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기업경영

서비스 배당권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주식회사는 회사를 분할해 각 지방의 중핵에 본사를 둡니다. 주식회사의 금전 배당은 제로로 하고 서비스 배당권으로 전환합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주주가 일부러 일본에 와 서비스를 받는 것은 교통비만 해도 엄청나므로 자연히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때 제로이윤으로 고용자 보수를 올려 지역 주민이 주주가 되거나 지역 금융기관에 예금이 모이면 지역 금융기관이 주자가 되면 됩니다. [자본주의의 종말 그 너머의 세계,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미즈노 가즈오 지음, 김정연 옮김, Take One, 2017년, p104]

얼핏 들으면 웬 세계화, 전산화, 증권화의 대세를 거스르는 환경주의적 마인드의 공산주의자의 몽상인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후 모건스탠리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경제관료를 거쳐 니혼대 교수로 있는 분이 하는 소리니 좀 신선하기는 하다. 주식과 주주라는 근대의 발명품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인 셈인데, 얼핏 드는 생각은 신규로 발행하는 주식이면 몰라도 기존의 주주들의 금전 배당을 서비스 배당으로 바꾸는 그 혁명적인 과정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거의 무상몰수 무상분배적인 개념?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통한 사회적 통제 확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만약 그러한 연기금의 금전 배당을 서비스 배당으로 바꾼다면 대부분의 연금 수혜자는 미래수익의 상당부분을 포기하여야 할지도 모를 사태가 벌어질 듯 하다.

“기업이 더 적은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일찍이 없었다”

요즘만큼 미국의 기업이 더 적은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일찍이 없었다. 의류업 일자리를 중국으로 옮기고 콜센터 운영을 인도로 넘기던 아웃소싱의 물결은 이제 거의 모든 업계 차원에서 미국 내의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 같다. [중략] 계약 모델(contractor model)이 너무 일반적이어서 포춘誌에서 10년 중 7년 동안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꼽힌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에서도 대략 정규직에 준하는 정도의 외주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고 이 이슈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전했다. 대략 7만의 TVC가 – 임시직(temps), 판매자(vendors), 계약자(contractors)의 줄임말 – 구글의 자동운전 승용차를 시험하고, 법률서류를 검토하고, 생산품을 더 사용하기 쉽게 만들고, 마아케팅과 데이터 프로젝트들을 관리하고, 또 다른 많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근무 중에 빨간 배지를 착용하고 알파벳 직원들은 하얀 것을 착용한다. [중략] 얼마나 많은 미국의 노동자가 계약자로 일하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직업군이 정부부처에서 집계하는 직업군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대략 국가 노동력의 3~14%까지가 또는 2천만 명의 인구가 이 직종에 종사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중략] 궁극적으로 몇몇 대기업들은 가장 핵심적인 고용 인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지치기 당할 수 있다. 컨설팅 회사인 액센추어는 10년 내에 세계에서 가장 큰 2천 개의 회사 중 한 곳은 “중역실 이외에는 풀타임 고용인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작년에 예측했다.[The End of Employees]1

기업은 확실히 20세기 최대의 발명품이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도 오늘날 우리가 기업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런 기업이 지구 단위로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 것은 20세기가 되어서부터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깨달은 것은 분업이 생산성을 높이고 이 과정이 한데 모이면 한층 효율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매뉴팩처가 등장했고, 소규모의 매뉴팩처는 점차 대공장으로 흡수된다. 칼 맑스는 이러한 대공장 기업이 자본주의를 융성하게 만드는 장소가 되는 동시에 노동자들이 조직화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업 스스로와 자본주의를 패퇴시키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1세기 들어 이제 기업이 기업 스스로를 해체시키려 하고 있다. 액센추어의 예언처럼 중역실 이외의 모든 고용이 사라진다면, 이는 기업이 변신 프라모델처럼 여러 부속품이 결합됐다가 필요에 따라 또 다른 무언가로 변신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의미고, 그것을 우리가 알던 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조짐은 이전 세기에도 있었다. 기업은 주식시장과 LBO를 통해 소유주와 자본가의 개념을 해체하는가 하면, 아웃소싱을 통해 노동력의 형태를 다양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이제는 전 업종, 전 업무에서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아웃소싱과 다르다 하겠다.


자동차인 줄 알았더니 로봇(출처 : 영토이)

앞서 말했듯이 20세기형 기업은 비교적 동질의 노동력을 지닌 노동자를 한데 모아 분업화된 공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20세기형 기업은 “또 하나의 가족” 혹은 유사 군대조직과 비슷한 규율과 가부장적 질서에 익숙하다. 이런 질서는 심지어 그 기업에서 태어난 반항아 노동조합에서도 유지됐다. 그런데 이제 社內 노동력은 더 이상 가족도 군대도 아니다. 운전사는 빨간 배지를 단 A 파견회사 소속이고 프로그래머는 노란 배지를 단 B 파견회사 소속이다. 20세기 자본주의가 소규모 매뉴팩처를 합병 또는 해체시키는 과정을 겪었다면 21세기 자본주의는 이를 다시 해체시키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은 20세기 이전의 그것처럼 뭔가 목가적인 뉘앙스의 자영업자의 형성과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개별 부속품을 담당하는 파견회사는 파견회사대로 하나의 거대화된 새로운 형태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1970년대 SF영화인 Rollerball에서는 기업의 독점이 완성되어 회사명이 그저 “기업(Corporation)”이라 불릴 따름이라는 설정인데, 파견회사 역시 비서 파견이 전문인 거대기업은 그저 “비서 회사”로 불릴 따름인 세상이 21세기형 기업의 해체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과정은 궁극적으로 자동화를 통한 인간 노동의 배제 자체를2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띄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가 아니고요

특검이 이재용 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한 사실에 대한 브리핑의 캡처 이미지를 트위터에서 봤다. 자막에는 “특검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라고 쓰여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처음에는 무딘 칼날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특검의 결기를 느낄 수 있는 브리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움도 있는 발언이다. 오히려 “경제를 세우기 위해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식의 브리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느 발언이 더 합당한가에 대한 물음은 정의가 경제를 희생하고서라도 이 사회가 지켜야 할 상보(相補)적 성격의 개념인지, 아니면 정의(正義)와 경제가 함께 가는 것이라는 – 또는 부정적 효과를 가지는 – 상관(相關)적 성격의 개념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는 인문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그 저자가 내한공연(!)을 열만큼 신드롬을 연출했던 책이 있다.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명불허전 우리가 정의에 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많이 깨부수면서도 동시에 대중의 통념을 위로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정의는 공동체의 정서를 지켜내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공동체가 계급, 성별, 인종별 분화를 거듭하게 되면 정의의 정의(定義)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1 체제를 유지한 남한에서는 특히 그렇다.


정의를 제멋대로 정의한 유신 시대의 포스터 (c) 민족문제연구소

이재용 씨의 혐의는 무엇인가? 뇌물공여를 통해 소위 “삼성그룹” 내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안에 대한 주주의 의사결정을 왜곡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 사태의 진행상황은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글로 적은 바 있는데, 과연 합병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닌지는 우선 논외로 하겠다.2 문제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기능적 분화를 유지해야 할 현대사회에서 이재용 씨가 그 기능적 분화를 정치적 압력으로 무마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정부가 아닌 보통사람의 돈으로 운용되는 투자도구이니 만큼 그들에게 있어 “정의”는 보통사람의 경제적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독립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엉뚱한 “국익”을 내세운 사적이익 추구에 복무한 것으로 보이는 혐의다.

분화는 근대사회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한 세계이다. 전체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한다. [중략] 이렇게 분화한 각 사회적 단위들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기능이 주어진다. [중략] 그리고 다양한 영역이나 조직은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다. [중략] 아니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다양한 국가기관과 그 기관들에 속한 수많은 국가관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국가이성비판, 김덕영 지음, 다시봄, 2016년, pp121~122]

정의의 문제로 돌아가자. 근대사회의 한 기능인 기금운용본부에게 있어 정의는 무엇인가? 연금 납입자의 경제적 이익이다. 운용본부가 그 이익을 위해 결정을 했다면 본부가 합병을 찬성했든 반대했든 그 결정을 존중해줄 합리적 이유가 있다. 그런데 만약 외압에 의해 합병을 찬성했다면 정의가 무너졌다고 여길 합리적 이유가 있다. 이때 실현된 정의는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상층부를 위한 정의다. 한편, 그렇다면 이 정의가 최소한 국가 단위의 공동체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재벌 체제에 내재화된 경제신문들은 하나같이 특검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곡소리가 났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주가로 관찰할 수 있는 시장은 별로 반응이 없다. 재밌는 일이다.

기금운용본부의 기능적 분화 무력화 시도가 경제에 장단기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3 하지만 원론적인 부분에서 살펴볼 때 이재용 씨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그는 시장의 본원적 기능, 즉 균형가격의 탐색을 방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가 기금운용본부의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본부는 시장의 합병할 양사의 합병비율이 균형가격에 부합하는지 독립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장주의자들이 경제발전의 대전제로 여기고 있는 이상향임은 분명하지 않은가? 즉, 기능적 분화를 거친 독립적 기관의 각각의 정의가 서야 원론적 경제가 바로 서는 것이다. 이재용 씨는 시장의 균형가격 탐색을 방해한 자본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본가는 적어도 시장주의자가 아니다.

LBO 단상

폴린 카터라는 여성이 남긴 유산에서도 이런 사례를 잘 알 수 있다. 그녀는 레이놀즈의 식당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다. 비록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주급 12달러밖에 벌지 못했지만, 이 얼마 되지 않는 벌이 가운데 일부를 떼어 종업원을 위한 레이놀즈 ‘A’ 주식을 샀다. [중략] 그러다가 회사가 KKR에 팔리자 카터는 분통을 터트렸다. 회사는 어떻게 되고 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주식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어 거의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고 조카는 증언한다. [중략] 커터는 그동안 RJR 주식을 4만 2,500주를 모아두고 있었다. 카터에게 떨어진 돈은 세금을 빼고도 300만 달러였다. 카터는 그 뒤로도 계속 검소하게 살다가 2000년, 사망하기 직전에 270만 달러를 윈스턴살렘 재단에 기부했다.[문 앞의 야만인들, 브라이언 버로/존 헤일러 지음, 이경식 옮김, 크림슨, 2009년, pp906~907]

1980년대 M&A 열풍이 월스트리트를 휩쓸던 당시 역대 가장 큰 M&A 거래가 됐던 RJR 내비스코 거래에 관한 책인 ‘문 앞의 야만인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후기에 나오는 일화다. 비록 미국 자본주의 체제가 여느 경제보다 더 활발했고 그에 따라 주식의 손 바뀜이 잦았던 나라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노동윤리를 가진 노동자들은 이러한 세태와 상관없이 주식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곤 했던 목.가.적.인 자본주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일화라서 옮겨 적어 보았다. 거래가 이루어진 뒤 십 몇 년 동안 그 거래규모의 기록이 깨지지 않았던 엄청난 규모의 거래였던 지라 식당 종업원마저 300만 달러의 거금을 거머쥘 수 있었지만, 카터의 관심사는 그 액수가 아니라 자신이 신념처럼 믿고 있었던 직장의 견고한 존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LBO라는 금융기법을 유명하게 만든 M&A 시장의 활성화는 인수기업을 카터와 같은 이의 소박한 꿈과는 거리가 먼 – 매드맥스 퓨리로드에서의 모래폭풍과도 같은 – 광풍이 휩쓸고 가는 난장판으로 –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 만들었다. 주식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수의 주식을 소유하게 된 또는 전문경영인이었던 경영진은 기업이 거대화된 후 기업을 지키거나 기업가치의 재고를 위해 분투해야 했고, 이러한 요구를 금융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바로 LBO였다. LBO의 창시자들이 스스로를 MBO(Managed Buyout)라 불러주길 바랬듯이 LBO는 새로운 관리와 구조조정을 의미했다. 기득권, 비용초과, 관행 등이 관리의 대상이었는데,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기존 멤버들에게는 위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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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부인이 기업의 가치를 공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해당 기업의 주식 매입이다. 이 방법의 단점은 – 특히 외부인에게 있어 – 주식가치의 재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LBO인데 주식을 아예 통으로 매입하여 스스로 가치 재고를 위한 대수술에 돌입한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 프로세스였다. 이러한 수술 기간은 주식투자자에게 있어서는 영겁의 세월이나 다름없는 3~5년 정도였고 때로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질 수도 패배로 이어질 수도 있는 확률게임이다. 어쨌든 통상의 주식 거래와는 비교가 안 되는 큰 규모의 거래인지라 투자은행, 변호사, 회계사 등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떡고물을 위해 주변에 몰려들었다.

몇몇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다룬 이야기는 단지 RJR내비스코라는 한 회사가 몰락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장차 미국 기업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게 되는 ‘나도 한몫 챙겨야지’하는 풍조가 바야흐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한때 착실하던 회계 법인들의 회계사들도 자기들이 회계 감사 대상 회사를 감사하는 게 아니라 그저 고객 회사가 바라는 대로 모든 걸 맞춰주는 자신의 모습을 문득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죽어가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의 회장이던 폴 볼커는, 자기 회사 직원들이 ‘엔론’의 공범이 되었던 이유는 그런 회사들과 그 직원들이 누리는 엄청난 부를 부러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같은 책, p908]

LBO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공사례도 많고 실패사례도 많다. 금융시장의 발달에 따라 이전과 같이 “안정적인” 경영권이 반드시 정의롭거나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만도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엔론의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LBO 또는 사모펀드라는 소수 플레이어의 시장에서의 무규칙 플레이는 왕왕 기업의 발전과는 상관없는 – 당초 LBO의 이상향이기도 했었을 – 플레이어들의 초기 배당 잔치로 끝나 버리기도 한다. 길지 않은 우리의 사모펀드의 역사에서도 벌써 딜라이브와 같은 실패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시위에 나섰고 그 중 많은 이들이 생업의 현장을 떠났지만, 그 거래의 플레이어들은 과연 GP라는 이름에 걸맞은 책임을 졌을까? 사실 책임의 방식조차 룰로 자리 잡지 않은 시장이긴 하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삼성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전 국민의 눈길이 최순실 씨를 비롯한 국정농단세력의 추한 행태에 쏠려 있는 와중에도 – 이하 박근혜 게이트 -, 그들의 국정농단에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은 – 보다 정확하게는 이재용 씨는 – 꿋꿋이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포함한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그동안 삼성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줄곧 부정해 왔는데 이번에 이제 그 전환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정국의 혼란을 틈타서 조용히 발표하려는 것일까? 중론에 의하면 바로 어영부영 박근혜 게이트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의 턱 밑에 특검이 와 있는 것처럼 지주회사 체제를 통해 자신의 지분을 강화하려는 이재용 씨의 턱 밑에 이러한 꼼수를 막으려는 각종 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상법 개정안, 같은 당의 제윤경 의원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회사의 분할 또는 분할합병 등을 통하여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분리하면서 분할하기 전에 자기주식의 비율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후 분할·분할합병의 방식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지주회사는 자기주식을 그대로 보유하여 그 자기주식에 대하여 자회사로부터 주식을 배정받아 현행법에 따른 모회사와 자회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지분 요건을 확보하고 있음.[상법 일부개정법률안, 2016.7.12.]

자기주식은 흔히 “자사주(自社株)”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업에서 발행한 주식을 회삿돈으로 다시 매입하는 주식’을 말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는 흔히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 후 소각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이 줄어들면서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결권이 제한되는 자사주의 특성에 따라 적대적 M&A 세력의 의결권을 약화시키는 목적에 쓸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은 이 자사주를 소위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창조경제를 구현하였다. 지난 2011년 정부는 “자사주 매입과 처분의 장점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자사주 매입·처분 요건을 완화했다. 그런데 이런 규제완화가 소위 인적분할과1 결합하면 지주회사가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활용하여 사업회사의 신주를 배정받아 의결권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마술을 부리게 된다.

한진그룹은 지난 2013년 대한항공을 지주회사(한진칼)와 사업회사(대한항공)로 나눴다. 인적분할 방식의 회사 나누기로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자사주 주식 6.75%를 갖게 됐다. 이후 한진칼에 승계된 대한항공 자사주 6.75%는, 그 비율만큼 사업회사로 된 대한항공의 신주 배정 발행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기존에 보유한 대한항공 대주주지분율 9.87%에 인적분할로 생긴 대한항공 신주 지분(6.75%)를 합쳐 총 지분을 16.62%까지 늘렸다.[재벌 지배력 강화 ‘자사주 꼼수’ 막는法…박용진 의원 발의]

삼성전자는 자사주 비중이 12.18%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하면 지주회사가 사업회사의 자사주 12.18%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 개정안들에 따르면 삼성은 ‘회사를 분할할 때 분할회사 자사주에 분할 신주 배정을 금지’(상법 개정안)당하거나 ‘대기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회사를 분할하려면 반드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공정거래법 개정안)해야 한다. 한진이 하던 절도를 삼성은 못하게 된다.

‘부자 삼성 가난한 한국’의 저자 미쓰하시 다카아키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의 대기업은 국내 시장의 과점화, 대외 직접투자 증가, 국내 투자 축소, 인건비 인하, 원화 약세, 법인세 인하2 등 한국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갖가지 시책과 전략 속에서 성장률을 높이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의 발언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는 정부와 국민의 희생 속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지난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과의 합병에서 불합리한 합병비율로 합병하여 이재용 등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시켰던 삼성이, 이제는 다시 그 지배력을 활용하여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자사주를 동원하고 이를 통해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는 2차 퀀텀점프를 시도하고 있다. 노동자의 희생과, 원화 약세를 위한 국가적 희생과, 차별적인 대우를 통한 자국 소비자의 “호갱화”로 거대기업이 된 삼성전자가 그렇게 이재용의 품에 안기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국익”을 위해 도와줘야 하나?

뉴욕 한복판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세 자매 이야기

뉴욕 맨해튼의 한 빌딩을 통째로 쓰고 있는 서점에 관한 짧은 뉴스인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아 공유한다. 이 서점은 창업자의 세 딸이 각각의 영역을 맡아 운영 중이다.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아직도 운영 중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딸 한 명이 “우리가 이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덕분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사업을 접었어야 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부동산을 팔라는 제의가 얼마나 자주 오느냐는 질문에는 “1년에 백 번”이라고 대답한다.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이냐는 질문에는 “어려움에 놓여 있는 책”이라고 대답한다. 책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교환가치가 높은 곳에서 어렵게(?) 서점을 운영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다. 어떻게든 자영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건물주여야 한다는 시사점과 그런데도 교환가치가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장경제 하에서는 여유 있는 이들조차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역설을 말해주는 웃픈 에피소드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에 대한 JP모건 체이스의 세밀한 분석

이 보고서는 2012년과 2015년 동안의 무기명화된 샘플로 온라인 플랫폼 경제에 참여한 26만 명 이상의 재무상황에 대해 전례 없이 자세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이들은 이 3년 이상의 기간 동안 30개의 개별 플랫폼들 중에 최소한 한 개 이상의 플랫폼에서 소득을 얻었다.[Paychecks, Paydays, and the Online Platform Economy, JPMorgan Chase & Co. Institute, 2016년 2월, p20]

JP모건 체이스에서 내놓은 이 보고서는 본인들의 주장대로 전례 없는 여러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이 비즈니스가 싹틀 즈음에 “공유경제(sharing economy)”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렸다가 요즘은 “노동경제(gig economy)”라고 자주 명명되는 해당 분야에 대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가장 집약된 수준으로 분석된 보고서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또한 이 비즈니스를 “온라인 플랫폼 경제(online platform economy)”라고 부르고 있는데, 해당 비즈니스의 특징을 고스란히 잘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명명이라 여겨진다.

2015년 9월에, 성인의 1%가 온라인 플랫폼 경제로부터 활발하게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이는 3년간의 기간 동안 월간 참여율로 10배가 증가된 비율이다. 누적적으로는 성인의 4%가 이 플랫폼 경제로부터 소득을 올렸는데, 이 누적참여율은 3년간의 기간 동안 47배 증가한 수치다.[같은 보고서, p21]

해당 보고서가 분석하였듯이 플랫폼을 통해 소득을 얻는 이들의 규모는 아직 전체적으로는 미미하기는 하지만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빠른 성장은 온라인 플랫폼의 투자 증가, 노동의 파편화 경향, 서구 노동자들의 빈곤화 증가세 등과 맞물려 진행되어 왔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여겨지는데, 주되게는 노동과 수요를 이어주는 온라인 플랫폼의 유용성은 이미 어느 정도 구식의 수단 – 벼룩시장, 대리기사용 PDA 등 – 으로도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보고서는 온라인 플랫폼 참여자의 자세한 현황 이외에도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담고 있는데, 바로 과연 온라인 플랫폼이 참여자들의 실질적인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분석이다. 이 분석을 위해 보고서는 플랫폼을 ‘노동 플랫폼’과 ‘자본 플랫폼’으로 나누어 각각의 소득변화를 관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여기서 노동 플랫폼은 Uber, TaskRabbit 등 주로 노동을 제공하여 소득을 올리는 플랫폼이고 자본 플랫폼은 Airbnb, eBay 등 자산의 매각이나 임대를 통해 소득을 올리는 플랫폼이다.

우리는 현재까지 노동 플랫폼과 자본 플랫폼이 소득의 변동성(volatility)에 기여하는 정도에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전체적으로 플랫폼 소득이 있었던 달들의 노동 플랫폼 소득은 대부분 非플랫폼 소득의 14%의 부족분을 메우는 소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동 플랫폼 소득이 있었던 달들의 소득은 소득의 추가적인 15%에 기여하는 것으로, 총소득을 3,638달러(플랫폼 소득이 없었던 달들의)에서 3,639달러(플랫폼 소득이 있었던 달들의)로 1% 미만의 증가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자본 플랫폼 경제 참여자들 경우에는 전통적인 소득에 대한 대체라기보다는 추가 소득의 성격이 있었다. 非플랫폼 소득은 플랫폼 소득이 있었던 달들에 비해 1% 미만으로 적었고, 자본 플랫폼 소득은 추가적인 7%의 소득에 기여하여 총소득이 4,747달러로 非플랫폼 소득(4,454달러)보다 대략 7% 상향되었다.[같은 보고서, p26]

매우 시사적인 분석결과다. 자본 플랫폼의 참여자는 온라인 플랫폼의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소득증가로 이어진 반면, 노동 플랫폼의 참여자에게는 플랫폼 소득증가의 수단 라기보다는 대체소득의 수단으로 쓰인 것이다. 이는 노동 플랫폼 참여자가 정기적인 노동이 아닌 부정기적인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고, 온라인 플랫폼을 그런 부정기 노동 참여의 또 다른 방편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마저 자산소득과 노동소득에 있어 현실에서의 불균형 경향이 재연되고 있을 개연성을 의미한다.

Uber나 Airbnb는 “공유경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긴 했지만 그리 획기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단지 기존의 소규모 비즈니스에 온라인 플랫폼이 결합되어 – 주로 투자자 입장에서 –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노동 플랫폼은 기존의 노동력 파견업체가 추구하던 수익 모델이 보다 기술적으로 교묘하게 – 예를 들어 날씨에 따라 노동시간이 달라지는 스타벅스처럼 – 적용되어 부정기 노동의 파편화, 또는 脫노동자화1를 더욱 가속화시킬 개연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실질소득의 증가는 없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