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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철도법인 설립을 통한 “경쟁체제 구축” 주장에 대하여

세번째로 ‘모양만 경쟁체제’이며 경쟁체제가 ‘무의미’하게 되었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이번에 발표된 수서발 KTX 결정(안)은 ‘영업흑자 달성시 지분을 매년 10%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코레일이 ‘철도 경쟁력 제고’ 및 ‘경영혁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동기부여를 확실히 하고 있으며, 그 효과 또한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되며 향후 코레일은 영업흑자 달성을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강도 높은 경영효율화 노력을 펼칠 것이며, 동시에 서비스 질 제고를 전사적으로 추진할 계획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발적 노력은 결국 국가재정 부담 완화 및 국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수서발 KTX 결정(안)은 경쟁체제로서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실질적인 확보방안이 마련된 것으로 철도경쟁체제 도입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코레일은 말했다.

네번째로 수서발 KTX 개통시 수요전이로 코레일 영업흑자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따라서 지분 확대는 사실상 실현불가능한 목표라는 주장에 대하여 코레일은 현재 ‘2015년 부채비율 50% 절감 및 영업흑자 달성’ 목표로 재무구조 획기적 개선을 위한 다양한 자구노력을 강도 높게 시행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2008년 이후 매년 1,000~1,500억원 영업적자를 줄여왔고, 특히 올해는 강력한 경영개선 노력으로 전년 대비 1,800억원의 적자를 줄이는 성과를 달성하여(△3,600억원 ⇒ △1,800억원) 이런 추세라면 당초 목표보다 1년 앞당긴 2014년에는 수지균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코레일은 말했다. 또한 사업타당성 분석 용역이 완료되면 정확한 발표가 있겠지만, 수서발 KTX 개통에 따른 수요전이로 코레일 수익이 감소하더라도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것이므로 공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며 [일각에서 우려하는 수서발 KTX에 대하여]

코레일은 일단 ‘수서발 KTX 개통시 수요전이는 있다’는 주장을 인정하고 있다. 첫 번째 문단에서는 KTX가 영업흑자 달성시 지분을 – 아마도 새로 설립될 수서고속철도 주식회사의 지분 – 매년 10% 확대할 수 있는데 동기부여에 대한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고 적고 있다. 현재 41%로 예정되어 있는 수서고속철도에 대한 코레일의 지분을 10% 올리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 효과가 그토록 크다면 수서고속철도의 기대수익은 매우 높다고 봐도 될 것 같다.

한데 두 번째 문장에서는 ‘수요전이의 효과’에 대한 조금 뉘앙스가 달라진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수서발 KTX 개통에 따른 수요전이로 .. 공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적혀 있다. 물론 공사는 거대조직이어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여길 수도 있는데, 앞서 수서고속철도의 지분 10%를 더 확보하는 것의 효과가 매우 크다고 호들갑을 떨던 것에 비해서는 톤이 매우 차분해졌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효과가 크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좀 복잡하긴 한데 정리를 해보자. 자타가 공인하듯이 영업 흑자가 예상되는 수서발 KTX 노선이 있다. 정부는 애초 이 노선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여 KTX와 경쟁체제를 구축할 예정이었으나 여론의 반발 등에 직면하여 코레일과 기타 정부부문이 참여하는 별도법인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코레일이 영업흑자를 달성하면 이 법인의 코레일 지분을 늘려주는, 효과는 매우 크지만 공사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희한한 당근을 제시하여 영업효율을 달성하게 하는, 즉 80% 노선이 겹치는 사업장을 가진 계열사와 경쟁하는 “경쟁체제”를 만든다는 것이다.

과문해서 그런지 이런 “경쟁체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경쟁이라 하면 소비자가 경쟁하는 두 공급자의 상품의 우월함을 비교하여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일 텐데 거의 동일한 서비스를 정부가 통제할 가격에 의해 제공되는 상품을 – 그것도 모회사와 자회사가 제공하는 – 가지고 “경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용산역에서 출발할지 수서역에서 출발할지가 가장 주된 차이일 뿐인 노선을 가지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국토부가 닭 모가지를 자르기 위해 뽑은 칼로 당근이나 자르자는 심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철도 민영화”에 관한 트윗 모음

# 사실 “철도 민영화”로 눙쳐지는 이 난국은 노태우 정권의 KTX 부채, 철도시설과 운영 단위의 분리, 이 과정에서의 정부의 부채 떠넘기기, 용산 사업 실패로 인한 코레일 부채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상황인데, 꼬여도 너무 꼬인 사안이다.

# 수서발 KTX노선은 민간이 제안했었고 – 두산으로 기억 – 국토부가 아마도 코레일 군기 잡기 차원에서 적극 검토하지 않았나 싶은데 이번에 전면 민자사업이 아닌 별도법인으로 가는 것은 공항공사처럼 향후 지분매각 시나리오 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여겨진다.

# ‘왜 굳이 수서발KTX를 별도법인으로 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그러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별도 법인화가 행정부의 공기업 길들이기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시설관리공단과 코레일의 분리, 전력분야에서 발전과 배송의 분리는 특히 노동통제에도 유리하니까.

# 공무원의 관성도 있는 것 같다. 여태 경쟁시켜서 서비스의 질을 재고하겠다는 주장을 해왔는데 갑자기 없던 일로 해버리면 과거 주장이 틀린 꼴이 될 우려도 있으니만큼 민영화에 대한 나쁜 여론과 원점 회귀의 중간, 향후 지분매각까지 고려한 각본 채택?

# 수서발KTX 별도 법인을 만들면 분명 가격이 낮을 것이다. 흑자노선인데다 독립채산제고 코레일의 약점인 부채에서도 자유로울 테니 말이다. 통합채산제인 코레일의 평균요금에 비해서도 경쟁력 있을 것이고 이것이 국토부의 이데올로기 공세의 무기가 될 것이다.

인프라스트럭처에 관해 존재했던 “사회적 합의”

최근 서울시의 지하철9호선 민간투자사업이 “자금재조달”을 통해 금융비용을 크게 낮추고 요금도 현행을 유지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변경 실시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몇 달 전 민간사업자가 “기습적으로” 지하철 요금을 인상하려던 계획을 서울시가 저지하면서 빚어졌던 갈등이 일단락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과정에서 “시민의 발”을 민간사업자의 횡포로부터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정치적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민영화”라는 키워드는 오늘날 진보-보수 논쟁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로 등장하였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계속 진행되어 온 국유기업의 민간매각, 그리고 전통적으로 국가가 담당하였던 것으로 알려진 인프라스트럭처의 – 또는 사회간접자본 – 민영화, 즉 민간투자사업은 이전 세대가 겪어왔던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을 안겨주면서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앞서 예로 든 지하철을 둘러싼 市정부와 민간사업자의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통념과 달리 민간투자사업이 문명세계에 있어 전혀 새로운 풍경인 것은 아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아직 국가의 정체성이나 공권력이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오히려 민간이 오늘날 “인프라스트럭처”라 말하는 대부분의 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인프라스트럭처”라 칭할만한 정도의 시설이 등장하는 시기와 장소는 아무래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싹을 틔우는 중세 이후의 시기의 선진국, 예를 들면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다.

대량생산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영국의 자본가들은 생산지, 공장, 그리고 시장을 잇는 데 필요한 운하나 도로를 직접 건설하거나 국가가 건설하여줄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미 이 당시에 도로와 같은 인프라스트럭처가 민간 사업자에 의해 건설되고 요금을 징수하는 방식이 도입된다. 영국에는 이미 13세기 초반부터 포도세(鋪道稅, Pavage) 제도가 있었는데 민간이 도로를 건설하여도 통행자들에게 요금을 징수할 수 있었다.

이러한 민간도로가 본격화된 것은 17세기부터다. 당시엔 “유료도로 위탁업자(turnpike trusts)”가 국가의 양허권을 얻어 자신이 만든 도로에 차단기와 담을 설치하고 지나다니는 이들에게 통행료를 받았다. 오늘 날의 도로 민간투자사업의 사업방식과 별로 다르지 않다. 요금수준은 도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준으로 한정했지만 때로는 폭리도 있었던 모양으로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두 배 이상의 요금을 받고 있다”고 꾸짖을 정도다.

이러한 민간도로는 이후 18세기 들어 국가가 직접 간선도로를 짓기 시작하고 레베카 폭동 등 요금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면서 – 다만 이 폭동은 자연재해와 학정 등 일반적으로 열악한 인민의 삶에 대한 저항이었다 – 19세기 이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특이한 것은 민간도로의 쇠퇴에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역할도 컸다는 점이다. 이들이 민간도로의 통행료를 자유무역의 걸림돌, 즉 관세로 보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여겨지는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민간의 사업권이 실은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에게는 불편한 풍경이었던 셈이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여 “공공시설(public works)”은 국가에 의해 관장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영국정부에게 이미 프랑스와 중국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훈계하기도 한다. 아담 스미스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상업 일반의 촉진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도로, 철도, 운하 등이 없이 상업 일반의 발전은 상상할 수 없었다. 오늘 날에는 이와 더불어 통신, 발전 등의 인프라스트럭처가 제대로 갖춰져야 상업 일반의 발전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인프라스트럭처들이 민영화 등을 통해 시장가격化 된다면 그것은 과거 자유무역을 가로막았던 관세처럼 상업, 나아가 산업 일반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기에 고전경제학은 인프라스트럭처의 국가 관리를 지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인프라스트럭처의 민영화가 전례 없이 진행된 요즘에도 국가는 여전히 산업과 가계의 인프라스트럭처 소비에 대해 차별적인 정책을 취하며 산업의 발전을 돕는다. 전기, 철도 등 주요 시설의 이용요금은 민영화 여부와 상관없이 가계보다 산업이 더 적은 비용을 지불한다. 이쯤 되면 결국 인프라스트럭처를 둘러싼 논의에 관리주체로 인한 정당성 논의도 필요하지만 그 소비의 차별에 대한 정당성 논의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업에 대한 특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산업이 그만큼 세수에 책임을 진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초국적으로 활동하며 특정국에서 누리는 이익에 상응하는 대가를 회피한다는 비판도 높다. 또는 세수에 있어서도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2013년 1~6월까지 우리나라의 법인세 실적은 25.6조원인데 소득세 22.8조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1 사실상 가계 부담인 부가세 27.9조원을 감안하면 그 비중은 더 낮아진다.

하버드의 경제학자에서 의원으로 변신한 엘리쟈베스 워렌은 저 유명한 가정집에서의 연설에서 기업이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하는 배경에는 그들이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진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록 그 합의는 서명이 된 합의서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그것을 전제로 경제활동을 하였거나 또는 자신의 사상을 펼쳤을 것이다. 지금은 일상적으로 무시되고 있는 그 합의.

인도경제의 관전 포인트 하나

그러나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권인 인도는 어느 나라보다 위험하다. 지난 2년 동안의 경제 관련 뉴스는 실망스러웠는데 성장률은 4~5%로 떨어졌다. 이는 2003~2008년의 호황기의 반절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소비자 가격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10%로 고정되어 있다. [중략] 외국자본에 대한 인도의 의존도 역시 높은 상태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는 2012년 말 GDP의 7% 정도 까지 치솟았다. 금년엔 4~5%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말이다.[Why India is particularly vulnerable to the turbulence rattling emerging markets]

서양의 주요한 경제지에는 최근에 연일 인도 관련 소식이 주요기사로 올라오고 있다. 이들 언론은 대체적으로 이 나라의 경제 위기에 대한 단기적인 원인을 미국 경제지표의 호전, 이에 따른 美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기조 가능성, 그리고 연쇄적인 서구자본의 인도에서의 자금회수를 들고 있다. 이로 인해 인도 및 주변국들의 통화가 급락하는 등의 즉각적이고 심각한 부작용이 언론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유동성이 풍부한 통화로 신흥국에 투자하는 소위 “캐리트레이드”의 주된 통화는 한동안 일본의 엔貨였다. 미국이 신용위기에 직면하여 연준이 일본 당국의 해법과 비슷한 저금리 기조와 통화팽창으로 대응하자 美달러가 새로운 캐리트레이드의 통화가 되었다. 결국 신용위기의 발단이었던 풍부한 유동성에 따른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 사태가 지구적인 범위에서 확대된 셈이고 인도가 그 주요 대상국이었다.

값싼 통화가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투자는 기발하다고 할 것도 없는 투자기법인데 역사적으로 볼 때 주기적으로 그 위험이 파괴적인 규모로 반복되고 있음에도 또한 투자자는 주기적으로 그 위험을 간과하며 그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특히 인도의 경우에는 2008년 이후 성장세가 정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이 더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빚의 상환재원이 빚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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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ealogic Project Finance Review(1H 2012)

이런 인도의 상황과 관련하여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위의 표는 최근 5년간 전 세계 민간투자사업(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의 지역별 추이다. PPP는 정부에서 필요한 인프라시설을 건설할 때 민간의 자금을 빌리는 방식으로 통상 경제성장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지만 재정이 부족할 때 쓰는 방식이다. 즉, PPP방식으로 투자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단기적으로 재정도 건전해지고 경제성장률도 올라간다.

표를 보면 인도의 PPP 활용도는 워낙 압도적이어서 Dealogic이 아시아와 별개로 떼놓았을 정도다. 경제성장 여력이 있던 2008년까지 미미하던 인도의 PPP투자는 2011년에 이르러서는 압도적으로 증가한다. 역시 경제성장률을 위해 인프라 투자를 주도했던 중국이 재정을 활용한 것과 달리 인도는 민간자본을 이용했고, 이는 결국 미래의 빚으로 이연된다는 점에서 인도의 경제상황은 생각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교도소에 사람들이 넘쳐흐르고 있다

이번 주, 버락 오바마 정부의 법무부 장관인 에릭 홀더는 미국에 “쓸데없이 많은 사람이 교도소에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상황을 부드럽게 설명한 것이다. 이 자유의 땅에는 전 세계 인구의 5%가 살고 있는데, 수감자는 25%다. 모두 합쳐 220만 명의 미국인들이 쇠창살 뒤에서 썩고 있다. : 성인 107명 당 1명 꼴. 경범은 엄하게 다뤄지고 있고, 중범은 가혹하게 다뤄지고 있다. 비용은 증가하고 있는데 1년에 800억 달러, 수감자 당 3만5천불 꼴이다. [중략] 몇 십 년간 미국의 정치인들은 더 강화된 판결 법령을 통한 대량투옥이 유권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0년대 이후의 극적인 범죄율 감소가 이러한 가정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중략] 감옥을 통한 효용은 줄어들고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더 많은 사람들을 가둬놓는 것이 이치에 닿던 지점을 지났다. 홀더 씨가 말하듯이 이 시스템은 “비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다”.[One nation, behind bars]

감옥은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대표적인 공공서비스 중 하나다. 감옥의 일차적인 목적은 범죄자들을 교정시키는 것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그래서 감옥은 교정시설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차적인 목적은 범죄자들을 격리시킴으로써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죄를 지은 이의 교화와 사회를 안전하게 하는 것, 이보다 더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는 서비스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문제는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수감자의 25%에 해당할 만큼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그야말로 “썩고” 있다는 것은, 그들을 썩히는데 드는 비용, 그리고 그들이 밖에서 사회활동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를 한꺼번에 잃는 셈인데, 이를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한다면 정말 비효율적인 상황인 것이다. 물론 개인으로서도 매우 불행한 상황이고 말이다.

기사는 미국의 형법 시스템이 너무 가혹하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수감자가 마약 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그 비효율성의 원인으로 들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마약의 합법화가 – 물론 약한 종류의 마약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 상황의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까지 조언하고 있다. 최근 우루과이가 약한 중독성의 마약과 강한 중독성의 마약 관리를 분리하기 위해 대마초를 합법화하였듯이 말이다.

한편, 기사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수감자가 이렇게 많아진 것의 또 다른 배경에는 감옥의 민영화도 한 몫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감옥의 건설과 운영을 민간의 손에 넘겼으며 미국교정회사와 웨클허트 교정회사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들이 수용하고 있는 수감자는 미국 전체 수감자의 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들 회사에게 있어 수감자는 인간이 아니라 상품이다.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러브스토리”에 보면 교정회사와 결탁한 사법부가 어떻게 하찮은 사건들에 대해 엄격한 금고형을 내리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들 교정회사들은 다른 거대산업들이 그렇듯이 사법제도의 강화를 위해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했을 것이고, 때마침 정치권의 보수화 현상과 맞물려 이러한 추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이들이 더 가혹한 기준 하에 감옥에 머물러야 했다.

요컨대, 홀더 장관의 선언은 단순히 미국정부의 과잉(?)공급되고 있는 특정 공공서비스에 대한 반성을 넘어 문명 그 자체의 한 축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선언으로 간주되었으면 한다. 격리를 통해 사회 안정을 도모하는 체제에서 과연 어떤 행동을 범죄라 규정할 수 있으며 또 얼마만큼의 벌을 내려야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볼 수 있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기준은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이다.

박원순 시장의 경전철 공약 단상

박원순 씨가 경전철 공약을 발표한 것은 “아무 것도 안 한 시장“으로 남아서는 재선의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고, 이제 무언가는 개발공약을 발표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개발주의”는 여전히 유권자가 원하는 공약이다. 물론 하층민일수록 그 떡고물이 적겠지만 그래도 뭔가가 떨어질 것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압축성장의 역사에서 진행되어온 숱한 “개발주의”가 증명한 사실이다. 박원순 시장은 그런 상식(?)을 전복시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거나 본인의 철학이 아직 부족했을 것이다. 어떤 개발공약을 내놓을 것인가? 재개발/재건축/뉴타운 등의 공약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공약이고, 도로 신설 공약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공약이다. 남은 것은 이해관계자의 반대가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교통, 특히 지하로 들어가 공공교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의 GTX처럼 백지에 새로 선을 긋는 것은 일정상 무리가 많이 가는 대안이다. 결국 동북선, 신림선 등 이미 사업시행자가 지정되어 있어 시간상으로 빨리 진행할 수 있는 민간투자사업과 이를 연결한 미래노선을 엮은 경전철 계획이 그나마 무난하게 내놓을 만한 공약이다. 재임기간이 정해져 있는 선출직 공무원은 그 정치적 신념을 떠나 임기 안에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개발공약에 집착하게 마련인데, 예산의 제약을 덜 받고 후대에 그 책임을 넘길 수 있는 민간투자사업은 가장 매력적인 개발공약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MB도 처음에는 대운하 사업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물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수자원공사와 국고를 털어 땅을 파냈지만 말이다. 오세훈은 세빛둥둥섬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는 한편, 광화문 광장과 같은 기념비적 사업을 위해 시의 곳간을 동시에 거덜 냈다.

민간투자사업이 포함된 박원순의 개발공약을 바라보는 시각은 좌우 양진영에서도 그리 곱진 않다. 조선일보중앙일보에서 딱히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두고 보겠다”는 투의 기사가 눈에 띈다. 미디어스는 노동당 간부의 입장을 실어 반대의 논리를 펴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은 경전철 계획이 제2의 “우면산 터널”이 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주장에서 누락하고 있는 것은 경전철은 우면산 터널과 같은 최소운영수입보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디어스의 보도는 최소운영수입보장, 나아가 최신의 민간투자제도인 “비용보전” 방식까지 나열하고 있지만 정리되지 않은 개념을 장황하게 적용하고 있다.(이에 대해선 시간 되면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겠다.) 이번 계획에 대해 가장 선명하게 반대할 이들은 아무래도 노동당 등의 좌파일 것이다. 우파나 중도파들은 유쾌하지 않은 시선으로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이번 공약이 현실정치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한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의 고육지책이란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이 뭔가 한 것으로 인정받기에는 유권자가 너무 약삭빠르다는 사실을 짧은 재임기간 동안의 현실정치를 통해 깨달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그의 정치적 실험이 박원순 시장을 좋아하지 않는 유권자들에게 먹혀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이 나라가 어느 샌가 경제적 실질과 상관없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물들어 한쪽에서 하는 일은 무턱대고 반대하는 “귀 막고 떠드는 이들”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FTA와 MB의 FTA는 다르다”는 노무현 지지자들, 오세훈의 천문학적인 재정낭비는 모르쇠한 채 무상급식 예산에는 게거품을 물며 반대하는 이들 말이다. 그리고 이런 극단주의가 일반유권자들에게도 상당히 많이 퍼져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유화의 추억

농부들은 최저 가격을 보장받았다. 석탄, 전기, 가스, 수도가 국유화되었다. 운송 위원회가 설립되어 이미 국유화된 철도를 4,000개의 트럭사업체를 포함한 도로교통 서비스와 연계했다. 노동당 좌파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 논의가 전혀 없다는 데 분개했다. [중략] 이제 대규모 제조업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몫이 되었다. [중략] 국유화 – 애틀리는 ‘사회주의화’라는 용어를 더 선호했다 – 는 비용도 많이 들고 까다로운 사업이었다. 전쟁 동안 소홀한 경영과 투자 부족으로 부실해진 기업을 매입하려면 주식 보유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해야 했다. 철도와 함께 도시의 쓰레기 처리장, 사우스햄튼과 헐 지역의 대규모 항구들, 허물어질 듯한 기차역 주변의 호텔들과 그 옛날 제국주의 시대부터 있었던 토머스 쿡 같은 여행사들도 모두 국유화되었다. [중략] 개혁 프로그램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세금 인상은 주로 부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상위 10만 명의 실질소득은 1938년과 1949년 사이에 65퍼센트 하락했고, 상위 50만 명의 실질소득도 3분의 1이상 하락했다. 부자들은 살아생전에 1파운드당 10펜스만을 남겨놓고 모두 빼앗아가는 높은 세율에 시달렸고, 죽어서는 그 후손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부동산과 소장 예술품을 매각해야 했다. 중간계급 역시 타격을 입었다. 세금을 공제한 이들의 실질소득은 전후 초기 몇 년간 7퍼센트 감소했지만, 노동계급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9퍼센트 상승했다.[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2 : 영국의 세기, 브라이언 모이나한 지금, 김상수 옮김, 북폴리오, 2006년, pp212~213]

1979년 집권한 “鐵의 여인” 마가렛 대처가 “민영화(Privatization)”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민간에게 그 소유권을 넘기기 전까지 상당기간 지속되었던 영국의 주요산업 국유화가 처음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라 옮겨 적어보았다. 주요하게는 사회기반시설을 위주로 하여 국유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대한 재원은 높은 비율의 누진세 등을 통해 충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5년, 영국에서 치러진 선거는 “전쟁영웅” 조지 윈스턴 처칠과 “콧수염과 매너 모두 깔끔한” 온건한 사회주의자 클레멘트 애틀리와의 싸움이었다. 처칠은 토지, 대형건물, 은행 등을 공유화해야 한다는 노동당의 결의를 보고 볼셰비즘을 떠올리며 영국에 게슈타포가 등장할 것이라 경고하는 등 노동당의 공포정치를 주장했지만, 그의 희망사항과 달리 선거결과는 애틀리의 노동당의 압승이었다.

이러한 선거결과는 처칠의 정세인식과 당시의 사회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전쟁과 이로 인한 가난에 지친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의료 서비스와 교육 등 사회개혁을 요구하고 있었고, 젊은 보수당 의원들조차 이러한 분위기에 동조했다. 노동당의 선동가 어나이어린 베번이 관철한 국민의료보험(NHS)이 이후 영국인의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이런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혁명을 선언한다면 기껏해야 “기차 시간표를 변경하는” 정도일 것이란 평가를 받던 애틀리가 이런 급진적인 조치를 취한 배경에는, 또한 영국이 전쟁을 치르면서 입은 처참한 피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기간 동안 영국에서는 주택 400만 채가 손상을 입었고 50만 채가 파괴되었다. 전쟁수행비용은 280조 파운드였다. 전체 금 보유량의 3분의 2와 40조 파운드의 해외자산이 사라졌다.

1917년 볼셰비키가 겨울궁전을 접수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한 사건은, 후에 에이젠슈타인이 그의 영화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처럼 묘사한 것과 달리 사상자도 그리 많지 않은 싱거운 접수였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은 이미 무정부상태에 가깝고 권력의 핵이었던 겨울궁전은 공백상태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애틀리 내각 역시 어쩌면 영국의 이런 공백상태를 접수한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세계 최강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진행되었던 이 사상초유의 실험이 이후 체제 발전에 미친 영향은 심대한 것이었다. 자본주의 시민들은 사상 처음 국유화를 통한 서비스의 공급을 경험하였고, 이 경험은 이후 경제정책 입안과 경제이론의 논쟁에 있어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 대처가 민영화란 단어를 유행시키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국유화의 추억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