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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te-to-Distribute 모델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산은경제연구소 금융시장팀이 작성한 ‘금융위기와 은행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관련글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여태 읽어본 중에서는 금융위기의 원인과 그 진행과정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놓은 보고서가 아닌가 싶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금융위기와 은행 비즈니스 모델’ 다운 받기

보고서의 내용 중 인상 깊었던 일부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기로 하자.

보고서에서는 이번 금융위기가 가속화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전통적인 상업은행 모델인 ‘Lend-and-Hold 모델(L&H 모델)’에서 ‘Originate-to-Distribute 모델(OTD) 로 전환”을 들고 있다. 이는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설명했던 바, 자산을 통상 해당 기관이 보유하는 것과는 달리 증권화 및 유동화를 통해 자산을 투자자들에게 분배하는 모델로의 전환을 말한다.

그런데 이 증권화 과정은 거의 예외 없이 아래와 같은 구조화 과정을 거친다.

출처 : 해당 보고서

첨단(?)금융기법인 OTD 모델은 구조상으로 아름다운 형식미를 지니고 있다. ‘중개기관’은 ‘신용평가기관’ 등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상품을 설계하여, ‘자산보유자’와 ‘투자자’를 이어주어 시장을 형성시키기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이전의 단순한 L&H모델이라면 성사되지 못할 거래도 성사시킨다. 예를 들어 현물담보가 없는 A 기업이 좋은 사업아이템을 가지고 있어 신용평가기관이 그 사업에 대해 제3자적 입장에서 좋은 평가를 내리면 그것을 근거로 중개기관은 B 투자자에게 사업을 주선해주어 모두다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구조화 금융에 대한 또 다른 좋은 예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오용 사례로 전락해버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이제 그 단어는 ‘탐욕과 거품’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되어버렸지만 개념상으로는 구조화 금융을 통하여 대출 소외계층을 금융시장과 연결시켜준 고마운 금융상품이랄 수 있다. 이는 특히 하나의 풀(pool)에 ‘위험회피투자자(통상 senior debt을 부담하는 자)’와 ‘위험선호투자자(mezzanine 또는 equity를 부담하는 자)’를 담음으로써 가능하게 된 구조였다. “high risk, high return”의 전범이랄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모델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체제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한에는 – 심지어는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경제체제로 나아간다 할지라도 일정기간은 – 돈이 필요한 곳에 다양한 기법의 금융방식이 시도될 것이고, 구조화 금융은 마치 제조업에 있어서의 맞춤형 상품과 같이 개별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맞춤형 금융상품의 틀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조적인 모순이건, 일시적인 모순이건 간에 – 어느 쪽이건 모순이었다는 점은 동의하는 분위기 – 참가자 간 유인 불일치, 정보비대칭, 엄밀한 자산실사(Due Diligence)의 실패, 과도한 신용창출 등의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현재 이 구조화 금융이 도덕적 질타에 시달리면서 시장이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즉 지금 현재는 오히려 ‘군집행동(herding behavior)’에 따른 투자기피로 말미암아 구조화 금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극도의 보수적인 투자시장에서 썩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금융시장의 풍토 속에서는 그 순기능은 인정하면서 시장의 자금쏠림이나 신용창출이 어떠한 임계치를 넘어서기 전에, 이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이 현 경제체제에서의 거의 유일한 해법일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헤지펀드, 부외금융, 특수목적법인 등의 이른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의 규제다. 이제 다른 극적인 계기가 없는 한은 한동안 은행들이 그간 누려왔던 부외금융 효과는 누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