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치킨은 진정 당당한가?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당당치킨’이라는 유령이.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각국의 소비자는 치솟는 의식주 및 에너지 비용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년 전보다 6.05% 뛰면서 외환위기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근원인플레이션과 에너지·식료품 가격 인상 영향이 컸다. 이러한 탓에 소비자들은 한 푼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가격 상승은 각종 외식 품목도 예외가 아니다. 5월 외식 물가지수는 작년 12월보다 4.2% 상승, 전체 소비자 물가상승률 3.4%를 웃돌았다. 특히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외식 품목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라이드치킨이다. 39개 외식 품목 가격이 모두 작년 말보다 올랐는데 치킨(6.6%)의 상승률이 가장 높았고 이어 자장면(6.3%), 떡볶이(6.0%), 칼국수(5.8%), 짬뽕(5.6%) 등의 순이었다.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가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고 있는 와중에,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은 지난 3월 라디오에서 “치킨값이 3만원은 돼야 한다”고 발언하여 소비자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렸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당당치킨’이다. 홈플러스에서 2022년 7월 출시한 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1마리 기준 6,990원(달콤양념 치킨은 7,990원)에 판매하여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9시 45분. 개장을 15분 앞둔 경기도 안양 홈플러스 평촌점 입구에 손님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오전 10시, 마침내 직원이 셔터를 올리고 문을 열었다. 손님들이 잰걸음으로 입장했다. 몇몇은 뛰어들어 갔다. [중략] 목표는 지하 1층 즉석식품코너에서 한 마리 6990원에 판매하는 ‘당당치킨’. 광복절이자 말복이었던 이날 홈플러스는 당당치킨을 1000원 추가 할인된 5990원에 전국 매장에서 5000마리 한정 판매했다.[치킨 3만원 시대에 6990원… 이번엔 맛과 가격 모두 통했다]

대형 유통업체가 가성비 좋은 치킨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롯데마트는 2010년 12월 ‘통큰치킨’을 출시했는데 가격은 5천 원이었다. 당시 치킨 프랜차이즈의 치킨 가격은 1만 원 중후반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프랜차이즈 업계는 대기업의 횡포로 골목상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행정부도 이에 호응하며 롯데는 사업을 철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전히 프랜차이즈 업계는 ‘통큰치킨’ 사태 당시와 유사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치솟는 외식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체감지수는 그러한 논리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3, 4천 원에 달하는 배달 플랫폼의 배달료가 더해지면 당당치킨의 가성비는 더욱 두드러지기에 “삐끼상품”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당당치킨을 직접 구입하기 위해 판매대 앞에 줄을 서고 있다.

이 와중에 프랜차이즈 진영에서의 내부 분열 양상도 눈에 띈다.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 방송에서 익명을 요구한 한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 가맹점의 점주는 본사에서 받는 생닭 가격이 6천 원 이상이라면서 “엄청 비싼 것이다. 같은 호수 생닭을 시장에서 사면 반가격 정도, 내지는 더 좋은 제품 살 수 있다”고 증언했다. 골목 상권의 자영업자를 죽이고 있는 이가 홈플러스 하나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기름값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파리바게트에 납품되는 기름과 성분이 완벽히 동일한 기름을 쓰는 걸로 안다. 그런데 파리바게트는 가맹점주들에게 16.5kg 기름을 주고 7만4800원을 받는가 하면, 우리는 15kg짜리 기름을 받고 ‘배’에 가까운 13만8270원(부가세 포함)을 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당당치킨 가격을 맞추겠나. [중략] 가격이 3~4배가 차이난다면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BHC 가맹점주의 울분 “팔면서도 소비자들껜 죄송합니다”]

그간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소상공인들은 임금 상승 탓에 영업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곤 했었다. 임금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임을 전제하더라도 왜 그 소상공인들은 재료비나 임대료와 같은 다른 부담에 대해서는 거의 말이 없을까 의아해하곤 했는데, 이번에 재료비에 대한 본사의 횡포에 대해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본사의 인플레이션 핑계는 핑계일 뿐이었다.

이제 당당치킨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가성비가 좋은 프라이드치킨을 만들 수 있을까?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기존 인력과 시설, 매장을 이용해 인건비, 임대료 등이 따로 들지 않는 구조“라고 의문의 일부를 해소해줬다. 생닭 값에 관해서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와 유통업계 관계자의 일부 증언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량 구매를 통해 단가를 맞출 것이다.

가맹점에 납품하는 생닭 값을 높여 받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달리 홈플러스는 직영점에 거의 원가에 생닭을 납품한다고 가정한 후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부담하는 인건비, 임대료, 기타 유틸리티 비용을 절감하여 가격을 맞추는 상황인 것이다. 왜 인건비가 들지 않을까? 프라이드치킨을 생산할 신규 인력을 고용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유통업계 관계자는 돈이 따로 안 든다고 한 것이다.

[한상인/홈플러스 메뉴개발 총괄] “원가를 낮추기 위해 원재료를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박리다매이긴 하지만 저희도 손해 보면서 장사하는 건 아니거든요.”[중략]
[홈플러스 조리 노동자] “인건비는, 지금 있는 인건비로 인원을 쥐어짜는 거예요. 노동자들은 죽어나는 거라고요. [중략] 그 시간에 맞추려면 죽어라 하고 해야 해. 진짜 화장실도 못 가지. 어떨 때는 진짜 참다 참다 막 뛰어다녀요. 숨도, 진짜로 나쁜 말로 숨도 못 쉬게 몰아치니까.”
조리 노동자들은 원래 닭강정, 로스트치킨, 초밥 등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당당치킨’이 폭발적 인기를 끌자, 평일 연장근무는 물론 쉬는 날에도 불려나온다고 합니다. 원래 하던 일에 더해, 하루에 40마리에서 최대 150마리 치킨 튀기기가 추가된 겁니다.[“종일 닭 튀기느라 화장실도 못 가요” 6,990원 당당치킨의 그늘]

장사를 고약하게 배웠다. 메뉴개발 총괄은 원가를 낮추기 위해 원재료를 희생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 대신 노동력을 희생하고 있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얼마의 초과근무 수당이 지급되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당당한’ 당당치킨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천 원을 넘기지 않게 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칼 맑스는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 동기의 하나로 기계의 도덕적(무형의) 가치감소에 대한 두려움을 든다. 기계의 도덕적 가치감소는 “기계에 있어 같은 구조의 기계가 보다 싸게 재생산되거나 보다 우수한 기계가 경쟁자로 나타나면 교환가치를 잃게”1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 경우 기계는 매장 등 기존 인프라를 의미하며 우수한 기계는 가격을 더 낮춘 치킨을 만들어낼 경쟁자를 의미한다.

이미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경쟁자들이 홈플러스와 유사한 가성비의 치킨을 내놓아 시장을 빼앗기 위해 장전을 한 상태다. 이마트는 행사 기간이긴 하지만, 한 마리에 5980원 짜리 프라이트치킨을 판매하기도 했다. 홈플러스는 게임체인저로서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그동안 빠르게 브랜드를 안착시켜야 하기에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브랜드의 도덕적 가치감소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요컨대, 기존 프랜차이즈와 홈플러스 모두 이윤 창출의 원천 중 하나는 여전히 가맹점주와 노동자, 즉 인간에 대한 착취를 통해서라는 점이 동일하다.2 프랜차이즈는 ‘치킨 3만 원의 시대’를 부르짖으며 가맹점주의 희생을 강요하고 홈플러스는 ‘치킨 6천 원의 시대’를 부르짖으며 노동일을 연장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비즈니스 환경이 변화해도 노동착취가 이윤 창출의 주원천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다.

  1. 자본론, I하, 칼 맑스 지음,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0년, p515
  2. 병원 관계자인듯한 어느 트위터 사용자의 트윗에 따르면 환자가 진단서를 요구했는데 용도가 “본인이 하는 치킨집 본사 제출용”이고 “정당한 사유 없이 2일 이상 쉬면 불이익을 준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게 자영업인가?

1 thought on “당당치킨은 진정 당당한가?

  1. sticky

    홈플러스 노조 “매장 당 5~8명에 불과한 조리 노동자들이 기존보다 5배 많은 치킨을 만들어내고 있다. 평일 기준 하루 30~40마리 튀기던 치킨이 150마리까지 늘어났다. 기존 1시간 점심시간이 30분으로 반토막이 나고, 휴식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뜨거운 튀김통 앞에서 일해야 한다. 조기출근과 연장근무가 일상이 되고 휴무일조차 불려 나오고 있다. 이같은 살인적인 노동이 두달째 이어지고 있지만 앞으로 개선될 여지가 없다”

    https://v.daum.net/v/2022083114440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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