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구조화 금융

9호선 지하철 논란에 관한 트윗들(2)

9호선 민자사업의 또 하나의 유의점은 원인자부담원칙의 적용여부다. 민자사업은 이 원칙이 적용된다 할 수 있고, 재정으로 설치운영할 경우 이 원칙이 희석된다 할 수 있다. 정부가 9호선을 매입하면 “안 타는 사람이 손해”란 소리는 그런 맥락이다.

anoweb @EconomicView 수익자부담원칙 아닌가요?

@anoweb 영어표현 polluter pay principle에서 유래되었으니 ‘오염자’,’원인자’,’수익자’ 다 같은 맥락으로 쓰면 됩니다.

searcherJ @EconomicView 어… 그런데 좀 무식한 질문이지만 민자사업에 수익자부담이 적용되는 이유는 뭔가요? 그리고 똑같은 지하철인데 어떤 노선에는 수익자부담이 적용되고 어떤 노선은 적용되지 않는다면 민자사업이 어떻게 그걸 설명하나요? 1번이 2번설면?

@searcherJ 민자사업이 추진동기 중 하나가 이런 원인자부담원칙으로 나아가자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가격을 시장가격화하자는거죠. 지금은 공공운영 시설에서도 이런 상황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교통권의 공익성에 대한 생각이 혼란스러운 상태랄 수 있죠.

woohyong @EconomicView 여기서 ‘수익자’는 어떻게 정의될까요? 1) 이용자, 2) 교통편의가 증가되어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자산가들, 3) 서울시의 교통이 전반적으로 원활해져서 전반적 편익상승 (누구에게 얼머가는지는 논외)

@woohyong 3번이 가장 편익이 작을 수 있지만 바로 그 개념이 인프라의 공공에 의한 공급을 정당화하기도 하죠. 2번과 같은 맥락에서 신도시에선 집값에 인프라설치비를 포함시키고요. 1번이 결국 ppp의 오염자 개념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적으로 공공재는 “경합성”과 “배제성”의 관점에서 경합되지 않고 배제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공익(public interest)과는 엄밀하게는 다른 개념이다. 결국 어떤 서비스를 시장화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 일종의 계급정치이다.

세금 한 푼 안 낸 맥쿼리, ‘실주인’ 따로 있다 http://bit.ly/HZbtX8 언론보도 중 가장 사실관계에 근접한 선대인 씨의 글. 어찌 보면 이런 풍경은 변종채권이랄 수 있는 대안투자 위주의 펀드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미 전형적인 풍경.

morquesong @EconomicView 9호선에 대한 생각을 써봤습니다. http://t.co/mkMMH87w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마녀사냥이 되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morquesong 잘 읽었습니다. 하나 지적하자면 9호선 민간투자사업은 민영화(privitazation)의 큰 틀에서 개념상 민영화가 맞습니다. 국유기업/시설 매각이 전형적이라면 이는 애초에 운영권을 국가가 민간에 허가한 형태로서의 민영화입니다.

민간투자사업은 금융권 시각에서 보자면 전통적인 주식/채권 투자에 건설/운영 위험을 가미한 대신, 프리미엄을 취하는 “대안투자”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선 변종채권인데, 국가가 채권지급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바로 신용리스크인 셈이다.

맥쿼리가 9호선에 수취하는 15%이자는 후순위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자상환순위에서 선순위에 밀린다. 그래서 SPC는 이를 메자닌, 즉 중자본으로 간주하고 고금리로 투자자를 유치한다. 월가의 구조화 금융과 유사한 형태의 금융기법이다.

woohyong  @EconomicView 15% 후순위채는 전채장기채무의 10%선. 나머지는 선순위로 CD연동/고정 가중평균6%대입니다. 배당은 불확실성크니 이자로 리턴설계하는 전형적 PE SPC투자방식인듯. 9호선운영이란 운영사통해 현대로템은 한번 더 빨대꽂고

@woohyong 민간투자사업은 사실상 현금흐름이 다른 사업에 비해 변동폭이 작고(특히 MRG가 있는 경우 환수조항이 있어 업사이드는 어려우니) 장기여서 주식배당수익률로만은 수익을 맞추기 어려울 겁니다. 결국 후순위가 배당이나 마찬가지인 구조죠.

신용평가사들도 신용등급을 매겨야 할 시절

“어느 날 집으로 텔레포트되었지
론과 시드, 그리고 멕과 함께
론은 메기의 심장을 훔쳤고
나는 시드니의 다리를 달았네.”

코믹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한 문단이다. 이 구절은 사람을 텔레포트 시켜주는 <물질 이동 광선>의 조악한 성능을 노래한, 소설 속의 세계에서의 인기곡 가사다. 여러 명이 함께 텔레포트 되었는데 장기들이 뒤죽박죽 섞이고 손발이 뒤바뀐 우스운, 실제로 당한다면 경악할만한 상황을 익살스럽게 묘사한 센스가 맘에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고인이 된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를 위해서 잠시 묵념.

그런데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문득 ‘구조화 금융’이 떠올랐다. 구조화 금융을 “특정목적에 적합한 새로운 금융 또는 관리 구조를 조성(structuring)하는데 채권을 변형, 합성, 유동화하는 금융기법”이라 정의한다면, 론이 메기의 심장을 가져오고 내가 시드니의 다리를 다는 과정이 그 구조화 과정과 왠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단, 텔레포트 된 몸이 의도치 않은 과정으로 탄생한 괴물이라면, 구조화된 금융은 의도된 괴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시드니의 다리를 단 내가 이전의 내가 아니듯이 – 물론 시드니의 다리가 더 길고 예쁘다면 썩 나쁜 것은 아니지만 – 구조화된 금융상품도 전단계의 금융상품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살로먼브라더스의 루이스 라니에리가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한 모기지 증권은 30년 만기 모기지를 다양한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러 만기의 채권으로 변모시켜 이전과는 다른 채권이 되었다. 한 몸뚱이가 여러 개로 쪼개져 같은 듯 다른 채권이 된 것이다.

구조화 증권의 창시자들은 초기 이러한 금융기법을 동원하여 돈을 긁어모았다. 이후 이러한 기법이 전파되어 – 전파경로는 주로 보너스에 불만을 품고 이직한 베테랑 트레이더들이었다 ― 구조화 금융이 보편화되면서 시장참여자들은 질적으로나 양적인 면에서 이전과 다른 시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이 기여한 바는 유동성을 증폭시켜 금융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도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겠지만, 이후 세계가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했다.

즉, 그들의 (메기의 심장을 훔치는) 구조화 금융이라는 광선 덕분에 대출능력 없는 이가 집을 사고, – 한 다큐에 소개된 어떤 이는 10만 달러짜리 집주인인데 은행잔고가 500달러였다 – 엄격한 규정 때문에 투자를 못하던 기관도 투자를 하고, – 오렌지카운티처럼 예쁜 이름의 동네 펀드도 참가하고 – 집값 상승 덕분에 GDP도 올랐지만, 결국 자그만 위험이 흘러넘치며 시장은 붕괴되었고 급기야 제2의 대공황 직전까지 내몰렸던 것이다.

이 위기가 과연 누구의 책임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여전히 말이 많다. 투자은행, 헤지펀드, 파생상품, 느슨한 규제, 무책임한 채무자.. 다양한 용의자가 지목되고 있다. 이 와중에 막중한 역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도덕적 비난만 받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신용마피아”라 불리는 Moody’s, S&P, 피치 등 신용평가기관이 아닐까. 구조화 상품을 멋지게 포장해줘 채권자와 채무자사이로 돈이 용이하게 텔레포트 되게끔 도운 이들 말이다.

20세기 초 등장한 신용평가사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대공황 시절이었다. 당시 회사채의 상당수가 채무불이행에 빠졌으나 높은 등급의 채권일수록 부도확률이 낮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용평가의 효능을 확인한 것이다. 1970년대 미국 규제당국의 제도적 비호 속에서 소수의 신용평가사들이 시장을 과점한다. 오늘날 이들은 전체시장의 90%이상을 독점하며, 말 그대로 국제 자본시장의 민간 감독자(private sector regulator)로 군림하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이들의 위력은 막강하다. 즉, 표면상으로는 미국 국적의 민간회사에 불과한 이들이 일개기업이나 금융상품의 신용평가를 넘어서 국가의 신용등급까지 매기고 있어, 한 나라의 흥망이 이들의 신용평가에 의해 좌우될 정도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나 최근 남유럽에 대한 이들의 신용등급 강등이 미친 파급효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즉, 민간신용평가사는 ‘갑’이고 국민국가는 ‘을’이다.

한 가지 재밌는 게 이들의 평가업무는 본질적으로 언론보도와 같다는 주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신용평가사 본인들의 주장인데, 1990년대 파생상품 거래로 파산한 오렌지카운티가 S&P를 고소했던 사건 때의 주장이다. 당시 카운티는 S&P가 고위험 채권에 잘못된 신용등급을 부여해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피고 측은 신용등급 평가 업무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의사표현의 자유(free speech)에 해당된다고 항변하였다.(주2)

놀랍게도 법정은 피고 측의 손을 들어주어 책임을 면제시켜주었다. 이후 엔론 사태 등 유사사례에서도 법정은 신용평가사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최근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 사태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편들기가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즉, 재판정은 종래의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들의 의견이 공중이 아닌 선택된 투자자에게 “사적으로 배포된(distributed privately)” 것이기 때문이란 판단이다.

여하튼 신용평가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재확인이라도 하듯 그들이 “사적으로 배포하는” 평가등급 보고서에조차도 의례 “투자와 관련된 의사결정이나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써넣곤 한다. 하지만 시장참여자들은 그 문구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 어쩌면 신용평가사들도 그 문장에 시장참여자들이 지나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원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들이 가지는 ‘권위’는 그런 면피성 문구와 어울리지 않는다.(주1)

신용(credit)사회에서 그들의 ‘권위 있는’ 신용(credit)평가 덕분에 낯선 이들끼리도 채권을 주고받고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가장 위험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채권자가 채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상식인 금융시장에서 채무자의 정체도 모른 채 – 심지어 이런저런 구조화를 통해 채무자들을 믹서로 갈아버린 – 떠다니는 채권을 사들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판단근거는 상당부분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투자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평가등급 덕분이다.

개인적으로는 구조화 금융 자체가 온전히 이번 신용위기의 주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금융 자체가 주범이다. 모든 금융은 저마다 이런 저런 구조화를 하게 마련이다. 현대적 의미의 구조화 금융은 변동성이 커진 지금의 금융시장에 맞게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 대해 신용평가사들이 과대/과소평가 또는 시황을 적절히 반영하지 않은 평가의 반복을 통해 위기의 진폭을 증가시킨 것이다. 2008년에 바로 그러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투자은행들의 과욕이나 신용평가사들의 능력부족 등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과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극소수 민간 신용평가사들이 제도적 보호 속에 피평가자의 돈을 받아가며 평가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의사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 가격체계를 왜곡하는 구조적 모순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의 권위와 그들이 활동하는 생태계가 비대칭적으로 들어맞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무엇보다 신용평가사들의 독과점 구조를 깨고 책임 있는 당국이 그들의 행위를 감시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각국의 규제당국이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새로운 신용평가사들이 진입하거나 평가감독위원회가 설치되어도 이해상충과 책임방기의 문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수입구조 – 이를테면 국제적으로 추렴하여 조성한 평가수수료 기금? – 와 보다 강한 책임부여 등 질적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신용평가사들도 신용등급을 매겨야 할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주1) Moody’s의 정식명칭은 Moody’s Investors Services다.

(주2) 실제로 S&P의 모기업인 맥그로힐 그룹은 언론기업이다.

Originate-to-Distribute 모델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산은경제연구소 금융시장팀이 작성한 ‘금융위기와 은행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관련글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여태 읽어본 중에서는 금융위기의 원인과 그 진행과정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놓은 보고서가 아닌가 싶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금융위기와 은행 비즈니스 모델’ 다운 받기

보고서의 내용 중 인상 깊었던 일부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기로 하자.

보고서에서는 이번 금융위기가 가속화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전통적인 상업은행 모델인 ‘Lend-and-Hold 모델(L&H 모델)’에서 ‘Originate-to-Distribute 모델(OTD) 로 전환”을 들고 있다. 이는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설명했던 바, 자산을 통상 해당 기관이 보유하는 것과는 달리 증권화 및 유동화를 통해 자산을 투자자들에게 분배하는 모델로의 전환을 말한다.

그런데 이 증권화 과정은 거의 예외 없이 아래와 같은 구조화 과정을 거친다.

출처 : 해당 보고서

첨단(?)금융기법인 OTD 모델은 구조상으로 아름다운 형식미를 지니고 있다. ‘중개기관’은 ‘신용평가기관’ 등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상품을 설계하여, ‘자산보유자’와 ‘투자자’를 이어주어 시장을 형성시키기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이전의 단순한 L&H모델이라면 성사되지 못할 거래도 성사시킨다. 예를 들어 현물담보가 없는 A 기업이 좋은 사업아이템을 가지고 있어 신용평가기관이 그 사업에 대해 제3자적 입장에서 좋은 평가를 내리면 그것을 근거로 중개기관은 B 투자자에게 사업을 주선해주어 모두다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구조화 금융에 대한 또 다른 좋은 예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오용 사례로 전락해버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이제 그 단어는 ‘탐욕과 거품’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되어버렸지만 개념상으로는 구조화 금융을 통하여 대출 소외계층을 금융시장과 연결시켜준 고마운 금융상품이랄 수 있다. 이는 특히 하나의 풀(pool)에 ‘위험회피투자자(통상 senior debt을 부담하는 자)’와 ‘위험선호투자자(mezzanine 또는 equity를 부담하는 자)’를 담음으로써 가능하게 된 구조였다. “high risk, high return”의 전범이랄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모델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체제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한에는 – 심지어는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경제체제로 나아간다 할지라도 일정기간은 – 돈이 필요한 곳에 다양한 기법의 금융방식이 시도될 것이고, 구조화 금융은 마치 제조업에 있어서의 맞춤형 상품과 같이 개별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맞춤형 금융상품의 틀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조적인 모순이건, 일시적인 모순이건 간에 – 어느 쪽이건 모순이었다는 점은 동의하는 분위기 – 참가자 간 유인 불일치, 정보비대칭, 엄밀한 자산실사(Due Diligence)의 실패, 과도한 신용창출 등의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현재 이 구조화 금융이 도덕적 질타에 시달리면서 시장이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즉 지금 현재는 오히려 ‘군집행동(herding behavior)’에 따른 투자기피로 말미암아 구조화 금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극도의 보수적인 투자시장에서 썩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금융시장의 풍토 속에서는 그 순기능은 인정하면서 시장의 자금쏠림이나 신용창출이 어떠한 임계치를 넘어서기 전에, 이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이 현 경제체제에서의 거의 유일한 해법일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헤지펀드, 부외금융, 특수목적법인 등의 이른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의 규제다. 이제 다른 극적인 계기가 없는 한은 한동안 은행들이 그간 누려왔던 부외금융 효과는 누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구조화 금융, 그 자체가 악(惡)인가?

어찌 보면 구조화 금융도 사실 말이 어려워보여서 그렇지 기존의 자금조달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수도 있다. 자금조달은 금융시장 혹은 자본시장에서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또는 기관)과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또는 기관)이 시장에서 존재할 때에 발생한다. 즉 수요와 공급이 상호 맞교환되는 상황이다. 구조화 금융은 이러한 기존의 자금조달에서 몇 가지 특수한 기법이 더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구조화 금융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맞춤식 금융’이라고 이야기하겠다(어쩐지 동어반복처럼 들리지만). A 회사가 1백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경우 회사는 자체적인 판단으로 증자를 할 것인지 아니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것인지 결정하고 그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였다. 구조화 금융은 금융자문사가 그 자금조달의 목적 및 성격을 분석하고 그것의 자금조달 방안을 쪼갠다.

만약 이 자금이 부동산 개발사업에 쓰일 돈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회사의 운용자금과는 달리 일정수익의 창출이 기대된다. 그러므로 미래의 현금흐름의 분석이 중요하다. 큰 수익창출이 기대되면 이것을 바탕으로 자금공급자들에게 보다 유리한 조달조건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융자문사는 이 사업타당성을 검증해줄 객관적인 신용평가기관을 선정하여 자산실사(Due Diligence)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의 좋은 평가는 상품(즉 1백억 원의 자금조달)의 가치를 높여준다.

그 다음으로 자금조달 주체를 결정하는데 이 말은 A회사가 차주가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주체가 차주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소위 ‘부외금융(off-balance sheet financing)’ 기법인데 보통 A회사가 주주가 되는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인 B회사를 설립하여 B가 차주가 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통제받지 않고 대출을 증대시킨 주범으로 간주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SPC설립의 목적 중 중요한 것 하나는 자금의 사용을 A회사와 절연시켜 부동산 개발이라는 사업목적에만 쓰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B회사의 설립 여부가 결정되었으면 이제 1백억 원의 자금조달 구성방법이다. 일단 금융자문사는 A회사가 일정비율의 자본금(예를 들어 1백억 원의 20%)을 태워 책임감을 부여시키려 한다. 더불어 A회사 입장에서도 출자를 해야 그 배당을 얻게 된다. A사가 가장 많은 위험을 부담하는 동시에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갈 것이다. 그 다음으로 금융자문사 – 이제 주선의 기능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 는 80억원을 부담할 은행을 찾아 나선다. 은행은 A회사의 신용등급, 자산실사의 결과 등을 감안하여 B회사에 자금을 대출해준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신생회사인 B는 A회사에 준하는 대접을 받게 된다. 위험은 A회사보다 적고 수익(대출이자) 또한 상대적으로 적다.

1백억 원을 투입하여 부동산 개발을 하고 분양을 하여 1백 5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가정하자. 먼저 B회사는 대출이자를 10억원 내고 세금을 15억원 낸다. 나머지 25억 원은 A회사의 배당으로 지급된다. 그리고 B회사는 청산된다.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다. 이것이 선순환이다. 그런데 분양에 실패했다고 가정하자. 실패한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은행으로서는 부실대출이 된 셈이고 국가는 세금을 못 걷고 A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악순환이다.

이 과정이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거시적인 차원이나 미시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것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1) 경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구매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2) 해당 사업의 사업성이 우수하여야 할 것이고, 3) 이러한 과정을 신용평가기관이 자산실사에 충실히 담아야 할 것이고, 4) A회사의 사업수행능력이 뛰어나야 할 것이고, 5) 금융자문사가 구조를 잘 짜야 할 것이고, 6) 은행이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잘 이해하고 부실대출 방지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말이 그렇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대출업체의 막가파식 대출 – 즉 6번 과정의 실패 – 이 한몫했지만 이는 또한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집값이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는 1번 과정에 대한 과신이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금융기관들이 그렇게 광적으로 그 시장에 몰려들게 한 것은 3번 과정에서의 심각한 실패가 한몫하였다. 이 과정은 어쩌면 금화를 만듦에 있어 실질적으로 담겨야 할 금의 양보다 적게 만드는 악화(惡貨)의 주조과정과 비슷하다. 예전에는 그런 짓을 탐욕스러운 군주가 저질렀지만 이번에는 탐욕스러운 신용평가기관이 저질렀다.

예전에는 화폐 자체를 악으로 보기도 하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죄악시하기도 하고, 금융기관 자체를 금권주의의 상징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불태환 지폐를 사기라고 여기기도 하고, 지급준비율이 엉터리라고 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열거한 기능을 시장에 필요한 요소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느냐 하는 문제는 어찌 보면 보다 큰 시스템적인 문제일 것 같다. 같은 이치로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구조화 금융 그 자체를 지목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화폐가 나빠서 신용위기가 왔다기보다는 그 화폐를 지배하는 자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했는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구조화 금융에 대한 개괄

이번 금융위기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몇 가지 핵심적인 개념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다. CDO, CDS, ABS, MBS, 콘듀잇, 레버리지, 파생상품, SPC, 증권화, 유동화, 구조화, 모노라인, 신용평가사 등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 글에서 모두 설명할 수는 없고 큰 틀에서 사례로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철수는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A에 근무하는 친구다. 철수는 한국에서 직장이 있었지만 더 큰 꿈을 위해 탑클래스MBA에서 공부를 했고 운 좋게 월스트리트에까지 진출하여 얼마 전에 성공담으로 책까지 써냈다. 여하튼 이 친구 실적을 좀 내야겠기에 좋은 사업거리가 없나 고민한다.

어느 날 부동산업자 윌리엄이 그를 찾아와 샌프란시스코에 주택단지 부지를 보아놨으니 돈을 꿔달라고 한다. 윌리엄은 1천만 불이 필요한데 자신과 그의 개인기업 B 등이 다 합쳐야 1백만 불이 있을 뿐이었다. 철수가 알아보니 상당히 사업성이 있어보였다. 그런데 부지매입 문제와 윌리엄의 개인회사 B가 마음에 걸렸다. 부지매입 리스크가 있고 B회사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수는 윌리엄에게 이 사업(이름 하여 SF 프로젝트)을 유일한 사업목적으로 하는 회사 C를 설립하도록 권유한다. 이른바 ‘특수목적법인(SPC or SPV ; Special Purpose Company or Special Purpose Vehicle)’이다. 그리고 철수는 부지매입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이 리스크를 부담하고라도 돈을 빌려줄 용의가 있는 헤지펀드 D에게 대출을 해줄 것을 권유한다. D는 C에게 부지매입자금 4백만 불 중 윌리엄의 출자금 1백만 불을 제외한 3백만 불을 높은 이자에 빌려준다. 이른바 mezzaine loan(굳이 번역하자면 중간대출 쯤?) 또는 bridge loan(자본금과 본 대출의 가교라는 의미에서).

마침내 부지매입과 인허가가 완료되어 SPC인 C는 D에게 돈을 갚는다. 그리고 투자은행 A로부터 본 대출 6백만 불을 받고자 한다. 철수는 금리를 낮추고 대출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신용평가기관 E로 하여금 SPC C의 평가등급을 요청한다. E평가기관 영이는 최근 부동산 경기도 좋고 철수와 친해서 SPC의 등급을 A등급을 준다.

철수는 그런데 회사에 6백만 불이라는 대출채권을 남겨놓고 싶지 않았다. 대차대조표 상에 표시되고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져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산담보부채권, 즉 ABS(asset backed securities)를 발행하기로 했다. 채권등급도 좋겠다 시장상황도 좋겠다 너도 나도 산다고 해서 한국의 투자은행, 독일의 투자은행 등에 팔았다.

이것이 대충 구조화 금융(structured financing)의 큰 틀이다. 사업을 증권화(securitization)하여 다른 이들에게 유동화(liquidation)한 과정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모두가 행복하다. 윌리엄은 이 사업을 통해 2천만 불의 매출을 올려 각종 비용, 이자, 세금을 제외하고도 4백만 불을 벌었다. 철수는 이자와 금융수수료를 챙겼다. 영이도 신용평가수수료를 챙겼다. ABS를 인수한 각국 은행들도 안전자산에 투자해 소득을 올렸다.

까지가 기초자산이 붕괴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이 글에서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라는 단기승부의 사업을 예로 들었지만 실제로 미국 전역을 흔든 위와 같은 구조화의 많은 부분이 실수요 소비자들의 모기지 대출에도 쓰였다. 전통적으로 위험대출군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저소득층들이 갑자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가능군으로 분류되었고 그 뒷돈을 대준 것은 수많은 도관체(conduit, 앞서 설명한 SPC들)를 통한 자금들이었다. 즉 위험을 분리하여 나눠가지고 이에 따른 소득도 나눠가지는 자금들. 유동성이 증가한다.

여기에서 양질전화의 법칙이 가동한다. 유동성이 증가하여 자산이 증가하고 소비가 증가하고 수요가 불붙고 또 다른 사업에서 자산에 따른 담보가 증가하고 대출은 늘고 유동성이 더욱 증가하는 그 순환고리에서 자산의 거품이 임계치에 달하자 늘어나는 자산은 어느 순간 환희가 아니라 공포가 된다.

약간의 자산가치 하락이 순간 시장이라는 큰 와인 잔에서 넘치더니(spill over), 시장참여자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안전자산이라 여겨지던 자산이 한 순간에 부실자산으로 둔갑한다. 마치 자정이 지난 후의 신데렐라의 행색처럼 말이다. 어느 순간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이 유동화 증권을 시가평가 방법에 따라 대규모 상각에 나섰고 그 뒤 상황전개는 많은 이들이 보는 바와 같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대강 느꼈겠지만 사실 이런 시장행위들을 싸잡아 날강도들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시장은 늘 그렇듯이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월스트리트건 부동산 업자건 애초 상종 말아야 할 돈벌레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는 시스템 리스크인 측면이 강하다. 건전한 경제는 그 안에 숨 쉬는 인간의 도덕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요는 그들에 대한 타당한 통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그 통제를 마비시킨 우두머리들의 부도덕에 따른 폐해는 엄청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