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남한이 시행할 계획경제 정책

소비시장은 매우 효율적이지만 또한 ‘욕구 충족’이라는 낭비적인 메커니즘에 의존하고 있다. 소비시장은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깃의 소비자를 어떻게든 확보하기 위해 그들은 생산품을 쏟아 부어 소비자가 감당 못할 만큼의 양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소비사회의 ‘교육시장’은 시장의 이런 일반적인 논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국가는 최근 몇 십 년 동안 고등교육기관의 수와 학생의 수는 전례 없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학교육과 고등교육 학위의 가치는 떨어졌다.[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택광/박성훈 옮김, 자음과 모음, 2013년, p130]

폴란드에서 태어나 공부를 했고 맑스주의 이론가이자 교수로 재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폴란드 공산당의 반시오니즘으로 인해 영국으로 망명하여야 했던 현존하는 지식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유다. 맑스가 말한 자본주의에서의 과잉생산 경향을 충실히 서술하고 있으며, 이 논리를 그대로 교육‘상품’ 시장에 적용하고 있다. 바다 건너 유럽에 머무는 철학자의 생각이지만 우리나라의 교육현실만큼 이 사유에 걸맞은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삼성의 서류전형 부활과 이 업무를 각 대학의 총장에게 위임한, ‘일개 기업에 의한 각 대학총장 신규보직 인사발령’ 사건이 아니라도 이미 우리 대학은 자본에게 포섭되어 있는 상태다. 가장 큰 이유는 바우만의 생각처럼 우리나라에 대학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자원부족의 국가에서 압축 성장을 통한 경제발전을 기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인력자원’의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그 주된 수단은 대학교육을 통한 고등교육 인력의 양성이었다.

결과론적으로 그 전략은 주효했다. 세계시장에서 손꼽히는 기업도 몇 개 가지게 되었고 학생들의 수학능력은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우리 경제가 저성장기에 진입했으며 인구가 계속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대학 시장은 과잉공급이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교육시장에서는 취업난, 학벌 인플레이션, 대학수요의 수도권 집중화, 특목고의 명문대 입학과점 등의 각종 부작용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강남의 학부모들은 이제 자녀들의 “SKY” 진학을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 아닌 ‘사람 구실하며 살기 위한 출발점’으로 여기고 있다. 그 이외 대학은 공급과잉의 교육시장에서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맑스의 상품 과잉공급 이론을 생생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분들이라고나 할까? 정부 역시 입학정원 축소가 이 시장의 필수 과제임을 인지하고 있다. 자본주의 남한이 시행할 계획경제 정책이다.

시장에 맡기라는 배부른 소리를 할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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