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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이 예정되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임

그러나 연준이 소비자 가격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산 가격 또한 올렸다. 이는 호니그와 같은 은행 감시자에게 경고등을 울리는 인플레이션의 한 형태였다. 캔자스시티연준 지역에 있는 은행들에게 주요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농장의 가치가 급격하게 올랐다.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도 그렇고, 유정이나 시추공의 가치도 그렇다. 이러한 자산들은 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담보가 된다. 그리고 가치가 올라가면 보다 공격적인 대출을 자극하게 된다. 미국 중서부 지역의 은행들은 농장주, 기업, 그리고 부동산에 대한 대규모 대출을 확대했다. 호니그는 자산 가치가 매우 빠르게 상승하면 건물이 준공되는 순간 대출이 대환(refinance)될 수 있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단기 대출이 연장되는 상황에 대해 듣게 된다.[The Lords of Easy Money : How the Federal Reserve Broke the American Economy, Christopher Leonard, 2022년, Simon & Schuster]

연준 혹은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금융회사와 개발업자, 그리고 심지어 정부가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 특히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 – 싫어하는 것은 아닌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금융회사 담보의 건전성이 높아지고 더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다. 개발업자는 금융회사의 공격적인 대출을 통해 더 높은 레버리지 효과를 향유할 수 있다. 정부는 자산 가격이 높아지는 만큼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다. 단기 대출은 낙관적 시나리오에 따라 개발사업의 보다 이른 단계에서부터 가능하게 되고, 건물이 준공되면 또 다른 공격적인 금융회사는 앞선 대출을 채간다. 시장경제에서의 금융자본의 순기능이 잘 작동하는 전형적인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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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n Shebs, CC BY-SA 3.0, Link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파국적 비극으로 끝장난 대표적 사례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라 할 수 있다. 사태의 원인으로 그동안 수많은 상황이 언급되었지만, 어쨌든 근본적인 원인은 자산 가격이 영원히 오를 수는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시장참여자들이 자산 가격을 엉터리 자산실사, 분식회계, 위험한 부외금융 등을 통해 위험을 감추고, 떠넘기고, 외면한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이랄 수 있다. 물론 알다시피 그 이후 글로벌 경제는 그 모순을 그대로 유지한 채 플레이어만 몇몇 교체하고 똑같은 게임을 다시 진행 중이다. 그사이 투자자산의 종류와 금융 국경은 보다 자유로워져서 판은 더 커졌는데, 상업용 부동산 등에서는 서서히 위험신호가 들려오고 있어 주의를 요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이 게임이 보다 위태하게 진행 중이란 점이 우려스럽다. 지난해 한국의 부동산, 특히 아파트값은 큰 폭의 하락세를 겪었다. “영끌족”의 고통이 미디어를 통해 소개됐다. 급기야 레고랜드 사태, 둔촌주공 사업 등에서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무장해제하고 특례보금자리론 등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여 자산 가격을 원위치시켰다. 문제는 막대한 가계부채 비율과 글로벌 고금리 상황에서 이 게임이 지탱할 수 있냐는 것이다. 판돈의 가격(금리)은 올라가고 새로 판에 낄 전주가 나서지 않는 한 언젠가는 판이 엎어질 건데 총선을 앞둔 정부나, 집값 하락이 두려운 집주인이나, 담보 부실화가 걱정스러운 은행은 모두 또다시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리파이낸스해줄 것이라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채로

리파이낸스(Refinance)

리파이낸스(Refinance). 자금조달을 의미하는 finance라는 단어에 re가 들어가서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자금재조달’이 된다. 위키피디어에서는 리파이낸스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Refinancing may be undertaken to reduce interest rate/interest costs (by refinancing at a lower rate), to extend the repayment time, to pay off other debt(s), to reduce one’s periodic payment obligations (sometimes by taking a longer-term loan), to reduce or alter risk (such as by refinancing from a variable-rate to a fixed-rate loan), and/or to raise cash for investment, consumption, or the payment of a dividend.

보다시피 리파이낸스의 목적은 다양하다. 뭐 쉬운 예로 내가 집을 사기 위해 2년 만기 9%의 고정금리 대출을 받았는데 대출받은 1년 후에 6% 고정금리 대출상품이 나와서 제반비용 포함해도 8.2%라고 하면 그 상품으로 대출을 갈아타는 행위, 그것이 리파이낸스인 셈이다. 그리 어려운 개념도 아니지만 때로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이 리파이낸스는 잘만 활용하면 좋은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장치다. 이는 의도적인 리파이낸스를 통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의 수익모델은 지극히 단순하다. 낮은 금리의 돈을 가져다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것이다. 신용이 높으면 금리가 낮고 신용이 낮으면 금리가 높고, 기간이 짧으면 금리가 낮고 기간이 길면 금리가 높다. 전자의 구조에서 취하는 수익을 신용 스프레드(spread)라 하고 후자의 수익은 기간 스프레드라 한다. 그것을 섞어서 대출상품이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출을 할 때에 리파이낸스를 특히 기간 스프레드 극대화에 활용하면 좋다.

A기업이 100억원을 대출받아 도심에 빌딩을 지어 분양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하자. 경기가 좋은 시절이라 싼 이자 대출도 가능하여 여러 은행에 금리를 문의했다. B은행이 경쟁적으로 시중금리보다 0.5%싼 6% 대출을 제시하여 대출은행으로 선정되었다. B은행의 영업비밀은 3개월짜리 ABCP(asset-backed commercial paper ;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을 활용하는 것. 건설부터 분양까지 3년 예상되는 이 사업에 3년 만기 대출상품을 적용하지 않고 3개월 단기상품을 반복하여 차환 발행한다는 개념을 도입하여 금리를 낮춘 것이다.

요컨대 3개월 단기대출상품은 3년 대출상품보다 금리가 싸다. 그러므로 B은행은 싼 금리의 ABCP를 활용하여 경쟁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일반화된 개념이지만 선도적 도입기관은 그 특혜를 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매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ABCP를 다시 발행하는 것이 바로 리파이낸스다. 이때 기본전제는 해당사업에 대한 대출은 사실상 사업기간 동안 계속 유지되고 리스크, 특히 시장리스크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리파이낸스 마술은 사라졌다. 자산 확장기에 급격히 늘어난 ABCP는 기준금리에 매우 저렴한 스프레드만을 붙여 발행되었다. 금융위기에 따라 건설사들의 신용이 급전직하하면서 차환 발행되는 ABCP에는 대폭 할증된 스프레드가 붙여졌고 그나마도 차환 발행되는 것이 다행이었다. ABCP의 기준금리로 대표적으로 사용되었던 CD금리는 정부의 의도적인 개입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5~6% 대에서 2.4% 대로 폭락하며 신용을 급속히 위축시켰다.

앞서 언급했듯이 더 큰 틀로 보아 금융 그 자체가 사실은 리파이낸스 성격이므로 이러한 사업구조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CDO, CDS 등 여러 상품들도 큰 틀에선 리파이낸스 상품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틀은 상당부분 수정이 가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준금리, 발행조건, 사전 리스크 점검 등의 기준이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를 비집고 머리 좋은 친구들에 의해 또 다른 리파이낸스 마술이 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