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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미첼(Charles E. Mitchell)

연준을 그렇게 멋지게 한방 먹인 찰스 미첼은 호황을 계기로, 은행의 전통적인 이미지 즉 사람들의 재산과 전통적인 가치를 지켜주는 파수꾼이라는 이미지를 파괴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었다. [중략] 미국에서 가장 큰 상업은행을 경영하던 사람이었지만, 그가 보기에 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대출이나 예금 업무가 아니라, 주식을 포함한 유가증권을 매매하는 일이었다. 은행가라면 채권은 몰라도 주식은 아무리 좋은 회사의 것이라도 조심스럽게 봐야 하는 게 원칙이던 시절, 이런 그의 발상 자체부터가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첼은 이런 이단적인 행동에서 한 걸음 내지 두 걸음 더 나아가, 흔히들 하듯 가만히 앉아 손님이 유가증권에 대해 문의하러 오기를 기다린 게 아니라, 상품을 팔러 다니기까지 했다. [중략] 물론 은행은 법적으로 유가증권 거래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으나, 미첼의 은행은 당시 다른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유가증권 전문 계열회사(security affiliate)를 세우는 방식으로 쉽게 이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때로는 그 직원들을 전부 은행직원으로 메우기도 했고, 비은행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마음대로 유가증권 시장에 뛰어들어 장사를 했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런 유가증권 계열회사를 ‘법률상의 웃음거리’라고 비웃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감했다. [중략] 미첼은 자신의 영업방식에 대해 너무도 솔직했으며, 유가증권 거래를 제조업의 다른 상품 거래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얘기하곤 했다.[골콘다, 존 브룩스 지음, 이동진 옮김, 그린비, 2001년, pp146~147]

현재의 시티은행의 전신인 내셔널시티(National City) 은행의 행장이었던 찰스 미첼(Charles Mitchell)은 인용한바와 같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은행의 역할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투자은행과 유사한 영업행위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했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이러한 은행의 무분별한 영업행위, 그리고 다양한 다른 원인들이 결합되어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하였다. 이후 한동안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은 글래스-스티걸 법 등 관련제도를 통하여 그 영업범위가 엄격히 규제되었다.

찰스 미첼의 유가증권 영업행위가 옳은 것이냐의 여부를 떠나서 그가 시대를 앞서간 혁신가 중 하나라는 것은 인정하여야 할 것 같다. 그는 증권 거래를 다른 상품 거래와 마찬가지로 보고 스스로를 그 상품의 거래자로 자리매김하였다는 점에서 가만히 앉아 고객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고객의 돈을 맡아두는 것에 만족하던 은행가들과는 많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은행가(banker)이기도 하지만 채권 영업인(bond salesman)이기도 하였고, 스스로도 그러한 역할에 솔직했던 것 같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동걸 원장의 이임사 中에서

“여러 가지 사례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현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살펴봅시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법률 개정안을 어떻게 ‘경제살리기 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개혁입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국제적 조류라고 감히 주장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금산분리가 가장 철저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고 일부 보수집단 금융이론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전세계 선진국에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가장 많이 허용된 나라입니다. 그 폐해도 가장 많이 경험한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은 외국의 경우 은행이든 증권사든 보험회사든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금융기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직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은행, 세계적 증권사, 세계적 보험사의 예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은행을 제외하면 증권, 보험 등 제2금융권의 주요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산업자본 즉, 재벌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이래도 저희 나라가 전세계에서 금융과 산업이 가장 철저히 분리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불행히도 재벌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나라의 증권사, 보험사들은 비록 국내시장에서는 1류 행세를 하지만 국제시장에서는 2류, 3류 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재벌의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증권사, 보험사가 세계시장에서 2류, 3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도 재벌의 은행소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기 전에 우선 재벌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증권사, 보험사를 국제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금융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은행을 재벌에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프리메라 리그의 꼴찌 축구팀에게 야구를 하도록 해주면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될 거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경제이론을 내세우기도 전에 이런 평범한 상식적 결론을 현 정부는 왜 진솔하게 인정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희 연구원으로서는, 그리고 저 개인으로서도 — 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학자로서 —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동걸 원장의 이임사 中에서(2009년 1월 31일)

연방준비제도은행의 2008년 수입 및 분배계획

금요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발표에 따르면 그들의 388억 달러에 달하는 2008년 예상 순수입(net income) 중 349억 달러를 미재무부에 이전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연방준비제도의 정책에 따른 것으로 회원은행에 배당으로 지급되는 12억 달러와 잉여금의 자본금 전입을 위해 사용되는 27억 달러를 제외한 금액을 이전하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은행의 수입은 주로 은행들이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취득하는 정부/연방기관의 채권 및 수탁기관 및 프리머리딜러 등에의 대출에 대한 이자 등에서 발생한다. 2008년 정부/연방기관의 채권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275억 달러이고 대출이자 수입은 72억 달러이다. [전체 원문보기]

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1)

다음은 사회주의평등당(the Socialist Equality Party) 호주지부의 국가서기인  Nick Beams가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호주 여러 도시에서 가졌던 강의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전 세계 주식시장이 붕괴되었는데 약 25조~30조 달러의 주식가치가 지난 6개월 동안 사라진 것으로 추측된다. 주요회사들의 가치는 38% 정도 없어졌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체였던 제네럴모터스가 부도의 위험에 처해있다. 공식적인 통계를 보아도 세계경제의 주요지역들이 이제 경기침체로 접어들었다 : 미국, 유로 지역, 영국과 일본. 세계경제를 부양해왔던 중국과 이른바 신흥시장 역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융위기가 그랬듯이 경제침체도 미국이 중심이 되고 있다. 사적부문의 고용치가 11월 개월 동안 계속 떨어지고 있다. 11월에만 533,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이는 1974년 12월 이후 월간으로는 최악의 수치다. 미국기업의 적어도 1/4이 내년에 고용을 축소할 계획이다. 해고증가와 집값 하락으로 말미암아 미국에서 12백만 채의 집이 소위 “수면 아래(under water)”의 상태로 내몰렸는데 이는 그 집에 대한 모기지보다 값어치가 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는 수직낙하 중이다. GDP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의 소비부문은 3분기에 3%하락했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4분기에는 2.9%, 2009년 1분기에는 1.3%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2차 대전 이후 한번도 3분기 연속으로 소비가 감소되지 않았었다. 10월 소비자물가는 1947년 이후 월간으로 가장 높은 수치인 1%하락했다.

세계경제 역시 미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데,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1억9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2007년의 실업자 수치가 2009년에는 2억1천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세계은행은 2009년 경제성장이 전 세계적으로 따져 1%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고소득의 국가들에서는 0.1%의 하락이 예상된다. OECD는 경제성장률이 각각 미국 0.9%, 일본 0.1%, 유로 0.5%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무역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수치중 하나인 무역규모에 대해 세계은행은 2009년 2.5%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수치는 올해는 5.8%, 2006년에는 거의 10%까지 상승하여왔다. 이 수치가 감소한 것은 1982년의 심각한 경기후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11월 15일 국제산출의 90%를 아우르는 경제권인 G20의 지도자들이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에 모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현 상황을 극복할 여하한의 프로그램도 제시하지 못하였고 당사자들의 분열만 심각해졌을 따름이다. 이 정상회담의 문제는 면면의 지적인 특성뿐 아니라 경제적 갈등과 긴장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에 있다. 객관적 모순의 뿌리는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규제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대한 여하한의 조사에서도 상호 연결되고 통합된 시장의 “효율적” 기능을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국제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가 바로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 그 자체에 있다. 모든 시장은 규모 면에서 국제적이지만 세계는 여전히 자본주의 권력들로 분열되어 있다. 자본의 각 부문은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국제적 라이벌과 항구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투쟁에서 각 부문은 자신들의 “고유한” 국가를 자신들의 이해를 증진시켜줄 정치적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G20에 모인 모든 참여자들, 수많은 조언자들과 경제학자들은 보호무역주의의 발흥이 세계경제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여전히 합의되지 않은 것은 많다. 금융과 무역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고 정부의 개입에 있어서도 그렇다.

발췌한 이의 간략의견 : 전형적인 국제주의자의 의견이랄 수 있다. 즉 현재의 위기가 지구적이며 특히 선진국에서 그러한 위기가 심각할 것으로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이해관계를 가진 자본, 그리고 그들의 이해를 보호하는 국민국가들로 분열되어 있는 세계경제에서 실질적인 규제에 대한 합의로의 도출이나 입으로만 떠들고 있는 자유무역 원칙은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문보기]

‘가치(value)’와 ‘부(wealth)’

이번 금융위기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인 Nick Beams라는 분이 2008년 말 호주에서 가졌던 강연의 일부분을 발췌한 내용이다. 현재 약 5편까지 진행되고 있고 기회가 되면 주요부분을 발췌하도록 하겠다.[원문보기]

끊임없이 증가하는 생산과정의 범위는 자본주의 경제의 금융구조의 변화를 추동한다. 이는 이제 자본이 축적과정을 이어나가기 위해 개별 자본가들의 능력 이상으로 자라나야 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자원을 빨아들여야 한다. 두 가지의 거대한 금융적 발전이 이를 가능케 했다. 신용과 은행시스템의 발전, 그리고 합자회사 혹은 주식회사의 출현.

사회 모든 분야의 돈이 은행으로 모이게끔 만드는 이른바 신용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기업에게 개인이나 심지어 개인들이 모인 집단의 능력을 월등히 초과하는 규모의 자원을 제공한다. 자본가는, 마르크스가 설명하길, 이제 다른 사람들의 돈의 단순한 관리자가 될 뿐이다. 이 돈이 없으면 루퍼트 머독도 평범한 시민에 불과할 뿐이다.

자본을 공급하는 대가로 은행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지급의 형태로 수령한다. 은행과의 대출계약이나 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채권자에게 정기적인 이자지급을 약속한다. 즉 그 소지자는 소득을 보장받는다.

주식의 발행을 통해 설립되는 주식회사의 경우에는 화폐자본을 공급한 대가로 재산권을 보장받는다. 그들이 회사의 일부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매체인의 주주라고 해서 당신이 가게에 들어가 그 회사의 부분적인 소유주라는 이유로 물건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상품은 기업화된 법인의 소유물이다. 당신이 보장받는 것은 배당의 형태로 지급되는 이익의 일부분이다.

신용과 주식소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갖게 되었다. 채권과 주식과 같은 소득 형태를 수여하여 그것들이 거래되는 금융시장. 그리고 이들 금융자산의 가격은 오르고 떨어진다. 그래서 그것들을 사고팔면서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신용 혹은 주식의 형태로 제공되는 화폐는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구입하는데 공급된다. 그것들은 생산자본이 되어 노동계급의 잉여가치를 착취하는데 관여한다. 이는 또한 화폐만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과 채권은 마르크스가 “상상의(imaginary)” 자본, 혹은 가상(fictitious)자본이라 부른 것들이다. 그것들은 최종적으로는 생산자본이 착취한 잉여가치의 지분을 소득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의 세계에서, 즉 가상자본의 세계에서는 금융자산을 거래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는 황홀한 세계다. 환상의 세계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화폐의 조작을 통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관리자의 영리한 조작과 거래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노동이 모든 이윤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짧은 문단을 통해 강연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조력자로서의 금융과 자본시장의 성격이 잘 묘사하고 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다소 혼란의 여지도 있을 것 같다. 특히 강연자가 가치는 노동으로부터 창출되고 이자나 배당은 그것의 일부일 뿐이라고 하였으면서 다시 가상자본을 통해 스스로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모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value)’와 ‘부(wealth)’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가치는 그것이 화폐로 표현되기 전의 모습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것의 측정단위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명확치 않은 것 같으나 – 또는 내가 무지해서 모를 수도 –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노동시간의 형태로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부는 마르크스주의에서 그것의 명확한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폐의 형태로 표현이 가능하다.

따라서 금융시장에서 거래를 통해 축적되는 – 정확하게는 전유되는 – 막대한 부는 사실은 한 사회, 혹은 전체사회의 가치(value)를 뛰어넘는 화폐증발로 인한, 즉 일종의 인플레이션에 의해 촉발된 거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예컨대 유동성의 비정상적인 공급을 통해 올라간 부동산 가격은 가치의 증가가 아닌 화폐가치의 절하라 할 수 있다.

은행은 기업이기에 앞서 공기(公器)이다

2004년에 적은 글을 이정환님의 블로그에 트랙백 걸기 위해 다시 가져온다. 이 당시 내 인식은 금융기능은 국적성을 가져야 하는 바, 이는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지나친 금융자유화로 인해 1) 금융위기 시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을 저해하는 것과 2) 사적이익의 추구 극대화 요구에 따른 선순환적 금융기능의 퇴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더불어 결론으로는 미약하게나마 공적소유의 유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염려가 어느 정도 현재진행형인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예로 단기외채의 상당부분이 외국계은행의 국내지점이라고 한다.

■ 은행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

“은행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다. 은행은 순수하게 우리 국민이 소유해야 한다.” 1832년 미합중국은행의 외국인 소유지분이 30%에 달하자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국익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허가를 취소하면서 남긴 말이다.”

한겨레21 최근호(2003년12월25일 제490호)에서 외국자본에 팔려나가는 국내은행의 실태를 다룬 기사의 첫 문단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외국자본 비중이 현재 30%를 넘어섰다. 보다 정확하게는 2003년 9월말 국내 은행업에 진출한 외국자본의 지분율은 직접투자와 주식시장을 통한 간접투자를 포함하여 전체지분의 38.6%에 해당한다. 시중은행만을 놓고 보면 비중은 43.4%로 더욱 높아진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논리를 빌자면 우리는 바야흐로 군대보다 더한 무기를 외국인에게 넘겨주고 있는 기점에 위치해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다.

■ 국내은행의 해외매각, 부작용은 무엇인가?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진입영향 및 정책적 시사점(2003년 12월 19일)’에 따르면 국내에서 실제 외국자본의 경영 지배를 받고 있는 은행인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는 은행은 제일, 외환, 한미 3개 은행이며 최대주주는 아니나 지분율 5% 이상의 외국인 대주주가 존재하고 외국인 등기이사도 활동하고 있는, 이른 바 ‘혼합계 은행’은 하나, 국민 2개 은행이다.

그렇다면 과연 외국자본의 은행업 진출은 무엇이 문제인가? 해묵은 민족자본 육성론자가 아닌 자유주의자들조차도 당장 눈앞에서 체감으로 분명히 느끼고 있는 가장 큰 해악은 우선 위기상황에서 공동보조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은 LG카드 사태가 터진 직후 각각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LG카드 채권을 급히 회수해 발을 뺀 뒤 채권단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국내 시장의 교란은 자사의 동북아시아 한 지점의 위기일 뿐 사활을 걸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일 것이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행이 기업이기에 앞서 한 사회의 화폐시장과 신용의 완충장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행동에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지난 몇 년간의 외국계 은행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신용위기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듯한 심증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자본은 국내진입 이후 기업대출, 회사채 및 주식 등 고위험자산을 줄이는 대신 가계대출 및 국공채 등 안전자산 운용을 적극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외국계은행의 기업대출의 감소비율과 가계대출의 증가비율은 각각 내국계 은행의 그것을 약 10%를 앞서가고 있어 인수 당시의 부실을 줄이기 위한 안정적 운용이 불가피함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자산운용을 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난 2-3년 간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은행의 폭발적인 가계대출 증가에 있었다는 분석이 유력한 상황에서, 그리고 이러한 보수적인 대출행태가 설비투자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계 은행의 행태를 곱게 봐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해악은 무엇인가? 당장 눈앞에 나타나고는 있지 않지만 여하한의 외부변수에 따른 국내 금융위기 심화 개연성이다. 그 사례로 1990년대 일본경제의 악화가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쳐 미국의 금융불안을 야기한 사례가 있고,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의 금융위기 발생시 프랑스계 2개 은행과 캐나다계 1개 은행이 철수선언을 하여 금융위기를 가중시킨 적이 있다. 이번 LG카드 사태에서 보여준 국내 외국계 은행의 ‘나몰라라’ 스타일은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외국자본은 충분히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도 남을’ 녀석들이라는 거다.

■ 대안은 무엇인가?

국내 금융업계의 이러한 우려에 대한 대안 하나는 은행 매각시 국내자본이 참여할 수 있게끔 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펀드 규모 2조∼3조원 규모의 이헌재 펀드를 추진 중이다. 내년에 정부 지분 매각을 통해 민영화되는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직접 인수한다는 게 당면 목표다. 그런데 그 성공여부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유력하다. 펀드 규모 상 연기금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우량 주식보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사모펀드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연기금이 나올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연금수령자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결국 자본여력으로 볼 때 산업자본이 가장 유력한 참여주체이므로 이들의 참여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은행법상 4%를 초과하는 은행주식 취득(의결권 행사 가능한도 기준)을 금지하고 있어 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우리금융 민영화를 눈앞에 두고 산업자본의 참여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는 등 이해당사자들 중 상당수는 끊임없이 산업자본의 금융업 참여의 요구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의 종금사 사태에서도 보듯이 ‘기업의 사금고화’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저항선을 형성하고 있다.

■ 결론에 대신하여

화폐와 시장이 존재한 이후로 은행은 이윤추구의 주체이기에 앞서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수행하는 공기(公器)이다. 진보세력이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은행의 주인이 외국자본이냐 국내 산업자본이냐’ 하는 물음은 ‘토끼를 호랑이가 잡아먹는 게 낫냐 여우가 잡아먹는 게 낫냐’ 라는 질문처럼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은행민영화의 추세에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어느 한쪽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세기 관치금융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졌던 금융구조에 대해서 아직도 우리는 기존의 국영화 유지가 어느 정도는 여전히 유효한 소유방식이라는 주장을 거둬들이기는 쉽지 않다. 지난 정권의 국가주도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 그 형식의 오류라기보다는 내용의 오류였다는 판단이 일정 정도 정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국가는 은행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한도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못이기는 척 공기를 팔아 해치우는 선험적 관성을 어느 정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헌재 펀드와 유사한 종류의 국공채 또는 국민주 펀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자산의 건전화를 위해, 정부의 건전화를 위해 부실은행의 매각이 불가피하다면 이를 은행 본래의 기능을 정당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이해관계를 가진 주체들이 참여하는 펀드가 인수케 함으로써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진 후, 그리고 남미의 금융위기가 도래한 이후 이들 나라의 금융은 외국자본의 수중에 넘어갔다. 외국자본의 자국 은행지분 점유율은 멕시코의 경우 83%, 체코의 경우 9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를 그러한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