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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만이 할 수 있는 기획

미국은 현재 의료비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중반 정도이지만, 이대로 의료비가 늘어나면 2020년에는 20%중반까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움직임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예방에 대한 관심이다. 이미 암이라는 질병에서 잘 드러났지만, 전체 치료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미 악화된 다음보다는 초기에 검진해서 찾아내는 것이 싸게 들고, 그보다 이전에 흡연이나 음주와 같이 암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발생률을 낮추는 것이 싸게 든다.[컨트라리언 전략, 이지효 지음, 처음북스, 2014년, p155]

GDP에 관한 역설을 잘 설명해주는 대목 같아서 인용했다. 사람들이 술과 담배를 즐긴다. 그리고 평소에 검진을 게을리 한다. 그러다 암에 걸려 치료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GDP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검진을 게을리 하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향락 산업과 의료 산업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사후치료보다는 예방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별산업이나 개별가계 차원이 아닌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 기획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주로 정부다. 사실상 유일하게 정부만이 개별산업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이른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이런 계획을 입안하고 비용을 지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지출에 대해서 아마도 아인 랜드라면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내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왜 돈을 지출하느냐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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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Dieu in Paris about 1500” by Unknown – http://www.mja.com.au/public/issues/177_11_021202/dec10354_fm.html#i1067496.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한편 그렇다면 정부는 이와 같은 기획을 추진할 재원을 무엇을 통해서 조달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비만 등의 원인인 탄산음료에 매기는 “죄악세”가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의 건강보험 계획의 재원으로 이 세금을 매기려 했었다.1 암 예방을 위한 의료센터의 설립 역시 담배나 술을 파는 회사로부터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는 일종의 도관체인 셈이다.

요컨대 정부는, 예를 들어 건강이라는 이슈에 대해서 개별산업의 경제적 이익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또는 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이는 또한 사회 전체적으로는 GDP에 악영향을 미칠지라도 정부 개별의 대차대조표 상으로는 유익한 행동이기 때문에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경제적 관점에서는 어떠할까? 적어도 이 사례는 장기적인 생산력 관점에서도 이익일 것이다.

아인 랜드의 정부에 관한 생각에 관한 생각

사태가 악화되어감에 따라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축소하기는커녕 더 확대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한다. 그 과정은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게 되는데, 외국에 대한 원조, 외국정부에 대한 부실(지불이 되지 않은) 여신, 다른 복지국가(복지수혜국) 들에 대한 보조, 국제연합에 대한 보조, 세계은행에 대한 보조, 외국생산자들에 대한 보조, 그리고 외국소비자들이 우리의 재화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신용 등을 위해 모든 자금을 소요하는 반면, 그 모든 것에 대해 돈을 지불하고 있는 미국인 생산자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버려지고, 그들의 자산은 이 지상의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 다 차지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中 평등주의와 인플레이션(1974년), 아인 랜드 저, 이종욱/유주현 역, 자유기업선테, 1998년, pp 228~229]

1905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1926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시민으로 살아간 소설가이자 사상가 아인 랜드(Ayn Rand)의 에세이 중 일부다. 소비에트 치하에서 잠시나마 사회주의 지옥을 맛본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상가의 집단주의에 대한 혐오와 자본주의에 대한 신념은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굳건하여 오늘날 리버타리안(Libertarian)이라 불리는 극단적인 경제적 보수주의 사상의 공헌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인용문을 보면 그의 정부에 대한 혐오는 명백하다. 정부는 정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쓸데없는 곳에 정부가 걷은 세금을 낭비해버리고 이로 말미암아 “미국인 생산자”가 아닌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 자산을 차지해버렸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는 당장 해체되어야 할 것이고 실제 리버타리안의 생각은 그러하다. 이런 취지에서 같은 에세이에서 작가는 정부의 역할을 경찰, 군대, 법원으로 한정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위와 같은 행위의 열매를 실제로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 차지해버렸나? 역사적으로 볼 때 그랬을 확률은 낮다. 나열한 여러 정부지출은 마샬플랜과 같은 원조, 국제기구 설립, 대외여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공급 등의 행위로 여겨지는데 이는 대개 미국의 전후패권 유지와 자본주의의 새로운 소비시장 개척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상당부분 “미국인 생산자”가 차지했다.

현실세계의 자본가가 아인 랜드의 주장을 접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질색을 하며 반대할 것이다. 정부가 정말 작가가 주창한대로 일체의 행위를 중단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 유럽은 “유로 소비에트”가 되었을 수도 있고, 멕시코의 외채 위기 당시 미국의 투자은행은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오늘날의 기축통화는 위안화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물론 가정법이니까 아인 랜드가 책임질 일은 없다.

“이 지상의 전염병 발원지에 사는 족장”이라니 대체.

혁신에 관한 정부의 역할

마주카토에 따르면 R&D 매거진이 선정한 1971년부터 2006년 사이의 가장 중요한 혁신 100가지 중에서 거의 90%가 연방의 연구보조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하였었다. 그리고 대형 제약회사들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아무리 커다란 리스크를 감수했고 비용을 지불했고 말을 하더라도, 지난 수십 년간의 진정으로 혁신적인 발견의 대부분은 공공이 지원하는 연구실로부터 탄생했다. 요는 잡스가 천재가 아니라던가, 민간부문의 에너지와 창의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요는 정부야 말로 우리의 경제적 웰빙에 크고 광범위한, 그렇지만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종종 민간부문이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해내고, 새로운 기술과 전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낸다.[Who Created the IPhone, Apple or the Government?]

마리아나 마주카토라는 작가가 쓴 “The Entrepreneurial State: Debunking Private vs. Public Sector Myths.”란 책에 관한 소개 글이다. 인용문과 책 제목에서도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지난 세기, 또는 더 거슬러 올라가는 문명의 역사에서 국가가 해온 역할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보다 더 컸다는 점을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소개 글에서는 구글, 애플 등 민간의 대표적인 혁신기업으로 알려진 이들조차도 정부의 도움으로 오늘날과 같은 지위에 도달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바닥을 다지는 역할을 했는데, 애플, 구글, 페이스북이 돈을 벌고 있는 그 바닥, 즉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은 사실상 정부가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국가가 이렇게 오히려 더욱 혁신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민간부문이 수용할 수 없는 리스크를 – 대개 비용으로 표시되는 – 장기적인 기간 동안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개발비용과 그 기술의 시장만을 고려하여 개발을 시도했다면 인터넷과 우주개발은 진작 잊힌 기술이 되어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윤동기 없는 혁신시도는 종종 과도한 혹은 오도된 정책시행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이 납세자에게 전가된다. 또 예로 든 신약개발과 같이 자본에 의해 독점적으로 전유되기도 한다. 어느 것이 정답일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작가가 의도한 바, 혁신주체에 관한 잘못된 통념은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특허와 관련하여 어떤 회사의 헛된 시도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브리티시 텔레콤은 영국의 국영체신회사가 민영화되면서 탄생한 회사다. 회사는 자신의 특허권으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실천에 옮긴다. 그 용도를 찾지 못했던 정부의 혁신 중 하나가 이윤동기와 맞물려 희극적으로 진행된 사례다.

2000년에 브리티시 텔레콤은 수천 개에 달하는 특허권 보유 상황을 정리했다. [중략] 그중 특허 번호 4.873.662의 10년 이상 된 특허권이 상당히 흥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원격 지점에 있는 컴퓨터에서 정보를 불러내어 공중전화망을 통해 터미널 기기로 전송하는 정보처리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다. [중략] 브리티시 텔레콤은 이 특허권이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연결해주는 하이퍼링크 기술을 완벽하게 설명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이퍼링크를 이용하는 자는 누구나 이제부터 브리티시 텔레콤에 라이센스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최종 고객이 아니라 인터넷 공급 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으려 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 기업은 이를 관철시키지 못했다.[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미헬 라이몬/크리스티안 펠버 지음, 김호균 옮김, 시대의창, 2010년, pp253~254]

우리는 주택 모기지 시장을 국유화했다. 이제 뭘 해야지? (完)

프로퍼블리카에서 미국의 주택 모기지 시장, 나아가 전 세계의 경제의 계륵으로 자리잡고 있는 모기지 자이언트에 대한 알찬 내용의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지난번에 기사의 일부를 두 번에 걸쳐 나누어 소개하였고(첫 번째 글, 두 번째 글) 이번이 마지막 부분이다.

백투더퓨처

한편, FHFA는 패니메와 프레디맥의 미래를 궁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작은 결정들을 잇따라 내리고 있다.

패니메와 프레디맥의 이윤을 증가시키려 하는 과정에서, FHFA는 때로 주택소유자의 권리를 제한하면서까지 모기지 신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FHFA는 유실처분 비용이 높은 다섯 개의 주에서 보증료를 올리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 한 이유로 : 이들 주에서는 판사들이 유실처분을 감독해서, 주택정책 주창자들이 주장하기를 주택소유자들을 위한 투명성과 필요한 절차를 제공하는 곳들이다. 사법적인 유실처분이 없이, 은행의 2010년의 “상투적인 서명(robo-signing)” 남용이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비판자들이 공격하길 FHFA는 은행의 중요한 사업적 감독이 제공되는 주에 사는 주택소유자들을 벌주는 것이다.

또 다른 움직임으로 FHFA는 은행들이 패니메와 프레디맥이 보증한 모기지에 대한 리스크를 그들의 장부에서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을 것을 강요했다. 패니메와 프레디맥은 처음에 대출을 일으킨 회사가 계약조건을 위반한 것을 사후적으로 발견했을 때에 이렇게 해왔다. 이러한 공격적인 “풋백”으로 은행들은 새로운 모기지 대출을 일으키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분석가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정부의 다른 부문들에, 예를 들어 대출을 증가시키기 위해 금리를 꺾어 내리려는 Fed와 같은 곳에 서로 뜻이 엇갈리는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Fed는 불을 끄기 위해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부으려 합니다. FHFA는 호스를 죄어서, 최근 20년 이래 어느 시기보다 더 빡빡한 신용기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컬럼비아 대학의 주택경제학자 크리스토퍼 메이어의 말이다.

오늘날, 워싱턴의 관찰자들은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옵션 3와 비슷한 그 무엇들, 민간과 공공 금융시장의 하이브리드로의 회귀로 합쳐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견해는 시장에서 민간자본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 없이는 주택 시장은 시들어 죽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주택소유에 관한 아메리칸드림의 기념비와도 같은 30년 모기지가, 은행이 정부보증이 없이는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되갚아지는 대출을 제공하기 꺼리게 되면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민간투자자들은 최초의 손실에 묶여있고 이론적으로는 패니메와 프레디맥이 그들의 보증에 대하여 위기를 앞두고 그들이 했던 것처럼 적은 비용으로 청구할 것 같지 않다.

부시가 지명했던 스와겔이 민주당과 공화당 주류 견해들이 다수 겹친다는 주장을 고려하면, 보수주의자로써 그는 정부가 주택에 관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동의한다. “그게 정부가 있는 이유다. 대놓고 하고 잘해라.” 그의 말이다.

스와겔은 보다 강경한 공화당원과는 반대하여 전적으로 민간에 의한 주택 금융 시장은 환상이라고 말한다. 주택은 경제에 너무 중요하기에 정부는 불가피하게 주요한 위기에서 이를 구제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명시적으로 다소 시장에서 물러난다 하여도, 암묵적으로 그것을 지원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부가 그들의 보증에 대해 적정가격을 부과하도록 강제하고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런 견해는 합의에 이를 수 있는 타협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컨센스서가 이루어져야 하는 분야 중 하나다.” 스와겔의 말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 특히 워싱턴과 월스트리트 바깥의 사람들은 이윤추구 행위가 서브프라임 괴멸로 이어졌음을 감안할 때 큰 틀에서의 민간시장 역할로 복귀하는 데에 다시 생각하고 있다. 이를 미는 이가 거의 없지만 옵션 4가 있다 : 모기지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 아마도 주택대출을 정부가 더 많이 직접적으로 보증하게 하는 것. 연방예금보험공사와 유사한 정부기관이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의회로부터 독립적인 수단을 갖게 되거나 그 아래에서 개입을 시행하지만 이윤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방법으로 기관은 패니메와 프레디맥의 공공/민간 하이브리드 모델에 고유한 갈등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추구가 은행들과 금융기관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원인입니다. 정부 역시 곤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덜한 곤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레이건과 조지 H.W. 부시 하에서 주택도시개발청 경제학자로 일했던 수잔 우드워드의 말이다. 이에 더해서 “정부가 소비자를 해치는 무언가를 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하바드 교수 데이빗 샤프스타인은 오바마의 재무부에서 일하면서 위기가 도래할 때만 모기지를 보증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옵션 2를 백서에 집어넣는 것에 기여했다. 그는 스스로 “패니메와 프레디맥의 개조(re-do)”라 부르는 옵션 3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지하는 힘은 막강하다. “이는 주택산업, 월스트리트, 그리고 소비자단체가 근본적으로 똑같은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 – 그리고 매우 이례적이다 -” 그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정을 살피려 할 때에는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의 우려는 민간의 이윤추구 기업들이 성장하고 싶어 하고 시장 지분을 늘이려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위기에 대해 유보해야 할 자본금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모기지 보험에 대한 수수료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로비를 할 수도 있다. 만약 다른 위기가 도래한다면, 더 낮은 자본유보와 더 낮은 수수료로 인해 파산에 더 노출되기 쉽고, 납세자는 그들을 구제해야 한다. “민간시장이거나 정부여야 한다. 그러나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정부는…” 샤프스타인이 말했다. “이는 가능한 중의 최악의 조합이다.”

(끝)

후기

자본주의에서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 기능을 하지 않으면 금융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듯이 결국 부동산 시장에서 – 상당수 국가가 그렇지만, 적어도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 “최후의 지원자”가 없는 상태에서 알맞은(affordable) 주택을 제공하기란 “아메리칸” 드림일 뿐이란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글이다. 샤프스타인은 “주택산업, 월스트리트, 소비자단체가 동일한 옵션을 지지하는 것이 놀랍다”고 하지만, 시장근본주의자가 주장하는 정부지원 없는 주택 금융 시장은 성립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제정신을 가진 이들이라면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따름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잘못” 개입하는 것이 잘못 된 것이다. 그것을 일부에서는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라 불렀고, 우리는 이 희한한 사회주의를 여전히 “미국식 자본주의”라 부르고 있다.

미국의 고용상황과 그 해법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

지난번에 소개한 Econ4 라는 사이트에서 첫 작품을 내놓았다. 미국의 고용상황을 중심으로 경제전반을 훑으면서 고용창출에 있어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부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현 상황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2분 정도의 짧은 길이고 그래프 등 관련 데이터도 풍부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므로 영어공포증이 있으시더라도 한번 보시길.

서민들이 우익정당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한 단초

월스트리트는 너무 추상적이고 대침체를 초래한 금융 게임들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에 대한 정부의 구제금융은 거의 모든 이들이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티파티의 등장이 월스트리트의 구제금융의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티파티를 지지하는 한 지인은 “정부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포섭되어, 우리 세금을 가져가고, 우리의 점심을 먹기 때문에” 정부를 싫어한다고 내게 설명했다.

동시에 보통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정부가 하는 일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너무나 조밀하게 엮여져 있어 거의 정부가 하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의 헬스케어 예산안에 대항하기 위해 의회의 주민회의에 나타나 “내 메디케어를 뺏어가지 마라!”라고 소리치던 분개한 유권자를 생각해보라.

코넬의 정치학자 Suzanne Mettler의 최근 논문에 따르면 얼마나 많은 정부보조의 수혜자가 그들이 여하한의 혜택도 받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소셜시큐리티 수혜자의 44% 이상이 자신들이 “정부의 어떠한 사회 프로그램도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하는 것을 발견했다. 정부보증의 학생대출을 받는 가구의 반절 이상, 홈모기지의 이자공제를 받는 이들의 60%, 실업보험 수혜자의 43%, 그리고 소셜시큐리티 장애급여 수령자의 30%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The Rise of the Wrecking-Ball Right]

서민들이 먹고살기 힘들다면서, 힘 있는 것들이 싫다면서 왜 우익정당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Robert Reich의 설명이다. 즉, 일반유권자들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시장의 작동원리보다는 그 시장과 협잡해 세금을 갈취해가는(!) 정부에 더 분노하기 쉽고, 우익은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작은 정부”라는 – 실질적으로는 “더 큰 시장”이라는 – 그들의 목표를 위해 유권자를 포섭한다는 것이 민주당 지지자인 Reich의 설명이다.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정부의 복지기능을 인지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은 ‘정부가 혈세로 엉뚱한 짓을 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역할을 축소시켜야 하고, 나아가 큰 정부를 지지하는 진보세력을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할 개연성이 있다. 즉, 정부의 형태를 진보적으로 바꿔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관철한다는 대자적 목표는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프로파간다에 정부일반에 대한 혐오감이라는 즉자적 대응으로 치환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현실이 유권자의 염세주의를 부추기고 대자적인 정치행위를 무력화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Robert Reich로서는 민주당을 변호하고 싶겠지만, 결국 오바마의 민주당 정권 역시 경제운용에서 보자면 공화당의 민간금융기업과의 회전문식 인선을 답습하고 있고, 염세주의를 부추긴 월스트리트 구제금융의 장본인이니 말이다.

우리의 경우는 더욱 심해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의 정치적 입장차에 비해 경제적 입장차가 매우 좁은 형편이다. 둘 다 성장주의적, 친재벌적 경제운용을 지향하여 왔고, 큰 정부나 복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최근에서야 재야에서 제도권으로 진입한 진보정당의 그것을 많이 차용했다. 그러다보니 정치적으로는 극단적으로 민주당 정권을 저주하던 보수정당과 보수지가 한미FTA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에서는 한 목소리로 칭송하는 상황까지 연출하였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러한 나라들의 양당정치가 갈수록 퇴보하는 것은 기업정치와 자본의 세계화가 한 나라의 행정권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결국 생존을 위해 그들에게 생존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 강화되면서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기업은 번영을 위해 점점 더 정부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정부가 필요한 서민들이 염세주의적으로 계급모순적인 정치행위를 하게 되는 상황은 지금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