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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의 진원지에 존재하는 여전한 위기

26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주택 재고는 이 나라의 주식시장의 총액보다 약간 더 많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 층이다. 11조 달러에 달하는 부채의 미국 모기지 금융 시스템은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금융 리스크가 가장 크게 집중된 곳일 것이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약 1조 달러의 모기지 부채를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어 국제 금융 시스템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가혹한 경기침체기에 폭발한 이래 10여년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고 있는 곳이다.[Comradely capitalism]

전 세계의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이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 여부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면, 그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은 미국 주택시장의 부침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리고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미국 주택시장의 자산 규모는 단일 시장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따라서 이 시장에는 당연히 수많은 투자자들과 그들을 돕는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 풍경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까지의 풍경이었고, 그 이후의 상황은 잘 아는 바와 같다.

두 번째의 큰 변화는 2008년 12월의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긴급 구제조치가 정부의 더 커다란 역할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전에는 민간이 운영했던(비록 암묵적으로 보증은 하고 있었지만) 모기지 회사들인 프레디맥과 패니메의 대주주가 됐다. 이들은 이제 “후견체제(conservatorship)”, 종결될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 일종의 명목상의 한시적인 국유화 체제 하에 있다. 다른 증권화 업자들은 퇴출했거나 파산하였다. 이는 대부분 민간 부문에서 이루어졌던 부채의 증권화가 이제 거의 완전히 국영화됐음을 의미한다.[같은 글]

이코노미스트의 저 기사 제목을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인용문의 맥락에서 보자면 저 제목은 “동지적 자본주의”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 형태를 띠고 있는 현 체제의 상류에 거슬러 올라가면, 즉 전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을 좌우하는 그 시장은 국유화됐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상황을 묘사한 기사의 제목을 저렇게 지은 것이다. 요컨대 2008년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가 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체제는 사회주의라는 게 기사의 논지다.

한편 “동지적 자본주의” 성향은 채권자 현황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는데, 정부 모기지 채권의 27%에 해당하는 1조8천억 달러의 채권을 Fed가 매입했기 때문이다. 즉, 이는 국영 모기지 회사들이 금융위기 이후 전체 채권 중 60% 이상의 – 심지어는 80% 이상까지 – 보증부 채권을 발행했고, 이를 다시 Fed가 매입하여 가동시킨 시장이 바로 미국의 주택 모기지 시장이란 의미다. 시장은 존재하는데 그 시장의 주요 공급자와 주요 수요자가 정부부문인 시장, 그렇다면 이 체제는 “시장 사회주의”인가?


미국의 모기지 신규 발행분 조달 재원(출처 : 이코노미스트)

사실 그동안 미국정부는 국영 모기지 회사들을 다시 민영화시키려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1 Fed도 한시적으로 채권을 매입하겠다는 심산이었지만 상시적 조치가 되었다. “국유화”란 표현조차 “후견체제”라는 표현으로 세탁하였지만, 근시일 내에 이런 한시적 체제가 해소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미국 주택시장이 다시 호조를 보인다는 뉴스는 큰 의미가 없다. 리스크가 노출돼 폭락한 시장을 정부보증의 리스크 제로로 둔갑시킨 것은 닷컴버블의 변이인 닷거브버블(dot gov bubble) 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대안은 어쨌든 이들 국영 모기지 회사를 증자 및 수수료 인상 등의 방법으로 건전화시켜 민영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을 것이고 또다시 주택시장을 깊은 악순환의 수렁에 빠트릴 수 있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전부터 이미 프레디맥과 패니메는 “정부보증기업(government-sponsored enterprise : GSE)”이란 이름의 국유기업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리고 그들의 보증부 채권이 시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였었기에 민영화라는 대안도 사실 허상인 것이다.

미국의 주택시장은 민영화시키기에는 너무 크다.

“Too Big To Privatize.”

멘붕 상태인 영국의 상업용 부동산 펀드

The eastern part of the City of London, seen from the south bank of the Thames in February 2016
By 0x010C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8515449

총 90억 파운드 이상의 투자자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의 상업용 부동산 펀드(commercial property fund)들이 월요일 환매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중엔 AVIVA의 18억 파운드와 Standard Life의 29억 달러에 이어 영국에서 가장 큰 상업용 부동산 펀드 M&G의 44억 파운드 자산 포트폴리오가 포함되어 있다.[Brexit fears hit more UK property funds]

일종의 부동산 시장에서의 서킷브레이커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미 추락하는 파운드화로 인해 단기적으로 한차례 홍역을 겪었을 영국의 부동산 시장은 EU 시장의 접근성 하락으로 인한 금융 수도로서의 위상의 추락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중장기적으로 앞날을 한치 앞도 점치기 어렵게 됐다. 그러다보니 아마도 투자자와 펀드 간에 맺은 약정에 있지도 않거나 예외적으로 인정될 환매 금지를 발동시킨 것으로 보인다.

통상 상업용 부동산 펀드의 수익은 자산 취득 후 운영을 통해 얻어지는 영업수익(operating income)과 펀드 만기 시의 자산 매각을 통해 얻어지는 자본수익(capital gain)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상업용 부동산은 특히 자본수익이 수익 중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인데, 이 구조가 환매를 통해 망가지게 되면 펀드의 실패가 명확하기에 어쩌면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수도 있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영국 부동산 시장에서의 서킷브레이커가 주식시장에서의 그것과 같은, 시장을 진정시키는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다시 환매가 허용되었을 때 부동산 시장이 진정 기미를 보일까? 혹시 브렉시트가 무효화되고 금융기관의 탈출계획이 무산된다면 모를까, 불특정다수가 많은 종류의 주식을 다루는 주식시장과 달리 영국 부동산이라는 한정된 시장이 쉽게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Brexit 단상, 혹은 술주정

우선 이 글이 지금 술을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집으로 들어와서 쓰고 있는 글임을 전제로 깔아두기로 한다. 왜냐하면 짐작컨대 이 글이 궤변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변명 아닌 변명으로 술 핑계를 대고자 함이고 쓰고자 하는 주제는 브렉시트에 관한 주제다. 술먹고 너무 심오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 때문에 핑계거리를 만들어 둠을 감안하실 것.

또 하나 전제로 깔고 자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브렉시트의 역사적 맥락이랄지 최근의 논의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블로그에 브렉시트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최근 브렉시트에 대해 조롱하는 한 트위터의 동영상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기에, 술기운에 갑자기 그 동영상이 생각났기에 쓰는 것이다.

그 동영상을 따로 링크하고 싶지는 않다. 내용은 아마도 미국의 어느 도시 – 아마도 뉴욕? – 인 것 같다. 막 출발한 지하철에서 승객이 아마 미처 내릴 역임을 모르고 있다가 차량이 출발한 후에 내리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문을 억지로 열고 얼마간 속도를 낸 차량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바로 승차장에 머리를 꼴아 박는 것으로 끝나는 동영상이다. 섬찟한 동영상이었다.

그 동영상을 올린 이의 의도는 십중팔구 브렉시트를 선택한 이들이 현재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고 비판하는 – 솔직히 조롱하는 – 의도였다. 원인과 결과를 알지도 못한 어리석은 유권자가 브렉시트라는 문을 억지로 열고 열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머리를 땅에 찢고 후회한다는 그런 의도로 동영상을 올렸을 것이다. 당연히 그 동영상은 리트윗도 꽤 많이 됐다.

하지만 과연 그 동영상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시각에 딱 들어맞는 동영상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리석게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린 그 승객의 관성의 법칙보다는, 정치적 협잡, 경제이론의 혼란, 그리고 노동계급이 이민자가 좀비처럼 자신을 위협한다는 망상에 시달리는 정치/경제/사회의 법칙이 좀 더 복잡한 변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앞서 내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맥락을 거의 모른다고 했듯이 그 동영상을 올린 이나 또는 그 동영상을 리트윗한 이들이나 그 맥락을 지금의 영국의 유권자들보다 더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선거결과로 인해 전 세계 자산가치가 폭발적으로 하락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을 조롱한다. 마치 한때 남유럽을 돼지(PIIGS)라는 이니셜로 조롱했듯이.

하여튼 유럽연합은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유럽 중심주의의 우월감 쩌는 유럽 본토인들이 다시는 유럽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게끔 하도록 보다 공동체주의적으로 유럽인들끼리 살아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다소는 모순되고 다소는 혼란스러운 경제공동체 – 궁극적으로는 정치연방 – 인 것 같다. 그런데 참여주체들도 사실은 그 정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들의 역사는 그들의 것이다. 나치 못지않게 추악한 제국주의 역사를 아름답게 추억하는 늙은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주장하였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미래의 역사를 꾸려나갈 이들은 영국 젊은이들이다. 유럽연합이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왜 그들은 탈퇴를 주장했는지 – 순서는 잘못됐지만 – 지금이라도 스스로 논의하면 된다.

전쟁의 아이러니, 세제개편

일본은 1938년 전시총동원법이 제정된 이후 전면적인 전시체제에 들어섰는데 모든 산업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편되었고 국가 재정규모는 팽창하여 1936년에 약 22.8억 엔이던 것이 1940년에 109.8억 엔에 이르렀고 전쟁이 막바지이었던 1944년에는 861.6억 엔으로 급격히 팽창하였다. 한편 이들 각 연도에 군사비가 국가 총재정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36년에 47.2%이던 것이 1940년에는 72.4%, 1944년에는 85.3%까지 이르게 되었다.[역사 속 세금이야기, 문점식 지음, 세경사, 2012년, p231]

전쟁은 당연하게도 “큰 정부”를 만든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일본은 큰 정부가 탄생하는 극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인용문에서도 보듯 일본 경제는 1936년에서 1944년이라는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재정규모가 무려 37배 이상 늘어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군사비는 그 재정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군사비로만 놓고 볼 때에 그 규모의 증가추이는 68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쯤 되면 당시 일본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쟁기계 그 자체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참전국이 이렇게 재정규모를 극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배경에는 세금이 있다. 전쟁비용 조달은 자체비용, 침략국 수탈, 채권발행 등이 있겠으나 근현대에 들어서 일반화된 수단은 바로 조세다. 특히 양차대전은 각국이 세제 개혁을 통해 항구적인 재정조달수단을 확보하게 되는 주요한 계기가 된다. 세금이라는 것이 결국 국가가 국민에게 별도의 직접적인 반대급부 없이 돈을 걷는 방법인 만큼 전쟁이라는 엄중한 상황은 그런 인기 없는 정책을 – 특히 직접세의 경우 – 밀어붙이 좋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1940년까지 미국에서 소득세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소득세제도가 도입된 이후 30년 동안 전체 인구의 6% 정도만이 소득세를 납부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소득세제도가 국가 재정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되었다. 재무부장관이었던 헨리 모겐타우는 전쟁기간 중에 라디오·신문을 통하여 만화가, 아나운서, 가수 등을 동원하여 전 국민을 상대로 세금 납부 촉구 홍보를 하였다. 이처럼 효과적인 홍보 전략과 국민들의 애국심에 힘입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2년간 연방정부는 전쟁비용의 약 반을 세금으로 충당하였다. [같은 책, pp225~226]

인용문처럼 당초 직접세인 소득세는 전체 세수에서 미미한 비중만을 차지할 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비용이 많이 드는 통치행위를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기에 정부는 정치권을 설득하고, – 의회가 있는 경우 의회 동의를 얻어 – 납세자를 설득하여 – 공권력과 애국심 호소 등을 통하여 – 세수를 확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납부액이 1939년 기준 국민총생산의 1% 정도였는데 전쟁 중인 1943년도에는 8%까지 증가하였다고 한다.

현대의 세제개편은 이렇듯 소득세 납세자 수가 대폭 증가하며 간접세 중심 세제에서 직접세 중심 세제로 비중이 옮겨가게 된다. 한편 전쟁이 직접세의 당위성을 당연시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 징수를 가능케 하는 수단은 대공황과 전쟁 국면에 각국이 도입한 국민계정(national accounts)일 것이다. 국민국가 단위의 경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이런 시도는 1920년대 소비에트 블록에서 시작되었고,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거시경제학의 득세와 세수 증대라는 목적을 위해 본격화되었다..

전쟁의 아이러니다. 파괴를 위한 존재가 세제개혁과 관료기구의 성장을 추동했고, 전후 이는 자본주의 진영 역시 야경국가가 아닌 적극적인 경제주체로 활동해야 함을 일깨워준 계기가 된 것이다. 그보다 더한 아이러니는 누진세 도입이다. 전쟁 당시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94%였는데 누진세 도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이는 바로 칼 맑스였기 때문이다. 자본가에 의한 전쟁을 반대한 칼 맑스가 주창한 누진세가 전쟁을 통해 정착된 셈이니 가장 지독한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인 셈이다.

이성적인 문명은 [ ]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긍정적인 점은 특정한 기술적 발전 단계에 도달한 지능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핵에너지를 발견했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중략] 그 문명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일 없이 핵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나, 아니면 그 문명은 스스로 절멸됐나? 핵에너지를 발견한 후로 1000년을 존재해온 문명이라는 어느 문명이건 핵폭탄을 통제할 수단을 고안해냈을 거라고 짐작해요. 이 사실은 우리 인류의 생존을 위한 특정 가이드라인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엄청나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스탠리 큐브릭 장르의 재발명, 진 D. 필립스 엮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2014년, p101]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에 관한 인터뷰에서 외계문명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근거로 든 사례다. 문명의 발전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될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는지 아닌지가 그 문명이 이성적인 존재인지 아닌지의 기준점이 된다는 의견으로 여겨진다. 스스로 냉전 당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핵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로 만들기도 했던 이인지라, 외계문명의 지적 수준에 대해서 이런 잣대를 갖는 것이 그답다는1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과연 2016년 현재의 지구 문명은 큐브릭의 기준에서 볼 때 스스로 안도감을 가질만한 문명일까? “냉전(冷戰)”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던 미-쏘 열강의 전선이 사라질 즈음, 인류는 다행히도 큰 격변 없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어느 정도 유지한 것 같다. 하지만 지구적 관점에서, 특히 동북아 관점에서 핵에 대한 신경쇠약증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와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등이 그 예다. 전자는 국지적 냉전의 결과고, 후자는 “평화적” 핵이용에 대한 기술과 제도가 실패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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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les Levy from one of the B-29 Superfortresses used in the attack. – http://www.archives.gov/research/military/ww2/photos/images/ww2-163.jpg National Archives image (208-N-4388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6719

경수로 지원 사업에 관한 북미 간의 갈등에서 본격화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형식적으로는 국지적인 규모에서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양상을 띠고 있다.(또는 적어도 각 이해당사자가 그런 식으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동북아의 정치상황은 적어도 큐브릭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상태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야무진 핵의 평화적 용례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이후 – 원인이 소유형태든 일본식 문화든 간에 – 부조리한 사태처리로 말미암아 핵의 평화적 이용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일게 만들고 있다.

결국 큐브릭이 상정한 이상적인 핵개발의 상황은 핵을 전쟁수단으로 삼는 상황을 통제내지는 절멸시키고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재의 상황은 그런 희망사항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서구열강은 비대칭적인 핵무기 보유상황을 상수로 인정하라 강요하고 이에 몇몇 “불량”국가는 사실상의 재래식 전력인 핵을 공포의 균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개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로 핵의 평화적 이용의 기술적 발전이 미흡함을 깨달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등 대체수단의 정착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큐브릭은 같은 인터뷰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영화가 결코 아니라면서 “미친 짓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치유할 가능성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거나 무익하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2016년 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도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처럼 완전 미쳐 돌아가는 상황은 아닐지라도 –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대립구도를 어느 한쪽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나머지는 지극히 이성적인 상황이라고 보는 것도 유익하지 않다. 미친 짓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합리적 맥락을 알아본다는 게 그걸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사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에 빡돈 로버트 라이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크루그먼이 어제 버니의 지지자들에게 변화는 “변화의 레토릭”이 아닌 “정치적 실리주의” – “절반의 애증이 무관심보다는 낫다는 것을 인정하는” -를 통해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수단과 목적에 대한 깊은 고심하는 것보다 (힐러리를 의미하는) 행복한 꿈을 (버니를 의미하는) 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썼다. 크루그먼은 뭘 모르는 것이다. 난 워싱턴 근처에서 내각 생활을 포함하여 거의 50년을 몸담거나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는 오로지 미국의 대중의 상당수가 변화하고, 조직화되고, 충전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확정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Bernie’s Movement]

미국판 “비판적지지”론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가보다. 크루그먼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만드는 방법’이라는 칼럼에서 그 첫 단계로 버니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뽑으면 된다고 비아냥댔다. 로버트 라이시는 이런 크루그먼이 못마땅해서 “빵 한 덩어리를 꿈꿔야 반 덩어리라도 얻는 법”이라고 반박했다. 반박의 근거(?)로 크루그먼은 못해본 라이시의 관료 경험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면 꽤나 빡이 돈 것 같다. 한편 당연히 버니를 찍을 것 같던 촘스키의 힐러리 지지설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암튼 그 동네의 진보진영도 이런저런 변수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것 같다.

내 경우엔 국내정치에서는 사실 로버트 라이시와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입장은 내가 투표를 던졌던 정당이나 정치인보다 덜 급진적이었던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런 정치세력이 유의미해져야 사회의 균형추가 어느 정도는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과거에 최악을 막기 위해 “상대적 진보”를 택한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상대적 진보성을 무기로 더 수구화하는 모습을 목격할 뿐이었다. 진보의 급진성이 두렵다면 한국을 비롯한 열강의 現정치를 보라. 그 면면이 이전에 보지 못하던 보수적인 급진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중동 사태의 원인제공자에 대한 두 개의 상반된 입장

OPEC에서 가장 큰 수출업자로서, 사우디는 배럴당 37달러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가게 한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한 감산을 거부했다. 이는 이란이 오바마와의 핵협정을 통해 향상된 생산능력으로 원유를 수출하는데 대한 혜택을 대폭 감소시킬 것이다. [중략] 이러한 어떤 수단들도 이란-사우디의 직접적인 갈등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재 하일지라도 지난달 이란이 USS 트루만(미항공모함 : 역자주)의 1500 야드 내로 로켓을 발사할 명분은 없었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자 함일 것이다. [Who Lost the Saudis?]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사우디의 집권 왕조가 “47명의 대량 처형이 분노에 찬 반발을 촉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이 더 진행하기 전에 그들의 정보기관이 최고의 비상단계를 유지할 것을 지시”한 사우디 정부의 메모를 공개했다. [중략] 아랍권에서의 탄압과 반작용의 중핵으로서의 사우디 왕조는 국내에서의 점증하는 반정부 세력을 분열시키고 지역에서의 주요한 라이벌인 이란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수단으로 수니와 시아 사이의 긴장을 고의로 높여서 이를 활용하는 분파주의의 선도적인 선동자다.[Middle East tensions escalate in wake of Saudi mass beheadings]

현재의 중동사태에 대한 서로 상반된 입장의 글이라 한곳에 모아보았다. 첫 번째 글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글이다. 이글은 이번 사태가 사우디의 원유공급량 유지 등에 대한 이란과 러시아의 도발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글의 말미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사우디가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우리의 절친(the best friend we have in the Arabian peninsula)”이며 미국이 왕국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현 사태의 귀책은 감히 미항공모함 근처에 미사일을 쏘아서 – 미국의 추가 제재의 위기에 놓인 – 이란이라는 것이 WSJ의 생각이다.

한편 두 번째 인용 글은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World Socialist Web Site)’라는 거창한 이름의 매체의 글이다. 이 글은 사우디 정부가 자국의 대량 처형이 불러올 후과를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사우디는 예상했던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이란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포했다. WSWS는 사우디의 이런 행동을 “분파주의의 선동자”라며 비난하고 있다. 어쨌든 애초부터 무리수가 있었던 처형과 이어진 반발, 이에 대한 빠른 대처를 볼 때 사우디의 행동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라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하는 두 매체의 글이 공통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대결구도는 대략 ‘미국과 사우디 對 러시아와 이란’ 인 것 같다. 지난번 예멘 내전이 이란과 사우디 간의 대리전의 성격이 짙다면 이번 갈등은 러시아와 미국 간의 대리전의 성격이 짙은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사우디와 이란 간의 힘의 균형추 이동을 통해 중동에서의 새로운 패권구도를 정립하려고 하는 것일까?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을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이번 갈등은 단순히 시아와 수니 간의 종교 갈등을 넘어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갈등의 원천인 유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전문 컨설팅사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역설적으로 유가가 폭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즉, “이란이 시장에 보다 많은 원유를 공급하려고 시도한다면 사우디가 생산량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인용한 WSJ의 분석과 유사한 논리다. 이란 역시 경제제재가 풀린다면 감산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일시 급등했던 유가도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어쩌면 이 사태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가 저유가일 수도 있다는 사실, 참 역설적인 상황이다.

재밌는 것은 언급된 네 나라 모두 산유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