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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ediction business

Economics learns a thing or two from evolutionary biology
by Massimo Pigliucci

“내 생각에 세상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규정한 주요 작동구조라고 인지한 모델이 흠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불명예스럽게도 전직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알란 그린스펀의 말이다. 그는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그의 견해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지난 시절의 그의 “흠 있는” 모델에 근거한 연방준비제도 차원의 개입에 (또는 그러함으로써의 불개입)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이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누군가의 결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경제학은 복잡한 수학적 모델 (그리고 우리 모두는 수학이 매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에 기초한 굳건한 규율로 간주되어 왔다. 그들은 심지어 큰 소리를 내는 경제학자들에게 노벨상까지 쥐어준다! 그리고 여전히 경제학은 언제나 사회학, 심리학,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생태학이나 진화 생물학과 같은 생명과학 일부까지도 아우르는 “연성의(soft)” 과학이라는 동류의 대접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참으로 그러한 다른 연구 분야의 종사자들처럼 몇몇 경제학자들 역시 “물리학을 부러워하는(physics envy)”, 즉 물리과학을 그들 분야가 그래야 하는 것 인양의 모델로써 사용한다는 혐의를 인정한다. 심지어 그린스펀의 영리한 화술을 이용하자면 좋은 과학은 물리학에 의거 모델화되어야 한다는 그 가정마저 “흠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첼시 월드 Chelsea Wald 는 사이언스지에서의 최근 논문에서 (2008년 12월) 어떻게 금융부문에서의 그렇게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분명히 문제가 있고 결국에는 자본주의 그 자체의 기저를 흔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쑤셔대는 전 세계의 경제위기를 이끌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에 걸쳐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는가를 물음으로써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대답으로 일부는 “시장”은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의 자기이해에 따라 행동하고, 그들이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비즈니스에 대한 적정한 정보에 완벽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합리적인 이들이기 때문에 기능한다는 경제학의 고집스러운 아이디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멍청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완벽한 합리성, 완벽한 정보, 그리고 즉각적인 접근이라는 것들이 시장이 기능하는 실재와는 1광년 동떨어져있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최근 모델들에서는 이러한 가정들이 일정정도 느슨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물을 그런 식으로 모델링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유혹이다! 결국 물리학자들도 역시 그렇게 한다. “둥그런 소를 가정하면..(consider a spherical cow)”(주1)으로 시작하는 물리학 개론의 문제를 상기하라.

그러나 이제 새로운 녀석이 나타났다. : “인지행위적 재무론(behavioral finance)”은 사람들이 어떤 때는 다소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또 어떤 때에는 노골적인 공포감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고려한다. 이 새로운 접근은 심리학이나 사회과학과 같은 인간행동의 특징에 관해 가장 많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가 큰 “연성의” 과학을 포함하는 여러 분야의 학제적 환경에서 도출되었다. 아마도 그리 놀랍지 않게도 이제 때때로 경제학자들을 자극시키는 또 다른 과학이 있다. : 진화생물학. 고전적인 모델을 채택하는 종래의 “효율적 시장가설”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더 직접적으로 유사성을 가지는 “적응적 시장가설”로 대체되고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이 최적화 과정이 아니며 만족화의 과정이고 그것은 어떠한 결과물이든 간에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달성 가능한 것을 생산하고 그 문제를 “매우 충분하게”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것은 다소는 많은 자원을 “낭비”하고 때로 막다른 길로 치닫기도 한다.(현존하는 종의 99%가 멸종되었다는 것만을 상기하라) 떠오르는 그림은 합리주의자 패러다임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다. 그러나 또한 확실하게 훨씬 더 혼란스럽다.

진화생물학에서 배울 점이 또 하나 있는데 이를 통해 경제학자들 또는 일반대중이 특별히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복잡계(complex systems)가 시간을 두고 진화하면 그들이 취하는 경로들은 (양자 역학 테두리 바깥 결정론적인 거시 물리학 법칙과 반대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우발적(contingent)이다. 사회학자, 심리학자, 생태학자, 그리고 진화생물학자들은 언제라도 그들의 경제학의 친구들에게 충분히 복잡한 임의의 역사적 모델을 통해 (공룡의 멸종, 닷컴 버블과 같은) 과거의 사건들을 설명하는 것이 분명히 가능하다고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능력 밖에 있는 것은 정확히 경제학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 미래의 예측, “좋은” 과학의 인증표.

나는 여기서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실행 가능한 예측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상학은 그것이 12월과 2월의 기간 동안 뉴욕의 낮은 온도일 것이 매우 확률이 높다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준다는 의미에서 예언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일 당신이 두꺼운 코트나 또는 우산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줄 능력은 별로 없다.(주2) 유사하게 생태학자는 예를 들어 가용영역의 크기 또는 (초계체 역학에 영향을 미치는) 인접한 유사영역과의 연계 등 특정 환경인자들이 변할 때, 멸종의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종이 언제 어디서 멸종할 지에 대해 예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유사하게 새로운 경제적 모델들은 그들이 예를 들어 가치측정이 어려운 주식들이 “낙관적인” 시기에는 잘 나갈 것이라는, 반면 가치측정이 쉬운 주식은 “비관적인” 시기에 좀 더 잘 나갈 것이라는 것은 이야기할 수 있는 의미에서만 “작동”할 것이다. 그들은 심지어 주식들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에 대한 분산이 두 번째 것보다는 첫 번째 타입에서 보다 높다는 것도 이야기해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당신이 당신 브로커에게 오늘 이따가 이야기할 것에 대해서나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사고팔아야 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에 대한 용도로는 쓸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위의 모든 것들이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생태학, 진화생물학의 실패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들이 물리학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것들과는 다르게 복잡하고, 역사적인 시스템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제거할 필요가 있는 진정한 가정은 물리학이 모든 다른 과학들이 비교되어지는 금표준(golden standard)이라는 매우 집요하고 해로운 가정이다. 이제 우리가 연방 자금조달 관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납득시킬 수만 있다면…

매우 재밌는 글이어서 어설프게나마 번역해보았다. 요즘 유행하는 복잡계 경제학의 단초를 엿볼 수 있기도 하거니와 경제학이 끊임없이 접점을 찾아가고 있는 여타 자연과학들과의 상호관련성도 함축성 있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글이 알려주는 바는 어떠한 학문이건 간에 ‘예측’ 더 나아가 ‘예언’(사실 위 번역문의 원문으로 보자면 위 글에서 예언이라고 한 것들은 예측이 더 정확할 것이나 그것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예언이라고 하였다.)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주위의 사람들에게 ‘넌 왜 비싼 학비 내가면서 그 공부 했느냐’는 또는 ‘경제학 공부한 놈이 주식은 왜 까먹냐’는 핀잔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글의 취지에서 다른 것을 떠나 분명하게 동의하는 것은 특히나 경제학에서 ‘예언’ 심지어 ‘예측’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 그렇게 예언에 성공(?)해서 명성을 얻은 이들이 월스트리트나 아고라에 여럿 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이 경제학은 예측이 가능한 학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Adam Smith’s Lost Legacy’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Gavin Kennedy 라는 경제학자는 내가 번역한 위 글을 부분 인용하면서 현재 경제학계 또는 경제계에서 만연해 있는 그런 풍토를 “예언 비즈니스(the prediction business)”라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상당 부분 공감하는 바이다. 과거의 경험과 학문의 틀 내에서 현재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대안과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마치 자신의 입장이 전지적인 것 인양 행세하며 자신의 프레임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아집은 logger 님의 표현에 따르면 불쏘시개로 써도 시원치 않을 쓰레기일 것이다.

(주1) 모든 실재하는 현상을 가급적 둥글게, 즉 모나지 않게 가정하고 시작하려는 과학적 모델링의 행태를 꼬집는 농담(참고하기) : 역자 주

(주2) 기상청 직원 소풍가는 날 비 온다는 농담의 맥락에서 : 역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