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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경제사범에 대한 인식

카센티노의 푸른 언덕에서 아르노 강으로 서늘하고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실개천들이 언제나 눈앞에 속절없이 아른거립니다.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는 일이 얼굴 살을 뜯어내는 병보다 나를 더 애타게 목을 태우고 있소. 나를 괴롭히는 엄격하기 그지없는 정의가 하필 내가 죄를 지은 곳을 떠올리게 하며 더 깊은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구려. 거기는 로메나, 내가 세례자의 얼굴로 주화를 찍어 위조화폐를 만들던 곳이오. 나는 그 때문에 저 위에 불에 탄 육신을 남겼소.[신곡, 단테 엘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08년, pp306~307]

지옥에 떨어진 이 죄인은 스스로를 “장인(匠人)”이라 부르는 아다모1다. 그는 당시 로메나 성2의 군주였던 귀도와 알레산드로의 꾐에 빠져 쇠로 피오리노(fiorino)3라는 – 중세유럽의 부국이었던 피렌체에서 1252년부터 주조하여 통용시키던 – 금화의 위조화폐를 만들었고, 그 탓에 지옥에 오게 됐다는 것이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한 일화다. 이 장에서 단테가 묘사하는 것을 보면 당시 화폐 위조를 중한 범죄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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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인용문의 뒤쪽을 보면 같이 지옥에 떨어진 시논이라는 다른 죄인4은 아다모에게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넌 돈을 위조했어! 난 한마디 말 때문에 여기 있지만, 넌 다른 어떤 마귀보다도 나쁜 놈이야!”라고 거칠게 힐난한다. 당시 피렌체는 백년 전쟁 동안에 잉글랜드 왕에게 자본을 대기도 하는 등 유럽 각국에 자본을 대주는 금융도시였다. 자연히 위조화폐를 주조하는 죄는 중죄로 다루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의 고통은 눈에서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비처럼 떨어지는 불꽃과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를 손으로 내저으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마치 여름날에 벼룩, 파리, 빈대에 물어뜯기는 개가 주둥이와 발목으로 버둥대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불길이 떨어지는 가운데 몇 사람을 눈여겨보았지만,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목에 주머니를 걸고 있음을 깨달았다. 색깔과 문장(紋章)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와중에도 그들의 눈은 주머니를 흡족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같은 책, pp167~168]

한편 이들은 고리대금업자다. 그들이 차고 있는 주머니가 바로 고리대금업자임을 상징하고 있다.5 교회는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를 통해 고리대금업자는 영성체를 비롯한 교회의 구원을 받을 수 없도록 정하였다. 따라서 단테가 신곡을 쓴 14세기 초 고리대금업자가 사후에 갈 곳은 지옥밖에 없었다. 금융업으로 성장한 도시에 살면서 위폐범을 단죄하면서도 고리대금업자를 지옥에 보내는 혼돈된 세계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하튼 고리대금업에 면죄부를 준 것은 먼 훗날이 지나서였고 위폐범은 아직도 극악한 중죄다.

Giotto, scrovegni, enrico scrovegni dona agli angeli una riproduzione della cappella degli scrovegni (13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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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리대금업자라도 교회에 재산을 바치면 성화에도 등장하고 천국도 갈 수 있다

이렇듯 종교적 관념은 언뜻 우리의 경제활동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보일지 몰라도 실은 다른 여타 분야에서 그렇듯 우리의 경제관념에도 끈끈하게 얽혀 있다.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한 것은 기독교나 이슬람 모두의 교리였고 앞서 보는 것처럼 기독교 교리는 그런 고리대금업자를 지옥으로 보냈으며 이슬람은 여전히 이자수취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6. 금융 등 3차 산업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 관념도 아담 스미스7, 막스 베버8, 심지어 칼 맑스9에 이르기까지 서양 경제학자들의 경제관에 일관되게 반영되어 있다.

엑셀 오류가 낳은 비극적(?) 상황에 대하여

서울국제금융센터는 2012년에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By Bohao Zhao, CC BY 3.0, 링크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작년 말 IFC를 인수한 브룩필드 프로퍼티 파트너스가 매입 당시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삼정KPMG에 맡긴 실사 보고서의 오류가 뒤늦게 발견돼 투자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중략]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임대차 계약을 맺은 홍보대행사 마콜은 현대 IFC2빌딩 16층에서 1,329m2와 222m2로 두 개 공간을 나눠 사용하고 있는데 삼정KPMG는 마콜의 임차 면적을 실제 보다 약 20~30배 가까이 크게 계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금융 업계 관계자는 [중략] “컨설팅 업체에서 엑셀로 계산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으며,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이라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여의도 IFC 투자자들, 가치평가 오류에 패닉]

재밌는 기사가 있어 소개한다. 여의도IFC는 3개의 프라임 오피스 빌딩과 복합쇼핑몰 IFC몰, 5성급 호텔인 콘래드 서울로 이뤄져 있고, 지난 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라 할 수 있는 2조5천억 원 수준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진 매머드급 자산이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AIG에게 99년 임차권이라는 특혜를 주며 AIG에게 개발을 독려하였고, 이후 한동안 공실률이 높아 여의도 오피스 시장의 착시현상을 부추기던 자산이라는 눈총도 받은 바 있는 여러 구설수에 올랐던 자산이기도 하다.

인용기사를 보면 에쿼티 투자자로 보이는 브룩필드 프로퍼티 파트너스가 선·중순위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한 실사보고서에 하자가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실사보고서라 함은 영어로 Due Diligence라 표현하며 투자자들에게 매입자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기초자료라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기술, 법률, 수요, 세금 등 각종 사업위험에 대한 타당성 분석을 제공하는 종합적인 검토보고서라 할 수 있으며 통상 기사에 언급한 삼정KPMG와 같은 회계·컨설팅 업체가 보고서의 취합을 책임진다.

오류가 발견된 부분은 여러 타당성 중에서 수요에 관한 부분이다. 회계 혹은 재무모델 담당자는 예상매출과 예상비용이 입력된 예상재무제표를 만들어 현금흐름 분석모델을 만들어 예상영업수익과 예상수익률 등을 계산하여 투자자들에게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수요의 예측은 모든 개발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가장 꼼꼼하게 따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예측수요를 과대 추정하는 오류가 발견됐다면 투자를 유치하려는 이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주는 일인 셈이다.

과대 추정한 임차면적은 사실 연면적 50만5236㎡에 달하는 IFC의 전체 면적에 비해서는 그리 크지 않은 비중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엑셀 오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일 정도로 극히 드문 일도 아니다. 다만 거래의 규모 등으로 인한 화제성을 비추어 볼 때 브룩필드나 삼정KPMG에게 무척 곤혹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더구나 이렇게 기사화까지 됐다는 것은 분명 내외부에 시기하는 적이 있다는 정황도 있다. 사업 리스크 중에 거론되지는 않지만, 바로 “실무담당자 리스크”가 발생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컨설팅 오류가 발생하면 엄청난 손실이 아니라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확실히 클레임을 걸어 손해를 배상하게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브룩필드가 삼정KPMG 등에게 클레임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삼정은 명성에 오점을 남기는 것 뿐 아니라 금전적 손해를 입을 지도 모르겠다. 타당성 분석기법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엑셀이 한편으로는 편리한 만큼이나 치명적인 흉기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한 사례로 기록될 만 하다.

중국 사회주의의 증표(證票) 소비

계획경제 체제에서 소비는 ‘증표를 지참한 물건 구매’를 통해 이루어진다. 소비자는 화폐가 아니라 직장에서 분배받은 증표를 주고 해당 물건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증표 소비’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각종 증표는 120여 종에 달했다. 당시 쓰촨성에서 소비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유행어가 있었다. 이를 보면, 국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민이 ‘먹고 마시고 싸고 하는 것’ 전부를 관리한다. “계획은 천하를 통일했고, 이 정도 수준은 중국 역사상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일이다.”[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1, 조영남 씀, 민음사, 2016년, p211]

중국에서의 계획경제는 마오쩌둥 시대에 체계가 잡혔다. 계획경제에 대해서는 楊江의 ‘건국이래신대경제열점(建國以來十代經濟熱點, 1995)’에서는 “공유제 경제를 기초로 강제성 계획과 행정명령을 주요 수단으로, 위에서 아래로 고도로 집중된 계획 관리를 실행한 경제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조영남 씨의 책에 따르면 1976년 전체 공업 생산량 중에서 국가 소유(전민소유제)가 80%, 집체 소유가 20%를 차지했으며, 유통 부문에서는 국영 상점이 90.3%, 집체 상점이 9.5%를 차지했다. 이렇듯 견고한 공유제와 계획경제가 결합하면 소비 역시 어느 정도 계획화되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그 결과가 바로 ‘증표 소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폐의 기능을 대체한 증표는 “필요한 욕망의 이중적인 동시 발생(double coincidence of wants)1의 필요를 줄일 효율적 수단”이라는 화폐의 기능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소비에 특정 증표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중국의 계획경제가 이러한 증표 발행을 통해 소비를 가능케 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자본으로도 쓰일 수 있는 화폐의 발행이나 유통 없이 소비를 가능케 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나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증표를 사용하면 생산량이 열악할 지라도 증표 발행량으로 소비를 생산량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증표는 사회주의 중국 건설 초기에 소비재 생산 대신 중공업으로의 자원 투입을 집중시키기 위해 고안된 유사 화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계획경제의 보조 수단이기는 하지만, 조악한 계획경제의 조악한 보조 수단이었다. 이러한 증표 소비는 – 그러할 생산물의 잉여가 많지도 않았겠지만 – “한계효용의 법칙”과는 무관하게 필수품 수요에 대한 단순한 양적 매칭이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얼핏 자원배분이라는 시장의 기능 없이도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매칭될 것 같지만, 다시 증표는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 하는 자원배분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딜레마는 관료와의 유착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도 이러한 증표 소비의 영역은 존재한다. 정부가 특정 소비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바우처(voucher), 기업이 자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상품권, 특정 지자체에서 지역사회의 경제를 독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지역 화폐 등 다양한 증표가 존재한다. 소비 행태가 고도화되는 사회일지라도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렇게 증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증표의 기능을 하는 소비에 대한 자격증 발급은 특히 주택과 같은 생애소비재적 성격을 가진 소비재에서는 특히 적용 가능한2, 또는 사안에 따라서 정책적으로 적극 고려해야 할 보조수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바나나 공화국 이야기

1983년에 국무원은 「도시 비농업 개체 공상업(工商業)의 몇 가지 규정」을 발표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도시의 개체 공상업은 7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할 수 없다. 이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저술에 근거한 규정이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론을 설명하기 위해 8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가상의 공장을 예로 들었는데, 중국 당국은 이를 ‘노동착취’의 기준으로 삼았다. 즉 중국 정부가 보기에 자영업이 7명 이상의 사람을 고용하면 사영기업이 되고, 사영기업은 노동자를 착취하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개혁과 개방 :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I, 조영남 지음, 민음사, 2016년, p228]

현실 사회주의 블록의 이념적 경직성 내지는 이념적 조악함을 설명하는데 좋은 사례인 것 같아 인용해보았다. 언뜻 보아도 이는 자본론을 마치 종교경전 마냥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경직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 큐란에 그렇게 나온다는 이유로 여성의 몸을 위아래로 감싸고 순종을 강조하는 무슬림의 해석이나, 성경에 그렇게 나온다는 이유로 극악하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개신교도의 해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경전을 지킴으로써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는 기여한 바는 없으나 그 교리를 강요한 이의 권력이나 도덕적 순결성은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하지만 어쨌든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한 채 시장경제를 성공리에 – 많은 시행착오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 도입하여, 오늘날 미국을 위협할 다음 국가로 평가받는 등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단순히 인용문에서처럼 「규정」이 교조적으로 끝까지 관철됐더라면 달성하지 못했을 위치라 할만하다. 중국이 경제에 있어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유연성을 가질 수 있도록 추동했던 개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정치체제는 유지하면서도 경제체제는 바꿀 수 있다는 – 1992년 10월 공산당 14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이라 할 수 있다.1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 계획경제”라는 도식을 포기한 것은 여러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계획경제/자원동원경제는 사실 戰後 경제개발을 가속화하여야 하는 대다수 국가들에서 체제와 관계없이 시도했던 개발전략이랄 수 있다. 혁명 후의 소비에트가 그랬고, 대공황을 겪은 미국이 그랬고, 10억 인구의 중국이 그랬고, 도시국가로서 살아남아야 할 싱가포르가 그랬고, 북괴와 체제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남한이 그랬다. 국가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기업으로 기능하는 것은 일종의 戰時경제체제랄 수 있고 체제경쟁에 직면한 많은 나라들은 어느 기간까지는 계획경제 요소를 띠었다고 할 수 있다.2


“제국주의 전쟁의 음모를 분쇄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용감하게 나아가자!”(출처)

하지만 경제가 전간기와 질적으로 다른 고도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상명하달식의 행정기능만으로 경제 시스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됐다. 빅데이터 혹은 인공지능이 진정 시스템 전체의 원인과 결과를 예측하여 투입-산출을 조정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시장에서의 개별 경제단위가 경쟁하며 우열을 평가받고 진화-퇴보를 거듭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더 좋은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국가는 경제발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역할에서 “정의로운 심판”의 역할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과 합당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공유된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최근 트럼프의 행보는 역사의 퇴보를 초래할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느니, 그 재원을 멕시코로부터의 수입관세로 마련하겠다느니 하는 경제원론에도 안 맞는 소리를 해대는 것은 가장 천박한 수준의 “가부장적 아버지” 역할이다. 더욱 불행하게도 트럼프는 일당독재를 통해서가 아닌 대의적 민주제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라는 점이다. 즉, 그는 선거를 통해 일당독재 지도자보다 더 많은 정치적 자본을 얻게 됐지만, 적어도 중국 공산당이 그랬던 것처럼 집단적 논의를 통해 시행착오를 수정할 정치적 의지는 가지지도 가지려 하지도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면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현대사회에서 국가는 기간산업과 핵심 산업(예를 들면 금융업)은 공공적 기능이 관철되도록 “사령탑”적인3 통제를 강화하되 전 세계적 시장경제는 정의롭게 유지되도록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이 잘못된 시장경제는 경제격차와 이념적 편견의 격차만 벌려놓아 보호주의, 인종주의, 독자주의 노선만을 강화시켰고, 그 가장 흉악한 결과가 트럼프의 당선이다. 그는 개별기업에 입지를 지정하고, 도드-프랭크법 규정을 무력화시키고, 이민을 통제한다. 7인 이하의 사영기업 허용이 희극이라면 이번 버전은 비극인가?

80년대 중국이 일당독재 바나나 공화국이었다면 현재의 미국은 민주적 바나나 공화국이다.

“기업이 더 적은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일찍이 없었다”

요즘만큼 미국의 기업이 더 적은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일찍이 없었다. 의류업 일자리를 중국으로 옮기고 콜센터 운영을 인도로 넘기던 아웃소싱의 물결은 이제 거의 모든 업계 차원에서 미국 내의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 같다. [중략] 계약 모델(contractor model)이 너무 일반적이어서 포춘誌에서 10년 중 7년 동안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꼽힌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에서도 대략 정규직에 준하는 정도의 외주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고 이 이슈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전했다. 대략 7만의 TVC가 – 임시직(temps), 판매자(vendors), 계약자(contractors)의 줄임말 – 구글의 자동운전 승용차를 시험하고, 법률서류를 검토하고, 생산품을 더 사용하기 쉽게 만들고, 마아케팅과 데이터 프로젝트들을 관리하고, 또 다른 많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근무 중에 빨간 배지를 착용하고 알파벳 직원들은 하얀 것을 착용한다. [중략] 얼마나 많은 미국의 노동자가 계약자로 일하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직업군이 정부부처에서 집계하는 직업군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대략 국가 노동력의 3~14%까지가 또는 2천만 명의 인구가 이 직종에 종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중략] 궁극적으로 몇몇 대기업들은 가장 핵심적인 고용 인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지치기 당할 수 있다. 컨설팅 회사인 액센추어는 10년 내에 세계에서 가장 큰 2천 개의 회사 중 한 곳은 “중역실 이외에는 풀타임 고용인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작년에 예측했다.[The End of Employees]1

기업은 확실히 20세기 최대의 발명품이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도 오늘날 우리가 기업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런 기업이 지구 단위로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 것은 20세기가 되어서부터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깨달은 것은 분업이 생산성을 높이고 이 과정이 한데 모이면 한층 효율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매뉴팩처가 등장했고, 소규모의 매뉴팩처는 점차 대공장으로 흡수된다. 칼 맑스는 이러한 대공장 기업이 자본주의를 융성하게 만드는 장소가 되는 동시에 노동자들이 조직화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업 스스로와 자본주의를 패퇴시키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1세기 들어 이제 기업이 기업 스스로를 해체시키려 하고 있다. 액센추어의 예언처럼 중역실 이외의 모든 고용이 사라진다면, 이는 기업이 변신 프라모델처럼 여러 부속품이 결합됐다가 필요에 따라 또 다른 무언가로 변신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의미고, 그것을 우리가 알던 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조짐은 이전 세기에도 있었다. 기업은 주식시장과 LBO를 통해 소유주와 자본가의 개념을 해체하는가 하면, 아웃소싱을 통해 노동력의 형태를 다양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이제는 전 업종, 전 업무에서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아웃소싱과 다르다 하겠다.


자동차인 줄 알았더니 로봇(출처 : 영토이)

앞서 말했듯이 20세기형 기업은 비교적 동질의 노동력을 지닌 노동자를 한데 모아 분업화된 공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20세기형 기업은 “또 하나의 가족” 혹은 유사 군대조직과 비슷한 규율과 가부장적 질서에 익숙하다. 이런 질서는 심지어 그 기업에서 태어난 반항아 노동조합에서도 유지됐다. 그런데 이제 社內 노동력은 더 이상 가족도 군대도 아니다. 운전사는 빨간 배지를 단 A 파견회사 소속이고 프로그래머는 노란 배지를 단 B 파견회사 소속이다. 20세기 자본주의가 소규모 매뉴팩처를 합병 또는 해체시키는 과정을 겪었다면 21세기 자본주의는 이를 다시 해체시키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은 20세기 이전의 그것처럼 뭔가 목가적인 뉘앙스의 자영업자의 형성과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개별 부속품을 담당하는 파견회사는 파견회사대로 하나의 거대화된 새로운 형태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1970년대 SF영화인 Rollerball에서는 기업의 독점이 완성되어 회사명이 그저 “기업(Corporation)”이라 불릴 따름이라는 설정인데, 파견회사 역시 비서 파견이 전문인 거대기업은 그저 “비서 회사”로 불릴 따름인 세상이 21세기형 기업의 해체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과정은 궁극적으로 자동화를 통한 인간 노동의 배제 자체를2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띄게 될 가능성이 크다.

리만 브라더스가 망한 진짜 이유?

나는 왜 리만이 무너졌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Fed는 그 일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며 모럴해저드에 관해서 그들이 어떤 조치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리만이 생존을 위한 차입에 충분한 담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았다고 나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중략] 그들이 나눴던 대화에 대해서는 엄청난 기록이 있는데 담보 이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벤 버냉키가 금융위기 조사위원회에서 증언하길, 뉴욕Fed의 사람들이 충분한 담보가 없었다고 결정했다고 말했고, 그들은 그에게 공청회와 이어지는 편지에서 계속 상세한 사항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누가 분석을 했으며, 그들이 얼마 정도의 담보를 가졌는지 또는 가지지 못했는지에 대해서요.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논리적인 결론은 그들은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중략] 왜 그런 결정이 이루어졌는지 이해하려면 누가 그 결정을 내렸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견으로 그 결정을 내린 이는 재무부 장관이었던 행크 폴슨입니다. [중략] 현재의 규정인 도드-프랭크 법에서는 재무부가 Fed의 대출을 허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런 법은 없었습니다. [중략] 헨리 폴슨이 정치에 매우 민감했다는 것은 분명하죠. 베어 스턴스의 구제 당시 엄청난 정치적 반발이 있었고요. 그리고 폴슨이 “내가 미스터 금융구제가 될 순 없어.”라고 말했던 것은 널리 인용되기도 했습니다.[Could the Fed Have Rescued Lehman Brothers? Q&A with Laurence Ball]

왜 금융위기 당시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리만브라더스가 무너졌는가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다. 이 블로그에서도 당사자들의 회고록이나 언론보도 등에서 드러난 당시 정황에 대해서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을 정도로 많이들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다. 그리고 그 이슈에 관해 로렌스 볼(Lawrence Ball) 존스 홉킨스 대학 교수가 집요하게 파고들어 218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냈다고 한다. 위 인용문은 로렌스 교수와의 인터뷰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요컨대 ▲ 리만의 담보가 충분치 않았다는 Fed의 증언은 사실이 아니다 ▲ 구제 포기라는 결정은 정치적 결정이다 ▲ 그 결정을 내린 이는 합법적 결정 주체가 아닌 행크 폴슨이다 등이다.

로렌스 교수는 폴슨이 골드만삭스에서 일했기 때문에 경쟁자인 리만을 돕기를 꺼렸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내가 읽었던 여러 책에서도 볼 수 있듯 폴슨은 민간 금융기업의 리만 인수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했다.1 다만 교수는 정치적 반발에 민감했던 폴슨이 “미스터 구제금융”이란 별명으로 역사에 남는 것을 원치 않았고, 리만의 도산에 따른 결과를 과소평가했다는 정도로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 결과는 상상이상으로 심각했고 이 후유증으로 AIG나 다른 금융기관의 구제금융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는 트라우마가 되고 말았다. 결국 리만의 도산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던 이들에 의한 좌충우돌일 뿐이었다.

결국 이러한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 로렌스 교수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 아무리 당사자들이 그렇게 주장할 지라도 중앙은행은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지도, 투명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Fed의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였던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이 결국 재무부 장관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은2 어쩌면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가 실은 이자를 내지 않는 정부채권일 뿐이라는 사실 만큼이나 명백하면서도 자주 간과되고 있는 진실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허울 좋은 자주성을 획득하고 있는 Fed는 여태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정부의 정치적 의지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그래서 두 기관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요컨대, Fed는 아무런 부작용 없이(없어질 일자리와 팔릴 Fed빌딩을 제외하고는) 내일이라도 재무부와 합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연방정부의 대차대조표의 통합관리가 가능하고 재무부는 Fed가 없던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화폐를 직접 발행할 수 있다. 현재의 지불기술 때문에 실무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美화폐의 과잉발행의 우려는 없다. 과잉발행을 더 방지하기 위해서, 의회가 美화폐를 이자부 재무부채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법으로 명시된 보증을 부여할 수도 있다.[출처]

연금 받는 자산가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지금 일본에서는 특별회계까지 포함하면 사회보장비 중 1,000조 원이 고령자 복지로 지출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예금 총액 역시 매년 300조 원씩 증가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중략] 어째서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가 하면, 연금을 받아도 쓰지 않는 고령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본에는 젊을 적부터 많은 보험료를 지불한 덕분에 노후에도 매년 400만 원 이상의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고령자가 있습니다. [중략] 최근 도쿄 도심에 있는 아파트 값이 엄청나게 뛰면서 ‘포티 버블’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요? [중략] 일본인 부유층, 그것도 고령의 부유층이에요. 그 사람들이 상속세 대책으로 사고 있는 겁니다.[98%의 미래 중년파산, 아카기 도모히로/아마미야 가린/가야노 도시히토/이케가미 마사키/가토 요리코/아베 아야 공저, 류두진 옮김, 오찬호 해제, 위즈덤하우스, 2016년, pp112~113]

인용한 책에서 가야노 도시히토 씨가 한 발언이다. 가야노 씨는 싸다주쿠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국가, 폭력, 성장 등과 같은 주제로 몇 권의 책을 저술한 바 있는 만큼 해당 주제의 권위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경제학이 주 전공이 아닌 분이다보니 인용한 부분에서 서술한 내용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단, 해당 발언을 인용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돈의 흐름에 대한 발언이 어느 정도는 관련 연구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도 지금 심각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은퇴자에게 지불해야 할 연금의 규모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더욱더 커질 것이다. 물론 당사자의 입장에서야 만족스럽지 않은 금액일지 몰라도 확실히 이 사회는 고도 성장기에 설계된 연금계획에 따라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규모의 비용을 지불하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은퇴자들의 연금소득이 노동소득보다는 “여윳돈”일 가능성이 높고, 그 돈이 부동산 투자 등으로 자본의 흐름에 다시 투입될 것이라는 가정 역시 그리 무리한 가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내수가 엉망이라는데도 집값이나 상가 월세가격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대별로 볼 때 고령층이 부동산 자산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들 자산가들이 연금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입을 늘려갈 수 있다면 단순한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자산을 매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1 더군다나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자영업자 후보군들은 계속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요컨대 부동산 자산과 내수 시장의 괴리 사이에 자영업자 예비군, 그리고 노령 연금이 쿠션 작용을 하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