재산 처리와 함께 –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지 안했는지의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sonnet님은 자신의 글에서 “한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돈을 안대주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에” 라고 한국 경제의 미국에 대한 절대적 의존성을 실토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주장과 상치하는 바는?

없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장면, 그리고 이승만(주1) 의 경제개발계획이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꼈다는 나의 주장의 취지는 이러하다. 즉 소비에트 수립이전에 계획경제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러므로 이후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에서 시행된 경제개발계획은 당연하게도 소련의 그것을 답습하거나 이를 원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2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 들은 자신들의 경제체제를 뭐라고 부르건 간에(주2) 압축성장의 방편으로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담긴 경제개발계획이라는, 시장경제를 통한 자연적인 성장이 아닌 국가주도의 계획경제적 요소를 통한 인위적 성장을 지향한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살펴볼 것 같으면 1) 겉으로는 자유기업원칙을 천명하면서도 실제로는 ‘지도받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추진방식을 채택하였다는 점 2) 개별산업을 특정하여 집중육성 전략을 펼쳤다는 점 3) 경제의 핏줄이라 할 수 있는 은행을 국유화하였다는 점 등 몇 가지 특성만을 봐도 그 형식은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차용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sonnet님의 주장을 살펴보면

이 계획은 초안 수립 후 미국인 고문 찰스 울프 박사의 검토를 받습니다. 1961년 3월에 울프는 Singer, Hirschman 등의 경제성장이론에 비추어 불균형성장전략이 타당하며, 미국 원조 의존도를 낮추고 내자동원의 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하는 검토의견을 제시합니다. 이 계획이 완성되자 한국측 대표는 1961년 5월 9일 미국 워싱턴의 국제원조처(USAID)를 방문해 경제개발계획안을 제출합니다. 이것은 한국 국무회의에 보고된 5월 12일보다도 빠른 것입니다. USAID는 울프의 견해가 미국의 정책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즉 이 계획은 계획수립도 미국이 댄 돈으로 하고 있었고, 미국인 고문으로부터 미국 정부의 시각을 대변하는 컨설팅을 받았으며, 완성되자마자 미국에 보고도 했습니다. 한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돈을 안대주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에, 무슨 계획이건 전주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누가 봐도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낀 것”이란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음이 잘 드러납니다. 5개년계획의 원조가 소련인 것만큼은 사실이지만, 공통점은 거기서 끝나니까요.
박정희 본인이나 그 수하들 중에 소련의 경제정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산권으로부터의 컨설팅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제1차 5개년 계획은 전적으로 미국의 입김 하에 장면 정부 하에서 완성된 것이고, 군사정권은 이를 소폭 수정하였을 뿐입니다. 이 미국의 컨설팅을 받은 계획에 이미 요즘 혹자가 말하는 사회주의적(?) 요소는 다 들어 있습니다.(원문보기)

위와 같이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 1) 미국의 감수를 받았다는 점 2) 미국이 전주였다는 점 3) 박정희나 주변사람이 소련의 경제정책을 몰랐다는 점 등을 들어 “5개년계획의 원조가 소련인 것만큼은 사실이지만, 공통점은 거기서 끝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은 형식상으로는 소련의 그것을 답습하였는데 그것을 미국이 감수하고 돈을 대줬다고 해서, 그리고 박정희가 소련의 경제정책을 몰랐다는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운 점을 들어 왜 그것이 이제 “공통점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냐고 주장하는 가 하는 점이다. sonnet님이 인용한 건설부의 자료에도 ‘혼합경제’를 지향한다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는바 오히려 sonnet님의 이야기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여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요컨대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sonnet님의 글이 어느 부분에서 당초 나의 주장을 반박한 것인지 어리석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1) 미국의 원조가 남한 경제에 영향 미친 바 없다는 것 2)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 사회주의의 그것과 관계없는 독창적인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검증하여 주셔야 할 것 같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더불어 해박한 경제지식으로 나의 미천한 경제학적 소양을 고양시켜주신 점에 대해서는 감사드린다.

(주1)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경제계획’ 의미를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의미로 오해하여 극히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주2) 특히나 식민지 국가의 인민들에게는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와 동의어였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요소의 도입을 환영하는 편이었다. 물론 지배계급은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