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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정국에 즈음한 쇠라의 그림에 대한 상념

인류는 엄중한 “팬데믹”의 시대에 접어들어 이제껏 접해보지 못했던 갖가지 정치, 경제, 사회적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각 나라 혹은 지자체의 수장(首長)들이 여태 하지 않았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상황도 그러한 유례없는 현상 중 하나인데, 바로 이들이 시민들에게 집에 머물러있으라고 달래거나, 윽박지르거나, 읍소하는 업무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 내가 우연히 접한 기사는 로리 라이트풋이라는 시카고 시장이 시 곳곳을 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시민들에게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는 예의 그 희한한 업무를 수행하는 상황을 묘사한 기사다.

어찌 보면 – 요즘 상황에 비추어볼 때 –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이 기사에서 내 눈을 잡아끈 것이 있는데 바로 시장의 얼굴을 찍은 자료 사진이다. 시장으로서 흔치 않은 흑인 여성이라서 눈여겨 본 것은 아니고 배경으로 쓰인 그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점묘법으로 유명한 조르주 쇠라가 그린 그의 필생의 역작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다. 이 그림은 현재 시카고 미술원에 전시되어 있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시카고 시장이 시 곳곳을 돌아다니는 중이라는 상황 설정의 사진에 이 그림이 배경으로 찍히게 된 것이다.

A Sunday on La Grande Jatte, Georges Seurat, 1884.jpg
By 조르주 쇠라 – Art Institute of Chicago, 퍼블릭 도메인, 링크

개인적으로 이 사진이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매체의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이 사진이 현 상황에서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지는 역사적인 아이러니를 응축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유원지와 같은 공공공간(公共空間)과 그곳에서의 휴식은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시민의 투쟁에 의해 쟁취한 것이고, 어찌 보면 쇠라의 그림은 바로 그러한 자유를 암암리에 묘사한 작품인데, 시장이 그 작품 앞에서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야외에서의 휴식, 혹은 이동의 자유를 공공(公共)의 이익을 위해 제한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겨지기에 아이러니하다.

레제가 이런 낙관적인 이상향을 묘사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좌익들이 확실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의 정치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좌익은 1930년대 파시즘의 위협 하에 사회당, 공산당 등이 결합한 인민전선을 결성한 후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1936년 6월 총파업 이후 전국적 규모의 중앙노사협정인 마티뇽 협정(Accords de Matignon)이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대표적 노동조합의 개념과 단체협약의 효력확장규정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이 협정에는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2주간 유급휴가제’가 도입되어 노동자는 비로소 유급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페르낭 레제,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

개인의 이동과 휴식의 자유는 소중하다. 그렇기에 유사 이래 이윤창출을 위해 쉼 없이 일해야 했던 노동계급은 끊임없이 그 자유를 쟁취하려 했고,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문명사회에 접어들어 휴식의 자유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공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0년 전 세계 상당수의 시민들은 광학현미경으로는 볼 수도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그 자유가 자율적/타율적으로 제한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의료보건의 팬데믹에 대한 확실한 인프라의 구비 역시 여태의 자유를 보장하는 또 하나의 전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인프라 중 핵심은 의료 인프라겠으나, 또 하나 한국에서의 코로나19 통제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인프라가 디지털화된 개인정보 데이터 축적과 이 정보의 공유 시스템이다. 한국은 오늘날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은 달성했다는 유리한 여건 이외에도 사실상 전 국민을 코드화한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개인정보 빅데이터가 존재하고 국가가 그것을 통제하기에 역설적으로 도시폐쇄 없이 주민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이 “프라이버시”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유럽인들의 심경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도 국가 혹은 여하한의 기관이 개인정보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활용할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조직범죄나 다름없는 “n번방” 사건 역시 개인정보를 시골 면사무소 286 컴퓨터에서조차 검색할 수 있는 한국이기에 더 범행이 용이했을 것이라는 개연성도 그러한 불편한 상황의 한 사례다. 하지만 어떤 유튜버도 말하듯 어차피 개인정보 빅데이터는 이미 구글과 페이스북이 일개국가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1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통제 없는 개인의 완벽한 자유는 이제 애당초 성립 불가능한 꿈인지도 모른다.

우연치 않게 한국이 현재 코로나19 사태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각국은 이 사태가 진정된 이후 복기를 통해 앞으로의 사회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반성 없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도 있고) 각국의 지도자들이 올바른 정신세계의 소유자라면 ‘민주적 의사결정’, ‘투명성’, ‘적절하게 통제되는 정보의 활용’이라는 교훈을 얻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21세기 형 경찰국가’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미 어떤 나라는 그러한 황폐한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나라는 아직도 우월감에 빠져 다른 나라를 까기 바쁘고.

자본의 세계화, 공공서비스, 납세

재무위원회 소속의 노동당 하원의원 존 맨(John Mann)은 영국의 세금을 회피하려는 웹 기반의 회사들의 의지를 비판하였다. “이 엄청난 수익을 내는 회사가 그들이 기반하고 있고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나라들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고 부도덕적인 일입니다.” 그의 말이다. “그들은 이 나라의 인터넷 사회기반시설에 큰 혜택을 입고 있지만 그 자금조달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세금 없이 차를 모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도로에 대해 (세금을 걷는 것 : 역자 주) 찬성하는 입장이라면 왜 전산망에는 찬성하지 않습니까?” 존 맨 의원은 대부분 인터넷에 기반을 두어 영국의 사회기반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수익을 창출하는 이들 회사들로부터 “통행세”를 걷을 것을 제안했다.[Facebook: The antisocial network branded ‘disingenuous and immoral’]

지난번에 구글이 유럽의 다양한 세제를 활용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거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는 인터넷에 기반을 두고 있는 초국적 기업들의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할 수 있다면 왜 안 하겠는가?) 애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모두 영국에서 엄청난 매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세금은 거의 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는 명백하게 합법적이다.

자본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국가 단위의 세제는 점점 더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위에 언급한 기업들이 즐겨 이용하는 아일랜드인데, 유럽의 변방인 아일랜드가 세계적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내놓은 미끼가 낮은 세율이었고 한때 아일랜드가 이를 통해 혜택을 얻기도 했지만 더 큰 혜택은 이러한 세금회피수단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개별 초국적 기업들이다.

현행 제도 하에서 합법적인 한에는 나름의 절세(節稅)가 도덕적 비난거리는 되어도 처벌의 대상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존 맨 의원이 지적하듯이 이들이 영국의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정(正)의 외부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시장주의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타당하지 않다. 사회기반시설이 가진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배제의 주창자인 자본이란 사실은 모순되기 때문이다.

세금 사용처는 다양하지만 시장에 의해 공급할 수 없는 공공서비스의 공급도 주요 사용처다. 이 서비스를 국민들도 쓰지만 자본 또한 쓰며 이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이윤을 창출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또한 성실한 납세자여야 한다. 소비자는 납세와 강화된 저작권, 유료화 콘텐츠 등에 대한 이용료를 점점 더 성실하게 내고 있다. 그럼 자본은 공공서비스의 공급자에 대해 그렇게 하고 있는가?

[번역] 왜 몇몇 다국적 기업들은 그렇게 세금을 적게 낼까?

하바드비즈니스리뷰에 올라온 저널리스트 Justin Fox의 글(원문 보기)을 삼번했다. 다국적 기업들의 교묘한 탈세행각에 대한 글인데, 구글의 행태에 대해서는 예전에 내가 올린 ‘사악한 구글과 미련한 아일랜드’라는 글을 참고하면 좋다.

 

미국의 법인세에 관해 당신이 진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법정 세율이(연방 차원에서는 35%; 주(州)세율의 평균할 경우 39.2%)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것이다.

미국의 법인세에 관해 당신이 진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평균적인 실효세율은 25%에 더 가깝고 대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그보다 덜 낸다는 점이다. 법인세수는 또한 정부의 전체 수입 중에서 수십 년간 장기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한 시선은 우리가 레페(Laffer) 곡선의 잘못된 쪽에 있다는 점인데,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세율을 올림으로써 수입이 감소한다고 설명하는 곡선이다(그 개념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어떤 지점”의 위치가 논쟁거리다). 자본은 움직이며 대기업에는 세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레페 곡선에서 기업의 터닝 포인트는 개인의 그것보다 더 낮은 세율에 위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우리는 단지 세율을 낮춰 더 많은 돈이 흘러들어오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미국의 기업들이 세금을 얼마나 적게 내는지 들여다보면, 당신은 세율을 몇 퍼센티지 포인트를 내리는 것이 차이가 있는지 의아해할 것이 틀림없다. 법인세수를 감소시키는 것은 미국의 더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운영부문을 다른 곳에 놓는, 예를 들면 독일(30.2%)이나 캐나다(27.6%), 회사들이 아니다. 더 큰 이슈는 다국적 기업들이 나라와 나라 사이로 소득을 뒤섞어 거의 모든 세금납부를 피하는 복잡한, 증가하는 사업체들이다. USC의 법학 교수 에드워드 클레인바드(Edward Kleinbard)는 이러한 사업체들을 “세금 양조장”이라고 부르는데, 회사의 세금 임원이 해외 소득과 해외 세금공제들을 섞는데 착수하여 가능한 한 가장 낮은 총세금고지서를 제조해내는 곳이다.

구글이 이 방면으로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외 소득에 대해 한 자릿수의 세율을 유지하기 위해 클레인바드와 다른 세금 변호사가 “더블 아이리쉬 더취 샌드위치(Double Irish Dutch Sandwich)”라고 부르는 방법을 구사한다. 불름버그 뉴스의 제시 드러커(Jesse Drucker)가 2010년의 행태를 자세히 묘사한바와 같이, 구글은 그들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해외에서의 권리들을 버뮤다에 위치한 법인인 구글 아일랜드 홀딩스(Google Ireland Holdings)에 넘겼다. 아일랜드에 위치한 계열사인 구글 아일랜드(Google Ireland Ltd)에 그 다음으로 한 해에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고 이들 지적재산권을 사용한다. 이 방법으로 (대부분 유럽에서의 광고판매로 벌어들인) 그 로열티는 거의 세금이 없게 만드는 아일랜드법과 EU의 세금조약의 이상한 특례를 활용하기 위해 구글 네델란드 홀딩스(Google Netherlands Holdings)로 넘겨진다. 클레인바드는 이를 “국적없는 소득”이라 칭하고 법인세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를 양탄자 밑으로 쓸어 넣어버리게 하는 커다란 이슈라고 주장한다.

2009년 학계에 가기 전에 뉴욕에 있는 법률회사 클리어리 고틀리브 스틴 앤 해밀턴(Cleary Gottlieb Steen & Hamilton)의 파트너였고 이후 세금관련 의회 합동위원회의 최고위자였던 클레인바드는 애플의 거대한 해외에서의 세금 비축의 세금관련 시사점에 대해 쓴 나의 글에서 그를 인용한 이후 나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애플은 그들의 해외에서의 수입을 미국으로 가져오면 미국 국세청이 높은 세율로 과세할 것이기에, 그 돈을 (그 시점에서 약 640억 달러에 달하는) 주주에게 넘겨주는 대신에 해외에 두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클레인바드는 이러한 주장은 명백히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빈번히 거론되고 있는 해결책이 – 해외 수입을 과세하기 위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미국의 법인세 시스템을 “지역적” 법인세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 – 국적 없는 수입의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클레인바드는 길지만 읽을 가치가 있는, 국적 없는 수입 현상에 관한 두 개의 저널 논문을 썼다(“국적 없는 수입”과 “국적 없는 수입의 교훈들”). 그가 보는 유일한 해결책은 구글과 같은 남용에 (난 구글의 행동이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공정하고 효율적인 과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반인의 관념에 대한 명백한 모욕일 뿐이기 때문이다.) 대응하기 위해 강화된 노력의 일환인 지역적 시스템이나 미국이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에 대해 전 세계에서의 수입에 과세할 수 있는(물론 해외에 기납부한 세금은 공제하고) 시스템 중 하나다. 그는 후자의 방법이 실행하기 더 간단하고, 더 낮은 세율과 해외 손실에 대한 공제를 통해 그 방법이 미국 기반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차별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세율이 전 세계적으로 그 집단에 있는 한, 미국 기업들은 독일이나 프랑스, 기타 나라들의 경쟁자들이 내는 정도의 세율을 납부할 것입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오늘 피스칼 타임스가 보도했듯이 일군의 미국 기업들은 다양한 이유로(대부분 거대한 해외 영업부문이 없거나 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지적재산권이 없어서) 더블 아이리쉬 더취 샌드위치를 써먹을 수 없고 클레인바드 식의 개선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세계에는 구글, 시스코, GE,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애플이 있고, 현재의 시스템에서 매우 잘 해왔고 국적 없는 소득의 문제가 진지하게 다뤄질 법인세 개혁 아래에서는 더 많은 세금을 낼 것이다. 그들의 비명소리를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마라. 그들은 더 내야 한다.

인터넷 통제국가 대열에 동참하려는 미국

우리나라가 인터넷통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동안, “표현의 자유”에 관해서는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불길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른바 SOPA (the Stop Online Piracy Act)라는 이름의 법안이 공화당 Lamar Smith 하원의원을 필두로 한 양당의 12명의 의원들에 의해 올해 11월 26일 하원에 발의된 것이다. 이 법안은 美당국 및 저작권자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온라인에서의 침해를 단속할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또한 온라인 비즈니스 업체들이 능동적으로 자사 서비스에서 사용자들이 저작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는 저작물을 올리는 행위를 감시하고 단속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법안은 혁신을 저해할 조항들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인터넷의 근본적인 구조적 결함을 어설프게 땜빵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사기업이 검열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무엇보다도, 이 법안은 그것을 위해 취해야 필요한 법적절차를 우회하고 있다.” – James Allworth (Harvard Business School)

“사고가 차단당할 때, 정보가 지워질 때, 대화가 억압당하고 사람들의 선택권이 제한될 때,  우리 모두의 인터넷은 축소될 것이다. 경제적인 인터넷과 사회적인 인터넷과 정치적인 인터넷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인터넷만 있을 뿐이다.” – Hillary Clinton (United States Secretary of State)

법안의 시행을 반대하는 이는 흔히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나 좌파들 만이 아니다. 하바드비즈니스스쿨의 학자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같은 주류도 함께 하고 있다. 당연한 이치로 온라인 기업들도 일제히 반대하고 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이 법안이 인터넷이 담고 있는 특징인 링크와 그 근본적 구조 자체를 범죄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법안을 통해 검색엔진을 내장하고 있거나 저작권을 침해한 해외 사이트를 링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회사가 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글 뿐 아니라, 페이스북, 위키피디어, 야후 등 관련기업들은 자신들의 사업기반 자체를 흔들어 놓을 이 법안에 맹렬히 반대하고 있다.

한편 하바드 로스쿨의 헌법 전문가인 로렌스 트리베는 법적인 관점에서 좀 더 근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이 법안이 수정헌법1조를 위반하고 있다는 편지를 의회에 제출했다. 즉, 트리베는 이 법안이 법정에서 설명할 기회를 박탈한 상태에서 발언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적인 “사전억제(prior restraint)”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더불어 “악당 웹사이트(a rogue website)”의 개념정의도 헌법의 정신과 어긋나게 모호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앞서 에릭 슈미트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사용자가 생산하는 콘텐츠로 사이트를 구성하는 수많은 사이트를 불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이야기다.

이상에서 살펴볼 때, 이 사건은 또 한번 오늘날 지적재산권이 과연 본래 생겨나고 발달하였던 그 취지에 부합하여 현대문명의 발전을 추동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각종 지적재산권이 마치 물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장 앞장서서 지켜야할, 그럼으로써 좀 더 많은 지적 창조물이 자유롭게 생산되게끔 해야 할 시스템이 기득한 지적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표현의 자유와 산업발전을 억압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좌파 경제학자들 뿐 아니라 체제를 옹호하는 주류 경제학자들 역시 지적재산권 시스템이 다른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들은 라이센스피, 규제, 특허가 이제는 너무 오용되어 창조의 비용을 상승시키고 새로운 아이디어의 확산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레빈은 “대부분의 특허는 시장의 다른 이들보다 단기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들의 혁신을 경쟁자로부터 보호하려 희망하는 혁신자들이 얻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특허는 다른 이들이 자신들을 특허침해로 고소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려는 방어 목적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대기업들이 취득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스템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 경제학자들은 지적 독점 (특허)를 경제적으로 해로운 것으로 증명된 무역 독점에 비교했다. 그들은 “몇 세기 동안 경제적 진보의 원인은 자유무역의 그것과 동일시되었다. 다가올 몇 십 년 동안 경제적 진보를 유지하는 것은 가면 갈수록 혁신적으로 지적 독점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제거시키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특허 및 저작권 법 폐지를 주장하는 경제학자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이러한 이슈에 있어서는 선진국 미국을 앞서고 있다. 이미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몇 해 전에 아이가 부르는 연예인의 노래 동영상을 단속하려던 사례도 있었다. 당시 법원은 이 사안에 대해 저작권협회 등에게 불리하게 선고하였으나 이는 저작권의 권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콘텐츠의 내용이 창조적이고 비상업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우회적인 판결을 내렸다. 최근에는 한미FTA 발효를 앞두고 저작권법을 비판자들로부터 위헌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개악하였으며, 방송통신위원회가 법적근거도 모호한 상태에서 SNS와 앱을 규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미국이 보고 배워야 할 나라다.

SOPA의 비판자 중 일부는 미국이 중국을 모델삼아 검열국가가 되려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나 이는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의 중국이 주로 정치적 발언을 제지하기 위해 검열을 이용하는 반면, 미국은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즉, 그들은 지적재산권이라는 사적소유를 공고히 하겠다는 진일보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검열의 차원인 셈이다.(우리나라는 그 중간 쯤 되는 듯?) 그런 면에서 그것은 더 잔인하고 더 교묘할 수 있다. 마치 파업주동자를 정치범으로서가 아니라 경제사범으로 처리해서 거액의 벌금을 매겨서 경제적으로 – 그리고 인격적으로 – 파탄 내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의 구글 로고

오늘 구글 로고가 참 맘에 든다. 레트로퓨처리즘적인 분위기인지라 뭔가 Sci-Fi 작가 등과 관련된 날이 아닌가 싶었는데, 클릭해보니 오늘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만든 로고다. 보르헤스는 이 블로그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란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이른바, 실존인물과 창조한 인물을 섞어 꿈인 듯 현실인 듯 글을 풀어내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가인 작가다.

사악한 구글과 미련한 아일랜드

해외 세금계산서를 줄이기 위해, 구글은 복잡한 법적 구조를 사용하였고 이를 통해 2007년에 31억 달러를 절감하고 지난해 총수익을 26%증가시킬 수 있었다.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비슷한 구조를 활용하는 가운데, 구글은 그들의 해외 세율을 기술 분야의 경쟁자들보다 더 낮게 낮출 수 있었다. 2007년 이래 그들의 세율은 2.4%이다.[중략]
미재무부에서 일했던 세무 경제학자 마틴 설리반은 “이 회사는 평균적인 법인세율이 20%이상인 고세율의 나라들에서 대부분 영업활동을 합니다.” 미국 다음으로 구글의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영국은 28%다.
버뮤다에서는 법인세가 전혀 없다. 구글의 이익은 세무 변호사들로부터 “더블 아이리쉬”와 “더취 샌드위치”로 불리는 대단히 난해한 경로를 통해서 이 섬의 백사장으로 여행한다. 구글의 경우 이렇게 작동한다.: 유럽, 중동, 또는 아프리카의 어떤 회사가 구글을 통해 검색광고를 구입하면, 이 돈은 구글 아일랜드로 송금된다. 아일랜드 정부는 기업이윤에 대해 12.5%를 과세한다. 그러나 구글은 이 이윤을 더블린 사무실에 머물게 하지 않게 함으로써 대부분의 세금을 내지 않았는데, 보도된 바로는 2008년에 세전이윤이 매출의 1%도 안 된다.
아일랜드 법으로는 구글이 거액의 세금을 부과 받지 않은 채 버뮤다로 직접 돈을 보내기 어렵다. 그래서 지불된 돈은 네덜란드를 통해 짧은 우회로를 경유한다. 아일랜드에서는 다른 EU국가들의 회사로의 일정액의 지불에는 과세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돈이 네덜란드로 가면, 구글은 너그러운 네덜란드의 세법을 활용할 수 있다. 거기에 있는 그들의 계열사 구글 네덜란드 홀딩스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고(직원이 아무도 없다) 모여진 돈의 99.8%가 버뮤다로 넘어간다.(버뮤다에 있는 이 계열사는 기술적으로는 아일랜드 회사다. 그래서 “더블 아이리쉬”란 별명이 붙었다.)[The Tax Haven That’s Saving Google Billions]

사악해지지 말자던 구글이 저지르고 있는 “사악한” 짓의 일부다. 어제 이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댓글 달아주신 daremighty님의 제보(!?)로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구글을 통해 많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와중에 – 비록 공짜이긴 하지만 그게 과연 공짜일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는 – 구글마저, 아니 다른 IT기업보다 더 잔머리를 굴리며 이렇게 탈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왠지 악덕기업에 한 푼 보탠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하다.

한편, 이 “돈의 세계여행”에서 눈에 띄는 나라는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최근 85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나라여서 특히 눈에 밟힌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말부터 강력한 대외개방경제를 표방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였다. 경제정책의 핵심은 12.5%라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로 다른 나라의 기업을 유혹하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단기적인 성공을 거두어, 아일랜드는 유례없는 높은 성장률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성장추세는 꺾이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구글의 행태가 왜 아일랜드의 성장추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던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즉,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한 국가의 세금 세일즈는 언젠가 더 낮은 세율, 그리고 더 교묘한 탈세(또는 절세) 방법이 나타나면 쇠락할 수밖에 없는 영업 전략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구글에 자국 기업이 2개나 되면서도 푼돈만 걷고 있는 꼴이라니…

그럼에도 아일랜드는 어이없게도 구제금융에 대한 반대급부로 12.5%의 법인세율을 올리라는 채권단의 주문에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면서 양보하지 않았다. 그대신 그들이 150억 유로 규모의 재정긴축안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대책에서는 최저임금 삭감, 복지예산 축소, 공공분야 일자리 축소 등 노동계급에게 일방적으로 피해가 가는 대안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심지어 부가가치세의 세율은 21%에서 23%로 올렸으면서도 말이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아일랜드가 EU에 참가하면서 누릴 수 있었던 특혜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거칠 것 없는 자본의 세계화라는 상황은 처음 얼마간 아일랜드에게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였으나, 이제는 경제적 재난을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법인세율을 유지하는 것은 마치 검을 강물에 떨어트리고 그 떨어진 배의 위치에 표시를 하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미련한 짓일 뿐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미련한 짓이 비단 아일랜드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 각 지방자치단체는 여전히 경쟁적으로 다국적 기업유치를 위해 사탕발림을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히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그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심지어 미국 자동차의 자존심인 디트로이트조차 메뚜기 떼처럼 이동성이 뛰어난 자본을 잡지 못해 폐허가 되지 않았는가? 자본은 바람과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대안은 뭘까? 전에 농담 삼아 말했지만 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는 것만이 구글과 같은 잔대가리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여전히 그게 실현가능하냐 하는 의문이 드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영토적 개념의 국가이익이 국제경제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낮은 세율이 국가경쟁력이라고 강변하는 이가 있다면 뭐 아마도 세율 0%가 될 때까지 내달리는 치킨게임을 좋아하는 이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