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민영화

1980~90년대 동구권에서의 “대중적 사유화”의 경험에 관해

슬로베니아에서 색스는 주식의 자유로운 분배를 통한 대중적 사유화를 옹호했고, 이는 파레토에서 도출된 후생경제학 제2 공리를 실현하는 듯했다. 파레토의 사상에 따르면, 대중적 사휴화는 소유를 전 사회에 재분배하므로 지극히 공정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시작부터 부를 재분배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경쟁적 시장이 나타나서 공정하고도 최적인 결과를 산출하게 되어 있다. [중략] 일부 헝가리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종업원들과 종종 경영자들까지 포함하여 ‘자생적인 사유화’를 할 것을 옹호했다. 이것이 직접적인 국가의 개입과 사회적 소유를 국가가 다시 또 통제하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략] 1992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들은(테아 페트린, 알레시 바흐치치 : 역자주) 주식을 모든 이에게 주어버린 것이 소유권을 과도하게 분산시켜 실질적 소유자를 창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그 대신 실질적 소유자를 빠르게 창출할 수 있는 종업원 소유제와 여러 형태의 자생적인 사유화를 포함하는 탈중앙집중화된 모델을 요구한다.[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조하나 보크만 지음, 홍기빈 옮김, 글항아리, 2015년, pp374~375]

1990년 소비에트와 동구 블록이 무너지고(!) 나서 이들 나라는 서구의 경제학자들에게 그들의 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 이들중 하나가 바로 인용문에 언급된 제프리 색스다.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색스가 꺼낸 카드 중 하나가 바로 위에 언급된 “대중적 사유화”다. 이 카드는 오늘날 우리가 “민영화(privatization)”이란 표현으로 익숙한 신자유주의 경제의 대표적인 정책수단이다. 1979년 다우닝가 10번지를 차지하게 된 마가렛 쌔처가 “영국병”의 치유를 위해 국유기업을 대중에게 팔겠다고 공언했고 그때 쓴 표현이 바로 민영화, 다른 말로 “대중적 사유화”다.

“나는 민영화를 자본소유의 민주주의라는 내 야망을 달성하는 데 사용하고자 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집과 주식을 소유하고, 또 사회에 이해관계를 가진 그런 국가를 말한다. 미래의 세대에게 넘겨줄 부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시장對국가(원제 The Commanding Heights), Daniel Yergin and Joseph Stanislaw, 주명건 譯, 세종연구원, 1999, p187]

쌔처는 당시 이러한 기조 하에 통신회사, 항공회사, 히드로 공항 등 주요 국유기업을 국민주 형식으로 매각하였다. 이러한 민영화 정책의 이면에는 이전 노동당 정부의 흔적 지우기, 노조 무력화 등이 있었지만, 어쨌든 쌔처 자신은 사유화를 통해 “자본소유의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념적 확신도 있었던 듯하다. 즉 ‘국유’라는 실체 없는 소유가 아닌 ‘사유’라는 실체 있는 소유를 통해 대중은 ‘자기책임’이라는 규율과 사회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이후 미국이나 기타 서구권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이들 집권층은 이른바 “소유권 사회”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였다.

색스가 동구권에 이식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아이디어는 어떤 면에서는 국가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시장사회주의적 경로를 택했던 동구권의 사회적 소유와도 닮았다. 즉 위계적 사회주의가 아닌 자주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동구의 자유주의자들의 아이디어도 “대중적 사유화”를 포함한 집중화되지 않은 다양한 사회적 소유였던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일부 동유럽 경제학자들은 색스의 대중적 사유화 아이디어를 지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시장사회주의가 국가사회주의보다 발달한 형태고 대중적 사유화도 그 경로상의 한 수단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리라 여겨진다.

이에 대한 사후 결과는 명확하다. 일단 당시 소비에트 및 동구권 엘리트들은 자국의 시장사회주의 성향의 경제학자, 심지어는 색스의 의견도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자본은 舊공산당 관료와 그들의 친구들에게 집중되는 등 국가사회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에 따라 통치형태는 형식적인 대의제의 외피를 쓰고 있는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공고화되었다. 그 국가들에서 전 단계로써 쌔처가 실시한 국민주 매각의 형태가 실제로 많이 시행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결국 그 정책이 “실질적 소유자를 창출하지 못 한다”는 비판은 유요한 것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엘리트들은 실질적 소유자가 되었다.

이러한 과도한 소유권 분산의 폐해는 우리도 경험한 바 있다. 1988년 4월 정부는 포항제철의 정부 지분 중 일부를 일반인에게 팔았다. 이듬해인 1989년에는 역시 한국전력의 정부 지분을 국민주 형태로 매각하였다. 하지만 과도한 주식매각은 오히려 해당 기업의 주가를 떨어트렸고 국민주를 산 이들은 주식을 팔아치웠고 이는 다시 소수의 투자자에 집중되었다. 당시의 작은 자본시장 규모를 고려하지 못한 기술적 한계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해관계와 불특정다수의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한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실체가 있는 소유도 중요하거니와 상호 이해관계 역시 중요하다는 교훈을 안겨준 사례랄 수 있다.

코레일의 공항철도 지분매각 계획에 관한 관전 포인트 하나

코레일이 경영개선을 위한 1조8000억원대 공항철도 지분매각에 본격 착수했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연내 매각을 통해 지분매입 5년만에 6000억원대 차익실현을 기대하고 있다. 코레일은 지난 9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서울역에서 인천공항을 오가는 공항철도 지분 88.8% 전량을 매각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13일 밝혔다. 코레일은 이사회에서 이달 중 매각주관사를 선정해 매각가치를 산정하기로 의결했다. 이 작업이 끝나면 공항철도는 7월까지 출자자 변경 승인 신청서를 국토부에 제출할 계획이다.[코레일, ‘1.8조’ 공항철도 매각 이사회 의결]

코레일이 “공항철도 지분매각”을 결의했다고 한다. 즉, 공항철도 운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민간투자사업을 영위하는 공항철도주식회사(이하 ‘회사’)의 코레일 지분 88.8%를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회사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을 근거로 하여 민간자본을 투입하여 철도를 건설하고 운영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다. 그러나 2007년 3월 23일 개통한 이 노선은 이후 당초 예측수요의 6% 대의 참담한 실적을 기록하며 코레일이 2009년 9월 민간주주의 지분을 인수하여 “준공영화”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기업이 되었던 회사의 지분을 코레일이 다시 팔려 하는 상황이다. 다시 시장에 내놓는 것이니 “재민영화”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에 대해 벌써 트위터 등 인터넷에서는 현 정부를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는 노암 촘스키의 명언이 다시 인용되기도 한다.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3628억원 매출과 1836억원 영업이익“을 시현한 우량기업이니 더더욱 비판이 거세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알짜배기 회사를 민간에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레일이 지분을 매각하려는 표면상의 배경은 박근혜 정부가 독려하고 있는 “비정상화의 정상화”, “공기업 경영정상화”다. 하지만 코레일 계열사 중 흑자를 내고 있는 회사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경영정상화”인지는 의문이다. 다만 코레일은 당초 1조2천억 원에 매입했던 지분을 1조8천억 원에 매각할 계획이라 하니 6천억 원의 매각차익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지분매각의 원인은 다른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회사 이익의 상당부분이 국토부에서 지급하는 “MRG보전분”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MRG”는 최소운영수입보장(Minimum Revenue Guarantee)의 약자다. 우리나라에서 민간투자사업을 처음 도입했을 당시 정부는 미적거리고 있는 민간투자자를 독려하기 위해 실제 매출이 그들이 제안하는 예상매출의 일정비율에 미달할 경우 그 차액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 제도 덕분에 초기에 인천공항고속도로, 인천공항철도 등에 민간자본이 들어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MRG를 보전하겠다는 약속이 재앙이 되었다. 특히 예상수요의 6%에 불과한 공항철도의 경우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MRG 보전 때문에 천문학적인 우발채무가 발생하기 시작한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야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최소운영수입보장 제도를 폐지했다. 그리고 기존에 MRG를 보전해주고 있던 사업에 대해서는 사업방식을 예상매출 전체에 대해서가 아닌 실제운영비에 대해서만 자금을 보전해주는 표준비용보전(CC : Cost Compensation)방식으로 바꿨다. 더불어 초저금리 상황에서 기존의 대출 금리도 대폭 낮추도록 민간에게 요구했다. 사실 채권으로 보자면 일종의 “헤어컷”인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의 사업방식 전환은 금융위기 이후 재정여력이 부족한 지자체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었다. 2013년 부산과 경남도가 MRG 보전 주체였던 거가대교 민간투자사업이 최초로 MRG를 보전해줘야 하는 사업방식에서 CC방식으로 전환됐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안정적인 인프라 사업에 투자하고자 하는 자금수요를 활용한 것이다. 서울시 역시 MRG를 보전해줘야 하는 지하철9호선을 CC방식으로 전환했다. MRG 보전으로 인한 우발채무를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점에선 정부에 유리한 방식이다.

이에 국토부는 신규노선 확보 등으로 기존의 참담한 운행실적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상당액의 MRG 보전금을 지불해야 하는 공항철도 사업을 CC방식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인 코레일의 지분을 함께 매각하려는 계획은 시장에 매물로 내놓아 유효경쟁을 유발함으로써 매각차익 극대화와 MRG보전 최소화라는 효과를 높이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시가 지하철9호선 재구조화에서 수익률을 8.9%에서 4.8%로 낮춘 사례가 좋은 벤치마킹 사례라고 여기고 있다.

20세기 들어 체제와 상관없이 대체로 공공이 공급하던 사회기반시설은 1980년대 이후 급격히 민영화되고 있다. 이에 이 방식이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좌파/진보”를 자처하고 있는 이들은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에 회의적이다. 공항철도 건도 표면적으로는 “재민영화”의 길을 걸으려 하는 만큼 진보가 불만을 가질 사안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정건전성에는 분명 도움이 될 사안이다. 비록 기존 대주나 시장은 불만이 많겠지만 말이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정상적인 대책인가?

국내 최대 공공발주자인 LH의 경우 공동사업과 대행개발, 리츠 활용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올해는 최대 5조원 규모의 민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에 발맞춰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령 개정을 통해 용지조성 공사로 한정했던 민간의 대행사업 범위를 공장, 주거, 상업시설 등 건축사업으로 확대했다.[건설투자는 줄이고 민자 유치에만 혈안, 민간에 리스크 떠넘기는 공기업]

한전 발전자회사들이 신규 발전소 건설 시 재정을 자체충당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해 건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SPC를 통한 신규 발전소 건설은 발전자회사를 중심으로 사업에 관심있는 동반사업자, 재무적투자자(FI) 등을 유치해 일정 비율의 지분 참여로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이다.[한전 발전자회사, SPC 통한 발전소 건설 검토]

여의도 면적의 84%에 달하는 시가 7조원 이상의 공공기관 본사 부지가 시장에 매물로 쏟아지게 된다. [중략] 정부는 지난해 말 295개 공공기관에 내린 부채 감축계획 운용 지침에서 ‘지방 이전 대상 기관은 부채 감축 계획에 본사 부지 매각 계획 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 본사 부지 매각을 기정사실화했다.[공공기관 정상화위해 본사부지 매각 추진, 54곳-7조원어치 매물 쏟아진다]

자유경제원(원장 전원책)은 4일 오후 2시 30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8층에서 ‘공기업 개혁,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개최한다.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와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이 ‘공기업 개혁 민영화가 대안이다’와 ‘민영화 논리 및 원리’란 주제로 각각 발표한 후 각계 전문가 4인이 참여한 가운데 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자유경제원, 오늘 공기업 개혁 관련 정책세미나]

위 소식들이 모두 2014년 2월 4일자 건설경제신문의 기사들이다. 모두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관련한 기사들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난데없는 “정상화”란 단어를 “대박”단어로 만든 현 정부가 가장 먼저 “정상화”시키겠다는 대상이 바로 공공기관인 것이다. 사견으로 공공기관의 “정상화”라 함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선순위 사업이 바뀌는 작태가 아닌 설립취지에 맞는 고유목적의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 정부는 현재까지는 부채감축이 곧 정상화라 여기는 듯 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구조조정과 부채감축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방안은 사업구조조정, 자산매각, 경영효율화, 수익증대 등이다. 그리고 사업구조조정의 구체적인 방식은 민간자본 유치나 사업시기 조정 등이다. 결국 공공기관 존립의 근거인 사업시행과 이를 통한 복리증진, 경제 활성화는 생존을 위해 뒷전에 놓겠다는 것이다. 가만. 생존이라고? 부채비율이 높다고 당장의 생존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재 푸닥거리의 배경은 무엇일까? 위에서 하라니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공기관 정상화” 로드맵은 다소 폭력적으로 시작됐는데, 바로 코레일의 자회사 설립 결정과 이에 따른 파업이 그것이다. 현재 각 공공기관에게 들이대고 있는 잣대가 바로 코레일에게 들이댔던 잣대다. ‘코레일이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가 누적되고 부채가 많으니 경쟁체제를 만들어 경영효율을 꾀하라’는 논리가 자회사 설립의 주된 논리였다. 당시 하도 “민영화”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어 결국 “공공 자회사” 설립으로 한발 물러서긴 했으나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 “비정상”의 주범이라는 인식은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비정상”의 원인이 무리한 고유목적 사업수행이나 필요이상의 유휴인력 운용에 따른 것일 수도 있으나, 이미 예전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사업추진에 따른 희생양이 된 사례도 무시할 수 없다. 4대강 정비 사업의 희생양 수자원공사가 그렇고 KTX 사업의 희생양 철도시설관리공단/코레일이 그렇다. 따라서 현 정부가 정말 공공기관을 정상화시키고 싶을 요량이면 공공기관의 자원을 주머니 쌈짓돈으로 생각하는 관행, 지금도 여전한 낙하산 인사의 관행을 고쳐야 그 초석이 다져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러한 반성 없이 오직 부채비율만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여 진지한 고민이 없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마저도 미시적인 조정이 없었던 것이 SPC를 통한 발전소 건설 방안을 내놓은 발전자회사들은 2012년 현재 부채비율이 100% 미만인 우량회사들이다. 그럼에도 무조건 부채를 총량적으로 줄이라는 단기목표에 급조된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거기에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이 로드맵을 점검하는 주체로 “反노조” 성향의 노무법인에 용역을 준 혐의가 있어 그 진정성마저 의심스럽다.

공기업을 진정 정상화하고자 한다면 아직 고유목적 상 사회적 효용이 중시되는 공기업은 그 공공성을 강화하거나, 또 시장성이 충분히 검증되어 홀로서기가 가능한 공기업이라면 시장화 내지는 민영화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다양한 공기업의 상황에 다양하고 구체적인 전략을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고민하는 “정상화” 로드맵에 애초 어떠한 열린 논의도 없었다. 무조건 부채비율만 줄이라는 것이다. 노조도 시민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제3자일뿐이다. 뭔가 비정상적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철도

“朴, 대처, 레이건 롤모델로 ‘집단행동’ 고리 끊는다.”

2013년 12월 17일자 국민일보 1면 헤드라인이다.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의 소유자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7천 명이 넘는 코레일 직원의 직위를 해제했지만, 그 배후(?)에는 朴心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알리는 기사다. 때마침 오늘 경찰은 철도노조 사무실의 압수수색을 벌였다. 기사는 이러한 일련의 모습을 두고 “이익집단에 밀리지 않는 새로운 리더십 구축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도 새롭지 않거니와 자칫 대선 때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던 공약의 파기로도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수서발KTX의 운영을 담당할 신설법인(이하 “수서고속철도”)의 주주가 코레일과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이 될 예정이므로 민영화가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건호 씨는 이에 대해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면 민영화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의 말이 맞을까?

사견으로 둘 다 반절은 맞고 반절은 틀렸다. 민영화의 본래 표현인 privatization이다. 피터 드러커가 그의 저서에서 언급한 이 표현을 정치시장에 꺼내든 이는 국민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롤모델로 삼으라는 마가렛 대처다. 그는 국유기업이 주를 이루던 영국의 상황을 격파하기로 맘을 먹었고 꺼내든 카드는 국유기업의 탈국유화(denationalization)이었다. 그 상황을 표현할 때 선택한 단어가 바로 민영화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단계의 민영화는 소유권 이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 점에서는 좌파 일부진영에서 주장하는 사유화(私有化)가 적절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후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되 운영을 자본이 수행하는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즉 민간투자사업이 성행하면서 민영화의 범위는 광범위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privatization은 공공재에 대한 다양한 역할 이전을 의미하므로 사화(私化)가 적절한 표현이다.1

한편 민영화의 전 단계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이 시장화(市場化, marketization)다. 굳이 소유나 운영을 민간에게 이전하지 않더라도 정부기능에 시장논리를 부여하는 작업이 가능한데 대표적으로 코레일과 같은 정부조직의 공사화(公社化)다. 때문에 코레일은 이미 시장화된 상태고 새로 설립될 수서고속철도는 노선을 분할한 새로운 시장화다. 따라서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맞고 오건호 씨의 주장은 틀렸다.

한편 정부는 수서고속철도의 주주구성을 정관에 못 박을 것이기에 민영화 의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관은 바꾸면 그만이다. 코레일이 대주주라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하지만 현재의 행태를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다. 근본적으로 철도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법인 철도산업기본법은 철도의 민간운영 원칙 조항이 있다. 진정 민영화 의지가 없다면 그 법을 바꾸거나 수서고속철도의 공공출자를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면 된다.

정리하자면 현 단계는 오건호 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서고속철도의 민영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민영화의 싹을 자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분할하여 설립한 수서고속철도는 흑자가 예상되는 법인이고 자산이 크지 않아 코레일에 귀속되는 것보다 더 민간매각의 가능성이 높은 법인이다. 결국 이 극한대립의 싹은 철도청을 시장화하여 민영화의 로드맵을 제시한 이전 정부에서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수서고속철도 설립을 통해 “경쟁체제”를 구축하여 코레일의 “경영개선”을 이루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노선의 80%가 겹치는 유사상품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과연 “경쟁체제”인지는 지난 글에서 살펴본 바 있고, 이 글에선 “경영개선”을 해야 하는 이유인 코레일의 만성적인 적자의 원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나는 공공성의 확보 명분이나 부채 떠넘기기 등의 “정부의 실패”가 주원인이라 생각한다.

2012년 11월 29일 한국기업평가가 내놓은 ‘제100회 한국철도공사채’에 대한 신용평가 레포트를 살펴보기로 하자. 레포트는 코레일의 취약한 재무구조의 첫 번째 원인으로 “영위사업의 높은 공익성으로 인해 원가에 상응하는 운임 책정이 어려운 특성(2p)”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 PSO(Public Service Obligation)이라는 이름으로 보조금을 주고 있으나 그 금액은 적자를 보전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오병윤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철도공사가 계산한 PSO 사업의 비용은 약 5천억 원에 달한다. 국토부가 다시 정산한 액수는 약 4천억 원이다. 하지만 실제 지급액은 약 3천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토부 정산액을 기준으로 해도 철도공사는 받아야 할 PSO 보조금 가운데 25%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PSO를 통한 공공성 실현의 방해물은 민영화보다는 오히려 국토부라고 할 수 있겠다.[코레일 파업 완전분석 – 파업과 민영화와 한국철도]

한편 이러한 영업적자의 기저에는 부채라는 더 큰 빙산이 존재한다. 현재 코레일의 부채는 17조 원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최연혜 사장은 차량 구입, 인천공항철도 인수자금, 용산사업 해제로 인한 토지 대금 반납 등이 원인이라 답했다. 하지만 출발점에 더 큰 혹이 있었으니 바로 고속철도 건설부채다. 단병호 前 민주노동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코레일은 2004년을 기준으로 4.3조 원의 차량 부채를 들고 시작한다.

정부는 철도산업의 경쟁력 강화, 발전기반 조성 및 철도산업으 효율성·공익성 향상을 위하여 철도산업 구조개혁을 추진해 왔으며, 그 일환으로 2003 년 철도산업 구조개혁 관련 2 개 법률(‘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공사법’)을 제정하였다. 동 구조개혁은 철도운영부문과 철도시설부문을 분리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여 철도차량의 운영은 공사가 담당하고, 철도시설의 건설 및 관리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책임지며, 철도시설은 국가가 소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철도청 및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시설관련 자산·부채는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이전되었고, 운영관련 자산·부채는 공사로 승계되었다.[한국기업평가, 제100회 한국철도공사채 신용평가 레포트, 2012. 11. 09, p8]

철도구조개혁이 집행되는 2004년 기준으로, 한국철도공사는 고속철도 차량부채 4.3조원, 한국시설공단은 건설부채 6.8조원 등 총 11.1조원의 부채를 승계해야 한다. [중략] 처음 경부고속철도 건설이 입안되었을 때 고속철도 건설비용은 전액 정부가 책임지는 것으로 상정되었었다. 그러나 고속철도 건설 예상비용이 계속 불어나자 정부는 국고지원을 35%로 한정하기로 수정하였다. [중략] 현재 고속철도를 운행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1964), 프랑스(1981), 독일(1991), 스페인(1992) 등 4개국이다. 이 나라들의 고속철도 건설비용은 대부분 정부가 부담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사실상 방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속철도 건설비용에 투입된 외부자본의 원금과 이자 상환을 위해 운영회사에게 받는 선로사용료가 높아질 것이다.[한국철도의 공공적 발전을 위한 개혁방안, 2004. 11. 8, pp13~14]

결국 국가가 부담하지 않은 비용은 시장화된 회사들에게 이전됐고 이들은 태생적으로 “경쟁력”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독점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에 사업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런 철도산업을 이제 정부에서 노선별로 분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수서고속철도는 코레일보다 더 싼 선로사용료 등의 구매경쟁력이나 운임을 높여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어떻게 경쟁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코레일의 “부실경영”에는, 정부 측에서 주장하는 “과다인력”과 “고임금”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근저에는 공익성을 위한 요금통제, 부실한 PSO, 보다 근본적으로 정부로부터 떠안은 막대한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뭐든지 “놈현 탓”을 하는 여권은 정말 노무현을 탓해야 할 시점에는 그리 하지 않고 있다. 부채가 부실경영의 원인이라고 하면 노조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게 되니까.

“민영화가 되면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모든 부패한 나라는 민영화를 한다”는 저항을 조직하는데 좋은 슬로건일 수는 있지만 사태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는 구호는 아니다. 수서고속철도의 민영화는 수서발 KTX 노선의 부실화보다는 오히려 기존 코레일의 부실화 촉진으로 인한 공공성 훼손에 있을 것이다. 그 부실화의 근본을 따라가면 우리는 고속철도에 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기한 “정부의 실패”를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에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토머스 프랭크의 저서 The Wrecking Crew는 정부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고 집권세력이 되었을 때조차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사적이익에 충실한 미국 우익의 실체를 다루고 있다. 만약 한국 버전을 쓴다면 철도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정부의 실패”로 부실화된 공기업을 정부 스스로 “시장적 대안”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철도에서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철도다.

시장화에 관한 트윗 모음

# 오건호 “정부는 공적자금만 참여하니 민영화 논란이 불식되었다고 주장한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면 민영화로 보아야 한다.” 민영화라기보다는 시장화라 표현하는 게 보다 정확하다 (출처)

# “민영화가 아니라 사유화가 맞다”는 주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Privitization의 다양한 양상을 설명하는데는 직역에 가까운 私化가 적당할 듯 하다. 시장화는 이와 좀 다르게 공공기관의 법인화, 공적기금의 출연 등의 양상이 주가 되는 경우다.

# 시장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일국의 공기업이 해외에서는 IPP(Independent Power Producer), 즉 해당국의 민간사업자와 동등하게 조달시장에 참가하는 행태. 한전, 수공 등이 해외발전, 수자원 시장에 참가하는 것이 해당사례다.

# 예를 들어 코레일이 해외 철도 시장의 운영회사로 입찰하게 되면 코레일은 이제 정부부문이 아니라 IPP가 된다. 해당국에서 철도 운영자로 코레일을 선정하면 이는 철도산업이 시장화, 나아가 민영화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추세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 MB 시절 UAE 원전 사업에 삼성과 한전이 컨소시엄을 이루어 참가한 형태가 대표적인 발전 산업의 시장화. 수출입은행이 자금조달을 책임지는 수출금융. 자금조달을 위해 이슬람채권을 허용하려 했으나 개신교의 비이성적인 반대로 실패. 수은의 증자로 해결함.

# 요컨대 큰 틀에서의 공공서비스 현황을 볼 때 시장화를 단순히 민영화와 등치 시키면 쟁점이 다소 혼란스러워진다. 한전이 해외발전사업에 진출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반대하여야 할까 찬성하여야 할까? 국익이라는 고답스런 관점이 아니더라도 다소 복잡한 문제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에 관하여

#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 노동자들이 고용불안, 임금착취 문제를 대화로 풀자고 공항공사에 요청하면 줄만큼 주고 있고 고용불안도 없고 비정규직 노조와는 대화 안한다며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출처)

# 인천공항 파업에서 보듯 공기업내 “경쟁력 제고 논리”의 내재화는 오히려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MB의 공항 민영화 음모론자들은 “세계 최고의 공항을 왜 민영화하냐”며 이 경쟁력을 칭송했는데, 자본이 아닌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노동탄압을 칭송한 셈이다.

# “경쟁력”은 흔히 공무원 조직의 비효율과 예산 낭비를 질타하는 무기가 되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발견되어 정당성을 강화한다. 하지만 사회적 기여도의 측정 없는 경쟁력은 자본의 이윤 추구 와 다를 바 없는 시각으로 공공성을 죄악시하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 이런 정서가 극단화되면 마가렛 대처처럼 “사회는 없다”는 선언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심지어 “세금 먹는 하마”라 욕먹는 민자도로조차 외부성을 가지고 사회적 효용에 기여한다. 이를 부인하지 않고 타당한 평가지수를 도입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한 축이다.

# 공공성을 위해 요금을 못 올리는 코레일은 정부로부터 공공기여의무(Public Service Obligation) 보조금을 받는다. 객관적인 평가지표가 마련된 이런 보조금을 공기업이나 혹은 MRG 대신 민자사업에 도입해보는 것도 한 대안이 될 것이다.

“민영화”와 더불어 고민해야 할 이슈

# 대통령 “철도 노조 주장을 보면 민영화가 경영을 악화시킨다면서 영국의 예를 들고 있는데 영국과는 다르다. 철도도 민간이 서비스해야하며” (출처) 대통령이 이런 말을! 앗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로군요.

#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민영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것 처럼 이 이슈는 1980년대 이후 소위 “진보/보수” 구도를 넘어서는 정책적 연속성을 지닌 이슈다. 이를 한쪽 진영 시각에서만 보면 그 해법은 진실과 동떨어진다. 소위 나꼼수식 시각의 근본적 오류.

# 1980년대 이후 공공서비스의 “민영화”가 본격화되면서 가장 빈번하게 쓰인 표현은 “경쟁력 강화”였다. 사람들은 민영화란 표현에 거부감을 가지면서도 경쟁력이란 표현엔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현재 철도 민영화 논쟁에서 정부가 쓰는 레토릭도 경쟁력이다.

# 정부 부문이 커지면서 관료적 행태와 비효율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고 정부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은 이런 부작용과 정부 고유의 공공성을 “경쟁력 강화”라는 쓰레기봉투에 함께 넣어 내다 버리려 한다. “진보”는 이 둘을 세심하게 분리하는데 실패했고.

# 요컨대, “민영화”와 더불어 고민해야 할 분야는 “정부부문 내의 시장 경쟁논리의 무분별한 도입”이다. 경쟁력 강화란 명목으로 공격당하는 정당한 요구들은 정부부문 내에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공항공사의 살인적인 외주율. “세계 최고의 공항”의 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