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박정희 체제”의 종식

재벌의 모순은 급속한 경제개발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50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남한은 한정된 자원에서 어려운 선택을 했던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풍요를 일구어냈다. 정부는 특정 기업들을 선정하여 업계를 주도해나가도록 했고, 승자가 되게끔 판정했으며, 그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때까지 경쟁으로부터 보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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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남한의 1,800개 상장기업 중 1,600개 정도가 55개 대기업 집단에 속해 있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에서 2011년까지 상위 10개의 재벌의 매출이 이 나라의 GDP의 7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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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그룹의 건설부문 CEO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전에 “비즈니스 프렌들리” 공약을 내세웠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대기업이 정부의 허가 없이 토지를 매입할 수 있게 했고 오랜 기간 유지되었던 투자제한을 철폐했다. 그가 집권한 4년 동안, 상위 10개 대기업의 매출은 연평균 13% 증가했는데, 전임자 노무현 대통령 때에는 연 3%였다.[South Korea Pushes to Curb Conglomerates]

한정된 자원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박정희나 그의 후임자들이 택한 전략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이 기사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정권이 선택한 기업들을 보호하는 전략이었다. 일종의 유치산업(幼稚産業)을 보호하는 전략이었거니와, 더불어 유치기업까지 보호한 셈이다. 정부의 비호 아래서 재벌들은 순환출자 등을 통해 소수의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국내 상장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거의 모든 업종에 그들의 영업망을 걸쳐놓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왜곡된 경제 시스템을 창출한 독재자의 딸이 이제 그러한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며 “경제민주화”라는 이슈를 선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형식적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그 정책공약은 미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던 바로 그 정당의 후보로서 재벌개혁을 선거의 이슈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경제에 대한 관념이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스탠스로 옮겨졌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문재인 씨와 안철수 씨가 더 강경한 노선으로 옮겨진 것인가에 대해선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문재인 씨의 대기업 관련 공약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법’ 제정,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시제도, 순환출자 금지 등이 있지만 보다 구조적인 공약은 내놓지 않았다. 안철수 씨의 공약은 아직 특별한 것이 없다. 요컨대 그들의 생각도 급진적이지는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건전한 시장경제”정도다.

급진적이지 않으면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그것은 재벌 개혁이 대선후보들의 가장 핵심적인 공약인 “일자리 창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WSJ의 보도에 따르면 상장기업과 GDP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들 기업이 전체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대기업 고용이 장래에 급격하게 늘어날 개연성이 적은 지금, 중소기업 업종 보호와 같은 소극적인 정책은 일자리 창출, 이를 통한 내수 활성화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재벌 체제하에서 경쟁력을 키워온 전자, 자동차, 철강과 같은 업종이 전후방 연계효과로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동차에서 보듯이 그 고용은 파견직, 비정규직과 같은 질 낮은 일자리로 채우고 있다. 저임금 노동력 사용으로 인한 비용절감분은 주주에게 돌아간다. 골목상권의 진입은 또한 자영업자의 한계이익을 감소시켜 고용을 비례적으로 감소시킨다. 이러한 순환구조 속에서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있다.

이헌재 씨는 그의 저서 “위기를 쏘다”에서 박정희 이후 모든 정부는 경제적으로 “박정희 체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발언한다. 이후 “민주정부”가 민주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와 사회분야에 국한된 것이고, ‘재벌 특혜, 수출 중심’의 “박정희 체제”는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일 것이고 나도 이에 동의한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도로 민주정부”를 원하는 여론도 우려스럽다. 정말 그 정도면 족한가? 재벌이 건재한 “민주화된 건전한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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