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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사태의 원인제공자에 대한 두 개의 상반된 입장

OPEC에서 가장 큰 수출업자로서, 사우디는 배럴당 37달러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가게 한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한 감산을 거부했다. 이는 이란이 오바마와의 핵협정을 통해 향상된 생산능력으로 원유를 수출하는데 대한 혜택을 대폭 감소시킬 것이다. [중략] 이러한 어떤 수단들도 이란-사우디의 직접적인 갈등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재 하일지라도 지난달 이란이 USS 트루만(미항공모함 : 역자주)의 1500 야드 내로 로켓을 발사할 명분은 없었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자 함일 것이다. [Who Lost the Saudis?]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사우디의 집권 왕조가 “47명의 대량 처형이 분노에 찬 반발을 촉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이 더 진행하기 전에 그들의 정보기관이 최고의 비상단계를 유지할 것을 지시”한 사우디 정부의 메모를 공개했다. [중략] 아랍권에서의 탄압과 반작용의 중핵으로서의 사우디 왕조는 국내에서의 점증하는 반정부 세력을 분열시키고 지역에서의 주요한 라이벌인 이란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수단으로 수니와 시아 사이의 긴장을 고의로 높여서 이를 활용하는 분파주의의 선도적인 선동자다.[Middle East tensions escalate in wake of Saudi mass beheadings]

현재의 중동사태에 대한 서로 상반된 입장의 글이라 한곳에 모아보았다. 첫 번째 글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글이다. 이글은 이번 사태가 사우디의 원유공급량 유지 등에 대한 이란과 러시아의 도발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글의 말미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사우디가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우리의 절친(the best friend we have in the Arabian peninsula)”이며 미국이 왕국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현 사태의 귀책은 감히 미항공모함 근처에 미사일을 쏘아서 – 미국의 추가 제재의 위기에 놓인 – 이란이라는 것이 WSJ의 생각이다.

한편 두 번째 인용 글은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World Socialist Web Site)’라는 거창한 이름의 매체의 글이다. 이 글은 사우디 정부가 자국의 대량 처형이 불러올 후과를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사우디는 예상했던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이란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포했다. WSWS는 사우디의 이런 행동을 “분파주의의 선동자”라며 비난하고 있다. 어쨌든 애초부터 무리수가 있었던 처형과 이어진 반발, 이에 대한 빠른 대처를 볼 때 사우디의 행동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라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하는 두 매체의 글이 공통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대결구도는 대략 ‘미국과 사우디 對 러시아와 이란’ 인 것 같다. 지난번 예멘 내전이 이란과 사우디 간의 대리전의 성격이 짙다면 이번 갈등은 러시아와 미국 간의 대리전의 성격이 짙은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사우디와 이란 간의 힘의 균형추 이동을 통해 중동에서의 새로운 패권구도를 정립하려고 하는 것일까?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을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이번 갈등은 단순히 시아와 수니 간의 종교 갈등을 넘어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갈등의 원천인 유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전문 컨설팅사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역설적으로 유가가 폭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즉, “이란이 시장에 보다 많은 원유를 공급하려고 시도한다면 사우디가 생산량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인용한 WSJ의 분석과 유사한 논리다. 이란 역시 경제제재가 풀린다면 감산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일시 급등했던 유가도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어쩌면 이 사태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가 저유가일 수도 있다는 사실, 참 역설적인 상황이다.

재밌는 것은 언급된 네 나라 모두 산유국이다.

스스로 ‘노동의 유연화’ 대상이 될 경영 컨설팅 업계

요즘 프로젝트 규모가 작고 예산도 작은 기업들을 위해 간단한 해결책이 생겼다. 바로 경영대학원(MBA)생을 임시 고용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중략]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생 3 명이 창업하고 투자자 마크 쿠반이 투자한 ‘아우어리너드’는 2,700 명 이상의 일류 경영대학원 출신 MBA 컨설턴트를 확보했고, 지난 9월에 서비스를 선보인 이후 약 150 건의 프로젝트를 중개했다. [중략] ‘빅 3’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 배인앤컴퍼니, BCG는 견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여전히 많은 경영대학원생들이 선호하는 직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규모 프로젝트를 위해 MBA 프리랜서를 찾는 다국적 대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앞으로 상황이 변화할 수도 있다. [중략] 사모펀드인 ‘SFW캐피털파트너스’는 작년 가을 또 다른 MBA 중개업체인 ‘스킬브리지’를 통해 자사가 투자 기회를 평가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창출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았다. 펜실베니아대의 와튼 경영대학원 재학생이 완료한 이 프로젝트는 약 30 시간이 걸렸고 비용은 5,000 달러 정도가 소요됐다.[전통적 컨설팅 모델 막 내리나, MBA 출신 임시 고용 증가 추세]

WSJ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소개한다. 전통적으로 최고급의 컨설팅 서비스로 간주되었고 그에 상응하게 높은 수수료를 받아 경영대학원 졸업생이 선호하는 직종이었던 경영 컨설팅 서비스 업계에 새로운 트렌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요약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랜 전통과 권위를 지니고 있던 맥킨지 등의 경영컨설팅사가 여전히 건재하지만, 그들의 높은 수임료가 부담이 되거나 또는 컨설팅 범위가 그리 크지 않은 기업들이 이른바 중개업체를 통한 프리랜서의 활용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최상층 노동 단위에서조차 이른바 ‘노동의 유연화’나 ‘다품종 소량생산’ 등으로 대표되는 탈(脫)포디즘적 경향이 강화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각해보건데 이러한 경향은 크게 두 가지 구조적인 배경을 통해 강화될 것으로 짐작된다. 첫째, 젊은 MBA졸업생에게는 이전과 같은 쉬운 구직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덜 숙련된 노동이지만 보다 싼 비용으로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것을 수용한다. 둘째, 대개의 유연적 노동이 그러하듯 기술발전이 중개비용을 감소시켜 시장성이 높아진다.

과문하여 아직 우리나라에서 저러한 경영 컨설팅 업체가 등장하였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앞서 말한 첫 번째 조건이 이미 사회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은 개인적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변호사, 회계사 등 고도 성장기에 각광받아 왔던 “고급 컨설팅 업종”의 수임료는 상당히 낮아지고 있다. 명함에 핸드폰 번호를 적지 않던 변호사의 명함에 핸드폰 번호가 적힌 지는 이미 꽤 오래 됐다. 새로 배출되는 변호사, 회계사, MBA 졸업생들은 간신히 취직을 하더라도 상후하박(上厚下薄)의 조직에 머물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어제 쓴 글에서 강남의 학부모들이 SKY 진학을 ‘사람구실하며 살기 위한 출발점’으로 여길 것이라 했는데 그 합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전통적인 쁘띠부르주아 계급으로 여겨지던 직종에서조차 그들의 자존심과는 무관하게 노동의 유연화와 더 낮은 임금을 강요받는 사회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경영 컨설팅 업체가 대기업 제조공장에서의 “경직적인” 노동인력의 “비효율성”을 비판하여 요구하였을 “유연화”를 통한 탈(脫)포디즘적 전략은, 이제 스스로의 작업장에게도 적용되는 현실이 된 셈이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 위기

서구 경제계나 언론이 요즘 중국경제에 관하여 가장 주목하는 부문은 금융부문이다. 이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금융으로 기능하고 있는 그림자 금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중국 ‘그림자’ 대출기관, 위기 모면했지만”이라는 글을 통해 중국의 그림자 금융의 위험함을 경고하고 나섰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러한 그림자 금융은 신용위기 전의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이 많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우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기사가 소개하고 있는 중청신탁 사례는 과거의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자산처럼 급증하고 있는 신탁의 자산이 석연치 않은 과정을 통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중청신탁의 경우에는 투자대상이 광산업체인 ‘젠푸에너지그룹’이었다. WSJ에 따르면 해당 회사는 석탄 가격 급락과 지역민원 등으로 채산성이 악화되었음에도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투자자의 도움을 얻어 700여명의 투자자가 약간의 이자만 손해보고 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데이빗 쿠이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중국담당 전략가는 “문제는 쓸모없는 프로젝트에 투입된 대출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하는데, 중청신탁의 자산도 그런 자산 중에 하나가 될 뻔 했으나 돌연 익명의 투자자의 도움으로 생명이 연장된 셈이다. 이 신탁의 33%를 국영 중국인민보험공사가 소유하고 있고, 젠푸 투자상품의 대리인이 중국공상은행이었다는 점에서 그 구원투수의 정체성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통파가 아닌 꼼수파 구원투수인 점이 한계다.

공식적으로 중국은 2013년 4분기에 전년 대비 7.7% 성장하여 정부의 목표 7.5%를 상회했다. 하지만 도시 거주자의 실질 가처분소득 연성장률이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내수기반은 경제성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중국경제는 이런 수요 공백을 그림자 금융을 통한 필요 이상의 투자로 메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금융이 투자자에게 원금을 돌려주지 못할 때 환매나 신규투자 금지, 대리은행의 건전성 악화 등 신용위기 당시의 풍경이 재연될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걱정하는 예외적인 한국의 치킨집 붐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새 차나 가전제품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해 대출을 하고 있다. 한국의 기이한 은퇴제도 때문이다. 대기업 직원들은 종종 50대에 은퇴를 강요받는다. 하지만 연금은 생활을 이어가기에 너무 부족해 많은 은퇴자들이 작은 사업을 시작한다. 2,400만 한국인 노동자 중 25%가 자영업자다. 미국은 6%뿐인 것과 대조된다. 50대 노동자만 두고 보면 수치가 32%로 치솟는다. 서울에 위치한 KB금융그룹은 한국에서 매년 7,400개 치킨집이 새로 문을 여는 한편 기존 치킨집 5,000개는 파산한다고 밝혔다. 절반에 가까운 치킨집이 3년 내 문을 닫고 10년 내에는 80%가 폐업한다.[한국, 자영업 늘고 가계부채 급증 ‘치킨집 버블’ 터질라]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월스트리트저널의 한국 관련 기사 일부다.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한 사실관계지만 “기이한 은퇴제도”, “25%가 자영업자”, “80%가 폐업” 키워드를 몇 개만 뽑아 봐도 가히 공포소설 수준이다. 기사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해 대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1천조 원에 달하는 가계대출이 한국인이 과소비를 해서라기보다는 호구지책을 위한 대출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 나온 이 그래프를 보더라도 자영업자의 증가와 가계부채의 증가에는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2년 3월 현재 자영업자의 부채규모는 492조 원으로 전체 가계부채와 비교하면 39%수준이다.1 심각한 문제는 2010년 12월 현재의 36%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219.1%로 임금근로자 125.8%를 크게 상회하고 있어 악성채무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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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영업자 부채규모 추이(출처)

전 세계가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므로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고 자위해도 될까? 아래 그래프를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부채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 다른 나라들이 주로 정부와 기업부채가 늘고 있는 반면, 우리는 눈에 띄게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랑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나라는 중국 정도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영업자 대출이 가계와 기업대출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상황은 매우 안 좋아 보인다.


나라별 부채종류별 증감추이(출처)

자본주의의 미덕, 그중에서도 시장근본주의의 미덕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은 소위 “자기책임”을 강조한다. 자영업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스스로의 책임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그들의 구미에 맞을 경제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자기책임의 경제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화된, 그렇게 해서 실업률과 부채악화의 책임이 자영업자의 뒤로 감춰진 한국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자본주의의 모습인지는 의문이다.

일본 엔화 하락으로 돈 번 사람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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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Y Banknotes” by Tokyoship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조지 소로스 하면 1992년 파운드를 방어하려는 영국중앙은행과 맞장을 뜬 “환투기꾼”이자,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사유하는 “철학자”라는 독특한 삶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인물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이 억만장자 철학자가 일본 엔의 하락세에 베팅하여 파운드 전쟁에서의 노획물에 버금가는 10억 달러의 이익을 거둔 사실을 – 물론 물가가치를 고려하면 그때의 혁혁한 전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 보도했다.

엔화의 하락에 베팅하는 것은 소심한 이가 할 짓이 못된다. 일본은 몇 년간 자신의 화폐를 절하하여 경제와 주식시장을 재점화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왔다. 그 기간 동안 엔화와 일본 국채에 대해 숏포지션을 취한 많은 이들이, 화폐와 채권이 오히려 상승함에 따라 두들겨 맞았다. 일본은 월스트리트에서는 “과부 제조기”로 알려지게 됐다.[중략]

소로스의 예전의 영국 파운드 하락에 대한 매도와 달리, 소로스와 다른 헤지펀드들의 최근의 움직임들은 일본이나 엔화를 불안정하게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부분적으로 일본 엔화의 거래가 투자자들이 좌지우지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광범위한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일본의 부채는 국내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고, 비관적인 투자자들의 그 나라에 대한 숏포지션이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다.

동시에, 소로스의 파운드에 대한 술수는 영국중앙은행의 정책들에 반하는 것이었던 반면, 지금의 헤지펀드들은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려는 일본중앙은행의 정책이 성공하길 기원하면서 거래를 했다.[U.S. Funds Score Big by Betting Against Yen]

그러니까 소로스를 비롯하여 이번에 큰돈을 번 투자자들은, 1992년의 전투에서와 같이 정부의 의지에 반하는 묘수를 부릴 필요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정부로부터 욕을 먹을 일도 없었다. 그들은 떨어지는 엔화의 급류에 몸을 맡기고 돈을 벌어들이는 재미를 만끽하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WSJ기사에서도 말하듯 내리막이 생기는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엉뚱한 때에 몸을 던졌다가는 과부만 제조되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아베 정권 등장과 “무제한적 양적완화레토릭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WSJ도 지적하듯 이전 정권도 그런 시도를 했지만 지금처럼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본 시티은행의 다카시마 수석 애널리스트는 IMF의 새로운 환평가 모델에 근거해 적정 환율이 1달러당 95엔이고 지금 그 시점으로 복귀하는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아베는 한 계기일 뿐이란 것이다.

다카시마는 그 예로 2001년에서 2006년에도 일본은행이 양적완화를 실시했지만 외환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사례를 들고 있다. 당시 일본의 양적완화를 무력화시킨 것은 Fed의 금리인하와 이에 수반된 달러 약세였다. 흥미롭게도 지금의 Fed 수장인 벤 버냉키는 당시 일본이 과감한 통화정책을 통해 불황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논문을 썼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호의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환율에 관해서 할 말이 많을 폴 크루그먼은 한발 더 앞서가 “환율전쟁”이라는 표현은 “순전히 오해(it’s all a misconception)”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다른 저명한 경제학자 베리 아이켄그린의 주장을 빌어 1930년대의 상황조차 최악의 경우에라도 경쟁적인 환율 약세를 통해 “최초의 지점(where they started)”으로 회귀한 것이며, 이번의 “환율전쟁”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에는 “순이익(a net plus)”으로 남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벤 버냉키나 폴 크루그먼이나 “환율전쟁은 근린궁핍화 정책이다”라는 전통적인 주장에서 동떨어져 있는데, 과연 그들의 예언이 어느 정도나 현실에서 실현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폴 크루그먼은 1930년대 당시 상황 악화의 원인을 금본위제 탈피에서 들고 있지만 어쨌든 당시의 상황을 “전쟁”으로 표현하는데 무리는 없고, 플라자합의도 넓게 봐서는 “환율전쟁”의 파편이 심각한 외상을 입힌 사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s. 현재의 “환율전쟁”이 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코노미스트의 긴 글이 있으니 흥미있으신 분은 읽어보시도록…(난 안 읽었다능)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박정희 체제”의 종식

재벌의 모순은 급속한 경제개발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50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남한은 한정된 자원에서 어려운 선택을 했던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풍요를 일구어냈다. 정부는 특정 기업들을 선정하여 업계를 주도해나가도록 했고, 승자가 되게끔 판정했으며, 그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때까지 경쟁으로부터 보호했다.
[중략]
오늘날,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남한의 1,800개 상장기업 중 1,600개 정도가 55개 대기업 집단에 속해 있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에서 2011년까지 상위 10개의 재벌의 매출이 이 나라의 GDP의 70%를 차지한다.
[중략]
현대 그룹의 건설부문 CEO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전에 “비즈니스 프렌들리” 공약을 내세웠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대기업이 정부의 허가 없이 토지를 매입할 수 있게 했고 오랜 기간 유지되었던 투자제한을 철폐했다. 그가 집권한 4년 동안, 상위 10개 대기업의 매출은 연평균 13% 증가했는데, 전임자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연 3%였다.[South Korea Pushes to Curb Conglomerates]

한정된 자원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박정희나 그의 후임자들이 택한 전략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이 기사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정권이 선택한 기업들을 보호하는 전략이었다. 일종의 유치산업(幼稚産業)을 보호하는 전략이었거니와, 더불어 유치기업까지 보호한 셈이다. 정부의 비호 아래서 재벌들은 순환출자 등을 통해 소수의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국내 상장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거의 모든 업종에 그들의 영업망을 걸쳐놓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왜곡된 경제 시스템을 창출한 독재자의 딸이 이제 그러한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며 “경제민주화”라는 이슈를 선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형식적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그 정책공약은 미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던 바로 그 정당의 후보로서 재벌개혁을 선거의 이슈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경제에 대한 관념이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스탠스로 옮겨졌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문재인 씨와 안철수 씨가 더 강경한 노선으로 옮겨진 것인가에 대해선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문재인 씨의 대기업 관련 공약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법’ 제정,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시제도, 순환출자 금지 등이 있지만 보다 구조적인 공약은 내놓지 않았다. 안철수 씨의 공약은 아직 특별한 것이 없다. 요컨대 그들의 생각도 급진적이지는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건전한 시장경제”정도다.

급진적이지 않으면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그것은 재벌 개혁이 대선후보들의 가장 핵심적인 공약인 “일자리 창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WSJ의 보도에 따르면 상장기업과 GDP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들 기업이 전체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대기업 고용이 장래에 급격하게 늘어날 개연성이 적은 지금, 중소기업 업종 보호와 같은 소극적인 정책은 일자리 창출, 이를 통한 내수 활성화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재벌 체제하에서 경쟁력을 키워온 전자, 자동차, 철강과 같은 업종이 전후방 연계효과로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동차에서 보듯이 그 고용은 파견직, 비정규직과 같은 질 낮은 일자리로 채우고 있다. 저임금 노동력 사용으로 인한 비용절감분은 주주에게 돌아간다. 골목상권의 진입은 또한 자영업자의 한계이익을 감소시켜 고용을 비례적으로 감소시킨다. 이러한 순환구조 속에서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있다.

이헌재 씨는 그의 저서 “위기를 쏘다”에서 박정희 이후 모든 정부는 경제적으로 “박정희 체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발언한다. 이후 “민주정부”가 민주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와 사회분야에 국한된 것이고, ‘재벌 특혜, 수출 중심’의 “박정희 체제”는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일 것이고 나도 이에 동의한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도로 민주정부”를 원하는 여론도 우려스럽다. 정말 그 정도면 족한가? 재벌이 건재한 “민주화된 건전한 시장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