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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실수”를 수습해야할 한국 정부

“우리는 한국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한 논의를 할 자세가 되어있다.” (美국무부 산하의) 경제성장, 에너지, 환경 차관 호세 W. 페르난데즈는 한 논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음 달에 국내 규칙제정 과정을 시작함에 따라 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윤은 언급한 문제에 익숙한 두 번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美하원의장 낸시 팰로시가 지난달 남한을 방문했을 때에 직접 만나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만남이 있었더라면 법의 통과 전에 조율을 시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는 말했다.[South Korea Sees ‘Betrayal’ in Biden’s Electric Vehicle Push]

한국 대통령이 워라벨 추구하느라 내한중인 미국 정부의 2인자를 만나지 않아서 한국 정부가 한국의 전기자동차 수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인플레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1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조율할 수 있었을 기회를 놓쳤다는 美국무부 관리의 주장이다. 짧은 만남을 통해 해당 법안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가능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전화통화에서는 다룰 수 없었던 주제였다는 점에서는 아예 기회를 원천차단 해버린, 그럼으로써 美관리가 우리가 “실수를 저질렀다”라고 주장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음은 분명하다.

This 1973 photo of a charging station in Seattle shows an AMC Gremlin, modified to take electric power; it had a range of about 50 miles (80 km) on one charge.
By Seattle Municipal Archives from Seattle, WA – Seattle Municipal Archives, CC BY 2.0, Link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한국산 차량을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이 한미FTA와 WTO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높다고 밝혔다. 이 법이 한미FTA의 비차별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해당법과 관련해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전 정보나 통보를 받은 것도 없다한다.2 FTA도 맺었고 기회 있을 때마다 “동맹”이라고 치켜세우던 초강대국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하지만 동맹이고 뭐고 간에 늘 그렇듯이 미국의 자국중심주의적 행동이었을 뿐이고 우리는 뒤통수를 맞았을 뿐이다.

美정부의 유력자가 내한했어도 우리 권력자가 만나지 않을 자유는 있다. 그게 자주적(自主的) 정부의 권리일 것이다. 그래서 자주권을 가지고 FTA도 맺었고 주권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방이 약속을 어겼을 때는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찾아와야 오롯한 자주 국가라 할 것이다. FTA나 투자보호협정은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 조항 탓에 주권을 뺏긴 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처분에 따라 거액을 론스타에게 뺏기는 험한 꼴만 당한다면3 FTA의 존재의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워라벨을 지켜낸 그 결기로 주권을 지켜야 한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 조항에 관한 호주 정부의 결정

시장선거가 끝나자마자 한미FTA 이슈로 나라가 시끄럽다. 지난번엔 찬반 양측이 한바탕 “끝장토론”을 벌였지만 예상대로 끝장은 나지 않은 채 팽팽한 평행선만 그렸다. 하지만 역시 의회는 찬성론자들이 장악하고 있어 한미FTA의 비준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반대론자의 대표적 이론가인 송기호 변호사가 정 한미FTA를 통과시키고 싶으면 이 조항만이라도 빼달라고 애걸하는 조항이 하나 있는데,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 조항이 그것이다.

ISDS는 외국 투자자가 투자국 정부의 정책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즉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사법체제를 벗어나 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인데, 이는 주로 “간접수용”이라는 희한한 개념과 쌍으로 같이 다닐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제도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것이나 소위 “사법주권”의 측면에선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초 한미FTA 협상에서도 법무부와 재경부가 이 제도를 다 반대했다. 하지만 통상교섭본부는 이를 무시하고 추진했다. 부처간 힘의 논리에 따라 과거 같으면 가능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참여정부 시절 권력이 강화된 통상교섭본부는 이를 밀어붙였다 한다. 한편 FTA에서 이 조항이 빠진 사례도 있다. 2003년 체결된 호주와 미국의 FTA의 경우에는 ISDS 조항이 협약에 반영되지 않았다. 반대론자들은 주로 이 사례를 들어 반대를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호주에선 이 사례를 계기로 NGO들이 이 이슈를 제기하여 급기야 금년 4월 정부는 향후 호주가 체결할 모든 무역협정에서 이 조항을 채택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고 한다. 사실 당시 해당 조항이 협정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미 양국의 법률 시스템이 분쟁을 조정하는데 있어 충분히 법적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왕성한’ 제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사례가 호주 사회에 새로운 논쟁을 촉발시킨 셈이다.

금년 4월 국제무역협상에로의 호주의 접근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재고의 일환으로, 길러드 정부는 양자간과 지역간 무역협정에서 더 이상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 조항을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이 새로운 정책은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외국 투자자들에게 ‘더 큰 권리는 없다’는 원칙과, 이를 위해 ‘규제를 할 수 있는 정부의 권리’ 라는 원칙에 대한 언급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NGO들은 오랫동안 이 원칙을 지지해왔는데 정부는 보통 립서비스로만 일관해왔었다.
In April of this year, as a part of a broader rethink of Australia’s approach to international trade negotiations, the Gillard Government vowed that it will no longer include provisions on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ISDS) in bilateral and regional trade agreements. The new policy is justified by reference to the principles of ‘no greater rights’ for foreign investors and the government’s ‘right to regulate’ to protect the public interest. These principles have long been advocated by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NGOs) but have generally only been paid lip service by governments.[Australia’s rejection of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Four potential contributing factors]

ISDS에 대해 ‘위헌이다’, ‘지나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힘의 균형상 한국이 불리하다’, ‘투자자 호보를 위해 불가피한 제도다’ 등 갑론을박이 있다. 현재 그 유사한 사례로는 국제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한 용인경전철 사업을 들 수 있다. 이 경우를 보면 주무관청의 잘잘못을 떠나 사법권이 해외기관에게 맡겨진 사례의 결과를 잘 살펴볼 수 있다. 과연 이 낯선 풍경이 일상화되었을 때 사법주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때서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