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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의미는?

김진태가 그렇지 않아도 살얼음판이었던 금융시장에 곡괭이질을 해댔다. 극우정치인으로서 그간의 언행을 보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그의 행동이 채무변제에 대한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위치와 연계되는 순간, 그간의 언행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금융당국은 수수방관하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주말에 부랴부랴 모여서 입바른 소리일 확률이 높은 ‘50조원+α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나 김진태의 망발은 사실 ‘울고 싶은데 뺨때리는 격’이어서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사태는 강원도가 레고랜드 개발을 위해 만든 출자기업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자금난을 겪자 김진태가 기업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되었다. 즉, 공사는 레고랜드 사업 관련 자금 조달을 위해 특수목적회사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천50억 원의 ABCP(Asset Backed Commercial Paper)를 자본시장에서 발행했다. 하지만 지난달 ABCP 차환 발행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지급 의무를 맡았던 강원도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최종 부도 처리됐다. 복잡한 단계이긴 하나 사실상 지자체가 보증을 선 채무가 상환되지 않자 시장에는 불신감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ABCP, 말 그대로 자산이 담보로 받쳐주고 있는 기업어음이다. 그렇다면 아이원제일차는 투자자에게 무엇을 담보로 제공하였을까? 정확한 구조는 모르지만, 아마도 레고랜드의 미래수익이 일차적인 담보였을 것이다. 통상 기업이 장기구매계약을 통해 미래매출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시점에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ABCP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말로 “유동화 금융”이지만, 조금 더 직관적인 표현으로 급전(急錢)이다. 공사 역시 레고랜드 사업지연으로 자금난을 겪게 되자 유동화 회사를 설립하여 급전을 쓴 것이고 신용평가사는 도의 지급 보증을 믿고 해당 어음에 A1 등급을 매겼다.


개략적인 ABCP 발행구조

그렇다면 차주는 왜 장기의 안정적인 금융을 일으키지 않고 단기로 차환 발행의 위험이 높은 ABCP를 발행하는 것일까? 발행이 쉽기 때문이다. 미래수익을 담보로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지자체가 보증을 서거나 또는 위치 좋은 부지를 담보로 제공하면 좋은 신용등급을 받아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기자금이기에 금리도 더 저렴하다. 증권사도 이익이다. 그들 역시 내부적으로 단기금융이 가능하며 일단 CP를 총액인수한 후 투자자에게 수수료를 떼고 넘겨 위험을 최소화한다. 시장이 정상일 때는 모두가 행복한 비즈니스다. 이게 지난 몇 년 간 여의도 증권가에서 성행하던 패턴이다.

둔촌 주공아파트의 PF 사태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총 1만2032가구 규모의 ‘올림픽파크포레온’을 짓는 이 사업은 조합과 시공사와의 갈등 등으로 인하여 사업이 지연되던 중 8월 기존 대주단이 7천억 원의 사업비 대출 만기 연장을 거부하며 자금 위기에 봉착한다. 이에 조합은 증권사를 통해 자산담보부단기채(ABSTB)를 발행했다. 이 역시 PF의 미래수익을 담보로 발행한 것이나 실상은 시공사의 지급보증이 가장 큰 담보였다. 그러나 그 채권 역시 차환발행에 실패하며 시공사가 자금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상황이 악화되었고, 일부 건설사는 자금난으로 유상증자를 하는 등의 사태가 빚어졌다.

두 사업의 공통점을 살펴보자. ▲ PF로 개발사업을 시작했고 ▲ 여건 악화로 자금난에 시달렸고 ▲ 지자체/시공사가 신용을 제공한 단기자금을 동원했고 ▲ 매크로 시장이 얼어붙으며 차환발행에 실패했다. ABCP, ABSTB 등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금리가 저렴하고 조달이 쉬운 단기자금을 동원하여 차주는 위기를 모면하고 대주는 장단기금리차를 향유하는 금융업의 기본적인 이익추구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알다시피 1997년 외환위기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단기외채를 끌어와 마진을 더해 장기로 운용하여 수익을 올리다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며 시작된 것이다.

아파트와푸른하늘(AM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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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여의도 금융가에서 다시 이 방식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주식거래 등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하던 일부 증권사들은 부동산개발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M증권 등이 이러한 식으로 재미를 보기 시작하자 증권사들이 너나없이 PF사업에 “브릿지”, “메자닌”, “ABCP” 등의 용어로 포장된 단기자금을 제공하거나 “총액인수”라는 또 다른 단기금융기법으로 큰돈을 벌게 되었다. 사업자와 은행 등 장기금융을 제공하는 금융기관 사이에 놓여있는 ‘그림자 금융’이다. 이제 문제는 이들이 제공한 신용이 얼마만한 규모이고 위기 상황에서 얼마만큼의 파급력을 가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상황은 긍정적 요소가 없다. 토지가격, 공사비, 금리 등 사업비 주요항목은 모두 이미 올랐거나 오를 일만 남은 반면, 분양가는 시장 악화로 인해 낮출 수밖에 없다. 사업성이 악화되는 것은 불가피하고 분양이 되지 않을 경우 자금위기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한 예로 최근 GS건설·SK에코플랜트는 경기 의왕시 ‘인덕원자이SK뷰’ 아파트의 일반분양 899가구 중 508가구의 미계약이 발생해 무순위청약으로 전환했다. 지난달 청약 당시 5.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던 단지의 실제 계약률이 43.5%에 그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업시행자, 금융기업, 건설사 모두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부동산PF 대출 현황을 파악하는 작업을 실시한다고 한다. 현재 부동산PF 대출 잔액을 올해 112조원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50조원+α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이 이러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가 선행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대형 증권사에 1조원 규모의 중소형 증권사 ABCP매입 전용 펀드를 조성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대통령은 그 와중에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이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발언했다. 지금 이 판의 가장 큰 수혜주는 “도덕적 해이”로 먹고사는 대기업들이다. 경알못 대통령이여.

동양시멘트의 황당한 법정관리 신청

그동안 시장에서는 동양시멘트가 타계열사대비 비교적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법정관리 신청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하지만 현재현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 일가들이 기존 경영주에게 경영권을 유지하도록 하는 ‘관리인유지(DIP)’제도를 악용해 일부러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동양시멘트가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동양이 동양시멘트 지분을 담보로 발행한 1570억원 규모의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 투자자들의 손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양증권이 리테일 창구를 통해 이를 대부분 판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동양증권 영업 직원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동양 법정관리 점입가경..당국 업무마비·동양證 노조 철회 탄원서 제출]

하지만 동양시멘트의 사업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원이 동양시멘트의 청산을 결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자산 매각과 부채 청산 등 구조조정을 통해 동양시멘트가 경쟁력을 강화해 시장에 다시 나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또 다른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를 통해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대규모 부채를 털어내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은 영업실적을 올릴 수 있다”며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행이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업계엔 호재?]

이미 위험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동양그룹의 일부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는데, 그 중에서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를 두고 비난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양심불량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다. 기사에서도 잘 설명돼 있듯이 업계 2위의 동양시멘트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재무상황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기존 경영주에게 경영권을 유지하도록 하는” 현행 법정관리인 제도를 악용하여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ABCP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손해를 끼치려는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오히려 “대규모 부채를 털어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ABCP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Asset-Backed Commercial Paper의 약자로, 자산이 담보가 되는 기업어음이다. 기사에서 보면 동양시멘트 지분을 담보로 1570억원의 ABCP를 발행했는데, 이 어음을 동양증권이 일반투자자에게 판매했다. 당시 불완전판매의 개연성도 있겠으나 어쨌든 동양증권 직원들은 동양시멘트의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함을 내세워 어음을 팔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업이 무리하게 법정관리에 가버리니 그들로서도 황당할 노릇이다. 이런 부도덕한 법정관리가 횡행하는 이유는 기사에 나왔듯이 현재현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현행 제도를 악용하려는 의도가 가장 유력하다.

결국 경영의 책임을 져야할 이는 경영권을 유지하고,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채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기업경영 개선을 위한 협의도 하지 못하고, ABCP를 산 투자자들은 돈을 날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동양증권 직원들은 그런 악성 투자 상품을 판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승자는 오직 현 경영진이 되는 희한한 상황이다. 이와 유사하게 법정관리 신청은 한계상황에 몰린 기업이 오히려 채권은행과 투자자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써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웃지 못 할 상황을 재연하지 않기 위해 법정관리 신청 조건을 강화하고 관리인 유지 제도를 재검토하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

리파이낸스(Refinance)

리파이낸스(Refinance). 자금조달을 의미하는 finance라는 단어에 re가 들어가서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자금재조달’이 된다. 위키피디어에서는 리파이낸스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Refinancing may be undertaken to reduce interest rate/interest costs (by refinancing at a lower rate), to extend the repayment time, to pay off other debt(s), to reduce one’s periodic payment obligations (sometimes by taking a longer-term loan), to reduce or alter risk (such as by refinancing from a variable-rate to a fixed-rate loan), and/or to raise cash for investment, consumption, or the payment of a dividend.

보다시피 리파이낸스의 목적은 다양하다. 뭐 쉬운 예로 내가 집을 사기 위해 2년 만기 9%의 고정금리 대출을 받았는데 대출받은 1년 후에 6% 고정금리 대출상품이 나와서 제반비용 포함해도 8.2%라고 하면 그 상품으로 대출을 갈아타는 행위, 그것이 리파이낸스인 셈이다. 그리 어려운 개념도 아니지만 때로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이 리파이낸스는 잘만 활용하면 좋은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장치다. 이는 의도적인 리파이낸스를 통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의 수익모델은 지극히 단순하다. 낮은 금리의 돈을 가져다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것이다. 신용이 높으면 금리가 낮고 신용이 낮으면 금리가 높고, 기간이 짧으면 금리가 낮고 기간이 길면 금리가 높다. 전자의 구조에서 취하는 수익을 신용 스프레드(spread)라 하고 후자의 수익은 기간 스프레드라 한다. 그것을 섞어서 대출상품이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출을 할 때에 리파이낸스를 특히 기간 스프레드 극대화에 활용하면 좋다.

A기업이 100억원을 대출받아 도심에 빌딩을 지어 분양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하자. 경기가 좋은 시절이라 싼 이자 대출도 가능하여 여러 은행에 금리를 문의했다. B은행이 경쟁적으로 시중금리보다 0.5%싼 6% 대출을 제시하여 대출은행으로 선정되었다. B은행의 영업비밀은 3개월짜리 ABCP(asset-backed commercial paper ;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을 활용하는 것. 건설부터 분양까지 3년 예상되는 이 사업에 3년 만기 대출상품을 적용하지 않고 3개월 단기상품을 반복하여 차환 발행한다는 개념을 도입하여 금리를 낮춘 것이다.

요컨대 3개월 단기대출상품은 3년 대출상품보다 금리가 싸다. 그러므로 B은행은 싼 금리의 ABCP를 활용하여 경쟁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 개발사업에 일반화된 개념이지만 선도적 도입기관은 그 특혜를 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매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ABCP를 다시 발행하는 것이 바로 리파이낸스다. 이때 기본전제는 해당사업에 대한 대출은 사실상 사업기간 동안 계속 유지되고 리스크, 특히 시장리스크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리파이낸스 마술은 사라졌다. 자산 확장기에 급격히 늘어난 ABCP는 기준금리에 매우 저렴한 스프레드만을 붙여 발행되었다. 금융위기에 따라 건설사들의 신용이 급전직하하면서 차환 발행되는 ABCP에는 대폭 할증된 스프레드가 붙여졌고 그나마도 차환 발행되는 것이 다행이었다. ABCP의 기준금리로 대표적으로 사용되었던 CD금리는 정부의 의도적인 개입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5~6% 대에서 2.4% 대로 폭락하며 신용을 급속히 위축시켰다.

앞서 언급했듯이 더 큰 틀로 보아 금융 그 자체가 사실은 리파이낸스 성격이므로 이러한 사업구조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CDO, CDS 등 여러 상품들도 큰 틀에선 리파이낸스 상품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틀은 상당부분 수정이 가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준금리, 발행조건, 사전 리스크 점검 등의 기준이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를 비집고 머리 좋은 친구들에 의해 또 다른 리파이낸스 마술이 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