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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꿈꾸었던 산업고도화 전략은 유효했을까?

먼저 인용문에 링크되어 있는 그래프들을 살펴보기 바란다.

제조업관련 종사자는 1972년 23.7%를 차지하였으나 지금은 불과 9%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미국은 지금도 여러가지를 제조해내고 있으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크게 줄어든 것이다.[美고용상황의 변화]

미국의 40년 동안의 업종별 고용상황의 변화를 표현한 그래프다. 인용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한때 제조업의 최강국이었던 미국은 이 분야의 고용인력이 전체고용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으나 오늘날엔 9%에 불과할 정도로 쇠락하고 말았다. 그럼 이들 고용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듯이 대부분 새로운 “제조업 강국”인 중국이나 NAFTA 등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는 곳의 전진기지로 옮겨갔을 것이다.

한편 이 기간의 다른 업종의 변화를 보면, 고급 서비스 업종이라 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비즈니스 서비스’의 비중이 두 배 이상 많아져서 산업구성이 고도화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금융서비스는 동 기간 5.3%에서 5.8%로 거의 변화가 없다. 2008년 월스트리트의 위기를 경험한 이들이 미국의 금융업에 대해 느끼는 의미가 1972년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클 것임에도 실은 고용비중으로 보면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20130620-1011181998~2012년간 미국의 업종별 고용비율 변화 추이

그렇다면 이렇게 고용의 구성이 달라지는 와중에 업종별 생산의 비중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미상공회의소의 경제분석국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해본 바에 따르면, 1948년에서 2010년까지의 기간 동안 제조업과 금융업의 GDP 대비 비중은 거의 X자를 그릴 정도로 그 위치가 바뀌었다. 제조업은 동기간 꾸준히 고용이 감소한 반면, 금융업은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 상태에서 비중을 늘여갔다. 이는 금융업의 인당 부가가치가 제조업보다 높았음을 의미한다.

20130620-1020481947~2012년 미국의 업종별 생산의 GDP대비 비중 변화 추이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간혹 금융업 육성을 통한 경제의 고도화라는 유혹을 느끼곤 한다. 경제발전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임금이 높아져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므로 부가가치 창출이 더 용이한 금융업으로 산업을 고도화하여 경제를 재편하자는 아이디어 말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혹자는 한미FTA도 이러한 산업고도화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추진한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자산운용업 위주의 특화 금융허브를 구축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금융허브를 어느 정도 지향하는 금융허브 구축을 계획하고 있음. 단기적으로는 싱가포르를 모델로 하나, 장기적으로는 런던을 모델로 하면서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의 발전을 구상.[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 현대경제연구원(2005년 5월)]

오이겐 뢰플러 하나알리안츠투신 사장도 “한국의 금융규제가 여전히 많다”며 “금융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자본의 원활한 유입과 유출이 확실하게 보장돼야 하며 규제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세금부담 경감 △외국어 실력 배양 △통관시스템 개선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인수위에 건의했다.[외인CEO”동북아중심,규제완화부터”]

이러한 산업고도화 전략이 유효할까? 신용위기의 거품이 꺼지고 난 후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러한 전략의 위험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은 기축통화국이자 세계금융의 중심지라는 독특한 지위 속에서 금융의 유동화/증권화 전략을 통해 신용을 창출하여 부가가치를 높였다. 그 결과는 과잉신용으로 인한 붕괴였다.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셈이다. 아이슬란드같이 이 모델을 어설프게 흉내 낸 나라의 은행가들은 지금은 어부가 되었다.

금융의 고도화가 신기루에 불과한 엉터리 발전모델은 아니지만 제조업의 고도성장과 같은 접근방식으로 밀어붙여서 될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등의 문화충격을 통해 이를 단기간에 밀어붙이려 했던 정황이 있다. 이전 정부들의 압축성장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더불어 과연 그러한 양적성장 중심 모델이 지속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아래 표는 미국의 고용소득과 배당소득 추이를 보여준다.


(출처 : cfr.org)

제조업의 고용이 줄어들고 금융업의 부가가치 창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와중에 절묘하게도 미국의 소득비중에서도 노동소득은 감소하고 배당소득은 증가했다. 배당소득의 상당부분이 주식을 소유할 능력이 되는 상류층에 돌아갈 것이라는 개연성을 감안할 때, 이런 소득원별 비중의 변화는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일 것이다. 그리고 금융업의 고도화 – 특히 LBO와 같은 M&A 시장의 발달 – 는 이런 경향을 부추겼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은 연구소에서조차 그 심각성을 지적할 만큼 소득저하 및 가처분소득의 감소로 인한 내수부진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의 저임금 국가로의 이전이나 파견직 확대 등을 용인하면서 금융업 발전을 대안으로 설정하게 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제조업 고용의 양과 질은 줄어들고 금융업의 고용은 그에 상응하게 창출되지 않고 내수는 감소하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