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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유가 시대에 대한 단상

지난 5년간 미국의 셰일 생산이 치솟는 바람에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초과하였고 이로 인해 18개월 동안 유가는 75% 아래로 떨어졌다. 금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이벌인 이란이 제재의 해제에 따라 시장에 재진입할 준비를 함에 따라 원유가 30% 떨어지며 폭락이 가속화되었다. [중략] 미국의 셰일 생산자들은 2010년에서 2014년 기간 동안 배럴당 평균 가격이 100달러에 달했던 빠른 확장기 동안 조달한 대규모 부채를 갚기 위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펌프질을 해댔다. 만약 가격이 배럴당 30달러 위로 오르지 않는다면 많은 기업들이 올해 파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Saudi Arabia says $30 oil is ‘irrational’]

석유업은 최근에 들어서야 석유 메이저, 국영석유기업, 대형 석유화학 기업 등의 존재 때문에 매우 안정적인 사업 분야로 인식되는 것이지, 그 초기에는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의 투전판이었다. 금을 찾아 헤매는 황금광시대의 채굴업자처럼 석유를 찾아 헤매는 이들 역시 “검은 황금광시대”의 남루한 채굴업자였던 것이다. 다만 주요한 차이라면 원유의 발견에서 굴착, 그리고 상품화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볼 때, 궁극적으로 석유생산업이 금광업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개연성일 것이다.

그래서 석유업은 진작부터 프로젝트파이낸스라는 금융기법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였다. 계속기업의 신용이 아닌 미래의 잠재적인 현금흐름을 분석하여 장기의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기법인 프로젝트파이낸스는 가진 것이라고는 땅속의 원유밖에 없는 석유업자들에게 딱 어울리는 조달기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조달기법은 1930년대 미국의 유전개발에 적용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BP의 영국 북해 유전 개발에는 9억4천 달러의 조달을 위해 66개의 금융기관이 신디케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신세대 석유업인 셰일 생산에 뛰어든 업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메이저가 아닌 회사가 셰일 분야에 뛰어들려면 결국 프로젝트파이낸스를 활용하는 것이 유리했다. 자금조달을 위해 필요한 사업성분석은 당시의 유가인 배럴당 100달러를 비용은 그들의 주장에 근사값인 배럴당 60달러 정도를 적용했을 것이다. 이 금액을 재무모델에 적용하면 자기자본을 어느 정도 투입하지 않아도 채산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어 자금조달이 가능했을 것이다. 유가가 그 가격을 유지하는 한 모두가 행복했을 시장이었다.

그러나 다른 요소들도 유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새롭고도 중요한 요소는 최근 석유 섹터가 부담하는 부채의 현저한 증가다. 투자자들이 기꺼이 원유자산과 매출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려고 하기 때문에 원유기업들은 부채 수준이 광범위하게 상승하는 와중에도 대규모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다. [중략] 생산자들이 변제능력이나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오일 섹터의 이러한 과중한 부채부담이 석유 시장의 최근의 역동성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중략] 높은 부채 수준으로 인해 유가 하락이 생산자의 재무상태표를 악화시키고 잠재적으로 원유자산 판매의 결과로써(예를 들어 더 많은 생산량이 선물로 팔린다) 가격하락을 부추기면서 신용수준을 조이게 된다. 둘째로, 낮은 유가는 현금흐름을 감소시키고 기업이 이자를 지급할 수 없는 유동성 부족의 위기를 증가시킨다. 부채 상환 요구 조건은 현금흐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질 생산을 지속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이것이 시장에서의 공급 감축을 지연시킬 수 있다.[Box: Oil and debt (February 2015)]

하지만 2014년 중반 이후 유가가 속절없이 떨어지면서 지옥도가 펼쳐졌다. 수요를 넘어선 공급이라는 매크로 환경이 이미 유가 하락의 환경을 조성했지만, 석유업 벤처들의 높은 레버리지 활용으로 말미암아 셰일 업자들은 – 파이낸셜타임스의 인용기사에서 표현한 것처럼 – 빚을 갚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펌프질을 해대야 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가격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닷컴버블에서 볼 수 있었던 버블이 석유업에서도 복합적인 요인과 맞물려 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세가 꺾인 중국과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노쇠한 유럽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 같지는 않다. 공급 쪽을 보면 비록 사우디가 배럴당 30달러가 비정상적이라고 주장을 했다지만 스스로 감산 추세를 주도할 것 같지는 않다. 비록 사우디가 총대를 멘다할지라도 최근의 사우디-이란 분쟁 등을 감안할 때 산유국의 공동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셰일 업자들에게나, 전통적인 산유국에게나, 그리고 그들로부터 사업을 수주했던 건설/조선업자들에게나 모두 우울한 전망이다.

바다에 빠진 노동자라도 빚은 갚아야 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고용주에게 제공하는) 노동생산성이 계속 증가해온 이래 1970년대 이후의 역사상 가장 높은 이윤을 향유했다. (고용주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임금은 그렇지 못했다. 은행에 쌓인 증가일로의 이윤은 대부분 소비자 대출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소비자 신용의 분출은 고전적인 자본주의 모순을 이연시켰다. 그것은 급속히 확대되었을 때 나빠졌을 수도 있는 소비자 수요를 지탱해주었다. 자본가는 지구화된 노동력 덕분에 그들의 월급명세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정체되어온 실질임금에 기반을 둔 점증해온 소비자 부채의 25년은 예상할 수 있던 한계에 도달했다. 노동자의 소득이 부풀어 오른 채무를 감당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을 때, 그들의 파산은 – 소비자 부채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의 파산과 함께 – 2008년의 붕괴에 일조했다.[Capitalism – Not China – Is to Blame for the Current Global Economic Decline]

2008년의 금융위기가 단기적으로 미국의 부동산 시장의 거품뿐만 아니라 중기적으로 1970년대 이후 증가일로에 있었던 소비자 신용이 그 한계에 도달하여 유발되었다는 설명을 인용해보았다. 이글의 서론에도 언급하듯이 자본주의에는 다양한 형태가 현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자본주의 형태의 현재시점에서의 공통점은 인용한 부분의 설명처럼 소비의 상당부분이 노동자이기도 한 소비자의 부채를 통해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특성은 확실히 이전 세기 초반의 자본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특성이다.

이러한, 소득과 소비의 불일치를 소비자 신용으로 채워온 자본주의 형태의 선두주자에서 한국을 빼놓을 수 없다. 예로 한국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국가 규모의 거대한 소비자 신용을 통해 집단적으로 소비해온 소비자 신용 선진국이다. 이름도 걸맞게 “주택담보 집단대출”이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되어온 아파트 개발 사업은 전형적으로 개발업자가 “부동산PF”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아파트를 짓고, 이를 사들일 소비자는 자기 돈 일부에 “주택담보 집단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아파트를 사는 과정을 밟아왔다.

그래서 작년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민간소비 부진의 원인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나열한 여러 원인 중 첫 번째가 바로 “가계부채”다. 보고서는 최근의 민간소비 부진이 “경기적 요인으로 보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고 지적하며, “가계부채가 임계점에 도달”하였다고 단언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그 절대적 규모도 규모거니와 원리금 상환능력이 중요한데, 우리의 가계부문의 원리금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2년 말 163.8%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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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Austria shipwreck” by Unknownhcandersen-homepage.d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Commons.

한편 정부는 지난 12월 16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성과를 구체화”하고자 할 목적으로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았다. 이 발표에서 제시한 가계부채에 관한 정책방향은 “주담대 분할상환 관행 정착”과 “집단대출의 건전성 관리”다. 즉, 만기 일시상환 위주의 대출을 분할상환으로 유도하고 집단대출이 실수요자 위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인데, 이 정도면 근본적인 부채대책이라기보다는 미세조정에 가깝다. 이는 전경련조차 “임계점”이라고 규정한 심각한 가계부채의 근본대책이라 보기에 미흡하다.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실질적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인 가처분소득을 늘릴 수 있는 대책으로는 “정규직 전환 및 근로자 임금증가액에 추가 세액공제 부여” 등이 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이미 작년에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를 도입한 바 있고, 그 덕인지 2015년 국내총소득 증가율도 전년기 동기 대비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였다.2 하지만 여전히 중기적으로 세금·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 부문의 부담 증가3, 전월세 가격의 폭등4은 가처분소득을 감소시키고 있어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보다 근본적으로 부채에 허덕이는 가계에 직격탄을 날리는 상황은 부족한 소득마저 빼앗아가는 실업이다. 인용문에서도 지적하듯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지구화된 노동력은 노동자가 언제라도 직업을 잃을 수 있는 전제를 제공하고 있는 한편으로, 국내 경기의 장기침체 조짐에 따른 상시적 인력감축은 노동자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신입사원마저 “희망퇴직”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기업의 인력감축정부의 일반해고 요건 완화 시도는 체제적 위기의 풍파에 시달리는 배에서 노동자들을 우선 바다에 던져 넣겠다는 것이다.

물론 바다에 빠진 노동자라도 빚은 갚아야 한다.

한국에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는 연합뉴스

한국에 ‘헝그리정신’이 사라졌나…노동의욕 61개국중 54위

오랜만에 추억의 걸작 ‘넘버3’를 생각나게 하는 신문기사를 접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최근 발표한 ‘2015 세계 인재 보고서'(IMD World Talent Report 2015)의 내용을 전하면서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을 함께 엮은 연합뉴스의 이 기사는 노동의욕이 저하된 트잉여들을 빡치게 하는 기사 제목 덕택에 아침부터 트위터 타임라인에 핫이슈로 등장하였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넘버3의 “헝그리 정신” 일화도 다시 화제다.

“전문가”에 의해 순위가 낮은 것은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받은 항목은 ‘노동자 의욕(Worker Motivation)’ 항목이다. 한국은 이 항목에서 조사국가 61개국 중에서 54위로 최하위권으로 머물렀다. 그런데 그 의욕은 누가 측정한 것일까? 바로 기업 임원의 설문을 통해 측정된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서의 주관적인 의견이다.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없다는 말은 누가 했을까?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다.

한편 가장 자발적으로 일한다는 평가를 받은 국가는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나라다. 이 나라들은 세계 최고의 부국인데도 불구하고 전경련 상무의 분석에 따르면 “헝그리 정신”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국가랄 수 있다. 한편 전경련 상무는 “선진국이 아닌데 선진국인 줄 안다”는 말도 덧붙였다. 요컨대 우리 노동자들은 선진국이 아닌데도 선진국인줄 알고 헝그리 정신이 없어져서 기업 임원들 보기에 노동 의욕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한편 이와는 다른 분석을 하는 이의 의견도 기사에 언급돼있다. 허대녕 기초과학연구원 전략정책팀장은 “고급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 기업과 연구소의 환경도 미국 같은 나라보다 너무 열악하다. 야근이 잦은데다 고용 불안도 심하다”고 말했다. 이 의견은 앞서 전경련 상무와 반대되는 의견이다. 허 팀장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노동자는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헝그리하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없다는 의견으로 들린다.

실제로 보고서의 조사항목 중에서 한국이 ‘노동자 의욕’과 비슷한 순위에 머물러 있는(56위) 항목이 ‘생계비(Cost-of-living) 지수’다. 이 항목에서 우리와 비슷한 순위를 차지한 국가는 앞서 노동 의욕이 강하다는 스위스나 덴마크가 있다. 그런데 이들 나라는 임금이 우리나라보다 높다. 우리나라는 그 나라보다 임금도 낮고 노동시간은 더 긴데도 생계비는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면 전경련 상무보다 허 팀장의 분석이 더 설득력 있는 분석이 아닐까?

기업임원이 노동자의 의욕이 없다고 평가하고 기업이익대변단체 임원이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비아냥거리고 그걸 그대로 기사제목으로 쓰는 상황. ‘넘버3’보다 더 웃긴 코미디다.

그때 위임장을 써달라던 삼성물산 직원은 어디로 갔을까?

삼성물산 주식 100주를 갖고 있는 김모(63·서울 송파구)씨는 지난 7일 저녁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대행(代行) 위임장을 써 달라는 삼성물산 직원의 방문을 받았다. 김씨는 “위임장을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며 돌려보내려 했지만, 이 직원은 “얼마 걸리지 않으니 직접 받아가면 안 되겠느냐”고 간곡히 요청했다. 김씨는 “오죽 급하면 찾아왔을까 싶어 합병 찬성 위임장을 작성해 줬다”고 말했다.[삼성물산·엘리엇 ‘위임장 전쟁’, 2015년 7월 10일]

KIC가 엘리엇에 투자한 사실을 알리며 “삼성물산 지인에게는 미안하지만”이라 단서를 단 트윗을 봤는데, 물산 직원에게 합병이 이로울까? 합병하면 시너지 효과 홍보를 위해서라도 건설 부문 인력 구조조정은 필수다. 위임장 받으러 다니던 그 직원일 것이다.[EconomicView on Twitter, 2015년 7월 10일]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 9일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상대로 관련 통보를 시작했으며 현재 각 부서별로 순차적인 통보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 통보 대상은 약 1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 6월 기준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직원수는 계약직을 포함해 총 7270명이다. [중략] 사업부문이 겹치는 제일모직 건설도 이미 인원 감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제일모직이어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구조조정 시작, 2015년 11월 10일]

샌프란시스코에 등장했다는 무인(無人) 레스토랑에 대한 단상

지난주에 난 빠르게 움직이는 줄에 서서 평면 모니터에 나오는 각각 6.95달러(브리토 볼, 벤토 볼, 발사믹 비트)인 여덟 개의 퀴노아볼(quinoa bowls) 메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패드로 내 주문을 눌러 메뉴를 고른 후 지불했다. 신용카드에서 취한 내 이름이 다른 스크린에 뜨고 음식이 준비된 후 다른 화면에 번호가 떴다. 그 번호는 내 음식이 곧 나타날 칸의 번호였다. 그 칸들은 음식이 비축되면 어두워지는 투명한 LCD 스크린들 뒤에 위치해있다. 인간이 개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리자 칸막이가 열렸고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Restaurant of the Future? Service With an Impersonal Touch]

최근 샌프란시스코에 문을 연 퀴노아 식당인 잇사(Eatsa)라는 곳에 대한 뉴욕타임스 기사 일부다. 고대 마야인이 먹었다는 곡물인 퀴노아가 자연식을 추구하는 서구의 힙스터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 지는 꽤 된다. 그래서 새로운 퀴노아 식당이 생겼다고 해서 그리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 식당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곳이 무인(無人)시설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식당의 설립자 David Friedberg는 식당이라기보다는 음식배달 시스템이라 여겨달라고 했다지만 주문된 음식을 상업공간에서 함께 먹는다면 그건 누가 뭐래도 식당이지 배달서비스는 아닐 것 같다.

자동화에 따른 식당 등 각종 서비스의 무인화는 사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20세기 초의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던 대중문화 예술인들은 이런 개념을 큰 어려움 없이 상상하여 자신들의 작품에서 묘사하기도 했고, 폭넓게는 아니지만, 극소수 혁신적인 미래주의적 기업가에 의해 현실에서 실현되기도 한 적이 있다. 이후 실제로도 많은 식당 서비스가 자동화되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사회를 선도해나갔다. 대표적인 서비스 및 상품이 바로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햄버거 푸드체인이다. 일관화되고 표준화된 생산 매뉴얼에 따라 만들어지는 – 요리라기 하기에는 어색한 – 그 곳 말이다.


1900년대 초 베를린에서 있었다는 자동화 식당의 풍경. 지금의 Eatsa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직접 가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잇사는 이미 상당히 무인화된 카페테리아와 같은 곳에서 그나마 인간노동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조리, 주문, 계산, 청소와 같은 노동마저 자동화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짐작건대, 조리 과정 단순화 및 무인화, 아이패드 등 전자기기를 통한 주문 및 계산 서비스 자동화, 별도의 설비작업을 통한 청소 서비스 무인화 등의 요소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앞으로 가격과 품질의 조화만 이룬다면 입맛이 까다로운 고객이나 사람과의 소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고객을 제외하고는 상당수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기자가 말해줬는데 인간과 컴퓨터가 각각 스포츠 경기 결과에 관한 기사를 작성하여 기자들에게 기사 작성주체가 누구인지 짐작하게 했는데, 상당수 기자들이 누가 작성한 기사인지를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기계의 발전이 이런 추세로 나아간다면 장래에 제조업 프로세싱이나 식당 등 반복적인 단순 노동뿐만 아니라 스포츠 기사 작성, 금전 출납, 운전과 같은 좀 더 복잡한 노동, 나아가 비평 칼럼 작성, 의료 진찰, 법률 상담과 같은 고도의 정신적 판단을 요구한다고 여겨지는 노동에까지 기계의 작동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지 말란 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 아니다. 문제는 대다수 노동자에게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임금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잇사와 같은 개별자본의 입장에선 노동자가 직업을 잃어 소비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광범위한 자동화와 이로 인한 소비자층의 붕괴는 아마도 정치인, 총자본, 노조 등에서나 신경 쓸 의제가 될 것이다. 이나마도 자동화에 의한 노동시장의 붕괴는 마치 기후변화처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옥죄어 오는 것이기에 난민, 복지, 최저임금 등 보다 급박한 현안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려있게 될 것 같다.

대다수 노동이 자동화에 의해 대체된다면? 기본소득이 답일 듯.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가 초래한 불공정한 게임

레이블들은 그들의 수입의 일정비율(간혹 15% 정도)을 지불한다. 이 비율은 스트리밍 음악이 제조, 파손에 의한 피해, 그리고 손상을 보상하기 위한 레이블의 별도의 물리적 비용 등이 포함된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LP나 CD 생산과 비교할 때에 스트리밍은 레이블에게 비교도 안 되는 높은 마진을 안겨준다. [중략] 나는 애플 뮤직에 맛보기 기간 동안의 저작권료 계산법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그 계산법은 저작권 보유자(즉 레이블)에게만 공개된다고 말했다. 나는 내 레이블을 가지고 있고 내 앨범 중 몇 개의 저작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내 배급사에게 얼굴을 돌리자 그의 답은 “당신은 계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당신 변호사가 우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게 하면 몇몇 질문에 답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였다. 상황은 더 나빴다. 한 업계 정보통은 내게 메이저 레이블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을 그들의 카탈로그에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언뜻 보기에도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략] 레이블들은 세 곳의 또 다른 수입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아티스트들에게는 감춰진 것들이다. 그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선금을 받고, 오래된 노래들에 대한 카탈로그 서비스에 대해 지불받고, 스트리밍 서비스 자체의 주식을 받는다.[Open the Music Industry’s Black Box]

80년대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현재 솔로로 활동하면서 미술작품 제작 및 저작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David Byrne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스포티파이, 판도라, 유투브, 애플 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산업의 핵심부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신이 음악가이자 레이블 소유자이기도 한 Byrne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계약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음악가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얼마 전 Taylor Swift가 애플 뮤직과의 지상 논쟁을 통해 음악가들에게 불공정한 것으로 보이는 처사를 취소하게 했던 해프닝도 있었던 바, 음악가들에게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의 현재와 앞날은 초미의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그리고 Byrne은 Taylor Swift의 항의에 한발 더 나아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와 레이블 – 특히 메이저 레이블 – 간에만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계약에 대한 – Byrne은 이 계약을 “블랙박스”라 칭하고 있다 –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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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yrne by Ron Baker” by Ron Baker – http://www.flickr.com/photos/kingsnake/2948571996/in/faves-24788065@N0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Commons.

David Byrne이 기타 연주하는 모습

스스로가 레이블 소유자인 Byrne이 애플 뮤직이나 배급사 등으로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여하한의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시장은 철저한 과점 시장이다. 그 과점 업체는 상위 3위의 레이블인 Sony, 유니버설, 그리고 Warner다. 이들 3개 업체는 Byrne이 짐작하길 서비스에 대한 선금과 주식 등을 배정받아 이미 서비스 업체와의 특수 관계가 되었고 음악가는 물론이고 독립적인 레이블들을 계약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요컨대 스트리밍 서비스는 ▲ 음악소비 행태를 바꿔놓았고 ▲ 레이블은 더 이상 CD와 같은 물리적 상품을 이전처럼 대규모로 생산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 그럼에도 이들의 저작권에 대한 대가는 이전과 같은 비중 혹은 비밀스러운 계약과정을 통한 더 많은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Byrne의 관찰기다. 다시 말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바뀐 음악 산업에서, 자본은 저작권이라는 고정자본을 마모시키지 않으면서도 잉여가치를 계속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악이 산업화되어온 역사를 거칠게 보자면 초기에는 일종의 서비스업이자 유통업으로써 공연을 하는 생산자가 수입의 대부분을 갖는 형태였을 것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류층이 소비하는 고전음악의 생산자는 왕족이나 귀족의 후원이나 보수, 악보 판매 등의 수입으로 살아갔다. 현대로 접어들며 LP의 대량생산 시대부터 생산자는 레이블에 속해 이익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제 음악 산업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회귀하며 생산자는 은밀한 거래에서 소외되고 있다.

통합 삼성물산이 탄생할 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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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headquarters” by Oskar Alexanderson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DSC_0234.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건은 일반의 – 그리고 개인적인 – 예상대로 합병 승인으로 1차 승부가 끝났다. 합병 건이 막 화제가 되었을 적에 회사 동료들과 이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한 동료에게 ‘만일 네가 삼성물산에 투자하고 있는 펀드의 펀드매니저라면 이번 합병 건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을 것이냐’란 질문을 했고 그는 반대하겠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이유를 물으니 그는 불공정한 합병비율도 있고 등등 운운하며 우물우물 거렸다.

불공정한 시장참여자를 응징하겠다는 “정의로운” – 또는 행동경제학적인? – 그 동료에게 나는 다시 ‘그게 펀드매니저로서의 적당한 행동인지를 판단해보라’고 조언했다. 시장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라면 모를까 펀드매니저라면 합병 건이 자신이 운용해야 하는 자산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직업윤리라는 관점에서 한 말이었다. 합병 건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직업윤리의 기준에서 판단을 하는 것이, 적어도 ‘타당한’ 판단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순환출자가 아직도 재벌 소유구조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고, 재벌 일가의 경영적 판단이 “오너”의 판단으로 둔갑하는 이 사회에서의 펀드 매니저 또는 주주의 대부분은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이 타당한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통합 삼성물산이 앞으로도 삼성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고 재벌 일가는 어떡하든 앞으로도 주가를 띄우려 할 것이다.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은 한동안은 주가가 시원치 않을 것이다.

(삼성물산이 직접 겁박하기도 한) 이러한 정황이 오늘 삼성물산 주총에서의 – 제일모직 주총은 언급할 필요도 없고 – 시장참여자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재용 씨가 이번 합병으로 인하여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다는 것이 배 아프다고 합병에 반대하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인으로서의 마인드가 아니다. 그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득에 다만 얼마라도 묻어가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직업윤리에 비추어 보아도 합당한 판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 우리 모두는 신고전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